김윤후와 처인부곡민들이 살리타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김윤후가 직접 화살로 쏘아 그를 죽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려 조정에서 살리타이를 죽인 장본인으로 김윤후를 지목해 정3품을 제수했으나, 그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며 이를 사양하고 정6품 섭랑장만 받았다. 김윤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투할 때 저는 활이나 화살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어찌 귀한 상만 받겠습니까” 겸손하게 공을 돌린 것인지, 정말 아니었는지.. 어찌 되었든 처인성 전투는 일개 지역민들이 몽골군의 사령관을 죽였다는 점에서 고려의 몽골에 대한 항전 가운데 가장 큰 승리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김윤후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한편, 김윤후는 단 두 차례의 전투 기록만 전해 초년과 말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김윤후와 처인부곡민들이 살리타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김윤후가 직접 화살로 쏘아 그를 죽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려 조정에서 살리타이를 죽인 장본인으로 김윤후를 지목해 정3품을 제수했으나, 그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며 이를 사양하고 정6품 섭랑장만 받았다.
김윤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투할 때 저는 활이나 화살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어찌 귀한 상만 받겠습니까”
겸손하게 공을 돌린 것인지, 정말 아니었는지.. 어찌 되었든 처인성 전투는 일개 지역민들이 몽골군의 사령관을 죽였다는 점에서 고려의 몽골에 대한 항전 가운데 가장 큰 승리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김윤후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한편, 김윤후는 단 두 차례의 전투 기록만 전해 초년과 말년의 행적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