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70.80년대 이전에 기생충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국내산, 호주산 등을 우리나라에서 먹는 건 괜찮은데, 중국, 동남아 여행 가서 삼겹살을 덜 구워 먹다간 기생충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구요. 즉 바싹 구우면 괜찮다고 합니다. 의외로 이런 경우 좀 있답니다.
현재 군생활하고 있고, 전역을 앞두고 있는 말년병장입니다 북시탈님 영상 보면서 정말 북한과 한국의 군생활은 많이 다른거 같네요 ㄷㄷ... 보급품과 전투복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네요 제가 18년 군번인데 사계용 전투복 2벌, 하계용 전투복 2벌 야상1벌 전투화 2개 등등 각종 보급품도 나왔는데 처음에 입대했을때 보급품들을 받고 와... 군대라는 집단이 정말 열악하구나 하고 느꼈는데 인민군 보급품들 보니 배부른 소리였네요 ㅋㅋ 그러고보니 입대할때 59~60키로 나갔었는데 신병훈련소에서 부식으로 초코칩과자, 에너지바, 음료수, 초코파이, 햄버거 등 잘 나와서 의외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훈련소 수료하고 나오니 66키로 체중이 늘었던 기억도 있네요ㅋㅋ... 군대밥에서 주던 고기는 얼마나 퍽퍽하고 다른 반찬들도 맛이 없던지 항상 먹을때마다 속으로 불평을 했었지만 이 영상을 보니 그래도 내가 다행히 한국에서 태어나서 군생활 비교적? 편하게 하고 있다는 걸 느끼네요 ㅋㅋ
ㅎ 두분 한국와서 열심히 사시는모습 보기좋아요 아무나 결심하기 힘들 철조망 넘어 온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제경험으로 이는 세탁자주 못하고 씻지 않으면 생겨요 한국도 60년말 70녀도 초에 많았는데 그후로 생활이 조금씩 낳아지면서 옴과이는 자연스럽게 살아 졌어요 지금도 씻지않고 옷 갈아입지 않으면 한달이면 생겨요 아무튼 열심히 사세요
안녕하세요 첨 댓글 남깁니다 강유님 하늘님 고생 많이 하셨네요 오늘 얘기는 70세 넘으신 저희 부모님 어릴적 1950년대 얘기 듣는 기분이었어요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다는데 어떻게 발전 없이 퇴보만 하고 있나보네요 영상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하늘님은 장발에 선글라스 낀 모습이 제가 옛날에 좋아했던 임재욱님의 포지션 시절 모습 떠올리게 해서 좋아요 아, 그리고 지난번 영상 머리 자르시던 영상, 혹시 구독자 요청으로 하신건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구독자들 요청이 들어온다고 무리한것까지 다 하시지 말라는거예요 구독자수나 좋아요에 너무 집착하다가 관종짓까지 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앞으로도 재밌는 얘기 많이 부탁드려요 북한군 시절 얘기도 재밌지만 앞으로는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들도 들려주시면 재밌을것 같아요 건강 잘 지키세요
13:25 제가 어릴때만 해도 그랬어요. 동생이... 여동생이었는데, 아마 그때 나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대략 4~6살 정도...? 그 당시엔 유치원 들어가는 애들도 거의 없었을 시기니... 아직 한참 어린 애가 맨날 가렵다고 아랫도리 벅벅 긁으니... 부모님이 구충제 사서 먹였는데 그냥 산채로 나오더군요. 요충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회충 약 먹어도 길다랗게 살아서 나오는 회충이 있었는데. 요충은 훨씬 작고 여러 마리더군요. 그걸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손 안 씻고 아무거나 막 먹으면 이렇게 된다고... 꼬물꼬물한 그 여러마리 요충이 나오는거 보고 기겁... 그때만 해도, 구충은 되는데, 녹아서 나오는 상태가 아닌 경우라... 요즘 구충제는 그냥 다 녹아 나와서 눈으로 안 보이지만... 그때는 충격적이었어요.
40년전 새마을운동때 할머니가 이를 잡기위해 참빗으로 빗으면 촘촘한 참빗에 한두마리 붙어나온게 기억이나네요...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반에 몆명의 친구들 머리에서 이가 붙어있는걸본게 마지막같은데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턴 이를 못본거같아요...북시탈 덕분에 잠시나마 유년시절을 추억이 떠오르네요~^^* 세월참 빠르네요~ ㅎ
새마을운동은 50년전이죠. 40년전이면 1980년도인데... 새마을 운동은 1970년도부터 시작된 농촌 재건운동이고, 70년대 한국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죠. 1970년대 중반 아시아 네마리의 용이 싱가포르, 한국, 대만, 홍콩이었고, 그로 인해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자 하는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는 새마을운동 시기라 보기 어려워요. 1981년에는 우리나라가 88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낼 정도로 아시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서던 때라서 말이죠.
회충... 80년대에 1년에 2번정도 기생충검사을 했던 기억이... 거기에 걸리면 알약을 줍니다... 가끔 변비가 심한 친구들은 타인의 변을 가져다가 내거나 푸세식화장실에서 아무 변이나 가져다 냈다가 걸리는 경우도 종종있었죠.. 저도 있다고 해서 약을 받아본 기억이 있네요...그때 저의 변을 가져간 친구도...음...음...음.....ㅎㅎㅎ....네네.. 그랬습니다......아시죠... 전에 어느 탈북자이신분이 말씀을 하셨는데 왜 한국에는 거의 사라진 기생충이 북한에 많을까 ? 라는 질문에 그들의 사용하는 비료을 이야기하시더군요..네.... 변이죠.. 변을 사용을 하고 거기에 남이있는 기생충이 다시 붙어서 기생충이 박멸이 불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80년대 중반 한국에도 사람 변은 아니지만 소 변에 여러가지 삭혀서 사용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제가 다시던 학교가 약간 시골이라...) 하지만 사료가 발전하고 그런것이 90년대 들어 모두 사라졌죠...요즘은 농촌에서 좀 더 좋은 비료을 사용을 하려고하지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하지않고 문제가 되기때문에 할수도 없죠... 어찌보면 북한의 생활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80년대와 많이 흡사 한점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사용되는 시대지만 그런 생활들은 40년가까이 뒤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마다 계층마다 다 다른 경험을 했나봅니다. 80년대 중반 대구에서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아이 무릎위에 앉혀놓고 이 잡아 주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고, 여담이지만 기사분은 신호 대기할 때 차창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던 시절이었지요. 96군번인데 그 때도 세탁기는 없었고 옴 걸리는 병사 나오면 그 분대만 휴일에 지붕위에 올라가서 강제 일광욕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고 재미도있는 방송이네요 ^^
기생충은 인분(똥)때문 입니다. 농사지을때 인분을 비료로 쓰면 걸립니다. 주로 밭이나 논에서 신발벗고 작업하면 발바닥을 통해서 회충 균이 몸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인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기생충은 사라집니다. 남한의 경우도 화학비료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1980년대 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회충감염이 많은 원인은 인분을 비료로 농사 짓기 때문입니다, 회충에 감염된사람의 변에 회충알이 나오고 배추나 채소등에 뿌려서 오염되고, 사람이 불로 익히지않고 요리해 먹으면 사람배로 들어간 회충알이 성충이됩니다. 한국에도 60,70년초까지 인분을 농사에 사용하여 기생충이 많았지만, 화학비료가 많이 개발되어 인분사용이 없어지니 회충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올리신 여러 영상들을 봤는데 볼수록 경험하신 북한의 실정은 남한의 70년대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남한도 샤워 가끔만 했고 군부조리, 기생충도 심했고 군복무도 3년이였어요. 북한군내에서 도는 남한에 관한 이야기들은 70년대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된채로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거같네요.
대대장사모가 씻으라고 물끓여준다길래 오 좋은 사람이네했더니 냄새나면 자기가 불쾌하니까 그런 거였군요. 그리고 물끓일 나무도 강유씨가 해온 거라는거... 30여년전 겨울방학때 시골고향집 가면 물끓여 씻어야 해서 많이 불편했었죠. 난방시원찮아 추위에 떨면서 바가지로 물 끼얹어 가며 씻었죠. 그래도 곧 리모델링해서 보일러에 욕실 만들어서 그후엔 씻기편했죠.
진짜 대한민국에 태어난게 너무 감사합니다
기생충이 창궐하는 근본원인은 인분비료의 사용이죠 인분비료를 쓰면 필연적으로 기생충이 딸려 옵니다 남한은 인분비료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니 기생충을 더이상 보기 어렵죠 가끔 있는경우는 날 생선등에서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허영진 이거 맞습니다. 영상이 길어질까봐 말씀 못 드렸는데 잘 얘기해 주셨습니다:)
인분비료는 많이사라진 이유도있지만 구충제의 보급으로 가축들도 기생충이 사라진이유도있죠
우리나라도 70.80년대 이전에 기생충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국내산, 호주산 등을 우리나라에서 먹는 건 괜찮은데, 중국, 동남아 여행 가서 삼겹살을 덜 구워 먹다간 기생충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구요. 즉 바싹 구우면 괜찮다고 합니다. 의외로 이런 경우 좀 있답니다.
아아 ㅇㅅㅇ 난 그냥 깨끗하지 않을 물이나 음식을 먹어서 그런줄 알았는데 인분비료써서 그런거구나
@@새타니 인분비료 곡식 섭취 인분비료 순환고리가 완성되잖아요 ㅎㅎ 한국은 몆년전 시골 조사해도 기생충 감염율 0.3% 인가 그랫다고함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천원이니까 꼭 드시길 .. 특히 북에서 오신분들이나 야채나 회 등 날것 자주 드시는분들은 암의 원인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데 구충제 알벤다졸 꼭 드셔야 합니다..
@@unn834 ㅋㅋㅋ 왜 저러나 하고 댓달려고 봤는데 사과 기엽다.
본인잘못 인정하는거 쉽지않은데 멋지시네요.
굿굿
@@unn834 털리니까 바로 꼬리내리기 ㅋㅋㅋ
@@unn834 ㅋㅋ
@@unn834 알벤다졸은 사람구충젭니다. 민물고기 잘못먹을경우 기생충감염이 되는데 그게 담도암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 구충제를 먹으면 예방이 되는거죠.
임상시험 했어요 처음 나왔을때 아프리 사람들 상대로 그래서 임신할 사람들은 먹으면 안돼지요
남쪽에도 옴이 드물기는 하지만 발생하고요..노인들과 환자들이 입원해서 단체생활 하는 요양병원등에서 발생합니다. 이는 오래전에 사라진것 같습니다. 두분 모두 자유대한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응원합니다
아... 이 형님들 너무 재미있음. 다른 나라 이야기같은데 이게 겨우 100리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안타깝고 그럼. 뭐 우리도 저런 시절 벗어난 지 한 기삼십년밖에 안되었을테지만서두...
선 하나로 서로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죠
60년대 이가 있었고 70년대는 못본거 같은데!
박순종 이 크기가 어느정도인가요?
@@저녁시보 이 크기를 묻느넘에게 무슨 답을 하리
이 를 양육시켜보면 되지!
@@저녁시보 톡토기라는 벌레 아시나요? 되게 쪼꼬만 벌렌데 걔 크기만 해요
정말 어려운 곳에서 군생활을 하셨군요.
두 분께 인간으로서 경의를 표합니다.
거이 똑같은걸 경험했던, 한국에서 50대 이상 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우리 군 생활때에도 이 잡는다고 담요를 햇볕이 좋을때 말리고한 기억이 어제일 같이 생생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북에서 볼수 있다는게 안스럽기 그지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ㅠ
1960년대에는 있었을지 가늠하기어럽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이가 없었음 뺀질이는 열외.
이는 없었는데 일광소독은 했습니다. 모포며 포단이며 매트리스며 한번도 세탁을 안하기 때문에 볕 좋은날 가지고 나가서 팡팡 털고 일광소독 하고 그랬는데요? 97군번입니다
북시탈 채널에서 북한군 생활 얘기해줄 때마다 지금 내가 가진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에서 대학생활 하다가 군대 갓 입대했을 때 느꼈던 열악함은 북한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군요 ㄷㄷ
현재 군생활하고 있고, 전역을 앞두고 있는 말년병장입니다 북시탈님 영상 보면서 정말 북한과 한국의 군생활은 많이 다른거 같네요 ㄷㄷ... 보급품과 전투복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네요 제가 18년 군번인데 사계용 전투복 2벌, 하계용 전투복 2벌 야상1벌 전투화 2개 등등 각종 보급품도 나왔는데 처음에 입대했을때 보급품들을 받고 와... 군대라는 집단이 정말 열악하구나 하고 느꼈는데 인민군 보급품들 보니 배부른 소리였네요 ㅋㅋ 그러고보니 입대할때 59~60키로 나갔었는데 신병훈련소에서 부식으로 초코칩과자, 에너지바, 음료수, 초코파이, 햄버거 등 잘 나와서 의외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훈련소 수료하고 나오니 66키로 체중이 늘었던 기억도 있네요ㅋㅋ... 군대밥에서 주던 고기는 얼마나 퍽퍽하고 다른 반찬들도 맛이 없던지 항상 먹을때마다 속으로 불평을 했었지만 이 영상을 보니 그래도 내가 다행히 한국에서 태어나서 군생활 비교적? 편하게 하고 있다는 걸 느끼네요 ㅋㅋ
고생 많으십니다. 건강한 몸으로 잘 전역하시길 응원합니다. 군인분들 항상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
한국에서 이는 아직 초등학생에게 가끔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이는 한국 말고도 유럽이나 미국같은 곳에서도 아직 있다고 하더군요.
옴은 거의 박멸 되었지만 노인 요양원 같은 곳에서 퍼져서 난리 났다는 뉴스가 간혹 나오기도 하죠.
이분들이 나때는말야 그러면 입닥치고 고개숙여야함
G 에이 아닙니다 ㅋㅋㅋ
ㅋㅋㅋㅋ
ㄹㅇ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 바로 경청모드
ㅋㅋㅋㅋㅋㅋㅋㅋ 강유형 학교에 강의 오셨을 때 첨 봤었는데 아직 말빨이 아직 안죽었네요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강유 형 충북 영동에 있던 영동고등학교 기억나세요? ㅋㅋㅋㅋㅋ 형 구독하고 가요 꼭 성공합시당 😍😍
오~~ 영동고등학교 기억나지 ㅎㅎ
고마어:)
50년전 내가 하던 생활모습그대로네요. 지금도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네요. 먹기라도 했으면 다행인데...
@@Ngjgkyiyydgxh 60~80 할아버지셔
할배 척추 서요?
크크루삥빵뽕~~
[ㅈㅅ]
@@따봉도치-d9v 에이....
ToTo1207 ㅉㅉ
@@따봉도치-d9v 그냥 지워임마!
기생충약 6개월 마다 1번식먹어야해요
이 는 한국에 1960년ㅡ 70년초반까지 있어고 그뒤로 없어졌네요
ㄴㄴ
80년대 중반까지 있었음..
80년대 넘어가면서 사라지고..
요즘 사람들도 기생충약 잘 안먹어서 다시 생기기 시작.. 1년에 한번은 먹어줘야되요
요즘 기생충 이 옴 다시생기는 추셉니다;;;
오잉 11년 전에도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2000년대 넘어서도 있었습니다 ..,,,,
80년대초 우리 군생활 할때 겨울에 따뜻한물 한바케쓰 들고 가서 세면장 가서 홀딱 벗고 목욕 하던 생각이 나네요
우리때도 부대 목욕탕 2번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동시대에 군 생활을 하셨네요, 반갑읍니다.
80년대, 대대목욕탕에서 겨울에 1주일에 한번 온수 목욕했습니다. 보일러병이라는 보직(?)도 있었지요.
이... 어릴적 시골살때 생겼던적 있는데 정말 끔찍합니다. 애들한테 옮아서 두번정도 생겼다가 다행히 그 이후로는 안생겼는데 머리를 다 미니 마니 하다가 겨우 약으로 잡았던 기억이 있네요. 여튼 굉장히 징그럽게 생겼고 알도 깨알 사이즈인데 한때 깨를 못먹었었습니다ㅜㅠ
기생충은 진짜 충격이네요. 살아있는게 나오다니. 북한군 진짜 힘들겠어요 ㅠㅠ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는 60년 전에나 있을법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겪으실 만한 일들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네여😥하루속히 통일이 되서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와이씨 ㅠㅠ 진짜 단 한 개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네요.. 너무 고생 많았어요 괜히 몸이 간지러워 지는 기분ㅋㅋ
우아. 세상에. 진짜 안믿어지네요😮😮😮 아휴 너무 끔찍합니다 상상만해도 ;;;
08:33초 대화내용 설레임♡
대한민국도 90년초까지 있었던것 같은데
어릴때 이잡는다고 날리도 아니었는데 ㅋ
이젠 그런것들이 추억으로 남네요
현 북한이 90년대 초 남한 보다 훨씬 못살텐데요
어디 시골 깡촌에 사셨나요 제가
80년 초반생인데 제가 유치원
국민학교때 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고 컸습니다 인천 토박이고요
평범한 서민층인데 이해가 안가네요
@@정사마-q7g 그러게나 말여요
60년대 있든 이야길하니~
살았던 환경이 달랐든 모양
우리도 한 때 2000년대 초반에 한참 머릿이가 부활하고 유행해서 뉴스나 메디어 에서 떠들어댔던 게 기억이 나는 데... 없어졌다고는 말 못하죠.
두분...넘 보기 좋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하시길..응원 합니다.....^^~~~
옴은 12년도에 군생활할 때 선임이 걸린적있었는데.. 격리되고 그 선임 모든 물품 소독하고.
한국도있긴 있음
털 다밀고 살충제(후마끼) 뿌려야,,, ㅋㅋㅋ
일광욕도...
인생 선배님들 죄송 합니다.
아는체 해서요,,
61년생.
이분들 술자리 최고의 안주를 가지셨어 ㅋㅋㅋㅋㅋㅋ
대한민국 최고의 라떼
술마시다 속 뒤집힐 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역겨워서...
ㅋㅋㅋㅋㅋ
@@최인석-u7p ? ㅡㅡ?
군생활 10년 채우고 탈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머리스타일 두분다 잘 어울리십니다!
항상 좋은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와 진짜 상상 이상이네요 온갖 리스크 다 짊어지고 탈북할만합니다
재밌게 봤습니다. ...두 분다 남쪽에서 행복한 만남...행복한 삶을 이어가시기를....
시간이 갈수록 진행실력이 느는 게 보입니다.
초창기보다 많이 재밌어졌네요~^^
진짜 두 분다 말 잘한다
ㅎ 두분 한국와서 열심히 사시는모습 보기좋아요 아무나 결심하기 힘들 철조망 넘어 온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제경험으로 이는 세탁자주 못하고 씻지 않으면 생겨요 한국도 60년말 70녀도 초에 많았는데 그후로 생활이 조금씩 낳아지면서 옴과이는 자연스럽게 살아 졌어요 지금도 씻지않고 옷 갈아입지 않으면 한달이면 생겨요 아무튼 열심히 사세요
참 재밌네요. 저도 군생활을 강원도 전방에서 했거든요. 40년전에 남한군도 나무하러 다녔어요. 그때는 빼치카 땟거든요. 꼭 내 군대생활 애기 같아서 재밌게 보았습니다
배에 기생충 ...
아 ㄹㅇ 북한 진짜 심각하다
정말 두분 잘 오셨어요 ㅠㅠㅠㅠㅠ
아 그냥 눈물만 나네요
북한군대의생활 잼있게들었습니다 저야 잼있게게듣고 이렇게댓글을 달지만 그런 환경속에서 사투를 버리는 북한 군인들이 왠지 짠해요 이 .기생충.목욕.옴.빨래 .이런 예기들으면 어여빨리 통일이 와야된다는 생각뿐이내요
미안하다...맞춤법이너무나 신경쓰인다... ㅠㅜ 미안해
7:00 저 초3까지는 아직 이가 많은 애들이 있어서 학교에서 이 검사 했던 기억 나네요 ㅋㅋㅋ
정말 고생하셨네요.. 하루 속히 북한주민들이 독재공산당 압제에서 벗어나 좀 더 문명화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안녕하세요 첨 댓글 남깁니다
강유님 하늘님 고생 많이 하셨네요
오늘 얘기는 70세 넘으신 저희 부모님 어릴적 1950년대 얘기 듣는 기분이었어요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다는데 어떻게 발전 없이 퇴보만 하고 있나보네요
영상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하늘님은 장발에 선글라스 낀 모습이 제가 옛날에 좋아했던 임재욱님의 포지션 시절 모습 떠올리게 해서 좋아요
아, 그리고 지난번 영상 머리 자르시던 영상, 혹시 구독자 요청으로 하신건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구독자들 요청이 들어온다고 무리한것까지 다 하시지 말라는거예요
구독자수나 좋아요에 너무 집착하다가 관종짓까지 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앞으로도 재밌는 얘기 많이 부탁드려요
북한군 시절 얘기도 재밌지만 앞으로는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들도 들려주시면 재밌을것 같아요
건강 잘 지키세요
넵 감사합니다 😊
두분다 말재주가참 좋네ㅋㅋ
사면발니나 옴 정도는 한국군에도 있어요. 우리 부대에서도 한 명 걸려서, 그 녀석 발가벗겨서 속옷까지 햇볓에 말리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7년 전 이야기네요.
아!!!정말 괜히 밥먹으면서 봤어
선 좋아요!
후 시청!!
TOP5가~강원도 시골에서 1970년도에 생활하던 환경이랑 똑같아요ㅎㅎㅎ
맞아요 옴 걸리면 지금도 사람취급못받아요
몇년전 직원이 걸려서 바로 휴무들어가라했음 다 나을때까지 나오지마라고 ㅋㅋㅋ
자막은 누가 쓰는건진 몰라도 가끔 오탈자 나는게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렇게 빢빢 깎는데도 이가 생길수 있단는 것도 놀랍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응원합니다
애그그그.....애그그그...
이렇게 깨끗하고 핸섬한 청년들이 그리 끔찍한 생활을 했다니...너무 너무 맘아픕니다. 아직도 그렇게 사는 젊은이들이 있을거 아닙니까!!!😥
아직도 잇겟지요
면이나 광목을 입으면 이가 많이 생기죠.남한에서도 70년대 중반 이후 나이론이 대세가 되면서 이가 사라졌죠.옴은 80년대 ㄲㅏ지도 많았고요.옴도 문제지만 사면발이도 엄청나죠.
헐
어디 사셨어요?
헉 조선족이신???
80년대 까지 옴이 있었다구요??
저도 시골서 자랐는데 왜 몰랐을까요??
옴은 어디에선가 지금도 있어요.
두분 다 잘생기셨네요ᆢ남한사람 못지않은 미남들입니다ᆢ말도 잘하시고~
13:25
제가 어릴때만 해도 그랬어요.
동생이... 여동생이었는데, 아마 그때 나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대략 4~6살 정도...? 그 당시엔 유치원 들어가는 애들도 거의 없었을 시기니...
아직 한참 어린 애가 맨날 가렵다고 아랫도리 벅벅 긁으니... 부모님이 구충제 사서 먹였는데
그냥 산채로 나오더군요.
요충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회충 약 먹어도 길다랗게 살아서 나오는 회충이 있었는데.
요충은 훨씬 작고 여러 마리더군요.
그걸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손 안 씻고 아무거나 막 먹으면 이렇게 된다고...
꼬물꼬물한 그 여러마리 요충이 나오는거 보고 기겁...
그때만 해도, 구충은 되는데, 녹아서 나오는 상태가 아닌 경우라...
요즘 구충제는 그냥 다 녹아 나와서 눈으로 안 보이지만... 그때는 충격적이었어요.
인민군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천국같은 군대 생활했군요...우리는 그러면서도 하나도 감사한 줄은 모르고, 항상 불만 불평만 했습니다....고생많으셨습니다....
40년전 새마을운동때 할머니가 이를 잡기위해 참빗으로 빗으면 촘촘한 참빗에 한두마리 붙어나온게 기억이나네요...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반에 몆명의 친구들 머리에서 이가 붙어있는걸본게 마지막같은데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턴 이를 못본거같아요...북시탈 덕분에 잠시나마 유년시절을 추억이 떠오르네요~^^*
세월참 빠르네요~ ㅎ
감사합니다:)
40년전이면 나 태어나기 몇년전인데 무슨 새마을운동이야ㅋㅋㅋㅋ
헐 40년전 새마을운동 맞습니다 왜그르셔용 ㅎㅎㅎ
참빗 효과 짱이죠
특히 바닥에 거울을깔고 빗으면 미끄러워 이가 도망못간다고 했던적이
새마을운동은 50년전이죠. 40년전이면 1980년도인데... 새마을 운동은 1970년도부터 시작된 농촌 재건운동이고, 70년대 한국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죠. 1970년대 중반 아시아 네마리의 용이 싱가포르, 한국, 대만, 홍콩이었고, 그로 인해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자 하는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는 새마을운동 시기라 보기 어려워요. 1981년에는 우리나라가 88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낼 정도로 아시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서던 때라서 말이죠.
40년 전이면 국민학교 아닌가요. 제가 89년생인데 96년도쯤은가 그때부터 초등학교로 바뀐 걸로 기억합니다.
ㅋㅋ옴도 기생충도 남한 시골의 60~70 년대초중반까지와 두분 말씀 하시는 거와 같았어요 당시엔 구충제도 지금과 달랐는데 내용이 많이 공감 되고 지난날 어렵던 시절 이야기라 그저 웃음이...두분 화이 팅!!
자유로운 세상에서 하고싶은것 마음껏 늬리고사셔으면좋겠습니다
잠을 자야하는데 영상이 너무 재미있다..
"평양은 흐름이 있다. 옆집에서 세탁기나 핸드폰 사면 죽물을 먹더라고 사고야마는 유행같은게 있다" 우린 결국 하나인건가........
나도 어렸을 적 국민학교 다닐대 회충약 먹었는데, 살아서 항문으로 나오고 끄집어 냈던 기억이 있네요.. 그것도 꽤 많이.. ㅠㅠ 푸세식 바닥에 떨어지던.. 그때가 1970년 중후반 ...
한국 군대는 찬물 나와도 무조건 아침에 1번 저녁에 1번 씻어야 하는데 군기임. 샤워시간에 1~2시간정도 뜨거운물 주는데 중대원 120명이 샤워하면 보일러가 못따라가서 30분만에 차가워짐. 1주일에 1번씩 대대 목욕탕 쓰는데 거기는 따듯한물 계속 나옴
부대마다 달랐나보네요. 저 땐 한 여름에도 24시간 온수 나왔었는데
진짜여?? 국군 청평병원 이런데는 온수 계속 나와던거 같은데 일반부대는 못봄
@@권학수-w2n 기무대 근무했는데 기무대만 따로 부대가 있거나 차 부대 내 별관에 있는 곳은 전부 온수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국방부 기무대 동기한테 물어보니 거긴 안나온다고 ㅋㅋㅋ
저도 그랬는데 그럴 땐 자대나 상급부대에서 기름 빼돌리는 간부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을 한 번 해봐야합니다
@@rexkim3654 저는 06군번인데 막사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나무관물대 막사였음
오늘 영상도 재밌었어용 ㅎㅎ
감사합니다 😊
90년도 중반에 군생활 할때 세탁기가 없었는데.그래도 우리는 물은 잘 나왔는데..
아구 징그럽네요.
북한에서 넘 고생들이 많으셨습니다.
이직도 삼팔선 너머엔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 북한 군인들이 많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지금 간식 시간이라 빵 먹고 있는데 둥둥 뜬 거 건져내...ㅋㅋㅋㅋ목욕한 물에 세탁 ㅎㅎㅎㅎ. 무좀...여기도 학기초에는 저학년 사이에 머릿니 유행합니다. 옴이 무서운 전염병이구나.
기생충을 휴지로 잡아 뺐...두 분 이야기재미 있어 구독하고 갑니다.
으ㅡㅡㅡㅡㅡ 고생하셔ㅛ오
활기차게 아침 먹으며 볼 영상은 아니네요 ㅠ ㅎㅅ 잘 봤습니다!
옴 은 옷나무 에 옮습니다. 닭끓여 먹으면 옷닭이라 하고, 나무그릇 가죽 금속 표면 처리에 옷칠을 했지요. 고대 갑옷에도 옷칠을 했었지요. 아니에요 옻나무가 따로 있읍니다.
....두 분 정말 한국으로 잘 오셨습니다. 이, 옴, 회충은 한국에서는 거의 90년대 극초반까지만 있었지않나싶네요ㅠㅠ 그 이후로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말씀들 잘 하시네.
북한은 열악하군요. 전투복이 1개인거 실화?
두분은 진짜 우주 어디든 가도 생존 가능할듯 ㅋㅋㅋ
북한은 너무힘든 나라군요
왜 세계에서 그냥방치해둘까요
자유세계가 이루져서 행복한 자기삶을 살도록 인권운동을해서
장벽을 무너트려서 구제해야 할거같아요
오 강유님 머리 잘어울리시네욯 머리 자르니까 더 잘생기셨어요
빅대승 감사합니다 ㅋㅋㅋ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숙제해야되는데 너무 빠져들어서 힘들다.....
당신의 강심장에 감탄사밖에 안나옵니다.
대부북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정면돌파 할줄이야ㅋㅋㅋㅋ 진짜 죽음을 각오하고 넘어왔다는 것은 그곳 생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는 건데.. 게다가 군생활을 10년씩이나...
무모하지만 대단하네요👍
중국이 오히려 위험해요 동선이 길다보니 잡히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회충... 80년대에 1년에 2번정도 기생충검사을 했던 기억이... 거기에 걸리면 알약을 줍니다... 가끔 변비가 심한 친구들은 타인의 변을
가져다가 내거나 푸세식화장실에서 아무 변이나 가져다 냈다가 걸리는 경우도 종종있었죠.. 저도 있다고 해서 약을 받아본 기억이
있네요...그때 저의 변을 가져간 친구도...음...음...음.....ㅎㅎㅎ....네네.. 그랬습니다......아시죠... 전에 어느 탈북자이신분이 말씀을
하셨는데 왜 한국에는 거의 사라진 기생충이 북한에 많을까 ? 라는 질문에 그들의 사용하는 비료을 이야기하시더군요..네....
변이죠.. 변을 사용을 하고 거기에 남이있는 기생충이 다시 붙어서 기생충이 박멸이 불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80년대 중반
한국에도 사람 변은 아니지만 소 변에 여러가지 삭혀서 사용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제가 다시던 학교가 약간 시골이라...)
하지만 사료가 발전하고 그런것이 90년대 들어 모두 사라졌죠...요즘은 농촌에서 좀 더 좋은 비료을 사용을 하려고하지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하지않고 문제가 되기때문에 할수도 없죠... 어찌보면 북한의 생활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80년대와 많이 흡사
한점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사용되는 시대지만 그런 생활들은 40년가까이 뒤져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이를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랑스 약국에서 이 퇴치 약이 진열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구요.
옴은 전염도 잘돼서 격리해야 하며 한국에서는 옴약이 있어서 몸전체에 한번만 바르면 좋아집니다
진짜 북한에서 안태어난걸 감사해야한다 북한은 학생때군대가서 나오면 30대니 20대는 갔다버리는거야
갖
안 갈 순 있긴 한데 그러면 가족들 굶어 죽지
우리나라 50,60년대적 애기를 하시네... 나 어린 때도 이는 있었는데 1970년대 들어서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는데....
80년대 이 있었습니다
82년~4..국민학교때 이도 많았고 석회(알)도 많았고
집에서 임피레스(ddt) 입으로
불어서 비닐 씌우고
참빚으로 긇으면 알과 어미들이
우수수스 떨어졌네요.
그뒤 중학생쯤 없어진걸로.
나름 도청소재지 시내에서
자랐는데요.
그리고 89군번 할때도
옴걸린얘들 20%있었고
무좀은 워커 했빛에 안말리면
나오고 양발 3일돼도 않빨던
시끼들은 다걸렸어요.
무좀도 지금도 있을겁니다.
더러운 시끼들
90년대에도 이 있었음.
지역마다 계층마다 다 다른 경험을 했나봅니다. 80년대 중반 대구에서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아이 무릎위에 앉혀놓고 이 잡아 주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고, 여담이지만 기사분은 신호 대기할 때 차창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던 시절이었지요. 96군번인데 그 때도 세탁기는 없었고 옴 걸리는 병사 나오면 그 분대만 휴일에 지붕위에 올라가서 강제 일광욕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고 재미도있는 방송이네요 ^^
@@권기용-m1y 96년 군번인데 이는 없었고 발이 섞어들어가는 병은 걸린적있었죠 모포도 세탁한번하나요 그러니 옴이 걸리는거겠죠
봉화지겸 걸려서 의무대입실했는데 옆침상이 옴환자였죠 ㅋ
별이상없이 퇴실했죠 ㅋ
옴이라는거 그때처음 들어봤고
봉화지겸도 그때처음들어봤죠
대한민국도 칠팔십년도 후빈까지도 밭에 거름을 많이 줘서 회충같은 기생충들이 많이 있었어요 ㅠㅠ 약이 좋아서 녹아서 나오니 좋아요 허걱
피부병, 이, 기생충~~ 이런 모습은 남쪽에서도 흔했던 것입니다. 아마 30년 전이나 40년 전 쯤??
92년 휴전선 근무했는데 우리도 겨울에 샘물이 마르면 졸병들은 목욕하기 힘들었어요.
아침에 세수 한번하고 치솔질 한번 끝 ㅠㅠ
강원도 휴전선 대부분 수도가 안들어오고 샘물을 펌프장에서 퍼올렸습니다. 저희도 가끔 옴걸리는 사병들 나오면 격리시키곤 했어요.
복학생 : 야 형이말이야 군대 이야기 해줄께 잘들어라. 니네 군대가 어떤곳인지 알아?
정하늘 : 저 북한군이였습니다.
복학생 : 죄송합니다. 닥칠께요.....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웃기긴한데 저런 사람이 어딨노
@@2choigo3 남자끼리 지네 군대얘기 자주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복학생이면 더 심한게 당장 안주거리가 군대 + 진로 고민 + 여자 말고 또 있누 ㅋㅋㅋㅋㅋㅋ
@@kimmmmm871 그게 아니라 저런 개꼰대가 어딨냐고 군대 갔다온 사람 깔보는거 같음
군대 안다녀왓나 ㅋㅋ 군대 다녀온 복학생 눈에 미필은 애로 보임
자기는 존나 남자가 된거 같고 순간적으로 세상 모든 일을 다 할수 있을거 같다는 착각에 빠짐.
물론 사회생활 하자마자 이등병보다 못한 신세가 되지만 ㅋ
기생충은 인분(똥)때문 입니다. 농사지을때 인분을 비료로 쓰면 걸립니다.
주로 밭이나 논에서 신발벗고 작업하면 발바닥을 통해서 회충 균이 몸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인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기생충은 사라집니다.
남한의 경우도 화학비료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1980년대 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분이 만난 스토리,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21세기에 저런 불결한 북한 집단은 상상도 하기 싫네요.
야채나 과일등을 깨끗하게 씻어 먹어도 회도 가끔 먹기때문에 봄,가을 회충 약을 식구가 다 복용하는데 설령 있더라도 몸 속에서 다 녹아서 나옵니다.
북한사람 자체가 불결한게 아니라 진짜 불결하고 더러운 놈들은 사람을 저렇게 살게 만든 공산당 패거리지요
우와. 진짜 리얼이다. ㅜㅜ 지금 북에 잇는 북한사람들 건강하길
저는 북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새삼 한국이 좋다고 느끼게 되네요 ㅎㅎ
북한의 회충감염이 많은 원인은 인분을 비료로 농사 짓기 때문입니다,
회충에 감염된사람의 변에 회충알이 나오고 배추나 채소등에 뿌려서 오염되고,
사람이 불로 익히지않고 요리해 먹으면 사람배로 들어간 회충알이 성충이됩니다.
한국에도 60,70년초까지 인분을 농사에 사용하여 기생충이 많았지만,
화학비료가 많이 개발되어 인분사용이 없어지니 회충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요즘 이형님들 알고리즘때문에 자주봄 ㅋㅋㅋ 재밌고 충격적인내용이 좀 많아서 신박함
71년생 저의 어릴적 이야기를 지금도 북한은 6,70년대이군요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와...이라니..할머니한테 들어본적밖에 없었는데..ㄷㄷ
북한 사람들이 기생충이 많은 이유는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서 그런거에요.
우리나라도 인분을 사용하던 예전에는 기생충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올리신 여러 영상들을 봤는데 볼수록 경험하신 북한의 실정은 남한의 70년대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남한도 샤워 가끔만 했고 군부조리, 기생충도 심했고 군복무도 3년이였어요. 북한군내에서 도는 남한에 관한 이야기들은 70년대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된채로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거같네요.
편집실력이 미숙한게 너무 귀엽고 보기좋고 잼나요 ㅋㅋ
거기 구타도 엄청 심각했을 거 같은데 그런건 최악 축에도 못끼네요 ㅋㅋㅋ
북한에서건조기를쓰셨다고요.남한도일반적으로로쓰기시작한게몇년않되었는데.. .
건조대겠죠 ㅋㅋ
2000천년대 초반에도 코인건조기 군대에도 꽤 보편화 됐었어요
가정에선 전기세때문에 의외로 안썼던것 같네요
머릿니는 지금도 있습니다.. 드물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옮기는 경우가 있죠..
저도 한 15년?전에 옮아봤어요..
와 정말 끔찍하네요.
우리 어렸을 때도 다 그랬어요.
60년대 말까진. ㅎㅎㅎ
5:30 편집자님 과오가 아니라 가오인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과오는 잘못이란 뜻이구 ㅋㅋㅋ
대대장사모가 씻으라고 물끓여준다길래 오 좋은 사람이네했더니 냄새나면 자기가 불쾌하니까 그런 거였군요. 그리고 물끓일 나무도 강유씨가 해온 거라는거...
30여년전 겨울방학때 시골고향집 가면 물끓여 씻어야 해서 많이 불편했었죠. 난방시원찮아 추위에 떨면서 바가지로 물 끼얹어 가며 씻었죠. 그래도 곧 리모델링해서 보일러에 욕실 만들어서 그후엔 씻기편했죠.
21세기에 존재하는 나라가 맞나 싶다... 참 저것도 나라라고.. 북한에 태어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