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앙이-z2z 숙청은 많이하면 할수록 좋은거고, 제가 말하는건 자신이 죽은 이후를 전혀준비해놓지 않은것과 쓸데없는 임진왜란으로 모든걸 다 날려먹어서 아들에게 불안한 자리만 물려준걸 말하는거죠. 임진왜란으로 히데요시는 파산할 지경이었고 부하들은 대거 이에야스 쪽에 붙어서 히데요시 가문의 멸망에 힘을 보탰죠. 정치능력은 선조에 비해 한참 떨어집니다.
@@고앙이-z2z 당시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면 조금이라도 친족과 친위세력을 더 만들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이에야스가 자기 세력을 늘리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양녀 만들어서 온갖 다이묘들하고 친족관계를 맺지 않았습니까? 히데요시는 등신같이 기껏 만들어놓은 친족들을 유지는 못할망정 죽이거나 정나미 떨어지게 만들어서 다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남은 친위세력이라는게 그 파멸적인 인간관계의 이시다 미쓰나리
眞督野際 어차피 쇼군 대 쇼군으로 맞다이 까는 상황 아니면 군대끼리 서로 뒤엉켜 싸우는 난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는거 이상으로 존나게 위압을 느낄정도로 디자인하는게 낫다고 봅니다 번외로 이야기 하자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닥뜨린 조선군이 아니 씨발 저새끼들 뭐지 하고 위압감 장난아니게 느꼈을거 같네요 주로 상대해 온 대륙의 적들의 갑주와는 차원이 다른 디자인이었을 테니까요
에도(현 도쿄) 막부(히데요시가 엿먹이려고 원래 영지에서 먼 도쿄쪽으로 보네죠. 도쿠가와는 간척사업등 힘을 키움). 미국 개항때까지 쭉 갑니다. 미국에게 질질 끌려가는 막부에 대해 비난하며,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합작해서 막부를 종식시킵니다. 일본으로 국호를 정하고 천황친정이 시작되죠. 존왕양이를 외치던놈들이 현실을 깨닫고, 문호를 개방하고 메이지유신. 힘쌔지자, 남자는 큰물에서~~ 히데요시가 못이룬 꿈을 이루려하죠. 결국 미국 건드려서 망.
가토와 후쿠시마의 가장큰 오판은 세키가하라전투가 도요토미 대 도쿠가와의 전초전이 아니라 미츠나리 대 이에야스의 실권다툼으로 봤기때문임...둘다 도요토미가문에서 커온 그야말로 도요토미은고 다이묘였는데 평소싫어했던 미츠나리가 이에야스를 미워하고 정치에서 배제하려하자 미츠나리에 대한 반감으로 세키가하라전투에서 동군에서버리죠. 히데요시가문의 조카였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도 미츠나리를 배신하고..결국 동군이 이기고 오사카전투에서 이야야스가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키려하자 그때서야 뒤늦게 깨달음...아니면알고도 도쿠가와에 붙었는지도...사람은 결국 의리 명분이냐 실리냐를 따졌을때 이들은 가문을 존속시키고 힘이 있던 도쿠가와를. 따름으로써 멸문을 면하고 밥도 먹을수있었던것임 일례로 사나다 우에스기 모리 같은경우 히데요리를 지지하며 서군을 도왔다가 세키가하라이후 몰락하거나 힘이 약해지게 된케이스...
@@로로로로로로페 그건 오히려 정 반대로 말 할 수있죠.이시다 미쓰나리는 일국을 경영 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죠.그런데 상황이 이시다 미쓰나리가 전국 정확히 서국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왔지만 외국의 임진왜란도 통제 못해서 가장 주요한 히데요시의 무장단들이 이탈하게 만든 이시다 미츠나리가 무얼 얼마나 할 것같나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리더입니다.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은 순간 서군의 리더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이시다 미츠나리 한명 뿐이 존재 하지 않는데 이 사람은 일개 가신의 행정가론 뛰어나지만 리더로썬 빵점이었죠.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많은 히데요시 주요무장 솔직히 전부죠.과 문제가 발생했고 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은 다음엔 내부 통솔에서도 아주 전형적으로 잘 하지 못했죠.원래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런 인물이었죠.행정가로는 뛰어난데 딱 그정도.그런 인물이 책임자가 된겁니다.솔직히 가토 기요마사가 전체적인 형세판단으론 더 뛰어났을 겁니다.그런데 어차피 칼자루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잡고 있는데....... 더구나 무장단 원톱은 가토 기요마사가 아니라 후쿠시마 마사노리죠.후쿠시마 마사노리는 그냥 전형적인 무장이고 전쟁에서 번뜩이는 판단력과 용기를 갖추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가장 크게 활약한 무장이죠. 사기 당한게 아니라 히데요시 무장단에선 솔직히 판로가 없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가신을 떠나서 자신 가문의 목숨도 보준해야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는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전국시대에서 히데요시 가신단은 굉장히 충성스러운 편입니다.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구조에서 누군가를 욕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죠.그냥 도코가와 이에야스가 당시 가장 뛰어난 승자가 된겁니다. 왜냐. 딱 아주 딱 하나 입니다. 오래 살아서.오래 살아서 천통한거죠. 오직 그 이유 딱 하나죠.그 시대 그 상황에 맞는 인물들 가운데 오래 살았다면 판도가 바뀔 인물들이 많았지만 이에야스 처럼 오래 산 인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scipiom8119 장문의 글 잘봤습니다 제가 간략하게 써놓은 글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신거 같으세요 당시 전황과 도요토미 가신단, 그리고 다이로들의 상황으로 봤을때 다른 무신파는 차치하고서라도 후쿠시마하고 가토는 도쿠가와 쪽에 붙는게 오히려 도요토미 가문의 생존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히데요리를 살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죠. 저는 미쓰나리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냥 마사노리하고 기요마사가 이에야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는걸 말하는 겁니다 그들의 최후를 봤을때 그들이 동군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담했는지는 명백하죠. 오사카 여름의 진에 참석한 구 도요토미 무단파들중에 그 두 가문만 없었습니다. 로닌들을 제외하곤 말이죠. 딱 이정도를 얘기한겁니다. 지나친 확대해석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히데요시가 노망난것도 있었고 히데요시가 통일을 했다해도 이미 늙기도했고 이에야스의 세력은 건재했으며 각지에도 말만 복종했지 히데요시가 죽으면 딴짓할 다이묘들은 수두룩했음. 그런데 히데요시의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 그래서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해서 자신의 세력을 크게 늘려,자신이 죽어도 다른놈들이 반역을 생각치도 못하게 만들려 한것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전부 ''나고야''출신입니다. 도요토미의 거성이 오사카성이라서 오사카로 아는분들이 많은데 3명 다 오와리 나고야 출신입니다. 요즘 나고야가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등의 일본여행 자제운동으로 대체여행지로 각광받으며 인기여행지 4위로 도쿄와 오사카를 제치고 올라갔다는 기사를보고 한국인으로써 정말 실망해서 글 남깁니다. 나고야는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도 보수적이고 엄청 배타적인 동네입니다. 저는 예전에 일본에서 살았기때문에 일본어를 할줄아는데 나고야에 업무차 수십번도 더 갔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거 두가지가 있는데 한국인이 일본어를 잘해도 돈카쯔의 ''쯔'같은 발음은 일본인만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걸들은 편의점직원이 일본인들한테는 친절하다가 그걸듣고는 표정싹바뀌며 젓가락을 봉투에 쑤셔넣던 기억과 또 한가지는 나고야역에서 한국분이 신칸센을 탈려고 영어로 물어보시는데 나고야역이 생각보다커서 서로설명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안되는것이었습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여성승무원분이 일본인 여성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웃으며 ''춍'' ''춍''거리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어로 춍 이쪽으로 가면돼 라고 하는모습을보고 그자리에서 굳어서 서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춍은 조선인을 낮춰서 부르던말로 한국인이 일본인들 쪽발이라고 부르는것과 같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그것도 20대 여성분이 본인또래나 30대 정도의 일본인 남성을보고 한국말로 해맑게 웃으며 쪽발이라고 말하는 한국여성분은 한분도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걸 일반인도 아닌 역무원이 표정을 솎여가며 조롱하는걸보고 가서 따질려고 했는데 남성분의 표정을보니 무슨말인지 모르는거 같아서 역무원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고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남성이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싸울려고 했습니다. 욕은 그분이 들었지만 저는 그날 기분이 하루종일 좋지않고 저 모습이 일본인의 혼네를 본거같아서 엄청 씁쓸함과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여러 한국인비하 겪어봤지만 제일 기분나쁜 경험이었습니다. 웃으면서 말을 못알아듣는 외국인이라고 본인의 추한모습을 들어내는 그 여성과 그 여성이 그런말을 하는데도 상급자로 보이는 나이50대 이상의 남성 역무원도 그여성을 전혀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지않고 그냥 못들은척 가만히 있는게 더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일본 특히 ''나고야''가실려는 분들은 잘생각하고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좋은기억들만 있으신지? 사람이 사는곳이 다 그렇지. 나에게 호의를 배푸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할거라는 착각속에 사는거 아닌지? 몇가지 경험가지고 일본전체가 이렇다. 나고야가 이렇게 나쁜곳이다 이렇게 말하는거 보니 우습네. 난 일본을 안가봐서 좋은지 안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정서가 이렇듯 일본인도 그렇게 대응하는건 어쩌면 당연한거 아닌가?
개인적 생각) ㅡ히데요시의 충신이라면서 동군에 가담한 애들은 바보가 맞는 듯 다만 그냥 배신한 애들은 기회를 잘찾아간 걸로 보임 ㅡ서군에 가담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선 대세 도쿠가와에게 붙은 애들 얘들은 그래도 가문을 보전함 세키가하라 전투때 서군이었는지 동군이었는지를 떠나서 차마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었기에 오사카 전투에서 아무것도 못했던 애들 혹은 어물쩡거린 애들은 가지고 있던 영지를 뺏김 ㅡ히데요시가문의 최후는 나름 낭만(?)이 있었다고 느껴짐 뭔가 히데요시다운 최후? 그리고 히데요시의 다이묘 계통은 몇백년후 기어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림
삿쇼 동맹을 가능케 했고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죠. 그가 없었더라면 에도 막부가 건재했을 것이고 그럼 메이지 유신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실학자들로는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유형원이 있고 초기 개화파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김홍집, 유길준 이외에도 참 많은 인재들이 있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꽃봉오리를 스스로 짓밟아 버린 슬픈 역사입니다.
@@yhansookim7850 히데요시는 그래요. 이성계하고 똑같은 짓거리를 한겁니다. 이성계도 어린 방석에게 세자를 준 덕분에 말년에 매우 비참해지죠. 가지치기를 하면 뭐하나요. 가지를 칠거면 다이묘들을 쳤어야지 친족을 치면 어쩌라는건지...결과적으로 두가지가 매우 안좋게 작용했다고 보는데, 히데요리가 너무 어렸다는거, 그리고 도요토미 가문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정리를 제대로하지 못한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구마모토가 지형적으로 볼때는 성의 위치가 조금 잘못되어 있을수도.. 지금의 특히 오이타에 전략적 주둔지를 만들어 두었다면,, 후쿠시마 만으로도 나라를 세우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음. 구마모토는 본토랑 전혀 상관없는 방관자적 위치로 극상일지 몰라도, 적의 뒤통수 노리기에는 너무 먼 성임... 오이타와 우리의 우동고장에 전성, 후성을 두었다면... 향방을 몰랐을 수도... 물살은 약한데 넓지도 않은 지형을 찾아 들어 갔다면... 해군력을 강화하고, 본토랑 단절 시키고, 후방에서 따로 놀았다면 승자가?? 왜란으로 해군력 증대에 대한 열망이 거꾸로 안보임.....
솔직히 두 장수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어 보이죠.이시다 미쓰나리가 워낙 고지식하고 리더의 자질도 부족했는데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이시다 미쓰나리가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는 거죠.임진왜란에서 워낙 이시다 미쓰나리가 전쟁의 현실을 냉정히 못보고 무장파들의 고달픔은 무시하고 막장 전쟁터에선 지휘능력이 없어서 형편없이 깨지기만 하죠.마에도 도시이에가 죽으면서 리더의 부재가 서군에게 가장 큰 악재였죠.
이번편은 왜 이렇게 힘들죠..? 이름 때문인가, 설명하는 문장이 길어서인가, 초보자에게는 너무 어렵네요. 내용이 눈과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요.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쉽겠지만.. 귀로 듣기에도 빡센데, 중간 중간 나오는 글도 동시에 읽어야 하고... 2/3쯤 따라가다가 포기~
일본에 늘 학문과 지식과 문화를 전수해 주었거늘 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대표적인 놈이 풍신수길이다. 이 놈은 물론 그 부하였던 놈들을 향해 '가문'이라는 표현 자체가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집구석'이라는 표현이 합당할 거 같다. 일본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표적인 종족이다.
이순신 장군님 만세~~~
전쟁은 그냥 일으키나 엄청난 물자와 인력동원되지 불만세력이 없을수가 없지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었음. 그것보다도 훨씬전 오다 노무나가때부터 한국을 비롯해서 무력으로 해외진출하려던거 도요토미가
바톤을 받고 실행했던거였지. 저놈의 섬나라는 처음부터 우리하고 같은편이 될수가 없었던거지.
맞습니다~ 일본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했다면 호주까지 정벌 했을거라는 헛소리까지 있으니까요 ㅎ
@@fold_history 혹시 노부나가가 해외 진출을 목표로 삼은 내용이나 책이 있나요? 저 당시은 아직 호주대륙이 발견되기 전이기도 하고 궁금하네요
노부나가는 제2의징키스칸꿈꿨음
유럽까지처들어갈기세
픽션이긴 하지만
"일기당천 노부나가 " 란 만화있습니다
줄 잘못 서면 나가리 ~~~♥
가만보면 한중일의장수들의 투구는 좀화려하거나 눈에뛰고 오히려 전투에는 불편할것같다싶은경우가 많지만 특히 일본장수들의 투구가 특히나 특이한게많네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저렇게 크게 만듬.(당시 일본 병사 신장 140cm)
임진왜란 당시 140cm의 일본병사들은
조선 병사(160cm)로 보고 쫄았답니다
어차피 지휘관인 장수가 직접 싸울정도면 이미 그 군대는 전멸에 가까운 상태인것이고 그래서 전투에 좀 불편해도 위엄이 돋보이게 만드는게 나은것 같아요
@@흐르는별빛 말씀대로 실 전투에 나서다기보다는 현 군대처럼 지휘관 역활이였기에 시각적으로 거대해보여 공포감을 주기위한 상징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보다 유교적 제도때문에 똑같은 규율과 체계성으로 통일되지만 창의성이 떨어져서....
삼국시대는 얼마나 갑옷복장이 다양했는대요.
@허한을 오! 듣고보니 그런것같기도하네요
잘
보구
갑니다유...^^
알고싶지
않지만..
알아야
지적을(?)할수있으니
봐두
무방한
역사같내요...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 ^^
이런 거 많이 만들어 주세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8:25 그러고보니 일본 최강의 장수였다는 다케다 신겐도 이에야스&노부나가 연합을 박살내고
갑자기 의문사 했다던데..
이에야스한테 실력 좋은 닌자라도 있었던걸까?
우한폐렴 슈퍼전파자
똥누다가 디진시키는 누구임?
핫토리 한조?
다케다 신켄이 똥싸다 급사만 안했어도 천하통일가능했을텐데
@@마니마니-o1r 그건 우에스기 겐신이고 다케다 신겐은 저격설 암으로 인한 사망설 등이 있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운과 처세술이 좋아 관백이 되었지만 교만하고 정치를 몰라 결국 멸족됬죠.
ㄴㄴ오히려 정치를 너무 잘알고 자기주제나 그릇을 잘 알았기에 부하들을 경계한거임
@@고앙이-z2z 그래서 이에야스가 있는데 자기의 모든걸 임진왜란에 다 때려박고 죽어서 이에야스에게 멸족당함? 자기가 죽은 다음을 하나도 준비해놓지 않았죠. 싸울줄만 알지 정치를 몰랐죠.
@@lovemelon100 배신이 난무하던 전국시대에 조카랑 실권자들 숙청안해놓으면 명분도 약한 지자식이 어찌될찌 정치를 잘알고 교활하기 때문에 그런사태를 일으킨거죠 못본건 지앞날 정도인듯 아들이 장성할때까지 지 수명이 오래갈줄 알았을듯
@@고앙이-z2z 숙청은 많이하면 할수록 좋은거고, 제가 말하는건 자신이 죽은 이후를 전혀준비해놓지 않은것과 쓸데없는 임진왜란으로 모든걸 다 날려먹어서 아들에게 불안한 자리만 물려준걸 말하는거죠. 임진왜란으로 히데요시는 파산할 지경이었고 부하들은 대거 이에야스 쪽에 붙어서 히데요시 가문의 멸망에 힘을 보탰죠. 정치능력은 선조에 비해 한참 떨어집니다.
@@고앙이-z2z 당시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면 조금이라도 친족과 친위세력을 더 만들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이에야스가 자기 세력을 늘리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양녀 만들어서 온갖 다이묘들하고 친족관계를 맺지 않았습니까? 히데요시는 등신같이 기껏 만들어놓은 친족들을 유지는 못할망정 죽이거나 정나미 떨어지게 만들어서 다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남은 친위세력이라는게 그 파멸적인 인간관계의 이시다 미쓰나리
100만 축하드립니다
100만 축하 정말 감사합니다~ ^^
매독균이 얼굴에서 떨어질정도 였다고 하죠
아마고 가문의 충신 칠난팔고의 주인공 야마나카 유키모리의 이야기를 보고싶습니다.
나중에 아마고 가문을 하게 되면 잠시라도 넣도록 하겠습니다
히데요시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권력이 후대까지 이어졌겠죠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못하고 죽은 바람에 일단 이에야스를 견재할만한 유일한 인물이었던 토시이에 마저 죽었고 어쩔수 없었는데 그래도 오사카성을 주축으로 오래 버틴것을보면 히데요시의 유산은 엄청났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KBS 드라마 징비록 정주행 중인데 즐거움이 배가되네요.구독하고 갑니다.
구독 감사합니다 ~^^
戦国甲冑うらばなし(전국갑옷 뒷이야기) 라는 책 보면 영상에 나오는 가토 기요마사, 이시다 미츠나리의 갑옷은 에도시대 중후기에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알고리즘으로 인해 왔어요. 재밌어요
언제나 재미있게 보고있는 구독자입니다. 이야기 자체로도 즐거운데요 , 적절한 표정과 묘사가 된 그림실력에 항상 도 놀라고 갑니다. 직접그리시는건가요? ㄷㄷ
Sizz님 감사합니다~^^ 그림은 직접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제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질 봤습니다.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를 쳐들어와 우리 나라 사람들 다 죽이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천벌 받아서 모두 다 죽은 것입니다
아베도 대장암
세조도 마찬가지죠 세조는 죽을 때까지 저주받았잖슴 그리고 이성계는 왕씨학살 대가로 말년이 비참했고
진짜초딩발상 ㅋ 이순신이 바다에서 왜구많이 죽였으니 천벌받아죽은것임?
천벌 같은 건 없습니다 이성적 인간이 됩시다 그런 주술같은 얘기나 하고 있으면 또 당하는 겁니다
말도안되는 소리하고있네 힘이없기때문에 당하는겁니다 패자가 뭘잘했다고 천벌거립니까 특히 조선이 후손 대한민국이요 미개한 유교나 보면서 정신승리를 하니 일본한테무시당하고 중국한테 지배당했죠 현재도 일본한테 개기다가 개좆도안되니 반일감성 ㅉㅉ 예나지금이나
일본 무사들은 투구가 다 제각각인데 개인적으로 다케다 신겐의 투구가 멋져보입니다
잘 봅니다^^
그림 진짜 잘 그렸다👍
그림 칭찬 감사합니다~^^
고니시는 배반할줄 알았는데 모욕까지 얻어가며 충절을 지킨건 신기하긴 함 ㅋㅋ 어쩄거나 히데요시 가문의 몰락은 조선인들도 통쾌히 생각했고 천벌받았다는 시각이 곳곳에서 나오는데 에도막부가 조선과 통교를 다시트는데 도움도 됐었지. 직접적으로 왜란 참전 안한데다 니들 괴롭힌 애들은 내가 벌줬다 이렇게 되었으니
카톨릭 신자라 배신하지 않은걸로 보입니다. 죽을때도 할복거부하고 참수 당했져
상인출신인 자기를 다이묘까지 만들어줬으니 우키타히데이에랑 친했다함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도쿠가와의 무서움이죠... 결국에느 한방입니다.
엄청 기다림 끝의 한방
넴?
@@德川家康-p7o 지금까지 기다리셨군욤 ㅋㅋㅋ
@@hojunlee7472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도 굴복(사돈지간)시켰고 마에다도 굴복(사돈지간)시키고 눈에 뵈는게 없죠
존버는 언제나 옮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사무라이의 투구 들은 너무 다양하고 괴이한 디자인 들이 많은 것 같음.
회전초TV 적군에게 두려움을 주기위해 그렇게 디자인 했다고 하네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일본 갑옷은 실용성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더 중점을 두었죠
너무 눈에 잘띄어서 표적될수도?
眞督野際 어차피 쇼군 대 쇼군으로 맞다이 까는 상황 아니면 군대끼리 서로 뒤엉켜 싸우는 난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는거 이상으로 존나게 위압을 느낄정도로 디자인하는게 낫다고 봅니다 번외로 이야기 하자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닥뜨린 조선군이 아니 씨발 저새끼들 뭐지 하고 위압감 장난아니게 느꼈을거 같네요 주로 상대해 온 대륙의 적들의 갑주와는 차원이 다른 디자인이었을 테니까요
용병이였던 사무라이가 자기 몸값을 올리기위에 멋지게 챠려 입어 잘 보이기위함.
그래서 양놈들이 저런거보고 쥘쥘싸는거임
카라테카같은 게임만 봐도
제작자가 와패니즘 일뽕 한사발 거하게 먹고 만든걸 알수있음
자동자막 키니까
카톡이 온 마사
오다 너무나가 ㅋㅋㅋㅋㅋㅋ
남의눈에 눈물나게 만들면 자기눈은 피눈물 나는법
우리나라에 한거 보면 더 비참 했어야 하죠. 어쨌든 말로는 비참했으니.
(선조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말)
세상을 살다보니 인과응보따윈 없슴다.
전대갈 큰소리치며 잘삼. 이거 왜 이래~~
이번 조비오신부님 명예훼손건도
끽해야 벌금이고,
쪽좀 쓰겟지만 지금까지의 전대갈을봐서는 신경도 안쓸것임.
도요토미의 몰락은 히데나가의 죽은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히데나가는 대인배이면서 시국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죠 그가 살았다면 임진왜란 일어나지 않았고 이때부터 고부갓타이가 성사되서 막부 조정이란 비효율적인 체제가 끝났을지도 모르죠
저랑 같은 판단을 하시는군요
그 막부 덕분에 조선이 백오십년 더 유지됨
재밌네요~두가신들이 그래도 토요토미히데요리한테 충성을 다했네요 도쿠가와한테 이용만 당해서 안타깝네요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능력.
원래 히데요시편인데 여차저차해서 아군으로 만들엇으니까요.
울산성 전투 때 승병으로 참여했던 즉 글을 쓸 능력이 있었던 이의 일기를 보면 와 성내 진짜 와 소리 날 정도로 처참했더군요. 가토 기요마사가 성 축조 때 보인 행동은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하나라고 보여요.
풍신수길 자손이 거의없는거 혹시 발기부전~
무정자증임 ㅋㅋ
도쿠가와 막부에 관한 영상도 볼 수 있을까요? 전국 시대는 많은데, 전국 시대 이후의 일본은 잘 모르겠네요
나중에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fold_history와 ~ 감사합니다 ^^🍀
에도(현 도쿄) 막부(히데요시가 엿먹이려고 원래 영지에서 먼 도쿄쪽으로 보네죠.
도쿠가와는 간척사업등 힘을 키움).
미국 개항때까지 쭉 갑니다.
미국에게 질질 끌려가는 막부에 대해 비난하며,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합작해서 막부를 종식시킵니다.
일본으로 국호를 정하고 천황친정이 시작되죠.
존왕양이를 외치던놈들이 현실을 깨닫고,
문호를 개방하고 메이지유신.
힘쌔지자, 남자는 큰물에서~~
히데요시가 못이룬 꿈을 이루려하죠.
결국 미국 건드려서 망.
가토와 후쿠시마의 가장큰 오판은 세키가하라전투가 도요토미 대 도쿠가와의 전초전이 아니라 미츠나리 대 이에야스의 실권다툼으로 봤기때문임...둘다 도요토미가문에서 커온 그야말로 도요토미은고 다이묘였는데 평소싫어했던 미츠나리가 이에야스를 미워하고 정치에서 배제하려하자 미츠나리에 대한 반감으로 세키가하라전투에서 동군에서버리죠. 히데요시가문의 조카였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도 미츠나리를 배신하고..결국 동군이 이기고 오사카전투에서 이야야스가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키려하자 그때서야 뒤늦게 깨달음...아니면알고도 도쿠가와에 붙었는지도...사람은 결국 의리 명분이냐 실리냐를 따졌을때 이들은 가문을 존속시키고 힘이 있던 도쿠가와를. 따름으로써 멸문을 면하고 밥도 먹을수있었던것임 일례로 사나다 우에스기 모리 같은경우 히데요리를 지지하며 서군을 도왔다가 세키가하라이후 몰락하거나 힘이 약해지게 된케이스...
너무 좋아요 영상 정주행갑니다
사명대사는 울산회담에서 가토 기요마사에게 당신의 목이 조선의 보배다라고 해서 일본에선 설보화상이라고 불렸죠.
가토에게 첫 시련을 안긴 북관대첩의 영웅인 정문부 장군이 지금으로 치면 행정장교인 정6품 북평사에게 털렸다는 알게되었다면 분통이 터졌을 겁니다.
히데요시는 우리의 시점에서보면 때려
죽일놈이였지만 능력자긴 능력자였으니까 거의 오직 혼자힘으로 올린 가문을 능력없는 후계자들이 받아들면 박살이나는건 당연하지.
오사카의 진..,,에도 초창기시대에 벌여진 전국시대 최후의 로망크 대전..ㅎㅎ
침략행위는 나쁜거다 그러나 그걸 방비못한 책임은 더크다
침략행위는 나쁘다면서, 고구려 선제공격은 패기좋다 멋있다고 빠는 한국인들 뭥미?
그냥 약했던 우리나라 수뇌부 잘못 100%
약했던 과거를 잊지말고 더욱더 국력을 키우자
@@공공-h9w ?니가 일찐한테 처맞으면 개한테 맞을정도로 약한 니잘못임?
@@주성국-c2b 잘못 맞는데?
애초에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전쟁인데
말은 바로해라. 때린놈잘못이 더크지 맞은놈이 잘못이있다한들 더클수가있나?
가토는 도쿠가와 쪽으로 넘어갔는데요.
오히려 고니시는 끝까지 도요토미 쪽에 있었지요.
그렇죠 이시다와 고니시는 같이 도요토미쪽에 있다가 최후를 맞죠.
세키가하라 전투까지의 얘기가 아닌가요?
당시 천하(일본기준) 제일가문의 유지인가?
다이묘로서 유지인가를 갖고 도요토미의 무장들이 갈렸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진짜 배신자도 있었지만요.
가토하고 후쿠시마는 도쿠가와한테 사기당한거 맞습니다. 실제로 문신파가 정권을 잡으면 도요토미 가문이 허수아비가 될거라 생각했었고 도쿠가와가 중간에서 속마음을 잘숨겼죠.
@@로로로로로로페 그건 오히려 정 반대로 말 할 수있죠.이시다 미쓰나리는 일국을 경영 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죠.그런데 상황이 이시다 미쓰나리가 전국 정확히 서국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왔지만 외국의 임진왜란도 통제 못해서 가장 주요한 히데요시의 무장단들이 이탈하게 만든 이시다 미츠나리가 무얼 얼마나 할 것같나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리더입니다.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은 순간 서군의 리더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이시다 미츠나리 한명 뿐이 존재 하지 않는데 이 사람은 일개 가신의 행정가론 뛰어나지만 리더로썬 빵점이었죠.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많은 히데요시 주요무장 솔직히 전부죠.과 문제가 발생했고 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은 다음엔 내부 통솔에서도 아주 전형적으로 잘 하지 못했죠.원래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런 인물이었죠.행정가로는 뛰어난데 딱 그정도.그런 인물이 책임자가 된겁니다.솔직히 가토 기요마사가 전체적인 형세판단으론 더 뛰어났을 겁니다.그런데 어차피 칼자루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잡고 있는데....... 더구나 무장단 원톱은 가토 기요마사가 아니라 후쿠시마 마사노리죠.후쿠시마 마사노리는 그냥 전형적인 무장이고 전쟁에서 번뜩이는 판단력과 용기를 갖추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가장 크게 활약한 무장이죠.
사기 당한게 아니라 히데요시 무장단에선 솔직히 판로가 없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가신을 떠나서 자신 가문의 목숨도 보준해야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는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전국시대에서 히데요시 가신단은 굉장히 충성스러운 편입니다.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구조에서 누군가를 욕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죠.그냥 도코가와 이에야스가 당시 가장 뛰어난 승자가 된겁니다. 왜냐.
딱 아주 딱 하나 입니다. 오래 살아서.오래 살아서 천통한거죠.
오직 그 이유 딱 하나죠.그 시대 그 상황에 맞는 인물들 가운데 오래 살았다면 판도가 바뀔 인물들이 많았지만 이에야스 처럼 오래 산 인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scipiom8119 장문의 글 잘봤습니다
제가 간략하게 써놓은 글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신거 같으세요
당시 전황과 도요토미 가신단, 그리고 다이로들의 상황으로 봤을때 다른 무신파는 차치하고서라도 후쿠시마하고 가토는 도쿠가와 쪽에 붙는게 오히려 도요토미 가문의 생존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히데요리를 살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죠.
저는 미쓰나리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냥 마사노리하고 기요마사가 이에야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는걸 말하는 겁니다
그들의 최후를 봤을때 그들이 동군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담했는지는 명백하죠. 오사카 여름의 진에 참석한 구 도요토미 무단파들중에 그 두 가문만 없었습니다.
로닌들을 제외하곤 말이죠.
딱 이정도를 얘기한겁니다. 지나친 확대해석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배울점이 있네요?
그놈들이. 죽인사람 숫자가 엄청난데 어찌 잘될수가 있나요?
통일로 인해 갈곳 없어진 사무라이들의 칼자루를 조선으로 돌려 사무라이들의 힘을 빼려했다라고 대학다닐때 말씀하시던 교수님도 계셨는데, 칠본창들을 내보낸것 보면 그건 아닌것 같음.
히데요시가 노망난것도 있었고 히데요시가 통일을 했다해도 이미 늙기도했고 이에야스의 세력은 건재했으며 각지에도 말만 복종했지 히데요시가 죽으면 딴짓할 다이묘들은 수두룩했음. 그런데 히데요시의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 그래서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해서 자신의 세력을 크게 늘려,자신이 죽어도 다른놈들이 반역을 생각치도 못하게 만들려 한것
바자나두 설이 많은데 아예 조선으로 호적이동해서 왕이 될 생각이었다는게 학계의정설...출신의 컴플렉스도 강했고 어짜피 일본은 통일한거나 마찬가지라
히대요시가 인도까지 점령하려 했다는 가설이 유력. 결론은 히데요시의 과대망상이 원인. 실상은 바로 조선에서 박살남.
진짜 명을 치려고 했던 모양인가봐요
바로 명을쳤으면 어땠을까?
19:42
08:32 실제 일본에서도 독살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이니
히데요시의 말년병크가 쌓이고 쌓여 발생한 예고된참사... 히데쓰구 처단사건, 이에야스를 끝내 살려둔것, 조선침략, 문신파와 무단파의 불화를 알면서도 내버려둔것. 거기에 사후불행도 만만찮은게 마에다 도시이에가 너무빨리죽음... 진짜 이에야스가 독살한건가...
진짜 이에야스는 죽었으면 하는 상대가
좋은 타이밍에서 죽네요
가토가 들어온 문은 흥인지문(동대문)입니다. 고니시가 하루 먼저 들어온 문이 숭례문이고요.. 이때문에 일제강점기에 두 대문이 남았고 각각 보물 1호, 국보 1호로 남았지요..
헐 이런사실은 왜 숨겼을까요 ? 친일파덜이 ?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전부 ''나고야''출신입니다. 도요토미의 거성이 오사카성이라서 오사카로 아는분들이 많은데 3명 다 오와리 나고야 출신입니다. 요즘 나고야가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등의 일본여행 자제운동으로 대체여행지로 각광받으며 인기여행지 4위로 도쿄와 오사카를 제치고 올라갔다는 기사를보고 한국인으로써 정말 실망해서 글 남깁니다. 나고야는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도 보수적이고 엄청 배타적인 동네입니다. 저는 예전에 일본에서 살았기때문에 일본어를 할줄아는데 나고야에 업무차 수십번도 더 갔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거 두가지가 있는데 한국인이 일본어를 잘해도 돈카쯔의 ''쯔'같은 발음은 일본인만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걸들은 편의점직원이 일본인들한테는 친절하다가 그걸듣고는 표정싹바뀌며 젓가락을 봉투에 쑤셔넣던 기억과 또 한가지는 나고야역에서 한국분이 신칸센을 탈려고 영어로 물어보시는데 나고야역이 생각보다커서 서로설명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안되는것이었습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여성승무원분이 일본인 여성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웃으며 ''춍'' ''춍''거리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어로 춍 이쪽으로 가면돼 라고 하는모습을보고 그자리에서 굳어서 서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춍은 조선인을 낮춰서 부르던말로 한국인이 일본인들 쪽발이라고 부르는것과 같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그것도 20대 여성분이 본인또래나 30대 정도의 일본인 남성을보고 한국말로 해맑게 웃으며 쪽발이라고 말하는 한국여성분은 한분도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걸 일반인도 아닌 역무원이 표정을 솎여가며 조롱하는걸보고 가서 따질려고 했는데 남성분의 표정을보니 무슨말인지 모르는거 같아서 역무원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고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남성이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싸울려고 했습니다. 욕은 그분이 들었지만 저는 그날 기분이 하루종일 좋지않고 저 모습이 일본인의 혼네를 본거같아서 엄청 씁쓸함과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여러 한국인비하 겪어봤지만 제일 기분나쁜 경험이었습니다. 웃으면서 말을 못알아듣는 외국인이라고 본인의 추한모습을 들어내는 그 여성과 그 여성이 그런말을 하는데도 상급자로 보이는 나이50대 이상의 남성 역무원도 그여성을 전혀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지않고 그냥 못들은척 가만히 있는게 더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일본 특히 ''나고야''가실려는 분들은 잘생각하고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대놓고 조롱 하다니 어이 없네요 ;;;
그래서 한국에선 좋은기억들만 있으신지?
사람이 사는곳이 다 그렇지. 나에게 호의를 배푸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할거라는 착각속에 사는거 아닌지? 몇가지 경험가지고 일본전체가 이렇다. 나고야가 이렇게 나쁜곳이다 이렇게 말하는거 보니 우습네.
난 일본을 안가봐서 좋은지 안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정서가 이렇듯 일본인도 그렇게 대응하는건 어쩌면 당연한거 아닌가?
@@msk3340 이해력이 떨어지나?
그냥 불친절이 아니고 조롱한거자나.
댓글들 보니까 수준낮은 글들이 자주보이는데 영상 제작자님 이런댓글들 신경쓰지마시고 더좋은 영상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그러게요 역사는 역사로 봐야하는데 일본하면 무조건 반일하는 무식한 대깨문들이 많이 있네요.
@@안녕나야-q8s 또 갈라치기 시전이냐 ? 무조건 반일은 그래도 일본과 싸우잖냐
넌 누구와 싸우고있냐 ? 너의 주적은 대깨문이냐 ? 띨띨한세끼야...
라이벌인 고니시 유키나가도 다뤄주세요.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칠본창중에서는 그래도 승리자네요 아들인 야스모토가 유력자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후다이 다이묘로 승급되었죠
그런듯요. 칠본창중에도 최하빨 였는대. 최후의 승자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건 싸움을 잘하는 놈이 아니라 정치를 잘알고 눈치가 빠른 놈이라는 거죠.
강한자가살아남는게 아닌살아남는자가강하단 말이있듯이 결과적으론 살아남은 와키자카가 강하다고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오다가문은 아직 현재까지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
다른 가문들도 있음 다케다 가문도 있고요
@@peopleordinary8361 다케다 적통은 망했고 지금 남아있는건 방계입니다
개인적 생각) ㅡ히데요시의 충신이라면서 동군에 가담한 애들은 바보가 맞는 듯 다만 그냥 배신한 애들은 기회를 잘찾아간 걸로 보임 ㅡ서군에 가담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선 대세 도쿠가와에게 붙은 애들 얘들은 그래도 가문을 보전함 세키가하라 전투때 서군이었는지 동군이었는지를 떠나서 차마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었기에 오사카 전투에서 아무것도 못했던 애들 혹은 어물쩡거린 애들은 가지고 있던 영지를 뺏김 ㅡ히데요시가문의 최후는 나름 낭만(?)이 있었다고 느껴짐 뭔가 히데요시다운 최후? 그리고 히데요시의 다이묘 계통은 몇백년후 기어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림
전국통일의의미는대단한것이지요
그한가지로 모든걸덮어버리지요 중국을최초통일한
진시황제ㆍ일본을통일한ㆍ풍신수길
삼국을통일한
우리의신라!
하나로만든 통일국가가
결국 수천년을길게이어오게되는 원동력이지요ㅡ
하나라는것!
👍
👍 감사합니다~~^^
중요 한건... 일본은 전쟁으로 성장 했지만. 그것 때문에 발전 못한걸수도 있음.. 유능 한 사람이 서로 적이라서 죽인거 보면..
아시아에서 제일 발전한 나라임 에도시대때만해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100만인구였던 에도였고 일본의 첫전성기는 에도시대였음 발전을 못했다니;;
@@강근마 에도시대는 전쟁이 없는 평화기고 이때 일본이 여러방면으로 크게 성장함. 그러나 그 이전 전국시대 전란시대에 군사적기술이나 전술이 크게 성장한건 사실이고
이 뭔 헛소리. 일본이 발전 못했으면 조선은 야만국?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 사카모토 료마에 대해서도 한번다뤄주시길!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사카모토 료마가 존재 한것이 일본에게는 행운이었다 라고 한다네요 .
삿쇼 동맹을 가능케 했고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죠. 그가 없었더라면 에도 막부가 건재했을 것이고 그럼 메이지 유신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실학자들로는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유형원이 있고 초기 개화파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김홍집, 유길준 이외에도 참 많은 인재들이 있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꽃봉오리를 스스로 짓밟아 버린 슬픈 역사입니다.
@@fold_history 전국시대도 이렇게 게거품 무는데 막말하면 채널 날라갈듯 ㅋㅋㅋ
안녕하세요 역사폴드님.
전국시대 영상이 상당히 많이 없어졌는데 다시 볼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제가 전국시대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 성 전투나
모가미 요시아키에 관한 영상을 볼 수있다면 좋겠습니다 ㅠㅠ
한국전쟁 일으킨 김씨부자 및 중국도 업보 달게받길바랍니다
이미 편안히죽어버려서. 참 아쉽네요
울산왜성인데을산왜성???
오타 죄송합니다~
가등이깃발에 남묘호랭게교라고 할정도로 일련교 맹신자..
임진왜란은 아메리카 대조선에서
벌어진 전쟁
그 충격적인 비밀 폭로
유투브검색
“””아메리카 대조선
응?
지금도 일련교 사찰에서 매년마다 가등의 제사를 치룬다하죠
엄청 긴 투구를 쓰는 인간은 마에다 도시이에가 원조인데 가토 기요마사가 이것에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됨...
넘 재밌게 봤어요
강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엄청 영리하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삼국지의 사마의와 비슷한듯해요.. 늙어서까지 마지막 한방을 기다리는 그 인내심..
히데요시가 친아들이 생기고 아들처럼 후계자로 두었던 조카 히데쓰구를 몰아내며 저지르는 참혹함에 참 인간 본성의 잔인함에 놀라지않을수었는데
결국 그게 화근이 되어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을 두었으니.......
임진년의 3대 막장군주 선조 만력제 히데요시 셋다 각자의 막장의 색깔이있는 동아시아3대 막장군주
그러게요 참 신기하게도 막장군주 셋이 있었네요 ㅎ
마치 경복궁 오사카성 만리장성같은 각나라의 성들이 각자의 아름다움과색깔이있듯이 각자의색깔이있는 군주들입니다. 선조=무능 히데요시=무모함 만력제=자기나라안돌봄ㅋㅋ
만력제는 조선에겐 정말 아낌없이 주는 은인이었죠..ㅎㅎ
가토 하면 국민 가토 전문 배우 이정용씨만 생각남 ㅋㅋㅋ ㅋ 그 특유의 발성력 ㅋㅋㅋ “뭬↗️야↗️?!”
고니시~!! 이것도 있지 않나요 ㅎ
역사폴드 이보시오↗️ 고니시 장군!!! 이거랑 울산성전투 편이랑 할복시도씬 연기가 절절했죠
다시 도발하면 제대로 갚아줍시다
우박같이 쏟아부을 탄도미사일이
필요함.
가토 헬멧이 마지심슨 머리같네
천벌 받았구나
결국 도요토미 가문이 망한건 히데요시의 말년의 개삽질(임진왜란이 아니더라도 히데츠구일족의 몰살 사건만 해도...), 이시다 미츠나리의 절망적인 통솔력과 정치력이 거의 9할의 원인임.
결과적인 얘기.
나중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 될수 잇엇겟죠.
태종은 가지치기 다해서 세종 꽃길만 걷게햇고,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은 조카 밀어내고
왕권을 차지하죠.
@@yhansookim7850 히데요시는 그래요. 이성계하고 똑같은 짓거리를 한겁니다. 이성계도 어린 방석에게 세자를 준 덕분에 말년에 매우 비참해지죠. 가지치기를 하면 뭐하나요. 가지를 칠거면 다이묘들을 쳤어야지 친족을 치면 어쩌라는건지...결과적으로 두가지가 매우 안좋게 작용했다고 보는데, 히데요리가 너무 어렸다는거, 그리고 도요토미 가문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정리를 제대로하지 못한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PoisonDarkable 다이묘 세력들이 크자나요.
그걸 다 칩니까?
왕건 부인들이 왜그리 많은데요?
개길것같으니 다이묘들을 다 죽인다?
뭉쳐서 대항하면요?
통일해놓고 다시 난장가는건가요?
고니시와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이묘는 구로다 나가마사입니다. 아주 못죽여 안달이었음.
구마모토가 지형적으로 볼때는 성의 위치가 조금 잘못되어 있을수도..
지금의 특히 오이타에 전략적 주둔지를 만들어 두었다면,, 후쿠시마 만으로도 나라를 세우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음.
구마모토는 본토랑 전혀 상관없는 방관자적 위치로 극상일지 몰라도, 적의 뒤통수 노리기에는 너무 먼 성임...
오이타와 우리의 우동고장에 전성, 후성을 두었다면... 향방을 몰랐을 수도... 물살은 약한데 넓지도 않은 지형을 찾아 들어 갔다면...
해군력을 강화하고, 본토랑 단절 시키고, 후방에서 따로 놀았다면 승자가?? 왜란으로 해군력 증대에 대한 열망이 거꾸로 안보임.....
잘보고갑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나 가토 같은 칠본창들은 대부분 이에야스로 붙었다가 토사구팽 당하는걸보면 ㄱ권력의 흐름이란게 무상한듯합니다.
자라수트라님 댓글 감사합니다~^^칠본창은 시대의 흐름을 너무 몰랐던거 같습니다.
솔직히 두 장수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어 보이죠.이시다 미쓰나리가 워낙 고지식하고 리더의 자질도 부족했는데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이시다 미쓰나리가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는 거죠.임진왜란에서 워낙 이시다 미쓰나리가 전쟁의 현실을 냉정히 못보고 무장파들의 고달픔은 무시하고 막장 전쟁터에선 지휘능력이 없어서 형편없이 깨지기만 하죠.마에도 도시이에가 죽으면서 리더의 부재가 서군에게 가장 큰 악재였죠.
와키자카만큼은 예외
일본 음란물을 많이 봐서 일본이라면 음란물 밖에 생각이 안나는 제가 이것을 보면서 일본도 사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마음이 깨끗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로 감사합니다.
ㅋㅋㅋ 몇번이나 감사를 표하시네요ㅎ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 장수들 투구라던지 상징물을 보면 고대 북방유목민 스키타이족들 투구랑 같음. 영락없는 스키타이 복장임.
전혀다른데 눈깔이 없냐 ㅋㅋㅋ
화려하게 치장해서 그럴수도요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졋다. 북방 유목민이 저렇게 거추장스럽게 다니냐 너 솔직히 말해 일본놈이지 스키타이 스키타이 하는데 별것도 없는것들 괜히 유럽에서
동방 유목민족한테 쳐발리니 억지스럽게 유럽유목민족으로 스키타이를 만든건데
푸하하하
솔직히 삼국지보다 전국시대가 더 재밌더라 나는
나도
저도
삼국지는 후반으로 갈수록 네임드들이 죽으면서 재미가 떨어져서 그렇게 느껴지는듯
전문가 나래이터 답군요 사실을 기초로 해서 정말 이해 재미 가 넘쳐나요 화이팅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국 삼국시대 일본 전국시대 같은민족끼리 전쟁하던 시대는어디든있군
이래서 내가 센고쿠 시대를 좋아하는거죠. 도요토미가 망하는 꼬라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근데 모리랑 시마즈도 조져야했는데....
개인적으로 가토 기요마사는 악행이 있어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참 멋있는 무장인데
이번편은 왜 이렇게 힘들죠..? 이름 때문인가, 설명하는 문장이 길어서인가, 초보자에게는 너무 어렵네요. 내용이 눈과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요.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쉽겠지만.. 귀로 듣기에도 빡센데, 중간 중간 나오는 글도 동시에 읽어야 하고... 2/3쯤 따라가다가 포기~
히데스구 골로 보낼때부터 시작된 비극같음.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게 히데요시가 지 엄마까지 이에야스에게 보내고 난 뒤에 이에야스가 형식상으로나마 숙인거 뻔히 아는데 챠챠 싫다고 미스나리 싫다고 넘어간다는게ㅎ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가 한짓을 보면 .. 히데요시가 죽은후에 히데스구도 똑같이 할거라.생각했던거지 ㅋㅋㅋ
구로다 칸베에 는 왜 히데요시편 아니고 배신함??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면 신중하며 기다림의 미학이지요 마에다 도시이에, 가토 기요마사등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오사카 성 공격을 명령합니다, 두견새가 울때까지 기다리라는 표현이 때를 두고 한말인것 같습니다 ㅎㅎ
존버의 신 도쿠가와
진짜 오래사는거 까지 존버 네요 ㅎ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존버를 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기관리에 철저했다고 하지요. 오죽하면 약학을 공부하여 자기 몸보신을 위한 탕약을 스스로 지어서 먹을 정도이니까요.
블랙이에야스: 난 나보다 약한자의 말은 따르지않는다
블랙이에야스 : 농민들은 굶어 죽지않을만큼만 밥을 주면된다
결과만보면 토요토미가는 히데쓰구 죽이면서 사실상 끝났음. 히데쓰구의 권력기반이 확고했다면 이에야스가 야심을 드러내기 어려웠겠지. 토요토미가는 말년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우리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속이 후련합니다.
사루 가문은 망해야죠 ㅎ 후련 합니다 ~
뭐 힘없는나라가 정복당한건당연한듯...특히 조선ㅉㅉ
@@우황황황 힘없으니 유린당하고 정복당하는 게 마땅하다? 우리가 노력해서 더는 그런 참극이 없도록 스스로 성찰한다는 뜻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선조를 잘 털리고 잘 죽었다라는 뉘앙스의 "마땅하다"라고 하신다면 당신은 한국인이 아닙니다.
남한테 한만큼 다 자기자식들한테 돌아온다
팩트)유럽국가들 존나 잘사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
히데쓰구의 마지막 장소 였던 고야산은 세계어디에도 없을 특이한 산이었음 . 우리식으로 말하면 터가 센 곳 ?
髙 野 山 ~~~~ 🗻
대망에 안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투구와 갑옷이 비효율적이네요
결국엔 뿌린데로 거두리오 ~~~
일본에 늘 학문과 지식과 문화를 전수해 주었거늘 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대표적인 놈이 풍신수길이다. 이 놈은 물론 그 부하였던 놈들을 향해 '가문'이라는 표현 자체가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집구석'이라는 표현이 합당할 거 같다. 일본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표적인 종족이다.
내용도좋은데 컴퓨터더빙으로바꿔주세요
아;;; 적극 검토 해 보겠습니다
1.2 배속 가즈아.
ㅋㅋㅋ 말이 느려 죄송 합니다;;;
모두 씨른 말려야 한다.
아주 잘된일..쌤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