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일강산 비단병풍 제천 금수산錦繡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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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фев 2025
  • 한국 제일강산 비단병풍 제천 금수산(錦繡山)
    우리나라에 금수산(錦繡山)은 북한 평양과 남한 제천과 단양에 걸친 동음이의어의 명산으로 자연경승을 비교해 보자.
    첫째, 평양에 금수산은 『세종지리지』평양부(平壤府)에 명산은 “금수산(錦繡山)은 부(府)에서 북쪽에 있는데, 고을 사람들이 진산(鎭山)이라 일컫는다. 을밀대(乙密臺)는 곧 금수산(錦繡山) 꼭대기에 있는데, 평탄하고 훤칠하다. 대(臺) 아래 층안(層岸) 위에 누(樓)가 있으니, 이름을 부벽루(浮碧樓)라 하는데, 보이는 경치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라는 금수산은 지금의 평양시 중구역 평야지대에 96m로 야산으로 평양 일대에 국한하여 조망된다.
    『연려실기실』지리전고에 “평안도 평양에 금수산의 모란봉이 진산(鎭山)이다. 대동강이 성(城) 밖을 둘러서 남쪽으로 흐른다. 대동문(大同門)의 문루는 강을 굽어보고 동쪽을 향하고 있다.”하여 금수산에 속한 모란봉을 진산으로 삼아서 대동강을 굽어보는 경승이다.
    둘째, 제천 금수산(錦繡山)은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에 걸친 산으로 해발고도는 1,016m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약 5백년 전까지는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렸는데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그 경치가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라고 이황의 금수산 개명의 진위는 이황의 ‘단양산수기(丹陽山水記)’ 중에 “구담의 북쪽은 바로 적성산(赤城山) 한 줄기가 남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끊어진 곳이다. 거기에 큰 봉우리가 세 개 있는데 모두 물에 임해서 가파르게 솟아 있으며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다.”하여 지금의 적성면에 접한 적성산으로 수록한 사실에서 근래에 와전된 것으로 고증되며, 1548년 단양군수 이황이 적성산 자락에 세봉우리는 “아래쪽에 있는 봉우리를 채운(彩雲)이라 이름하고 그 가운데 봉우리를 현학이라 하였으니, 그 보이는 대로 지은 것이고, 그 위쪽에 있는 봉우리를 오로(五老)라 하였으니 이는 그 형상에 따라 지은 것이다.”라고 수록하였다. 따라서 단양군수 이황은 금수산을 일컬어 적성산으로 칭한 사실에서 금수산 개명은 허구성으로 증명된다.
    셋째, 평양 대동강에 누정은 『연려실기실』에 “연광정(練光亭)은 덕암(德巖)의 절벽 위에 있다. 강의 남쪽에는 십 리나 되는 긴 느릅나무 숲이 있다. 연광정을 돌아 북쪽으로 가면 청류벽(淸流壁)이 있다. 벽(壁)이 끝난 곳에 부벽루가 있는데 영명사(永明寺)의 동쪽이다. 절 뒤의 금수산(錦繡山) 산 정상을 을밀대(乙密臺)라고 부른다. 누대 아래의 강가에 기린굴(麒麟窟)과 조천석(朝天石)이 있고, 강의 상류에는 백은탄(白銀灘)과 능라도(綾羅島)가 있다.”하여 금수산에서 관망 되는 대동강 언덕에 연광정(練光亭)의 누관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한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제천 청풍강에 누정은 청풍 한벽루는 호서제일의 누관으로 『제천군지』에 “연광정(練光亭)으로부터 모본(模本)한 것으로 말하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한벽루 현판은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는데, 연광정에 게시한 현판을 모의한 제일강산의 실제 주인은 한벽루 누관이 수승한 것을 반증한다.
    다섯째, 평양에 연광정(練光亭) 누관은 대동강을 굽어보는 데 비하여 청풍 한벽루는 청풍강이 흐르는 강 건너 금병산(錦屛山)은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누관에서 제일강산의 주체는 청풍 한벽루이다.
    이처럼 자연경승에서 얻어진 제천 금수산(錦繡山)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경승에서 얻어진 산명으로 조선중기 이황의 개명은 언어도단이다. 더구나 호서제일의 누관으로 한벽루 역시 차고 푸른 자연의 지명에 얻어진 호서제일 누관은 금수병풍(錦繡屛風)의 금병산과 금수산(錦繡山)을 감상하면서 산사수려한 경승지를 일컬어 청풍선부로 일컬은 것이다. [한국고전종합DB 국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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