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송구영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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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26 янв 2025
- 마태복음11:25-30절
이런 인생을 만듭시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한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공식적으로 2024년 오늘이 마지막이지요. 이제 몇분만 지나면 2024년은 영원히 역사속에만 존재할뿐 우리가 살지 못할 시간이 됩니다. 한해의 마지막이나 송구영신때가 되면 항상 그해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봅니다. 한해동안 세계속에서 나라속에서 내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떠올리면서 한해를 정리합니다.
올해도 12월 초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올해의 우리의 삶은 어땠는지 고민을 하며 한해 마지막달 어떻게 설교를 할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3일 그 밤의 사건으로 모든 것들이 잊혀질 만큼 커다란 무서움과 답답함 그리고 또 그로 인한 수많은 고난과 고통들이 다가왔습니다. 12월 3일을 ‘내란의 밤’이라고 합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인 대통령이 자기의 잘못과 부정과 부패를 숨기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표면적으로는 국민을 위한척 하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그 밤 말입니다. 윤석렬은 그 밤을 결단의 밤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밤을 온 국민에게 잠 못자게 하고 두렵게 했던 내란의 밤이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내란 또는 계엄불면증이 생겼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수많이 이들이 잠을 자다가 선잠을 깨고 핸드폰을 들어 지금 혹시 내란이 또 계엄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는지 살펴보다 잠을 못자는 이들에게 계엄 불면증이라는 말을 붙여놨습니다. 수많은 무장 군인들이 국회와 시민들의 일상을 지내야할 곳곳에 배치되었고, 헬기는 밤하늘을 가르며 무장군인들을 실어날랐습니다. 그러나 5.18때 군부독재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던 국민들은 똑같은 그날을 되풀이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맨몸으로 장갑차앞에 뛰어들었고. 맨손으로 무기를 든 군인들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말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책에서 ‘죽은자가 산자를 구할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내란의 밤에는 그렇다고 온 국민이 대답을 했습니다. 5.18의 총칼앞에서 죽어간 이들은 다시 온 시민들안에 부활하여 맨몸으로 장갑차와 총을 든 군인을 붙잡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남태령대첩이라는 말을 또 듣습니다. 윤석렬을 체포하고 농민의 자주권과 살길을 위해 트랙터를 타고 올라온 농민들이 남태령에서 경찰들에게 막혀 있을 때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달려와 농민들과 함께 한 사건입니다. 체감온도 영하10도의 날씨에 젊은이들과 많은 시민들은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그 곁으로 달려왔습니다. 경찰들을 그 시민들이 돌아갈 무렵 농민들을 강제 진압하고 경찰서로 연행하려고 하는 그 위기의 찰라에도 시민들과 젊은이들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농민들을 지켜냈고 결국 남태령을 뚫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앞까지 갈수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들고 흔들던 탄핵봉이라고 불리우는 응원봉의 물결을 이렇게 표현한 분도 계십니다. 남태령에서 흔들어 준 젊은이들의 응원봉은 세월호사건으로 죽어간 어린 영혼들과 이태원에서 죽어간 이들이 그들과 함께 하여 응원봉이되고 목소리가 되어 함께 외쳤다고 말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그때 당시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고 응원봉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침을 보면서 세월호의 아이들이 함께 한다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죽은자는 산자를 구할수 있는 일들이 우리곁에 이렇게 생겼습니다.
내란의 밤과 남태령 대첩의 밤을 지나며 왜 이들은 그렇게 외치고 추위속에서 그리고 총칼과 장갑차 앞에서 자기의 목숨도 구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서서 싸울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모든 이들에게 고난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석렬 정권이 있고난 이후 많은 서민들과 양민들은 고통과 고난속에서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사건과 채일병 사건은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하지도 않는 정부임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가진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해서 가난한 이들을 더 짓밟고 빼앗아 부자의 창고에 채워주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이들은 분노와 아픔과 고난과 고통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 고난과 고통은 이웃의 고난과 고통도 외면해 버리게 했습니다. 농민들같은 경우는 지난 20-30년 동안 물가가 오르고 비료와 농약값이 올라도 언제나 그대로인 쌀값과 농산물 가격으로 인해 제대로 삶의 안녕을 보장받지 못하였고 이들이 쌀값을 올려달라고 하면 물가를 부축인다며 서민들의 생활을 위협한다고 하면서 농민들과 서민들 사이를 이간질 하면서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동서간의 갈등과 지역갈등, 세대간의 갈등과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갈등을 풀어헤쳐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함에도 오히려 그것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배만 채우는데 급급했습니다. 남북의 문제를 더 이용해서 전쟁의 공포를 들이대 서민들로 하여금 꼼짝못하게 하려는 계획들도 하였고 테러와 폭파와 같은 엄청난 일들도 계획했습니다. 가진자들과 권세를 등에 업은 자들은 없는자들과 다수의 시민들에게 고난의 짐을 짊어지우며 그들을 오히려 잠재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아물어지기도 전에 또 제주항공 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사고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였고 많은 이들에게 아품과 절망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고 앞에서도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 더 절망하는지도 모릅니다. 2024년은 이렇게 점점 저물어갑니다. 이제 교회를 돌아봅니다. 교회는 2024년 잘 지내고 있었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었을까?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저항하며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폭압앞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를 외쳤는가? 이태원 참사앞에서도 잠잠하던 교회 아니 오히려 젊은이들이 마약파티하는 것처럼, 또 사단의 놀이를 하다가 죽었다고 말했던 교회, 계엄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 앞에서 교회는 정치적 중립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가 되어 자기의 할 일 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니 오히려 비겁하게 교회는 정권에 아부를 합니다. 교회는 자기가 지고가야 할 짐들을 다 벗어버리고 편한길을 택했습니다. 자기가 마땅히 지워야 할 책임과 의무와 믿음의 고백을 다 버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 짐을 던져버리고 편한길을 택하여 걸어갔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하는데 그 짐을 그냥 세상에 던져버리고 권력과 이익을 따라가니 세상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 그리스도앞으로 가야하는데 오히려 짐은 벗어서 던져버리고 세상으로 다가갑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과 사고 앞에서 우리는 2024년을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때에 세상의 다사다난한 일들이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되어갈때에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으로 2024년을 마무리하며 2025년 을사년을 함께 맞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