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진본기(3부) / 진목공 / 인재 등용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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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 인문학 고전 사마천 사기 진본기
진본기(秦本紀) 3부 진목공에 대하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진본기에 나오는 진나라 목공과 그가 찾아낸 유능한 신하 백리해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진본기 세 번째 시간으로 명재상 백리해와 건숙을 신하로 얻게 된 진 목공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당시 춘추 제후국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한 당진과 대적하고, 또한 서쪽 지역 오랑케 서융과 견웅을 상대로 서쪽 패자로 자리 잡아가며 진나라 국력을 확장해 나가는 진목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진나라는 춘추국 중에서도 서쪽 변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서쪽 변방의 침략을 받음과 동시에 중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목공에 들어서 제후국의 면모를 확충해 가게 되는데 오늘은 그 과정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주요 내용
-. 당진(晉)국의 제후 다툼과 섬진(秦)의 대응.
-. 진진(晉.秦) 두 제후국 간의 신의 : 식량 원조와 배반
-. 당진(晉) 혜공과 섬진(秦) 목공의 싸움 : 섬진(秦)의 승리
-. 당진(晉) 태자 어의 도주와 중이(문공)의 등장
-. 진진(晉.秦)이 주나라 난을 평정하고 진(晉)문공은 춘추패자가 되다.
-. 진(秦)목공 정나라를 치려다 오히려 당진(晉)과 원수가 되다.
-. 진(秦)목공 능력자 유여를 얻다.
-. 진(秦)목공의 공적 서융의 패자가 되다.
-. 진목공의 실정 : 순장 제도 때문에 인재를 매장시키다.
#진목공 #진나라목공 #사마천사기
감사합니다 선생님 ㅎㅎ
좋은강의 잘듣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인문학 TV 교경 채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늦게나마 귀중한 채널을 발견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한때 사기에 미친 저라 대부분의 내용을 알지만 씨족의 계보같은 전문적인 주석을 달아주셔서 잘 강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젊은 친구들도 꼭 구독해서 이 강의를 들으시면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5.진본기3ㅡ진목공이야기
큰 공을 세운 진목공~
섬진 진목공, 당진 진문공
늘 헷갈렸는데ᆢ
이제 이해했어요ㅎ~
죽음(순장)은 나빴네요ㅎ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본기3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기 진본기 3부 진목경에 대해서 유쾌한 말씀 경청하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 환절기 건강에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
영상 감사합니다 선댓글 후감상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항상 훌륭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틈틈이 고경선생님의 사기열전 강의를 공부한 덕분에 ᆢ저는 거의 열번정도는 듣습니다 ᆢ진본기는 더욱 범위가 넓게 공부가 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복해 보신다니 감사합니다.
온고지신 참 좋은방송 감사합니다 🙏
항상 잘 배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환공 진문공은 열국지나 춘추오패이야기에서 많이 들었지만 진목공은 제대로 잘배웠습니다 마지막 순장제가 아쉽고
진효공처럼 법가같은 제도가 장착이 안되고
춘추오패나 다른 군주들처럼 그시대의 한인물로 끝이 났는것 같습니다
가계도나 지도를 보면서 정말 흥미진진 재미있게 잘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흥미있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건숙과 백리해의 충언을 듣지 않아 패배를 남긴 진 목공도 오점이 있었군요. 게다가 순장으로 인재들이 사라지게 되다니요. 안타깝습니다. 옛날에는 중국이 공기 맑고 물 좋았던 모양입니다. 백리해도 97세에 아들의 출병을 한탄해 했다니.... 강태공 못지 않네요.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진나라 지역은 진->한->남북조->수->당 ->송대에 이르러 많이 땅의 힘을 소모시켜서 명대에 이르러 사막화 되어져 갔습니다.(비료로 인한 땅의 산성화)
옛날 권력자들의 여자관계가 복잡한 이유는 당사자가 여색을 밝혀서도 있지만, 정략결혼을 통한 협력관계 구축이나
평균 수명이 짧았던 당시 현실을 감안해서 후계자 풀을 넓히려는 의도 등이 작용한다고 봅니다.
동양에는 '고독 (蠱毒)'이라고 해서, 항아리에 맹독을 가진 벌레나 동물들을 집어 넣어 서로 싸우게 하는 저주 방법이 있었지요.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골육상쟁을 보면, 고독이 연상됩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게 비난 고대사회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에서도 해당사항입니다. 청나라, 조선까지도 영아의 사망률이 높았죠.
진본기 4부를 기다립니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셨군요. 잘 봤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점이 '야인' 부분입니다. 목공이 아끼던 말을 잡아먹은 자들도 '야인' 300명이었고 백리해도 야인의 포로가 되어서 노예생활을 했죠? '야인'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이질감입니다. 화하문명권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니까 '야인'이라고 불렀겠죠? 둘째로는 동질감입니다. 이들이 화하문명과 핏줄이 다른 이민족이었다면 '적족'이니 '견융족'이니 '산융족'이니 종족명을 붙였지 '야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야인'이라는 표현은 인종적, 언어적으로 한족에 포함되지만 화하문명권 성립 이전의 유목생활 등을 영위하던 사람들을 부르던 명칭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야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조선시대에 여진족을 '야인'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건 별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이잉 ㅠ 백리해 아들 살았다 ㅠ 진목공 완전 멋짐 그런데 170명 순장이라니 에고공 진시황이 보고 배웠나 봐 ㅜㅡ 흐이잉
이 당시 순장제도에서는 몸종같은 사람들이 같이 들어가는것이지. 과연 고위 관료들까지 같이 순장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춘추와 전국시대에서 고위 관료들이 같이 순장된 사료는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물론 중국의 순장제도가 명나라에 이르러 사라졌지만, 명나라 초기까지 남아있었죠. 이때에 궁녀들이 순장되었죠. 진목공이 땅을 욕심을 낸다면 진을 쳐야지. 멀리 진-주를 지나서 얻는 땅은 의미가 없죠;;멀리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수도 없고;;; 나중에 이야기 하시겠지만, 결국 진나라는 멀원 근공을 통해서 천하를 통일하죠.
원교근공 한자성어를 말씀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와우 주말 일요일 첫 댓글...영상 잘 보겠습니다~
일등석 예약 드렸습니다 ㅋ~~~🤣
진 목공은 근본적으론 선한 군주 같아 가축 때문에 사람 생명을 앗아서는 안된다 하여 야인들한테 덕을 베풀어 그 보답을 크게 받았거늘, 또 순장이라 하면 애꿎은 이들 생명을 희생시키는 악습인데 이런 현명한 사람도 그 악습 전통을 끊지 못했다는 것은 그 악습 폐단의 질김이 얼마나 질긴지를 말해주며 지금도 일어나기에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 댓글 잘 봤습니다,그런데 삼국사기 지증왕 기록 "3년(서기 502) 봄 2월, 명령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게 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어서요, 그리고 마지막 댓글 내용은 지금도 전통이라는 구실로 악습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들이 있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