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정에선 광인, 백성에겐 암행어사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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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5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8

    영조실록 1756년 4월 24일 - 박문수의 죽음에 슬퍼하는 영조
    "영성(박문수 영성군)이 춘방(세자궁)에 있을 때부터 나를 섬긴 것이 이제 이미 33년이다. 자고로 군신(君臣) 중에 비록 제우(際遇)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 나의 영성과 같음이 있으랴?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영성이며, 영성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 깊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승정원일기 영조 3년 9월 25일 - 별건어사 추천
    조태억이 아뢰기를 “영남의 올해 흉년 상황이 호남과 거의 차이가 없으니, 별도로 어사를 보내어 흩어진 백성을 편안히 모여 살게 하고, 이어 내년 봄에 진휼하는 일을 감독하게 한 뒤에야 구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읍을 지날 때에 때때로 암행으로 마을에 出沒해 잘 다스리는지 자세히 살핀다면 실효가 있을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 영조 7년 12월 10일 - 이인좌의 난
    신은 민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많이 알고, 말도 해학을 섞어 함으로 백성들이 듣기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진심이 있은 연후에 백성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신은 진솔하게 백성들과 잘 어울립니다. 몇 해 전 군대를 순찰할 때 때때로 손수 군사들의 발을 주물러 주었고, 군사들은 이따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영조실록 1733년 1월 27일 - 소금을 구워 파는 것을 불편해하자
    소금을 굽는 계책은 사실상 천만번 부득이한 형편에서 나온 것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利害) 관계는 자세히 연구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이론(異論)만을 제시하여 소금을 굽지도 않고 폐단만을 닳도록 다툽니다. 소금 굽는 일을 버려두고서 또다시 장차 무슨 계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조실록 1730년 12월 8일 - 직언
    예전에 우리 세종(世宗)과 문종(文宗)의 시대에 있어서는 경학(經學)하는 선비를 극선(極選)하여 고문의 자리에 두고 자주 인대(引對)하여 치도(治道)를 강론하고 물러갈때에는 촛불을 잡고 보내주었으며 때로는 깊은 밤에 친히 직소(直所)에 납시어 혹은 옷을 벗어 친히 덮어 주고 혹은 등을 어루만지며 면유(勉諭)하였으므로 은권(恩眷)이 천고에 뛰어나셨으니, 이때를 당하여 신하가 되어 어떻게 지성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기에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전하께서는 직언(直言)을 들으려 하지 않으시니, 군신(群臣)들도 전하의 뜻을 거슬릴까만 두려워하고 있어 상하(上下)가 서로 도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1년, 2년 지나게 되면 나라 일이 장차 어떤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승정원일기 영조 9년 1월 25일 - 목소리가 크고 왕을 똑바로 본다는 말에
    “신이 듣기에 옛 규례에는 연석에서 대신(大臣)은 꿇어앉고 재신(宰臣)은 반쯤 부복(俯伏)하였지 이처럼 부복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근래에 환국(換局)이 잦았기 때문에 조신(朝臣)들이 두려워하여 모두 땅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군신 관계는 부자 관계와 같은데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참고문헌 조한필 지방사와 지방문화 24권 2호 박문수의 어사 이력과 別遣御史 활동 2021.

  • @BKLEE-hu2bs
    @BKLEE-hu2bs 18 дней назад +7

    박문수는 영조가 사랑했던 인물이죠
    소론의 인물이지만 노론의 대신들도 함부로 건들이지 못했을 만큼 능력도 있고 쓴소리는 유명했죠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고작 몇번밖에 없지만 유명했던 이유는 펙트가 워낙 강해서일걸요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1

      무엇보다 민생구휼에 힘써서 마을에 어사가 다녀가면 아 박문수구나 싶었나봐 ㅎㅎ 조정에서 큰소리치고 욕하면 까칠한 영조가 말릴 정도였죠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18 дней назад +3

    영상 항상 감사드립니다 😊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18 дней назад +4

    또한 박문수와 더불어 이 시대면 최규서같은 행정가도 있죠
    세가지 한가로움을 일구어 평안케 했다는 능력자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18 дней назад +3

    솔직히 단순 청백리네 뭐네 민본이네 이딴 추상적 표현이 아닌
    행정에서 괄목할만한 능력 자체를 타고난 인물이죠
    이익주 교수님 말을 빌려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필요한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 아닌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할때죠
    박문수는 그중 한사람이고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1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하고 싶은 말 다하시는 분이죠 동료들은 손가락질했어도 영조는 은근 즐겼던 것 같고 백성들에겐 말이 필요없는 영웅

  • @workerkim173
    @workerkim173 17 дней наза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사도세자가 귀주 속에 갇혀 죽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 @잉히옹야
    @잉히옹야 18 дней наза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 김두한이 있는데 김두한이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3

      그냥 정치깡패입니다 ㅎㅎ 잘한 일은 없고 다루면 몇몇 사건 때문에 바로 노딱 ㅠ

    • @잉히옹야
      @잉히옹야 18 дней назад

      @@역사일출 야인시대를 재밌게 봐서 한번 물어봤습니다ㅋㅋㅋ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1

      @잉히옹야 미화도 그런 미화가 없습니다 ㅠ

  • @rin4827
    @rin4827 18 дней назад +1

    저 박문수가 원래 경종이 등용한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맞나요?

    • @역사일출
      @역사일출  18 дней назад +2

      말씀하신 등용만 따지면 영조가 맞아요 경종 때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에 오르지만 삭직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