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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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 фе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4

  • @sunheegu
    @sunheegu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훌륭한 강의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간의길-h1c
    @인간의길-h1c 3 года назад +4

    눈오는 존재의 숲에서 휴머니즘적 실존을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늘 감사드리고 건강하십시오.

  • @eunsukkim6581
    @eunsukkim6581 Месяц назад

    감사합니다.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2

    D.
    1. 사회적 참여.
    자유를 개인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사회에의 참여로써의 자유 확장,
    2.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3

    C.
    1. 실존은 고독하게, 불안을 짊어지고, 스스로 자기 생을 책임지고,
    2. 실존은 언제나 본질에 앞선다.
    3. 상당히 초인(니체의), 주인이라는거다.
    4. 타인은 지옥과 같은 존재에서 변형되는거다.
    (달달달..)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3

    E.
    1.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지배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나의 주체적인 삶을 자기 역사성 안에서 실존의 주인으로서, 사회적 참여자로서 나타나게 되는 실존주의, 휴머니즘.
    2. 사르트르의 실존은 신을 부정하는 것(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3.자기 주체적인, 타자 책임적인 진정한 '자유'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2

    A
    1.헤겔에게서의 본질이란 유한자와 무한자의 결합.
    2. 사르트르의 실존은, 인간은 신으로부터 떨어져있다. 바깥에 나와 있음. 고독, 분리, 죽음. 기투된 존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은 본질따위는 없고 인간은 역사적으로 실재한다. 실존만이 인간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

  • @taejukim
    @taejukim 3 года назад +1

    바빠서 선 좋아요 하고 감니다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2

    B.
    1. 실존은 주인의 철학.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신은 인간의 실존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실존에 대하여 결단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 @김용식-y3e
    @김용식-y3e 3 года назад +5

    저가 생각하는 사르트르는 칸트나 니체보다는 많이 작은 존재지만 그가 온세상의 인구만큼 존재한다면 세속을 살아가는 인간계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민한 통찰력과 영민한 두뇌,어딘지 모르는 카리스마 저런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삶도 어느정도는 일치 하겠죠.사르트를 보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자연인이 생각납니다 노통은 실존을 살았고 옹달샘처럼 나오는 실존에서 나오는 휴머니즘.앞으로도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는 언제나 환영입니다.한달후에는 겨울의 고비도 겨우 겨우 넘어 가겠죠 혹한은 좋게 보려해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네요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더 아름답겠죠

  • @dara_bang
    @dara_bang 3 года назад +2

    F.
    1. 철학은 쉽게 '빠'가 되어선 안된다.
    2. 절망이 어때서,
    고독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에 의해서도 나의 실존은 저당 잡혀서는 안된다.
    3. 주체성과 초월성을 포함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은.
    4.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5. 인간만이 이 세계에, 역사에 던져져 있다.
    6. 고전은 유행이 될 수 없다.
    Thanks. 👍

  • @ahmu719
    @ahmu719 2 года назад

    선생님 강의 감사드립니다. 책에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 드려요.
    “•••그래서 사람은 먼저 되고자 지향한 그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적 결정이어서 우리들 대다수에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뒤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이 문장을 지향은 앞으로 나아감이고 단지 원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지향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면서 만들어내고 그 뒤에 의지가 생기고..의 반복으로 이해하였는데요.
    그 뒤에 따라오는 “나는 어떤 정당에 가입하기를 바랄 수 있고, 책을 한 권 쓰고 결혼하기를 바랄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이른바 의지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더 자연적인 선택의 표시에 불과하다.(?)” 라는 문장이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이해한게 맞는건지 밑의 문장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TV-uw9lz
      @TV-uw9lz  2 года назад +1

      실존적 자유와 의지의 결정 사이의 관계 안에서 계속 사유해 보셔요! 그럼 뭔가 열리는 지평이 있을 겁니다!

    • @ahmu719
      @ahmu719 2 года назад

      @@TV-uw9lz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