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과거의 미래라고 하셨죠..... 현재의 정치집단을 보면서 '1896년부터의 10년' 미국 이정식 선생님의 가정이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공덕 아소당에서 대원군 손자 이준용과 박영효의 협상이 깨진 단순한 해프닝 역시 현재의 과거를 보는듯해 가슴이 답답합니다. 왜 우리만 그럴까요. 박종인 기자님 그외 같은 뜻을 갖고계신 여러분들 덕분에 그래도 작지만 밝은 미래를 기대헤 봅니다. 항상 좋은 방송으로 즐거운 일요일 밤 입니다. 감사합니다. ^&^
기초가 허약한, 아니 썩어 문드러진 군주에게 십 년 아니라 백 년의 기회가 있었던들 어찌 나라의 부강을 기대할 수 있었겠나요. 눈을 현대로 돌려 지난 5년을 뒤돌아봐도 역시 마찮가지가 아니던가요.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국가들은 지난 5년 대부분의 시간에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었건만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 만이 불황과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고 비록 정부가 바뀌었어도 지난 5년 간의 실정 때문에 고통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던가요. 성실과 양심은 어느 국왕, 어느 정부에나 해당이 되는 뼈 아프고도 시린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것은 과연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정치 이익적 관점 이외에 실제로 개화라고 불린 서구의 계몽주의를 정말 이해하고 구질서인 주자학과 중화의 질서를 벗어나길 원했을까요? 만약 민족의 대다수가 그러했다면 지금 더 이상 중화의 질서가 없는 21세기초까지 중화질서의 기본 이데올르기인 주자학의 상징들이 엄연히 한국에 곳곳에 있는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국기, 화페, 사회 관습…….등등 을 보면 아직도 한국 사회 깊은 곳에는 19세기나 20세기 초의 그 중화질서 아니 주자학적 세계관이 엄연히 살아있다고 할수있지 않을까요? 물론 역사의 결론을 알고있는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유리했을것이라고 할순있지만 같은 사고 패턴을 갖고 있다면 역사는 반복될겁니다
조선이 자생적으로 근대국가로 나갈 가능성은 1도 없었다고 봅니다. 성리학이 너무 뿌리가 깊어서 지금 북한 이란 중국하고 똑같아요. 외부세력 개입없이는 불가능했고 그건 카톨릭이 지배적인 남미국가 남부이태리 동유럽 러시아까지도 비슷함. 기성 종교를 안버리면 근대국가로 못갑니다.
님같은 그런 사고방식이야 말로 대단한 역사적 무지입니다. 성리학이 근대화에 걸림돌이라면 기독교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서양이 근대화되었나요? 서양도 조선중기시기(임진왜란-병자호란)에 해당하던때 아직 종교재판이 횡횡하고 그것으로 과학자들이 탄압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갈릴레이가 그 대표적인 예죠. 그나마 성리학은 당시의 기독교보다 과학적 합리성은 우수한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적 가치를 무슨 북한 이란과 비교하려고 듭니까? 북한의 폐쇄적 주체사상으로 국민들을 굶겨죽이고 인권탄압했는데 조선왕조가 성리학으로 인해서 국민들을 굶겨죽이고 인권탄압했나요? 참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맹목적인 서양중심의 근대화사관에 매몰되어 동아시아 유교문화를 비하하는 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식민사관만큼이나 문제가 큰 사관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해당되는 시기에 유럽 주요국가들이 중상주의를 택했다고 그것이 오늘날의 국민경제생활이나 산업기술경쟁력 개념에서 비교할 사안인가요? 중상주의가 근대화로 직결된다라는 것이 결코 아닌데 스페인 포르투갈이 대표적이죠. 이 들 국가는 중상주의 시대때에는 영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선진국이였지만 결국 산업혁명는 영국보다 월등히 늦어져서 서구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합니다. 혹시 기독교를 언급하니 카톨릭이 보수적이라서 서구에서도 선도적인 국가들이 개신교중심이라는 것을 들어서 개신교를 띄우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겠지만 개신교라고 해서 카톨릭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근거가 있나요? 다만 서구국가들이 전통적인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탈피했다라는 것을 중요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카톨릭이던 개신교던 간에.
근본적으로 하필이면 이시기가 왕조말기에 겹쳐서 왕조말기에 나타나는 시스템의 엉망 붕괴로 인한 혼란으로 뭔가 새로운 추진이 안되는 아주 불운한 시기였다는 것이 우리민족의 액운이죠. 만일 이시기 근대화라는 시대조류가 없다면 조선왕조는 망해도 후속왕조로 이어지거나 공화정으로 바뀌고 그냥 조선왕조는 수명이 다되어 망했다라는 평가로 끝났겠죠.
잘못 아셨는데 을미왜변부터 러일전쟁에 이르는 10년간은 이미 열강들 외셍에 의한 간섭이 대폭 확대되는 시기입니다. 근거로 대한제국 광무개혁이 그렇게 실패작이라고만 볼수 없지만 결국 실패한 것은 이러한 환경을 반영한 것이죠. 진짜 근대화를 위한 아쉬운 시기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부터 1894년 갑오경장 그 사이입니다. 만일 광무개혁이 10년~15년정도 더 빨랐다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봅니다.
성리학이 상공업을 경시해서 조선은 낙후되고 유럽은 중상주의를 채택해서 근대화를 선도했다라는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서구중심적 사관입니다. 과연 조선왕조가 상공업 그 자체를 경시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고려말기 상황을 분석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미 고려말기 신진사대부들로부터 고려시대 상업체제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조선왕조에서 상공업을 억제했다라는 표현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오늘날식으로 따지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을 생각한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경기불안정요인을 유발하는 금융자본주의라던가 투기 착취등으로 인한 돈맥경화증현상으로 나타나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런 행태들을 억제해야 한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컨데 케인즈경제학이 들어섰다면 고전경제학시대로 부터 자본주의가 후퇴했다라고 평가할수 있슬까요?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가 아닌 다소 정제되고 공익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한것이 당시의 성리학적 경제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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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박종인 올림
현재는 과거의 미래라고 하셨죠..... 현재의 정치집단을 보면서 '1896년부터의 10년' 미국 이정식 선생님의 가정이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공덕 아소당에서 대원군 손자 이준용과 박영효의 협상이 깨진 단순한 해프닝 역시 현재의 과거를 보는듯해 가슴이 답답합니다. 왜 우리만 그럴까요. 박종인 기자님 그외 같은 뜻을 갖고계신 여러분들 덕분에 그래도 작지만 밝은 미래를 기대헤 봅니다. 항상 좋은 방송으로 즐거운 일요일 밤 입니다. 감사합니다. ^&^
영상을 크릭하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합니다. 오늘은 뭐가 가슴을 쓸어내릴까....
박기자님 덕분에 심장이 더욱 단련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때쯤일 거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계 정세를 배제한 진공관속의 대한제국을 알고 있었습니다. ”잃어 버린 10년“의 의미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잘보겠습니다
기초가 허약한, 아니 썩어 문드러진 군주에게 십 년 아니라 백 년의 기회가 있었던들 어찌 나라의 부강을 기대할 수 있었겠나요. 눈을 현대로 돌려 지난 5년을 뒤돌아봐도 역시 마찮가지가 아니던가요.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국가들은 지난 5년 대부분의 시간에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었건만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 만이 불황과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고 비록 정부가 바뀌었어도 지난 5년 간의 실정 때문에 고통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던가요. 성실과 양심은 어느 국왕, 어느 정부에나 해당이 되는 뼈 아프고도 시린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오늘도 좋른강의 감사합니다
건강유의하십시요 👍 👍 👍
고종당시나 현시대나 기본 구도는 동일함. 근대와 봉건의 싸움. 당대에도 근대국가에 근접한건 영미밖에 없었음. 영미와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었고 현재도 유사함.
이제 봤네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남한이 적화될 뻔했던 사건
1. 1894년 청일전쟁
2. 1904년 러일전쟁
3. 1950년 625전쟁
사라졌지만...😑
원없이 돈을 쓴 두 명이 있다. 양산박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것은 과연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정치 이익적 관점 이외에 실제로 개화라고 불린 서구의 계몽주의를 정말 이해하고 구질서인 주자학과 중화의 질서를 벗어나길 원했을까요? 만약 민족의 대다수가 그러했다면 지금 더 이상 중화의 질서가 없는 21세기초까지 중화질서의 기본 이데올르기인 주자학의 상징들이 엄연히 한국에 곳곳에 있는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국기, 화페, 사회 관습…….등등 을 보면 아직도 한국 사회 깊은 곳에는 19세기나 20세기 초의 그 중화질서 아니 주자학적 세계관이 엄연히 살아있다고 할수있지 않을까요? 물론 역사의 결론을 알고있는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유리했을것이라고 할순있지만 같은 사고 패턴을 갖고 있다면 역사는 반복될겁니다
맞습니다. 아직 근대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대국가를 만들어야지요.
정답입니다. 저 위에 조선이 경제를 생각했다는 논리는 조금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 개국 때 정도전이 모두 기획했는데 그는 2,000년전의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삼는 農者의 나라를 지향했습니다. 상공업을 높이지 않은 것은 명확한데 무슨 반대 논리를 펼치는지 ᆢᆢ
임진일란
일청전쟁
일중전쟁
일러전쟁
한일중회담
한미중 회담
미북회담
조선이 자생적으로 근대국가로 나갈 가능성은 1도 없었다고 봅니다. 성리학이 너무 뿌리가 깊어서 지금 북한 이란 중국하고 똑같아요. 외부세력 개입없이는 불가능했고 그건 카톨릭이 지배적인 남미국가 남부이태리 동유럽 러시아까지도 비슷함. 기성 종교를 안버리면 근대국가로 못갑니다.
님같은 그런 사고방식이야 말로 대단한 역사적 무지입니다. 성리학이 근대화에 걸림돌이라면 기독교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서양이 근대화되었나요? 서양도 조선중기시기(임진왜란-병자호란)에 해당하던때 아직 종교재판이 횡횡하고 그것으로 과학자들이 탄압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갈릴레이가 그 대표적인 예죠. 그나마 성리학은 당시의 기독교보다 과학적 합리성은 우수한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적 가치를 무슨 북한 이란과 비교하려고 듭니까? 북한의 폐쇄적 주체사상으로 국민들을 굶겨죽이고 인권탄압했는데 조선왕조가 성리학으로 인해서 국민들을 굶겨죽이고 인권탄압했나요?
참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맹목적인 서양중심의 근대화사관에 매몰되어 동아시아 유교문화를 비하하는 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식민사관만큼이나 문제가 큰 사관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해당되는 시기에 유럽 주요국가들이 중상주의를 택했다고 그것이 오늘날의 국민경제생활이나 산업기술경쟁력 개념에서 비교할 사안인가요?
중상주의가 근대화로 직결된다라는 것이 결코 아닌데 스페인 포르투갈이 대표적이죠. 이 들 국가는 중상주의 시대때에는 영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선진국이였지만 결국 산업혁명는 영국보다 월등히 늦어져서 서구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합니다.
혹시 기독교를 언급하니 카톨릭이 보수적이라서 서구에서도 선도적인 국가들이 개신교중심이라는 것을 들어서 개신교를 띄우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겠지만 개신교라고 해서 카톨릭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근거가 있나요? 다만 서구국가들이 전통적인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탈피했다라는 것을 중요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카톨릭이던 개신교던 간에.
러시아 보호령이 되었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스탈린 이후 조선에는 러시아인 살고 조선인은 시베리아에
흩어져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근본적으로 하필이면 이시기가 왕조말기에 겹쳐서 왕조말기에 나타나는 시스템의 엉망 붕괴로 인한 혼란으로 뭔가 새로운 추진이 안되는 아주 불운한 시기였다는 것이 우리민족의 액운이죠.
만일 이시기 근대화라는 시대조류가 없다면 조선왕조는 망해도 후속왕조로 이어지거나 공화정으로 바뀌고 그냥 조선왕조는 수명이 다되어 망했다라는 평가로 끝났겠죠.
잘못 아셨는데 을미왜변부터 러일전쟁에 이르는 10년간은 이미 열강들 외셍에 의한 간섭이 대폭 확대되는 시기입니다. 근거로 대한제국 광무개혁이 그렇게 실패작이라고만 볼수 없지만 결국 실패한 것은 이러한 환경을 반영한 것이죠. 진짜 근대화를 위한 아쉬운 시기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부터 1894년 갑오경장 그 사이입니다. 만일 광무개혁이 10년~15년정도 더 빨랐다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봅니다.
성리학이 상공업을 경시해서 조선은 낙후되고 유럽은 중상주의를 채택해서 근대화를 선도했다라는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서구중심적 사관입니다.
과연 조선왕조가 상공업 그 자체를 경시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고려말기 상황을 분석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미 고려말기 신진사대부들로부터 고려시대 상업체제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조선왕조에서 상공업을 억제했다라는 표현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오늘날식으로 따지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을 생각한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경기불안정요인을 유발하는 금융자본주의라던가 투기 착취등으로 인한 돈맥경화증현상으로 나타나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런 행태들을 억제해야 한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컨데 케인즈경제학이 들어섰다면 고전경제학시대로 부터 자본주의가 후퇴했다라고 평가할수 있슬까요?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가 아닌 다소 정제되고 공익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한것이 당시의 성리학적 경제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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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망했다
저것들이 왕이니 황제니 함서
한민족은 앞에서 알장거리고 있다면
찢보다더 복장터질일이다
독립정신을 결여한 조선인들...
광고 좀 아이고
ㅠ 죄송합니다 선생님.
좋은영상 보는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정도는 감내하시는 여유도 필요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박종인의땅의역사 어익후 무슨 말씀을... 저희들이 고마워 해야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