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동이 비석마을이란걸 처음 알게됐네요~~~ 첨에는 왜 무덤 위에 함부로 집을 짓고 사는걸까~하고 의아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까 이해가 되네요~^^; 좁은 땅일지라도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집을 지어서 살아야지요~ 일본인들이 행했던 지난 이야기' 역사라기보다 아미동의 변천사!?' 우리나라의 한지역적인 변천사, 일본인들의 의해 변화된 지역적 특성은 보존 되어야 할것 같습니당😅
1930년대 부산전역의 사설화장장을 한곳으로 모아서 공설화장장을 만든 곳이 지금의 천주교아파트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당시 화장을 꺼려했기 때문에 주로 일본인들이 이용하고 맞은편(지금의 비석마을)에 조성을 했지요. 까치고개라는 지명도 그 당시 생겨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6.25때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부산역 부근에서 피난민들을 관리하던 공무원들이 거적데기를 주면서 비석마을의 그곳에서 거처하라고 했지요. 와보니 공동묘지지만 당장 기거할 곳이 없으니 이 곳에서 기거를 시작하게된 것이 비석마을의 시작입니다. 더 많은얘기들은 다른분이 해주시겠지요 ㅎㅎㅎ
안녕하세요 태준님 현우님 우리 진구 범천2동에서요 아미동 비석마을이 제일 가까운 동네이구요 그 마을이 왜 비석마을 이냐고하면요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시대때 우리 부산에 아미동에서 살다가 죽어가지구요 죽은 장소가요 아미동 비석마을이구요 밤만되면요 일본인 귀신들이 나오는 장소가요 거기 아미동 비석마을이예요^^*
보존해서 후대에 알려야
힙니다
벽화가 멋있다 🤩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공동묘지를 밀어서 집 지었네요. 만약 불 나면 소방차가 진입을 못할정도 ~~ 골목길이 미로처럼 생겨서 한사람이 들어갈 정도.
비석마을 얼핏 들어는 봤는데 어디에 있고 무슨 사연인지 전혀 몰랐네요. 침략자들에게는 자비 관용을 許하지 않으니 그들은 저세상에서나마 참회를 할까 훗날 그들의 후손들은 찾아와서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갈까
여기까지 왔네요~~
아미동이 비석마을이란걸 처음 알게됐네요~~~
첨에는 왜 무덤 위에 함부로 집을 짓고 사는걸까~하고 의아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까 이해가 되네요~^^;
좁은 땅일지라도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집을 지어서 살아야지요~
일본인들이 행했던 지난 이야기'
역사라기보다 아미동의 변천사!?' 우리나라의 한지역적인 변천사, 일본인들의 의해 변화된 지역적 특성은 보존 되어야 할것 같습니당😅
1930년대 부산전역의 사설화장장을 한곳으로 모아서 공설화장장을 만든 곳이 지금의 천주교아파트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당시 화장을 꺼려했기 때문에 주로 일본인들이 이용하고 맞은편(지금의 비석마을)에 조성을 했지요. 까치고개라는 지명도 그 당시 생겨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6.25때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부산역 부근에서 피난민들을 관리하던 공무원들이 거적데기를 주면서 비석마을의 그곳에서 거처하라고 했지요. 와보니 공동묘지지만 당장 기거할 곳이 없으니 이 곳에서 기거를 시작하게된 것이 비석마을의 시작입니다. 더 많은얘기들은 다른분이 해주시겠지요 ㅎㅎㅎ
길이 좁기도 하고 여러 갈래 길이라 헤매겠는데요
역사는 역사에 맡겨야죠.
안녕하세요 태준님 현우님 우리 진구 범천2동에서요 아미동 비석마을이 제일 가까운 동네이구요 그 마을이 왜 비석마을 이냐고하면요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시대때 우리 부산에 아미동에서 살다가 죽어가지구요 죽은 장소가요 아미동 비석마을이구요 밤만되면요 일본인 귀신들이 나오는 장소가요 거기 아미동 비석마을이예요^^*
아미동 비석마을 유명한 곳이죠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의 애환이 남아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일본과의 갈등이 진행중인가봐요
암튼 일본은 우리에겐 백해무익한 존재들입니다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대놓고 한국 조롱하며 난리치는 일본우익에겐 암것도 안하면서
굳이 사과하러 들어온 이들에겐
요때다 싶어 행패 부리는 게 애국일 거라 생각하는 건지.
씁쓸하고 창피하네요.
화장을 햔 무덤이라면 무섭지는 않았을것같아요.
부끄러운 역사도 남겨서 교훈을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