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사 속 숨겨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소름 돋는 미스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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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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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storycreator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발해 역사 속 미스테리들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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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리뷰 및 기타 협업 제의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historyice93@naver.com
    감사합니다 :)

Комментарии • 47

  • @최병택-k9i
    @최병택-k9i Год назад +37

    발해와 신라가 통역사없이 소통이 가능했다는 기록만으로도 발해는 대한민국의 역사이네요.

    • @주주-m1g
      @주주-m1g Год назад

      일본측 기록이라는데 어찌믿누

    • @seahawk7893
      @seahawk7893 Год назад

      발해가 대한민국 역사가 아니라 신라가 중국의 역사죠. 발해의 국민들은 현재 중국 영토에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국인들입니다. 그런 중국인들과 통역사없이 소통이 가능했다는건 신라인들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이죠. 신라왕족은 스스로 한나라때 벼슬살이를 했던 흉노 출신 중국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자처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인의 후예였죠.

    • @정재원-s8j
      @정재원-s8j Год назад +5

      일본이 굳이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누?

  • @kephas7772
    @kephas7772 Год назад +15

    옛날 배울 때는 걸걸중상 또는 대걸중상이라고도 한다고 했었는데, 현재 역사 선생님들은 어찌 가르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고구려의 초기부터 있었던 유기100권이나 영양왕 때 이문진의 신집5권처럼 분명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자체적으로 역사를 기록했을거라 보여집니다. 다만, 멸망 때 항상 궁궐이 전소 되듯이 함께 불타 없어졌을거라 보여집니다..백제의 서기가 그리 전해오지 않듯이 말이죠..하물며 통일된 이 후인데도 신라의 역사서인 거칠부의 국사도 전해져오지 않는 것을 보아도...고서가 전해져 오기엔 침략이 많은 지역인 우리나라에선 힘든듯 보입니다..조선시대 때는 그 전 시대에 비해선 평화로운 시대였기에 비록 두번정도의 큰 외침이 있었지만 특히, 임진란 때 없어질뻔한것을 가까스로 지켜낸것만 보아도 지켜낸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죠...

    • @찰스-x6c
      @찰스-x6c Год назад

      대중상

    • @찰스-x6c
      @찰스-x6c Год назад

      고흥의 서기가 빠졌네 역사를 뒤로 배웠네 이문집 거칠부

    • @kephas7772
      @kephas7772 Год назад

      @@찰스-x6c 백제 근초고왕 때의 고흥의 서기도 넣었는데요...다만, 간단하게 백제의 서기도 멸망과 함께 전해오지 않다는 식으로 조그맣게 지나가듯 넣었지만요...자세히 못 본신듯 하군요

  • @jerzunhanl
    @jerzunhanl Год назад +3

    걸걸중상의 걸은 "크다, 큰 '의 의미를 가진 당시 우리말의 음차 표기였을것이며 큰대자를 쓴 대조영은 뜻표기로 자신의 성을 나타냈을것이라고 개인적인 생각중입니다.

  • @천하승천-i8l
    @천하승천-i8l Год назад +1

    별종의뜻이 파생되다라는 뜻임
    추모 역시 부여별종이라는 기록이
    잇는데 이것으로 보아 파생되다 혹은 그곳의 출신이다 또는 그곳에서
    나왓다 라고 해석하는게 맞음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그러나 발해는 여러 말갈 중에서도 속말말갈이란 기록이 신당서나 금사에 그대로 나옴. 대씨라는 성은 중국식 혹은 고구려처럼 단음 성으로 만들어 쓴거뿐.

  • @Yong-HHH
    @Yong-HHH Год назад +2

    우리가 압록강 넘어 대흥안령 산맥까지 고토를 되찾아야 될 이유

  • @hanbangsabjill
    @hanbangsabjill Год назад +2

    발해가 수도를 여러 곳으로 만들고 자주 옮긴 건 이전 시대인 고구려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됨
    고구려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평양성 천도 이전까지만 해도 수도가 진짜 많이 털렸음 평양성 천도 이후에도 수.당과의 전쟁에서도 평양성 자체가 위험하기도 했었고
    때문에 그 전례를 바탕으로 발해가 유사시 대비를 위해 수도를 곳곳에 만들고 때가 되면 옮기고 옮기고 한 거 같음

  • @휀라디언츠
    @휀라디언츠 Год назад +4

    음... 어차피 조밥인 거란족에게 무너졌으니..... 아쉬울따름...

  • @극락가즈아-z7k
    @극락가즈아-z7k Год назад

    중국이 공개하지 않은 부분때문에 미스터리인게 많은 발해의 역사..

  • @kaki-kaki-
    @kaki-kaki- Год назад +1

    왕 몇명 빼고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 내용 여기서 보네요 백두산 폭발하고 용암으로 인해 다 없어진줄 알았는데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애초에 발해와 백두산은 관련이 없습니다. 신라의 영토가 현재의 길림성까지 뻗어있었을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송나라 기록에서 신라산 얘기가 나오는데, 오늘의 길림성 합달령이라고 합니다.

  • @genejung7810
    @genejung7810 Год назад

    일본에 발해가 사신으로 갔을때 신라사신도 있었는데....신라사신이 일본애들이 말한걸 발해사신에게 통역해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양천허가
    @양천허가 Год назад +5

    결론 : 아는 게 없다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Год назад

      영상속에선 의문만을 제기하는데
      다 그런것도 아니에요 ~~~

  • @jhg7661
    @jhg7661 Год назад

    이해고는 실존인물이에요?

  • @idaltuhoshin6861
    @idaltuhoshin6861 Год назад +3

    권지국사가 왜 왕으로 추대되었는지는 풀렸네요.
    조선이나 고려에도 권지국사개념의 임시왕이 있었지요
    말그대로 임시권력인데 사람이 어떻게 임시권력에만 머물려고 할까요?
    그러니 적통이 있더라도 밀어내고 진짜왕이 되려고한것이겠지요.

  • @이정환-x7p
    @이정환-x7p Год назад +17

    근데 발해가 과연 스스로를 그리 불렀을까요?
    일본사서에는 그들이 스스로를 고려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여럿입니다. 아 고려국이라고 칭했다는거.
    발해는 당이 부르는 명칭이지 저들은 스스로를 고려라고 불렀다는 거... 따라서 발해가 아니라 중대 고려 혹은 대씨 고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 @7mystique
      @7mystique Год назад +4

      초기 발해는 대씨의 진국이라하여 대진국이라 하였고 어느정도 나라가 기틀잡은뒤에는 고려국이라 칭한게 맞습니다 스스로 발해라 칭한적은 당과 사이가 좋았을때 외교사절로 나갔을때 대당 외교에서 발해국왕이라 칭한것밖에 없습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발해는 당나라에서 발해만쪽에 붙은 나라라고 발해국왕으로 붙어준 이름입니다. 지금 학계에서 만든 지도는 발해가 요동만에 겨우 접근한정도로 기재했지만요.

  • @Lsh11-m8o
    @Lsh11-m8o Год назад

  • @제드마로스
    @제드마로스 Год назад

    권진국사는 황태자와 동급

  • @outis6503
    @outis6503 Год назад

    대걸중상 말갈족인데 고구려계 말갈인?여튼 뭐 그래요 ㅋㅋㅋ그럼 발해인들 지배층은 말갈인이 돼야되는데 고구려인이라 여기서"걸"은 말갈족만 쓰지만 고구려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본다 라고 그냥 일단은 그렇게 내렸다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대조영 후예 태시들한테 물어보면 알지도 족보도 있으니. 여튼 발해 미스테리는 왜 망했나 그거 위주로만 나올줄 알았는데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발해 황실은 분명하게 속말말갈입니다. 처음에 구당서에서 고구려 별종이라고 소개 할 뿐이지만 이건 당시 기록을 확인도 없이 바로 붙복하면서 일어난 일인데, 당시 당나라 초반에는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저항세력으로 출현하면서 '고구려 별종인가 보다'라는 아리송한 상태에서 기재한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를 신당서에서 말갈이라고 확인하여 고쳐쓰고, 발해를 더 자세히 알수 있던 요나라나 금나라에서는 속말말갈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고구려 말기에는 속말말갈이 고구려의 제후로 있었다고 보면 말이 됩니다.

  • @seahawk7893
    @seahawk7893 Год назад +1

    발해가 멸망한 이유
    1. 역사서에 기록되었듯이 발해의 왕족 대조영의 가문은 고구려의 별종. 발해 말갈족 이었음.
    2. 말갈족 따위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당나라에 대적하려니 정통성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고구려의 후예. 고구려 계승 의식을 내세움.
    3. 건국 초기에는 당나라라는 강력한 대적자가 있었기 때문에 발해 말갈족의 수장인 대조영 밑에 고구려 유민들이 적극 협력했으나
    4. 당나라와 평화 관계가 구축된 이후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 대씨 일족을 고구려계로 인정하지 않아 심각한 내전이 전개 됨
    5. 결국 거란의 침입에 손도 제대로 못써보고 멸망

    • @남진혁-v6s
      @남진혁-v6s Год назад

      개소리
      말갈인들은 고구려인들보다 훨씬적었다. 또한 당나라는 907년 멸망하지만, 대조영은 719년에 죽었고, 기록상으로는 대무예 때 당나라와 전쟁했다. 또한 실전된 흠무-인선 까지 전쟁이 안일어났다고는 보장 못함 그리고 고구려 멸망 당시 인구수는 69만호 즉 360만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호서권의 인구수랑 비슷하지만, 고구려 영토가 북한 지방, 요동, 남만주 지방에 위치한 것을 기억하면 360만 인구가 영토에 흩어져 살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동의합니다. 기록이 없어서 확신할수 없지만, 발해가 계속 국호도 여러 바꾸고 수도도 자주 옮긴거 보면 정체성이 망할때까지 확립이 되지 못하고 구)고구려 세력과 마찰이 많았을겁니다.

    • @mingkisu8809
      @mingkisu880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짜 개소리 ㅋㅋ 구당서 신당서는 읽고 글 쓴거?

    • @seahawk7893
      @seahawk789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mingkisu8809 거기에도 고구려인이 아니라 고구려의 별종. 즉 고구려와 별개의 종족인 말갈족이라고 나옵니다만? 혹시 뇌가 빡대갈이심?

  • @별행운이
    @별행운이 Год назад

    1등 ~ 😊

  • @TV-bq1ls
    @TV-bq1ls Год назад +2

    실례를 감수하고 제가 아는 사실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기록에 고구려는 선비족과 말이 통했다고 나옵니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고 거란도 비슷한 일족입니다. 그리고 동예 옥저도 고구려와 말이 통했다고 기록이 나옵니다. 즉 옛 동호가 흉노족에게 패해서 흩어지면서 각자 도생했는데 그 일족들이 선비족 오환족 거란족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이고 모두 말이 통하는게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고려를 침공한 거란이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진짜 나라라고 고려에 말하지요. 하지만 동쪽 끝에 치우쳐 있던 읍루는 그들과 언어와 풍속이 완전 달랐다고 기록에 나옵니다. 말갈은 읍루의 후예들이지요. 그리고 백제와 신라 고구려가 언어가 같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백제와 신라도 정확히 모름. 고구려와 신라는 언어가 달랐을 확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왜냐면 동이족을 소개할때 옥저 동예는 고구려와 언어가 같다고 언급하는데 백제와 신라를 소개 할때는 그런말이 없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의 후예들인데 발해는 당 현종에게 조상의 말을 잃어 버린 당나라를 모욕하기 위해 외교문서를 한자가 아닌 발해어 즉 선비족말로 보내고 선비족말로 회신을 요청합니다. 당황한 현종은 조상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전국에 수배하는데 다행히 선비족의 후예였던 이백의 지인이 선비족말을 할 수 있어 겨우 답신을 할 수 있어서 체면을 살릴 수 있었죠. 발해는 백성들은 말갈족이 많았지만 왕족인 대씨와 옛고구려의 왕족(왕비 배출 가문)과 고구려 귀족들로 통치 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설령 대조영이 말갈인이라 해도 고구려말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례로 일본의 승려가 발해를 지나가며 적은 내용에는 "이상하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 말갈인인데 촌장은 항상 고구려인이고 그의 지휘아래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해와 신라의 사신이 통역없이 말을 했다는 말을 두 나라 언어가 같았다 라고 유추하면 안되는게 예를들어 한국인과 미국인이 일본에서 만나서 둘다 한국어나 일본어 또는 영어로 얘기하면 통역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Год назад

      여진족( 만주족) 과 조선어가
      주+목+ 술 구조로
      구조는 매우 같다는것도 동감합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Год назад

      다른 사료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말이 통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물론 발해와 일본의 기록만 보고 통역관이 없었다는 접근은 너무 안일한거 같습니다. 충분히 많은 설명들을 서신에 한문으로 설명하고 또 답장을 서신으로 옮겨 담아 보내는데, 딱히 온 사신들에게 많은 말은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 @불지옥-v9y
    @불지옥-v9y Год назад

    진은 중국주역서 동쪽을 의미합니다 즉 진국공은 동쪽나라왕 이란뜻인데 이것은순전히 중국이 하대하기위해 붙힌이름일뿐 대조영이 나라이름을 진국으로 정했다는건 말도안됩니다.

  • @찰스-x6c
    @찰스-x6c Год назад

    대종영씨보다 남북국시대란 아니다 통일신라를 알자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Год назад

      남북국 시대가 맞아요.
      발해는 고려를 위시해 국명을 썼고
      신라는 안동도호부 자리를 인정을 하고
      두둔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