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99] 증도가 강설 13 산넘고 바다건너 스승을 찾는 까닭은? 1968년 2월 7일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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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окт 2024
  • 38.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遊江海涉山川(유강해섭산천)하야 尋師訪道爲參禪(심사방도위참선)이라
    강과 바다를 건너고 태산과 개울을 넘어서 공부하러 다닌다는 말입니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고 저절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천리만리를 멀다 하지 아니하고 넓은 바다를 넓다고 하지 않으며 높은 산 넘기를 겁내지 않고 스승을 찾고 도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어떤 고생이 있더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대법을 위하고 불법을 성취하기 위해서 몸을 돌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 스님들이 공부를 위해 이와 같이 몸을 돌보지 아니한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고자 합니다.
    설봉(雪峯)스님이라면 천하에 유명한 분입니다.
    ‘세 번 투자산에 가고 아홉 번 동산에 갔다[三到投子九至洞山]’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투자산과 동산과의 거리는 오륙천 리나 되는 거리인데 그런 먼 길임에도 세 번이나 투자를 찾아가고 아홉 번이나 동산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멀고 먼 길, 아무리 험하고 높은 산일지라도 멀고 험하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도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설봉스님은 암두(巖頭)스님과 흠산(欽山)스님과 더불어 세 분이서 항상 도반이 되어 함께 다녔습니다. 설봉스님은 어디를 가든지 공양주만 하여서 쌀 이는 조리를 늘 가지고 다녔고, 암두스님은 어디를 가나 항상 채소밭을 가꾸는 원두(園頭)만을 보아서 괭이와 호미를 늘 가지고 다녔으며, 흠산(欽山)스님은 어디를 가나 바느질만 해서 실뭉치와 바늘을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셋이서 어느 처소에 가든지 설봉스님은 공양주만 맡아서 대중의 공양을 지어 올리고, 암두스님은 채소밭을 가꾸어서 대중의 반찬을 해 올리고, 흠산스님은 온 대중의 바느질이란 바느질은 전부 도맡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셋이서 도반을 지어 천하를 다니면서 공부하여 마침내 세 분이 다 공부를 성취하여 후세에 모범적인 대도인(大道人)들이 되었습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보면 이 세 분 스님들의 무서운 법문들이 많이 나옵니다.
    선종사에 있어서 최초로 대중을 많이 거느린 스님이 설봉스님인데 평생에 늘 1천5백 명 이상의 대중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선종 초기로서 중간에 와서는 더러 이삼천 명의 많은 대중을 거느리는 총림도 있었지만 초기에는 그렇게 많이 모여 살지를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선이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선만 전문으로 하는 처소도 거의 없었습니다.
    설봉스님은 1천5백 명 대중을 보고 늘 하시는 말씀이, “너희 1천5백 명 대중이 모두 나의 이 조리 속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무슨 뜻이냐 하면 복혜쌍수(福慧雙修)를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참으로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공양주를 많이 했기 때문에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이런 복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한편으론 ‘한번 뛰어넘어 여래지에 들어간다’는 최상승의 공부를 바로 지어 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나 중생들을 섭수하는 방편으로서 중생의 생멸복인 추복(麤福)이 아닌 청복(淸福)을 설봉스님이 공양주를 하며 닦아 가듯이 닦아 가야만 원만한 법을 성취할 수 있다고 예전 큰스님네들이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강과 바다를 건너고 산천을 밟고 다녀도 설봉스님과 같이 발심해서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 사상을 가지지 않는다면, 산이나 보고 물이나 구경하는 유람꾼이지 참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유람꾼이 되지 않고 진정한 구도자가 되려면 설봉스님처럼 법을 위해 몸을 잊어버리는 철두철미한 발심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요사이 발심해서 공부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부가 유람꾼들뿐입니다. 해제(解制)하기가 바쁘게 “이번은 어느 산을 구경할까? 어느 섬을 가 보고 싶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산이나 놀러 다니고 물 구경이나 하는 사람들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어야 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한가로운 유람꾼이 되어서 어느 시절에 대도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공부하는 근본 자세는 나[我]라는 생각을 버려 버리고 제방으로 지도자를 찾아가서 철저한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지,
    “너나 나나 똑같은데 네 말 들을 것이 뭐 있나!”하는 아만으로 가득 차 공부할 것 같으면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증도가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99] 증도가 강설 13 산넘고 바다건너 스승을 찾는 까닭은? 1968년 2월 7일 법문
    백련불교문화재단 sungchol.org/
    성철선사상연구원 www.songchol.co...

Комментарии • 1

  • @재훈-o9g
    @재훈-o9g 4 дня назад

    소제목이 한개씩 밀리는 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