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운장KOR 물론 역사를 기반으로 재현된 3D 영상이지만 글쓰신분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성안 병력의 수십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10일 을 가까이 버텻는데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겟습니까. 그리고 함락당한뒤에 성안에 있는 모든 군인, 백성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일본군이 학살 하였습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대 별로 그런건 중요하지 않을것 같아. 임진왜란에서 정말 중요한 건 이미 일본은 그 당시에 탈 아시아급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는거야. 세계사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아산들와나 전투에서 줄로족이 영국군 2000명을 도륙을 내버려 여기서 세계적으로 중요한건 영국의 패배가 아니라. 영국문명이 강대하고 그 문명의 강대함이 다른 대륙의 식민지건설하기 위해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수 있을 정도이고 그들의 침략으로 고립된 각각의 문명을 깨우고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는 역할을 수행또는 시작했다는거잖아. 이러한 역사의 흐름이 현대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거고 일본 같은 경우에도 보자. 1592년에 15만명의 전투 병력을 바다 건너 부산에 상륙시켜 당시 일본의 인구를 2700만명으로 추산하는대 현재 인구 5200만명인 한국이 바다 건너 어떤 해외에 15만명을 파견 할 수 있나를 생각해보면 단지 병력 파견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임을 알 수 있어. 더구나 농업 국가잖아.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될 수십만명의 노동력이 식량생산에 치중하지 않아도 이미 잉여생산물이 존재했다는거지. 그런대 15만명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해 대량의 선박을 건조해야하고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당연히 벌목해야해 15만명과 각종 모든 과정에서의 인부들이 먹을 식량을 제공해야하는대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명이야. 한양인구가 먹는 식량보다 더 많은 식량을 일본 본토에서 이동시킬 도로망 그리고 그걸 다시 대미도 옮기 해로 다시 그걸 부산항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건대 생각만 해도 엄청나지 않니? 그리고 이제는 갑옷과 무기를 제작해야해. 15만명 분의 무기를 대량생산해야하며 화약과 무기를 비와 바닷물에 젖지않게 부산까지 운송을 해야해. 그걸 전쟁이 끝날때까지 반복한거지. 우리가 실제로 임진왜란을 통해서 봐야할 것은 이미 일본의 상당한 수준의 내적 축적과 인프라건설을 이루어 냈다는거지 이게 자연스럽게 메이지유신으로 연결되며 서구 문물을 빠르게 습득하며 다시 강대국으로 들어서는거지. 그 거대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내고 경제가 흔들렸다는 것만 생각해도 일본이 굉장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AF-qk8ty 아니 무슨 내용이 핵심이 없고 원문 글쓴사람 말한것이랑은 연결이 안되는데... 그러니깐 말하려는게 일본이 존나 쩐다 이건데 임진왜란 진것과 무슨 관련이있다는 것인지. 님이 말한대로라면 경제력 쩌는 일본이 전쟁을 이기고도 남았어야 되는데 왜졋을까요? 일본이 대단한건 대단한거고 진주성 2차 공략에서 막심하게 피해입어서 전쟁을 불리하게 이끌고 간것도 사실임.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여유가 넘쳐서 전쟁을 일으킨것이 아님. 전쟁 준비하니라 수많은 남자들을 노역에 동원했고 무기만든다고 백성들한테서 농기구등 철로된 물건들 다 뺏어감.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것은 일본 통일을 완성하기 위함임. 태합 자리를 어부지리로 차지한 본인 입지를 굳세게 하려고 영혼까지 모아서 전쟁을 일으킨것임
@@davidhan9979 그대의 주장도 틀린건 아니지만 역사를 보면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국가적으로 선빵으로 전쟁을 일으킨건 사실입니다.... 전쟁은 결국 군수지원싸움이고 이것은 돈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15~16세기 최고 은생산 국가는 일본인것은 맞습니다... 다만 경제력에 토요토미의 야욕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전쟁은 국가 즉, 정부가 일으키나 희생을 당하는 것은 그나라의 백성, 국민들이지요........ 전쟁이라는 행위로 서로 죽고죽이는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저 생활환경, 문화가 다른 사람대 사람일뿐이지요....
임진왜란의 3 대 영웅은 이순신, 황진, 정문부입니다. 황진이라는 영웅이 2차 진주성 전투의 주인공이에요. 다른 의병장들이나 관군 장수들은 노장들이었어요. 황진 혼자서 일본군 내놓으라하는 9 장수들과 무쌍을 찍은 전투가 2 차 진주성 전투...... 시체 더미에 숨어있던 저격병에게 저격만 안 당했어도 진주성을 지켜냈을 지 모릅니다.
황진이야 말로 이성계랑 척준경 다음으로 보우, 소드 마스터였음. 해군에서는 이순신, 육군에서는 황진이라 할만 했음. 진주성 전투때 전부 노장들이 지휘했고, 황진이 야전사령관으로 혼자 무쌍찍고 돌아다님. 임진왜란때 다죽어가던 조선을 육지에서 살린 진짜 대단한 분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까움.
이치 웅치 전투에서 육전으로 무상을 찍은 황진 장군이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셨지만 전사한 적의 숫자를 헤아리려 성 벾 밖으로 고개를 내미시다가 적탄에 맞고 전사하시는 바람에 조선군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합니다 황진 장군의 전사가 아니였으면 일본군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싸움에 졌지만 일본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일본이 물러가게 하는 결정적인 전투였으니 두려움과 공포를 직면하고도 용맹하게 싸운 조선의 전사들이 숭고함이 깃든 실로 위대한 전투였다고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맘,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네요. 2차 진주성 전투는 왜가 물러간것이 아닙니다. 왜에 진주성이 무너졌고 백성들은 학살을 당했습니다. 도요토미가 명과의 협상을 하는 도중에 유리하게 이끌려고 기선제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죠..그리고 1차 진주성의 치욕을 되갚기위함도 있습니다.
이때 권률장군의 병력 1만명이 진주성에 들어와달라는 청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가서 같이 싸워줬으면 결과는 바뀌었을수도 있고 무고한 몇만명의 백성이 무참하게 살해되어 죽지 않았지싶습니다. 권률장군의 후손으로서 욕되이면 안되지만 아쉬운건 어쩔수 없네요... 진주성이 공격받을때 증원조차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군요. 2차 진주성전투의 지휘관은 황진 장군님이시죠. 김천일장군은 진주성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진 장군님과 함께 지휘관(의병장)을 따라 목숨을 바친 의병분들과 의병들과 최후까지 함께 한 김천일 장군님 모두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을 하다 가신듯 해 더더욱 숙연한 마음입니다.
황진 장군이 정말 잘막았는데 황진장군 저격 당해 죽고 성이 무너졌다죠. 이렇게 잘막을 줄알았다면 곽재우등도 성안에서 함께 싸웠으면 막아낼뻔했습니다. 성은 점령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성하나 함락하는데 전력의 40프로가 갈려나가버린 왜군은 전라도 진출을 포기하게 됩니다. 나라를 구한 전투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전투에서 돌아가신 6만명의 순국선열들에게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와 진짜 일본군은 거의 뭐 전설이다. 16세기 후반에 화약무기로 무장한 병사를 바다 건너 원정을 보내고 10만명의 전투병력을 집결시킬수 있다니 저시대에 중무장한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바다건너 원정을 보내고 그 병력에 지속적인 보급을 진행 할 수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될까? 지금도 굳이 따지면 미러중 정도 밖에 없을 것 같은대? 바다를 건너 지속적인 보급을 하기 위한 경제력, 농업 생산력, 무기 생산력, 조선술, 벌목 능력, 지방 행정 조직, 야금술, 항해술등이 세계 최정상급이었다는거잖아. 15만 병력의 무기와 식량을 조달하려면 사실상 보급선이 일본 본토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한번은 와야 할텐대. 와 진짜 넘사벽이다.
그정도는 아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아케치미쓰히데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유투브 찾아봐라. 당시 일본 전력이나 경제력에 대해 이야기 한게 있다. 무슨 최강국이냐. 오히려 경제력은 명나라지. 봉건제 형태를 유지중인 일본이 중앙집권 국가에 맞먹을수 없다. 더 공부해라.
@@정충영-d5w 1인당 GDP는 동북아 최강 맞아. 물론 경제는 명이 비교도 안될만큼 큰대 인구가 당시 1억 5천만명에 달하는 명과 인구 3000만명 수준인 일본은 차이가 있지 하지만 당시 일본의 경제력에 대한 자료를 하나 줄게. 1590년 조선의 쌀 생산량은 240만톤이고 동시기 간토 평야의 쌀 생산량이 200만톤이야.
명군은 일본이 명나라 땅에 안들어오면 임무성공임. 이미 휴전협정 진행중이던 시기라 남에 나라에서 자기 부하들 목숨잃을 이유는 없었지. 그리고 당시 도원수 권율이 지휘가능한 조선육군 규모가 2~3만 정도밖에 안되던 시기라 명군 지원없이 단독으로 지원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음.
그러고보니 진주성전투는 1~2차 모두 사료적으로 일별전투상황이 기록되있기도하고 영화로 충분히 만들만한 소재인데도 영화가 안나오네.. 안시성전투같이 사료적 영역이 모자라서 당태종이 눈깔이 구멍났다더라같은 허구내용에 킹덤오브헤븐 전투신 잔뜩 배낀 거 할바에 이런게 좋을거같은데 1차전투는 승리했지만 정말 결사항전이었고 김시민은 전설로 산화했고.. 2차전투는 패하긴했지만 거의 10배가까운 병력 차이에 일본군은 이름난 장수들 전부 참전해서 밀어붙인 양쪽합해서 10만이상이 붙은 대전투여서 스케일면에서도 크고..
참으로 독하게, 끈질기게, 마지막 순간까지 결사항전, 용맹분투하신 선조님들께 다시한번 깊은 존경심과 경애감을 느낍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호국헌신 영원불멸!
@@가-h4v
틀니 딱딱
학사전 그 상황 전투회고록에 팔다리 잘리고 눈한쪽이 멀다하여 끝까지 목숨을 다하며 싸웠다 하더군요 진짜 보통 사람같으면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고통과 공포속에서 버티고 버티고 의지 하나로 끝까지 싸웠던 선조 분들께 너무나 존경 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거 삼디그래픽인데 진짠줄 아나보네ㅋ
@@관운장KOR 물론 역사를 기반으로 재현된 3D 영상이지만 글쓰신분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성안 병력의 수십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10일 을 가까이 버텻는데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겟습니까. 그리고 함락당한뒤에 성안에 있는 모든 군인, 백성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일본군이 학살 하였습니다.
@@가-h4v 있음 영화 "택시운전사"
눈물이 핑도네요...감사합니다
몇년전 가족여행으로 진주성 갔다가 관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업데이트 되었나보네요..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 보기 좋내요. 봄쯤에 날 좋을때 한번 들러보는거 추천드립니다^^
저기 들어가서 싸운 분들 호남사람들이 많았음.. 김천일도 나주출신. 논개의 부군 최경회도 화순출신. 황진은 남원출신. 논개는 장수출신.
논개는 장수가 아닌 진주의 관기
최경희장군 2번째 부인입니다 출신장수맞고요 남편최경희장군께서 돌아가신것을알고 기생으로 적을속이고 침투하신것입니다
언양김씨 김천일 장군님 지금 정치인놈들이 지역주의 만들어 지들 기득권 지키는것입니다! 우리는 저때처럼 뭉쳐야됩니다! 친일파 윤석열이 처단합시다!
황진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라
대단하신 분이다
ㅉㅉ 들배운넘 아무나한테 반말짖걸이네
황진 신각 정문부 곽재우 김시민 송상현 정담 정발 정걸 선거이 정기룡 와 진짜 임진왜란 당시 인재풀은 어마어마한듯.
이런 컨텐츠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극은 제작비의 한계가 있다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고증 제대로 된 갑옷 입힌다고 돈이 더 들어가는것도 아니고...우리나라는 이상하리만큼 고유 문화나 역사의 컨텐츠화가 적은거같음
임진왜란을 공부하며, 황진장군을
알게되었습니다.
바다에 이순신이라면 육지는 마땅히
황진장군입디다.
오랜세월이 지나 많은것이 잊혀졌지만 그때 모든걸 내놓고 싸웠던 장군. 병사. 민간인.부녀자.....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비극을 잠시생각 하니..지금도 입으로만 애국하는 인간들이 왜 이리 많은지....전쟁나면 다 도망 갈것들...
임진왜란 영웅중에 영웅 황진장군!
이순신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영웅!
이잣글을 원균 옹호론자들이 싫어합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폭우에 활시위가 늘어지고
5천 대 정예 왜군 10만 명
진주성이 무덤되었고
남강이 붉은 핏물로 물들고
1차승전때와는 달리 의병의
지원이 전무
김시민장군없이 치룬 2차전은
어마 어마한 전투였죠
폐전을 예상하고 성안으로 안들어온 의병장, 의병들이 많이있지요
호남으로 진입하려는 창구를 수호하기위해 결사항전하신 관군과 의병장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기 계실 줄 알았읍니다 ㅋ
@@Orang_Fantasy 엇 오랜만이네요 ㅋㅋㅋ 요즘 현생이 많이 바빠서 채널방문이뜸했습니다 ㅜㅜ
@@Gersang006 자주 놀러 오십쇼. 요즘 만전의 힘을 다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ㅎ
국민들이 2차 진주성 전투에 대해서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황진 장군님 영화화 한다는데 기대됩니다
이 땅을 지키기위해 피와 목숨을 바친 선조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언어 고증이나 제대로해라 너네 찌그러진 역사 대단한거라곤 거의 없는게 어리석다. 세뇌당했나.
君が代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巌となりて苔の生すまで
황진장군의 8일간의 무쌍이 임진왜란 최고의 전투지.
진주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지나게 된다면 꼭 들러 위령비에 참배하겠다. 조선은 수만명의 남녀노소까지 모조리 몰살당한 이런 참상을 겪고서도 바뀌지 못하고 다시금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감사합니다..
8일간 일본군의 공격을 이겨냈지만 황진장군이 저격수에 의해 돌아가시자
다음날 진주성이 함락되었죠
이때의 피해로 일본군의 힘이빠져 정유재란때까지 휴식기를 가질정도로
일본군의 피해가큰 전투였고
황진 장군이 돌아가지 않고 승리했다면
왜란이 끝날수도 있는 전쟁이었죠
내가 생각을 해봤는대 별로 그런건 중요하지 않을것 같아.
임진왜란에서 정말 중요한 건 이미 일본은 그 당시에 탈 아시아급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는거야.
세계사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아산들와나 전투에서 줄로족이 영국군 2000명을 도륙을 내버려 여기서 세계적으로 중요한건 영국의 패배가 아니라. 영국문명이 강대하고 그 문명의 강대함이 다른 대륙의 식민지건설하기 위해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수 있을 정도이고 그들의 침략으로 고립된 각각의 문명을 깨우고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는 역할을 수행또는 시작했다는거잖아.
이러한 역사의 흐름이 현대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거고
일본 같은 경우에도 보자. 1592년에 15만명의 전투 병력을 바다 건너 부산에 상륙시켜 당시 일본의 인구를 2700만명으로 추산하는대 현재 인구 5200만명인 한국이 바다 건너 어떤 해외에 15만명을 파견 할 수 있나를 생각해보면 단지 병력 파견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임을 알 수 있어. 더구나 농업 국가잖아.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될 수십만명의 노동력이 식량생산에 치중하지 않아도 이미 잉여생산물이 존재했다는거지.
그런대 15만명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해 대량의 선박을 건조해야하고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당연히 벌목해야해 15만명과 각종 모든 과정에서의 인부들이 먹을 식량을 제공해야하는대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명이야. 한양인구가 먹는 식량보다 더 많은 식량을 일본 본토에서 이동시킬 도로망 그리고 그걸 다시 대미도 옮기 해로 다시 그걸 부산항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건대 생각만 해도 엄청나지 않니?
그리고 이제는 갑옷과 무기를 제작해야해. 15만명 분의 무기를 대량생산해야하며 화약과 무기를 비와 바닷물에 젖지않게 부산까지 운송을 해야해. 그걸 전쟁이 끝날때까지 반복한거지.
우리가 실제로 임진왜란을 통해서 봐야할 것은 이미 일본의 상당한 수준의 내적 축적과 인프라건설을 이루어 냈다는거지 이게 자연스럽게 메이지유신으로 연결되며 서구 문물을 빠르게 습득하며 다시 강대국으로 들어서는거지.
그 거대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내고 경제가 흔들렸다는 것만 생각해도
일본이 굉장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AF-qk8ty 아니 무슨 내용이 핵심이 없고 원문 글쓴사람 말한것이랑은 연결이 안되는데... 그러니깐 말하려는게 일본이 존나 쩐다 이건데 임진왜란 진것과 무슨 관련이있다는 것인지. 님이 말한대로라면 경제력 쩌는 일본이 전쟁을 이기고도 남았어야 되는데 왜졋을까요? 일본이 대단한건 대단한거고 진주성 2차 공략에서 막심하게 피해입어서 전쟁을 불리하게 이끌고 간것도 사실임.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여유가 넘쳐서 전쟁을 일으킨것이 아님. 전쟁 준비하니라 수많은 남자들을 노역에 동원했고 무기만든다고 백성들한테서 농기구등 철로된 물건들 다 뺏어감.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것은 일본 통일을 완성하기 위함임. 태합 자리를 어부지리로 차지한 본인 입지를 굳세게 하려고 영혼까지 모아서 전쟁을 일으킨것임
@@davidhan9979 그대의 주장도 틀린건 아니지만 역사를 보면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국가적으로 선빵으로 전쟁을 일으킨건 사실입니다....
전쟁은 결국 군수지원싸움이고 이것은 돈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15~16세기 최고 은생산 국가는 일본인것은 맞습니다...
다만 경제력에 토요토미의 야욕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전쟁은 국가 즉, 정부가 일으키나 희생을 당하는 것은 그나라의 백성, 국민들이지요........
전쟁이라는 행위로 서로 죽고죽이는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저 생활환경, 문화가 다른 사람대 사람일뿐이지요....
그래서 뭐? 그렇게 따지면 2차대전때 러시아, 중국, 미국이랑 맞짱뜬 일제시대가 훨 대단하지. 그리고 나쁜짓한 놈이 집이 잘살든 힘이 쎄든 잘생겼든 그게 뭐가 중요한데? 뭔 시덥쟎은 걸로 혼자 잘난척한 것도 아니고 ㅉㅉ
@@AF-qk8ty /글킨 한데 여기서 주제는 진주성이 또한번 수성에 성공했다면 정유재란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점인데요? 수비 성공이냐, 실패냐 문제일뿐.
김천일 장군님과 황진 장군님 병사분들과 시민분들께 진심으로 존경함을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민사회가 아닌데 시민? 백성들이겠죠
최후까지 싸우다 같이 투신하신 최경회장군님도 계시 답니다..
인물 하나 하나 묘사에 신경 써주셨다면 좋았을것 같습니다
1:21 황진 장군이 진짜 전설적인 존재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너무 아쉽습니다. 한번만 검색해보셔도 우리나라에 이런 말도안되는 장수가 있었나 생각되실겁니다 !
이기든 지든 죽을 걸 알면서 결사항전 한다는게 리스펙스러운거지
권율 곽재우장군등 승산없다생각하고 진주성에 들어오질않음 외세에서 지원해줬더라면ㅜㅜ
그러고싶어도 조선군이 여력이 없어도 너무없었고, 왜군은 전략적 목적이 아닌 진심 피의 복수를 위해 과잉전력을 투입했습니다ㅜ
곽재우 장군등 외부에서 5000명만 지원같어도 남강 배수진으로
버틸수는 있지않았나 생각해봅니다ㅠ
지금 화기중대 한부대만 있었어도..
예전에 진주성을 지원하러 왔다가 진주성에서 만반에 대비를 갖춘 김시민 장군은 지원군이 들어오면 지휘체계가 무너질까봐 입성을 거부했는데 그 뜻을 이해하고 성 밖에서 진을 쳐 항전해 전멸한 부대의 장군의 이름을 아시는 분 있나요?
유숭인장군
@@서승완-w6x 감사합니다
@@서승완-w6x 서승완 장군
당시 경상우병사 유숭인 장군인듯
최고에요 감사해요
황진장군은 맹장이지요 저도 처음에 모르다가 알고보니 ㄷㄷ하더라고요. 헬조선이라고 무시 했는데 임란시기에 일당백 맹장 분들이 조선측이더라고요
눈물이난다... 우리 조상님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김시민 장군님이 두려웠으면 10만 대군과 히데요시의 올스타급 장수들로...
당시 후임목사이던 서예원을 제외하고는 죽을지 알고
성에 들어갔다죠.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듯.
임진왜란의 3 대 영웅은 이순신, 황진, 정문부입니다. 황진이라는 영웅이 2차 진주성 전투의 주인공이에요. 다른 의병장들이나 관군 장수들은 노장들이었어요. 황진 혼자서 일본군 내놓으라하는 9 장수들과 무쌍을 찍은 전투가 2 차 진주성 전투...... 시체 더미에 숨어있던 저격병에게 저격만 안 당했어도 진주성을 지켜냈을 지 모릅니다.
"내로라하는"
@@현이성-q6i ㅋㅋㅋㅋ 내놓으랗ㅋ
감사합니다
황진이야 말로 이성계랑 척준경 다음으로 보우, 소드 마스터였음. 해군에서는 이순신, 육군에서는 황진이라 할만 했음. 진주성 전투때 전부 노장들이 지휘했고, 황진이 야전사령관으로 혼자 무쌍찍고 돌아다님. 임진왜란때 다죽어가던 조선을 육지에서 살린 진짜 대단한 분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까움.
황진장군은 진주성에 구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나 김천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곽재우도 버린 진주성에서 장렬히 전사하심 ㅠㅠ
진주성은 황진이 원탑아닌가요?
맞아요~
논개 ..아닌가요..?
@@scoutindian9182 황진장군
맞습니다 맞고요
개인적으로는 황진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이순신과 황진 이둘이 임진왜란에 투탑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황진장군 진급속도도 어마어마합니다
ㅠㅠㅠㅠㅠ
존경합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이치 웅치 전투에서
육전으로 무상을 찍은 황진 장군이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셨지만
전사한 적의 숫자를 헤아리려 성 벾 밖으로 고개를 내미시다가 적탄에 맞고 전사하시는 바람에
조선군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합니다
황진 장군의 전사가 아니였으면
일본군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싸움에 졌지만
일본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일본이 물러가게 하는 결정적인 전투였으니
두려움과 공포를 직면하고도 용맹하게 싸운 조선의 전사들이 숭고함이 깃든
실로 위대한 전투였다고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맘,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네요. 2차 진주성 전투는 왜가 물러간것이 아닙니다. 왜에 진주성이 무너졌고 백성들은 학살을 당했습니다. 도요토미가 명과의 협상을 하는 도중에 유리하게 이끌려고 기선제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죠..그리고 1차 진주성의 치욕을 되갚기위함도 있습니다.
지휘관을 노리는 왜군의 저격 숫법은 이미 전국 시대에도 많았는데 김시민 장군도 그렇게 가더니만 황진 장군도,,, 매우 아쉬운 대목이지요.
@@johnchae3871 정확히는 진주성을 함락해서 도요토미의 지시를 이행했지만 이때 입은 피해가 심각해서 전라도로 진격하는 시늉만 하다가 퇴각해서 정유재란때까지 부산에 기어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죠
비록 패했지만 임진왜란 중 일본군에 최대의 피해를 준 전투였습니다...
진주성 전투뿐만아니라 호남으로의 진격을 막았던 수많은 전투들이 당시 조선수군의 큰힘이 되었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죠
이때 권률장군의 병력 1만명이 진주성에 들어와달라는 청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가서 같이 싸워줬으면 결과는 바뀌었을수도 있고 무고한 몇만명의 백성이 무참하게 살해되어 죽지 않았지싶습니다. 권률장군의 후손으로서 욕되이면 안되지만 아쉬운건 어쩔수 없네요...
진주성이 공격받을때 증원조차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사 황현필선생님 진주대첩 강의나
창원kbs특집 진주대첩 1,2편
보시면 또다른 지식이 쌓입니다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편에도 자세히 나오고요
강추드립니다
어 나도 황현필 선생님덕분에 많이 알게 됨 ㅎㅎ
@@다다닷-u9g 황현필은 좀
@@다다닷-u9g 그사람 국뽕 강사아닌가?
현필이는 걸러야지 ㅋ 그 약간 쥐새끼 닮은 그놈하고 비슷한데 이덕일 같은 놈이지
좌파강사
3대 대첩중에서도 끈질기게 싸우고 힘들게 싸웠던 전투가 진주성전투가 아닌가 싶다. 물론 행주전투도 3천명이라는 극열세의 숫자로
왜군 대격파 시켰지만
차이가 있다면 행주대첩은 단하루동안의 전투이고
1,2차 진주성전투는 6~8일에 걸친 전투였으며 2차전의경우 임진왜란 최대규모의 전투로서 무려 20배나 많은 일본군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셨습니다
비록 패했으나 긍지를 가질만한 전투이지요
@@부드러운카리스마-x8b 그렇죠. 패했지만 일본이 이겼지만 진 전투라고 봅니다
우리 조상님이시다 ㅜ ㅜ
황진 장군은 어디에..?
이 영상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유튜브에도 올려줬으면 좋겠는데
아니 박물관에서 만든 3디 영상에 군인들 복장 고증이 왜 이렇습니까...........
2차 진주성전투
-조선군
백성 70000명 군인 5000명
피해: 전원몰살
-왜군 90000명
피해: 4~5만명 전사
왜장 일부전사
전략: 왜군의 일방적인 인해전술
진주 박물관은 진짜 대단 하네~
토탈워 시리즈의 게임엔진으로 만들면 훨씬 더 실감나게 만들었을텐데...........
영상 제작한건 좋은데. 박물관에서 제작했으면 재미보다는 고증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니.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김천일 의병장님은 60세의 나이로 왜군과 맞선 위대한 위인입니다.
당시에 60세면 이미 노인중에 노인이었는데도 대단하신 분이죠.
저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은 다 죽고 외면 받고 저 전투 반대한 장군들만 다 떠받들여짐 참고로 진주성에 사람들 엄청 몰려 있었는데 장수들 다 지원 안감
이거 유튜브로는 못보나요?
2021년 영상 맞나요?
모두다 소중하고 조명 받아야 하지만 황진장군은 정말 우리 역사가 다시 돌아봐야 한다! 황진장군이 잘막다가 전사하시고 전세가 기울어 졌다!
_잘만들었다_
_엄지 척 👍_
압도적인 병력차에 질걸 알면서도 싸운게 대단한거지.
@@가-h4v
한글도 못배웠노?
차라리 일본성 같은 중소규모의 성에 들어가 밀집대형으로 버텼으면 버티지 않았을까?
@@얌얌쩝쩝-z6z 어차피 일본군의 목표는 진주성이였고 만약 성버릴거면 그냥 관군 말 듣고 후퇴하지
그냥 전략상 실패한거지 뭐가 대단 ㅋㅋㅋ이겨야 대단한거지
@@superweeds1 전략상 실패했다고 후퇴하면 달라지냐? ㅋㅋㅋㅋ 글고 고작 몇천 군사로 왜군 대격파한게 전설인거지 진주가 과거에 교통적으로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역사시간에 안배웠냐? 진주 뚫리면 병력 분산되서 더 막기 힘들어지는데?
김천일 장군은 몸도 약하고 나이도 많아 싸움이 거의 불가능한 지휘관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2차 진주성전투의 지휘관은 황진 장군님이시죠. 김천일장군은 진주성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진 장군님과 함께 지휘관(의병장)을 따라 목숨을 바친 의병분들과 의병들과 최후까지 함께 한 김천일 장군님 모두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을 하다 가신듯 해 더더욱 숙연한 마음입니다.
진주성에서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이순신도 없었음
이건 귀하군요...
베데스다에 외주 주시면 안되나요 ㅜㅠ
진주를 지키는 전투는 졌지만, 호남을 막는다는 전략적으로는 승리한 역사네요
정말 참혹했던 패전
저때 전사한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은 잘려져 일본의 태합전하에게 바쳐짐
개인적으로 영화로 봤으면 좋겠네요
김시민 장군 1차때 돌아가신거 아님?
지금 나오는건 2차 진주성 전투 김천일 의병장이십니다
여자 아나운서분…눈썹이 이뿌다
최후에 일본군 12명죽이고 활에맞아 돌아가신 김현창 장군님도 계십니다..역사에 길이남을 장군님이십니다
연안성 전투와 더불어 3대 대첩 때문에 가려진 전투는 맞음 ㅜㅜ
그래픽 21년 맞나..
전략에서 진것보다 숫적열세로 인해전술에 졌음...왜군이 10만이면 방어군은 정예병 2만~3만은 있어야 막지...
황현필선생님은 선무1등공신3명중 원균을빼고 정문부장군이나 황진장군이 들어갔어야했다고 하실정도로 전란 초기에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영상에서도 조금 덜 조명되는것같네요
황진장군의 업적이 알려지지 않은게 너무 비통하다.
진주성이 함락이 된 이유가 황진이 총에 맞고 전사해가지고 그를 믿고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패배했다던데
와 김천일 의병장님 크레이토스 더빙 성우님 아니신지 ㅎㅎ 오우
이렇게 뜻깊은 역사를 너무 저예산을 쓰셨는지 해상도, 화질이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네...
저거 명나라랑 화친맺는데 진주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조건이라 생각해서 함락한거 아님?
맞아요. 근데 여기서는 2차 진주성 전투로 인해 더이상 진격하지 못했다고 나오네요
@@ku2125 일본입장에서 봤을땐 진주성을 지나 호남으로 진격했으면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했을텐데 못지나갔어도 어느정도 일본이 원하는대로 철수할때 공격안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했으니 일본입장에서는 선방한거라고 봐야하나....
제작비 얼마?
너무나 필요한 역사 고증이지만
안타깝게 그래픽이 조잡하기 짝이 없네요
황진장군이 엄청났다고 하던데
다 좋은데 아쉬운건 영상 케릭들의 얼굴이 서양스럽다는게 흠이네요~~
진주성 원탑은 명불허전 황진이지!
황진 장군이 정말 잘막았는데 황진장군 저격 당해 죽고 성이 무너졌다죠. 이렇게 잘막을 줄알았다면 곽재우등도 성안에서 함께 싸웠으면 막아낼뻔했습니다. 성은 점령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성하나 함락하는데 전력의 40프로가 갈려나가버린 왜군은 전라도 진출을 포기하게 됩니다. 나라를 구한 전투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전투에서 돌아가신 6만명의 순국선열들에게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진]주 백성 버린님 나라의
[주]인 되고,
[성]안 백성 지킨님 남강에
이슬 됬네.
황진 장군 김천일 우리가
기억 할께.
임진왜란이 발발하기전에 조선조정에서도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성벽 높이를 1미터 가량 더 높히지 못했다. 이것이 성이 함락되고 안되고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전쟁준비를 편한데로 한것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와 진짜 일본군은 거의 뭐 전설이다. 16세기 후반에 화약무기로 무장한 병사를 바다 건너 원정을 보내고 10만명의 전투병력을 집결시킬수 있다니 저시대에 중무장한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바다건너 원정을 보내고 그 병력에 지속적인 보급을 진행 할 수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될까? 지금도 굳이 따지면 미러중 정도 밖에 없을 것 같은대?
바다를 건너 지속적인 보급을 하기 위한 경제력, 농업 생산력, 무기 생산력, 조선술, 벌목 능력, 지방 행정 조직, 야금술, 항해술등이 세계 최정상급이었다는거잖아. 15만 병력의 무기와 식량을 조달하려면 사실상 보급선이 일본 본토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한번은 와야 할텐대. 와 진짜 넘사벽이다.
그정도는 아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아케치미쓰히데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유투브 찾아봐라. 당시 일본 전력이나 경제력에 대해 이야기 한게 있다. 무슨 최강국이냐. 오히려 경제력은 명나라지. 봉건제 형태를 유지중인 일본이 중앙집권 국가에 맞먹을수 없다. 더 공부해라.
@@정충영-d5w 1인당 GDP는 동북아 최강 맞아. 물론 경제는 명이 비교도 안될만큼 큰대 인구가 당시 1억 5천만명에 달하는 명과 인구 3000만명 수준인 일본은 차이가 있지 하지만 당시 일본의 경제력에 대한 자료를 하나 줄게. 1590년 조선의 쌀 생산량은 240만톤이고 동시기 간토 평야의 쌀 생산량이 200만톤이야.
진주성 저번에 같다왔었는데 생각보다 크더군요
얼마나 국가 사업비가 줄줄 새면..
이런 소중한 곳에 예산이 배정이 적어서
20년전 그래픽으로 구현이 되나..
바다는 이순신장군 육지는 황진장군
황진이 2차 진주성 최고장군 지원병력만 있었더라면 이겼을꺼다...
방관하는 권율,몸사렸던 명나라,실리추구한 곽재우, 충청도 병마사였지만 진주성에 입성한 황진장군,강화도에서 호남진격을막고자 입성한 김천일,임진왜란마지막전투.
기억합시다.
저때 권율이나 곽재우같은 의병장들이 함께했음 패하지 않았고 아마 왜군을 전멸 시켰을지도 난 권율이나 곽재우같은 당시 진주성 혈전에 반대했던 졸장부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본다.
황진이 더 영웅아닌가?? 죽기직전까지 잘방어하고 있다가 전사하고 나서 바로 무너져내렷지
우리 조상님 눈물나네요
2차때왜놈전병력출전했는데 조명연합군은뭐했는지 뒤에서쳤으면 쌈싸먹었잖아! 강건너불구경 하고있었다는게 어이가없네
그때는 명군 선발대 만명정도가 울산쪽에 내려오고있었음요. 걔네들은 알고도 무리 안했겠지요.
명군은 일본이 명나라 땅에 안들어오면 임무성공임. 이미 휴전협정 진행중이던 시기라 남에 나라에서 자기 부하들 목숨잃을 이유는 없었지. 그리고 당시 도원수 권율이 지휘가능한 조선육군 규모가 2~3만 정도밖에 안되던 시기라 명군 지원없이 단독으로 지원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음.
@@boramlee7553 2 ~3만명이라도 진주성 구원하러온다는 모션만취했어도 왜군은 뒤로 후퇴하지않았을까요?
정말 잘만든 영상이네요. 진주성에 해자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재현이 됬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자연적인 해자였다고 합니다. 늪이 있었다 하더군요.
남강말고 성앞에 해자가 있었나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는데, 후손들이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후손으로써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다.
진주비빔밥을 찬밥에 비비는 이유 2차 진주성전투
화순출신 최경회장군 ㆍ양산숙장군도 있지요
2차진주성은 황진 장군님이죠!
와우 대박이다
그러고보니 진주성전투는 1~2차 모두 사료적으로 일별전투상황이 기록되있기도하고 영화로 충분히 만들만한 소재인데도 영화가 안나오네..
안시성전투같이 사료적 영역이 모자라서 당태종이 눈깔이 구멍났다더라같은 허구내용에 킹덤오브헤븐 전투신 잔뜩 배낀 거 할바에 이런게 좋을거같은데
1차전투는 승리했지만 정말 결사항전이었고 김시민은 전설로 산화했고..
2차전투는 패하긴했지만 거의 10배가까운 병력 차이에 일본군은 이름난 장수들 전부 참전해서 밀어붙인 양쪽합해서 10만이상이 붙은 대전투여서 스케일면에서도 크고..
장군께선 같이 싸우지않고 피해소이까 곽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