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인 하늘 데이터 사용은 안하고 "나훔 1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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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сен 2024
  • 무제한인 하늘 데이터 사용은 안하고
    나훔 1장 2~3절
    • 무제한인 하늘 데이터 사용은 안하고 ...
    💻 꼭두새벽묵상 No. 1403
    최근에 내 휴대폰에서 데이터 사용량이 얼마를
    사용했다고 이런 내용이 화면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밤에 휴대폰에서 사용한 데이터 양은
    33G를 넘었고 와이파이에서도 10G를 넘게
    사용했다고 나온다.
    무슨 데이터 양이 이렇게 많은지.....
    기본적으로 가동이 되는 어플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보는 영상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달에 사용하는 데이터량이 엄청난 것 같다.
    어디에서 데이터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일일이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데이터가 무제한
    이다 보니 추가 요금을 내거나 요금 폭탄을
    맞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데이터 양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는데......
    휴대폰 화면에서 계속해서 너는 지금까지
    데이터를 얼마 사용했어....이렇게 표시가
    되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기본 어플이 구동이 되는 것이든
    휴대폰화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든
    어떤 영상을 보는 것이든 간에
    휴대폰이 정상 작동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데이터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성경보다 가깝고
    친구보다 가깝고
    자식보다
    배우자보다 다 가까운 것이 휴대폰이고
    심지어 주님보다 더 가까운 것이 휴대폰이
    아닐까 싶다.
    어제가 추석이지만 여전도회 순회예배
    하기 전에 봉사관 실내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목수를 불러 실내 석고보드를 붙이는 작업을
    하였는데....
    여전히 고민을 하는 것은 실내 마감재
    문제였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여다 보면
    ‘실내 인테리어 보드’라고 검색을 해보게 된다.
    무엇이든 휴대폰하면 다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봉화 산촌에 살아도 멀리 영주까지 안가도
    쿠팡에서 얼마든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니
    휴대전화기가 사용되고 택배가 가는 곳이라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명절이라 왔다가 돌아간 하은이도 휴대폰
    화면에서 자기가 타고 갈 버스를 다 예약하고....
    정말이지 이젠 마스터 키와 같이 휴대폰 하나면
    모든 소통이 다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명절이라 만나든 어떤 이유로 사람을 만나도
    이제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각자의 휴대폰만
    들여다 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휴대폰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 지니 사람끼리 소통은 잘 안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는 것보다
    손바닥 만한 휴대전화기 화면만 들여다 보면
    수많은 정보가 다 나오니...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친밀해지지 못하고
    정보와 친밀하게 되고
    십자가의 사랑을 나누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성도들 역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지는 못한체
    신앙의 연수로 인해 직분이라는 계급장만
    달려고 하고 있으니...
    나훔을 통한 니느웨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우리에게는 어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성경이 말하는 심판이나 경고의 메시지는
    당시의 사람들뿐 만이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약속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유효한 것이다
    어제 2절 서두의 말씀이 어감이 매우 쎈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말씀도 만만치가 않다.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어제는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앞부분의 말씀만
    보았는데...
    어제 말씀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은 충분히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 보복하시는 하나님
    이란 표현은 쎄도 너무 쎈 표현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음악에서
    셈여림표에 매우세게인 포르티시모처럼
    점점 더 세게 하는 말씀으로 보인다.
    어제 보복이라는 단어도 쎈 단어 인데
    오늘 진노하는 단어
    그리고 그 진노를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자에게 진노를 품으신다.
    이 2절의 말씀을 오늘 새벽에도 묵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의 말씀이 쎄도 이렇게 쎄도 되는
    것일까...?
    결론은 쎈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조건 전부다
    쎈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쎈 어조로 나오는 경우는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다.
    심판의 메시지를 말씀하면서 부드럽고
    고상하고 듣기 좋은 어투로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사랑의 대상이신 이스라엘이 유다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길을 가는 것을 침묵하지 않으신다
    오늘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했던 앗수르
    니느웨에도 예외는 없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앗수르와
    그 수도인 니느웨가 어떻게 멸망당하는 지
    2장에 가면 자세히 나온다.
    그런데 나훔선지자가 활동했던 그 당시에
    앗수르는 가장 강력하고 강성할 때 였다.
    어느 누구도 감히 앗수르가 무너질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하나님을 거스르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이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2절에 나오는 이 쎈 표현들이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바로 이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성품이
    이런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시다.
    철저히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 대적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보복하시고
    진노하시지만
    그러나 오늘3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기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2절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다.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권능이 크시다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2절 말씀과 3절 말씀의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변득스러운 하나님이라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쎄게 말씀하실 때는
    사탄 마귀...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를 향해서
    이렇게 쎈 표현을 마다 않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 나타난 것을 표면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를 거스르는자 사탄 마귀가
    이에 해당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하심과 하나님의 보복하심은 누구에게나
    임할수 있다는 것이다
    자비와 긍휼도 마찬가지이다
    진노나 보복도 누구에게 임할수 있는
    것이고
    자비와 긍휼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어디도 나를 향한 안전지대는
    없다.어디에도 안전장치가 없다.
    진짜 안전지대는 예수님입니다
    진짜 도피성도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택한 백성을
    향하여서는 노하기를 더디하심입니다
    권능이 크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의 삶에....
    구체적인 나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
    세상 데이터 양보다 하늘의 데이터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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