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으로 북인 kill 왜란시절 의병 활동으로 파산한 남인기반 인조반정 권력집단은 선조와 인조 덕에 이미 경쟁자들 싸그리 잘라 놓은 상태였음 + 왜란 3년 전에 빅이벤트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 = 동인 kill)"도 한 몫 하줘 그래서 이후 조교화에 박차를 가하지요
진짜 투표를 잘해야함 사리사욕에 눈멀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는 인간들이 결정권자가 되면 나라 아작나는거 일순간임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존명을 결정짓는 국제회의에서조차 제대로 참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G7이 중요한건데 그걸 분석해주는 기사하나 찾기 힘드네요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똑똑해야 한다는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네 맞습니다. 구범진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조선은 판옥선을, 청군은 5~6명이 타는 뗏목 수준의 작은배 40여 척을 이용했답니다. 겨울의 엄청나게 바뀐 염하수로에 판옥선은 기동이 불가능했고 기동성 있는 청군은 하루만에 해협을 건너 강화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이 판단을 개판으로 한 것은 맞지만, 조선병력의 무능함이 아닌 청군의 엄청난 지략에 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여진족은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어졌지요. 고조전 때는 숙신,이 후는 읍루, 삼국시대 때는 흑수말갈, 고려 때는 여진, 이 후는 만주족. 주된 생업수단은 수렵, 즉 짐승을 사냥하는 거지요. 그러기에 말타기, 활쏘기등에 능숙하지요. 금나라, 청나라를 세웠었고 자체 언어와 문자도 있었지요. 그러나 청나라를 세우고 지금의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만주족도 오랜 시간 중국의 한족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한족에 흡수되어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잊어버리고 한화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요령성에 자치주에 만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여배우인 관지림이 만주족이라고 합니다. 동방불패에 나왔던 여배우지요.
황선생님 역사강의 열성적으로 듣고있는 50대 중반 중년입니다(마음은항상청년이지만 ..^^) 너무재밌고 우리역사에대한 자부심과울분도 느끼고있습니다.. 학교에서 들어보지못한 사실과 생생한 감정 그당시 내가 실제로 그장소에 있는듯한 느낌이 선생님의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밑에 자막이 생겼네요? 개인적인생각은 아마 선생님 말씀이 빨라서 구독자 배려차원에서 자막을 넣으신것같은데 .. 음 ...그냥 없는게 나을것같다는 사견을 올립니다... 일단 오타가 많고 선생님 보고 강의들어야되는데 자막때믄에 좀 집중이 안되는것같습니다.. 그냥 제사견입니다^^ 아무튼 새로운 역사적사실을알게되 많은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청나라가 유럽 역사에서 힌트를 얻어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접목한 것 같네요. 1553년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점령하고 16세말부터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를 위해 선교사와 유럽인들이 옮겨왔겠죠. 1602년 유명한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한 마테오 리치가 1601년 자금성에서 만력제를 알현하죠. 명나라는 유럽의 홍이포를 수입하죠. 제 생각에는 유럽에서온 선교사나 유럽인들 중에서 몇몇은 청나라와도 접촉한 것 같습니다. 1543년 동로마제국 멸망시킬 때 오스만의 메흐메드2세가 배와 우루반 포를 큰 수레로 산을 넘어 반대편 바다로 옮겨 결국 콘스타니노플을 함락시키죠. 메흐메드2세도 유럽의 예전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다네요.
말씀하시는거 들어보면 1.육지에서 조선군의 배와 성벽을 공격할수 있었다. 2.용산에서 기습적으로 배를 끌고왔다. 3.간척사업으로 물살이 약해졌다. 4.성벽곳곳이 빈곳이 많았다... 이 상황이면 청군과 농성전을 하는게 아니라, 야전에서 직접싸워야 하는데 비슷한 군사수가 있다 하더라도, 이길각이 안나오는거 같습니다.
우리 야사에 들여오는 이야기는 당시 강화도로 한양의 왕족들이 피난 갈때, 강화섬을 지키는 최고 책임자는 한성 판윤의 아들 김경징을 임명 했다는데, 김경징은 강화 방비에 신경쓰지 않고, 술만 퍼마시고, 왕족마저 보살피지 않고 있다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강화도를 점령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세환-w7l 막상 유럽이나 중국 일본 보면 성리학 때문이라고 덮어놓고 보기도 그럼 조선 수뇌부가 노답이지 ...(성리학에 경도 된 조선이 아니고 성리학 치워도 조선은 노답) 성리학에 경도되는 시점이 빨리잡아도 선조시기고 늦게잡아도 인조시기인걸 ... 조선이 성리학에 맛까기 전부터 이미 학문 과학기술 천대하고 X신 되는걸요... 그 기점을 보통 세조... 세조가 궤궥이지 .... 애당초 성리학은 세상만사는 "설명"이 가능 하다 했음 그걸 괴력난신으로 설명하는 불교등 종교를 증오했고 사농공상같은 것도 서양은 안했냐 하면.... 그건 아니지 ... 에당초 금융에 종사 하는건 유대계 천민이고 그 외 상인들도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기부를 오지게 많이 해서 종교계랑 결합 된 것도 하나의 큰 역사로 다루고 있는걸 마지막 사건으로 굵직한게 누구나 아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 + 거 외 서양 기업문화 중에 기부문화가 유명한대 그 기부문화 관련으로 들은건데 어지간히 억울하긴 하겟더라고 찾아보면 잼남 + 뭐 중농억상 동서양 막론하고 있는데 뭐 이유는 간단함 "이동이 잦은 애들은 세금 걷기 힘들어서"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헤이그 특사 사건을 다뤄주실수 있으신지요. 특히 이번에 G7 정상회담과 함께 유럽 국빈방문이 110년전 헤이크 특사이셨던 이상설 이준 열사님의 100년의 한을 푼 유럽무대 외교사의 전환점이다 라는 평가 가 있어서요 역사 학자님으로서의 의견이 매우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샘님 청이 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되는 이상훈 작가님의 김의나라 리뷰? 역사적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발해의 유민족 여진족과 함께 금나라를 만들고 청에 황족들의 성이 애신각라 라는 신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억한다? 라는 긴 성을 쓰는지 역사적 설명 부탁드립니다
전쟁은 무조건 장비나 무기가 좋은 놈들이 유리합니다. 이순신 같은 전술 천재를 제 외한다면 최신 장비에 밀리면 뭐 꼼짝없이 당하죠. 미국이 세계최강 군사력을 자랑 하는 것도 군인의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 경험도 많은 작용을 한다지만 최신식 장비 와 무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뭐먹지-t9s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게 내 장점으로 적 단점 치라는거지 미국정도 생산력이면 단점 자체를 없애는 나폴레옹식 대군은 무적을 이룩 할 수 있으니 엥간해서는 못이기줘 솔직히 미국은 전쟁 할 때 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반전여론 다스리는게 제일 어려운거 같음 유럽국가들 처럼 덮어놓고 생화학 테러만 했어도 그냥 이겻을것같은데 월남전에서는 족쇄란 족쇄는 다 가지고 시작하잖음 준비x(프랑스 때문에 억지 참전..)+ 반전여론(선발대가 시작하자마자 발린게 tv방송을 타버림)+ 명분싸움 패배..(남베트만... 희대의 막장..)
사실 왜란 당시 조선수군 테크와 일본수군 태크를 단순 비교하면 많은 부분에서 조선쪽이 유리 했다우 육군과 다르게(훈련도는 빼고) 물론 그건 장비와 무구를 말하는거고 조선 수군의 보급과 명령체계 등은 정말 가슴이 웅장 해질 정도로 선조가 하드캐리함 ㅋㅋ 오죽하면 명나라 장수가 선조에게 대놓고 면박 줄 정도로 좀 제대로 하라고 했었지
@@고동현-g4u사실 이런건 논쟁거리도 아니지만 정확하게 계산해야죠 . 1910년을 왜 포함합니까? 1910에서 1911년이 돼었을때 비로소12개월 즉 1년이 지난겁니다. 님의 계산법대로라면 2년겠네요. 0의 계념을 상실상 계산법은 정확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굳이 어거지로 1년 더늘려서 식민지기간을 늘리고싶지도 않습니다. 댓글 싸움 하자고 하는거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바랍니다 ~ 전 역사는 정확하게 표기해야하고 알아야한다 생각해서 입니다 .
고려 최우의 강화도 천도는 상당기간 계획되고 실행된 일종의 작전이었고, 병자호란 때는 그냥 잘 되겠지 하는 즉흥적 계획이었죠.. 그리고 당시 고려는 무신 정권하에 정예 사병을 거느린, 굳이 비유하자면, 봉건시대 일본 스타일 체제였고, 인조의 조선은 송나라 스타일 문치국가였죠..
Qing government must have been talking with Ottoman Empire as they built ships on the other side of the Bosphorus and transported on land to conquer Constantinople. Very interesting!
@동네양아치 의병들이 재산 처분하고 의병 활동 하고 난이 끝나고 공을 받아야되는데 선조가 선조했고 광해군도 중립외교랑 대동법 하려고 했던거 다 치워 버린게 인조반정 이후 애들이고 청나라 굴기 이후 오랑캐의 문화(서양 오기전) 이야기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중상이니 중농이니 이야기했던것도 정조 시기에 전국토의 국유화 이후 집단농장 같은 공산주의 틱한 것도 논의한게 일단 선비들임 물론 싹다 말아먹은 암군과 그걸 원하는 암세포들도 공존했지만
@프랑수수수 선조: “왜란을 평정한 건 명나라 군의 힘이고 조선군은 잔적의 머리만 베고 제힘으로 한게 없다” 오죽하면 명 장수가 이순신 챙겨주라고 선조 윽박 질럿지... 명나라 입장에서는 군비 때문에 머리 아픈데 조선은 지 할일 안하고 계속 엥기지 ㅋㅋ 선무공신 : 장수 (3/5/10 = 18명 & 의병장은 2명 끝!) 1등 : 반당 10인과 노비 13구(口), 구사(丘史) 7인, 전지(田地) 150결, 은자(銀子) 10냥(兩), 내구마(內廐馬) 1필 2등 :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인, 전지 80결, 은자 7냥, 내구마 1필 3등 :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인, 전지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 호성공신 : 몽진 때 호종 한 선비 (2/31/53 = 총86명) 1등 : 반당 10인, 노비 13구(口), 구사(丘史) 7인, 전(田) 150결, 은자(銀子) 10냥, 내구마(內廐馬) 1필 2등 :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인, 전 80결, 은자 7냥, 내구마 1필 3등 :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인, 전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 선조 : ^^ 장수 따위 필요 없다구 명나라 횽아가 다 해준다구 내시들 자 여기 공신 등록 해줄게 근데 확실한건 선조가 "의병" 이라고 대우 안 했던건 아님 조선은 사병을 금지하고 태조부터가 쿠테타에 성공한 군벌출신이다 보니 왜란 초에 모든 의병을 반역으로 본게 선조 만의 잘못도 아니고 뭐 그렇다 해도 일본군이 다 때려 부수니 의병들에게 직위를 내려서 “공식적”으로는 관직에 오르게 해서 해결 했지 + 물론 보급은 안 해주지만 명령은 들어야지 한양 뚫리지만 응 옥쇄해 경기 의병들 + 충무공께서는 보급 받기는 커녕 물자도 뺏겻지... 근데 그 총수 인 선조가 군사관련으로 잼병이지 + 뭐... 이순신(부산 가라고)이나... 김명원(임진강 넘어! 평양성 가!)이나.. 정문부(아니 왜 함경도 토인 봐주심? 가토요? 어쩌라고)나... 김덕령 말고 억울? 화날? 법한 의병장은 이산겸, 정문부, 정인홍, 곽재우 정도? 확실한건 선조는 “의병”이라서 대우 안 한건 아니고 관군이여도 대우 안 했지 + 선조 : 아 물론 원균은 1등 공신입니다.
결국 고려와 조선의 군사력 차이같군요 군사력은 곧 경제력인데 열하일기를 보면 조선은 청나라 시기 장수들이 군사훈련때 말을 빌려타고 역마도 좀 달리면 다 쓰러져 죽을정도 약했다합니다 말 키우는 관리도 있는데 관리가 말에 관심을 갖는자체가 비웃음 대상이였다네요 선비가 말키우는데 관심 갖는다고 이렇게 나라가 유교에 찌들어 양반들은 군역이 면제되고 공업은 가내수공업 수준 무역은 조공무역이 다인나라가 무슨 돈으로 군마를 준비하고 활과 갑옷을 준비했겠습니까? 조선이 외침을 단한번이나 막은적이 있나요 임진왜란은 명의 지원으로 겨우 막아낸거지 이순신이 조선을 지켰다는 식의 교육은 열등감 일종이고 역사왜곡입니다 조선은 우리가 뼈아프게 반성하고 또 반성할 민족 최악의 시기지 여기서 무슨 자부심을 찿습니까 오히려 소홀히 하는 고려사에서 우리 자존심을 가지는게 맞을 듯 합니다
용산에서 배를 만들어 수레로 실어 왔다구요? 아주 작은 나룻배도 아니고 적어도 100명 이상 탈수 있는 대형 군함일텐데... 그당시 그것을 실을 수 있는 수례와 장비가 있었나요? 요즘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고 비포장 산길을 말과 소가 이끄는 수레로 이게 가능 하다고 생각하나요? 이건 잘못된 썰 같은데요? 또한 한척도 아니고 몇십척을... 이러한 추론은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댐을 만들어 수나라 병사에게 수공을 이용해 물리쳤다는 잘못된 썰 뭐 이런거 아닌가요?
뛰는 조선 위의 나는 청나라 사태 파악 못하고 뒷북이나 쳤던 조선 거기다 하늘까지 버리셨네? 우얄꼬!! 이러니 게임이 안되지...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역시 제 말이 맞죠 선생님? 선생님 댓글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날 새는 줄도 모를거라는 제 추측 안 보는 거 같으면서도 다 볼거라는 제 장담 맞죠 맞죠 맞죠??? 인정 인정 인정??? 후훗 넘 귀여우시네요 그건 그렇고 다음 강의는 또 어떨까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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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 교수님 대한민국 🇰🇷 역사를 가르치는 자부한 사람 황현필 교수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화이팅 화이팅 입니다 응원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강의 너무 재밌습니다
강화도 관련 역사강의 잘 보았습니다.
감사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
황선생님 강의 참 잘 하십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항상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변화를 인지 하지 못 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상식의 등장에...패배할수 밖에 없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네요.. 황선생님 항상 감사드리고 응원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파이팅 넘치는
모습 언제나 좋아요
활기차게 현필쌤과 주말
달려가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하여간 인조는 암적존재ㅡㅡ
@@chicrio ㅄ
@@chicrio 정신 좀 차리고 삽시다.
민족주의자 황현필
@@chicrio ㄹㅇ 맞음ㅋㅋ
@@열심-i8i 대깨 어서오고
와~~설명이 머리에 쏙쏙!!재미납니다!!^^bb
선생님 넘나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매일 언제 올리는지 기대하며 기달리게 되네요
자주 시청합니다
정말 사이다 입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몰입감. 강의력 최고입니다
시간이 순식간에
맞아요 순삭
휘리릭~~
선생님 매번
빨리 보내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워요
이대로 못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가지마요 선생님 ~~
오늘도 감사합니다.
구범진 교수님의 이라는 책을 보면 강화도 점령의 과정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응원합니다~~~ㅎㅎ
잘 들었습니다 . 수고하셨어요
민족주의자 황현필
정말 궁금했습니다. 좋은 강의.
네네 날씨도 덥고
쉬엄쉬엄 가시지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선생님 인생은 장기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13:00 역알못 궤변만 일삼는 무리에게 따끔한 한 마디,,, 존경스럽습니다.
오늘도 영상 감사합니다. 황쌤 화이팅!!!
도망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자긍심까지 버리다니... 망하지 않은게 더 수수께끼인 인조시대.
인조반정으로 북인 kill
왜란시절 의병 활동으로 파산한 남인기반
인조반정 권력집단은 선조와 인조 덕에 이미 경쟁자들 싸그리 잘라 놓은 상태였음
+ 왜란 3년 전에 빅이벤트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 = 동인 kill)"도 한 몫 하줘
그래서 이후 조교화에 박차를 가하지요
황선생님, 마지막 부분에 '강화도 점령 이야기' 가 아니라 '강화도 함락 이야기' 라고 해야 될 듯 합니다만.
인조의 국방이 아무리 그지같아도 청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오류가 있네요.
2부가 기대됩니다~~~
요새 너무 잘 배우고 있습니다
역시 선생님의 영상은 시간 가는줄 모르네요
진짜 투표를 잘해야함 사리사욕에 눈멀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는 인간들이 결정권자가 되면
나라 아작나는거 일순간임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존명을 결정짓는 국제회의에서조차
제대로 참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G7이 중요한건데 그걸 분석해주는 기사하나 찾기 힘드네요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똑똑해야 한다는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열정적인 역사강의 잘 배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멋져요~
이런분이 방송을 많이 타야되는데..
그 열악한 조선의 도로를 이용해 겨우 사람이나 소가 끌었을 마차로 운반할 수 있는 배는 10명도 태우기 힘든 작은 조각배들 이었겠지.
그 정도 무력에도 버티질 못했구나~
네 맞습니다. 구범진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조선은 판옥선을, 청군은 5~6명이 타는 뗏목 수준의 작은배 40여 척을 이용했답니다. 겨울의 엄청나게 바뀐 염하수로에 판옥선은 기동이 불가능했고 기동성 있는 청군은 하루만에 해협을 건너 강화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이 판단을 개판으로 한 것은 맞지만, 조선병력의 무능함이 아닌 청군의 엄청난 지략에 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광화문-r9b 그렇군요..
강화도 가까운데가 300m고 먼데가 1km라는데
홍이포 사거리가 700m니까
청나라가 내려올 때는 수군이 필요한가 싶군요 ㅋㅋㅋ 홍이포로 때려 패다가 유유히 지나가면 될 듯도 한대
물론 이러면 전술전략 바꿔야 하는대 안 바꾼 조선이 레전드....
@@광화문-r9b 5~6명이 40여척이면 기껏해봐야 240여명수준인데 그래도 1600여명이 지켰다는 강화도를 아작냈다니.. 7배가 넘는 조선군은 뭐한것인지..
@@appp7566 한번 건너가고 끝이 아니라 계속
왕복하면서 군사를 이동시켰겠지 ㅋㅋㅋㅋㅋ
단순해 ㅋㅋㅋㅋ
선생님, 조교님 안녕하세요~ 장비가 업그레이드 됐나요? 뭔가 프레임과 화질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ㅎㅎ 강의 잘 듣고 갑니다.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이나 명예만 쫒다가는 ㅈ망테크를 탄다는 사례를 여실히 보여준 역사네요.
주제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져리게 느꼈을까?
좋은 영상 감사 합니다.
여진족은 만주에 살아서 바다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몽골 같은 내륙 유목민족하고는 좀 달랐죠... 물론 모문룡 부하들 흡수한게 크긴 했지만요.
여진족은 해적까지 있던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목민족하곤 좀 다르죠. 여진족 지역은 농사도 꽤 잘되서 농사가 잘되면 농사, 흉년이면 약탈하던 민족이였죠.
고려시대 여진구 악명 높았죠.
아~~ 그렇군요
덕분에 또 하나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 설명도
무척 재미있고
귀에 쏙쏙 박히지만
여기 댓글들도
너무 재밌고
수준 높은 것 같아요
다들 어쩜 이리
멋있을까??
여진족은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어졌지요. 고조전 때는 숙신,이 후는 읍루, 삼국시대 때는 흑수말갈, 고려 때는 여진, 이 후는 만주족. 주된 생업수단은 수렵, 즉 짐승을 사냥하는 거지요. 그러기에 말타기, 활쏘기등에 능숙하지요. 금나라, 청나라를 세웠었고 자체 언어와 문자도 있었지요.
그러나 청나라를 세우고 지금의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만주족도 오랜 시간 중국의 한족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한족에 흡수되어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잊어버리고 한화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요령성에 자치주에 만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여배우인 관지림이 만주족이라고 합니다. 동방불패에 나왔던 여배우지요.
모문룡 부하들의 활약이 결정타였어요. 모문룡 자체가 군사 천재였어요. 당연히 그 부하들도 그대로 전투력을 습득했겠죠. 추후 모문룡의 부하들을 앞세워 명나라를 초토화시킵니다.
잘보고 있습니다
항상 열정적인 강의 감사드립니다. 요즘 김의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부분도 시간 되시면
강의 한번 부탁드립니다..
황선생님 역사강의 열성적으로 듣고있는 50대 중반 중년입니다(마음은항상청년이지만 ..^^)
너무재밌고 우리역사에대한 자부심과울분도 느끼고있습니다..
학교에서 들어보지못한 사실과 생생한 감정 그당시 내가 실제로 그장소에 있는듯한 느낌이 선생님의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밑에 자막이 생겼네요?
개인적인생각은 아마 선생님 말씀이 빨라서 구독자 배려차원에서 자막을 넣으신것같은데 ..
음 ...그냥 없는게 나을것같다는 사견을 올립니다...
일단 오타가 많고 선생님 보고 강의들어야되는데 자막때믄에 좀 집중이 안되는것같습니다..
그냥 제사견입니다^^
아무튼 새로운 역사적사실을알게되 많은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선군은 정말 역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빈약했네요.(15세기빼고)
제가 보기에는 청나라가 유럽 역사에서 힌트를 얻어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접목한 것 같네요. 1553년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점령하고 16세말부터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를 위해 선교사와 유럽인들이 옮겨왔겠죠. 1602년 유명한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한 마테오 리치가 1601년 자금성에서 만력제를 알현하죠. 명나라는 유럽의 홍이포를 수입하죠. 제 생각에는 유럽에서온 선교사나 유럽인들 중에서 몇몇은 청나라와도 접촉한 것 같습니다. 1543년 동로마제국 멸망시킬 때 오스만의 메흐메드2세가 배와 우루반 포를 큰 수레로 산을 넘어 반대편 바다로 옮겨 결국 콘스타니노플을 함락시키죠. 메흐메드2세도 유럽의 예전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다네요.
감사합니다 늘..
말씀하시는거 들어보면
1.육지에서 조선군의 배와 성벽을 공격할수 있었다.
2.용산에서 기습적으로 배를 끌고왔다.
3.간척사업으로 물살이 약해졌다.
4.성벽곳곳이 빈곳이 많았다...
이 상황이면 청군과 농성전을 하는게 아니라, 야전에서 직접싸워야 하는데 비슷한 군사수가 있다 하더라도, 이길각이 안나오는거 같습니다.
우리 야사에 들여오는 이야기는 당시 강화도로 한양의 왕족들이 피난 갈때,
강화섬을 지키는 최고 책임자는 한성 판윤의 아들 김경징을 임명 했다는데,
김경징은 강화 방비에 신경쓰지 않고, 술만 퍼마시고, 왕족마저 보살피지 않고 있다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강화도를 점령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너무 슬픈이야기라서 안듣고싶었지만 그래도 용기내어 들어봅니다
시청완료
궁금한 거 질문요~ : 그러면 고려나 조선군은 강화도로 갈 때 어떻게 이동했나요?
배타고요. 아군인데 활쏘고 대포쏠일은 없잖아요ㅋㅋ 물살이 강하다 한들 배로 갈 수 있긴 했습니다.
ㅋ 그냥 헤염쳐서
현대(2차 대전)에도 같은 포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해군이 육상 포진지 대비 3배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육상 기지의 포의 사거리 밖이 아니라면 해군이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다른 이유들도 열받지만 특히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전쟁경험을 가진 수군이 박살난게 가슴아프네요ㅠ
이순신이없어서
그냥 성리학의 발전 그리고 그 사상으로인해 실용적인 학문 과학기술과 군사력이 약화됐다봅니다
물건너 성벽까지 닿는 대포가 있었는데 수군이 질수밖에 없죠
@@김세환-w7l 막상 유럽이나 중국 일본 보면 성리학 때문이라고 덮어놓고 보기도 그럼
조선 수뇌부가 노답이지 ...(성리학에 경도 된 조선이 아니고 성리학 치워도 조선은 노답)
성리학에 경도되는 시점이 빨리잡아도 선조시기고 늦게잡아도 인조시기인걸 ...
조선이 성리학에 맛까기 전부터 이미 학문 과학기술 천대하고 X신 되는걸요... 그 기점을 보통 세조...
세조가 궤궥이지 ....
애당초 성리학은 세상만사는 "설명"이 가능 하다 했음
그걸 괴력난신으로 설명하는 불교등 종교를 증오했고
사농공상같은 것도 서양은 안했냐 하면.... 그건 아니지 ... 에당초 금융에 종사 하는건 유대계 천민이고
그 외 상인들도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기부를 오지게 많이 해서 종교계랑 결합 된 것도 하나의 큰 역사로 다루고 있는걸
마지막 사건으로 굵직한게 누구나 아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
+ 거 외 서양 기업문화 중에 기부문화가 유명한대 그 기부문화 관련으로 들은건데 어지간히 억울하긴 하겟더라고 찾아보면 잼남
+ 뭐 중농억상 동서양 막론하고 있는데 뭐 이유는 간단함 "이동이 잦은 애들은 세금 걷기 힘들어서"
홍이포와 천자총통의 사거리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형 짱!!!
참 좋은 아침입니다.
용산에서 배를 건조해 수레에 끌고 왔다니 적이지만 경이로운 수준이네요.그게 가능하다니
수군의 존재도 확인하고 이제서야 배우게 되네요.
발상의 전환
상황이 안되면 만들어서라도
되게 하라
이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배워서
응용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외교 문화 등 적용될
분야가 많아요
선생님! 건강이 우선입니다. 다 아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임금이 무능하니, 청에게 침략을 받게되고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선 통치자가 어떠해야함을 생각 해 보게 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잘보고있습니다만 기억력이 둔해서 한변씩 다보고 다시한번 끝나면 정주행 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400년이상 차이나는 조선군과 고려군을 비교해 봤을 때 진지하게 400년전 고려군이 400년 후 인조의 군대랑 싸우면 이겼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함... 시간을 뛰어넘는 군주 인조!
? 제가 잘이해하지 못한거 같은데 고려군 칭챤인가요 아니면 인조를 칭찬한것인가요? 마지막 글때문에 햇갈리네요^^
조선최고의 못난왕 3인중의 하나가 인조라는 뜻인듯ᆢ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당ㅎㅎ 고맙습니다 ^^
군대 조직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그래도.. 400년이면 기술력 차이가 엄청나죠. 당장 대포기술만 봐도요;
이름부터가 진짜 사람이 아니고 인조자나요. 헐~한자로 인조의 인이 어질인이라니…
항상 감사하게 시청중입니다~~
조선의 콘스타티노플 공방전인가 싶습니다…ㅎㅎ
고려의 성곽유적이 왜 강화도에 없는지 궁금해요ㆍ
오늘도 감사히 잘보겠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궁금한 게 강화도에는 설치된 포나 대장군 포 뭐 그런 거 하나 없었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헤이그 특사 사건을 다뤄주실수 있으신지요. 특히 이번에 G7 정상회담과 함께 유럽 국빈방문이 110년전 헤이크 특사이셨던 이상설 이준 열사님의 100년의 한을 푼 유럽무대 외교사의 전환점이다 라는 평가 가 있어서요 역사 학자님으로서의 의견이 매우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샘님 청이 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되는 이상훈 작가님의 김의나라 리뷰? 역사적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발해의 유민족 여진족과 함께 금나라를 만들고 청에 황족들의 성이 애신각라 라는 신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억한다? 라는 긴 성을 쓰는지 역사적 설명 부탁드립니다
전쟁은 무조건 장비나 무기가 좋은 놈들이
유리합니다. 이순신 같은 전술 천재를 제
외한다면 최신 장비에 밀리면 뭐 꼼짝없이
당하죠. 미국이 세계최강 군사력을 자랑
하는 것도 군인의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
경험도 많은 작용을 한다지만 최신식 장비
와 무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처럼 자신의 지형을 100퍼센트활용했다면 가능하긴함
@@뭐먹지-t9s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게
내 장점으로 적 단점 치라는거지
미국정도 생산력이면 단점 자체를 없애는
나폴레옹식 대군은 무적을 이룩 할 수 있으니 엥간해서는 못이기줘
솔직히 미국은 전쟁 할 때 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반전여론 다스리는게 제일 어려운거 같음
유럽국가들 처럼 덮어놓고 생화학 테러만 했어도 그냥 이겻을것같은데
월남전에서는 족쇄란 족쇄는 다 가지고 시작하잖음
준비x(프랑스 때문에 억지 참전..)+ 반전여론(선발대가 시작하자마자 발린게 tv방송을 타버림)+ 명분싸움 패배..(남베트만... 희대의 막장..)
사실 왜란 당시
조선수군 테크와
일본수군 태크를 단순 비교하면 많은 부분에서 조선쪽이 유리 했다우 육군과 다르게(훈련도는 빼고)
물론 그건 장비와 무구를 말하는거고
조선 수군의 보급과 명령체계 등은 정말 가슴이 웅장 해질 정도로 선조가 하드캐리함 ㅋㅋ
오죽하면 명나라 장수가 선조에게 대놓고 면박 줄 정도로 좀 제대로 하라고 했었지
이순신마저도 판옥선과 대포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 일본 해군은 강했던 적이 없어요. 일본은 내전으로 육군만 강함.
인조반정이 조선의 최후를 만들어 냈네요!
인조의 나비효과가
일제강점기 36년까지..ㅠㅠ
36년 아니고 35년 입니다. 1910~1945년까지 덧셈뺄셈만 할줄알면 답 나오는데
@@oliviahenderson357 1910년도 포함하면 36년이죠
@@고동현-g4u사실 이런건 논쟁거리도 아니지만 정확하게 계산해야죠 . 1910년을 왜 포함합니까? 1910에서 1911년이 돼었을때 비로소12개월 즉 1년이 지난겁니다. 님의 계산법대로라면 2년겠네요. 0의 계념을 상실상 계산법은 정확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굳이 어거지로 1년 더늘려서 식민지기간을 늘리고싶지도 않습니다. 댓글 싸움 하자고 하는거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바랍니다 ~ 전 역사는 정확하게 표기해야하고 알아야한다 생각해서 입니다 .
이완용이 합병조약에 도장찍은 날부터 1년이라고 계산했겠죠 ㅋㅋㅋ 태어나자마자 1살먹는 한국식 나이계산처럼
우리나라는 내부에서 싸우다가 밖을 못보고 망합니다
배를 수레에 싣고 온 청나라군은 매매드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때의 오스만제국군을 연상시키네요
하지만 메메드 2세의 금각만 수군은 큰 역할 못하고 예니체리가 육지에서 성벽을 뚫은 것이 함정.
@@minervaj7504
너무 수준 높아
못알아 듣겠어요
어쩌죠??
저 이렇게 멍청해도
여기 낄 수 있을까요?
@@minervaj7504 수군이 그래도 제노바 식민지 페라에서 오는 보급을 막아서 사기를 떨어뜨리긴 하죠
군선을 만든건 모문룡의 부하들을 통해서지 ..
그리고 사이 사이 마다 바다로 조각나 있던 섬들을 메꿔서 외적 침입을 이롭게 한 상황..
홍이포가 홍타이지 애비 누르하치를 죽게한 원흉인데 그걸 사용해 조선군 조졌다는게 진찌 아이러니 하군..
9:15 평저선이 물쌀에 더 강하지 않나요 배 전진방향이 -> 바닷물이 ↓ 이고 보통 뾰족하면 더 휘몰아치치는 물살에 더위험한거 같은데 또지난 방송에선 뻘이 대부분이 이라 했으면 동쪽도 물쌀이 세지만 뻘도 존재 하는건데
현필쌤 선댓글 후감상♡
고려 최우의 강화도 천도는 상당기간 계획되고 실행된 일종의 작전이었고, 병자호란 때는 그냥 잘 되겠지 하는 즉흥적 계획이었죠.. 그리고 당시 고려는 무신 정권하에 정예 사병을 거느린, 굳이 비유하자면, 봉건시대 일본 스타일 체제였고, 인조의 조선은 송나라 스타일 문치국가였죠..
그것보다는 당시 고려의 군대와 고려의 정치지배자들이 군략에 유능했고 심려원모였고 고려왕들이 군 지배자들에게 많은 책임과 임무를 맡겼던 시대.조선 선조 인조는 워낙 무능하고 군지도자들에게 맡기지 않았죠.
가장 중요한건 봉건국가고 뭐고간에 최우는 강화에 삼별초든 수군이든 고려정예를 다 짱박아두고 거의 요새를 만들었다면, 조선은 강화에 수군을 깔아놓면 되는데 당시 대장이 안일하게 지휘를 해서 그냥 뚫렸죠.
용산에서 강화도 앞까지 이동해보셨나요?
용산에서 배를 건조해서 강화도 까지 그 먼길을 그때 당시 비포장 도로라고 말하기도 힘든 길을 따라 그 무거운 배를 수레로 옮겼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이해가 가나요?중국이 이해가 가나요?
간척사업으로인해 해안선이 직선화가 되었다면
유속은 더 빨라지는거 아닌가?
어떻게 간척사업으로 유속이 더 느려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준 우답;
12편? 어딧지?
결국 무기 테크에 뒤쳐지면 답이 없다는게 정답인 듯...
실제로 그런 난공불락이라는 강화도가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때 서방 열강들에겐
애들 놀이터처럼 뚫려버림...
조선의 유적은있는데.! 고려행궁이라추정하는조그만 절간수준 유적만있지요. ㅎㅎㅎ
인조는 무식하면 용감해야 되는데 그것도 안되는 그릇이고.. 서인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것이 오늘날 그 자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똑 같고~ 인조가 요절했더라면 조선이 조금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최~~~~~~~~~~~~~~~고~~
5:00 깨알같이 에스키모인 자료화면 띄워주는거 웃기네 ㅋㅋㅋㅋ
Qing government must have been talking with Ottoman Empire as they built ships on the other side of the Bosphorus and transported on land to conquer Constantinople. Very interesting!
홍이포 검색 해 보니 유효 사거리가 700m라내...
즉 짧은 강폭은 사거리가 충분히 닿는다는건데
도대체 조선은 무슨 자신감이 였을가 왜란도 겪은 양반들이 진짜 하 ...
@동네양아치
의병들이 재산 처분하고 의병 활동 하고 난이 끝나고 공을 받아야되는데 선조가 선조했고
광해군도 중립외교랑 대동법 하려고 했던거 다 치워 버린게 인조반정 이후 애들이고
청나라 굴기 이후 오랑캐의 문화(서양 오기전) 이야기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중상이니 중농이니 이야기했던것도 정조 시기에 전국토의 국유화 이후 집단농장 같은 공산주의 틱한 것도 논의한게
일단 선비들임
물론 싹다 말아먹은 암군과
그걸 원하는 암세포들도 공존했지만
@프랑수수수 인조가 중립외교를 했다고요?
사실상 선전포고 먼저한게 인조인데 무슨?
@프랑수수수 뭐야 이 병 신은 ㅌㅋㅋㅋ
@@shbu2700 틀딱충 말 잘 들어서 딱딱거리는구나 푸하하하하
@프랑수수수
선조: “왜란을 평정한 건 명나라 군의 힘이고 조선군은 잔적의 머리만 베고 제힘으로 한게 없다”
오죽하면 명 장수가 이순신 챙겨주라고 선조 윽박 질럿지... 명나라 입장에서는 군비 때문에 머리 아픈데
조선은 지 할일 안하고 계속 엥기지 ㅋㅋ
선무공신 : 장수 (3/5/10 = 18명 & 의병장은 2명 끝!)
1등 : 반당 10인과 노비 13구(口), 구사(丘史) 7인, 전지(田地) 150결, 은자(銀子) 10냥(兩), 내구마(內廐馬) 1필
2등 :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인, 전지 80결, 은자 7냥, 내구마 1필
3등 :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인, 전지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
호성공신 : 몽진 때 호종 한 선비 (2/31/53 = 총86명)
1등 : 반당 10인, 노비 13구(口), 구사(丘史) 7인, 전(田) 150결, 은자(銀子) 10냥, 내구마(內廐馬) 1필
2등 :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인, 전 80결, 은자 7냥, 내구마 1필
3등 :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인, 전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
선조 : ^^ 장수 따위 필요 없다구 명나라 횽아가 다 해준다구 내시들 자 여기 공신 등록 해줄게
근데 확실한건 선조가 "의병" 이라고 대우 안 했던건 아님
조선은 사병을 금지하고 태조부터가 쿠테타에 성공한 군벌출신이다 보니
왜란 초에 모든 의병을 반역으로 본게 선조 만의 잘못도 아니고
뭐 그렇다 해도 일본군이 다 때려 부수니 의병들에게 직위를 내려서 “공식적”으로는 관직에 오르게 해서 해결 했지
+ 물론 보급은 안 해주지만 명령은 들어야지 한양 뚫리지만 응 옥쇄해 경기 의병들
+ 충무공께서는 보급 받기는 커녕 물자도 뺏겻지...
근데 그 총수 인 선조가 군사관련으로 잼병이지
+ 뭐... 이순신(부산 가라고)이나... 김명원(임진강 넘어! 평양성 가!)이나..
정문부(아니 왜 함경도 토인 봐주심? 가토요? 어쩌라고)나...
김덕령 말고 억울? 화날? 법한 의병장은
이산겸, 정문부, 정인홍, 곽재우 정도?
확실한건 선조는 “의병”이라서 대우 안 한건 아니고 관군이여도 대우 안 했지
+ 선조 : 아 물론 원균은 1등 공신입니다.
와...배를 수레에 끌고와? ㅋㅋㅋ 이건 진짜 인해전술이다 ㅋㅋ
그당시 조선에 귀순해서 살고 있던 동해여진족들(향화여진족)이 청군에게 조류정보와 바다지형정보를 다 알려줍니다
그래서 강화도가 쉽게 점령된 것입니다 저 동해여진족들은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라 항해에 능숙했지요
잘 배웠슴당 ❤
한글도 다시 배워야겠어요 ㅎㅎ 농담입니다
@@ryu3541 ㅎㅎㅎㅎㅎ 그럼 이렇게 쓸까여 아니다 쓸까요?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ㅎㅎ
@@ryu3541 님의 채널에 들어 가 봤더니 그래도 제가 좋아 하는 채널들을 구독 하고 있는데 일본 영상을 많이 보고 계시군여ㅎㅎ
저는 좀 강한 국수주의자가 되어서 누가 제 블로그에 오뎅이란 단어만 올려도 난리가 나는 미친 놈이라 ㅎㅎ
구범진 교수의 책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과는 세부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네요.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관점의 해석」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배움이 「잘못된 가르침」입니까??
뭐랄까...
이 기분 좋은 기다림? 기대?
슬슬 클라이막스인 삼궤구고두례를 향해서 가는 이 빌드업
다음이 굉장히 기다려지네요
마무리도 어떻게 지으실지 궁금하네요
오타 이신듯요. 삼배(세번 절하고) 구고두(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례(예법)입니다.
@@user-바다닮은이 감사합니다~~
선댓글 후감상
와 진짜 배가 산으로 갔네 ㅋㅋ
결국 고려와 조선의 군사력 차이같군요 군사력은 곧 경제력인데 열하일기를 보면 조선은 청나라 시기 장수들이 군사훈련때 말을 빌려타고 역마도 좀 달리면 다 쓰러져 죽을정도 약했다합니다 말 키우는 관리도 있는데 관리가 말에 관심을 갖는자체가 비웃음 대상이였다네요 선비가 말키우는데 관심 갖는다고
이렇게 나라가 유교에 찌들어 양반들은 군역이 면제되고 공업은 가내수공업 수준 무역은 조공무역이 다인나라가 무슨 돈으로 군마를 준비하고 활과 갑옷을 준비했겠습니까?
조선이 외침을 단한번이나
막은적이 있나요
임진왜란은 명의 지원으로 겨우 막아낸거지 이순신이 조선을 지켰다는 식의 교육은 열등감 일종이고 역사왜곡입니다
조선은 우리가 뼈아프게 반성하고 또 반성할 민족 최악의 시기지
여기서 무슨 자부심을 찿습니까 오히려 소홀히 하는 고려사에서 우리 자존심을 가지는게 맞을 듯 합니다
강의잘하시네ㅋㄱㅋ존나ㅋㄱㄱㄲ
용산에서 배를 만들어 수레로 실어 왔다구요? 아주 작은 나룻배도 아니고 적어도 100명 이상 탈수 있는 대형 군함일텐데... 그당시 그것을 실을 수 있는 수례와 장비가 있었나요? 요즘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고 비포장 산길을 말과 소가 이끄는 수레로 이게 가능 하다고 생각하나요? 이건 잘못된 썰 같은데요? 또한 한척도 아니고 몇십척을...
이러한 추론은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댐을 만들어 수나라 병사에게 수공을 이용해 물리쳤다는 잘못된 썰 뭐 이런거 아닌가요?
조선이 참 한심한 나라였던 시절이었네..쯧쯔..
선조 인조는 왕이 되면 안되는 인간들이다
하성군, 능양군이죠
@@장산범-k1u 광해군 연간군 하성군 능양군
뛰는 조선 위의
나는 청나라
사태 파악 못하고
뒷북이나 쳤던 조선
거기다 하늘까지
버리셨네? 우얄꼬!!
이러니 게임이 안되지...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역시 제 말이 맞죠 선생님?
선생님 댓글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날 새는 줄도
모를거라는 제 추측
안 보는 거 같으면서도
다 볼거라는 제 장담
맞죠 맞죠 맞죠???
인정 인정 인정???
후훗 넘 귀여우시네요
그건 그렇고
다음 강의는 또 어떨까
기다려지네요
평소 잘보는 구독자입니다
용산에서 배를 건조하여 수레로 이동했다고 하시는데 선박을만들려면 적어도1년이상 시간이 걸리지안을까요
청나라도 홍이포 없었다면 힘들었겠죠...
이 양반은 내 생일도 알것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