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에는(즉, 80학번 이전세대에 해당) 서울 법대, 공대 불합격자들이 시험날짜가 같은 연,고대를 갈수 없었기 때문에, 후기대학인 성대 법대와 한양 공대를 집중 지원 했습니다. 이들 서울 법대, 공대 불합격자들은 대체적으로 연,고대 법대,공대 지원하여 합격한 사람들보다 고3시절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집중 지원한 성대 법대와 한양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는 연, 고대 법대, 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보다 높았습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부 1급이상 고위공무원의 수는 성대 법대 출신이 연,고대 법대출신 보다 훨씬 많았고, 또한 굴지의 대기업체 임원수, 공대 출신 대학교수수, 기술고시 합격자 수 등 공대출신이 진출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양공대는 연,고대 공대를 크게 압도하였습니다.
맞는 말씀. 당시 연고대는 서울대 못 가실 분들이 가는 학교였지만, 성대나 한양 공대나 외대의 경우 서울대 떨어지신 분들이 가는 학교 맞아요. 서울대에 못간 열패감은 있었지만 연고대가 상위대라는 인식 없었음.. 당시 고등학교에는 서울대반, 연고대반이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 연고대반 분들은 서울대반에 못 들어가던 분들이었음.. (고법이나 세브란스 가려고 연고대반 가려던 분들도 있을 것임.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러함.) 자기들 위에 있는 서울대반 분들이 서울대 낙방하고 간 곳이 성대, 한양 공대, 외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음. 성대, 한양 공대, 외대가 서울대 낙방자들이 간 곳이라고 해서... 서울대 자체를 못 쓰던 자기들과 비슷한 레벨이었다고 연고가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음.. 전기만 따지만 연고 위에 서울 뿐이었지만 전후기 통틀어 서울과 연고 위에 성적 좋은 학교들은 여럿 있었음.
ㅇ 우리 아버지. 성대 64학번.. 당시 전교생 거의 다 서울대 탈락하고 후기로 들어온 학생들이었다고 함. 동급생 중에 연고대 떨어지고 들어온 사람은 한 명 보셨다고 함. (고대 법대인가 보고 떨어졌다고 함.) 당시 성대는 연고대 떨어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다고 함. 후기 모집인 탓에 예비고사 3등급까지 모집은 했지만 실제 합격자들은 거의 서울대 탈락자들뿐이었다고 함.. 그래서 성대생들은, 서울대=1류, 성대=1.5류, 연고대=2류..라고 불렀다고 함. (당시 본고사 문제 유형이, 서울대/성균관대가 같은 유형이었고 연/고대가 같은 유형이었다고 함. 유형이 서로 많이 달랐다고 함.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예비고사 1등급 수준 애들이 서울대/성균관대반에 들어가고, 2등급 애들이 연/고대반으로 들어가서 입시공부를 따로 했다고 함.. 그래서 연고대 본고사를 본 애들이 성균관대 본고사에 합격할 확률이 거의 없었다고 함. 당연히 서울대 탈락자들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함.) ㅇ 고등학교 시절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가는 애들이었고, 그 반 애들은 연고대만 붙으면 만족했으며, 전기 입시 때 서울대만 자기들 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 위에 서울대만 있는 줄 아는 경향이 있었다고 함.. 그러나 서울대반 애들은 서울대 썼다가 떨어지면 성대, 외대, 한양공대 등에 갔다고.. 후기 학교 합격자들은 서울대 떨어진 괴로움에 좀 우울한 경향이 있었다고 함. 그러나 서울대 떨어졌다가 후기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서울대를 아예 못쓸 실력이었던 연고를 내려다 보던 게 당연했다고 함. 서울대를 아예 지원 못할 애들이 다니던 연고대가, 서울대 낙방 뒤 후기로 들어간 후기 학교들과 자신들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 못 했다고 함. ㅇ 그런데 문제가.. 1학년 2학기가 되면 동급생들이 반 정도 없어지고, 2학년 1학기가 되면 서울대 뱃지를 달고 학교에 나타나서 자랑했다고 함.. 그래서 성대생들이 서울대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했다고 함.. 그러나 연고대에 대한 열등감 같은 건 전혀 없으셨다고 함. 오히려 내려다 보는 쪽이 많았을 거라고 하심. ㅇ (((( ↓↓↓ 아래부터는 성대에 대한 TMI가 될 수 있으니 성대 옛날 얘기에 관심 있는 분만 읽어 볼 것 )))) ㅇ 삼성 이병철 회장.. 그런데 삼성 이병철 회장이 학교 재단 이사장이 됨.. 60년대 말, 수원에 땅을 사더니 학교 전체를 수원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움 (신문에도 보도됨).. 수원으로 옮겨간다는 소문에 좋은 인재들이 성대에 지원을 꺼려하기 시작함.. 학교 수준 내려가기 시작함.. 재학생들이 '삼성재단 물러가라'고 매일같이 시위함.. 결국 70년대 쯤 이공대만 수원으로 보냄.. 이공대 나락감. ㅇ 의대 유치 거부.. 정부에서 학교에 의대를 신설할 것을 요청.. 유림들이 어디, 유학을 하는 학교에 상놈들이나 공부하던 잡과를 들일 수 있냐면서 반대했다고 함.. 그때 의대가 들어왔으면 병원 재정이 생기면서, 나중에 발생한 재정붕괴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함. (나중에 알고보니 의대를 설립할 돈이 없어서 유림들이 헛소리했다는 설이 있음). ㅇ 더 문제인 봉평재단..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삼성 재단이 학교를 포기함.. 학교는 재정붕괴에 직면한 상태에서 봉평재단이 학교를 맡음.. 봉평재단, 돈도 없고 하는 일도 없었음.. 등록금만으로만 운영될 뿐 유림이든 재단이든 그 어디에서도 재정이 들어오지 못하는 재정적자 학교가 됨.. 학교의 수준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연고대 떨어진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시작함.. ㅇ 이공계, 수원 이전... 결국 80년대가 되면서 이공계는 수원에 가있고 재단은 있으나 마나 한 학교가 됨.. 학교 건물이 폐가 수준으로 변함.. 학생들이 가고 싶지 않은 학교가 되어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서강대 밑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렸다고 함.. 그때 정말 많이 화나셨다고 함.. 그때 그냥 재수해서 서울대를 가든지 성적 낮춰서 연고대를 가든지 할 걸 괜히 1.5류 성대를 선택했다고 후회하셨다고 함. ㅇ 90년대 삼성 재단 재입성.. 과거의 전례를 볼 때 다시 학교를 망쳐놓을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함.. 그런데 지금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음. ㅇ 우리 어머니, 다른 학교 64학번.. 아버지 말씀에 틀린 사실이 없다고 하심.. 그러나 성대 학생들의 수준은 서울대급었지만 학교 자체의 매력은 성대보다 연고대가 더 있었다고 함.. 그러나 공부 잘한 수준으로 보면 연고대생보다 더 잘한 애들로 보였다고 함.. 삼성이 재단을 맡았다고 처음 신문에 보도가 났을 때 명륜동 뒷산 판자촌 다 밀어버리고 학교 규모가 더 커지고 하면 진짜 서울대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함.. '그때 그렇게 했으면 누가 안암동 촌동네로 학교를 가냐? 중심가인 명륜동으로 학교를 가지!'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성대에 대한 인식이 연고대보다 나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현실은 판자촌을 미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를 수원으로 보내려고 시도했던 것임.. 그때 어머니는 성대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하셨으나 현재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선배들이 워낙 똑똑한 분들이 많아서 정관계에서 많이 도와줬던 것 같다고 추측하심.. 고려대는 우석 의대와 합병해서 의대도 마련하고 근처 마을 땅을 사서 이공대를 세우는 등 항상 좋은 결정을 꾸준히 해온 반면.. 성대는 정부가 나서서 인가해 주겠다는 의대 신설을 거부하고 이공대는 수원으로 보내는 등 나쁜 결정만 꾸준히 해온 결과, 오늘날 대학 서열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하심. 요즘 사람들이 '서성한'이라고 하는 것 보면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하심. ㅇ 종합해 보면, 유림들은 아주 무능한 분들이셨음이 틀림없고, 지금 삼성 재단 말고 당시 삼성 재단은 조금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음. 연고대 재단들같이 학교를 키울 생각이 아니라 학교 장사 같은 걸 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듦. ㅇ 이 댓글을 보는 연고대생들은 발작할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초반 학번분들에게 확인하고 발작 바람. ㅇ 이것보다 더 자세히 알고 계신 6,70년대 학번 분들께 꼭 코멘트 부탁 드림.
제가 알기로는 울 아버지시대때 예비고사는 그냥 대입자격을 부여하는 최소시험이라고 들었는데요..즉 예비고사 성적으로 들어간게 아니라고하더군요. 그래서 본고사시험 국 ,영,수 이 3과목으로 선발했다고들었습니다. 물론 국,영수, 성적이 뛰어나면 당연 예비고사 성적도 좋을수밖에요.
@@user-kv5cv1hb6r 완전 엘리트 분들끼리 만났네요. 의대가 지금만큼의 위상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상위권 과였음은 틀림 없죠. 그 때는 여자들이 대학에 가더라도 여자들이 많이 가는 과가 정해져있다 시피 했는데 사대가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할머님도 과 잘 가신겁니다.
@@하젤-j8j 서울역 옆~~은행원들이 많이 들어간 야간대학---- (저 시절까지~~)고시 많이 붙었음 현 경기 도지사^가 저때 들어감 저 시절엔 장학/대출 제도가 거의 없어.....돈 없으면 대학 못감!!!! 그래서 직장다니며..... 국제대학등 야간으로 가던지, 아니면 국립대/사관학교... 특히 등록금이 절대 적었던 해양대 항공대가~~수재들의 돌파구였슴!!!!!!!!!! (연/고 합격권이어도...항공대 가기도🎉)
그 당시에는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제2외국어, 과학, 등 본고사 배점이 400점이상이고, 예비고사는 340점이었다. 본고사 비중이 예비고사보다 커서 예비고사 점수는 그야말로 참고해야 할 자료일 뿐...예비고사 230점인데도 본고사에서 고득점 얻어 서울대 가던 시절 얘기다.
저때 지방대 갈 성적도 안됐는데 고려대 입학한 학생들이 많았지 70년대는 그냥 고려대가 매일 데모에 고대 학생들이 경찰도아닌 군인들한테 잡혀가던 시절로 학교가 거의 망할뻔했고 고대는 데모학교로 각인 그래도 그 시절 학교가 망해가던 시절에 엉터리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도 대부분 뛰어난 자질로 사회지도층으로 훌륭하게 성장 ..
서울대합격 사실상 3대 명문고입니다 경기고 경북고 서울고 당시 경북고는 서울법상대아니면 한강 이남 최고명문대 경북대 입학하였지 60년대는경북고 경북대가 한강 이남에서 TOP이었지 특히의대는연대 의대와 같았다 고대 의대는눈도 마주치지도못했다 의대 역사작년 7월에 100주년이다요.
@@봄날-e2g 서울대 전체 합격생 수에서 대구 경북고가 서울 경복고를 이긴 적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즉, 서울대 전체 합격생 수로 비교하면, 경북고는 3위는커녕 거의 매년 전국 7위였음) 그러나 경북고에서는 다른 명문고와는 달리 서울대 합격자(매년 120명 정도) 중 약 1/3 정도가 항상 문과 최상위 학과인 법대, 상대를 갔고, 특히 이과 쪽은 대구에 경북대 의대라는 좋은 의대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집안형편이 좋지 않으면 의사 지망생은 대부분 경북대 의대로 진학하였습니다.(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가 된 것이 1980년경이었으므로, 1970년대는 국민 대다수가 못 살았음) 즉, 최상위 학과인 법대, 상대 합격자 수만 비교해 보면 경북고가 매년 전국에서 2, 3위를 다투었기 때문에(1위는 압도적으로 경기고였고, 2, 3위는 서울고와 경북고가 번갈아 가면서 했음) 사실상 3대 명문고에 경북고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입니다.(물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mansoona3918 법대 상대가 서울대 문과에서 최상위라는건 인정하지만 문과 이과 통틀어 최상위라는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문과 이과가 통합수능을 봐서 이과 수학(미적, 기하)과 과탐이 문과 수학(확통)과 사탐보다 어렵다는거 모두들 인정하고 있지만(과탐 4~5등급 학생이 사탐런하면 어렵지 않게 1~2등급 합니다) 1970년대는 전 과목을 문과 이과가 같은 문제로 예비고사를 봤기 때문에 수학과 과탐은 이과생이 아닌 문과생이 배우는 범위내 내용과 수준으로 낮춰서 봤습니다 서울대 본고사도 문과의 수학과 사탐이 이과의 수학과 과탐보다 쉬워 공부시간이 적게 소요되었고 서울대 이과생들은 수학(그 당시 일본 동경대 본고사 수준)과 과탐 4과목(물화생지 지금 과탐II 수준) 공부에 시간을 많이 소요했기 때문에 단순 예비고사 성적이나 본고사 성적으로 비교하는건 적절치 않습니다 서울대 공대생 자연대생 의대생 학력 수준이 법대생 상대생보다 적어도 낮지는 않고 높다고 봐야합니다 요즘 수능시험에서 과탐I이 사탐보다 2~3배 학습량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과탐II는 과탐I에 비해 2배정도 학습량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수학 미적분도 확통보다 학습량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70년대 서울대 이과 준비생들은 과탐II 수준의 물화생지 공부와 수학은 홍성대 수학II와 수학III 수준인 일본 동경대 본고사 시험서로 공부하다보니 시간상으로 배점 비율이 낮은 예비고사와 그중에서도 사탐과목 공부는 상대적으로 소홀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게 문제지 과거 그 자체는 하나의 역사이므로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또 현재가 쌓여서 미래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과거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 조선시대 역사도 알 필요가 없고, 우리의 어린 시절도 알 필요가 없겠네요?
중앙대가 점수 낮은건 72년 서라벌예술대학 통합후 점수대가 낮은 예능계인원들이 너무 많아서임. 당시 통합전 서라벌예대만 700명임..이러니 평균점수 안떨어지는게 이상하지. 그래서 예술대 인원을 꽤 오래줄여옴..그래서 70년중후반대 대학평균으로 보면 낮은게 당연한것임..이런사정 모르면 마치 중앙대가 몰락한것처럼 보이나 대학 부피키우다보면 점수 평균하락은 당연한것임. 적십자간호대흡수할때도 인원이 늘어 간호대평균점수는 많이 떨어졌으나 대신 간호대 정원을 더 받아왔듯이
뭘 모르는... 연고대는 서울대 못 가는 애들이 가는 학교였고, 성대, 외대, 한양 공대는 서울대 응시했다 낙방한 애들이 가는 학교였음. 당시 고등학교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가는 애들이었음. (고법, 세브란스 제외일 수도 있음.) 그 서울대반 애들이 설대 떨어지고 성대 외대 한양공대 갔음. 그래서 설대=1류, 성대=1.5류, 연고대=2류.. 라는 말도 했었음. 물론 전기에서는 연고 위에 서울 밖에 없었지만, 전후기 다 합치면 연고를 내려다 보는 학교들 많았음 지금 기준으로 그때를 보면 안 됨. 후기라서 예비3등급까지 모집했지만.. 합격자는 거의 서울대 탈락자들이었음.. 간혹 고법이나 연상 탈락자들 중에 일부 겨우 들어올 수 있었음.. 연대가 예비2등급이었다고 3등급이 모집 제한이었던 후기 모집 학교보다 위가 아니었음. 고등학교 연고대반 분들은 서울대를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하셨음. 요즘 '스카이 스카이' 한다고 연대가 서울대급이 아니었음. 서울대와 연고 사이에는 더 성적이 좋은 학교가 여럿 있었고 그분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간 아쉬움은 있었어도 연고대 못 들어간 열등감 같은 것 전혀 없었음. 오히려 내려다 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임. 연고, 요즘 자긍심 갖는 건 좋은데 과거에도 언제나 스카이였을 거란 생각 속에 지나친 우월감 가질 필요없다고 권함. 옛날 어른들 중에 연고대 우습게 보던 분들 많음.
총입학생 평균이 아닌 학과별 평균을 비교하면 부산대와 경북대는 비슷했습니다. 꼭 우열을 가리자면 경북대가 거의 대부분 학과에서 부산대 보다 조금 높았습니다. 특히 문과는요. 당시 비인기 학과인 농과대학이 부산대학에는 없었기에 전체 평균에서 마치 부산대가 경북대 보다 상위에 있고 경북대가 낮게 있는 것입니다. 여기 사실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객관적 판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 수치과 결과치라 댓글 달아봅니다.
비슷했습니다. 당시 비인기 학과인 농대가 부산대에는 없었고 경북대에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학생 전체 평균이 경북대가 낮은 것입니다. 학과별 평균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꼭 우열을 가리자면 당시 경북대가 조그 더 높았습니다. 박정의 대통령의 모교이기에 지역 인재들이 서울대 아니면 경북대 가겠다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홍길동-g4i4x 두 학교가 서로 비슷했는데, 그래도 부산대가 조금 더 높았습니다. 비인기학과였던 농대가 경북대에는 있었고, 부산대에는 없었기에 전체 학과를 모두 뒤죽박죽 다 섞어서 통계를 내면 부산대가 실제보다 더 높게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참고로, 저는 지거국 사범대 77학번 출신입니다.
항공대/해양대가 높은 걸 보면 과거에 해외에서 일하며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조종사/항해사가 촉망받는 직업이었단 걸 알 수 있겠네요.
당시 항공대도 국립이어서
전학년 장학생이었기 때문.
제가 이 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줏어 듣기로는 대학등록금 해결하는거 자체가 큰 일이었기 때문에 국립대 우선일수밖에 없는 시대였음.무조건 서울대 최고에 각 지거국의 시대였음.
. 1970년대에는(즉, 80학번 이전세대에 해당) 서울 법대, 공대 불합격자들이 시험날짜가 같은 연,고대를 갈수 없었기 때문에, 후기대학인 성대 법대와 한양 공대를 집중 지원 했습니다. 이들 서울 법대, 공대 불합격자들은 대체적으로 연,고대 법대,공대 지원하여 합격한 사람들보다 고3시절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집중 지원한 성대 법대와 한양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는 연, 고대 법대, 공대 합격자들의 예비고사 평균점수보다 높았습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부 1급이상 고위공무원의 수는 성대 법대 출신이 연,고대 법대출신 보다 훨씬 많았고, 또한 굴지의 대기업체 임원수, 공대 출신 대학교수수, 기술고시 합격자 수 등 공대출신이 진출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양공대는 연,고대 공대를 크게 압도하였습니다.
웃기는 소리.
맞는데 뭣이 웃긴단 말씀?
성대법대가 70년대 초반에 잠깐
서울대 뒤를 이었으나 윗글은 많이 과장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시절에 상위권 학생들에게 예비고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입시 반영비율도 낮아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학교별 출제경향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맞는 말씀.
당시 연고대는 서울대 못 가실 분들이 가는 학교였지만,
성대나 한양 공대나 외대의 경우 서울대 떨어지신 분들이 가는 학교 맞아요.
서울대에 못간 열패감은 있었지만 연고대가 상위대라는 인식 없었음..
당시 고등학교에는 서울대반, 연고대반이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 연고대반 분들은 서울대반에 못 들어가던 분들이었음.. (고법이나 세브란스 가려고 연고대반 가려던 분들도 있을 것임.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러함.)
자기들 위에 있는 서울대반 분들이 서울대 낙방하고 간 곳이 성대, 한양 공대, 외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음.
성대, 한양 공대, 외대가 서울대 낙방자들이 간 곳이라고 해서...
서울대 자체를 못 쓰던 자기들과 비슷한 레벨이었다고 연고가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음..
전기만 따지만 연고 위에 서울 뿐이었지만
전후기 통틀어 서울과 연고 위에 성적 좋은 학교들은 여럿 있었음.
성법,한공,외영은 후기 3대장으로 실력은 정확히 서울대 연고대사이 또는 연상,고법급이었죠ᆢ
당시 종합대학 중 예체능계 입학 인원이 많은 학교가 비교적.. 낮은 평균점을 받을 수 밖에 없음..... (서울대는 비예체능계 입학생의 점수가 워낙 높아 상쇄 )....
ㅇ 우리 아버지. 성대 64학번.. 당시 전교생 거의 다 서울대 탈락하고 후기로 들어온 학생들이었다고 함. 동급생 중에 연고대 떨어지고 들어온 사람은 한 명 보셨다고 함. (고대 법대인가 보고 떨어졌다고 함.) 당시 성대는 연고대 떨어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다고 함. 후기 모집인 탓에 예비고사 3등급까지 모집은 했지만 실제 합격자들은 거의 서울대 탈락자들뿐이었다고 함.. 그래서 성대생들은, 서울대=1류, 성대=1.5류, 연고대=2류..라고 불렀다고 함.
(당시 본고사 문제 유형이, 서울대/성균관대가 같은 유형이었고 연/고대가 같은 유형이었다고 함. 유형이 서로 많이 달랐다고 함.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예비고사 1등급 수준 애들이 서울대/성균관대반에 들어가고, 2등급 애들이 연/고대반으로 들어가서 입시공부를 따로 했다고 함.. 그래서 연고대 본고사를 본 애들이 성균관대 본고사에 합격할 확률이 거의 없었다고 함. 당연히 서울대 탈락자들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함.)
ㅇ 고등학교 시절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가는 애들이었고, 그 반 애들은 연고대만 붙으면 만족했으며, 전기 입시 때 서울대만 자기들 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 위에 서울대만 있는 줄 아는 경향이 있었다고 함.. 그러나 서울대반 애들은 서울대 썼다가 떨어지면 성대, 외대, 한양공대 등에 갔다고.. 후기 학교 합격자들은 서울대 떨어진 괴로움에 좀 우울한 경향이 있었다고 함. 그러나 서울대 떨어졌다가 후기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서울대를 아예 못쓸 실력이었던 연고를 내려다 보던 게 당연했다고 함. 서울대를 아예 지원 못할 애들이 다니던 연고대가, 서울대 낙방 뒤 후기로 들어간 후기 학교들과 자신들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 못 했다고 함.
ㅇ 그런데 문제가.. 1학년 2학기가 되면 동급생들이 반 정도 없어지고, 2학년 1학기가 되면 서울대 뱃지를 달고 학교에 나타나서 자랑했다고 함.. 그래서 성대생들이 서울대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했다고 함.. 그러나 연고대에 대한 열등감 같은 건 전혀 없으셨다고 함. 오히려 내려다 보는 쪽이 많았을 거라고 하심.
ㅇ (((( ↓↓↓ 아래부터는 성대에 대한 TMI가 될 수 있으니 성대 옛날 얘기에 관심 있는 분만 읽어 볼 것 ))))
ㅇ 삼성 이병철 회장.. 그런데 삼성 이병철 회장이 학교 재단 이사장이 됨.. 60년대 말, 수원에 땅을 사더니 학교 전체를 수원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움 (신문에도 보도됨).. 수원으로 옮겨간다는 소문에 좋은 인재들이 성대에 지원을 꺼려하기 시작함.. 학교 수준 내려가기 시작함.. 재학생들이 '삼성재단 물러가라'고 매일같이 시위함.. 결국 70년대 쯤 이공대만 수원으로 보냄.. 이공대 나락감.
ㅇ 의대 유치 거부.. 정부에서 학교에 의대를 신설할 것을 요청.. 유림들이 어디, 유학을 하는 학교에 상놈들이나 공부하던 잡과를 들일 수 있냐면서 반대했다고 함.. 그때 의대가 들어왔으면 병원 재정이 생기면서, 나중에 발생한 재정붕괴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함. (나중에 알고보니 의대를 설립할 돈이 없어서 유림들이 헛소리했다는 설이 있음).
ㅇ 더 문제인 봉평재단..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삼성 재단이 학교를 포기함.. 학교는 재정붕괴에 직면한 상태에서 봉평재단이 학교를 맡음.. 봉평재단, 돈도 없고 하는 일도 없었음.. 등록금만으로만 운영될 뿐 유림이든 재단이든 그 어디에서도 재정이 들어오지 못하는 재정적자 학교가 됨.. 학교의 수준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연고대 떨어진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시작함..
ㅇ 이공계, 수원 이전... 결국 80년대가 되면서 이공계는 수원에 가있고 재단은 있으나 마나 한 학교가 됨.. 학교 건물이 폐가 수준으로 변함.. 학생들이 가고 싶지 않은 학교가 되어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서강대 밑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렸다고 함.. 그때 정말 많이 화나셨다고 함.. 그때 그냥 재수해서 서울대를 가든지 성적 낮춰서 연고대를 가든지 할 걸 괜히 1.5류 성대를 선택했다고 후회하셨다고 함.
ㅇ 90년대 삼성 재단 재입성.. 과거의 전례를 볼 때 다시 학교를 망쳐놓을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함.. 그런데 지금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음.
ㅇ 우리 어머니, 다른 학교 64학번.. 아버지 말씀에 틀린 사실이 없다고 하심.. 그러나 성대 학생들의 수준은 서울대급었지만 학교 자체의 매력은 성대보다 연고대가 더 있었다고 함.. 그러나 공부 잘한 수준으로 보면 연고대생보다 더 잘한 애들로 보였다고 함.. 삼성이 재단을 맡았다고 처음 신문에 보도가 났을 때 명륜동 뒷산 판자촌 다 밀어버리고 학교 규모가 더 커지고 하면 진짜 서울대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함.. '그때 그렇게 했으면 누가 안암동 촌동네로 학교를 가냐? 중심가인 명륜동으로 학교를 가지!'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성대에 대한 인식이 연고대보다 나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현실은 판자촌을 미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를 수원으로 보내려고 시도했던 것임.. 그때 어머니는 성대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하셨으나 현재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선배들이 워낙 똑똑한 분들이 많아서 정관계에서 많이 도와줬던 것 같다고 추측하심.. 고려대는 우석 의대와 합병해서 의대도 마련하고 근처 마을 땅을 사서 이공대를 세우는 등 항상 좋은 결정을 꾸준히 해온 반면.. 성대는 정부가 나서서 인가해 주겠다는 의대 신설을 거부하고 이공대는 수원으로 보내는 등 나쁜 결정만 꾸준히 해온 결과, 오늘날 대학 서열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하심. 요즘 사람들이 '서성한'이라고 하는 것 보면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하심.
ㅇ 종합해 보면, 유림들은 아주 무능한 분들이셨음이 틀림없고, 지금 삼성 재단 말고 당시 삼성 재단은 조금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음. 연고대 재단들같이 학교를 키울 생각이 아니라 학교 장사 같은 걸 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듦.
ㅇ 이 댓글을 보는 연고대생들은 발작할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초반 학번분들에게 확인하고 발작 바람.
ㅇ 이것보다 더 자세히 알고 계신 6,70년대 학번 분들께 꼭 코멘트 부탁 드림.
77학번 내 친구는 대구 계성고로 중대 공대 떨어지고 성대 공대 합격하여 SK건설 이사로 제대.
어찌 그리 잘알고 계십니까? 성대졸업생 혹은 가족님들이 성대출신이가 봄니다.반갑습니다. 저는 70년말80년초 다녔습니다. 율전에서 자취하면서요.
봉평그룹이 아니라 봉명그룹임. 현재 아세아 시멘트...도투락도 봉명그룹 소속 이었고, 문경의 문창고도 봉명 그룹에 속해 있었어요.
법대일부와 경제 일부외는 입결 개수준
일부는 맞으나 삼성 의대 부분등 대부분은 엉터리
조부모님들과 같이 사는 입시생들은 가톨릭대, 항공대, 해양대 써보라는 말 가끔 듣기도함 가톨릭대랑 항공대는 높은거 알았는데 해양대가 저때 저렇게 높았는줄은 몰랐네...
카톨릭 의과대학~~
서울 강남 소재......
(지금의 카톨릭대학이 아님)
그 당시 해양대 엄청 높았슴.
외항선 타면 복수여권 소지자로서 해외를 들락날락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견문도 넓히고....
당시 복수여권 소지자는
외무부 공무원,
종합상사맨,
외항선원들 정도.
항공대는 특차였고
예비고사는 본고사에 10% 만 반영할때라 주요대학은 합격만 하면 될때였음 외대 성대는 후기이고 비교할 기준이 없음
후기 3대장이 성법 외영 한공이었져
@@Frediqecon 외대 성대(문과) 한양(공대) 후기3대명문 이었죠
화면 그대로 ᆢ
홍대,국민, 숭전대등은
당시 명지대보다 입결과
인지도, 평판의 측면에서
분명히 낮던
대학들입니다.
현재의 저평가된 명지대
배치입결을 가지고
당시의 명지대 순위를 논하는 것은 팩트와 맞지 않습니다 @@몽영-h9r
저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서울 올라가려면 산넘고 물건너 가던 시절이라 지방거점 대학의 명성을 지킬 수 있지 않나보네요
저 당시엔 서울도 상위권 몇개빼고 다 쓰레기 대학이었다고함...어르신들이 쪽팔려서 안간다고 한 대학이 대부분이었다고...특히 3국 ..단국 건국 동국은 지방에서도 대학으로 안쳐줬다고...ㅋㅋ
당시 서울대는 사회계열이 의예과와 함께 최고였고 다음 인문계열, 공학계열순이었습니다.그리고 후기의 왕자 성대법과가 인문계, 공학계사이에 위치하구요...사범대가 다음 그리고 연대상대 고대법대.....
서울대는 예비고사보다 본고사가 합격여부를 좌우한 시절이었고 특히 문과는 수학과 사탐이 이과의 수학과 과탐{물화생지 4과목)보다 훨씬 쉽고 공부량이 적어 예비고사 점수로 비교하는건 의미없음 그 당시도 이과가 더 우수함
성대나 한양대, 외대는 후기로 입학점수는 높습니다만 2차선택처란걸 감안하면 3-5점 마이너스해야 할듯요....
77학번입니다.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설악산-c8x 1977년? 와우 조상님이시네
항공대 가톨릭대는 특수대학이고 남여공학 대학교는 부산대학교가 3위네요
항공대 한국해양대^가 특수 특차 대학임~~
그리고 요즘은 후기라고하는데 그당시는 2차대학이라고해서 재수 , 3수가 싫어서 개쪽팔림을 감수
하고 들어가는 대학이라고 들었네요..
요즘 그대학들도 어느정도 1차 모집 하지만요.
제가 알기로는 울 아버지시대때 예비고사는 그냥 대입자격을 부여하는 최소시험이라고
들었는데요..즉 예비고사 성적으로 들어간게 아니라고하더군요.
그래서 본고사시험 국 ,영,수 이 3과목으로 선발했다고들었습니다.
물론 국,영수, 성적이 뛰어나면 당연 예비고사 성적도 좋을수밖에요.
소수점 차이로 순위가 결정되다가 서울대는 2위와 25점 이상 차이로 1위이면 도대체 저 당시 서울대는 누가 들어간건지?
서울대 꼴찌가 연고대 일등보다 공부잘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듯 하네요.
당시 서울대와 연고대 본고사 과목이 서로 달라 명문고에서 공부잘해 서울대반으로 나뉘어 서울대 진학 준비한 학생들은 무조건 서울대 진학해야 했습니다. 서울대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 싹쓸이해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80년대 학력고사 초기에는 서울대 최하위권 철학과가
연대경영 고대법학보다 높았다
서울대공대 =연대의대
서울대농대= 경북대ㆍ부산대의 공대수준 이었다
틀린 말임 서울공대는 연대의대보다 높고 서울농대가 연대의대 수준이었음 본고사 시절이라 서울농대가 연대의대 들어가는거보다 어려웠음 @@카이로스-r1p
@봄날-e2g 연대의대 = 서울공대상위학과 었어요
서울공대하위학과ㆍ농대=지거국공대 수준 이었음
80학번 임
진짜 공주대랑 제주대 경상국립대 보면 세월이 무상함을 느낌;;
세월의 무상함이 아니라 사범대 거품이 빠진거지
항공대가 그 당시에 매우 높았네요 ㄷㄷ
배철수~~^^
활주로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도 상위권이네요.그때당시 마도로스 선장 돈도 많이 벌고 외국도 나가고 인기좋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역시 👍
@@마린보이-o8v
등록금 거의 제로~~~군대 예비역 소위로
해결........^^한국 해양대는 명문대 였슴
저때는 배 몇번타면 집값이 나오던 시절 아닌가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우리할머니 부산대 나왔는데 엄청 공부 잘하신 거구나
할머니께서 연세가 몇인지 몰라도 60년대 초중반생만 해도 가난한 집안에선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딸을 보내서 생활비 하던 집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도 부산대 나왔으면 공부 엄청 잘하신건데 할머니께서 부산대 나왔으면 초엘리트 수준.
@@성이름-p9t6t 할아버지 부산대 의과대학 나오셨고 할머니는 부산대 국어 교육과 나오셨어요 저는 그정도로 앨리트인 줄은 몰랐네요
@@user-kv5cv1hb6r 완전 엘리트 분들끼리 만났네요. 의대가 지금만큼의 위상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상위권 과였음은 틀림 없죠. 그 때는 여자들이 대학에 가더라도 여자들이 많이 가는 과가 정해져있다 시피 했는데 사대가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할머님도 과 잘 가신겁니다.
70년대 후반 당시 부산에선 가난한 집안은 연고대 감당할 수 없다는 인식여서 서울대 자신 없으면 부산대 지원하는 분위기. 내가 부산대 갈 때 나보다 성적 아래위로 근처인 친구들 여러 명이 연세대, 고려대 등 갔었고요.
@@ronin3372 77학번 국립 사범대 출신으로서 님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저는 강원도 시(市) 지역 인문계 출신인데, 성적이 뛰어났던 제 동기들 중에서
여러 명이 연고대 대신 부산대와 경북대로 진학했습니다.
제가 76년 고교 졸업 ㅡ 유신막내입니다! 전후기 대학들 감회가 새롭군요! 이후 뺑뺑이 세대!
인하공대에 대기업 임원수를 보면 알죠 과거를 호도하지 마세요
옛날 이화여대의 대단한 위상을 느끼게 합니다.
대신 명지전문대가 74년 설립되어 예체능계생들이 많이 입학했죠...
90년대 경북대 공대 출신이 내무반에 들어왔을 때 중앙대 동국대는 명함도 못꺼내던 시절이였는데 격세지감이네요
1974년도 (과별로 차이가 너무 많음) :
서울대--->>연대=고대=성대(2차)=외대(2차)=이대---->>서강대!!
문과 : 서울대 사회게열---->>성대법대=외대영어과!!
성대 법대와 외대 영어과 그리고 한양대 공대는 서울대 상위권과 마찬가지였죠
그때는 경북의대가
서울공대보다 낮았슴.
저 당시에 고려대가 시위하던 때라서 입결이 평소보다 조금 낮아졌었다고 합니다
다른데는 안했나?
시위하면 입결이 낮아지나요?
말이 안되는 논리네요.
저당시는 대다수 대학들이 시위를
할땐데,,,,
시위는 무슨
고대는 그당시 연대와 격차가 있었고 공대는 연대는 물론이고 한양대보다도 뒤처진 시대임
@@몽영-h9r서울대는 국영수외에 과학 4과목 물화생지 모두 시험치렀음
외대 동시통역대학원 세계1위 !!
((2021외무고시 4강대학))
1위. 한국외국어대(12명)
2위. 서울대학교(11명)
3위. 연세대학교(6명)
4위.고려대학교(3명)
(외시합격자수,외교관 양성 4강대학교)
후기의 강자 성균관대!! 서울대 떨어지면 성대 갔었던 시절!!
가난한 천재들은 육사로도 많이 갔음, 서울대가 학비가 싼건 차제하고 지방 시골 사는 천재들은 너무 가난해서 서울 유학 자체가 안되었기 때문에 의식주 해결과 학비 무료에 용돈까지 주는 육사로 갈 수 밖에 없었음
육사가 뭔천재? 영화에서 과장한 겁니다/ 당시 사관학교 컷은 당시의 지방국립대수준 이었ㄷㅏ
@@카이로스-r1p 누가 컷을 업급했나? 시골 사는 돈없는 천재들에게는 대안이 없었다는 표현, 문맥을 잘파악 하길
@@i1l1ii1li1 사관학교입학생은 실력spectrum이 넓어요 당시 지방국립대(경북대ㆍ부산대)인기학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전두환 영화 본후 사관학교=서울대수준 이라고 본다면 큰 착각입니다 / 당시 입주과외해서 대학졸업한 사람많아요/
@@i1l1ii1li1 시골사는 천재가 사관학교? 천재아닙니다 나는80학번이라 당시 상황잘알아요
@@카이로스-r1p 등록금은 제외하고라도 유학비조차 없는 천재들만을 구체적으로 말했고 따라서 쓸데없는 표본은 필요없습니다. 착각같은 소리 하지말고 상대방 의견의 논지 파악을 좀 하길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사관학교 입결 관심 없습니다.
국민대가 엄청 올랐네요 저땨는 옆에 서경대보다 아래였다니
국민대보다 아래였던 건국대가 제일 많이 성장했죠 ㅋㅋ 국제대는 서대문에 있던 야간대학으로 주로 직장인들이 들어갔던 미니학교였죠.과도 몇 개 없었던듯
@@하젤-j8j
서울역 옆~~은행원들이 많이 들어간 야간대학----
(저 시절까지~~)고시 많이 붙었음
현 경기 도지사^가 저때 들어감
저 시절엔 장학/대출 제도가
거의 없어.....돈 없으면 대학 못감!!!!
그래서 직장다니며.....
국제대학등 야간으로 가던지,
아니면
국립대/사관학교...
특히 등록금이 절대 적었던
해양대 항공대가~~수재들의
돌파구였슴!!!!!!!!!!
(연/고 합격권이어도...항공대 가기도🎉)
예전에 4국대학이라고
건국
동국
단국
국민...ㅋㅋ
따라지라고 웃음거리 소재였죠.
그나마 건대 축산과, 동대 경찰행정과 정도는 취직 좀 된다해서...
국민대는 임정 출신들이 세웠죠.
그래서 성대보다는 못하지만... 해방 후 한가닥하는, 성깔 있는 사람들이 교수로 많이 갔어요.
이런 사람들은 국민대에서 경험 쌓아서 혜화동에 있는 성대로 가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시립대 등록금이 싸다.
이름도 산대.
연대 영문 실패하고 후기로 시립대 갔다.
실속있는 학교,
쪽수가 적고 애교심은 살짝 부족하다 ㅎㅎ
😊😊
예비고사 몇점 만점인가요.300점 인가요
340점(체력장 20점 포함)
저땐 국영수 본고사가 변수!!!!
@@몽영-h9r 학력고사 점수하고 똑같네요
예비고사는 말그대로 대입시험의 예선전 주관식의 국영수와 선택과목 몇과목이 당락을 결정
1970년대 명문대 =>서울대.연세대.부산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서강대 성대 한대공대 정도
님이 약간 맛이 간게 외대, 서강대를 넣는거 보곤. 박근혜가 서강대 전자 나왔는데 외대, 서강대, 경희대 이런ㄷㅐ가 대학이었나? ㅋㅋ 거기다 지방대는 부산대를 넣어 놨네.
@@ghaku-i7i 당시 서울대 연대 부산대 이대~외대 와 성대(문과 후기 최정상)한양(공대후기명문)~!!
@@hsKim-nw1ur
맞아요. 80년대 후반 이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되죠.
@@ghaku-i7i
74학번 기준
서울대 사회계열 (법대/ 상대) 떨어지면 2차로 성대 법대나 외대 영어과로 갔음!!
연대 상대나 고대 법대 지원생들과는 모의고사 수학점수가 15점 이상 차이나는 수준!!
박근혜는 공부를 못 해서... 당시에는 이름도 없던 서강대에 갔음
입학 후 아버지가 팍팍 밀어 줬음.
서강대는 전문대, 단과대로 시작한 거여서 지금도 캠퍼스가 작아요
하긴 해방 후에는 연세대, 고려대도 전문대로 시작하였죠
1970년대 순위가 정상적인 범주에 순위인거같음
1976년=48년전=대한민국 건국 30년도 안되던 시절=2차산업화 한참 진행중이던 시절 =gdp 급성장 중이고 고등교육시스템 완성이 아직 안되던 시절ㅋㅋㅋ
그러니 추억거리나 재미만 봅시다 괜히 대학들 비난들 마시고~
헐 지거국이 서울 중상권 이상 수준 이군요 ㅎㅎ
그 당시에는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제2외국어, 과학, 등 본고사 배점이 400점이상이고, 예비고사는 340점이었다. 본고사 비중이 예비고사보다 커서 예비고사 점수는 그야말로 참고해야 할 자료일 뿐...예비고사 230점인데도 본고사에서 고득점 얻어 서울대 가던 시절 얘기다.
그건 맞아요, 깊이 있게 공부한 친구들이 좋은대학 갔었죠
@@ghaku-i7i
서울대 영어 본고사~~~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고난도 영작은 기본^^
고대는 본고사 시험에 문과는 과학 4과목중 1개 선택 이과도 사회 4과목중 1과목 선택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본고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예비고사에 별로 신경을 안씀
저때 지방대 갈 성적도 안됐는데 고려대 입학한 학생들이 많았지
70년대는 그냥 고려대가 매일 데모에 고대 학생들이 경찰도아닌 군인들한테 잡혀가던 시절로 학교가 거의 망할뻔했고 고대는 데모학교로 각인
그래도 그 시절 학교가 망해가던 시절에 엉터리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도 대부분 뛰어난 자질로 사회지도층으로 훌륭하게 성장 ..
건국대는 진짜 장족의 발전이네요
삼국대에서 진짜 엄청 올라왔죠
지금은 중건외시
삼국대(동국 건국 단국)를 진짜 공부 좀 하는 사람들은 삼류대라고 하던때도 있었다함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대겠지 물론 따지고 보면 어느정도 공부해야 했지만
1970년대 명문대는 서울대와 성대법대,한양공대였습니다.
그리고~~~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상대.....
대단했슴^^
외대 영어과 뺄수 없죠. 후기 3대장!
고대 76년 입결.낮은건 75년 긴급조치 학교폐쇄 때문이었지.. 부산대 이대 항공대 등 희망회로금지
고대는 그 당시도 연대에 한참 뒤처진게 팩트임
@봄날-e2g 그건 당신 희망사항이고.. 70년대 중후반 제외한 다른 배치표 보고와라 한참 밑인지 ㅎㅎ
@@Samahcl 늘 뒤처졌다 쭈욱 봤다 산증인이다
@봄날-e2g 좀 팩트에 기반해서 주장하기 바람. 한참 밑이라고 했으면 그 증거를 가져와야하는데 역대 입시성적에서 고대가 연대 한참밑인적은 이영상의 70년대 중후반 외엔 없었음. 문과는 거의 비슷했고 차이난다는 이공계마져 한급간 차이였음.
@@Samahcl 그건 인정 요즘 하도 국수탐 백분율 평균치로 한 백분율 갖고 고대가 연대는 밑이다 하는 댓글들이 많아서 백분율 평균치보단 누백이 보다 정확한 지표란 소리로 한 소리임
민족 동대가 25위라고..ㅜ😊
헐.. 서울 일부 빼고 원서만 내면 들어가던 학교들이 무슨 점수야???
저때는 예비고사가 있어서
거기 합격권에 들지 못하면
아예 대학원서도 못 낼 때임.
서울대합격 사실상 3대 명문고입니다 경기고 경북고 서울고
당시 경북고는 서울법상대아니면 한강 이남 최고명문대 경북대
입학하였지 60년대는경북고 경북대가 한강 이남에서 TOP이었지 특히의대는연대 의대와 같았다 고대 의대는눈도 마주치지도못했다 의대 역사작년 7월에 100주년이다요.
경북고가 경복고 이긴적은 거의 없음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순서임
대구 경북애들 이상함
경북고는 부산고 경남고보다 서울대 합격생이 적은데 항상 경북고가 경기고 다음이라고함
경북대가 부산대보다 입결이 낮았고 사법고시 합격자도 적은데
지방대중 최고였다고함
서울대입학순위는
경기 서울 경복 경기여고
그다음이 부산 경남이였음
부산 경남은 서울대 합격자수 비슷해서
동급임
@@봄날-e2g 서울대 전체 합격생 수에서 대구 경북고가 서울 경복고를 이긴 적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즉, 서울대 전체 합격생 수로 비교하면, 경북고는 3위는커녕 거의 매년 전국 7위였음) 그러나 경북고에서는 다른 명문고와는 달리 서울대 합격자(매년 120명 정도) 중 약 1/3 정도가 항상 문과 최상위 학과인 법대, 상대를 갔고, 특히 이과 쪽은 대구에 경북대 의대라는 좋은 의대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집안형편이 좋지 않으면 의사 지망생은 대부분 경북대 의대로 진학하였습니다.(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가 된 것이 1980년경이었으므로, 1970년대는 국민 대다수가 못 살았음) 즉, 최상위 학과인 법대, 상대 합격자 수만 비교해 보면 경북고가 매년 전국에서 2, 3위를 다투었기 때문에(1위는 압도적으로 경기고였고, 2, 3위는 서울고와 경북고가 번갈아 가면서 했음) 사실상 3대 명문고에 경북고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입니다.(물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mansoona3918 법대 상대가 서울대 문과에서 최상위라는건 인정하지만 문과 이과 통틀어 최상위라는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문과 이과가 통합수능을 봐서 이과 수학(미적, 기하)과 과탐이 문과 수학(확통)과 사탐보다 어렵다는거 모두들 인정하고 있지만(과탐 4~5등급 학생이 사탐런하면 어렵지 않게 1~2등급 합니다) 1970년대는 전 과목을 문과 이과가 같은 문제로 예비고사를 봤기 때문에 수학과 과탐은 이과생이 아닌 문과생이 배우는 범위내 내용과 수준으로 낮춰서 봤습니다 서울대 본고사도 문과의 수학과 사탐이 이과의 수학과 과탐보다 쉬워 공부시간이 적게 소요되었고 서울대 이과생들은 수학(그 당시 일본 동경대 본고사 수준)과 과탐 4과목(물화생지 지금 과탐II 수준) 공부에 시간을 많이 소요했기 때문에 단순 예비고사 성적이나 본고사 성적으로 비교하는건 적절치 않습니다 서울대 공대생 자연대생 의대생 학력 수준이 법대생 상대생보다 적어도 낮지는 않고 높다고 봐야합니다
요즘 수능시험에서 과탐I이 사탐보다 2~3배 학습량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과탐II는 과탐I에 비해 2배정도 학습량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수학 미적분도 확통보다 학습량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70년대 서울대 이과 준비생들은 과탐II 수준의 물화생지 공부와 수학은 홍성대 수학II와 수학III 수준인 일본 동경대 본고사 시험서로 공부하다보니 시간상으로 배점 비율이 낮은 예비고사와 그중에서도 사탐과목 공부는 상대적으로 소홀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50년 다 된 대학서열 알아서 뭐하려고?
과거는 생각말고 현재와 미래를 보고 살라고
존나게 부정적으로 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인어른이나 느그 아부지 어데 나왔나 잘 보라는거지
전통 아주중요 함
과거에 집착하는 게 문제지 과거 그 자체는 하나의 역사이므로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또 현재가 쌓여서 미래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과거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 조선시대 역사도 알 필요가 없고,
우리의 어린 시절도 알 필요가 없겠네요?
뭐 큰 의미두라고 이걸 올렸겠어요?ㅋㅋ 그냥 추억이나 재미삼아 보는거겠죵
카톨릭대는 그냥 의대라서 높은거.
중앙대가 점수 낮은건 72년 서라벌예술대학 통합후 점수대가 낮은 예능계인원들이 너무 많아서임. 당시 통합전 서라벌예대만 700명임..이러니 평균점수 안떨어지는게 이상하지. 그래서 예술대 인원을 꽤 오래줄여옴..그래서 70년중후반대 대학평균으로 보면 낮은게 당연한것임..이런사정 모르면 마치 중앙대가 몰락한것처럼 보이나 대학 부피키우다보면 점수 평균하락은 당연한것임.
적십자간호대흡수할때도 인원이 늘어 간호대평균점수는 많이 떨어졌으나 대신 간호대 정원을 더 받아왔듯이
@@liveitup7170 반박을 해보죠..님이말한 학고시대는 대학정원제시기와 겹쳐서 서울대조차 상위5%에 툭하면 미달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연고대조차도 점수가 낮고 다른대학은 다 마찬가지입니다..학고시대언급해봤자 설득력없어요
대구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서대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역시 영원한2위 연세대 ㅋ
사립대 1위 ㅋㅋㅋㅋ
@@uquw394u8 고대는 과거에도 연대밑이였음... ㅋ 지금도 그러지만 ㅋ
뭘 모르는...
연고대는 서울대 못 가는 애들이 가는 학교였고, 성대, 외대, 한양 공대는 서울대 응시했다 낙방한 애들이 가는 학교였음.
당시 고등학교 연고대반 애들은 서울대반에 못 가는 애들이었음. (고법, 세브란스 제외일 수도 있음.)
그 서울대반 애들이 설대 떨어지고 성대 외대 한양공대 갔음.
그래서 설대=1류, 성대=1.5류, 연고대=2류.. 라는 말도 했었음.
물론 전기에서는 연고 위에 서울 밖에 없었지만,
전후기 다 합치면 연고를 내려다 보는 학교들 많았음
지금 기준으로 그때를 보면 안 됨.
후기라서 예비3등급까지 모집했지만.. 합격자는 거의 서울대 탈락자들이었음.. 간혹 고법이나 연상 탈락자들 중에 일부 겨우 들어올 수 있었음..
연대가 예비2등급이었다고 3등급이 모집 제한이었던 후기 모집 학교보다 위가 아니었음.
고등학교 연고대반 분들은 서울대를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하셨음.
요즘 '스카이 스카이' 한다고 연대가 서울대급이 아니었음.
서울대와 연고 사이에는 더 성적이 좋은 학교가 여럿 있었고 그분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간 아쉬움은 있었어도
연고대 못 들어간 열등감 같은 것 전혀 없었음. 오히려 내려다 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임.
연고, 요즘 자긍심 갖는 건 좋은데 과거에도 언제나 스카이였을 거란 생각 속에
지나친 우월감 가질 필요없다고 권함. 옛날 어른들 중에 연고대 우습게 보던 분들 많음.
대학별본고사 있던 시절이라 예비고사성적은 의미없음
77학번 출신입니다.
100% 무의미한 건 아니고, 대략 70-80% 정도는 대학 순위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가 예비고사 점수로도 1위였습니다.
@@설악산-c8x 예비고사성적이 본고사에 반영no의미임 본고사준비하다가 11월 즈음 예비고사시험봇너 갔음
@@설악산-c8x 이건 팩트가 아님 서울대본고사는 교과서외 출제라 예비고사는 신경 안쓰고 본고사 국영수와 과탐4과목을 봤기때문에 본고사에 집중한 시절임 따라서 실제는 지금처럼 수능(그땐 예비고사)만 치렀다면 점수차가 더 벌어진게 팩트임
그당시 명지대는 예체능계입학생이 거의 없다보니 예비고사평균점이 높은거구요 반대로 중대는 서라별예대를 인수한지얼마안된 시점이고 예체능계인원이 많아 평균점이 낮습니다.
타대학에 비해서요... 따라서 2-3점 오차는 감안해야 할듯...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같은 계열, 같은 학과끼리 비교해야 정확하죠.
당시는 예비고사에 크게. 신경쓰지 ㅇㆍㄴㅎ았습니다.
이런건 왜 발표하는데?지금은 2024년인데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어요!
총입학생 평균이 아닌 학과별 평균을 비교하면 부산대와 경북대는 비슷했습니다. 꼭 우열을 가리자면 경북대가 거의 대부분 학과에서 부산대 보다 조금 높았습니다. 특히 문과는요.
당시 비인기 학과인 농과대학이 부산대학에는 없었기에 전체 평균에서 마치 부산대가 경북대 보다 상위에 있고 경북대가 낮게 있는 것입니다. 여기 사실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객관적 판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 수치과 결과치라 댓글 달아봅니다.
그냥 님 생각?
저 당시 지방 수험생 부모들은 서울 대학에 자녀를 유학 보내는 데 경제적 부담이 컸었음. 하숙비, 등록금, 의복비, 용돈, 책값....등등
그래서 굳이 서울의 사립대보단 등럭금이 싼 지방 국립대를 선호했었음.
부산대, 경북대가 연고대 수준이었던 건 그때문 임.
17위, 18위가 성신여대, 덕성여대 였네. 숙명여대보다 더 높았군~~ㅎ
덕성여대는 후기였고 이화여대 떨어지면 갔음
당시 학번으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숙명여대는 전기였고,
성신과 덕성은 후기였습니다.
따라서 숙명이 훨씬 서열이 높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도 이 서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 같지는 않았는데...
ㅋ중앙대는 과거에는 평민이였다가 지금귀족이네요.
부산대와 경북대하고 비슷한줄 아는데 이상하다.
그당시에 부산인구가 500만에 근접했고 대구는 200만정도라 입결차이가 났어요 항상부산대가 조금 우위에 있었음!
@@syringer4의대하고 사대는 경북대가 압살하지 않았나?
비슷했습니다. 당시 비인기 학과인 농대가 부산대에는 없었고 경북대에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학생 전체 평균이 경북대가 낮은 것입니다. 학과별 평균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꼭 우열을 가리자면 당시 경북대가 조그 더 높았습니다. 박정의 대통령의 모교이기에 지역 인재들이 서울대 아니면 경북대 가겠다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syringer4 무슨 부산 인구가 500만에 근접했습니까. 350만이 맥시멈이었는데 ㅉ
@@홍길동-g4i4x 두 학교가 서로 비슷했는데, 그래도 부산대가 조금 더 높았습니다.
비인기학과였던 농대가 경북대에는 있었고, 부산대에는 없었기에
전체 학과를 모두 뒤죽박죽 다 섞어서 통계를 내면 부산대가 실제보다 더 높게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참고로, 저는 지거국 사범대 77학번 출신입니다.
중엉대는 순위권에 없네
그때야 일류고등학교는 예비고사에 신경쓰나. 오직 본고사 공부만 하지.
1976년 부산대 뱃지는 예전거라,,,저게 아닙니다......ㄱㅂㄷ 임
이때 kaist 있었나요? 76학번인데 그 때 카아스트는 지방대학이라
우리반 65명중에서 40-50등이 진학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KAIST 학부는 없던걸로 기억합니다
항공대등 단과는 뺍시다.
서경대가 국민대보다 높았네요
추억여행ㅋ
혹시 1982년도 학력고사 성적별 대학순위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1984도
중대 경희대는 뭐 하는 것들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