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듣던 방송.... 그때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님 다 살아 계셔서 북적북적 참으로 재미있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황량한 겨울 들판에 내동댕이 쳐진듯, 구멍난 내 가슴에 찬 바람만이 하염없이 파고듭니다.. 그때는 먹을것이 없고 입을것이 없었지만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린 이런 정서속에서 좀 부족했어도 낭만이 있었고 정이 있었 죠 그 시절 그립네요 공장에 다녀 돈 벌어 명절이 되면 집에 간다는 기쁨에 설레였던 마음 또 다시 명절이 끝나면 공장에 복귀하는 건 도살장 끌려가는 소 처럼 야간 근무 지겹다 전기나 나가라 전기나 나가라 잠 좀자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 십년이 지나 이제는 할머니 추억이 새롭다
고등학생 학창시절은 김세원씨의 밤의 플랫폼을 매일 밤 들으며 맑은 목소리를 짝사랑 했던 꿈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고별 방송이라는 어느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배게 삼아 듣고 있던 제 눈가에서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라디오 스피커 속으로 떨어져 스며 들어가는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외국으로 떠난다는 고별 방송이었기에 더 이상 그 맑고 촉촉히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생 ? 이별의 슬픔이 남몰래 눈물을 흘렸나 봅니다. 세월이 흘러 광고쟁이가 되어 라디오 CM을 만들게 되었는데 CM녹음실 사장님께서 김세원씨가 돌아 왔는데---- 광고 출연은 안 하는 분이지만 광고 COPY(문안)와 제품 브랜드 이미지에 딱 맞을 목소리라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고별 방송에 눈물 흘렸던 기억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저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녹음실 사장님께 출연료에 상관없이 출연 섭외를 요청 하여 녹음실 사장님의 삼고초려 덕분에 김세원씨가 직접 CM 배경 음악을 선택하는 조건으로 출연 하시겠다고 승락을 받아내셨습니다. 저는 단숨에 광고주에게 일반적인 RADIO CM 성우료 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승락 받아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제 열정에 광고주가 얼떨결에 허락 해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드디어 녹음하는 날( 토요일 아침 10시로 기억 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모하던 그 분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CM 제작하는 기쁨보다 컸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오시는데 (그때는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한 시간이 흐르는 게 몇 일이 지나가는 듯 하였습니다. 혹시 광고 출연 안 하시는 분이라 마음이 변하시지는 않았는지, 댁에서는 나가신지 오래 되셨다는 데------ 잡지와 신문을 보고 있느라 누가 들어온 지도 몰랐는데 녹음 부스에서 어디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녹음 부스 창 넘어 보이는 분은 중년의 아줌마였지 김세원씨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분이 마이크 앞에 서 계셨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변함 없는 김세원씨가 맞았습니다. 제게 십여년 동안 가슴속에 촉촉이 스며져 있던 여인?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만 어떠한 말도 못해보고 인사도 나누지도 못한 채 훌쩍 녹음 끝나고 가시는 모습만 바라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녹음실 오시는 중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 하시고는 본인이 선곡해서 오신다고 한 음반을 놓고 오시다 다시 가서 찾아 오시느라 늦었다는 이야기를 녹음실 사장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제 가슴속의 스며 있던 그 목소리로 반드시 CM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광고 출연을 처음으로 하시게 하였고 그해 년도 광고 공사에서 선정하는 CM성우 대상으로 선정 되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그 이후 다른 CM,CF에서도 종종 출연 하셔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품격 있고 고급 진 목소리를 많이 남겨 두셨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감성의 CM,CF가 없어 보여 집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변했나 봅니다.
밤에 플렛트홈 그시간을 기다리며 기나긴 겨울밤 이불속에서 잘잡히지 않는전파를 찾아 열심히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동아 방송였던가? 이제 아득히 멀어진 그시간 다시 이방송을 들을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나 김세원님을 잊어버리고 훌쩍지나버린 지금 김세원님이 무척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가난했지만 꿈이있어 눈물을 삼킬수있었고 힘들었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청춘을 불 살았던 그시절 가난이 창피한것이 아니라 불편한것이라 자위하던 그시절 하지만 우리는 순수해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나누는 푸근한 정이 있었습니다. 모든것이 풍족 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 해져서 서글퍼진다. 나 아닌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어서 비록 가난했지만 그시절이 그리워지고 그시절 친구들이 사람들이 보고싶다. 이불 뒤집어 쓰고 직직대던 고무줄로 동여매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심야방송에 가슴 부풀리던 그시절 빨간 공중전화 부스앞에서 동전이 부족해 주위를 돌아볼때 뒷사람이 말없이 십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어 머리를 숙이었던 그시절이 지금 가슴 저리게 그립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79년 6월쯤이면 제가 강원도 산골짝에서 힘들게 군생활 하던 때네요. 그 전에 고등학생때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는 기차소리가 들리다가 폴 모리아 악단의 이사도라가 오버랩되며 들리던 시그널 음악, 그러다 흘러나오는 김세원 아나운서의 우수어린 목소리..짧은 분량의 방송이 아쉽긴 했지만 너무나 정감 깊어서 시간만 되면 다이얼을 돌리던 그리운 시절이 떠오릅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그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요. 깊어가는 겨울밤 밖에서 메밀묵.찹쌀떡 장사의 외침이 들려올때에 김세원의 밤의 플랫폼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웠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서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요즘은 왠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말못할 허전함으로 그때로 돌아가고픈 시간들.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김세원씨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것이 어느새 50년쯤 되지 싶은데...첫머리에 기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시그널 음악이 나오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나이였음에도 왜 그토록 가슴은쿵..하고내려앉고,천일의앤 슬픈 주제곡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의 마지막장면에 먹먹해졌던 가슴이 끝내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을쏟게 했던.. 잊혀져 가던 그날들의 감성이되살아 오는군요.정말 귀한 파일 감사드립니다.
70년대 말~80년대 초.... 학창시절..... 군생활 시절..... 김세원님이 계셔서 많이 위로가 됬어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메어지다 못해 절여오네요....🥺🥺😢😢 이제 60대 중반이 넘어서 생각하니 참~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네요.... 그 어려웠 시절을 지내신 모든분들께 가내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김세원 박인희 이해인 세분 모두 1945년 해방둥이시죠 라디오를 통해 이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초라하고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버텨냈는데 어느덧 이 분들도 산수(80세)를 바라보고 있네요 참으로 야속하고 무정한 세월입니다 이제 화창한 날은 길지 않고 내 잎사귀들은 떨어져 가는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추억의 아픔뿐
젊은시절에 라디오를 통해 밤이면 별이빛나는밤에 방송은 놓칠 수 없는 시절이 있었습니다~^^지금도 가끔씩 그 당시의 음악과 사연을 들어보곤 하지요~^^ 참으로 아련한 추억들이 시린듯한 감정이 마음에 와 닫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그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밤의 플랫폼” 고등학생 때 입주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담임의 소개로 1년 후배의 집에서 전 과목 진학지도를 한 것이었다. 가르친 지 한 달도 못되어 후배의 학교성적이 크게 향상되자 그 집 어르신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비록 많지 않은 돈이지만 집안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과 독립정신, 날로 좋아지는 후배의 성적에 집 떠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사춘기 시절, 순간적으로 바뀌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하기에는 피가 너무 뜨거웠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청춘의 봄날이 갑자기 우울과 고독만이 있는 절망의 시간으로 바뀌기를 수없이 반복하곤 했으니.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키우던 호연지기와 극단의 외로움을 중재할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시기였다. 그럴 때 조용히 힘이 되어준 것이 라디오였다. TV가 귀하던 시절 진공관식이나 별표전축을 통해 듣던 연속극을 통해 일찍이 라디오와 친해졌었고, 이후에도 ‘전설 따라 삼천리, 별이 빛나던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프로를 통해 청각에 의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나갔었다. 그때 라디오와의 인연 때문이었던가, 우연치 않게 내 인생에서의 첫 직업이 라디오광고를 파는 것이었고 재미있게 그 일들을 해내갔던 것 같다. 가정교사시절 가장 심취했던 라디오프로그램은 ‘밤의 플랫폼’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1970년대의 동아방송, 밤 10시 즈음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증기기관차의 굉음이 절정을 이루었다 사라진다. 그리고 폴모리아 악단의 왈츠곡 ‘이사도라’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저 유명한 김세원 아나운서가 조용히 시그널을 알리고-그 사이에 광고 몇 편이 있었던 것 같다- 짤막한 에세이와 밤의 정취에 맞는 음악 몇 곡이 소개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터로도 잘 알려진 그녀의 목소리는 이유 없는 젊은 날의 분노와 열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충분히 감미롭고 퇴폐적이었으며 고혹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방송국으로 찾아와 청혼을 하거나, 자살까지 감행한 젊은이들의 에피소드가 당시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사연의 막간에 소개되던 음악 또한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영화 천일의 앤의 OST 'Farewell my love' 등 어린 영혼을 뒤흔드는 것들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지금은 방송국조차 사라져 다시 들을 수없는 프로이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에 가슴깊이 각인되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필력을 보아하니 수재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불과 1년 후배의 가정교사를 하실 정도면 우수한 실력의 학창 시절을 보내셨을 듯 싶습니다... 이른바 일류 대학도 나오셨을테고, 졸업후에도 사회의 중추적인 일원으로 생활을 하셨을 듯싶습니다. 아마 추측컨데 광고 카피 라이팅을 하신 것 같은데... 창의력과 감성이 풍부한 직업인만큼 노스텔지어를 불러오는 글솜씨가 뛰어나십니다. 음악에 취하고 멋진 글에 또 한번 취합니다.
중학교 때에는 "mbc여성싸롱 임국희" 씨 목소리에 매료되어 한번 만나자고 편지를 쓰고 mbc앞에서 2시간동안 무작정 기다렸던일,, "김세원에 밤의 플렛트홈 " 의 김세원씨는 나의 애인 이었죠 ,목소리가 얼마나 예뼜던지 , 한칸 짜리 방이라 어디에서 잘수도 없는 사춘기 시절 ,닭털침낭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라디오와 배터리를 검정고무줄로 칭칭 감겨진 그런 라디오를 머리옆에 두고 듣던 . 폴모리아 악단에 "이사도라" 그리고 밤하늘의 별과 함께 울려 퍼지던 낭낭한 김세원의 목소리, 침낭안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나의 소중한 공간이었죠 고등학교 방송반때에는 "팝송"은 방송금지라 "폴모리아 악단 "곡들만 주야장천으로 틀다가 어느날 산울림의 "아니벌써"를 틀었다가 지금도 만나면 죽이고 싶은 미친개 별명의 "황의 x 육군대위 교련선생 한테 워카발과 주먹으로 맞은게 군대에서 맞은거 보다 더 많았던거 같고 , 헌병의 주제를 망각하고 정문을 지키면서 라듸오를 듣다가 영창 갔다온일,,,,,, 영화를 보면서 처음 울었던일은 "천일의앤" 음악을 들을때 였다 내인생은 "라듸오"에서 시작해서 "라듸오"로 끝나는 것 같다
아련한 그 목소리 가난이 숙명이던 그 시절 우리 아버지가 나 들으라고 사 주신 라디오 그 시절 그 혈육님들 우리 강아지 롬은 어디로 가 버리셨나? 부모님 참회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도 생을 마감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제가 오래 살고있습니다 머지 않은 시기에 제가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십시오 저는 생의 마지막 인연을 찾아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저를 가엾게 봐 주십시오 태고난 저의 운명인 모양입니다
저때쯤 종로 EMI학원다니며 이택강사님 수학을 들었는데 지금생각하니 그때가 가난했지만 가족과 친구가많았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배우 김학철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
탄천 뚝방길에서 만나뵈었는데 방해될까봐 그냥 지나쳤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네 건강하세요 ~~
@@비구름-x5s 세상을 착하게 사시길..
언제가 뵙네요.
밤새워 듣던 방송....
그때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님 다 살아 계셔서 북적북적 참으로 재미있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황량한 겨울 들판에 내동댕이 쳐진듯, 구멍난 내 가슴에 찬 바람만이 하염없이 파고듭니다..
그때는 먹을것이 없고 입을것이 없었지만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ㅠㅠ
공감합니다 ᆢ^^
지금은 찬밥이지만
소세지반찬에 목숨걸고
싸웠던 ᆢ
야자하고 늦은밤 돌아오면 맞이해주던 고인이되신 부모님 이 넘그리워 지네요 그때 부모님보다 더맗은 나이가 되어 그시절을 떠올러봅니다.
네 그때가 살기는 힘들어도 지금처럼 외롭지는않았지요 풍요속에 오는 결핍
동감 합니다
생활은 빈곤 했지만
마음은 풍요롭던 시절..
우린 이런 정서속에서 좀
부족했어도
낭만이 있었고 정이 있었
죠 그 시절
그립네요 공장에 다녀 돈
벌어
명절이 되면 집에 간다는
기쁨에
설레였던 마음 또 다시
명절이
끝나면 공장에 복귀하는
건 도살장
끌려가는 소 처럼 야간
근무 지겹다
전기나 나가라 전기나
나가라 잠 좀자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
십년이 지나
이제는 할머니 추억이
새롭다
슬퍼요
세월이 흘러..남은건 추억뿐" 펑펑울면 속이라도 시원할까,,,
펑펑울면 속이라도 시원할까.....코끝이 찡해지게 공감합니다.
아~아~~
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완전공감
모두 그래요
잠 못드는밤. 추억에젖은 그 시간에 가슴이 뭉클해져옵니다 20대에 함께했든 음악들인데 어느새 60대에 접어들었네요~ 들을수있어 행복합니다^^
배곱파지만 지금보다 정있고 아름답던
이십대초반 가슴시립고. 돌아가고픈 아스라한. 그시절임니다. 눈가에 세월이
맺히고 다시못올 그시절. 눈물이납니다
고등학생 학창시절은 김세원씨의 밤의 플랫폼을 매일 밤 들으며 맑은 목소리를 짝사랑 했던 꿈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고별 방송이라는 어느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배게 삼아 듣고 있던 제 눈가에서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라디오 스피커 속으로 떨어져 스며 들어가는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외국으로 떠난다는 고별 방송이었기에 더 이상 그 맑고 촉촉히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생 ? 이별의 슬픔이 남몰래 눈물을 흘렸나 봅니다.
세월이 흘러 광고쟁이가 되어 라디오 CM을 만들게 되었는데 CM녹음실 사장님께서 김세원씨가 돌아 왔는데----
광고 출연은 안 하는 분이지만 광고 COPY(문안)와 제품 브랜드 이미지에 딱 맞을 목소리라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고별 방송에 눈물 흘렸던 기억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저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녹음실 사장님께 출연료에 상관없이 출연 섭외를 요청 하여 녹음실 사장님의 삼고초려 덕분에 김세원씨가 직접 CM 배경 음악을 선택하는 조건으로 출연 하시겠다고 승락을 받아내셨습니다.
저는 단숨에 광고주에게 일반적인 RADIO CM 성우료 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승락 받아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제 열정에 광고주가
얼떨결에 허락 해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드디어 녹음하는 날( 토요일 아침 10시로 기억 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모하던 그 분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CM 제작하는 기쁨보다 컸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오시는데 (그때는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한 시간이 흐르는 게 몇 일이 지나가는 듯 하였습니다.
혹시 광고 출연 안 하시는 분이라 마음이 변하시지는 않았는지, 댁에서는 나가신지 오래 되셨다는 데------
잡지와 신문을 보고 있느라 누가 들어온 지도 몰랐는데 녹음 부스에서 어디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녹음 부스 창 넘어 보이는 분은 중년의 아줌마였지 김세원씨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분이 마이크 앞에 서 계셨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변함 없는 김세원씨가 맞았습니다.
제게 십여년 동안 가슴속에 촉촉이 스며져 있던 여인?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만
어떠한 말도 못해보고 인사도 나누지도 못한 채 훌쩍 녹음 끝나고 가시는 모습만 바라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녹음실 오시는 중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 하시고는 본인이 선곡해서 오신다고 한 음반을 놓고 오시다 다시 가서 찾아 오시느라 늦었다는 이야기를 녹음실 사장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제 가슴속의 스며 있던 그 목소리로 반드시 CM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광고 출연을 처음으로 하시게 하였고 그해 년도 광고 공사에서
선정하는 CM성우 대상으로 선정 되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그 이후 다른 CM,CF에서도 종종 출연 하셔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품격 있고 고급 진 목소리를 많이 남겨 두셨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감성의 CM,CF가 없어 보여 집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변했나 봅니다.
부럽네요.인사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아, 추억 어린 긴 사연 재미있게 읽었어요.
추억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이네요
그대는 좋은 사람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
아 조금 아쉬운 결말이군요 인사라도 나눴으면 좋았을텐데
아.....내 젊은 날이여.....가슴이 아려옵니다.
댓글 하나하나 읽을때 마다 울컥울컥하며 눈물이 나네요.
너무 좋네요... 요즘 방송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깊이와 서정이 느껴집니다. 정신적으로는 그 시절이 더 나았나?
밤에 플렛트홈 그시간을 기다리며 기나긴 겨울밤 이불속에서 잘잡히지 않는전파를 찾아 열심히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동아 방송였던가? 이제 아득히 멀어진 그시간 다시 이방송을 들을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나 김세원님을 잊어버리고 훌쩍지나버린 지금 김세원님이 무척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시그널 음악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 야련한 기억에 그 시절을 그리워해봅니다
엣날에도
지금도 좋아하는
세원님의 목소리...
78년 광화문덕수궁 돌담길걷던 갈래머리 이화여고 여고생
밤이면 공부하면서 다이얼라디오 들으며 노란편지지에 글을쓰고 시를 써서 방송국에 보내던 그시절
김세원님 목소리들으며 미지의 나를 꿈꾸었답니다
이제는 60이넘고 감성도 스러지고 음악만이 저를 그순간으로 돌려놓네요
늘건강하세요
그러네요 ㅠㅡㅠ
저는 그때 배재중1 학년
등하교길이 덕수궁 mbc 그길
광화문에서 12번 타고 퇴계로집
으로 다니던 그시절 ~~
와... 감성...
눈물 주머니를 쿡 찌르는군요......
이런 방송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DJ와 게스트가 떠드는 방송이 아니라.
가난했지만 꿈이있어 눈물을 삼킬수있었고 힘들었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청춘을 불 살았던 그시절 가난이 창피한것이 아니라 불편한것이라 자위하던 그시절
하지만 우리는 순수해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나누는 푸근한 정이 있었습니다.
모든것이 풍족 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 해져서 서글퍼진다.
나 아닌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어서 비록 가난했지만 그시절이 그리워지고 그시절 친구들이 사람들이 보고싶다.
이불 뒤집어 쓰고 직직대던 고무줄로 동여매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심야방송에 가슴 부풀리던 그시절
빨간 공중전화 부스앞에서 동전이 부족해 주위를 돌아볼때 뒷사람이 말없이 십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어 머리를 숙이었던 그시절이
지금 가슴 저리게 그립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네.....그리움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햇습니다
그러나 병이 깊어진다해도 그리움을 추억하면 마음이 슬퍼지며서 깨끗해집니다
아 지나간 시절이여
아 그리운 시절이여
아 그리운 얼굴들이여.......
그래요 와신톤 7-4번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공감 합니다
다신 돌아오지않는 그리운 시절이죠
그래서 지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0세인 나이에 이런 유투브가 있게하신 모든 분들은 영웅이십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 보니 다들 눈물이 난다고 하니 나도 눈물이 나네요.
40년이 한 순간이여..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가고싶은 너무도 가고싶은 그시절.
이젠 기억마저 아련한.너무 소중했던 시절 입니다.
오릿골 언덕위서 신작로 완행버스가 설때마다 어머니가 내리실때를 기다리던 어린시절.
제 몸 보다 더큰 배터리를 검정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조그만 트렌지스터 라디오에서 듣던 밤의 플렛폼.가슴에 고이 간직 하렵니다.
Me too
정작 그시절엔 이시절이 소중한걸 모르고 살았으니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는것이 저만의 노욕 일까요~~
Oh my god. I thought .I never heard this program again ..
Amazing
아..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
참 춥고 배고프고 고달픈 시간이였지만
그 때가 또 그립습니다
격한 공감 띄워 드려요!
정말 배고프고 격한세월이지만 사랑과 희망은 넘쳤던세월 나와그대의 청춘 눈물만 흐를 뿐이요 건강하게 추억을 마무리합시다
읽다보니 그때의날들이 되살아나
눈물이 나네요
공감글 ㅠ 시릿한마음
아~!!! 다시 못 올 사무치게 그리운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단발머리 폴락이며 다락방에서 가슴 떨리며 숨죽여 듣던 이사도라와 김세원님의 목소리ㅜㅜ
너무너무 좋아했던 밤의 풍경속 음악들~~
모두모두 그립습니다♡
79년도 이면 제가 대림산업 의 사우디 타북 시 의 발전소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 끝내고 본사 복귀후 약혼했을 시절입니다.눈 한번 꿈뻑하니 70대 중반의 노인이 됐네요. 인생은 일장춘몽 .마음은 청춘그대로.
뉘신지요?저도 대림산업 입니다.
그시절 다시갈순 없겠지만 눈물나게 사무치는 그리움.
어떻할까....
내 나이 60대 중반. 스물 두셋 나이 때 밤마다 자취방에서 짝사랑하던 여인 생각에 잠못 이루며 라디오를 품고 듣던 김세원 목소리. 신석정 시인의 '운석처럼'을 낭송하며 내 가슴을 후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74년도 밤의플렛트홈 시그널을들으면서항상퇘근했지요 그때는밤 10시까지일하는게보통이었지요 집으로가는골목길 하얀눈을맞으면서,힘든시절이었지만 그시절이왜이렇게그리울까요
😂
그때의 친구들 많이 별이 되었습니다
아~~~눈물이 나네요
정말 그리운 그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없었어도 함께 웃고 희망을 품고 살았던 그 시절 함께 하신 분들 사랑합니다
모두가 가난했어도 희망이 넘치고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젊었던그시절에
모든것들이
이제는
추억들로 변해서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을주네요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것 같아요
이음악을 공유하고계시는
모든분들
건강하고행복하세요
내년쯤
다시 소식전할게요
저도요.
아~~~~
옛날이여~~~
눈물이 납니다~~
소녀가 칠십이 눈앞에 떡 버티고 있네요~~ㅠ
그때가 그립습니다~~~
1979년 우울하고 항상 슬펐던 시절 이었군요~~~
아마도 가난하고 부족했던 시절이라 항상 갈구하고
그래서 항상 포기해야만~~ 금전도 시간도 부족 ~~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해야 ~~사랑도 포기~~
항상 김세원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야 했던~~~
그시절이 지금 보다
더 아름답고 추억과 낭만 있던 시절
너무 그립다 ㅠ
김세원씨의 그아름다운 목소리 가슴깊이 스며드는 목소리에 정말 밤마다 열심히 들었던!!이사도라 너무나 좋왔습니다!그시절 젊은20대!!이제 60대후반!!아련한 옛추억에 그립습니다❤
추억은 돈으로 살수없는 아름다운시절 김세원님 목소리와 음악을 들으니 눈물이나네요 벌써 나이먹어 60대중반이 넘네요 돌아가신 부모님 큰언니가 그리워집니다
세월따라 내가 사랑하던 부모님 형제들이 세상을 떠나며 겪어야 할 이별의 슬픔은 누구도 비껴갈수 없는 것이지만 그 허망함과 슬픔 상상도 하기 힘드네요.
그시절은 부모님 다계시고 우리 7남매 옹기종기 한방에모여잘 시간이데 그때 그시절이
그립네요,
ㅠㅠ
76년 목포5거리엔 가랑잎이 도로위를 딩구는 늦은 가을밤
이프로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도저히 더이상 들을 수 없었어요
당신도 그려셨나요
그럼요...
그럴때는 빨리 응급실로 가야죠
협심증입니다
이사도라. 천일의앤... 밤의플랫폼... 요즘 말로 감성 돋네요. 어려웠던 학창시절이었지만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ㅜㅜ
그때 그시절
그시간 놓치지않으려고
폴모리 이사도라
시그널 김세원님
목소리 들으며.....
다시올수없기에
더 아름다운
김세원님 의
밤에플랫홈❤❤
대한민국 음악방송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음성의 주인공
목소리 듣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찡했었습니다
79년 6월쯤이면 제가 강원도 산골짝에서 힘들게 군생활 하던 때네요.
그 전에 고등학생때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는 기차소리가 들리다가 폴 모리아 악단의 이사도라가 오버랩되며 들리던 시그널 음악, 그러다 흘러나오는 김세원 아나운서의 우수어린 목소리..짧은 분량의 방송이 아쉽긴 했지만 너무나 정감 깊어서 시간만 되면 다이얼을 돌리던 그리운 시절이 떠오릅니다.
참 그랬습니다
😅
전 그때 연천5사단 대광리근처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저는 79년 7월 입대했습니다
저절로 79년도로 순간이동 눈이 너무 많이 내렸던 기억과 자주 듣던 dbs
잠시 행복했던 시절로 음악과 함께
괜스레눈물이남니다
그시절기억이아른거림니다
78년도dmz에서 군대생활의 고단함을 달래며 숨죽이며 듣던 김세원의 나지막한 목소리~세월이 흘렀어도 가슴에눈물이
쇠뇌 시키는 대남 대북 방송 보다는 자신의 감성을 지키고 기억 하신 당신이 자유인 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인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kkccdd58 네감사합니다 갑오년생 입니다
78년도 1285로 시작되는 군번...
포천 일동 1367 7208
90병기 본부반....
40년지난 그곳은
얼마나 변햤을까요..
김세원 참좋아했지요
먼 이역으로 삶을 옮가고
눈날리고 추운 이곳은
알라스카입니다
그리운 아버지 그 시절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
71세의 나이를 잊게 해주는 추억어린 노래와 음악을 들으며 마음만 이라도 젊어지는것 같아요. 임국희 씨 최동욱 3시의 다이얼 프로 지금도 많이 도움이 되네요.
추억이 새록새록~~~
늦은밤까지 정신 말똥말똥 들었던 그시절~~~~
끝나는 시간이 왜 그리도 아쉬웠는지요...밤새워 들어도 좋을거 같았던 그시절 이야기 입니다.
김세원님 늘 건강 하시길 빕니다.~~~~~^^
속절없는 세월에 눈물만 난다.
옛날생각남니다.눈물이날것갓네요.그리운엿벗님들.그리운음악다방넘그립습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때라 라디오 들은 기억이 없지만 이미 내나이 53살 ㅎ
고등학교 다닐때 김세원선생님 목소리와 시그널뮤직에 푹빠졌었는데.
지금60대가되어 그시절 방송을들으니 눈물이나네요
유난히 추웠던 겨울.
그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요.
깊어가는 겨울밤 밖에서
메밀묵.찹쌀떡 장사의 외침이 들려올때에
김세원의 밤의 플랫폼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웠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서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요즘은 왠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말못할 허전함으로
그때로 돌아가고픈 시간들.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눈금 그인 라디오 주파수를
맟추고 전파도 고르지않아
라디오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
앉히며`~
기꺼이 듣고싶던 저 목소리!
아~ 정녕 돌아갈수 없는건가요
그때 그시절로~`😢😢😢
세원님 그아름다운목소리 나이를 무색할정도로 지금도 들을수 있어서 저에게행운입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 추억이새록새록 생각이납니다 부디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천상의목소리 들려주시길 기원합니다❤❤?
아!****김세원님 지금 어디계세요?
맞아요 79년부터 밤을 지켰는데요
나의 20대를 플렛홈이
지켜줬는데 세원님
목소리는 너무 감미로운데
밤을 세워가면서
울기도하고 행복해 하기도
했었는데 김정호님도 그립습니다
40년을 되돌려보고 싶어요
그리운시절 정감있는 목소리
왜이리도 좋을까요
그시절로 돌아간듯 추억에 잠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 큰딸 이름이 송 지나 입니다
반가워요^^
김세원씨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것이 어느새 50년쯤 되지 싶은데...첫머리에 기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시그널 음악이 나오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나이였음에도 왜 그토록 가슴은쿵..하고내려앉고,천일의앤 슬픈 주제곡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의 마지막장면에 먹먹해졌던 가슴이 끝내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을쏟게 했던.. 잊혀져 가던 그날들의 감성이되살아 오는군요.정말 귀한 파일 감사드립니다.
김세원씨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가슴이저리네요. ^^^영원히 돌아갈수없는 고교시절의 꿈과 방황. 아름다운 추억들^^^
기억은 없지만 형님의 글귀가 아련함을 더 해 줍니다.
정말.옛날 생각나네요
저녘10시에 이노래를 듣고중고등학교 다녔는데
참세월 빠르네요.
아 천일의 앤. 우리동양풍 슬프져.
70년대 말~80년대 초....
학창시절.....
군생활 시절.....
김세원님이 계셔서 많이 위로가 됬어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메어지다 못해 절여오네요....🥺🥺😢😢
이제 60대 중반이 넘어서 생각하니
참~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네요....
그 어려웠 시절을 지내신 모든분들께 가내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너무나 반가와서요. 참 우린 좋은시절을 살고있네요.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다시 보고 들을수 있다니 정말 많이 감사해요
내나이 56.
예전 어렸을적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너무나도 그때가 눈물나게 그립네요.
지금은 오팔?
갑장이시네요
반갑습니다
@@MSM-n7j저도...
저도 갑장입니다
@@하얀달님과별님
난 36
이 당시를 돌이켜보면
먹을게 부족했고 어린 나이에도
좀 고되고 어렵게 살던 기억뿐인데
왜 이때가 그립다 못 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걸까..
국민학교 시절
말 그대로 산 꼭대기에 지어진
달동네에 살며 뛰어놀던 기억들..
가슴이 먹먹해지네요...ㅠㅠ
추억의 시그널음악 ㅠ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설레는 김세원의 촉촉한 목소리~ 그시절이 너무나 아련하네요 ㅠ
75년도 2월 공과대학 졸업후 서울이 고향인 나는 20대후반 청춘으로 마산으로 직장생활위해 내려간다.
그곳에서 하숙생활하던 나는 DJ 김세원의 방송을 사귀던 아가씨와 자주듣곤했다. 화살처럼 흐른세월 그.시절이 그립다.
김세원 박인희 이해인 세분 모두 1945년 해방둥이시죠
라디오를 통해 이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초라하고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버텨냈는데
어느덧 이 분들도 산수(80세)를 바라보고 있네요
참으로 야속하고 무정한 세월입니다
이제 화창한 날은 길지 않고 내 잎사귀들은 떨어져 가는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추억의 아픔뿐
박인희씨가 한국에 오셨다고 하네요.cbs 김현정에 나오셨더라구요.
젊은시절에 라디오를 통해 밤이면 별이빛나는밤에 방송은 놓칠 수 없는 시절이 있었습니다~^^지금도 가끔씩
그 당시의 음악과 사연을 들어보곤 하지요~^^ 참으로 아련한 추억들이 시린듯한 감정이 마음에 와 닫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그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꾹꾹 담아놨던 감성의 비닐자루가 툭하고 터지는 느낌입니다. 그리움이, 그리움이....
“밤의 플랫폼”
고등학생 때 입주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담임의 소개로 1년 후배의 집에서 전 과목 진학지도를 한 것이었다. 가르친 지 한 달도 못되어 후배의 학교성적이 크게 향상되자 그 집 어르신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비록 많지 않은 돈이지만 집안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과 독립정신, 날로 좋아지는 후배의 성적에 집 떠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사춘기 시절, 순간적으로 바뀌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하기에는 피가 너무 뜨거웠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청춘의 봄날이 갑자기 우울과 고독만이 있는 절망의 시간으로 바뀌기를 수없이 반복하곤 했으니.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키우던 호연지기와 극단의 외로움을 중재할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시기였다.
그럴 때 조용히 힘이 되어준 것이 라디오였다. TV가 귀하던 시절 진공관식이나 별표전축을 통해 듣던 연속극을 통해 일찍이 라디오와 친해졌었고, 이후에도 ‘전설 따라 삼천리, 별이 빛나던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프로를 통해 청각에 의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나갔었다. 그때 라디오와의 인연 때문이었던가, 우연치 않게 내 인생에서의 첫 직업이 라디오광고를 파는 것이었고 재미있게 그 일들을 해내갔던 것 같다.
가정교사시절 가장 심취했던 라디오프로그램은 ‘밤의 플랫폼’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1970년대의 동아방송, 밤 10시 즈음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증기기관차의 굉음이 절정을 이루었다 사라진다. 그리고 폴모리아 악단의 왈츠곡 ‘이사도라’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저 유명한 김세원 아나운서가 조용히 시그널을 알리고-그 사이에 광고 몇 편이 있었던 것 같다- 짤막한 에세이와 밤의 정취에 맞는 음악 몇 곡이 소개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터로도 잘 알려진 그녀의 목소리는 이유 없는 젊은 날의 분노와 열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충분히 감미롭고 퇴폐적이었으며 고혹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방송국으로 찾아와 청혼을 하거나, 자살까지 감행한 젊은이들의 에피소드가 당시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사연의 막간에 소개되던 음악 또한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영화 천일의 앤의 OST 'Farewell my love' 등 어린 영혼을 뒤흔드는 것들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지금은 방송국조차 사라져 다시 들을 수없는 프로이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에 가슴깊이 각인되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많은 부분에서 정서적인 공감대가 있군요
필력을 보아하니 수재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불과 1년 후배의 가정교사를 하실 정도면 우수한 실력의 학창 시절을 보내셨을 듯 싶습니다...
이른바 일류 대학도 나오셨을테고, 졸업후에도 사회의 중추적인 일원으로 생활을 하셨을 듯싶습니다.
아마 추측컨데 광고 카피 라이팅을 하신 것 같은데... 창의력과 감성이 풍부한 직업인만큼 노스텔지어를 불러오는 글솜씨가 뛰어나십니다.
음악에 취하고 멋진 글에 또 한번 취합니다.
차분한글로.. 한번더 추억을 소환합니다. 음악도,김세원씨도 댓글도..그시간으로 데려갑니다.
감사!
오!! 훌륭한 필력이군요!!
중학교 때에는 "mbc여성싸롱 임국희" 씨 목소리에 매료되어 한번 만나자고 편지를 쓰고 mbc앞에서 2시간동안 무작정 기다렸던일,,
"김세원에 밤의 플렛트홈 " 의 김세원씨는 나의 애인 이었죠 ,목소리가 얼마나 예뼜던지 ,
한칸 짜리 방이라 어디에서 잘수도 없는 사춘기 시절 ,닭털침낭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라디오와 배터리를 검정고무줄로 칭칭 감겨진 그런 라디오를 머리옆에 두고 듣던 . 폴모리아 악단에 "이사도라" 그리고 밤하늘의 별과 함께 울려 퍼지던 낭낭한 김세원의 목소리,
침낭안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나의 소중한 공간이었죠
고등학교 방송반때에는 "팝송"은 방송금지라 "폴모리아 악단 "곡들만 주야장천으로 틀다가 어느날 산울림의 "아니벌써"를 틀었다가 지금도 만나면 죽이고 싶은 미친개 별명의 "황의 x 육군대위 교련선생 한테 워카발과 주먹으로
맞은게 군대에서 맞은거 보다 더 많았던거 같고 , 헌병의 주제를 망각하고 정문을 지키면서 라듸오를 듣다가 영창 갔다온일,,,,,,
영화를 보면서 처음 울었던일은 "천일의앤" 음악을 들을때 였다
내인생은 "라듸오"에서 시작해서 "라듸오"로 끝나는 것 같다
공감합니다
지나고보니
애잔한추억입니다
ㅋㅋㅋ 다 지나간 옛추억이군요
''
😁😁😁
아 멋있읍니다 맞습니다
폴모리아 악단의 이사도라 시그널음악을 들으며
성장했어요
귀하고 귀한~~
눈물나게 그리운 ~
!청계천8가~~~~아련한 73년 밤11시 김세원씨의의이사도라 시그날음악과 목소리
세월은. 벌서. 이만큼. 지나버리고. 에전에. 듣 던. 음악들이.
이제는. 저만치. 가버렸네.
돌아올수 없는. 아련한. 추억들.
아. 그리운. 시절이여
겨울에 눈 많이내리고 추울때 밤하늘 쨍하게
눈발서리던 그때가 좋았다.
날이갈수록 김정호, 초봄에 들어도 가을이 느껴집니다~ 가장 슬픈건 지나간 시절이군요
그렇습니다 날이갈수록은 언제들어도 낙엽떨어지는 가을느낍이납니다
김정호 곡 두곡을 믹스해
(꿈을 찾아, 외기러기 )
대학가요제 대상차지한
정신과 의사 이범용 ᆢ
범죄자 방관하는 MBC...
김정호 님 노래나오면 속상하고 죄스럽고.
놀라운건 아직도 나레이션하시면서 활동하시는데 목소리가 거의 변함없어 세월을 느낄수가 없다는거죠. 늘어지지않고 따박따박 특유의 절도있는 깊은 목소리! 살아있는 전설이죠👍
혹시 김세원씨 지금도
나레이션 하나요
어느방송 무슨프로에서
하죠 혹시 mbn특종세상
나레이션 하는 사람?
@@권투중계방송TV이교덕 네^^ 주로 다큐프로 하시던데 더보기들어가면 제작년도 나오는데, 예전프로 요즘올린거말고 최근제작된거봐도 그음성그대로 놀랍기만합니다😄
목소리가 제일 늦게 늙는데요
제가 초딩때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어케 외국에 그 많은 좋은 음악을 아셔서 그걸 국민들에게 들려 줄수 있었을까요... 김세원님의 음성과 멘트는 4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이렇게나 감동이고..
폴모리악단의 이사도라가 흐르며 들려오던 김세원님의 또박또박 읇조리던 목소리를 다시 들을수 있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어요 그때는 그때대로 힘들었는데 난 직장엘 다니고 명동을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양희은 라듸오 공개방송 들으러 종로5가 가고ᆢ아 이제 내나이 70이 다되오네 어쩌나
공감합니다.
그래도 과학과 기술의 발달덕분에, 옜날에 상상도 못하던 혜택을 받고 있지 않나요? 누님은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그 당시에는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요샌 100 세 시대라고 하네요. 운동 많이 하시면서 밝은 세상 좋은 기운 받으시면서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그때 그시절 60후반인데 어릴때 짝사랑 했는데 늘건강하길 기도합니다 커피 같은 목소리 ~ 그립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난 뒤에 듣게 되니,
마음이 찡합니다.
78년부터 87년까지 지방에서 DJ 생활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나간 나의 20대가 그리워지는
또다른 새벽녁임니다.잘듣고감니다.
고3 이었네.....눈물이나네요...😥😥😥😥😥😥😥😥😥😥😥😥😥😥😥😥😥😥😥😥😥😥😥....김정호 노래까지 나오네요... 무정한 세월이여...꽂잎이 떨어지니 젊음도 곧 가겠지... 세월이가네...젊음도가네...
저도 고3
아련한 그 목소리 가난이 숙명이던 그 시절 우리 아버지가 나 들으라고 사 주신 라디오
그 시절 그 혈육님들 우리 강아지 롬은 어디로 가 버리셨나? 부모님 참회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도 생을 마감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제가 오래 살고있습니다
머지 않은 시기에 제가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십시오
저는 생의 마지막 인연을 찾아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저를 가엾게 봐 주십시오
태고난 저의 운명인 모양입니다
열번도 넘게 유튜브를 들었는데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무겁게 정지되고 호흡이 거칠어졌는데 지금 겨우 진정하고 글을 남깁니다. 슬픈 것은 내 청춘과 함께한 것들이 오래전 사라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추억과 아름다운 옛 시간이 자꾸 자꾸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그널 뮤직 ~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말캉해집니다
나의 꽃다운시절 영화음악실을통해 영화와음악의 눈을뜨게해주신 김세원님
아직도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불속에서듣던 영화음악실...
75년생인 저는 별이 빛나는 밤 과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듣고 중고등시절을 보냈네요... 댓글을 쓰신 인생선배님들의 그시절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씀 저도 공감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해외에 거주하다보니 더더욱 그런것 같아요...ㅠㅠ
저도75년생입니다. 저는 자습실 다니면서 이문세의 별이빛나는밤에를 듣고 청소년기를 났습니다.
우리때는 신해철 의 밤디 엿던거같은데
전 73년생 이네요 저도 어렸을때 형들이 듣던 라디오에서 이종환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컸던것같아요 사춘기땐 문세형 별밤 공개방송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독서실구석에서 이어폰 꼽고 큭큭거리던게 엊그제 같군요 하~~ 나이가 벌써...ㅜ
@@sangdolee8933 저도 소띠입니다 우리 아직 젊어요 힘내자고요
건강하세요...🍀
정말 옛 생각이나네요
출발 하는 기적소리 졸린 듯한 그목소리 이렇게 다시 듣게 될줄이야
눈물이 나도록 푸르던 시절 세상이 전부 내 것 인줄 알았지요
고등학교시절 밤에 플렛폼을 드르면
가슴이 시리고 ,애절함이 있었습니다
김세원목소리를 듣고나면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사춘기를 잘이겨 냈던것 같습니다
정말그러내요
늦은밤 밤에 플렛홈,기차경적 멀리서 와서 멀리 사라지 소리,
미치도록 좋아했던 폴모리에 이사도라곡,
아울러 김세원님의멘토,
나지막하면서정갈한목소리,젊은이들의 인생을맨토,
고맙읍니다
나럐이션시 들으면서
미쳐하며 옆사람에게
추억을야그합니다
내내건강하시길비니다
정말 그때~~사춘기의 카타르시스를 제 자신도 모르게 느껴 준 거 같네요.
그리운 그 시절~~♡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그시절,
그 이사도라 음악과 김 세원님의 목소리...
그목소리에 들려주는 애절한 삶의 전달 ...
그때 내나이 20, 그후 호주로 이민와 잘 살았지만 ....
그래도 그 시절, 그 지난 시간들의 애절함에 마음이 아파오네요.
그시절 희망업는 젊은이에 목소리을대변해주시던 님은 나에희망이였습니다 ~~~
군입대 전에 종로2가 제일학원다니면서 허허다방,장안다방에서 차 마시던 그시절이 생각나네요.좋은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그거만 있었나요?
이층엔 팝이 ,지하엔 클레식이
흐르는 르네상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무교동
엔 마늘이 듬뿍 들어간 낙지골목에서 막걸리 한잔속에
꿈이 익어 갔지요~~^^
당시 고등학생 어무니와 군복무 중이던 건장했던 아부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ㅠ
79학번 저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만 있다면..ㅠ
76년도 군대쫄병때이노래날이갈수록 김정호님노래를듣고 화장실에서 동기와붙들고 엄청 끅끅거리고 눈물을삼켜는데... 참그때가청춘이었는데...
😁😁😁
저는 그때 군인아저씨께 위문편지를 보내곤 했었는데...
당시 초딩들은 치약이나 두루마리 휴지 양말 등등을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져가야 했었지요
참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동시대를 살았고 또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깊은 인연들입니까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아미치도록 그리운그시절 청춘의푸른시간은 속절없이흘러가 버렸네
비 오는 이밤에 들으니 가슴이 미어 지도록 그리워지고 눈물이 납니다 이젠 중년이 돼어서 들으니 더 사무치게 옛날이 그리워집니다
나도 돌아가고픈 그 시절이 있었다우.
그리운 그시절은 다시오진 않겠죠 그러나 그때의 그음악 방송과 그목소리는 다시 들을수 있어 과학의 힘은 하늘과도 같읍니다 너무 좋아요 다시 그시절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리마인딩 많이많이 올려주면 바랄것이 없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다시듣고싶었는지 모릅니다
가슴이 저려오네요
우연히 폴모리아연주곡 이사도라를 듣으며 단숨에 김세원님의 밤의플렛폼이 떠올라 여러날 반복청취하며 희망을꿈꾸던 그시절로돌아가 생활합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애잔한 목소리에 힘든나날 일어날수 있게해주심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전합니다 더 건강하셔서 자주 뵙고싶네요
1978년에 결혼해서 올해44주년 밤의플레트홈도
그시대 방송되었다니 세월이덧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김세원씨같은 서정 매력 목소리
를 잊을수가없네요
밤의플렛폼 ,,,,,
김세원님의 우수의 찬 목소리
오랜세웡이 지나 그저 추억속의 목소리라고 ~~~~
영원히 잊어버린 추억이라고,,,,가슴이 먹먹 해지네요 ㅠㅠㅠ
chang siga 40여년전 그때가 고1때인가 공부하다가 밝은달을보며 밤의플랫폼을 듣노라면 마음은 저멀리 밤하늘을 한없이 날아다녔는데 ...행복한 시절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bandocy 저도 비슷한 감성을 갖고 있었죠
그냥!
그냥!
그때는좋앗지!
그시절이 영원할줄알잇은데!
오랜만에 듣는 김세원님 목소리 너무나 반갑습니다
내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목소리 ❤❤❤
40년전에 들었던 목소리. 참 좋은 기억속에 남아 있었는데 다시 들어보니.감회가 새롭네요..
40대입니다. 처음 듣지만 정말 내용이 지금 들어도 고고하고 세련되어 보입니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현대 라디오와 차원이 다르네요
젊었을때 좋아했던 김세원씨 목소리. 다시 들으니 좋네요. 세월이 참 야속하게 흘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