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오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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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сен 2024
  •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1849년 전라북도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 때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31세까지 10여 년간 동학사에서 화엄 교학을 강의하던 중 어린 시절 은사인 계허(桂虛) 스님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천안의 한 마을에서 맞닥뜨리게 된 역병으로,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모습을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자신이 가르치던 경전의 수많은 교리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스승을 만나러 가는 일과 강사 생활을 포기한다.
    이후 경허는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와버렸다(驢事未去馬事到來).'는 화두를 가지고, 동학사 골방에서 정진한다. 그러다 어떤 사미승의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곳이 없다(到牛無鼻孔處).'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1879)
    * 위의 개당설법은 1880년 35세때 서산 천장암에서 행함.
    이후 충청,경상 일대의 사찰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진작하고 만공, 수월, 혜월, 침운 등의 제자들을 지도함
    1999년 54세때 해인사로 주석처를 옮김
    1904년 만공에게 법을 전하고 천장암을 떠남(55세)
    57세(1906년)에 함경도 갑산군, 평안도 강계군, 만주 등 북방의 오지에서 이름을 박난주(朴蘭洲)로 바꾸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숨어버렸다.
    64세(1912년) 때 함경남도 갑산군 웅이방 도하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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