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고향에 호랑이가 정말 많았던 모양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어디 간다고 말씀드리지 않고 나갔다 들어오면 "어딜 깨밀려(깨물려) 갔다왔어?"하시며 야단을 치셨죠. 자식이 안 보이면 호환 걱정부터 하던 경험이 언어습관에 남아 있다고 봐야겠죠. 근데 표범 이야기는 안 하시더라구요. '호랭이'의 기세가 너무 등등해서 표범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동네였던 모양입니다. 증조할머니께서 밭일을 하시는데 호랑이가 웅크리고 증조할머니를 노리고 있더라네요. 증조할아버지께서 발견하시고 놀라셔서 뭔가를 휘두르며 달려가시니까 호랑이가 그냥 가더랍니다. 마이크 타이슨이 호랑이한테 핵주먹을 날려도 전혀 아파하지도 않았다던데 증조할아버지가 지게작대기 정도 휘둘렀다고 물러난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미 품을 떠난지 얼마 안 된 아성체 호랑이여서 경험 부족으로 두려움을 느껴서 아닐까 잠정 결론을 내리긴 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너무 늙어서 그랬을까요? 표범과 호랑이를 혼동하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상님들께서 호랑이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것은 분명하거든요. 어느 해 겨울이 추우면 이듬해에 '호랭이'가 새끼를 많이 친다나?
옛날 조선사람들은 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호랑이랑 표범 모두 호랑이라고 싸잡아 불렀습니다. 예전 학창시절 미술책이나 국사책에서 종종 볼수있는 호랑이그림이나 민담도에 점이 땡땡이 무늬로 그려진 호랑이는 사실은 표범이라 할 수 있죠 P.s 아시겠지만 사실은 호랑이라는 말 자체도 범 + 늑대(이리)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범 '호' + 이리 '랑' = 호랑이
@@nsu2857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본문에서 이야기했듯이 '호랭이'가 교미하고 새끼치는 것까지 목격할 정도로 호랑이를 가까이서 보신 분들입니다. 표범을 '호랑이 마누라'라고 부르는 고장도 있다고 들어서 혹시나 하고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데, 지금 현재 저의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안강현-u2e 그러니까요.. 옛날사람은 호랑이랑 표범 구분을 잘 몰랐다니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호랑이도 호랑이고 어르신들에겐 표범도 줄무늬가 좀 다른 호랑이입니다.. 말 뜻을 이해못하시나.. 우리야 살면서 배우니까 표범과 호랑이 종의 구분이 가능하지.. 옛날 어르신들이 뭘 알겠어요.. 표범도 호랑이고 호랑이도 호랑이지
@@nsu2857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TV 동물 다큐멘터리 정말 좋아하셨고요, 그 동네 근처에서 서식하던 벌 종류며 동물 종류에 대해 나름대로 빠삭하셨어요. 근대적 학교교육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무식한 사람 취급할 건 아니죠. 우리 증조할아버지요? 옛날 분이라서 서당만 다니셔서 요즘 기준으로 '무학'이시지만 논어니 맹자니 통달하신 분이셨어요. 할아버지도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밖에 못 나오셨지만 한자 읽고 쓰는 것 잘 하셨고, 늘그막에 TV 보시면서 동물다큐멘터리도 보셨고요. 그리고, 호랑이와 표범 중에서 오히려 표범이 더 흉포할 수도 있죠.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서식하는 인도에서 표범한테 살해당하는 사람이 비율적으로 더 높다고 합니다.
강원도에 가면 호총 또는 호식총이라고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람의 돌무덤들이 종종 보입니다. 지금도 화천 동촌리에도 가면 있고 태백산에서도 보이구요. 호식총에 가까이 가면 자기도 호환을 당한다고 믿어 근처에 가지 않았다고 해요. 옛날 고갯길에 호랑이를 만나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고갯길 넘을때 호랑이는 물론 산적도 출몰하고 반대쪽 방향에서 양반이라도 행차해 오면 엎드려 있어야 하니 백성들은 참 살기 어려웠겠습니다.
@@wowwowwowwowwow5329 멧돼지 잡아먹을 정도의 맹수면 과연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멧돼지는 잡식이라 밭에 심어진 곡식이 목적이니 밭이나 무덤 파헤치는 정도로 끝난다면 표범이나 호랑이는 육식성이고 아예 사람 목숨 그 자체를 노릴듯. 멧돼지보다 훨씬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게 인간임... 등산은 물론 밤에 어디 나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됨.
그러고 보니 임진왜란때 가토기요마사가 심심? 할때 마다 했던 일이 호랑이사냥이었다고... 그 착호갑사들은 전부 명사수들인지라 일반 총병들 보다 능력이 뛰어났었다고 합니다. 이 착호갑사들이 일제식민지 시대 때 강제적으로 총기휴대를 금지 시키자 만주로 대거 이주를 해서 독립군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지나가는 tmi) 조선시대 맹수 하면 호랑이를 많이들 생각하실텐데 사실 조선시대는 호랑이보다 표범이 훨씬 많았음.. 실제로 조선말 3~40년정도 호랑이랑 표범 사냥한 개체수의 대략적인 기록을 보면 표범이 1000마리 이상?으로 호랑이보다 몇배나 더 많았던걸로 기억함. 애초에 호랑이 한마리 영역 크기가 반경 몇 십km인데 이 좁은 땅덩이에 그렇게 많은 호랑이가 살았으니 얘네도 얼마나 비좁았겠어요..ㅋㅋ 지들끼리도 많이 부딫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암튼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보다는 표범의 나라였다는거랑 그런 표범보다 늑대가 훨씬 많았다는거. 늑대는 진짜 상상이상으로 많았는데 대충 기억하기로는 사냥 기록상으로만 몇 만 마리 정도? (호랑이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늑대가 많아졌을거라 추측한다고함. 지금 우리나라에 대형 맹수가 없어서 고라니천국인 것처럼)
작가님~ 영상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컨텐츠 제보(?)를 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그 전에 귀신편을 보다가 생각난게 있었는데 서양에는 그.. '마법사'라는 존재가 있잖아요! 초자연적인 기술&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래서 막 고양이랑 올빼미가 같이 있는 삽화도 자주 등장하고 소설로 해리포터도 있고 등등 혹시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도 그런 서양의 마법사 비슷한 존재가 있었나요??(홍길동 말고....) 단어로는 도사 ,도술사, 주술사 등등으로 표현되면서 무협지 등에도 나오긴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들어본적이 없어서요~ 실제 한국 또는 동양의 역사에서도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ㅎㅎㅎㅎ(실제던 기록이던)
요새 유행하는 범 내려온다라는 이날치의 곡은 자세히 들어보면 흥겨운 노래이나 당시 조선시대에선 입에 담지도 못할 금지곡이었을겁니다. 아예 사람들은 범이 내려온다라는 말 조차도 입에 담지도 않았죠. 조선시대 말기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있을때 가마를 타고 가다가 날이 어둑해지니까 가마꾼들이 급히 가는 모양새를 보고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저녁에 되면 범이 돌아다니니 위험하다고 했답니다. 그만큼 호환을 무서워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맹수와 싸웠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아... 이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창덕궁 자체가 산 속에 있습니다. 당시엔 주위도 개발이 전혀 안되어 있는데다 창덕궁도 터를 잘 닦아 평지에 딱딱 맞춰 지은 경복궁과는 달리 산의 지형에 맞춰서 지어놨기 때문에 그냥 산 속 별장 비슷한 형태였죠. 인왕산,북악산에 살던 호랑이 영역 안에 궁궐이 있었던 겁니다. -_-;;;;;;
일제 36년 동안 어느 통계는 96마리 또 어디는 110마리 포획이라는 데, 그럼 150마리 포획 잡았을 때 150 나누기 36년이면 1년에 4 마리 정도 포획, 호랑이 수명 15년 잡았을 때 2년 후 임신 가능, 늙어서 임신 불가능 3년 잡으면 임신 가능 기간 10년, 10년 동안 평균 3마리 출산이면 호랑이 암컷이 죽을 때까지 30마리 출산, 그렇다면 36년 동안 셋으로 나눠 3마리가 생산하는 마리수가 90마리, 30년에서 나머지 6년이면 18마리 합 108마리, 근데 호랑이 가족이 어디 하나 뿐인가! 최소 10가족 했을 때 108 곱하기 10 = 1080 마리, 여기서 자라면서 죽는 경우도 있으니 생존율 50% 잡으면 540마리! 결론은 일제로 인한 호랑이 멸종은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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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때도명산 자연식물 생태계 소농장 번창농업도 생산하엤습니다
호랑이는 보호데왔습니다 전문사냥꾼들이 산에가서동물 돼지 꽁등사냥 햇습니다
가축소를 많이생산하여 가죽의로옷 을만들기도햇습니다
지방 마다명산있고 국민들이 때데면 벗꼿이피면 놀러다닙니다
조선때도 소 전염병에 많이죽었군요
자기전에 누워서 하나씩 보는데 개꿀잼...
농사짓다 뒷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오다니 ㅋㅋㅋㅋㅋ
이래서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갔다 집으로 못돌아오는 사람들 있다는 말이....
산적이나 화전민들 개쩜
산 넘어갈 때는 파티 구해서 그룹으로 이동했으니까 뭐
나무꾼 ㅈㄴ 위험한 직업이였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녀는 업계의포상이네 ㅋㅋ
대신 리스크가 높아서 보상이 선녀였어요
하이리스크(호랑이) 하이리턴(선녀)
@@진현-m6g ㅇㅈㅋㅋㅋㅋㅋ
@@진현-m6g 무슨소리에요?
그 독립적인 호랑이가 떼로 몰려오다니... 이 땅에 숲이 얼마나 울창했었던가요;;
땔감이 주 연료인 시대에 숲이 울창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땐 호랑이가 숲에만 산게 아니라 평지에도 살았던 겁니다. 그래서 농토로 쓸 수 있는 땅들에 호랑이가 다 차지하고 있어서 숲으로 쫓아내기 위해 착호갑사를 조직한거죠.
지금 북한처럼 민둥산이었겠지 전국민이 나무패러 산을 돌아다니는데 나무가 남아날리가
지금도 국립공원 가면 충분히 살만한거같은데
@@점소이 아니 ㅋㅋㅋ 조선 중기에 민둥산이었으면 조선 후기는 그럼 뭘로 뗄감을 썼어? 석유라도 뽑아썼나?ㅋㅋㅋ
호랑이 많은건 알았는데 표범도 많았군요 ㄷㄷㄷ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해서 '범' 이라고 불렀대요 ㅎㅎ
지금은 일제에 의해 호랑이가 멸종했다고 가르치지만 당시 일제치하에서 조선사람들이 가장 잘했다고 칭찬했던 정책이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 이런거보면 입맛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해석되는거 같아.
일제시대에도 호랑이의해 죽는인구가 수천명..을사조약 명성황후시해후 극도로 안좋아진 민심에 호감을 사기위해 일본이 해수구제사업으로 멸종시켯다고하는게 맞겟어요
너무 재밌고 유익합니당 최고
어쩐지 전래동화에 호랭이 개많더라.
3.토끼의재판,8.호랑이를속인토끼,18.토끼와두꺼비와호랑이,25.나그네와여우,37.곶감과호랑이,39.해순이달순이별순이,60.금강산호랑이
항상 호랑이를 조롱거리로 만들거나 고약한 상류층으로 푠현한게 그만큼 사람을 많이 죽여서 ㅠㅠㅠ
나무꾼은 진짜 목숨걸고 해야되는거였구나
넘넘 재밌네요 진짜 역사계의 알쓸신잡ㅋㅋ그리고 사실상 넘 흥미돋는 소재를 가지고 와서 넘 이해쏙쏙되게 알려주시니깐...진짜 계속 보게되네요ㅋㅋㅋㅋ
땡큐 재팬
저희 고향에 호랑이가 정말 많았던 모양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어디 간다고 말씀드리지 않고 나갔다 들어오면 "어딜 깨밀려(깨물려) 갔다왔어?"하시며 야단을 치셨죠. 자식이 안 보이면 호환 걱정부터 하던 경험이 언어습관에 남아 있다고 봐야겠죠. 근데 표범 이야기는 안 하시더라구요. '호랭이'의 기세가 너무 등등해서 표범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동네였던 모양입니다. 증조할머니께서 밭일을 하시는데 호랑이가 웅크리고 증조할머니를 노리고 있더라네요. 증조할아버지께서 발견하시고 놀라셔서 뭔가를 휘두르며 달려가시니까 호랑이가 그냥 가더랍니다. 마이크 타이슨이 호랑이한테 핵주먹을 날려도 전혀 아파하지도 않았다던데 증조할아버지가 지게작대기 정도 휘둘렀다고 물러난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미 품을 떠난지 얼마 안 된 아성체 호랑이여서 경험 부족으로 두려움을 느껴서 아닐까 잠정 결론을 내리긴 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너무 늙어서 그랬을까요? 표범과 호랑이를 혼동하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상님들께서 호랑이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것은 분명하거든요. 어느 해 겨울이 추우면 이듬해에 '호랭이'가 새끼를 많이 친다나?
옛날 조선사람들은 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호랑이랑 표범 모두 호랑이라고 싸잡아 불렀습니다.
예전 학창시절 미술책이나 국사책에서
종종 볼수있는 호랑이그림이나 민담도에
점이 땡땡이 무늬로 그려진 호랑이는
사실은 표범이라 할 수 있죠
P.s 아시겠지만 사실은 호랑이라는 말 자체도
범 + 늑대(이리)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범 '호' + 이리 '랑' = 호랑이
@@nsu2857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본문에서 이야기했듯이 '호랭이'가 교미하고 새끼치는 것까지 목격할 정도로 호랑이를 가까이서 보신 분들입니다. 표범을 '호랑이 마누라'라고 부르는 고장도 있다고 들어서 혹시나 하고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데, 지금 현재 저의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안강현-u2e 그러니까요..
옛날사람은 호랑이랑 표범 구분을 잘 몰랐다니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호랑이도 호랑이고
어르신들에겐 표범도 줄무늬가 좀 다른 호랑이입니다..
말 뜻을 이해못하시나..
우리야 살면서 배우니까 표범과 호랑이 종의 구분이
가능하지..
옛날 어르신들이 뭘 알겠어요..
표범도 호랑이고 호랑이도 호랑이지
@@nsu2857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TV 동물 다큐멘터리 정말 좋아하셨고요, 그 동네 근처에서 서식하던 벌 종류며 동물 종류에 대해 나름대로 빠삭하셨어요. 근대적 학교교육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무식한 사람 취급할 건 아니죠. 우리 증조할아버지요? 옛날 분이라서 서당만 다니셔서 요즘 기준으로 '무학'이시지만 논어니 맹자니 통달하신 분이셨어요. 할아버지도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밖에 못 나오셨지만 한자 읽고 쓰는 것 잘 하셨고, 늘그막에 TV 보시면서 동물다큐멘터리도 보셨고요. 그리고, 호랑이와 표범 중에서 오히려 표범이 더 흉포할 수도 있죠.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서식하는 인도에서 표범한테 살해당하는 사람이 비율적으로 더 높다고 합니다.
근데 우리나라 진짜 살기 좋나 좋은듯
산에가서 호랑이 곰에 물려죽을일 없고
바다가서 상어한테 물어뜯길일 없고
호수에서 악어한테 뜯길일 없고
너무재밌어요 역사읽어드립니다 평생해줘유.....
조선 왕조도 호랑이랑 표범 박멸하려고 용을 썼는데 예전의 역사 교육에서는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숭배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는데 어느날 일제가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맹수들을 마구잡이로 해쳤다고 배움.
이건 진짜 말이 안되는 개소리인게
멧돼지랑 고라니만 해도 농작물 망치고 간혹 도심에 나타나
사람 피해 입힌다고 해수구제사업을 하고 있는데
만약 호랑이나 표범, 늑대가 사람을 물어죽이는 일이 발생하면 그냥 뒀을리가.... -_-;;;;;;
슨생님 말 귀에 쏙쏙 존잼
역사되새김 해주시는 내귀에 심선생님.
호랑이가 나오는, 좋고 무서운 구전을 기억은 다 못하지만, 뜻 전달은 잘 되었던것같습니다.
그런데 호랑이,표범이 그렇게까지 많은 숫자가 모여, 구전으로 전해진 시대의 전후 상황이 궁금합니다.
아하
인간을 해치는데 소텅 잘 한 것 아니었을까요? 다시 복원한다고 하는 게 좀 어처구니가 없어요. 다시 개체수 많아서 문제생기면 그때서야 다시 소탕작전하겠군요
강원도에 가면 호총 또는 호식총이라고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람의 돌무덤들이 종종 보입니다.
지금도 화천 동촌리에도 가면 있고 태백산에서도 보이구요.
호식총에 가까이 가면 자기도 호환을 당한다고 믿어 근처에 가지 않았다고 해요.
옛날 고갯길에 호랑이를 만나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고갯길 넘을때 호랑이는 물론 산적도 출몰하고 반대쪽 방향에서
양반이라도 행차해 오면 엎드려 있어야 하니 백성들은 참 살기 어려웠겠습니다.
얘기의 끝을 잘 마무리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것도 맞지만 실제적으로는 일제 강점기 때 범이라 불린 호랑이, 표범이 가장 많이 사냥 되었고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지금도 호랑이나 표법 아님 늑대가 남아있었으면 지금 한집에 총한자루씩은 가지고 있을듯 총가지고있는것도 합법일듯
총은무슨 농사짓다 호랑이 나타나면 할배들이 낫으로 휘젓고 다닐텐데..
듯듯듯듯 그놈에 듯듯듯
강원도 산지 일대만 합법일듯
@@하핳-f9l 할배 d짐
@@rkfjfjdnxnzjajk ㅋㅋㅋㅋㅋㅋㅋㅋ팩트ㅋㅋㅋㅋ
진짜 팬 됐어요ㅜ 심작가님 사피엔드에 올라온 영낭 다 봄. 볼 때마다 너무 즐겁고 작가님 너무 멋져용
당시 호랑이에 죽는 사람 수
=
현재 교통사고 사망자수
서울에서 호랑이 제일 많이 출몰하던곳이
현재 독립문역 부근
인왕산 안산 사이인 무악재
인왕산의 돌산과 안산의 수풀산이 이어져있으니 엄청많이 살았다고하네요
멋진 영상이네요
잼있다~~
부산에도 보면 호랑이가 자주 나타난 동네는 범천동, 범전동, 범내골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는
1:44 사회로서 ,
6:59 오키나와의
역시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무궁무진하게 해석이 가능하네요 생태주의적 관점이라는 시각이 너무 흥미로워요 ㅎㅎㅎ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집들어갈때 가끔씩 고양이 때메 놀라는데 옛날에는 그게 고양이가 아니고 호랑이나 표범이었으니 ㅋㅋㅋㅋㅋ
호랑이도 표범도 냥냥이자나ㅋㅋ
목소리랑 발음 너무 좋아요 👍
조선 후기 접어들면서 동쪽에 있던 호랑이들이 곡창지대였던 전라도에도 많이 내려왔다 하더라구요.
농사나 밥지을 때 호랑이가 들어오는지 보기 위해 담에 개구멍을 지어서 호랑이가 오면 개가 아무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고... 개구멍 유래?라던데 되게 신기하네요 ㅋㅅㅋ
그쵸 백두대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데 전라도 바닷가, 경상도 바닷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ㄷㄷ
또 외국인 여성 공사관이 주막에 있을 때 너무 더워서 문 열어놨더니 주모가 호랑이 들어온다고 문 닫아라고 한 썰도 있어요
1:20 거의 1년에 2번 안되게 호랑이를 봤단 소리네 ㄷㄷ
공식적인 기록만 그정도인거고, 기록에 없는 자잘한 것들까지 합하면 훨씬 많았을 것 같아요.
산에서 보면 기록에안남을듯... 물려가니까
호랑이, 표범이 없어진게 등산 좋아하는 한국인 입장에선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함
대신 맷돼지 천적이없음
@@wowwowwowwowwow5329 멧돼지3마리만날래 호랑이1마리 만날래??
@@wowwowwowwowwow5329 멧돼지는알아서사람피해간다..호랑이는??생각좀하고살어
@@wowwowwowwowwow5329 멧돼지 잡아먹을 정도의 맹수면 과연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멧돼지는 잡식이라 밭에 심어진 곡식이 목적이니 밭이나 무덤 파헤치는 정도로 끝난다면 표범이나 호랑이는 육식성이고 아예 사람 목숨 그 자체를 노릴듯. 멧돼지보다 훨씬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게 인간임... 등산은 물론 밤에 어디 나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됨.
와 호랑이 떼 (??) 라는게.. 존재했구나 우와...
너무신기한걸.. 상상불가...
호랑이 얘기가 나온다고 깨알같이 브금에서도 범이 내려오네요 ㅎㅎㅎ
사실 노랫 속 범은 신나서 룰룰루~ 하면서 내려오는 범인데 실제 보면 개무서울듯..
그러고 보니 임진왜란때 가토기요마사가 심심? 할때 마다 했던 일이 호랑이사냥이었다고...
그 착호갑사들은 전부 명사수들인지라
일반 총병들 보다 능력이 뛰어났었다고 합니다.
이 착호갑사들이 일제식민지 시대 때 강제적으로 총기휴대를 금지 시키자 만주로 대거 이주를 해서 독립군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가토 기요마사가 아끼는 말이 호랑이한테 물려죽었음 그래서 복수로 호랑이 사냥 시작함
조선의 우두에 시작은 청나라
한국의 코로나에 시작은 중국
ㅋㅋㅋㅋㅋㅋ
머냐?ㅋㅋㅋ
콩고물 받아먹다가 병까지 받아먹은거지. ㅋㅋㅋㅋ
현재 호랑이가 없어진시대 덕분에 맷돼지랑 고라니 개체수가 많아졌네요 다행인걸까요?
호랑이 개체수 조절하려면 새끼때 잡는게 제일 쉬운 방법이었을텐데, 어미가 항상 주변에 있을테고, 또 너무 귀여워서 죽이기 힘들었을듯...
유익한데 존잼
6:59 사실 물소뿔로 활만들려고 그런거임...ㅋㅋㅋㅋ근데 뿔이 크게 안자라서 결국 수입에 의존ㅜㅜ
8:50 부터 마지막까지 배경 노래 뭔가요?
저도 궁금해요 ㅠㅠ
찾았습니다 I choose You - John Coggins
2022년 호랑이해를 맞이해 범내려온다 보고나니 알고리즘에 이끌려 들어왔는데 여기도 브금이 ^^
나처럼 2022년 호랑이해 다시 들어온 사람 손~~?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사업으로 인해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의 호랑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말았죠
세종대왕은 정말이지 천재였던것 같음 재밌습니다 ㅎㅎ
이런관점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몹시 흥미로웠습ㄴ.ㄷ,
강원도 신림, 창귀 바위 유명하죠,
지나가는 tmi) 조선시대 맹수 하면 호랑이를 많이들 생각하실텐데 사실 조선시대는 호랑이보다 표범이 훨씬 많았음.. 실제로 조선말 3~40년정도 호랑이랑 표범 사냥한 개체수의 대략적인 기록을 보면 표범이 1000마리 이상?으로 호랑이보다 몇배나 더 많았던걸로 기억함. 애초에 호랑이 한마리 영역 크기가 반경 몇 십km인데 이 좁은 땅덩이에 그렇게 많은 호랑이가 살았으니 얘네도 얼마나 비좁았겠어요..ㅋㅋ 지들끼리도 많이 부딫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암튼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보다는 표범의 나라였다는거랑 그런 표범보다 늑대가 훨씬 많았다는거. 늑대는 진짜 상상이상으로 많았는데 대충 기억하기로는 사냥 기록상으로만 몇 만 마리 정도? (호랑이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늑대가 많아졌을거라 추측한다고함. 지금 우리나라에 대형 맹수가 없어서 고라니천국인 것처럼)
어떻게 그렇게 많았던 개체들이
단기간에 사라진 것 인가요?
@@박상현-z9s1p 일제강점기,국토개발로인한 먹이부족 여기에서호랑이잡는군인도있었다고하는데호랑이만 잡았을일은 없으니 그때 표범늑대도 많이 잡았을거 같네요
@@tri1029 19년 3.1혁명 이후 당근 정책 일환으로 해수(해로운 짐승)구제사업을 벌임. 일제가.
@@박상현-z9s1p조선 500년동안 범사냥했는데 단기간이라고는 볼수가 없음
@@박상현-z9s1p 유튜브 내용에 나오잖아요 조선의 국가정책으로 호랑이 표범 없애버린거 단기간이 아니죠 500년간 때려잡았는데 때려잡기도 하고 조선시대동안 인구가 3배 이상 증가해서 사람이 개간하는 땅도 늘어 서식지도 침해당하고 그러니 없어진거죠
8:36
작가님~ 영상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컨텐츠 제보(?)를 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그 전에 귀신편을 보다가 생각난게 있었는데
서양에는 그.. '마법사'라는 존재가 있잖아요! 초자연적인 기술&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래서 막 고양이랑 올빼미가 같이 있는 삽화도 자주 등장하고
소설로 해리포터도 있고 등등
혹시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도 그런 서양의 마법사 비슷한 존재가 있었나요??(홍길동 말고....)
단어로는 도사 ,도술사, 주술사 등등으로 표현되면서 무협지 등에도 나오긴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들어본적이 없어서요~
실제 한국 또는 동양의 역사에서도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ㅎㅎㅎㅎ(실제던 기록이던)
솔직히 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왜란 호란 대기근 이전까지는 괜찮은 시스템 갖추고 있었던거 같네요.
인트로거 넘나 신나여
슈퍼m 내안의 호랑이 타고 옴. 재밌네유
선생님. 조선시대 물소를 데려와 교배하는 주 목적은 각궁 재료가 되는 물소 뿔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긴게 한우가 아닌지용?
대호라는 영화에는 일제강점기때 호랑이를 다 잡은걸로 나오는데 어떤게 맞는거예용
옛날에 팥죽 이야기 들을 때는 호랑이는 산에 사는데 왜 밭에서 나타나?? 이 생각했는데 그럴만했네....
이런 객관적인 분석 좋아함 ㅋㅋ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에 관한 픽션인데 소설 “밀림무정” 재밌어요.
옛기록에는 조선사람은 1년의 반은 호랑이한테 죽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를 죽이러 다녔다는 기록이 있더라
조선사람은 1년의 반은 호랑이한테 쫒기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한테 죽은 사람 문상을 다닌다는 중국 기록이 있죠 ㅎㅎ
1년의 반은 호랑이에게 쫓기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들 문상다녔다 입니다.
우와…… 역사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볼 생각은 못 해봤는데 넘 신박해요!! 생각해보면 호랑이를 몰아냈다!!! 하고 좋어할 건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초식동물들밖에 없었을 텐데 말이죠… 자연의 생태지도를 억지로 수정함으로서 발생하는 문제도 짚어주셔서 정말 좋았습미다 !!❤
학계추산 한해 사망자가 지금의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랑 비슷할 거라고 함 ㄷㄷ
요새 유행하는 범 내려온다라는 이날치의 곡은 자세히 들어보면 흥겨운 노래이나 당시 조선시대에선 입에 담지도 못할 금지곡이었을겁니다. 아예 사람들은 범이 내려온다라는 말 조차도 입에 담지도 않았죠. 조선시대 말기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있을때 가마를 타고 가다가 날이 어둑해지니까 가마꾼들이 급히 가는 모양새를 보고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저녁에 되면 범이 돌아다니니 위험하다고 했답니다. 그만큼 호환을 무서워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맹수와 싸웠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저도 저 노래 안좋아해요ㅠ 범이 내려오기는 무슨 끔찍함😢😢
물소 수입은 물소뿔이 우리나라 활을 만드는데 이용이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가 적합하지 못해서 못키웠다고 하네요
착호군 이라고 조정에서 만들어진 호랑이사냥부대가 있었죠
와 너무 재밋다ㅜㅜㅜㅜ신기하네요
호환마마 호랑이로 당한 피해가 마마 천연두 일명 두창으로 입은 피해와 같아서 생긴 말
전국곳곳 제 이름 보면 호랑이랑 연관된 옛이름이많음 예를들어 8명이 짝지어가야지만 호랑이한테 않잡아먹힌다해서 이름이 팔조령이라는 제이름같은거..
저걸 일본이 하니까 일제의 만행이라고 그러던데… 그리고 사라진 반달가슴곰은 왜 들여 온거냐??? 호랑이랑 표범도 들여오지 그러냐???
08:15 아니, 호랑이가 사라져서 온 한반도에 가득찰 정도로 늘어나면~ 그 소는 누가 키울꺼야 소는!!
힘내라...
@@jk-xi2eq 니가 키우면 되겠구나 ㅋㅋ
@@암흑과설탕 그래 화이팅! 오늘도힘내고
어느정도로 호랑이가 많았느냐면 궁 안까지 호랑이가 출몰했어요ㅠㅠ
아... 이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창덕궁 자체가 산 속에 있습니다.
당시엔 주위도 개발이 전혀 안되어 있는데다
창덕궁도 터를 잘 닦아 평지에 딱딱 맞춰 지은 경복궁과는 달리
산의 지형에 맞춰서 지어놨기 때문에 그냥 산 속 별장 비슷한 형태였죠.
인왕산,북악산에 살던 호랑이 영역 안에 궁궐이 있었던 겁니다. -_-;;;;;;
옛날 등산인들은 살기위해서 열정을 외쳤겠구나
착호갑사.
갑사의 갑이 갑옷 갑자네요
예나 지금이나 중국땅에서 온 것들이 다 문제구만.
근데 소를 기자재 라고 하는것이 맞는 표현인가?
킹덤보면 극중에 호랑이부대가 있었음
싸움이랑 칼질 활질 총질까지 특수요원 이였음!
어느시대나 해결할 문제가 있었네요.
호랑이는 호랑이인데 늑대랑 표범도 나온 일화 알고싶당
내친구 대호가 생각이나네
조선시대에도 호랑이코인이 있었구나
착호갑사가 14,800명까지 늘어난게 아니고, 착호갑사 포함 그냥 갑사가 14,800명까지 늘어난겁니다.
민비가. 청나라로 보낸. 호랑이 카페트가
어마어마 함. 지금도. 중공 박물관에. 있음.
웹툰 호랑이 형님 보면서 엄청 마음아팟는데..사람나타날때마다 안좋은 일만 생겨서
그럼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는 호랑이 표범에게 물려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다는거야 ㅡ,ㅡ
이건 재밌다. 인간이 어디 가나 비슷하지.... 다 자기들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자기들 수중에서 관리하게 되는 거지....
만약, 이시대까지 호랑이가 많다면 우린 어떻게 관리? 했을까요?
저기 나오는 착호갑사포함 갑사는 ㄹㅇ 현대로치면 유디티 특전사부대임
제발 범내려온다 노래좀 그만듣고싶어요
일제 36년 동안 어느 통계는 96마리 또 어디는 110마리 포획이라는 데, 그럼 150마리 포획 잡았을 때 150 나누기 36년이면 1년에 4 마리 정도 포획, 호랑이 수명 15년 잡았을 때 2년 후 임신 가능, 늙어서 임신 불가능 3년 잡으면 임신 가능 기간 10년, 10년 동안 평균 3마리 출산이면 호랑이 암컷이 죽을 때까지 30마리 출산, 그렇다면 36년 동안 셋으로 나눠 3마리가 생산하는 마리수가 90마리, 30년에서 나머지 6년이면 18마리 합 108마리, 근데 호랑이 가족이 어디 하나 뿐인가! 최소 10가족 했을 때 108 곱하기 10 = 1080 마리, 여기서 자라면서 죽는 경우도 있으니 생존율 50% 잡으면 540마리!
결론은 일제로 인한 호랑이 멸종은 구라!
보면 볼 수록 정승제 쌤 닮았다,,,,
호랑이 가까이서 찍은영상 보니까 카메라 향해서
그르릉거리면서 달려올때 진짜 순식간에 왔는데
조선시대에 산에서 호랑이 보면 ㄹㅇ바로 죽겠구나 싶었음ㅋㅋㅋ
호형 산군이 압카와 싸우느라 조선에서 호랑이 들이 대패 했구나
귀여운 외모 때문에 간과 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길고기양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먹이사슬 최상층에 있는게 길고양이 입니다. 고양이가 번식력도 강해서 도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서 질병이나 공중 위생 문제가 심화되는 중 이라네요.
어림짐작 그때당시 호랑이 목격은 지금의 시골 멧돼지 수준이 아니였을까 .. 살벌했겠네 멧돼지야 먼저 덤비는 경우는 드문데 고냥이과 동물이 사람이 농사짓고 있는데 뒤에서 고냥이 궁디 흔들고 사냥하는 자세로 다가와 덮친다면 ㅋ 살발하다 ..
정말 고라니 보듯이 봤을수도 있었겠네..
총이 없던 시절 어떻게 범을 잡았을까 사냥 기록이 남아있는지 궁금하네요
조총있었어요
@@user-me1qv1kc2z 장전만 수십초...
총 도입전까진 투창이나 창 화살로 잡았음
송희상 조선 초기는 없죠
조총도있고 활도있지만,미끼를이용한 함정을 마니 이용했다고하네요
옛날에는 호랭이
지금은 멧돼지....
저 당시만 해도 호랑이가 지금의 멧돼지 취급받았을 듯..지금 우리야 동물원에서나 보는 짐승이니 호랑이에 대해 관대할 뿐임
멧돼지보다 더하죠 사람이 아무리많아도 못죽일듯
맷돼지는 사실상 짐승중에서 최약체 수준임 ㅋㅋ 그런데도 엄청 피해보잖아 ㅋㅋ
호랑이랑 곰은 그 많은 짐승중애서 최강인데
솔직히 호랑이한테는 미안하지만
호랑이가 산에 있다고 생각하면
산에 갈 엄두도 못내지
저때당시 전염병 인도네시아 화산폭발로 화산재때문에 돌았던거 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