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림서원|오현단|향현사|영곡 고득종|명도암 김진용|십소장|장수당|충암 김정|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동계 정온|우암 송시열|조두석|증주벽립|서원철폐|의신학교|오현학원|제작 고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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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7 сен 2024
  • 귤림서원|오현단|향현사|영곡 고득종|명도암 김진용|십소장|장수당|충암 김정|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동계 정온|우암 송시열|조두석|증주벽립|서원철폐|의신학교|오현학원|제작 고종익
    music : 오현고 응원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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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속 쉼터이자 제주교육의 발상지인 귤림서원 오현단
    2
    00:00:13,680 --- 00:00:23,323
    (질토래비 이사장 문영택)
    영곡공 고득종 할으방은 (세종때 한성판윤을 지냈고)
    상당히 제주를 빛냈을 뿐더러 집안을 빛냈던 분입니다
    3
    00:00:23,323 --- 00:00:27,994
    바로 이곳(귤림서원 오현단)이 영곡 고득종 할으방의
    생가라고 합니다
    향현사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세종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
    1831년(순조 31) 제주목사 이예연이 김진용을 영해사에 배향하였다가
    1849년(헌종 15)에 제주목사 장인식이 김진용을 향현사로 옮겨 병향
    1871년(고종 8)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철사된 후
    제주유생들이 고득종과 김진용의 덕행과 공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오현단 내에 향현사 유허비를 세우고 제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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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곡 고득종 할으방이 세종대왕을 만났습니다
    제주 사람들 못 살겠다 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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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들이 해변가에 내려와 밭의 곡식을 다 먹어버리고 있어서
    제주 사람들이 아우성입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인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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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200M에 하잣성을 쌓고 해발 600M에 상잣성을 쌓아서
    이 사이 한라산(중턱)에서 말들을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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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도 그러냐 하면서 그렇게 하자 동의하여
    십소장(말을 키우는 10개의 장소)의 출발이 된 것입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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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제주에서 공부한 유림들이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자면
    숙소가 필요한데 이를 나라에서 해 줄 수 있도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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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제주에서 올라온 유림들의 숙소를 마련하고
    10
    00:01:31,624 --- 00:01:39,733
    세금이 너무 많다고 하여 세금을 깎아달라고 하는 등
    제주 민의를 대변했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11
    00:01:39,733 --- 00:01:47,741
    (도집사 김원순님)
    오늘 여기서 지내는 제향은 향현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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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현사 제향은 제주고씨 고득종 영곡공파 시조분을 모시고
    또 한분은 광산김씨 김진용 명도암 선생 두분을 모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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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2:00,286 --- 00:02:05,592
    향현에 학덕이 높으신 두 분만을 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14
    00:02:05,592 --- 00:02:20,607
    매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주최를 하고 제주문화원이 주관,
    양쪽 집안에서 후원을 해서 10월 15일날 정해진 날입니다
    15
    00:02:20,607 --- 00:02:29,616
    아침 열시부터 오전 중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게 오늘날 우리가 두분을 모시는 제향이라고 합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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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곡 고득종 할으방이 1400년대 인물이라면
    김진용 할으방은 1600년대 인물입니다
    17
    00:02:36,656 --- 00:02:46,666
    김진용이 과거에 급제를 해서 참봉 벼슬을 주었지만
    고향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제주 후학들을 키우겠다 해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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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옵니다
    서당을 짓고 훈학활동을 하는데
    장수당
    1660년(헌종 1) 제주목사 이괴가 진사 김진용의 건의로 세종때 한성판윤
    지낸 고득종의 옛터에 세웠던 10칸의 강당
    충암사(김정의 사묘)가 장수당 남쪽으로 옮겨진 이후 명실상부한 서원인
    귤림서원이 세워지게 됨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
    1875년(고종 12) 봄 제주목사 이희충이 장수당 옛 터에 경신재를 세워
    선비의 자제들이 학업을 닦을 수 있도록 함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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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이괴목사가 내려왔습니다
    장수당이라는 학교를 지어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20
    00:03:07,654 --- 00:03:17,630
    저기 충암 김정 선생의 사당이 있으니
    사당과 교실이 있으면 서원(書院)이 생길 수 있을텐데...
    21
    00:03:17,630 --- 00:03:26,473
    이괴 목사에게 장수당 건립을 건의를 합니다
    결국 장수당이 지어지고 (귤림서원이 생기게 됩니다)
    22
    00:03:26,873 --- 00:03:38,351
    (서원)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제주에만 있는 귤림
    감귤...귤림서원이 생긴 거에요
    23
    00:03:39,119 --- 00:03:49,129
    몇년 후(1682년, 숙종 8)에 숙종이 친필로 쓴 귤림서원 편액이 당도합니다
    24
    00:03:49,462 --- 00:03:59,472
    그래서 사액서원이 된 거예요 사액서원이 되면 모든 경비
    모든 경비를 나라에서 당해주게 된 거예요
    25
    00:03:59,606 --- 00:04:05,679
    충암묘가 들어서고 장수당이 들어서니 귤림서원이 된 것이죠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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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암만 모실것이냐 아니다 제주목사로 왔던 송인수도 모시자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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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음 김상헌도 모시자 다음에 동계 정온도 모시자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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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우암 송시열도 모시자 해서 오현이 된 것이죠
    오현단
    1. 조선시대 제주에 이바지한 오현을 배향한 귤림서원 옛터에 조성한 제단
    2. 오현(五賢)은 1520년(중종 15) 제주에 유배왔던 충암 김정, 1534년
    (중종 29) 제주목사로 부임한 규암 송인수, 1601년(선조 24) 제주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1614년(광해군 6) 제주에 유배왔던 동계 정온, 1689년
    (숙종 15) 제주에 유배왔던 우암 송시열 등 다섯 사람을 이른다
    3. 1871년(고종 8) 귤림서원이 헐린 뒤에 1892년(고종 29)에 김의정을
    중심으로 한 제주 유림이 귤림서원의 자리에 제단을 조성
    4. 지금은 위패를 상징하는 조두석 5기가 설치되어 있다
    5. 이 제단은 1578년(선조 11) 제주목 판관 조인후가 가라쿳물 동쪽으로
    충암묘를 지은 것이 시초
    6. 1667년(헌종 8)에 충암묘를 현 오현단으로 옮겨 와 사당으로 삼았다
    7. 1659년(효종 10) 목사 이괴 장수당을 재(齋)로 바꾸어 귤림서원이라 함
    8. 1682년(숙종 8) 사액을 받고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등 네 사람을
    모셨다가, 1695년 송시열도 함께 모시면서 오현(五賢)을 배향하게 됨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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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사당과 장수당을 합쳐서 귤림서원이라 했던 겁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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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1682년부터 사액서원으로 지정돼서 1871년까지
    약 200년 동안 귤림서원이 제주사람들에게 훈학을 합니다
    증주벽립曾朱壁立
    어떠한 역경을 만나더라도 증자와 주자처럼 굽히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겠다 혹은
    증자와 주자가 벽에 서 있는 것처럼 내가 학습을 해야 한다는 뜻
    31
    00:04:49,889 --- 00:05:01,735
    1871년 서원철폐령을 내리는데 당시 서원수는 약 700여개 중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전부 철폐해 버립니다
    32
    00:05:03,770 --- 00:05:13,780
    (이 때) 제주에 있던 귤림서원과 삼천서원 두개의 사액서원이
    철폐되어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33
    00:05:16,783 --- 00:05:26,159
    제주에는 삼천서당 하나만 남아요 삼천서당은 사액서원이
    아니라 관주도의 서당이었어요
    34
    00:05:26,159 --- 00:05:33,33
    향교와 삼천서당에서 제주 젊은이들을 훈학하다가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35
    00:05:33,33 --- 00:05:43,43
    지금은 오현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름은 귤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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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5:44,110 --- 00:05:54,120
    제주 근대교육의 발상지
    오현단 근처에 근대학교 들어서기 시작
    1907년 제주 최초 중등학교 사립 의신학교 설립(경신재에서 수업)
    (제주군수 윤원구 주축 의연금 모금해 교실 신축) - 3년만에 폐교
    1910년 5월 공립 제주농림학교 설립 (제주농업학교, 제주고로 개명됨)
    1939년 여름 제주시 광양지경 전농로로 이전
    1946년 오현중학교 개교 (우공 황순하선생 오현학원)
    1951년 오현고등학교 개교 - 1972년 9월 일주동로 101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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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5:56,156 --- 00:06:01,995
    사진자료 : KBS제주 古古제주찾기(210126 방송) 캡춰
    1892년 김의정 중심으로 조두석 세우고 오현제를 지내기 시작
    38
    00:06:01,995 --- 00:06:08,468
    1907년 최초 사립 중등 의신학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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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6:08,468 --- 00:06:14,174
    사진자료 : KBS제주 古古제주찾기(210126 방송) 캡춰
    1946년 의신학교 터에 오현중학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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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6:14,441 --- 00:06:22,315
    오현고 총동문회에서는 체육대회시 오현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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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6:22,716 --- 00:06:34,461
    귤림서원 오현단 투어 진행 단체들
    귤림서원, 제주착한여행, 세계유산본부, 질토래비 등

Комментарии • 2

  • @user-us4xc3vy6m
    @user-us4xc3vy6m Год назад +43

    문영택선생님의 훌륭한 해설에
    이해가 쏙쏙 됩니다
    김원순해설사님 해설까지
    더욱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