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신덕왕후 강씨의 꾀임에 넘어가 방석을 세자로 앉혔고 정도전이 거기에 힘을 실어준 거죠. 정치는 결국 뜻이 맞는 사람과 손을 잡는 법이니까요.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중앙집권체제 국가 건설을 원했고 정도전은 입헌군주제를 원했기 때문에 대업의 동지에서 정적이 된거죠.
3:19 남은 저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도주를 하는데 성공하지만 알아서 감옥으로 출두하였다. 그때 이유가 걸작인데, "정도전은 남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죽었지만 나는 미움 받을 짓을 안했으니 괜찮다" 는 것. 결국 남은은 이를 만류하는 수행원들의 반대도 뿌리치고 나서 스스로 감옥으로 가다가 참형을 당했다.
@@김현신-w1g ㅋㅋㅋㅋㅋ... 제가알기론 남은은 도망쳐 숨었다가 이방원에게 잘못한게없으니 자길 살려줄거라 생각하고 주변만류에도 뿌리치고 가서 죽은걸로 아는데요. 실록에도 그리 나온걸로 아는데 어느역사서를 보고 그렇게 확신하나요? 혹시 티비에서 그냥 죽였다고 한번에 죽었다고 말하나요? 말투나 깊이를보니 무서울거없는 학생같아 보이는데 알아서 거를게요.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명이 적극적으로 정도전을 노린것도 정도전이 단순히 유능한 관료를 넘어서 조선을 온전히 장악하고 명을 위협할 수 있는 군왕의 재목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 그 부분은 이방원의 근심과도 일맥상통 하는거 아닌가 생각이듬. 이성계 또한 정도전이 물리적 힘이 부족해서 필요했던 그저 한 부품에 불과했을수도..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정도전이 너무 앞서나갔다. 새 왕조의 기틀이 다 갖춰 지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건국 초기 상황은 강한 영웅이 필요한 법. 왕도보다는 좀 더 패도가 중시되는 시점이다. 수성하는 태평성대에나 정도전이 주장하는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이지. 결국은 정도전이 바랬던 군신공치는 결국 세종대왕을 통해서 그 시대가 실현되니 아쉬울 것도 없을거 같기는 하다.
만약은 없지만 태조가 이방원을 세자로 뒀다면 저 초기 요동 정벌도 실행되지 않았을까? 조선 초기는 결코 사대의 시대가 아니었고, 세종 때까지 북방 영토 수복이 계속됐기에. 또한 사병 혁파야 당연히 정도전이나 이방원이나 같은 생각이었을테고.. 물론 왕권이냐, 신권이냐가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의 원인이긴 했지만, 요동 정벌 좌절은 참 아쉬운 대목이라서.
@@frowty28 글쎄요. 저는 잃어버린 우리 옛땅에 얽힌 역사에 관해 얘길 했던 건데요. 그걸 오늘날 북침을 해서 만주 찾자로 비교하시는 데에서 우선 갸우뚱해지네요. 제가 우리 민족끼리 싸우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울러 그럼 니가 전쟁에 나갈 거냐는 식의 반전주의적(?) 반문엔 더욱 갸우뚱해지네요. 그럼 광개토왕에게도 같은 얘길 하시겠습니다? 그리고,,,,, 9개월 넘어 이 야심한 시간에 답글을 다는 제 모습에 역시 갸우뚱해집니다요. ㅋㅋㅋ
이방원과 정도전의 코드가 같았다면 조선이 훨씬 더 좋았을것 같아요.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는 입헌군주제같은 나라를 꿈꾸었는데 당시 시대에는 맞지않았고 신분제도를 없어야 가능한데 왕과 양반 중인 천민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정도전의 사상은 그냥 권력욕심일뿐 왕이 아닌 재상이 정치하는 세상 즉 정도전이 총리가 되어서 국정운영을 한다는 말이잖아요. 사람들이 권력욕심이 없다면 모를까 권력욕심때문에 권력을 가지면 결국 허수아비 왕의 자리까지 넘보고 군림할려고하지요. 조선말에도 허수아비 왕을 올려놓고 안동김씨가 총리처럼 오랜 기간 정권을 잡은 결과는 백성들의 삶의 비참하게 만들어버렸지요. 차라리 왕에게 권력을 주고 당쟁으로 서로 경재하게 만드는것이 훨씬 깨끗한 조선이 될겁니다. 만약 정도전이 이겼다면 세종같은 왕은 나올수없을것이고 사대부들때문에 절대 한글은 만들수없었을겁니다. 양반 사대부들은 백성보다 주로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하기때문에 적당한 조율자로 왕이 필요했다고 생각되고 전 당시에 태종이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강화를 한것은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됩니다.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사대부에게 최고권력을 주고 허수아비 왕을 내세웠다면 조선은 100년도 못가서 망했을것 같아요.
이방원이랑 정도전이 서로 타협하고 손 잡았어도 좋은결과 있었을거 같긴한데 정도전이 이방원 세자 만들고 이방원 설득해서 요동 정벌했으면 지금 한반도 영토에 두배는 됐지... 그럼 한글도 생기고 영토도 확장되고 왜 고려랑 조선은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려는 생각을 안했던건지 이게 다 신라 같은 약한정신력을 갖고있는 나라를 뿌리로 둬서그럼 발해봐라 고구려가 근본이라 칭하고 고구려 정신으로 무장되있어서 고구려보다 더 넓은영토 만들었자나 약한 사람들은 싸워보기도전에 질거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강해질수가 없음... 저때 요동 정벌해서 영토 넓혔으면 지금 아파트값 이렇게 치솟지도 않았을듯 ㅋㅋ
저많은 아들중에 통들어서 문과 급제한게 이방원뿐 ㅋㅋ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이방원이 정권잡은게 우리나라 행운이지 .. 피를 물려받은 영민한 세종이 집권할수있게 주변방해물들 다 처리해주고 무능한 첫째아들 폐위시키고 똑똑한 세째아들 왕위에 올린것만봐도 얼마나 현명한 인물인지 알수가 있음 .. 태종이방원 아니었음 우린 아직까지 어려운 한자쓰느라 문맹률높아서 이렇게 급속발전 절때 못했을거임 중국이 발전이 느린게 어려운 언어영향도 있다고함 . 태종 세종 둘다 이작은나라에 행운으로 찾아온 천재들이 아닌가싶음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조강지처의 아들이 5명이상인데 설마 두번째부인의 아무런 공도 없는 제일 어린자식한테 왕위를 물려줌ㅋㅋ 게다가 개국 1등공신 왕자 손절해버림ㅋㅋ 나같아도 돌아버려서 쿠데타 일으킴. 애초에 방석을 왕위에 앉힐거면, 이성계에게 분노를 받을지언정 나머지 왕자들 싹 다 쳐냈어야 했음.
@@Karls-h6k 결론적으로 이방원이 자신의 이복동생인 세자(이방석) 세자(이방번)을 죽여서 후환을 끊어버린건 잘했습니다. 만약 그렇에 죽이지 않았다면 정도전 남 은 심효생 같은 간신놈들이 이성계(태조)의 눈과귀를 막고 인의장막을 치면서 국정을 계속 휘둘렀을지도 모르죠 누가알겠습니까 ??
저때는 단순 일부다체제였을뿐 처첩제가 생기기 전이어서 양반가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와 예우를 받았습니다 처첩제는 중국에도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제도로서 조선중기 이후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여 처첩제의 확고한 틀을 닦은 이는 퇴계이황이었습니다
본방송의 "이방원의난(왕자의난)"의 일부 주요 내용은 우리가 학생시절에 배운 내용과 다르게 묘사되는군요제가알기로 역사는 모두 시실적 내용을 바탕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방송에서는 이방원의 "위화도 회군" 과 "함흥차사" 사건은 전혀 반영이 안되고 있는데 "우리가 배운 역사"가 잘못된 것인지요? 관걔자 분들의 해명을 부탁드림니다.
이방원은 왕가의 권력을 원했고 정도전은 유교선비의 권력을 원했다. 고려는 불교로 권력을 행사하다 망했지만, 조선은 유교로 권력을 행사하다 조선을 멸망시켰다. 망하는것은 역성혁명이었지만 멸망은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멸망으로 민족자체가 소멸 당했다.
6,부활절의 진정한 의미.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우리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를 흘리면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을 그 때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도 우리가 죄인이고 못 박혀 죽은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죄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여러분, 부활절 날 가장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의인이 됐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내 죄값을 다 치루고 부활하셨죠. 내가 주님 덕에 의인이 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됐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절에 예수님을 가장 찬양하는 것이고 진정한 부활의 의미인 것입니다.아멘! 그래도 날마다죄를 지으니까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말해야지! 하는 사람이바로,십자가의원수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의인은영원한 천국 입니다,죄인은 영원한 불못(지옥) 입니다.아멘! 대한민국 부천에서 세계 최고복음전도자 김성상 올림니다.감사 합니다.
유리 알렉세예비치 최 이종무는 대마도 정벌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대사기꾼이지요 과연 대마도를 제대로 갔다왔는지 안갔다 왔는지 대마도에서 왜구를 단한명이라도 만난 사실이 있는지가 극히 불확실하고 베일에 가려져있어요 아마 세종이 한글발명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사기꾼 임금이라서 그런 사기꾼 신하를 만난 건지도 모르겠군요
방석도 적자예요. 이방원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후궁으로 격하시킨 거지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였죠. 신의왕후 한씨가 개국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중전이 된 거죠. 방원이나 방석이나 둘다 적자이지만 장자가 아닌 건 마찬가지죠. 사실 적장자인 진안대군이 세자가 되었다면 이런 정변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야.다큐멘터리 잘만들었다.
정리도 잘되어있고.중간중간 전문가 설명도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1@@nature5120
변희봉씨 극락왕생 하시길
과격하지만 굳은일을 마다않고 공을세운 이방원을 알아주지 않으니 화병이 나서 거친 카리스마를 일으킨것 같습니다 이성계가 방석을 세자로 세운것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서 분별을 잃은것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신덕왕후 강씨의 꾀임에 넘어가 방석을 세자로 앉혔고 정도전이 거기에 힘을 실어준 거죠. 정치는 결국 뜻이 맞는 사람과 손을 잡는 법이니까요.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중앙집권체제 국가 건설을 원했고 정도전은 입헌군주제를 원했기 때문에 대업의 동지에서 정적이 된거죠.
@@짱구는목말러-z4x 정확히 아시네요!! 똑띠^^
여양예 🤪🤪🤪
@@짱구는목말러-z4x 좋게 포장해서 입헌군주제지 솔직히 어린 허수아비왕 앉혀놓고 세도정치해서 정씨왕국을 만들려고 했던거지요~~
정도전. 숨은야욕이많음. 방석을바지왕으로. 두고. 뭔가. 우뚝서. 지맘대로. 펼칠라. 그랫갯찌 이성계가. 중심를. 좀잘잡앗ㅈ으면 글쌔. 어째든. 이방원승리. 그덕분에. 우리는. 멋있는한글쓰고. 있나
역사의 라이벌 이거 생각 나네요 이게 진짜 재미있고 잘 만들었어요.
역사의라이벌 재밌는데 자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제 기억으로는 고원정씨가 중간에 한 인물과 잠깐 인터뷰를 하는 코너도 있었는데...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태조대옹님휼륭삽니다
역사의 아이러니!
이방원의 구테타로 아들인 새종대왕님의 등극으로 한글이 이땅에 창조되었슴!
3:19 남은 저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도주를 하는데 성공하지만 알아서 감옥으로 출두하였다. 그때 이유가 걸작인데, "정도전은 남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죽었지만 나는 미움 받을 짓을 안했으니 괜찮다" 는 것. 결국 남은은 이를 만류하는 수행원들의 반대도 뿌리치고 나서 스스로 감옥으로 가다가 참형을 당했다.
저도 그생각을 했는데, 연출적한계에 그냥 죽여버린게 아닌가싶네요ㅋㅋ
@@정동찬-n1t 변신 남은.정도전이방원이 한번에 죽엇다..역사 공부좀 해라
@@김현신-w1g ㅋㅋㅋㅋㅋ... 제가알기론 남은은 도망쳐 숨었다가 이방원에게 잘못한게없으니 자길 살려줄거라 생각하고 주변만류에도 뿌리치고 가서 죽은걸로 아는데요. 실록에도 그리 나온걸로 아는데 어느역사서를 보고 그렇게 확신하나요? 혹시 티비에서 그냥 죽였다고 한번에 죽었다고 말하나요? 말투나 깊이를보니 무서울거없는 학생같아 보이는데 알아서 거를게요.
@@김현신-w1g 역사 공부는 역사책으로.
@dd dd 부칸에서 온 간첩인가벼 프사도 친애하는 수령동지로 해놓고 열심히 가짜뉴스 도배로 이간질하려고 선동하네 ㅋ 열심히 햇볕아래 일하면 정신머리도 쪼큼은 돌아올텐데 ㅋ
태조왕건에서 아자개 역으로 분하신 김성겸 배우님은 여기서는 또 완전 다른 이성계 연기를 보여주시네요. 너무 반갑고 그리운 배우신데...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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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아자개 그 자체여서 그렇지 연기 엄청 잘하시는 배우임
영조임금(1988'하늘아 하늘아'에서) 역할 시청자들 끌어모으시던~^^!
영조역은 이분외 최불암,고김성원씨가 외모에 잘맞았는데,박근형,이순재씨(터프가이?외모 아니라서ㅋ)는 영조연기 잘하셨지만 외모가 너무 곱상하셔서~^^
감사합니닷
명이 적극적으로 정도전을 노린것도 정도전이 단순히 유능한 관료를 넘어서 조선을 온전히 장악하고 명을 위협할 수 있는 군왕의 재목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 그 부분은 이방원의 근심과도 일맥상통 하는거 아닌가 생각이듬. 이성계 또한 정도전이 물리적 힘이 부족해서 필요했던 그저 한 부품에 불과했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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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근데 이방원 정말멋진사람같다. 다른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이렇게해야한단걸 알더라도 하지못하지만 이방원은 현실적으로해야하는것들을 확실히결정하고 실행했던 그행동력과결단력이 정말멋지고 존경스럽다. 이방원을보면 느끼는데 정치란 아니정치가 아닌개인적인것들도 이방원같은 결단력과 행동력이있어야한다본다.
그러나 이방원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트랭크스-t8g 그건맞죠 전 이방원의 잔혹함을 존경하는게 아닌 행동력과 망설이지않는결단력이 존경스러운겁니다.
@@트랭크스-t8g 그러나 이방원은 세종을 낳습니다.
출연배우들이 지금보니 대단하네요.
이방원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0:11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은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한다..
어째 단막극이 요즘 방영하는 장편사극보다 훨씬 재밌지? ㅋㅋ 그리고 이강식 성우님 너무 정겹다 ㅜㅜ
이게 어떤드라마를 인용한거죠?
@@woodykim7132 그냥 단막극입니다. 다른 드라마 대본을 발췌해서 만든 게 아니라, 오리지널 대본이에요.
@@이성원-h8z 그렇게 생각않해요 다른편같은 다큐에서 계속등장하잖아요 배우들이 그리고 단막극이라면 제목이뭔데요?
@@이성원-h8z eeeeeeeeeeeeeeeeee
@@이성원-h8z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예서 친일파 대의당 당수 박춘금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변희봉 할아버지
이성계가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였네 어리석도다 자식은 하늘이 주는것이거늘 적자가 버젓이 있는데 질서를 어지럽혔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를 생각해야지 무조건 비난하면 안됨. 회군 이전부터 결혼을 통해 강씨(개경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커온 이성계였고 회군이후 왕에 되고나서는 강씨쪽 개경 지원세력을 무시할수없을테니 난리가 날것이라 인지를해도 강씨쪽 소생인 어린애를 앉힐수밖에...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둘째부인 자식이 영민하기라도 했음 이해라도 하겠는데 이건뭐 여자에 미쳐서 갓난애새끼 올려논것자체가 나라 생각은 일도 안한거임
귀한 정보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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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영상 29:40 '경복궁' 유래__시경 >제3편 대아 >제2생민지습 중 3번째 시 '취함(기취)'의 맨앞 '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음악이 짱
강력한 왕권이 정도전의 정책을 실현시킨 결과가 세종의 태평성대였나..
뭐 결과론적이지만 입헌군주제 세도정치 민주주의는 관료가썩으면 국가도 백성도 썩어가고.왕조시대는 왕이무능하면 암흑시대고 성군이나면 태평성대..
조상님의 빛난 얼을되살려 우리 겨레 우리민족 앞날에 찰날하고 영원 무원한 빛 대한민국
진짜 너무 꿀잼......왠만한 드라마보다 꿀잼이네요
왠x웬..!!!!
What is this movie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계획하고 또 누가 할수 있을지를 판단해서 이성계를 택할 만큼 사람을 보는 능력이 뛰어 난 정도전이 어떻게 이방원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년도가 아직 국딩때 군요. 이런 명작이 있었다니 몰랐네요... 너무 재밌습니다.
정도전이 너무 앞서나갔다. 새 왕조의 기틀이 다 갖춰 지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건국 초기 상황은 강한 영웅이 필요한 법. 왕도보다는 좀 더 패도가 중시되는 시점이다.
수성하는 태평성대에나 정도전이 주장하는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이지.
결국은 정도전이 바랬던 군신공치는 결국 세종대왕을 통해서 그 시대가 실현되니 아쉬울 것도 없을거 같기는 하다.
👌
변희봉 할아버지 너무 좋아용 ㅠㅠㅋㅋㅋ
첨부터 이방원 줬으면 저난리 날일이 없었음
그랬으면 자신들 목숨 자식들 목숨 전부 보존할수 있었을텐데
그저 이성계가 노망난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성계형님이 등극후 판단력이 굉장히 흐려졌다는건 사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분...;;;
13:26 방장군
우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2:22 변희봉 선생님.
만약은 없지만 태조가 이방원을 세자로 뒀다면 저 초기 요동 정벌도 실행되지 않았을까?
조선 초기는 결코 사대의 시대가 아니었고, 세종 때까지 북방 영토 수복이 계속됐기에.
또한 사병 혁파야 당연히 정도전이나 이방원이나 같은 생각이었을테고..
물론 왕권이냐, 신권이냐가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의 원인이긴 했지만,
요동 정벌 좌절은 참 아쉬운 대목이라서.
글쎄요 500년후의 어떤 사람이 2천년대의 대한민국이 북한을 공격해 점령하고 만주까지 공격해 점령했어야 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 글쓴이 분이 징집되서 전쟁에 나가야된다면? 전쟁이 나면 희생되는건 민간인과 젊은 사람들일뿐
@@frowty28 글쎄요. 저는 잃어버린 우리 옛땅에 얽힌 역사에 관해 얘길 했던 건데요.
그걸 오늘날 북침을 해서 만주 찾자로 비교하시는 데에서 우선 갸우뚱해지네요. 제가 우리 민족끼리 싸우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울러 그럼 니가 전쟁에 나갈 거냐는 식의 반전주의적(?) 반문엔 더욱 갸우뚱해지네요. 그럼 광개토왕에게도 같은 얘길 하시겠습니다?
그리고,,,,, 9개월 넘어 이 야심한 시간에 답글을 다는 제 모습에 역시 갸우뚱해집니다요. ㅋㅋㅋ
저때 요동정벌을 성공했다면 조선은 10년도 안돼서 망했을거임
중국 최고의 황제 영락제의 본거지가 요동인데 영락제가 남경에 간 사이에 조선이 요동을 쳤다? 이 연락을 들은 영락제가 황제가 된 다음 베트남이 아닌 조선을 쳤을거임
지금 하고 마찬가지여 지금 북한 치고 통일 허자 하면 누가 찬성허냐 북한 먹고 만주 친다 하면 중국과 전쟁인데 한국도 못하는걸 조선이 중국 하고 전쟁 해야 하겠나
꿀잼
정신병자
이성계 정도전 왕자난 이방원싸움
👍백성들의 안위인가
👍왕통의 권위인가
👍조선시대 왕자난 군자왕 누군가
너무 잼난다 ㅠㅠ
@@eo_nio 당신은 왜 또 우나? 나처럼 웃어야징~ ㅋㅋㅋ
이거 뭐 엄청난 배우들이 역사다큐에.. 요즘 재연 배우들이랑은 비교가 안되네.. 대하드라마인줄..
이드라마 제목이뭔가요? 임형규씨가 나오는 사극은 설중매밖에모르겠는데.
드라마는아니고 1994년 역사의라이벌이라는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오구귀여워-i6d 그건압니다 이다큐가 저드라마를 인용한거잖아요 그래서 인용한 저드라마 제목을 알고싶어서요
@@woodykim7132 이게 다른 드라마를 인용한 게 아니라 역사의 라이벌 자체를 이렇게 만든 겁니다.
@@dolgum826 글쎄 난그렇게 생각이안드네요 어느다큐멘터리에 저렇게많은 현역배우들을기용하나요? 그것도 그냥무명배우나 단역배우들도아닌 중견배우들로만 그쵸? 이건 상식적이지않죠
@@woodykim7132
상식이 당신을 틀 속에 가두고 있소이다
유연한 생각을 해보시오
13:31 요기도 여석개가 나오네
이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인지? 이방원 연기하는 배우분은 임영규 씨인가요?
드라마+ 다큐 라고 보시면
150억 상속 받은 재산 놀음에 빠져 몇 년 만에 다 날리고 빈털털이 된 사람. 견미리 전 남편.
나도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도저히 찾을수가없더라구요 확실한건 1993년전 드러마 즉 임영규가 미국가기전 드라마라는거죠 역대이방원역으로도 역대 이성계역으로도 배우들이름을 넣어서 검색해도 나오질안네요
섬네일 보고왔는데 정도전ㅡ재상정치아닌기요?
나중에 계속된 부전자전이 되버렸지요. 조전손전이 되버렸지요. 이방원의 손자인 수양대군이
또 야심을 가지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말았지요.
조전손전??ㅎㅋㅎㅋㅎ
문종이 좀더 오래살았다면 선조 같은쓰레기도 안나왔을텐데 ㅠㅠ
되--> 돼
이방원과 정도전의 코드가 같았다면 조선이 훨씬 더 좋았을것 같아요.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는 입헌군주제같은 나라를 꿈꾸었는데 당시 시대에는 맞지않았고 신분제도를 없어야 가능한데 왕과 양반 중인 천민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정도전의 사상은 그냥 권력욕심일뿐 왕이 아닌 재상이 정치하는 세상 즉 정도전이 총리가 되어서 국정운영을 한다는 말이잖아요. 사람들이 권력욕심이 없다면 모를까 권력욕심때문에 권력을 가지면 결국 허수아비 왕의 자리까지 넘보고 군림할려고하지요. 조선말에도 허수아비 왕을 올려놓고 안동김씨가 총리처럼 오랜 기간 정권을 잡은 결과는 백성들의 삶의 비참하게 만들어버렸지요. 차라리 왕에게 권력을 주고 당쟁으로 서로 경재하게 만드는것이 훨씬 깨끗한 조선이 될겁니다. 만약 정도전이 이겼다면 세종같은 왕은 나올수없을것이고 사대부들때문에 절대 한글은 만들수없었을겁니다. 양반 사대부들은 백성보다 주로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하기때문에 적당한 조율자로 왕이 필요했다고 생각되고 전 당시에 태종이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강화를 한것은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됩니다.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사대부에게 최고권력을 주고 허수아비 왕을 내세웠다면 조선은 100년도 못가서 망했을것 같아요.
이방원과 정도전의 코드가 같았다면 조선이
달라졌을거같네요
우❤😂리역사바로알기
로마 공화정: "네?"
사람은 내조자를!
외조자를! 사람을
잘 만나는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신하를 말입니다
42:48 갑주 안에 받쳐입은 핑크빛 내의.
정도전은 진정한 남자였던 것.
역사는 돌고 돈다 다시 절감
허준44
요즘 이게 왜케 재밋지 옛날에 아부지가 왜 다큐를 봣는지 알거같다;;;;
이방원이랑 정도전이 서로 타협하고 손 잡았어도 좋은결과 있었을거 같긴한데 정도전이 이방원 세자 만들고 이방원 설득해서 요동 정벌했으면 지금 한반도 영토에 두배는 됐지... 그럼 한글도 생기고 영토도 확장되고 왜 고려랑 조선은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려는 생각을 안했던건지 이게 다 신라 같은 약한정신력을 갖고있는 나라를 뿌리로 둬서그럼 발해봐라 고구려가 근본이라 칭하고 고구려 정신으로 무장되있어서 고구려보다 더 넓은영토 만들었자나 약한 사람들은 싸워보기도전에 질거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강해질수가 없음... 저때 요동 정벌해서 영토 넓혔으면 지금 아파트값 이렇게 치솟지도 않았을듯 ㅋㅋ
방석이 나이 어린 세자라고 뭐 문제될까 싶었는데,
영상으로 간접 체험해 보니까 큰 문제가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하겠네...
범 같은 이복형들이 수둑한데, 태조는 무슨 생각으로...
수트콤 보다가 이거보니까 저떄도 중년 역할하시는거보니 ㄷㄷ
아자개는 결국 이성계로 환생하고 정도전은 언젠가 대한민국의 한강 슈퍼주인으로 환생해서 송강호를 낳고, 송강호가 손님의 오징어다리를 하나 뜯어먹게 되는데.....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유교이상정치..지금도진행형인가? 안타까울따름
우리 조상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나 누가 잡나 구경하는 재미?
ㄴ틀니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nature5120 옳소!!!
@@nature5120 왜료?
저많은 아들중에 통들어서 문과 급제한게 이방원뿐 ㅋㅋ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이방원이 정권잡은게 우리나라 행운이지 .. 피를 물려받은 영민한 세종이 집권할수있게 주변방해물들 다 처리해주고 무능한 첫째아들 폐위시키고 똑똑한 세째아들 왕위에 올린것만봐도 얼마나 현명한 인물인지 알수가 있음 .. 태종이방원 아니었음 우린 아직까지 어려운 한자쓰느라 문맹률높아서 이렇게 급속발전 절때 못했을거임
중국이 발전이 느린게 어려운 언어영향도 있다고함 . 태종 세종 둘다 이작은나라에 행운으로 찾아온 천재들이 아닌가싶음
이방원말고 왕중에서 이렇게 본명이 알려진 왕도 없는 듯 매력적이고 은근히 폭군보다는 성군에 가까운 인물
조선시대 하며 누구보다 태종 이방원이 정치로 말하며최고 1등 카리스 모든 면에서 따라갈수없다태종이란 인물이있으기에 518년이란 세계서도찿아볼수없는 한시대가있었다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58:44
쿠테타 전문배우 박용식 할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하세요 오지환입니다
이 분도 인생 필만하나 가버리네
용의눈물좀 올려주세요
하이라이트 티비에서 평일에 밤10시쯤 용의눈물 하고있습니다만
왕과비 볼수있는 채널 어딘가요?
유동근... 연개소문...
와 임영규 아저씨 멋있네 이래서 수석으로 공채 뽑히셨나👍👍👍👍👍
수백년 전에 정도전이 어찌 그런 국가 시스템을 꿈꿀수 있었는지 신기함.
온리원오브의 정나인을 보셈. 똑같음 ㅋ
ㄸ신기한것이. 아니라요. 똑똑한게. 태어났으니까. 현대에도. 멍청한인긴태어나고. 똑똑한이도. 태어나고. 저때도그랫씀
@@청래-l5q ㅈ
ruclips.net/video/mjjnI05c1g4/видео.html
이방원은 홍건적, 왜구 토벌에 참전한 기록이 전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에조차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홍건적은 이미 이방원이 태어나기 전에 고려에서 퇴치되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시호는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이며,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자(漢字)만 다르고 한글 표기는 같은「공정」이기에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사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사료들에서「이방과」및「이방원」이라는 국왕의 휘(諱)를 피(避), 즉 피휘하여「공정왕」이라고 기록한 내용에서는 한자가 정(靖)인지, 정(定)인지 면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 구분을 면밀하게 하지 않은 결과 기존의 백과 사전 내용이나 역사 다큐 프로그램 등(예 : KBS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과 정도전 편)에서 사실과 어긋난 오류가 나왔습니다. 즉 단 한 번도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는 이방원이, 형 이방과의 전공을 가로챈 셈입니다.
1389년 류만수가 이방원과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는 백과 사전의 기록이 잘못되었고, 역사의 라이벌 이방원 편에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며 전쟁터에서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렀다는 해설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과조차도 홍건적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은 이방과가 5살 정도 무렵, 이방원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이미 고려에서 격파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원은 생전에 전쟁터에 나가 왜구를 무찌른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원이 아닌, 이방원의 형 이방과와 함께 출전하여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이방과는 이전에도 20대의 나이에(이방과는 1357년 생)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이준석대표같은영특함 윤석열패거리들이 잔인하게 짓밟고 내쫒은 것과도
왕자가.5명인데 어린방석이를 세자로 책봉하는데.ㅋㅋㅋ누가좋다하긋노 근데.어찌보면 이방원이 잘했네 그덕분에 성군 세종대왕도 태어나고 이방원의 아들이지 이성계 말년 정치 판단력이 이미 역모의길로 가고있었네...(예를들어서)
5명아들두고 어린놈한테 재산 다준다는데 누가가만히 있겠노
다하늘의뜻이다...
조강지처의 아들이 5명이상인데 설마 두번째부인의 아무런 공도 없는 제일 어린자식한테 왕위를 물려줌ㅋㅋ 게다가 개국 1등공신 왕자 손절해버림ㅋㅋ 나같아도 돌아버려서 쿠데타 일으킴. 애초에 방석을 왕위에 앉힐거면, 이성계에게 분노를 받을지언정 나머지 왕자들 싹 다 쳐냈어야 했음.
2ㆍ2ᆢ2ᆢ2ᆞ2ㆍ2ᆢ2ᆢ2ㆍ2ᆞ2ㆍ2ᆢ2
나같아도 빡칠듯
늙어서 사리뷴별못하는 남편을 조종하는구나. 어린 부인 방석의 모가 문제엿죠
@@토레타-e1t 이성계 늙어서 자식을보고. 어린부인이. 늙어서 사리분별못하고 치매같은증상이있던. 이성게를 조종한겁니다. 본처는 죽어없고
다큐인데, 나오는 배우들 이름값이 개쩌네. 요즘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서, 제작년도를 보니 1995 년임. ㅋㅋㅋ
전설의 나레이션 형님이다!
이성계는 물론이고 이성계 둘째부인 강비의 무분별력 때문에 왕자의 난으로 귀한 자녀들을 잃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자초한다
현주 조상이 강비?
성이 같소만
이것이 바로 사극이자 드라마이다...... 솔직히 아버지 이성계가 본처에서 낳은 자식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첩(신덕황후 강씨)에게 낳은 아들인 세자 이방번 이방석을 그렇게 두둔하여 관심을 뒀으니 이방원이 빡돌만 하지......
신덕왕후도 둘째 부인이어서 그렇지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이었습이다.
그런것도 있지만 본인이 장자가 아님에도 혁명때 가장 많은 공을 세우고 앞장선 아들인데 개차반 취급하며 가만히 꿀빨아버린 방번이랑 그런 상황을 만든 강씨때문에 눈이 돌아가버린거죠. 본인도 세자가 되길 기대했었고.
@@Karls-h6k 결론적으로 이방원이 자신의 이복동생인 세자(이방석) 세자(이방번)을 죽여서 후환을 끊어버린건 잘했습니다. 만약 그렇에 죽이지 않았다면 정도전 남 은 심효생 같은 간신놈들이 이성계(태조)의 눈과귀를 막고 인의장막을 치면서 국정을 계속 휘둘렀을지도 모르죠 누가알겠습니까 ??
이방원은 절대 세자가 될 수 없던 처지였죠. 공을 우선시하면 ... 이방원의 공이란게 정몽주 척살한 것이 될 터인데, 이성계 입장에서는 자기가 욍 되려고 길거리 한 복판에서 테러짓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방원은 절대 세자가 될 수 없지요
저때는 단순 일부다체제였을뿐 처첩제가 생기기 전이어서 양반가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와 예우를 받았습니다 처첩제는 중국에도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제도로서 조선중기 이후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여 처첩제의 확고한 틀을 닦은 이는 퇴계이황이었습니다
8:12 갑옷에 청테이프 실화냐?
정도전 진짜 문무두루 갖춘 천재다.결과론이긴 하지만 저당시 명나라 문치주의라 요동이 먹기쉬운 상태고 오히려 후금이 위협적이였지 요동을 먹었다면 지금의 지도가.달라졌을것같은데
요동이라는땅자체가 먹기도 힘들고 설사 먹어도 지키기 빡센 땅이긴하죠 저건 그냥 정도전의 무리수 를 던지겁니다 명나라에서 정도전을 소환
국내에서는 왕실사람들과 공신들한테 찍힌상태이고 사병혁파가 완전하게 되지 않는상황에서 요동정벌은 정도전한테는 1타3피같은 효과를 보니깐요
ㅈㄴ 이기적인 거임 지 이득 볼라고 전쟁일으켜서 죽는건 백성인데
먼 쌉소리하냐? 요동은 주원장이가 항상 주시하던 땅이고 조선을 경계했는데 먹었으면 바로 전쟁인데 무슨 미친 소릴하냐?
극 공감
지랄을 하는구나
저땐 후금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당시 명나라는 영락제 시기여서 조금이라도 명나라의 심기를 건들이면 바로 조선 멸망할 수준이였는데 베트남이 저항도 못해보고 바로 멸망했던거처럼
Title plss
현재까지의 최종승자는 정도전 ...
목숨은 먼저 잃었지만
민족의 역적 이성계, 정도전은 부관참시 하고 그 후손까지 싸그리 박멸해야 한다
3:31 견미리 남편 아닌가?
송대관
@@장끝순-z8w 임형규
임영규입니다
이방원으로 조선초기왕권강화 뒤 세조가
정도전으로 재역전한 게 사육신복원숙종
때 까지 간 느낌(이방원도 사육신도 구제
못한 단종의 무기력하고 나약함).
사라을많이죽인왕은 태종
이방원과 수양대군이었다
태종은정당성이인정되었으나 세조는 욕을 많이얻어먹었지라
본방송의 "이방원의난(왕자의난)"의 일부 주요 내용은 우리가 학생시절에 배운 내용과 다르게 묘사되는군요제가알기로 역사는 모두 시실적 내용을 바탕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방송에서는 이방원의 "위화도 회군" 과 "함흥차사" 사건은 전혀 반영이 안되고 있는데 "우리가 배운 역사"가 잘못된 것인지요? 관걔자 분들의 해명을 부탁드림니다.
대한민국도ㅠ운이 다했음
정도전의 이상이 이방원의 칼에 무너짐.
결국 조선의 정치는 현실의 승리
실제로 정도전은 발견되자 마자 그 자리에서 목이 바로 잘렸다고 함.
마지막 멘트..그때나 지금이나 냉혹한 정치현실..
이방원은 왕가의 권력을 원했고
정도전은 유교선비의 권력을 원했다.
고려는 불교로 권력을 행사하다 망했지만,
조선은 유교로 권력을 행사하다 조선을 멸망시켰다.
망하는것은 역성혁명이었지만 멸망은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멸망으로 민족자체가 소멸 당했다.
이방원은 왕인 자신의 권력 정도전은 신하인 자신의 권력을 추구할뿐 정도전이 정의가 아니다
이방원 이성계 정도전의 대결 구도가 진짜 이게 더 깔끔함. 용의 눈물,정도전,육룡이나르샤는 쓸데없이 길다.
드라마와 다큐의 차이죠
6,부활절의 진정한 의미.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우리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를 흘리면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을 그 때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도 우리가 죄인이고 못 박혀 죽은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죄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여러분, 부활절 날 가장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의인이 됐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내 죄값을 다 치루고 부활하셨죠. 내가 주님 덕에 의인이 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됐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절에 예수님을 가장 찬양하는 것이고 진정한 부활의 의미인 것입니다.아멘!
그래도 날마다죄를 지으니까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말해야지! 하는 사람이바로,십자가의원수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의인은영원한 천국 입니다,죄인은 영원한 불못(지옥) 입니다.아멘!
대한민국 부천에서 세계 최고복음전도자 김성상 올림니다.감사 합니다.
국민방송 KBS는 역사 대하드라마 제작에 즉시 나서라 국민의 역사인식을 높이고 수많은 방송인과 배우들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라,,,,
조선은 왕권정치도 유교적 이상정치도 실패했다.
왕권정치 시도도 있었고 유교적 이상정치의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엔 유교적 사상을 이용한 계파정치,세도정치로 점철됨.
거기엔 왕권을 이용한 외척정치까지 난무한게 조선 멸망으로 이어지는거지.
저때 이종무와 최윤덕이 이방원쪽으로 줄을 잘 서가지고 나중에 세종이 국방에 대한 업적을 수행할 때 도움이 되지요.
유리 알렉세예비치 최 이종무는 대마도 정벌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대사기꾼이지요 과연 대마도를 제대로 갔다왔는지 안갔다 왔는지 대마도에서 왜구를 단한명이라도 만난 사실이 있는지가 극히 불확실하고 베일에 가려져있어요 아마 세종이 한글발명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사기꾼 임금이라서 그런 사기꾼 신하를 만난 건지도 모르겠군요
@@이명인-f4y 사기를 많이 당해서 뭐든 삐뚤어지게 보는군...ㅉㅉㅉ
@@이명인-f4y 모르면 함부로 입털지 마라ㅉㅉ
신영균 무식하면 입을 처닫기 바란다
이성계 둘째부인이 이방원한테 세자자리를 주고 아들들을 부탁했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려서 다 죽게했다
적자는 이방원이었음.
네 맞습니다
방석도 적자예요. 이방원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후궁으로 격하시킨 거지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였죠. 신의왕후 한씨가 개국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중전이 된 거죠. 방원이나 방석이나 둘다 적자이지만 장자가 아닌 건 마찬가지죠. 사실 적장자인 진안대군이 세자가 되었다면 이런 정변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러한 역사가 없었음 지금의 한글도 없었음
방과 처럼 살고 싶다. 골 아픈일 뒤로 하고 폴로(격구) 나 치고 사냥나가고 놀고 먹고 아빠는 태상왕 동생은 왕 나는 상왕 방과가 👍
강씨 역활 배우.. 사투리가 은연중에 나오는거 같은데요? ㅎㅎ
킬방원 연기하신분 견미리씨 전 남편 임영규씨ㅎㅎ~^^
이게 언제 무슨드라마인지 혹시아세요?
@@woodykim7132 드르마아님 그냥 서프라이즈같이.에피소드이야기만드는 프로그램
저 때만 해도 참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ㅠㅠㅠ
@@폴라리스-o8r 저때는 지금에 비해괜찬은게 맞았을거임 ㅋㅋ하지만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풍파와 고초를 격으면서 변할수있기때문에 ㅋㅋ
3:54 예잇! 뭔데 이거 칼을 채찍처럼 내리치는 거 같음 빵 터졌네 ㅋㅋㅋ
임금의 자식인데 정도전이
대군한테 반말하네.이름도
부르고 ㅋ
0++0+0
수양대군도 대군 신분때 형동생 하면서 같이 개판 술먹던 애들이 왕 되고나서도 술 떡되면 세조에게 ''니가~ 어쩌고 저쩌고'' 한거 보면 당시 대군이 그리 대단한 자리도 아니었는듯ㅋㅋ 이방원은 사실 정도전에겐 그전까지 아재 아재 하던 입장이라 더 그런거 아닐까 싶음ㅋ
@@한글닉네임좋아 그건 세조가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반란공신들에겐 아주 쿨했다고 하죠~~
정도전 저건 죽여도 1000번 을 죽여야 됨
정치는이렇게할수없썻다.
왕자에난은 거듭일어난다
이방원이 군왕이 갖춰야할 덕목을 갖추긴했지 왕권강화를 자기수족도 내치는 결단력 그릇이 다름
왕권이 그냥 왕의 권력 이상의 의미가 있나요? 신권이든 왕권이든 사실 시스템이 잘 굴러가기만 하면 어떤게 강하든 상관이 없는건데ㅋㅋㅋㅋ 권력강화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어조라 그런가
정도전이 옳은거같으나 한편으론 이방원의 왕권강화가안됬으면 세종도 한글도없었다
조선왕조가 500년일수도 없었음
맞아요. 나라는 권력이 오로지 하나가 되어야 탄탄해짐.
나도 좆같은 놈들 말 듣기싫음.
됐
이방원은 정몽주도 죽이고 정도전도 죽이고 처남들도 모두 죽이고 그 살육을 벌이더니 손자대에가서 계유정난으로 또 살육이 벌어지네~
그 놈의 권력이 뭔지 ~
난 ‥이방원을 말을존경한디ㅡ ‥내가 악역을 맡으리다 ‥그말뜻이‥
너무나댐
지금도 재상중심 정치를 하고있다
600년 넘게 쭈욱 이어지고있다
대통령제를 지향하지만
사실상 국회, 의원중심이라고 봐도 되겠죠..
이번에 제대로 갈피가 잡힐듯 합니다
이방원이 난 인물....
참.. 정도전같은 대단한 사람을 죽였으니 이방원을 욕해야 마땅한데 이방원의 업적 역시 대단하니..
잘봤습니다~^^
정도전이 정권장악 했다면 세종대왕도
없고 한글도 없죠~
일단 태종이방원세계가 그이후 결과론되어서 우리역사가 된거고
정도전세계면 어케될지모르는판이지 조선도 그리 역사가 엄청나게 긴편도아니고 중간중간 대위기고 있고 조선 세조이후 거의 신하들이 많이 해먹는시절이 오래가긴함 결국 멸망의원인이 그런거에서 나오긴한거지만
장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