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의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선양 - 신용철 교수(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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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фев 2025
  • '동서 문화로'입니다.
    오늘은 '춘원 이광수 선생의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선양'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의 충무공 이순신(1545-1598)선양
    ◉ 그 동안 안녕하셨지요? 꽃으로 맞은 화창한 봄도 어느덧 연한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영웅 이순신을 일제강점기에 선양한 춘원의 노력과 공적을 알아보겠습니다.
    「 (10/510). 이순신과 안 도산 」
    나는 조선 사람 중에서 두 사람을 숭배합니다. 한 분은 옛 사람으로 이순신이고, 다른 분은 오늘날의 사람으로 안도산입니다.
    이제 『이순신』을 쓰니 결국 나는 내 애인을 그리는 것 입니다. 이순신에 관해서는 예전 『소년』 잡지에 「우리 영웅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64수의 긴) 신체시를 지은 일이 있었습니다.
    ◘ 일제강점기 충무공/ 충무로 춘원의 이순신을 선양 !!!
    1. 춘원이 선양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서 학교 에서 우리 글과 말은 물론 역사를 배울 수 없던 시기이었다.
    2. 일본인이 가장 싫어 할 우리의 영웅을 칭송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와 모험이었다.
    3. 그리고 당시에는 우리 민족이 지금처럼 이순신에 대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한 시기이어서 그의 선양은 더욱 빛나는 위험한 애국적인 시도이었다.
    ◉ 1. 춘원의 시,「우리 영웅」//『소년』 3권 , 전집 9, p.591
    명월포에 밤이 깊었도다.
    연일 고전에 피로한 장사들은,
    깊이 잠들고 콧소리 높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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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의 낙원으로부터 큰 사명을 다 할 때까지
    찬양하고 노래하리라.
    우리 영웅 충무공 이순신.
    ( 64수나 되는 긴 시로서 충무공을 영웅으로 읊었다.)
    2. 충무공의 유적지와 전적지 답사 및 연재
    1) 춘원은 당시『동아일보』의 편집국장으로서 1930년 5월 19일부터 6월 1일 까지 온양에서 출발하여 이순신의 전쟁 유적지인 목포와 여수, 벽파진 통영, 한산도와 고금도 등 전적지를 답사하여 5월 21일부터 6월 8일 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2) 그는 민족의 은인이며 민족혼의 조상으로서 숭배하여 특히 6월 1일 고금도 에서 중국 『삼국지』의 영웅 관우의 사당「관악묘」의 귀퉁이에는 명의 수군 제독 진린과 명의 부제독 등자룡이 있고, 서무에 우리 충무공을 모신 것에 비통하여 탄식한다.
    3) “고금도에서 이 꼴을 보고 고금사를 생각하니 비분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자기 조상을 낮추고 남을 숭배하는 무리를 낳은 조선을 참으로 통탄한다.”고 썼다.
    3. 유적보존사업과 현충원을 재건하다.
    1) 숙종 32년(1706)에 설립된 현충원은 1863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철폐되었다.
    2) 후손의 위토관리 부실로 충무공의 위토와 묘역은 1930년 2,100 원 부채로 경매처분의 위기에 직면했다.
    3) 1931년 5월 13일 이 보도에 26일, 송진우, 정인보, 최남선등의 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모금운동을 주도하여 무려 2만여 명이 참여하여 1만 6,021원의 모금했다.
    4) 유적보존위원회는 1931년 6월 11일, 2272원 22전을 내고 은행으로부터 충무공 위토와 묘소를 되찾았다. 남은 돈으로는 1932년 충남 아산군 백암리 충무공 고택 옆에 현충사를 중건했다,
    5) 이를 주도한 주요 인사들은 일제 당국의 압박과 내사를 받았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당시 성금을 낸 후손을 찾아 표창했다.
    4. 춘원의 장편 소설, 『이순신』
    -1931년 6.26-1932년 4.3까지, 178회 - 청전 이상범 화
    1) 1931년 5월 23일의 소설 예고: 눈물겨운 이 기회에 거룩한 감격으로 우리의 충무공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세 상에 내 보냅니다. 그 강산 그 인물과 그 기록 그 모양을 이 강산에 그대로 재현시키려합니다.
    2) 작자의 춘원의 말: 내가 진실로 이순신을 숭배하는 것은 그의 자기희생적이며 超毁擧적이며 끝없는 충의입니다. 군.소배들이 자기를 모함하거나 말거나, 군주가 자기를 총애하거나 말거나, 일에 승산이 있어나 말거나, 자기 의 의무라고 믿는 바를 위해 죽는 날까지 변치 않는 그의 충의와 인격을 숭앙합니다.
    3) 마치면서: 선무 일등공신, 그까짓 것이 무엇 충요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동포들이 제향하는데, 적을 보면 도망치기에 바빴던 무리들이 정권을 잡아 300년 호화로운 꿈을 꾸는 동안, 산에는 나무가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르고, 백성은 가난해 졌습니다. (1592-1894-5)
    그가 돌아간 지 334년 4월 2일에 조선 5백년에 처음이요 나중인 큰 사람, 이순신 (충무공이란 말은 왕과 그 밑의 썩은 무리들이 준 중 것이어서 나는 싫어한다)의 슬픈 인생을 그리는 붓을 놓는다.
    5. 문화재청의 2022년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예고
    1) 문화재청은 현충사 중건 90주년을 맞아 8월, 성금 편지와 지출장등 사료 4254 점 등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2) 현충사 관리소는 성금 기탁자 후손 초청행사로 개인 31명, 단체 21곳, 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괴산의 윤기옥 64), “할아버지의 뜻 깊은 참여로 가업의 뿌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아일보』, 2022년, 5.31일. 6.20일, 12월 17일
    ◘ 참고문헌: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 『충무공과 현충사
    신용철, 『충무공 이순신과 춘원 이광수
    이광수,『우리 영웅 이순신, 유적 전적지 답사, 이순신 등)
    『동아일보』, 2022년, 5.31일. 6.20일, 12월 17일.)
    사진:
    1.영정/31, 2. 현충사/6, 3. 충무공 묘소/22, 4.거북선/42, 5. 난중일기/ 26 6. 어록비/20, 필사 즉 생, 필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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