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금이란 넘은 지나 넘이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 구라는 지금 지나넘들이 하는 말이 구라지!!~ 고구려 백제가 지들 나라래 미친 넘들. 지금 지나는 지네 축구실력 올리는 길은 한일 등 황인종 축구선진국 병합해 그들 월클선수들을 지들 나라 사람만드는 길 뿐이라고 생각해 한일침략 넘본다더니 정말이구나!!~ 저 지나넘들 침략야욕 분쇄하기 위해 군사력을 더 확충해야 한다.
보장왕의 후손이 횡성 고씨라고 합니다. 국내 고씨들은 거의 제주가 본관입니다. 장수왕의 후손들이 랴오양에 정착하여 요양 고씨가 있다고 합니다. 만주 지역의 백김치 수안차이, 된장, 옥상형 창고가 고구려의 유산입니다. 백주 태씨가 발해 대조영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살던 곳이 황해도라 고려에서 발해 왕족을 받아준 것으로 보입니다.
@@integrity1897 삼국시대에도 귀족, 왕족은 성이 있었습니다. 신라도 박, 석, 김이 돌아가며 즉위하고 백제는 왕족은 부여씨, 귀족은 8성씨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이때 엄청난 조작이 일어나 머슴이 쌀을 바치고 주인집 족보에 편입이 되지요.
9:45 고구려가 유목민족 습성만 있는게 아니죠. 그랬다면 수당제국과 맞서던 그 병력과 물자를 어떻게 충당했겠습니까? 분명히 농사도 지어가면서 싸운거고 영토가 상당했으니 농사에 적합한 땅이 그렇게 많은건 아니지만 경제를 어느정도 지탱한거고요. 그리고 애시당초 지배층 대다수는 유목민족이 아니죠. 유목민족의 성장을 억제하고 필요시에 자기들 전쟁에 동원할 정도로 철저히 통제한거지...
고약광에게는 성인 고씨를 붙이면서 고안승에게는 안승이라고 언급하는건 오류입니다. 삼국사기에 안승이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굳이 성을 안적어도 고구려 왕족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성이 고씨임을 다들 알것이라는것을 전제한거죠. 후세사람들은 혼란을 막기위해서라도 안승이 아니라 고안승이라고 언급해야합니다.
@@user-oj4fq5gg1b 삼국 대륙설은 그 근거가 너무 부족하고 가설은 억지와 우연에 기반합니다ㆍ 가자 쉬운 판단기준은 그 땅에가서 그땅의 역사를 찾아보면 됩니다ㆍ 그땅에서 백제의 역사, 언어, 신화, 지역전설 등을 보면 바로 알겠죠 같은 명칭 유물만으로 천년전의 역사를 재건축하려 하다가는 손가락질 받기 마련입니다ㆍ 대룩 백제설이나 신라설은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비교도 안되게 큽니다 당장 당신이 말한 지역에 가서 그지역 역사와 유물 언어 설화를 찾아보시면 위에 쓴글이 부끄러워질것 입니다 ㆍ
고구려,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100만이나되고 유 , 연 , 제 , 노를 요(굴복시킬:요)하고 오,월을 침(빼앗을 침)하였다. ㅡ삼국사기ㅡ 요와 침은 옛날 한자사전 설문해자로 해석해야 시대에 맞는 해석입니다. 굴복시킬 요와 빼앗을 침이 설문해자 해석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국의 일식기록을 미국 천문프로그램 이클립스에 넣어 검증한 결과 고구려는 바이칼호수부근 백제는 황하부근, 신라는 양자강부근 통일신라후 한반도로 검증됐습니다. ㅡ박창범교수ㅡ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고품격 역사유튜브 책보고를 강추합니다 . 사서간교차검증, 과학적검증, 사서에 나오는 지명과 유적유물이 고대 중세 근대지도와 서로 연동되어 우리선조국가들의 영토를 알수있습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기록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이씨조선때 역사왜곡을 했고 일제때 또한번 역사왜곡을 한것을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puvys9tOFVs/видео.html 이씨조선의 시작과 역사왜곡의 시작 일본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PGQPQ3PBqPM/видео.html 1927년에 일본이 제작한 군사지도. 대륙에 있는 수많은 고려지명들 중공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WMzY-I1zxxo/видео.html 1964년 대만군사지도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 지명과위치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7euBuFELSp4/видео.html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역사왜곡 ruclips.net/video/svt1lQdHDFk/видео.html 고구려의 평양들, 한성 왜곡된 지도로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들 ruclips.net/video/rNtj_jvhQTg/видео.html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아야할 이유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왜곡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 ruclips.net/video/Czl03hSXk4c/видео.html 대한민국 역사학과교수들의 불편한 진실 신라는 대륙에서 시작하여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되었습니다 ruclips.net/video/IdhqRCqjeS4/видео.html 신라의 시작 ruclips.net/video/shw30dHfgL4/видео.html 신라와 당나라의 7년전쟁 ruclips.net/video/7xL4slq4kKo/видео.html 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ruclips.net/video/ZvB56zoyfj4/видео.html 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과 우산의 위치 ruclips.net/video/-e0nKCUeyvs/видео.html 신라초기의 왕궁들, 대인국,소인국 위치,신라의 영토 ruclips.net/video/QrT8bJzyq-o/видео.html 백제와신라의 위치. 대륙에 존재하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ruclips.net/video/7xL4slq4kKo/видео.html 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고구려 예맥족들도 한민족범위였는데 발해고구려 멸망후 뿔뿔히 흩어져버려서 만주족이 성장할수 있었다고봅니다. 지금 중국영토가 저리넓은 이유는 고구려멸망 나비효과일수도. 그리고 병자호란때도 이괄의난(조선군끼리 내전)만 없었어도 청나라가 쉽게 병자호란 대승을 거두지도못해 지금의 커다란 중국영토가 없었을수도 있었음.
@@outerlevi6254 만주족이 예맥족이라거 하기에는 애매한데 삼국시대때 이미 언어가 달랐다고 합니다. 유전적으로는 상당히 비슷해도 언어가 다르면 다른 민족입니다. 우리가 흔히 같은 계열은 언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삼한의 일부라고 생각을 했고 고구려는 백제와 언어와 문화가 비슷 백제는 신라와 언어과 통했고 또 김춘추가 연개소문에 찾아갈때 통역사를 통해 대화를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런 기록을 볼때 언어가 완벽하게 같지는 않더라도 서로 어느정도 알아듣는 수준이라는겁니다. 그러나 그 삼국시대에도 말갈은 고구려와 언어가 다르다고 기록되어있는거보면 그 이전부터 갈라진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될거같아요. 결국 말갈은 예맥이라는 이름이 생기기도전에 분열된 민족이라는거죠.
@@최유훈-n1r 만주족이 언어가 다르지 않아서, 대조영이 말갈족,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함. 심지어 조선 연산군 시대까지는 여진, 거란 등이 조선과 언어, 복장이 비슷해서, 조선인들이 요하로 도망가면 잡을 길도 없다는 연산군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도 비슷한 어휘가 많은데, 만주어: 한국어로 비교하면, 모쿤:묶음, 니루:이룸 등등이 있다. 현대 한국어가 많이 인도어화, 게르만어화, 영어화, 중국어화, 일본어화 돼서, 북방민족과 문법, 어휘가 많이 달라짐. 실상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란, 선비, 몽골, 여진 등과 말이 비슷함. 그게 중국 사서들에게도 남아있다. 실위, 선비족이 고구려, 부여어와 같다고 적혀있다. 실위가 몽골과 현재 러시아 북방 아시아 유목민의 조상이다. 또 신라, 선비가 언어와 종족이 같다고 하며, 부여, 고구려,백제가 종족이 같다고 함. 결국 이 나라들 모두 단군조선의 후손이라고 역사기록에 적혀 있다. 심지어 여진족의 조상이라는 숙신씨도 여진과 함께 한자 발음이 조선과 같다. 조선은 아사달의 음차어라고, 기록에 적혀있고, 현재 중앙아 투르크어의 아스타나와 같은 뜻이다. 숙신에서 여진으로 한자가 바뀐 것 뿐이며, 조선에서 숙신으로 표기법만 바뀐 같은 글자. 이를 중국에서 "가차"라고 소리만 따오는 표현법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 춘추시대로 올라가면, 숙신=조선 으로 구분 안함. 심지어 중국 사서에는 읍루, 물길과 부여, 고구려어가 달라졌다는 후대 기록이 있는데, 읍루가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읍루는 일루라고도 불리며, 아이누의 음차어. 참고로 한자 마을읍의 고대 소리가, 현재 한국어의 "마을"이랑 같다. 한국인이 만든 한자 임. 아이누는 현 일본 훗카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 근방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아이누는 석기 시대까지도 한반도 주요 거주민중 하나임. 게다가 후금이 청나라로 개명할때, 맑을 청 자를 썼는데, 그 뜻을 말하는 한국어 "맑을" 과 만주족의 고유 민족명인, "말갈" 이 같기 때문이다. 말갈은, 마한과 같은 뜻이라고 거란고전에 기록됨. 말 = 말 갈 = 고려, 구리, 가리, 가르, 가라, 가락, 가야, 구루, 고을, 성읍, 도시, 나라 라는 뜻이다.
혹시 그 무사시에서 일어난 다이라씨가 고구려인들과 관련 없나 모르겠네? 고구려인들은 무사시 지역에 봉해진 뒤, 거기서 말을 방목하여 기르는 일을 했다는데 덕택에 풍부한 군마를 제공하게 됩니다. 즉 군수 산업을 담당한 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다이라가 일어날 때 무사시국에서 바로 동쪽으로 치바현과 이바라기현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 쪽에서 무사시국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풍부한 군마를 활용하여 기마전법을 구사했다고 해요. 또한 오늘날과 같은 휘어진 형태의 일본도를 최초로 만들게 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본래 다이라 가문에서는 적자에게만 당주의 상징으로 하사하는 칼로서 코가라스마루(小烏丸)라는 칼이 원래 있었답니다. 도신의 중간까지 양날로 되어있는 칼로서, 직도에 가깝게 매우 낮은 곡률을 가진 환도였답니다. 그런데 한국 도검 중에는 의사도(擬似刀) 혹은 전어도(傳御刀)란 게 있어요. 그 역시 매우 낮은 곡률을 가진 환도인데, 그 역시 도신의 중간까지 양날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게 러시아 체르냐찌노 발해 고분에서 크기나 형태가 전어도와 상당히 유사한 철검이 발굴되었답니다. 그 사실로 미뤄, 다이라 가문이 스스로 고구려계였는지, 아니면 고구려계들과 평소부터 교제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고구려계들을 통해 발해의 도검을 알게 된 것 같애요. 그렇게 알게 된 것 중에 발해의 의사도나 전어도가 있어서, 그것이 다이라 가문에서 만든 코가라스마루의 원형이 되어, 가문에 전해져 온 것이 아닌가 싶군요. 이렇게 따지면 오늘날 일본도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꼽히는, 게누키가타 타치(毛抜型 太刀)도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해요. 게누키가타 타치도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기병도로 개발에 투자한 결과거든요. 이 같이 다이라씨가 자리잡은 곳, 다이라씨의 표준 전술, 보급 전략, 다이라씨 수장의 상징으로 삼은 칼에서 드러나는 발해와의 거래 흔적 등을 고려할 때 무사시의 고구려인들이 다이라씨와 거래가 많았거나, 아니면 다이라 씨 스스로가 고구려계 아닌가 해요. 애초에 다이라 씨도, 미나모토 씨도, 본래 황실과 관련이 없고, 그냥 성씨를 하사받은 것이거든요.
고구려 땅을 점령했지만, 비옥한 중원이 있던 중원제국입장에서 딱 한군데 쓸모있던 부분이 평양이죠. 이곳도 딱히 좋온 곳은 아닌데, 산동-평양-삼한-일본으로 이어지는 무역루트의 중계기지로 적합했으니. 고구려 옛땅 포함 전체를 먹고도 그냥 뱉어낸 나라만 해도, 당제국, 거란제국, 여기에 신라왕국도 있고. 농사 잘 되는 땅을 많이 가진 당제국과 신라 입장에서는 "똥땅(더럽게 춥고, 농사도 잘 안되는 땅)이라 쉽게 버린 반면에 거란이 쉽게 지금의 서해안 지역을 고려에게 차 한잔 마시고 내 줬던건, 유목제국인 거란 입장에서도 먹자니 좋은 것도 없고, 거기 사람들은 거친데 유지비는 더 들고... 만주엔 크게 고구려계와 여진(말갈, 숙신)계 둘이 있었는데, 무슨 전쟁 한 판 졌다고 포로로 좀 잡혀갔다고 고구려 민족이라는 자체가 만주땅에서 사라졌다는 건 본래 고구려계 인구 자체가 적었다고 볼 수 있고, 반면에 수 없이 엎어지고 또 일어나고 현대 초기까지 청제국으로 존재했던 여진족을 보면 이들이 원래 다수였지 않았을까 추즉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이 원제국과 일본제국 지배를 도합 1백년 넘게 받았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러시아가 2백년 넘게 몽골제국 지배를 받았어도 없어지지 않았고, 중국 한족들이 만주족 지배를 2백년 넘게 받았어도 그대로 있지만, 전쟁 한 판 지고, 포로로 좀 잡혀 갔다고 고구려 민족이란게 만주와 북한지역에서 깡끄리 소멸해버리는 건 우리 국사학계 교수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것 같네요.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C2c1a1-CTS2657이 요양 고씨 고구려 왕족 Y DNA입니다 전남 경남에서 두곳에서만 10%가 넘게 나옵니다 이 말은 즉슨 현대 전남 경남 대부분의 사람들 피에 고구려 인 혹은 부여인 피가 적어도 1% 이상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함(y dna는 남자만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서 고구려 후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 = 한국 전라남도 경상남도 가정 혹은 탈북자 조선족 실향민 가정과 북한 및 중국 산동 지린 랴오닝 오르도스 네이멍구 한족 및 만주족
지금이야 한반도 땅의 중심은 현 서울이지만, 고대시대 때의 영토를 보면 당시 중심지는 평양인 것 같네요. 고조선의 수도였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더라면 중심지는 평양이 됐을 것 같네요.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화하여 요동 땅이라도 한국 영토가 된다면 중심지인 평양이 새 수도가 될 지, 서울이 수도를 계속 유지할 지 궁금하네요
@@users2234 그렇게 생각 할수도 있겠네요 ~ 😮💨 한편 , 조선말기 우리 양반 선조들의 정치 패거리 싸움과 극한 부패, 아집과 오만으로 일반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트려 , 이후 일제에 개.돼지 동물 취급 받는 갖은 수모를 당하고, 해방후에도 미/소 보다는 일본의 교묘한 전쟁후의 설계대로 남북분단이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우메함(첨 듣지요?), 덕분에? 남한이 일본 섬나라처럼 뱅기.선박아니면 해외로 나갈수가 없다는 현실에 대한 불만감과 함께 21세기 인간 세상 속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루어 낼 국력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라 생각해 주십시요 ~ ❗️😄 🇰🇷 🤨 💪
제일 밑에 지도를 꼭 비시길 권합니다. 고구려,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100만이나되고 유 , 연 , 제 , 노를 요(굴복시킬:요)하고 오,월을 침(빼앗을 침)하였다. ㅡ삼국사기ㅡ 요와 침은 옛날 한자사전 설문해자로 해석해야 시대에 맞는 해석입니다. 굴복시킬 요와 빼앗을 침이 설문해자 해석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국의 일식기록을 미국 천문프로그램 이클립스에 넣어 검증한 결과 고구려는 바이칼호수부근 백제는 황하부근, 신라는 양자강부근 통일신라후 한반도로 검증됐습니다. ㅡ박창범교수ㅡ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고품격 역사유튜브 책보고를 강추합니다 . 사서간교차검증, 과학적검증, 사서에 나오는 지명과 유적유물이 고대 중세 근대지도와 서로 연동되어 우리선조국가들의 영토를 알수있습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기록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이씨조선때 역사왜곡을 했고 일제때 또한번 역사왜곡을 한것을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puvys9tOFVs/видео.html 이씨조선의 시작과 역사왜곡의 시작 일본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PGQPQ3PBqPM/видео.html 1927년에 일본이 제작한 군사지도. 대륙에 있는 수많은 고려지명들 중공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WMzY-I1zxxo/видео.html 1964년 대만군사지도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 지명과위치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7euBuFELSp4/видео.html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역사왜곡 ruclips.net/video/svt1lQdHDFk/видео.html 고구려의 평양들, 한성 왜곡된 지도로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들 ruclips.net/video/rNtj_jvhQTg/видео.html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아야할 이유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왜곡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 ruclips.net/video/Czl03hSXk4c/видео.html 대한민국 역사학과교수들의 불편한 진실 신라는 대륙에서 시작하여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되었습니다 ruclips.net/video/IdhqRCqjeS4/видео.html 신라의 시작 ruclips.net/video/shw30dHfgL4/видео.html 신라와 당나라의 7년전쟁 ruclips.net/video/7xL4slq4kKo/видео.html 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ruclips.net/video/ZvB56zoyfj4/видео.html 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과 우산의 위치 ruclips.net/video/-e0nKCUeyvs/видео.html 신라초기의 왕궁들, 대인국,소인국 위치,신라의 영토 ruclips.net/video/QrT8bJzyq-o/видео.html 백제와신라의 위치. 대륙에 존재하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ruclips.net/video/7xL4slq4kKo/видео.html 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ruclips.net/video/WfR_aGA6pAg/видео.html 박창화#고구려사략#백제의 시작#비류백제 온조백제 ruclips.net/video/_850Xx0GNo8/видео.html 설문해자와 패수, 동황성,안평,태원,평원,광개토대왕의 연호 영락 영락진,영락영,영락궁 요는 태행산맥입니다.(우적도) 황하가 북에서남으로 흐르는 동쪽에 북에서남으로 뻗어있는 산맥 태행산맥이고 이것이 요 입니다. 이 요의 남남서쪽에 있기에 요서백제라 부른 겁니다. 이 요의 동쪽에 요동성이 있는 것이고요. 역사 사서의 상식ㅡ하남례성 이라고 할때 하남의 뜻은 황하의 남쪽이란 뜻입니다. 하신라 는 황하에 있는신라를 뜻하는 겁니다. 청하ㅡ황하줄기인데 맑은물줄기 하간ㅡ황하물줄기 사이 ㅡ이게 진짜 지도다.ㅡ ㅡ우리 선조국가들의 진실된 위치ㅡ 대한민국 국정역사기관에서 100년 가까이 사서기록의 지명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비정해놓은 것중 400여개가 대륙에 존재하고, 사서기록과 방위가 일치하고 유적유물이 존재하는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 의 지명들. 최소한 이렇게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ruclips.net/video/WdpiF9sADYY/видео.html
서해 전부가 발해만 이었습니다.. 발해영토는 요동 요서 지역을 다 먹었다고 봐야지요. 우리나라 역사는 대부분 식민학자들이 만든 역사라서 반도사관에 가두고 대륙역사는 거의 날조에 가깝습니다. 역사를 식민학자들에 맞겼으니 우리역사는 대부분 특히 옛 영토들은 다 날조입니다. 있지두 않은 3국역사나 가르치고있고.. 우리민족의 역사는 나라가 많고 영토두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영위하며 살던 유목민족입니다. 한반도에 갖쳐있던 토속민족이 아니라...
발해 국명 자체가 고구려 부활이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픈 당나라 조정의 농간 네이밍이었는데? 발해의 정식 국호는 고려 였음 (일본 왕에게 보낸 외교서찰에 고려국왕 이라는 국인 찍혀있음) 고로 발해라는 이름 때문에 발해가 요서까지 다 지배했다고 추론하는건 근거가 부족함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 갇혀있던 민족은 아니지만 유목민족이라는건 어불성설 한민족의 정체성은 통일신라 고려를 거치면서 형성된거니 농경민족으로 봐야함 물론 고조선부터 "우리 역사"이지만 그럼 조선족의 역사는 우리 역사인가? 현재 눈앞의 조선족들도 품어주지 못하면서 머나먼 고대의 선조들이 유목을 했건 농경을 했건 무엇이 그리 중하리 지금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라나는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무엇을 할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강건하고 번영할수록 우리 역사는 더욱 찬란하게 이어질테니
엄연히 얘기하자면 소위 '우량카이'라고 하는 산 사람+남북국 시대에 등장했던 해적 여진족처럼 어로를 주로 하던 부족(옥저 같은)+한반도 북부 지방의 일부 예맥족이 합쳐진 다민족 국가가 고구려였고,백제와 신라는 농경과 상업을 기초로 성장한 나라임 유목민족은 물론 있긴 했겠다만 만주 초원지대에 살던 반농 반목 부족 일부 정도가 맞지. 고구려조차도 후대로 가면 빼박 농경민족화 되는데.
소위 환빠라고 하는 유사역사를 신봉하는 자들이 자꾸 중앙 아시아나 만주 북부까지도 우리 영토니 어쩌니 주장하는데, 그 지역들은 매우 척박할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지키기가 매우 버거운 곳들임. 그런 곳들은 지금 시대에도 인구 밀집도가 낮은데, 옛날엔 오죽 했을까? 우리 민족이 쓰잘데기 없는 땅까지 다 쳐먹을 정도로 멍청한 민족이었다면 이미 지금 중국어 쓰고 있었을 거임. 자꾸 되도 않는 유사 역사 신봉하는 자들이 영토에 집착하는 게, 어쩌면 좁은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불만이 이상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안타까움. 영토는 많으면 물론 좋긴 한데, 굳이 그걸 집착할 필요는 없음. 영국이 어디 영토가 넓어서 대영제국이 됐던가? 중요한 건 사람임.
이스라엘은 2,000년 전에 디아스포라로 세상을 떠돌다 2차세계대전 후 역사 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겨우 땅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땅덩어리가 자꾸 좁아지고 있습니다. 남한도 갈가리 찢겨지고 나면 이스라엘 민족처럼 디아스포라가도어 세상을 떠돌게 될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불쌍하게 될것입니다. 땅을 잃어버려도 역사를 잃지 않으면 찾을 땅이 역사속에 있지만 역사를 잃어 버리면 역사 속에 있는 땅마져 잃어 버리고 말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한민국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가 없는데 누가 도외 주겠습니까? 고려와 통일신라의 국경선은 심양 ~ 하얼빈 까지 입니다. 우리 스스로 역사의 땅을 빼앗기지 맙시다.
발해가 멸망 후에도 또 고려로 많은 수가 들어왔죠. 그리고 고구려 유민들온 고구려 멸망 이후 100여년이 지난 후에 또 무리를 지어 나라를 세우죠 산동반도에 세우는데 이정기의 나라라고 불리며 당나라에서는 제나라라는 이름을 내리기도 하죠. 우리가 국사에서 이사도의 난으로 남의 나라 역사인양 배운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자랑스러 우리의 역사입니다.
@@문레니 300만이 다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으로 흩어졌죠. 후발해를 세운 세력도 있고요. 발홰 멸망 후 여러 후발해가 생겼죠. 아예 이름을 후발해라고 한 곳도 있고요. 후발해 중 가장 오래간 곳은 정안국입니다. 그 외 만주 각지욕으로 흩어졌죠. 중국이나 거란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요.
일본서기에 고구려멸망후 고구려와 교류한 내용은 발해와 교류한 것입니다. 발해는 중국이 붙인 명칭이며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라 칭했습니다. 아울러 고구려유민 대다수는 30여년뒤에 건국되는 발해에 편입되었다보는게 맞습니다. 대조영은 5부중에 한부를 책임지던 대귀족이라 보는 게 맞고요
전남 경남이 살아있는 고구려 후손입니다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C2c1a1-CTS2657이 요양 고씨 고구려 왕족 Y DNA입니다 전남 경남에서 두곳에서만 10%가 넘게 나옵니다 이 말은 즉슨 현대 전남 경남 대부분의 사람들 피에 고구려 인 혹은 부여인 피가 적어도 1% 이상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함(y dna는 남자만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서 고구려 후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 = 한국 전라남도 경상남도 가정 혹은 탈북자 조선족 실향민 가정과 북한 및 중국 산동 지린 랴오닝 오르도스 네이멍구 한족 및 만주족
@@잡영어-y8p 무슨 근거로 99%가 나오나요.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주민)도 상당하고 발해 멸망 후에 고려로 흡수된 발해인/고구려인도 상당해요. 이것은 고려사에 나옵니다. 그리고 중국에 끌려간 사람은 20 만 여명인데 당시 고구려 추정 인구 300만 명의 10%도 되지 않아요. 물론 만주에 남은 고구려 후손이 만주족으로 흡수되었겠지만요. 고구려 영토의 일부인 한반도 북부는 한국이 차지하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만주족이 한민족과 언어가 다르지 않았기에, 대조영이 말갈족,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함. 심지어 조선 연산군 시대까지는 여진, 거란 등이 조선과 언어, 복장이 비슷해서, 조선인들이 요하로 도망가면 잡을 길도 없다는 연산군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도 비슷한 어휘가 많은데, 만주어: 한국어로 비교하면, 모쿤:묶음, 니루:이룸 등등이 있다. 현대 한국어가 많이 인도어화, 게르만어화, 영어화, 중국어화, 일본어화 돼서, 북방민족과 문법, 어휘가 많이 달라짐. 실상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란, 선비, 몽골, 여진 등과 말이 비슷함. 그게 중국 사서들에게도 남아있다. 실위, 선비족이 고구려, 부여어와 같다고 적혀있다. 실위가 몽골과 현재 러시아 북방 아시아 유목민의 조상이다. 또 신라, 선비가 언어와 종족이 같다고 하며, 부여, 고구려,백제가 종족이 같다고 함. 결국 이 나라들 모두 단군조선의 후손이라고 역사기록에 적혀 있다. 심지어 여진족의 조상이라는 숙신씨도 여진과 함께 한자 발음이 조선과 같다. 조선은 아사달의 음차어라고, 기록에 적혀있고, 현재 중앙아 투르크어의 아스타나와 같은 뜻이다. 숙신에서 여진으로 한자가 바뀐 것 뿐이며, 조선에서 숙신으로 표기법만 바뀐 같은 글자. 이를 중국에서 "가차"라고 소리만 따오는 표현법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 춘추시대로 올라가면, 숙신=조선 으로 구분 안함. 심지어 중국 사서에는 읍루, 물길과 부여, 고구려어가 달라졌다는 후대 기록이 있는데, 읍루가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읍루는 일루라고도 불리며, 아이누의 음차어. 참고로 한자 마을읍의 고대 소리가, 현재 한국어의 "마을"이랑 같다. 한국인이 만든 한자 임. 아이누는 현 일본 훗카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 근방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아이누는 석기 시대까지도 한반도 주요 거주민중 하나임. 게다가 후금이 청나라로 개명할때, 맑을 청 자를 썼는데, 그 뜻을 말하는 한국어 "맑을" 과 만주족의 고유 민족명인, "말갈" 이 같기 때문이다. 말갈은, 마한과 같은 뜻이라고 거란고전에 기록됨. 말 = 말 갈 = 고려, 구리, 가리, 가르, 가라, 가락, 가야, 구루, 고을, 성읍, 도시, 나라 라는 뜻이다.
아래 영상으로 지금까지 ‘고구려사’에 대한 우리 역사교육의 현실을 잘 알수 있습니다. 자주묻는 20개 질문, 시원한 답변. 중국대륙은 우리역사 본토 ruclips.net/video/SKfU0oKljis/видео.html 1분 기초 역사상식 03 [ 눈이 번쩍 뜨이는 우리선조들의 고향 ] #shorts ruclips.net/video/fDC-6WGECEI/видео.html 10분 책요약, 고구려 건국, 주몽, #추모경 ruclips.net/video/iMzAnlGgn74/видео.html 고구려최대영토,구글맵으로 확실히 보여준다! ruclips.net/video/aTSWkJwYSyA/видео.html 고구려, 마지막 수도의 미스테리를 풀다. (시간순삭ver.) ruclips.net/video/svt1lQdHDFk/видео.html 고구려 모본왕 , 중국 서쪽땅을 점령하다 (북평,어양,상곡,태원) 의 실제 위치, 반박불가 ! ruclips.net/video/ge-ltolBuKQ/видео.html 고구려의 서쪽 영토 끝을 찾다 ruclips.net/video/zFk4paWWi2k/видео.html 고구려 안시성의 실제 위치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숨겨놨던 비밀의 고구려 영토. 전설의 사전 ㅣ설문해자의 패수 ruclips.net/video/_850Xx0GNo8/видео.html 황제국 고구려의 철갑옷과 새로 쓰는 역사 ruclips.net/video/eXZd1kj45ao/видео.html
정확한 지적이시죠. 다수가 말갈이란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발해 건국이 고구려 멸망이후 30년 후라는 것은 측천무후가 당나라 내치에도 버거운 상태라 전쟁은 포기하며 대조영을 발해왕으로 봉한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해 699년을 발해의 원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 자체가 중국 중심적인 기록입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1945년에 건국이 되었는데, 중국에서 1960년에 너희 나라를 인정한다라고 말하고 자기네 나라역사책에 그렇게 적었다고 몇백년 후에 사람들이 대한민국 건국연도가 1960년이 되었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같죠. 실제는 699년 훨씬 이미 그 이전부터 '고려'라는 국명을 쓰는 나라가 중국 사서나 일본서기에도 등장합니다. 원래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로 정식 명칭이 고려였습니다. 실제 고구려 멸망이후 십년도 되지 않는 상황에 대중상이 이미 '고려'를 재창건했고, 대중상이 살아 생전에는 당나라가 고려가 다시 부흥했다라는 것을 자존심이 상해서 인정하고 있지 않다가 (그래봤자 안동도호부 자체가 이미 유명무실한 상황이라 당나라는 만주에 대한 지배력 자체가 없었음) 대중상이 죽고 대조영이 등극하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옛다 하며 '발해태수(군왕)'라는 옛날에 한나라때 존재했던 관직을 대조영에게 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조영은 측천무후에게 오 감사합니다라며 가서 좋다고 머리 좋아리고 발해군왕의 자리를 받은 적이 없죠. 대조영은 이미 이전 고려의 영토를 다 회복한 고려의 왕이었는데 뭐가 아쉬웠겠습니까. 대조영 아들(무왕)은 장문휴를 시켜서 산동반도까지 처들어가죠. 이렇게 우리가 발해는 결코 자신들을 고려라고 말했지, 발해라고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신라 입장에서는 고려라고 부르면 자기네들의 삼한통일의 업적이 말소가 되기 때문에 당나라를 따라서 발해라고 부르기는 했습니다.
말갈도 결국 고조선의 후예로서 고조선이 망한후 한나라의 통치가 싫어 백두산 산간지방이나 송화강 일대 살았던 부족으로 중국에서 이들을 말갈로 불렀던거 같네요. 나중에 고구려에 대부분 병합되었으나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의 통치에서 벗어나 따로살게 되는데 중국 역사서인 신당서의 동이,백제편에 보면 고구려와 백제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감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말갈에 편입되었다 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 수가 원 말갈인의 20배가 넘었다하니 결국 말갈은 대부분 고구려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만주족의 공식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에 보면 고구려인들이 당나라에 끌려가는것이 두려워 스스로 말갈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결국 발해를 건국한 주역은 대부분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kjchoi4123발해가 고구려 고토를 장악했다 보는 시점은 8세기 중후반임, 즉 668년 고구려멸망시점의 유민들은 다 죽었을것이고, 고구려 고토는 발해가 장악하기전 당나라 영역이었음, 환빠 비스므르리한 애들이 그 지역을 무주공산 이지럴하는데, 당나라 영역이었으며 698년 대조영 건국시엔 발해 강역이 동모산 일대 정도에 그침 그러므로 고구려 멸망시점의 유민들은 없어진 이후고, 고구려 고토에 있던 그 후손들이 고구려계인지, 당나라에 귀속후 말갈로 바뀐건지, 판단 불가란 얘기임
고구려 망한건 결국 연개소문 탓 맞음. 큰 전쟁이 나면 왕중심으로 단합 되야 일처리가 되는데. 연개소문이 고구려제일 귀족 100명 넘게 죽이면서 고구려 전체 장악력 떨어졌음. 고구려 정도면 당나라와 싸워도 먹힐정도는 아님. 귀족끼리 단합도 안되는 상황에서 연개소문 아들들이 싸우고 연남생이 투항하면서 나라 그냥 당나라에 갔다 바친거임.
고구려의 핵심 지배층은 당나라로 끌려가고 또다른 지배층은 발해에서 지배적으로 있다가 발해가 망하면서 핵심 지배층은 고려로 귀부했고 또다른 세력은 숙여진족으로 분류되 생여진(금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고 보입니다. 특히 압록강 남북의 고구려 주류 세력들도 여진족에 흡수되 만주족으로 되었고 지금 북방에서 만주족으로 한족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 봅니다.?
와우, 좋은 자료들을 편집하셔서, 잘 봤습니다. 여기에 당나라를 붕괴시킨 제나라도 다루었으면,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 그 만큼 당나라가 싸울 수 있는 군인들이 모자라, 고구려나 돌궐 군인들 써야했던 처지도 잘 보여주고, 중국인들은 통치 잘하는 사람을 따르고 충성하는 그런 낯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옛로마가 망할 때 라틴화된 게르만족을 상당히 썼고, 오히려 로마의 영광 다시 되찾으려고 로마 문화재를 보존하는 작업하다, 동로마 싸움에서 오히려 더 폐허가 됬다는게 역사계 입장인듯이. Maiorianus 유투버 보면, 그 실상을 잘 나타내요. 하이튼, 당나라도 비슷한 입장인듯.
당나라를 패망시킨 濟나라는 백제의 유민 이정기장군이 세운 나라입니다.물수변이 있는 제는 백제란 뜻입니다.산동성의 수도ㅡ濟南이 백제땅인 걸 증명합니다.산동성에서도 역사를 자각하여 민족독립운동이 일어난다는데 직접 목도한 사실이 아니어 알수 없으므로 확인차 들어가 보야겠습니다.
잘못아시는데 발해건국은 조양에서 유민들이 도망쳐서 생긴 과정이 결코 아닙니다. 발해건국중심지인 길림성일대는 당나라의 지배가 미치지 못했기에 그곳에 거주하는 고구려 유민들이 빨리 결집해서 국가를 세로 만들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생각에는 699년까지도 아닌 그보다 적어도 20년 이상 전에 발해가 건국되었고 보다 더 많은 고구려유민들을 회유포섭하기 위해서 조양지역의 상황을 관찰주시하다가 손을 뻗은 것입니다. 결코 대중상 대조영부자가 영주에 살던 유민으로 도망치다시피해서 발해를 건국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건국을 위해서 그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이 필요한데 다급히 도망치다시피한 세력들이 그것을 다질 여건이 될수가 있슬까요?
평안도 지역에서는 발해시대의 유물이 별로 나오지 않아서 발해 조정의 지배력이 평안도 일대에는 미치지 않았다고 추정하더군요. 그 지방 호족들이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살다가 고려 조정의 북진정책으로 고려에 흡수됐다고 봐야겠죠. 복기대 교수님 등은 고구려의 도읍 평양이 현재의 요동반도에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그게 맞다면 구도가 확 바뀔 수도 있겠네요. 칭기스칸의 어머니 헐룬의 친정 올쿠누트족이 고구려의 유민이라는 추측도 있더군요. 쿠빌라이 등 몽골 수뇌부가 고려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보인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발해만은 텐진시 당산시 앞 바다를 말합니다! 즉 북경을 포함 한 그 일대가 과거 발해 땅 이였다는 것입니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옛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잘못 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초기에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동쪽과 북쪽에 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대륙계 유전자인 O2a1, O2a2가 많은 것입니다!
동북에 고구려인외 한반도 보다 넓은 면적의 만주 평원에 거란족이 있었고 , 한반도 면적 보다 몇 배 넓은 삼강 평원과 연해주 일대에 여진족이 있었으며 광대한 외몽골 지역에 돌궐족이 있었습니다 . 돌궐족 북방에 몽골족도 광범위하게 분포하고요. 한민족 계열인 부여에게 밀려 눈강 지역 평원과 대흥안령에 거주하던 선비족이 세운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 것이고요 .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수나라. 당나라이며 수도인 장안은 한반도 크기 면적의 관중지역이고요 . 아버지의 후궁이 왕비가 되고 왕비가 왕이 되는게 가능한 것은 선비족 풍속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요. 즉 , 고구려와 싸운 것은 중국이 아니라 오랜 조상때 부터 불구대천의 원수 지간이던 선비족 당과 싸운 것입니다 . 전쟁 포로는 종으로 활용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고구려 유민은 주로 군인으로 장안 주변에 배치하여 중국족속을 통치하는 위치에 두었고요.
발해의 공식 명칭이 '고려' 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며, 발해에 익숙해 진 한국사람들이 국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게 큽니다만~~ 어쨋든 중국 사서, 일본 서기에도 기록되어있지요~ 또한, 발해라는 지명은 현재는 서해 북부 발해만 일대를 일컷지만~ 수당전쟁 서기 600년 중반 당시에는 하북성 석가장시 동남쪽 일대의 큰 호수(서해와 섞인 호수)입니다. 당시에는 해수면이 높아 바닷물이 꽤 깊은 중국 내륙까지 들어왔습니다... 펄벅의 대지에도 나오지요~
한나라 멸망 이후부터 수나라의 통일까지 분열과 북방이민족에게 침략당한 시대 뿐이고 당나라 멸망부터 명나라 건국까지 분열과 북방이민족에게 침략당하고 정복당한 시대 뿐이며 명나라가 만주족에게 정복당한 이후부터 중화민국 건국까지는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역사 뿐인데 뭐가 찬란한 중국사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한반도는 한민족 국가로 이민족이 거의 섞이지 않은 만큼 민족 동질성이 짙어서 민족=국가=땅 이런 인식이 강한데 중국은 통용되지 않는 인식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인식하지만 중국인들은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대륙의 역사로 인식합니다 머 그럴수밖에 없는게 중국대륙 역사에서 통일중국의 한족왕조는 한, 명 외에는 없으니 그렇기도 하고 현재 중국이 52개 소수민족과 함께하다보니 한족이라는 별도의 민족성 강조시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기치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말주 벌판이 아니라 현재 중국 대륙을 누볐다!!! 고구려가 망하고 후손은 여진족과 고리(고려) 나라로 갈라져 서로 고구려 후손이라고 싸웠다!!! 우리 고대 국가는 한반도에 없었다!!! 현재 님이 보여주는 지도는 일제식민사관 역사는 70여년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는 배하고 왔다
⚠️ 대부분의 고구려 유민들은 그대로 발해 주민이 되었습니다.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사람이 많다지만 고구려 전체 인구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대의 인구 이동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때문으로 정착한 곳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떠나 수만명을 재우고 먹여살리기도 힘들었습니다. 전쟁 때의 몇십만 몇백만 대군은 그냥 과장된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 중 소수만이 전투병력이고 나머지 병력은 그냥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거나 물물교환으로 대군들을 서포트 했으니 간접병력으로 봐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결론: 발해 = 고구려)
역사 교과서는 최초의 민족통일은 신라, 재통일은 고려라고 가르쳐왔죠. 그러나 역사학자들끼리도 말이 엇갈립니다. 발해가 뻔히 있고, 고구려땅 절반 이상 차지했고, 고구려를 계승했으니 신라는 최초 통일국가가 아니라는거죠. 게다가 자력이 아니라 외세의 힘을 너무 많이 빌렸다는것도 흠이고요. 고려를 통일국가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사실상 발해가 고구려 시즌2...
팔팔"올림픽 때에 난생처음 으로 중부일본 과 남부 히로시마 까지 여행을하며 느낀 수만은 첫인상은😁 일본어만 빼고 본다면 우리와 모냥새가 같은 얼굴에 모냥새라 신선한 충격을 받은 생각이 나네요. 🇰🇷🇯🇵☯️☯️☯️☯️☯️⚽⚽ 특히 궁궐과 절. 시장음식. 패션 일본만화 길거리 붕어빵 군고구마 밤 제이팝. 일본가요😁 오래된 꼬마전철과. 동백꽃 이. 잔잔한. 향수를 불러왔습니다 오래된 교또에 냇물과 골목길을 걸으면서 민족시인 윤동주를 추억하며. 일본기생에 얼굴 함 보자고 일녀기생 거리를 서성이기도 했고 ㅡㅡ 일본에서. 하이뽈 한잔은 해야한다고 해서. 이렇게 쬐꼬만 술집도 가보고 혼자서 " 삼주산겐도에 가서 절이 한국에 절 과 같은점 찾기도하고 쪼꼬만 "가라오케이 가서 돌아와요? 부산꼬 가에루 목청껏 해보았던. ㅡㅡ 모니모니' 해도 최고는 일본인에 성심성의한 친절함미.아직도 기억에 생 으로 남아 있네요♥️
나리는 망해도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든 살겠죠. 형제의 나라도 속속 밝혀지고 있고 아마 몽골의 초원으로 들어가서 징기스탄때 정복 전쟁으로 유럽이나 중앙아시아로 들어갔거나 네팔 히말라야 산속으로 갔거나 중국인으로 동화 되어 중국 소수민족이 되었거나 그 일부는 러시아 대륙을 통해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데. 전쟁포로로 노예로 유럽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는 군요
중국측으로 고구려인의 상당수가 넘어갔다는 말은 잘 못된 것 같습니다.아시다시피 고구려의 가구수는 약36만호,인구는 최소 대략 200만이라고 잡으면 그 중 20만은 고구려 인구의 10퍼센트이며 이는 최소치로 추산한 것이기 때문에 10퍼센트 이하의 인구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유득공의 발해고에는 발해의 가구수는 10만호,대략 인구는 50~90만 사이입니다. 고구려인들이 곧 발해인이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16~30퍼센트가 발해인구로 편입되었고,일본으로 간 수가 2천이라 치면 고구려 인구의 겨우 반올림 해서 0.07퍼입니다.나머지 60퍼는 신라나 몽골지역으로 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헌데 신당서,특히 발해를 멸했단 요나라 역사서 요사에는 실제 발해의 역사에 대해 꽤 많은 오류가 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으나 현존하는 발해의 거의 유일한 자료이니 이를 참고할 수 밖에 없다
고구려 사람이 어디로 갔느냐는 문제가 민족의 정통성과 연관됨 고조선과 부여예맥 삼한의 정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이 되었는데 고구려 남자들은 다끌려가고 노예 됬지만 고구려 여자들은 신라인의 첩이나 부인이 되었을 듯 서울 아차산 위부터는 고구려 땅이..... 코리아ㅋ 화이팅입니다
대부분 맞는 말씀입니다만.. 서양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전근대에 비로소 생기기 시작했다면.. 한국은 훨씬 더 빠른 시기에 민족이란 개념이 형성 되었습니다. 이미 삼국시대에 서로 언어가 통할만큼 동질성이 매우 컸고 남북국시대를 거친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민족국가화 되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대몽항쟁시기, 이르게 보면 고려의 후삼국통일시기부터 민족이란 개념이 정립 된 것으로 봅니다.이는 서양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것은 신라때문인데, 단군후손 박혁거세 빼고 육촌세력이 전부 중국인이였다. 심지어 박혁거세의 어미, 즉 외척이였던 오늘날의 경주김씨도 중국 청해성(옛 티벳인)에서 내려온 중국인들이다. 국가를 세울 명분으로 박혁거세를 데려와 종족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박"이라는 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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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땅 뭘 다 찾았단 건지?? 당시 일본 거의 전부와 양자강 하류 산동반도도 백제 땅인데 해외영토는 백제땅이 아닌가?? 어이없네. 백제땅도 91% 날려먹었어 좀 제대로 아시지.
문화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인류사학적으로 고구려 백제는 중국사들이며 전라도 왜국 임나는 일본사임 ㅋㅋㅋ
@@이일우-y8h
구라 22담로를 아직도 믿다니 ㅋㅋㅋ
그리고 삼국사기 일본서기에 보면 중국사인 백제는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의 꼬봉 나라로 나옴 ㅋㅋㅋ
@@이일우-y8h
결론 : 중국사인 백제의 22담로는 구라다 ㅋㅋㅋ
매금이란 넘은 지나 넘이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 구라는 지금 지나넘들이 하는 말이 구라지!!~ 고구려 백제가 지들 나라래 미친 넘들. 지금 지나는 지네 축구실력 올리는 길은 한일 등 황인종 축구선진국 병합해 그들 월클선수들을 지들 나라 사람만드는 길 뿐이라고 생각해 한일침략 넘본다더니 정말이구나!!~ 저 지나넘들 침략야욕 분쇄하기 위해 군사력을 더 확충해야 한다.
사료가 부족해서 다루기 어렵지만 중요한 소재를 다루셨는데, 하루빨리 통일부터 되어야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역사공부 머릿속에 쏙쏙 잘들어옵니다! 고맙습니다! 많이만이 알려주셔요 우리의 땅 찾는그날까지~
보장왕의 후손이 횡성 고씨라고 합니다. 국내 고씨들은 거의 제주가 본관입니다. 장수왕의 후손들이 랴오양에 정착하여 요양 고씨가 있다고 합니다. 만주 지역의 백김치 수안차이, 된장, 옥상형 창고가 고구려의 유산입니다. 백주 태씨가 발해 대조영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살던 곳이 황해도라 고려에서 발해 왕족을 받아준 것으로 보입니다.
...대진 황족.. 사실상 진짜 후고구려..
사람의 성은 고려시대때 생성됐다고 알고있는데.........
@@integrity1897 삼국시대에도 귀족, 왕족은 성이 있었습니다. 신라도 박, 석, 김이 돌아가며 즉위하고 백제는 왕족은 부여씨, 귀족은 8성씨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된 것은 조선 후기입니다. 이때 엄청난 조작이 일어나 머슴이 쌀을 바치고 주인집 족보에 편입이 되지요.
@@inyeobseo9369 아, 깊이있게 연구를 한것같군요. 일반평면은 고려시대때 성씨가 도입된것은 맞나요?
@@integrity1897 고려시대엔 노비와 천민을 제외하고 양민들도 성씨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엔 귀족들만의 전유물인데 비해 발전한 것이죠.
9:45 고구려가 유목민족 습성만 있는게 아니죠. 그랬다면 수당제국과 맞서던 그 병력과 물자를 어떻게 충당했겠습니까? 분명히 농사도 지어가면서 싸운거고 영토가 상당했으니 농사에 적합한 땅이 그렇게 많은건 아니지만 경제를 어느정도 지탱한거고요.
그리고 애시당초 지배층 대다수는 유목민족이 아니죠. 유목민족의 성장을 억제하고 필요시에 자기들 전쟁에 동원할 정도로 철저히 통제한거지...
고약광에게는 성인 고씨를 붙이면서 고안승에게는 안승이라고 언급하는건 오류입니다. 삼국사기에 안승이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굳이 성을 안적어도 고구려 왕족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성이 고씨임을 다들 알것이라는것을 전제한거죠. 후세사람들은 혼란을 막기위해서라도 안승이 아니라 고안승이라고 언급해야합니다.
ㅑ
동감
고품격 역사채널 책보고 영상을 강추합니다. 사서간 교차검증, 과학적 검증, 상식적 검증, 이 지도와 연동되어 지명의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습니다.ㄴ
추측이 아닌 일식기록을 통해
고구려 북경
백제 산동
신라 안휘성
왜 타이완
당나라와 신라의 7년전쟁의 승자 신라
고고리를 이은 발해와 발해만
@@user-oj4fq5gg1b 삼국 대륙설은 그 근거가 너무 부족하고 가설은 억지와 우연에 기반합니다ㆍ
가자 쉬운 판단기준은 그 땅에가서 그땅의 역사를 찾아보면 됩니다ㆍ
그땅에서 백제의 역사, 언어, 신화, 지역전설 등을 보면 바로 알겠죠
같은 명칭 유물만으로 천년전의 역사를 재건축하려 하다가는 손가락질 받기 마련입니다ㆍ
대룩 백제설이나 신라설은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비교도 안되게 큽니다
당장 당신이 말한 지역에 가서 그지역 역사와 유물 언어 설화를 찾아보시면 위에 쓴글이 부끄러워질것 입니다 ㆍ
너무흥미롭네요. 좋은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쉬운이 아니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 관동지역 사이타마현에 고구려흔적이 남아있어요 같은관동이라도 군마현과가나가와현이 신라흔적이 많음 고구려는 아무래도 주활동무대가 만주라서 중국에 많이 통합된것같음
고구려,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100만이나되고 유 , 연 , 제 , 노를 요(굴복시킬:요)하고 오,월을 침(빼앗을 침)하였다. ㅡ삼국사기ㅡ
요와 침은 옛날 한자사전 설문해자로 해석해야 시대에 맞는 해석입니다.
굴복시킬 요와 빼앗을 침이 설문해자 해석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국의 일식기록을 미국 천문프로그램 이클립스에 넣어 검증한 결과 고구려는 바이칼호수부근
백제는 황하부근, 신라는 양자강부근 통일신라후 한반도로 검증됐습니다. ㅡ박창범교수ㅡ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고품격 역사유튜브 책보고를 강추합니다 .
사서간교차검증, 과학적검증, 사서에 나오는 지명과 유적유물이 고대 중세 근대지도와 서로 연동되어 우리선조국가들의 영토를 알수있습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기록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이씨조선때 역사왜곡을 했고 일제때 또한번 역사왜곡을 한것을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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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의 시작과 역사왜곡의 시작
일본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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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일본이 제작한 군사지도.
대륙에 있는 수많은 고려지명들
중공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WMzY-I1zxxo/видео.html 1964년 대만군사지도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 지명과위치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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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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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평양들, 한성 왜곡된 지도로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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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아야할 이유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왜곡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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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학과교수들의 불편한 진실
신라는 대륙에서 시작하여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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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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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나라의 7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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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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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과 우산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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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초기의 왕궁들, 대인국,소인국 위치,신라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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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신라의 위치. 대륙에 존재하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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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전라남도랑 경상남도가 살아있는 고구려 후손임
@@Anthonytk64sdg5 같은 부여계에서 나왔기때문에 일리있네요 그래도 신라는 탁리국(고조선계)박혁거세랑(흉노계)김알지 그밖에 삼한(마한 변한 진한)랑 섞여있어요
@@에르브 그것도 맞죠 경남 지역 경우는 신라가 고구려 멸망시키고 이주민을 진주 창원 마산에다가 안배해서 그렇고 이후에 미군이 흥남 철수때 함경도 사람들을 경상도에다가 많이뿌려놓아서도 그렇죠
@@에르브 진주 강씨가 대표적
고구려인이 중국이나 신라에게 가서 생활 뿐만 아니라 돌궐, 일본에 고유한 문화적 생활을 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맞장구 짱구 소수의 고구려인들 아닌가요?
@맞장구 짱구 저는 소수의 고구려인들과 다수의 말갈인들로 나라가 구성되어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장구 짱구 어떤 역사자료를 찾아봐도 다수의 말갈 소수의 고구려인이라는데요
@맞장구 짱구 그럼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소수 고구려인 다수 말갈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내가 진짜 어이없던게 일본인들
우리나라가 고구려의후손이라
생각하는게 어이없대..
고구려 예맥족들도 한민족범위였는데 발해고구려 멸망후 뿔뿔히 흩어져버려서 만주족이 성장할수 있었다고봅니다.
지금 중국영토가 저리넓은 이유는 고구려멸망 나비효과일수도. 그리고 병자호란때도 이괄의난(조선군끼리 내전)만 없었어도 청나라가 쉽게 병자호란 대승을 거두지도못해 지금의 커다란 중국영토가 없었을수도 있었음.
만주족이 예맥족이예요. 만주족도 마한에 속한다고 만주족들이 역사에 남겨놨어요
@@outerlevi6254 현 한민족과 유전자가 가장 가깝죠
이괄의 난때 진짜 조선 주력이 다 무너짐 임진년이후 군사력은 그래도 유지가 되었는데 그게 다 날라감
@@outerlevi6254 만주족이 예맥족이라거 하기에는 애매한데 삼국시대때 이미 언어가 달랐다고 합니다. 유전적으로는 상당히 비슷해도
언어가 다르면 다른 민족입니다. 우리가 흔히 같은 계열은 언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삼한의 일부라고 생각을 했고 고구려는 백제와 언어와 문화가 비슷 백제는 신라와 언어과 통했고 또 김춘추가 연개소문에 찾아갈때 통역사를 통해 대화를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런 기록을 볼때 언어가 완벽하게 같지는 않더라도 서로 어느정도 알아듣는 수준이라는겁니다. 그러나 그 삼국시대에도 말갈은 고구려와 언어가 다르다고 기록되어있는거보면 그 이전부터 갈라진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될거같아요. 결국 말갈은 예맥이라는 이름이 생기기도전에 분열된 민족이라는거죠.
@@최유훈-n1r 만주족이 언어가 다르지 않아서, 대조영이 말갈족,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함.
심지어 조선 연산군 시대까지는 여진, 거란 등이 조선과 언어, 복장이 비슷해서, 조선인들이 요하로 도망가면 잡을 길도 없다는 연산군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도 비슷한 어휘가 많은데,
만주어: 한국어로 비교하면,
모쿤:묶음, 니루:이룸 등등이 있다.
현대 한국어가 많이 인도어화, 게르만어화, 영어화, 중국어화, 일본어화 돼서, 북방민족과 문법, 어휘가 많이 달라짐.
실상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란, 선비, 몽골, 여진 등과 말이 비슷함.
그게 중국 사서들에게도 남아있다.
실위, 선비족이 고구려, 부여어와 같다고 적혀있다. 실위가 몽골과 현재 러시아 북방 아시아 유목민의 조상이다.
또 신라, 선비가 언어와 종족이 같다고 하며,
부여, 고구려,백제가 종족이 같다고 함.
결국 이 나라들 모두 단군조선의 후손이라고 역사기록에 적혀 있다.
심지어 여진족의 조상이라는 숙신씨도 여진과 함께 한자 발음이 조선과 같다.
조선은 아사달의 음차어라고, 기록에 적혀있고, 현재 중앙아 투르크어의 아스타나와 같은 뜻이다.
숙신에서 여진으로 한자가 바뀐 것 뿐이며, 조선에서 숙신으로 표기법만 바뀐 같은 글자. 이를 중국에서 "가차"라고 소리만 따오는 표현법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 춘추시대로 올라가면, 숙신=조선 으로 구분 안함.
심지어 중국 사서에는 읍루, 물길과 부여, 고구려어가 달라졌다는 후대 기록이 있는데, 읍루가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읍루는 일루라고도 불리며, 아이누의 음차어.
참고로 한자 마을읍의 고대 소리가, 현재 한국어의 "마을"이랑 같다. 한국인이 만든 한자 임.
아이누는 현 일본 훗카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 근방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아이누는 석기 시대까지도 한반도 주요 거주민중 하나임.
게다가 후금이 청나라로 개명할때,
맑을 청 자를 썼는데, 그 뜻을 말하는 한국어 "맑을" 과 만주족의 고유 민족명인, "말갈" 이 같기 때문이다.
말갈은, 마한과 같은 뜻이라고 거란고전에 기록됨.
말 = 말
갈 = 고려, 구리, 가리, 가르, 가라, 가락, 가야, 구루, 고을, 성읍, 도시, 나라 라는 뜻이다.
장수왕때 국호를 고려(고리)로 바꿈
고구려-고려
국경선은 전부 일제 식민지 사관 학자들에 의해
우리들이 잘못 배운 것임
신라 북쪽 국경선, 고려, 조선 전부 틀렸음
저는중국교민인데 중국어서공사하던중 땅속3미터밑에서 고구려인이떠나기전연자돌 매돌 절구통이묻혀잇는곳이 나왔고. 어느한산골작은마을에가니 자기조상은인시고 새아버지는 이시큰아빠라고 모시고있는곳이있다. 11:22
아애 그 결속을 끊을순 없겠지요
연구가 시급한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까지 들어본적이 없는 희귀한 내용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요, 이정기의 제나라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것은 상당한 착오라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길용우 배우님은 대조영에서는 고구려 마지막왕을, 삼국기에서는 백제 마지막왕을 연기하셨군요
혹시 그 무사시에서 일어난 다이라씨가 고구려인들과 관련 없나 모르겠네?
고구려인들은 무사시 지역에 봉해진 뒤, 거기서 말을 방목하여 기르는 일을 했다는데 덕택에 풍부한 군마를 제공하게 됩니다.
즉 군수 산업을 담당한 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다이라가 일어날 때 무사시국에서 바로 동쪽으로 치바현과 이바라기현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 쪽에서 무사시국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풍부한 군마를 활용하여 기마전법을 구사했다고 해요.
또한 오늘날과 같은 휘어진 형태의 일본도를 최초로 만들게 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본래 다이라 가문에서는 적자에게만 당주의 상징으로 하사하는 칼로서 코가라스마루(小烏丸)라는 칼이 원래 있었답니다.
도신의 중간까지 양날로 되어있는 칼로서, 직도에 가깝게 매우 낮은 곡률을 가진 환도였답니다.
그런데 한국 도검 중에는 의사도(擬似刀) 혹은 전어도(傳御刀)란 게 있어요.
그 역시 매우 낮은 곡률을 가진 환도인데, 그 역시 도신의 중간까지 양날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게 러시아 체르냐찌노 발해 고분에서 크기나 형태가 전어도와 상당히 유사한 철검이 발굴되었답니다.
그 사실로 미뤄, 다이라 가문이 스스로 고구려계였는지, 아니면 고구려계들과 평소부터 교제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고구려계들을 통해 발해의 도검을 알게 된 것 같애요.
그렇게 알게 된 것 중에 발해의 의사도나 전어도가 있어서, 그것이 다이라 가문에서 만든 코가라스마루의 원형이 되어, 가문에 전해져 온 것이 아닌가 싶군요.
이렇게 따지면 오늘날 일본도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꼽히는, 게누키가타 타치(毛抜型 太刀)도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해요.
게누키가타 타치도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기병도로 개발에 투자한 결과거든요.
이 같이 다이라씨가 자리잡은 곳, 다이라씨의 표준 전술, 보급 전략, 다이라씨 수장의 상징으로 삼은 칼에서 드러나는 발해와의 거래 흔적 등을 고려할 때 무사시의 고구려인들이 다이라씨와 거래가 많았거나, 아니면 다이라 씨 스스로가 고구려계 아닌가 해요.
애초에 다이라 씨도, 미나모토 씨도, 본래 황실과 관련이 없고, 그냥 성씨를 하사받은 것이거든요.
고구려 땅을 점령했지만, 비옥한 중원이 있던 중원제국입장에서 딱 한군데 쓸모있던 부분이 평양이죠. 이곳도 딱히 좋온 곳은 아닌데, 산동-평양-삼한-일본으로 이어지는 무역루트의 중계기지로 적합했으니. 고구려 옛땅 포함 전체를 먹고도 그냥 뱉어낸 나라만 해도, 당제국, 거란제국, 여기에 신라왕국도 있고. 농사 잘 되는 땅을 많이 가진 당제국과 신라 입장에서는 "똥땅(더럽게 춥고, 농사도 잘 안되는 땅)이라 쉽게 버린 반면에 거란이 쉽게 지금의 서해안 지역을 고려에게 차 한잔 마시고 내 줬던건, 유목제국인 거란 입장에서도 먹자니 좋은 것도 없고, 거기 사람들은 거친데 유지비는 더 들고... 만주엔 크게 고구려계와 여진(말갈, 숙신)계 둘이 있었는데, 무슨 전쟁 한 판 졌다고 포로로 좀 잡혀갔다고 고구려 민족이라는 자체가 만주땅에서 사라졌다는 건 본래 고구려계 인구 자체가 적었다고 볼 수 있고, 반면에 수 없이 엎어지고 또 일어나고 현대 초기까지 청제국으로 존재했던 여진족을 보면 이들이 원래 다수였지 않았을까 추즉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이 원제국과 일본제국 지배를 도합 1백년 넘게 받았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러시아가 2백년 넘게 몽골제국 지배를 받았어도 없어지지 않았고, 중국 한족들이 만주족 지배를 2백년 넘게 받았어도 그대로 있지만, 전쟁 한 판 지고, 포로로 좀 잡혀 갔다고 고구려 민족이란게 만주와 북한지역에서 깡끄리 소멸해버리는 건 우리 국사학계 교수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것 같네요.
맞아요... 동아사아 역사를 보면 황하강 양쯔강 사이 거기가 꿀땅이고 중원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동북아시아 모든 민족들이 부족들이 그땅을 차지할려고 엄청 싸워댔다고 하더라구요... 중원을 먹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그에 반면 고구려는 완전 똥땅이었습니다...
고구려 5부족 빼곤 다 피정복민 이라 봐야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C2c1a1-CTS2657이 요양 고씨 고구려 왕족 Y DNA입니다 전남 경남에서 두곳에서만 10%가 넘게 나옵니다 이 말은 즉슨 현대 전남 경남 대부분의 사람들 피에 고구려 인 혹은 부여인 피가 적어도 1% 이상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함(y dna는 남자만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서 고구려 후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 = 한국 전라남도 경상남도 가정 혹은 탈북자 조선족 실향민 가정과 북한 및 중국 산동 지린 랴오닝 오르도스 네이멍구 한족 및 만주족
지금이야 한반도 땅의 중심은 현 서울이지만, 고대시대 때의 영토를 보면 당시 중심지는 평양인 것 같네요. 고조선의 수도였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더라면 중심지는 평양이 됐을 것 같네요.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화하여 요동 땅이라도 한국 영토가 된다면 중심지인 평양이 새 수도가 될 지, 서울이 수도를 계속 유지할 지 궁금하네요
벼농사가 가능한 대동강 이남지역 즉 황해도와 경기 북부일대는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라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이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만 이상 신라로 편입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 영토가 전성기 때부터 상당 기간 충청도와 강원도까지였으니 생각보다 고구려인이 많이 신라에 흡수되었다고 생각해요.
9주 5소경, 그중 신라의 한주와 삭주는 고구려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궁예의 후고구려와 왕건의 고려가 고구려 부흥운동의 성격을 띈 이유이기도 하초.
한반도에 평화 통일만 된다면 . . .
드 넓은 만주와 대륙은
우리 한민족의 능력과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활동 무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왜 자꾸 조잡한 땅타령만하는건지 모르겠다
더 넓은 해양을 놔두고 21세기에도 땅타령하는 세상이라니
@@users2234 해양-배, 육지-철도, 하늘-뱅기 . . . 각자 취향에 맞게, 각기의 용도와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지면 좋은 것 아닌가요 - ❗️🤗 🇰🇷👍 💪 🎊
@@think5295 달에 기지를 짓는 세상에 화성으로 가는 세상에 아직도 만주 타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게 안쓰러워서요
@@users2234 그렇게 생각 할수도 있겠네요 ~ 😮💨 한편 , 조선말기 우리 양반 선조들의 정치 패거리 싸움과 극한 부패, 아집과 오만으로 일반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트려 , 이후 일제에 개.돼지 동물 취급 받는 갖은 수모를 당하고, 해방후에도 미/소 보다는 일본의 교묘한 전쟁후의 설계대로 남북분단이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우메함(첨 듣지요?), 덕분에? 남한이 일본 섬나라처럼 뱅기.선박아니면 해외로 나갈수가 없다는 현실에 대한 불만감과 함께 21세기 인간 세상 속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루어 낼 국력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라 생각해 주십시요 ~ ❗️😄 🇰🇷 🤨 💪
I believe that South Korea will be wiped out by North Korea, and the Korean Peninsula will become China's territory.
잘 들었습니다
웅장한 옛 영토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원나라 청나라보면 그렇게 웅장하지도 않음. 한국사 기준으로 강했을 뿐
제일 밑에 지도를 꼭 비시길 권합니다.
고구려,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100만이나되고 유 , 연 , 제 , 노를 요(굴복시킬:요)하고 오,월을 침(빼앗을 침)하였다. ㅡ삼국사기ㅡ
요와 침은 옛날 한자사전 설문해자로 해석해야 시대에 맞는 해석입니다.
굴복시킬 요와 빼앗을 침이 설문해자 해석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국의 일식기록을 미국 천문프로그램 이클립스에 넣어 검증한 결과 고구려는 바이칼호수부근
백제는 황하부근, 신라는 양자강부근 통일신라후 한반도로 검증됐습니다. ㅡ박창범교수ㅡ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고품격 역사유튜브 책보고를 강추합니다 .
사서간교차검증, 과학적검증, 사서에 나오는 지명과 유적유물이 고대 중세 근대지도와 서로 연동되어 우리선조국가들의 영토를 알수있습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기록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기를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이씨조선때 역사왜곡을 했고 일제때 또한번 역사왜곡을 한것을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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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의 시작과 역사왜곡의 시작
일본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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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일본이 제작한 군사지도.
대륙에 있는 수많은 고려지명들
중공도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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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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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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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평양들, 한성 왜곡된 지도로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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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참역사를 알아야할 이유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왜곡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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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학과교수들의 불편한 진실
신라는 대륙에서 시작하여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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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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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나라의 7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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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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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과 우산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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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초기의 왕궁들, 대인국,소인국 위치,신라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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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신라의 위치. 대륙에 존재하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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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신라본기*원문해석의 정석
"이것이 진짜 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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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화#고구려사략#백제의 시작#비류백제 온조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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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와 패수, 동황성,안평,태원,평원,광개토대왕의 연호 영락 영락진,영락영,영락궁
요는 태행산맥입니다.(우적도)
황하가 북에서남으로 흐르는 동쪽에 북에서남으로 뻗어있는 산맥 태행산맥이고 이것이 요 입니다.
이 요의 남남서쪽에 있기에 요서백제라 부른 겁니다.
이 요의 동쪽에 요동성이 있는 것이고요.
역사 사서의 상식ㅡ하남례성 이라고 할때 하남의 뜻은 황하의 남쪽이란 뜻입니다.
하신라 는 황하에 있는신라를 뜻하는 겁니다.
청하ㅡ황하줄기인데 맑은물줄기
하간ㅡ황하물줄기 사이
ㅡ이게 진짜 지도다.ㅡ
ㅡ우리 선조국가들의 진실된 위치ㅡ
대한민국 국정역사기관에서
100년 가까이 사서기록의 지명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비정해놓은 것중 400여개가 대륙에 존재하고, 사서기록과 방위가 일치하고 유적유물이 존재하는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 의 지명들.
최소한 이렇게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ruclips.net/video/WdpiF9sADYY/видео.html
영토보단 강한 자주의식과 국력이 자랑스럽네요. 조선말처럼 꽉 막히지도 않고 굉장히 개방적이고 상업을 중시했으니깐..
프랑스보다 더 큰 정도니까 좋았을거 같음
서해 전부가 발해만 이었습니다.. 발해영토는 요동 요서 지역을 다 먹었다고 봐야지요. 우리나라 역사는 대부분 식민학자들이 만든 역사라서 반도사관에 가두고 대륙역사는 거의 날조에 가깝습니다.
역사를 식민학자들에 맞겼으니 우리역사는 대부분 특히 옛 영토들은 다 날조입니다. 있지두 않은 3국역사나 가르치고있고.. 우리민족의 역사는 나라가 많고 영토두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영위하며 살던 유목민족입니다. 한반도에 갖쳐있던 토속민족이 아니라...
맞습니다
발해 국명 자체가 고구려 부활이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픈 당나라 조정의 농간 네이밍이었는데? 발해의 정식 국호는 고려 였음 (일본 왕에게 보낸 외교서찰에 고려국왕 이라는 국인 찍혀있음) 고로 발해라는 이름 때문에 발해가 요서까지 다 지배했다고 추론하는건 근거가 부족함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 갇혀있던 민족은 아니지만 유목민족이라는건 어불성설 한민족의 정체성은 통일신라 고려를 거치면서 형성된거니 농경민족으로 봐야함 물론 고조선부터 "우리 역사"이지만 그럼 조선족의 역사는 우리 역사인가? 현재 눈앞의 조선족들도 품어주지 못하면서 머나먼 고대의 선조들이 유목을 했건 농경을 했건 무엇이 그리 중하리 지금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라나는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무엇을 할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강건하고 번영할수록 우리 역사는 더욱 찬란하게 이어질테니
엄연히 얘기하자면 소위 '우량카이'라고 하는 산 사람+남북국 시대에 등장했던 해적 여진족처럼 어로를 주로 하던 부족(옥저 같은)+한반도 북부 지방의 일부 예맥족이 합쳐진 다민족 국가가 고구려였고,백제와 신라는 농경과 상업을 기초로 성장한 나라임
유목민족은 물론 있긴 했겠다만 만주 초원지대에 살던 반농 반목 부족 일부 정도가 맞지. 고구려조차도 후대로 가면 빼박 농경민족화 되는데.
가장 유목민족에 가까웠던 부여조차도 반농 반목임. 왜? 애초에 환경 자체가 농사가 가능한 일부 지역이 존재하니까. 농사는 그 당시 첨단 기술이었을 거임. 가능하다면 안할 이유가 없음. 유목 생활은 농경에 비해 비교적 고달프고 생산성이 잘 안 나오는 일임.
소위 환빠라고 하는 유사역사를 신봉하는 자들이 자꾸 중앙 아시아나 만주 북부까지도 우리 영토니 어쩌니 주장하는데, 그 지역들은 매우 척박할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지키기가 매우 버거운 곳들임. 그런 곳들은 지금 시대에도 인구 밀집도가 낮은데, 옛날엔 오죽 했을까? 우리 민족이 쓰잘데기 없는 땅까지 다 쳐먹을 정도로 멍청한 민족이었다면 이미 지금 중국어 쓰고 있었을 거임.
자꾸 되도 않는 유사 역사 신봉하는 자들이 영토에 집착하는 게, 어쩌면 좁은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불만이 이상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안타까움.
영토는 많으면 물론 좋긴 한데, 굳이 그걸 집착할 필요는 없음. 영국이 어디 영토가 넓어서 대영제국이 됐던가?
중요한 건 사람임.
지나간역사지만 신라가 원통스럽다...
신라가 아니라 김씨 왕조를 욕해야죠
ㅈㄹ하네 신라가 욕먹을 이유는 없다
망한 나라에는 망한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인데…
이스라엘은 2,000년 전에 디아스포라로 세상을 떠돌다 2차세계대전 후 역사 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겨우 땅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땅덩어리가 자꾸 좁아지고 있습니다. 남한도 갈가리 찢겨지고 나면 이스라엘 민족처럼 디아스포라가도어 세상을 떠돌게 될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불쌍하게 될것입니다.
땅을 잃어버려도 역사를 잃지 않으면 찾을 땅이 역사속에 있지만 역사를 잃어 버리면 역사 속에 있는 땅마져 잃어 버리고 말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한민국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가 없는데 누가 도외 주겠습니까?
고려와 통일신라의 국경선은 심양 ~ 하얼빈 까지 입니다.
우리 스스로 역사의 땅을 빼앗기지 맙시다.
중국앞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 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ㅋ
사드 설치한다고 한국인들이 더 시위하는 세상인데요
발해가 멸망 후에도 또 고려로 많은 수가 들어왔죠. 그리고 고구려 유민들온 고구려 멸망 이후 100여년이 지난 후에 또 무리를 지어 나라를 세우죠 산동반도에 세우는데 이정기의 나라라고 불리며 당나라에서는 제나라라는 이름을 내리기도 하죠. 우리가 국사에서 이사도의 난으로 남의 나라 역사인양 배운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자랑스러 우리의 역사입니다.
발해 인구가 300만이 넘었는데 그 300만이 고려에 넘어오면 나라에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여?
@@문레니
300만이 다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으로 흩어졌죠. 후발해를 세운 세력도 있고요. 발홰 멸망 후 여러 후발해가 생겼죠. 아예 이름을 후발해라고 한 곳도 있고요. 후발해 중 가장 오래간 곳은 정안국입니다. 그 외 만주 각지욕으로 흩어졌죠. 중국이나 거란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요.
@@헐헐-m4x 그런데 300.만이 무슨 이유로 더 만주룰 떠난거죠? 그리고 소수민족이었던 말갈족이 어떻게 만주에서 수백만으로 늘어난거죠? 말갈족은 종족 번식력이 대단하군여
@@문레니유전자조사 결과 북한은 고구려+한민족 혼혈이고 남한은 경상남도 및 전라남도가 고구려 피가 섞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국민으로서 존제 가치가 없어지니 이리저리 흩터 지지요.일제에 나라를 잃고 만주로 일본으로 많이 흩터 살았지요.
좋은 지적입니다.
일본서기에 고구려멸망후 고구려와 교류한 내용은 발해와 교류한 것입니다. 발해는 중국이 붙인 명칭이며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라 칭했습니다. 아울러 고구려유민 대다수는 30여년뒤에 건국되는 발해에 편입되었다보는게 맞습니다. 대조영은 5부중에 한부를 책임지던 대귀족이라 보는 게 맞고요
그게 우리한테 좋은 점이 단하나라도 있나요 ........ 우리는 신라의 후예인데 발해가 고구려를 이었다면 발해를 이어받았거나 흡수통치해던 요든 금이든 청나라에 정통성이 부영 될것 같은데.... 민족에 99%가 지금 중국인이 되었는데. 누구의 역사라고 주장할수있나요
@@잡영어-y8p 좋고 나쁘고 장 단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발해는 스스로 고려라 칭했다 라고요. 발해는 한반도 민족의 역사가 맞습니다. 대화가 일단 통하잖아요. 요, 청, 중국 국가들과는 대화가 안되고요
전남 경남이 살아있는 고구려 후손입니다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C2c1a1-CTS2657이 요양 고씨 고구려 왕족 Y DNA입니다 전남 경남에서 두곳에서만 10%가 넘게 나옵니다 이 말은 즉슨 현대 전남 경남 대부분의 사람들 피에 고구려 인 혹은 부여인 피가 적어도 1% 이상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함(y dna는 남자만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서 고구려 후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 = 한국 전라남도 경상남도 가정 혹은 탈북자 조선족 실향민 가정과 북한 및 중국 산동 지린 랴오닝 오르도스 네이멍구 한족 및 만주족
@@잡영어-y8p 무슨 근거로 99%가 나오나요.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주민)도 상당하고 발해 멸망 후에 고려로 흡수된 발해인/고구려인도 상당해요. 이것은 고려사에 나옵니다. 그리고 중국에 끌려간 사람은 20 만 여명인데 당시 고구려 추정 인구 300만 명의 10%도 되지 않아요. 물론 만주에 남은 고구려 후손이 만주족으로 흡수되었겠지만요. 고구려 영토의 일부인 한반도 북부는 한국이 차지하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잡영어-y8p신라의 시작도 한반도가 아닙니다. 통구스계 훈족이 내려와서 세운게 신라인데 민족 따지면 신라사도 한국사 아닌데요?
만주족이 한민족과 언어가 다르지 않았기에, 대조영이 말갈족,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함.
심지어 조선 연산군 시대까지는 여진, 거란 등이 조선과 언어, 복장이 비슷해서, 조선인들이 요하로 도망가면 잡을 길도 없다는 연산군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도 비슷한 어휘가 많은데,
만주어: 한국어로 비교하면,
모쿤:묶음, 니루:이룸 등등이 있다.
현대 한국어가 많이 인도어화, 게르만어화, 영어화, 중국어화, 일본어화 돼서, 북방민족과 문법, 어휘가 많이 달라짐.
실상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란, 선비, 몽골, 여진 등과 말이 비슷함.
그게 중국 사서들에게도 남아있다.
실위, 선비족이 고구려, 부여어와 같다고 적혀있다. 실위가 몽골과 현재 러시아 북방 아시아 유목민의 조상이다.
또 신라, 선비가 언어와 종족이 같다고 하며,
부여, 고구려,백제가 종족이 같다고 함.
결국 이 나라들 모두 단군조선의 후손이라고 역사기록에 적혀 있다.
심지어 여진족의 조상이라는 숙신씨도 여진과 함께 한자 발음이 조선과 같다.
조선은 아사달의 음차어라고, 기록에 적혀있고, 현재 중앙아 투르크어의 아스타나와 같은 뜻이다.
숙신에서 여진으로 한자가 바뀐 것 뿐이며, 조선에서 숙신으로 표기법만 바뀐 같은 글자. 이를 중국에서 "가차"라고 소리만 따오는 표현법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 춘추시대로 올라가면, 숙신=조선 으로 구분 안함.
심지어 중국 사서에는 읍루, 물길과 부여, 고구려어가 달라졌다는 후대 기록이 있는데, 읍루가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읍루는 일루라고도 불리며, 아이누의 음차어.
참고로 한자 마을읍의 고대 소리가, 현재 한국어의 "마을"이랑 같다. 한국인이 만든 한자 임.
아이누는 현 일본 훗카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 근방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아이누는 석기 시대까지도 한반도 주요 거주민중 하나임.
게다가 후금이 청나라로 개명할때,
맑을 청 자를 썼는데, 그 뜻을 말하는 한국어 "맑을" 과 만주족의 고유 민족명인, "말갈" 이 같기 때문이다.
말갈은, 마한과 같은 뜻이라고 거란고전에 기록됨.
말 = 말
갈 = 고려, 구리, 가리, 가르, 가라, 가락, 가야, 구루, 고을, 성읍, 도시, 나라 라는 뜻이다.
아....고구려
진작에 통일했어야지
일본까지 쓸었어으면
아 ...미치겠다
고구려 위대한 이름없는 전사들
고구려가 통일하엿다면 후조선 대한민국도 없을수 있음,고구려는 어찌보면 완전 유목민족이고 신라는 삼한 통일한 농경민족임.
@@czh9528고구려가 유목민족이라는건 어떤 근거로 하시는 말씀이죠?
단순히 영토만 가지고 논할수가 없는것이 백제의 경우도 백제유민들중에 적잖은 수가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은 백제의 형제국
@@사필귀정-j7f 형제국이 아나라 왜 자체가 백제임
그래도 신라에 남아있었던 상당수 백제인들에 비할바는 아닙니다.
무슨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따집니까 다 동이족이고 韓민족인거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원주민은 죠몬인인데 왜 우리와 닮았을까? 멸망해봐야 다 어디로 갔겠어요 그냥 한반도에서 터잡고 살았지 ㅋㅋㅋ
@@Ross6437-k2w국뽕은 니 틀니 속에나 해라
10퍼센트의 왕족과 귀족을 제외한 일반 평민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그대로 잘 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발해 백성이 되었고 금나라 백성, 청나라 백성이 된거죠. 이주하는 것도 돈있는 놈들이나 하는거지 일반 백성들은 쉽게 이주 안합니다
핵심적인건 개소문의 평양파벌이 없어져 버린거지. 실상 요동군벌들은 아무 타격없이 건재했다는거 그들이 후에 발해를 건국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건 사실인거 같음.
그 짧은 기간에 나라를 건국 하는건 불가능 했을지도
아래 영상으로 지금까지 ‘고구려사’에 대한 우리 역사교육의 현실을 잘 알수 있습니다.
자주묻는 20개 질문, 시원한 답변. 중국대륙은 우리역사 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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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기초 역사상식 03 [ 눈이 번쩍 뜨이는 우리선조들의 고향 ] #sh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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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책요약, 고구려 건국, 주몽, #추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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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최대영토,구글맵으로 확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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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마지막 수도의 미스테리를 풀다. (시간순삭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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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모본왕 , 중국 서쪽땅을 점령하다 (북평,어양,상곡,태원) 의 실제 위치, 반박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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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서쪽 영토 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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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안시성의 실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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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놨던 비밀의 고구려 영토. 전설의 사전 ㅣ설문해자의 패수
ruclips.net/video/_850Xx0GNo8/видео.html
황제국 고구려의 철갑옷과 새로 쓰는 역사
ruclips.net/video/eXZd1kj45ao/видео.html
감사합니다 ~
잘 봅니다
근데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데 근700년 동안 고구려영토내에 고구려 유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기에 발해는 소수의 고구려인과 다수의 말갈인의 구성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다수의 고구려인과 소수의 말갈입니다. 좀 만 찾아보면 말도 안돼는 억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시죠. 다수가 말갈이란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발해 건국이 고구려 멸망이후 30년 후라는 것은 측천무후가 당나라 내치에도 버거운 상태라 전쟁은 포기하며 대조영을 발해왕으로 봉한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해 699년을 발해의 원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 자체가 중국 중심적인 기록입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1945년에 건국이 되었는데, 중국에서 1960년에 너희 나라를 인정한다라고 말하고 자기네 나라역사책에 그렇게 적었다고 몇백년 후에 사람들이 대한민국 건국연도가 1960년이 되었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같죠.
실제는 699년 훨씬 이미 그 이전부터 '고려'라는 국명을 쓰는 나라가 중국 사서나 일본서기에도 등장합니다. 원래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로 정식 명칭이 고려였습니다. 실제 고구려 멸망이후 십년도 되지 않는 상황에 대중상이 이미 '고려'를 재창건했고, 대중상이 살아 생전에는 당나라가 고려가 다시 부흥했다라는 것을 자존심이 상해서 인정하고 있지 않다가 (그래봤자 안동도호부 자체가 이미 유명무실한 상황이라 당나라는 만주에 대한 지배력 자체가 없었음) 대중상이 죽고 대조영이 등극하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옛다 하며 '발해태수(군왕)'라는 옛날에 한나라때 존재했던 관직을 대조영에게 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조영은 측천무후에게 오 감사합니다라며 가서 좋다고 머리 좋아리고 발해군왕의 자리를 받은 적이 없죠. 대조영은 이미 이전 고려의 영토를 다 회복한 고려의 왕이었는데 뭐가 아쉬웠겠습니까. 대조영 아들(무왕)은 장문휴를 시켜서 산동반도까지 처들어가죠.
이렇게 우리가 발해는 결코 자신들을 고려라고 말했지, 발해라고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신라 입장에서는 고려라고 부르면 자기네들의 삼한통일의 업적이 말소가 되기 때문에 당나라를 따라서 발해라고 부르기는 했습니다.
말갈도 결국 고조선의 후예로서 고조선이 망한후 한나라의 통치가 싫어 백두산 산간지방이나 송화강 일대 살았던 부족으로 중국에서 이들을 말갈로 불렀던거 같네요.
나중에 고구려에 대부분 병합되었으나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의 통치에서 벗어나 따로살게 되는데 중국 역사서인 신당서의 동이,백제편에 보면 고구려와 백제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감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말갈에 편입되었다 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 수가 원 말갈인의 20배가 넘었다하니 결국 말갈은 대부분 고구려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만주족의 공식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에 보면 고구려인들이 당나라에 끌려가는것이 두려워 스스로 말갈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결국 발해를 건국한 주역은 대부분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kjchoi4123발해가 고구려 고토를 장악했다 보는 시점은 8세기 중후반임, 즉 668년 고구려멸망시점의 유민들은 다 죽었을것이고, 고구려 고토는 발해가 장악하기전 당나라 영역이었음, 환빠 비스므르리한 애들이 그 지역을 무주공산 이지럴하는데, 당나라 영역이었으며 698년 대조영 건국시엔 발해 강역이 동모산 일대 정도에 그침
그러므로 고구려 멸망시점의 유민들은 없어진 이후고, 고구려 고토에 있던 그 후손들이 고구려계인지, 당나라에 귀속후 말갈로 바뀐건지, 판단 불가란 얘기임
궁금 했는데
감사합니다.
근데 고구려 전성기 인구는 어느정도 될까요? 수,당 전쟁에서 수많은 전쟁포로를 잡아서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을 매꾸며 멸망시에도 노예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1천만명 이상은 된다고
하던데 정확한 인구 규모를 알수있을까요 전쟁포로까지 포함해서요
1천만이라고요? 북쪽 농사도 안되는데 어떻게 먹여 살립니까? 그 당시는 농약도 비료도 없어요. 생산성 극히 낮습니다. 영국은 19세기에 인구가 2천만 됬어요. 조선 초기도 그나마 땅이 좋아도 인구가 2-300만 정도 밖에 안됬어요.
고구려 멸망 당시 69만호라는 당나라 측 기록이 있는데 이게 350만입니다. 전근대 인구는 절때 정확히 알지 못하고 게다가 고대사는 사료도 희박합니다.
최근 연구 동향은 350만 정도를 맥시멈으로 두고 150만이니 뭐니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략 330만으로 파악되고 있어요. 그 고구려 인이 나중에 속말말갈 백산말갈로 불리며 살아가죠
신라보다 적었다고 알고 있음.. 실제로 벼의 생산성을 생각해 볼 때 딱히 백제나 신라보다 많지는 않았을 듯.
광계토왕께서 통일을해놓았으면
주위의 여러민족에게
침략을 덜받았을걸 후손들은
천년이 넘는세월을 남의나라에
지배당하고 잡혀가고 억울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았울까
그래도 중국에 흡수되지않고
잘버티어 나라를 지켜준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중국사람이 아닌게
너무좋다
광개토대왕입니다..
수나라 당나라때 중국어 할줄도 모르는 선비 언어 선비족들에게 식민지배받고 왕도없이 하층민으로 살았던 중국어족 수나라 당나라는 중국어족들에게는 식민지배 당했던 역사`@$^
수나라 당나라때 중국어 할줄도 모르는 선비 언어 선비족들에게 식민지배받고 왕도없이 하층민으로 살았던 중국어족
수나라 당나라는 중국어족들에게는 선비 언어 민족들에게 식민지배 당했던 역사
실력이 딸려서 못한거고 통일 했다면 왕자기난으로 나라 개판될확률이 더높지
고구려 망한건 결국 연개소문 탓 맞음.
큰 전쟁이 나면 왕중심으로 단합 되야 일처리가 되는데.
연개소문이 고구려제일 귀족 100명 넘게 죽이면서
고구려 전체 장악력 떨어졌음.
고구려 정도면 당나라와 싸워도 먹힐정도는 아님.
귀족끼리 단합도 안되는 상황에서 연개소문 아들들이
싸우고 연남생이 투항하면서 나라 그냥 당나라에
갔다 바친거임.
현대사회에. 일본에는 항국김치 식품을 정말 쉽게 찾을수 있어서 정말 깜작 놀래요☯️☯️☯️🎃🎃🎃🎃🎃🎃🎃
고구려의 핵심 지배층은 당나라로 끌려가고 또다른 지배층은 발해에서 지배적으로 있다가 발해가 망하면서 핵심 지배층은 고려로 귀부했고 또다른 세력은 숙여진족으로 분류되 생여진(금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고 보입니다. 특히 압록강 남북의 고구려 주류 세력들도 여진족에 흡수되 만주족으로 되었고 지금 북방에서 만주족으로 한족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 봅니다.?
고구려는 거란 여진 고려 여러가지 민족들 함께 살았던 곳 신라는 현재 한국인들 돌궐은 현재 투바공화국입니다 옛날에 몽골어 쓰고 1921 년 소련의 공산당들 강제로 뺏어 갔고 풍습 문화 아직도 몽골이랑 같지만 언어는 고려인들 처럼 됐어요
초등때는 역사를 싫어했으나 성인이 되고나서 역사가 궁금해 지는구나
수고많으십니다
계속해서 우리 역사의 뿌리를 찾아 주십시오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던 우리 민족들을 통합하면서
세계 강대국으로~!!
일본을 밟자~!!
중국을 밟아야죠
와우, 좋은 자료들을 편집하셔서, 잘 봤습니다. 여기에 당나라를 붕괴시킨 제나라도 다루었으면,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 그 만큼 당나라가 싸울 수 있는 군인들이 모자라, 고구려나 돌궐 군인들 써야했던 처지도 잘 보여주고, 중국인들은 통치 잘하는 사람을 따르고 충성하는 그런 낯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옛로마가 망할 때 라틴화된 게르만족을 상당히 썼고, 오히려 로마의 영광 다시 되찾으려고 로마 문화재를 보존하는 작업하다, 동로마 싸움에서 오히려 더 폐허가 됬다는게 역사계 입장인듯이. Maiorianus 유투버 보면, 그 실상을 잘 나타내요. 하이튼, 당나라도 비슷한 입장인듯.
당나라를 패망시킨 濟나라는 백제의 유민 이정기장군이 세운 나라입니다.물수변이 있는 제는 백제란 뜻입니다.산동성의 수도ㅡ濟南이 백제땅인 걸 증명합니다.산동성에서도 역사를 자각하여 민족독립운동이 일어난다는데 직접 목도한 사실이 아니어 알수 없으므로 확인차 들어가 보야겠습니다.
신라가 통일해서 3국이 같은 민족이란 개념이 생긴거지 안그랬으면 서로 알빠겠어요? 고구련지 백젠지 신란지?
그런점에서 신라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잘못아시는데 발해건국은 조양에서 유민들이 도망쳐서 생긴 과정이 결코 아닙니다. 발해건국중심지인 길림성일대는 당나라의 지배가 미치지 못했기에 그곳에 거주하는 고구려 유민들이 빨리 결집해서 국가를 세로 만들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생각에는 699년까지도 아닌 그보다 적어도 20년 이상 전에 발해가 건국되었고 보다 더 많은 고구려유민들을 회유포섭하기 위해서 조양지역의 상황을 관찰주시하다가 손을 뻗은 것입니다. 결코 대중상 대조영부자가 영주에 살던 유민으로 도망치다시피해서 발해를 건국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건국을 위해서 그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이 필요한데 다급히 도망치다시피한 세력들이 그것을 다질 여건이 될수가 있슬까요?
이들 이외에, 연해주 및 캄차카 반도를 거쳐 알래스카 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흩어져간 사람들도 있었겟죠...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생긴게 아니라 발해가 고구려의 왕이바뀌고 고구려를 이어간거라고 합니다 청화수님 영상보시면 논리적입니다
유민으로 끌고갖다지만 그넓은 영토에 특에 다 끌고갔겠어여 대부분이 살아서 만주 북한에 뿌리내려서 산거져 남쪽으로도 만이 내려갔을거고 왕건도 개성출신인데 고구려인ㄴ들이고 게네도 한반도에 잘만 살아있어여 고려 후예뜰은
이거지
아이고
아직도
식민사관을 ...
대륙에있던고구려 백제 신라 있었는데
한심하네
평안도 지역에서는 발해시대의 유물이 별로 나오지 않아서 발해 조정의 지배력이 평안도 일대에는 미치지 않았다고 추정하더군요. 그 지방 호족들이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살다가 고려 조정의 북진정책으로 고려에 흡수됐다고 봐야겠죠. 복기대 교수님 등은 고구려의 도읍 평양이 현재의 요동반도에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그게 맞다면 구도가 확 바뀔 수도 있겠네요. 칭기스칸의 어머니 헐룬의 친정 올쿠누트족이 고구려의 유민이라는 추측도 있더군요. 쿠빌라이 등 몽골 수뇌부가 고려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보인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발해만은 텐진시 당산시 앞 바다를 말합니다! 즉 북경을 포함 한 그 일대가 과거 발해 땅 이였다는 것입니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옛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잘못 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초기에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동쪽과 북쪽에 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대륙계 유전자인 O2a1, O2a2가 많은 것입니다!
고두려는 여러 종족의 연합체였는데 다 흩어져 갈라진거지. 발해로 유입된 계층 돌궐족과 함께 유민이되어 이동하다 당나라 서역정벌따 딸려간 이들도 많고 등등 여기저기 분산됬다고 봐야함
고구려라고 부르는자체가 식민사관이고
역사서에 고구려는 업습니다
고려 역사를 찾으셔야 하는데 역사학자라는 인간들 전부 고구려라 하니 참으로 안타갑네요
고구려가 유목 민족 성향이 아니라 수렵 생활 성향이 맞을 듯.
걸사비우는 걸상에 않아 연주하는 첼로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던 자 입니다. 대중상은 변사다 라고 보면 됩.
제 생각인데 여진족이 고구려 후예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구구려의 려자와 마한변한 진한처럼 진을 붙여 고구려 후예라는 뜻으로 려진이라 한것이 여진족이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진은 신라의 후예고 금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일리가 있네요.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에 여진족 있었다고하네요. 한국 뉴스에도 나왔다는대요.
동북에 고구려인외 한반도 보다 넓은 면적의 만주 평원에 거란족이 있었고 , 한반도 면적 보다 몇 배 넓은 삼강 평원과 연해주 일대에 여진족이 있었으며 광대한 외몽골 지역에 돌궐족이 있었습니다 . 돌궐족 북방에 몽골족도 광범위하게 분포하고요. 한민족 계열인 부여에게 밀려 눈강 지역 평원과 대흥안령에 거주하던 선비족이 세운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 것이고요 .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수나라. 당나라이며 수도인 장안은 한반도 크기 면적의 관중지역이고요 . 아버지의 후궁이 왕비가 되고 왕비가 왕이 되는게 가능한 것은 선비족 풍속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요. 즉 , 고구려와 싸운 것은 중국이 아니라 오랜 조상때 부터 불구대천의 원수 지간이던 선비족 당과 싸운 것입니다 . 전쟁 포로는 종으로 활용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고구려 유민은 주로 군인으로 장안 주변에 배치하여 중국족속을 통치하는 위치에 두었고요.
고구려는 지금봐도 영토만 넓지 현재 몽고처럼 척박하고 살기어려운 지역이네요.
평양이랑 황해도가 금땅이잖아요. 지금 북한이 식량난인게 이해가 안됩니다.
@@최유훈-n1r 솔직히 조선 때도 핵심은 삼남지방이었습니다.. 황해도니 뭐니 해도 그냥 삼남지방의 생산성이 압도적이었어요. 특히 삼국시대엔 전라도가 뻘밭이었기에 최남단인 경상도를 점유한 신라의 생산성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고.
간과한 부분이 있네요. 많은 고구려 유민이 남 북 아메리카로 갑니다. 더 많은 것을 아시고 싶으시면 책 쉽게 쓰는 글 잉글을 읽어보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
발해의 공식 명칭이 '고려' 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며, 발해에 익숙해 진 한국사람들이 국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게 큽니다만~~ 어쨋든 중국 사서, 일본 서기에도 기록되어있지요~
또한, 발해라는 지명은 현재는 서해 북부 발해만 일대를 일컷지만~ 수당전쟁 서기 600년 중반 당시에는 하북성 석가장시 동남쪽 일대의 큰 호수(서해와 섞인 호수)입니다. 당시에는 해수면이 높아 바닷물이 꽤 깊은 중국 내륙까지 들어왔습니다... 펄벅의 대지에도 나오지요~
아믙튼 요동 이면 요나라 동쪽을 이야기 하는 것 임.요나라가 어디냐.요업이 성행 하는 곳으로 도자기를 구워서 산업화 한나라이며 ,고령토가 있는 지역 이다라고 보면 됨.
한나라 멸망 이후부터 수나라의 통일까지 분열과 북방이민족에게 침략당한 시대 뿐이고 당나라 멸망부터 명나라 건국까지 분열과 북방이민족에게 침략당하고 정복당한 시대 뿐이며 명나라가 만주족에게 정복당한 이후부터 중화민국 건국까지는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역사 뿐인데 뭐가 찬란한 중국사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한반도는 한민족 국가로 이민족이 거의 섞이지 않은 만큼 민족 동질성이 짙어서 민족=국가=땅 이런 인식이 강한데 중국은 통용되지 않는 인식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인식하지만 중국인들은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대륙의 역사로 인식합니다
머 그럴수밖에 없는게 중국대륙 역사에서 통일중국의 한족왕조는 한, 명 외에는 없으니 그렇기도 하고 현재 중국이 52개 소수민족과 함께하다보니 한족이라는 별도의 민족성 강조시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기치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漢족중국(중공) 역사는 74년뿐이죠.
@@kcjung7363 송은 왜 빼세요
@@수분-g3g 송ok
발해가 고구려라고 왜에 가서 말했는데
대부분 발해땅에 살았을 듯
수도 평양성 주민들만 당나라로 끌려간 것
중국의 객가들이 회수 남쪽으로 집단 이주되어 당시 서족의 반란을 진압했던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임. 객가의 전통 음식엔 막걸리와 인절미 같이 우리 고유음식과 유사한 예가 많음. 객가족 한자독음은 우리 한자 독음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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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해 되긴? ㅋㅋㅋ 지들 원 고향인 중국에 가서 중국 본토 사람들한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지 ㅋㅋㅋ
고구려로 이주한 세력이 황금서당 뿐만 아니라 벽금서당과 적금서당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라의 3서당이 고구려계이므로 상당 수 고구려인인이 신라로 이주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의 세력이 고려 건국 주축의 세력이 되기도 하고요
주변 국가로 대부분 도망갔고 일본에도 엄청 갔어요 몽골 반점이 있는 몽골로이드 이 사람들이 고구려(몽골) 후예들이고 한국인은 투르크 신라계입니다
말주 벌판이 아니라 현재 중국 대륙을 누볐다!!! 고구려가 망하고 후손은 여진족과 고리(고려) 나라로 갈라져 서로 고구려 후손이라고 싸웠다!!! 우리 고대 국가는 한반도에 없었다!!! 현재 님이 보여주는 지도는 일제식민사관 역사는 70여년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는 배하고 왔다
⚠️ 대부분의 고구려 유민들은 그대로 발해 주민이 되었습니다.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사람이 많다지만 고구려 전체 인구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대의 인구 이동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때문으로 정착한 곳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떠나 수만명을 재우고 먹여살리기도 힘들었습니다. 전쟁 때의 몇십만 몇백만 대군은 그냥 과장된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 중 소수만이 전투병력이고 나머지 병력은 그냥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거나 물물교환으로 대군들을 서포트 했으니 간접병력으로 봐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결론: 발해 = 고구려)
당나라는 요동과 삼한 보다 실크로드 가 있는 서역에 목숨을 걸었음 .. 그러니 요동과 북만주는 무주공산 지경이었지
고구려 역사는 자랑스럽다고 자랑하면서
후손들은
웬수 취급하는
서로 못잡아먹어서 환장하는
분열 전문 민족!
고구려 역사는 이북이 자랑해야 되는거 아닌가?
븍한?
역사 교과서는 최초의 민족통일은 신라, 재통일은 고려라고 가르쳐왔죠. 그러나 역사학자들끼리도 말이 엇갈립니다. 발해가 뻔히 있고, 고구려땅 절반 이상 차지했고, 고구려를 계승했으니 신라는 최초 통일국가가 아니라는거죠. 게다가 자력이 아니라 외세의 힘을 너무 많이 빌렸다는것도 흠이고요. 고려를 통일국가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사실상 발해가 고구려 시즌2...
무슨놈에 통일이야 발해는 무슨 듣보잡이야 엄연히 북쪽에 존재하는 나라였는덕
윤석열? 앗 일본넘이닷 ㅋㅋㅋ
고려가 후백제를 이기고 다 시 한반도의 지배권을 가진건 발해 유민덕이 큽니다,
조선족 우주정복하는 소리
당나라로 끌려갔던 고구려인들중 일부가 호남과 호북성에서 745년경 고려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는 중국기록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팔팔"올림픽 때에
난생처음 으로 중부일본 과
남부 히로시마 까지 여행을하며
느낀 수만은 첫인상은😁 일본어만 빼고 본다면 우리와 모냥새가 같은 얼굴에 모냥새라 신선한 충격을 받은 생각이 나네요. 🇰🇷🇯🇵☯️☯️☯️☯️☯️⚽⚽
특히 궁궐과 절. 시장음식.
패션 일본만화 길거리 붕어빵
군고구마 밤 제이팝. 일본가요😁 오래된 꼬마전철과. 동백꽃
이. 잔잔한. 향수를 불러왔습니다
오래된 교또에 냇물과 골목길을
걸으면서 민족시인 윤동주를
추억하며. 일본기생에 얼굴 함
보자고 일녀기생 거리를 서성이기도 했고 ㅡㅡ
일본에서. 하이뽈 한잔은 해야한다고 해서. 이렇게 쬐꼬만 술집도 가보고
혼자서 " 삼주산겐도에 가서 절이 한국에 절 과 같은점 찾기도하고
쪼꼬만 "가라오케이 가서 돌아와요? 부산꼬 가에루 목청껏 해보았던. ㅡㅡ 모니모니' 해도 최고는 일본인에 성심성의한 친절함미.아직도 기억에 생
으로 남아 있네요♥️
진나라는 나중에 신나로 가서 내물왕이 되었다가 장보고 상단이 만들어 졌읍니다.
나리는 망해도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든 살겠죠. 형제의 나라도 속속 밝혀지고 있고 아마 몽골의 초원으로 들어가서 징기스탄때 정복 전쟁으로 유럽이나 중앙아시아로 들어갔거나 네팔 히말라야 산속으로 갔거나 중국인으로 동화 되어 중국 소수민족이 되었거나 그 일부는 러시아 대륙을 통해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데. 전쟁포로로 노예로 유럽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는 군요
고구려는 그 당시의 고구려의 역사..
중국측으로 고구려인의 상당수가 넘어갔다는 말은 잘 못된 것 같습니다.아시다시피 고구려의 가구수는 약36만호,인구는 최소 대략 200만이라고 잡으면 그 중 20만은 고구려 인구의 10퍼센트이며 이는 최소치로 추산한 것이기 때문에 10퍼센트 이하의 인구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유득공의 발해고에는 발해의 가구수는 10만호,대략 인구는 50~90만 사이입니다. 고구려인들이 곧 발해인이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16~30퍼센트가 발해인구로 편입되었고,일본으로 간 수가 2천이라 치면 고구려 인구의 겨우 반올림 해서 0.07퍼입니다.나머지 60퍼는 신라나 몽골지역으로 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헌데 신당서,특히 발해를 멸했단 요나라 역사서 요사에는 실제 발해의 역사에 대해 꽤 많은 오류가 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으나 현존하는 발해의 거의 유일한 자료이니 이를 참고할 수 밖에 없다
백제영토를 발해말갈하고 신라가 나눠가졌다고 나오는데 신라에 전부 흡수되었다는거는 뭘 근거로 하시는말씀인지 출처 좀 부탁드립니다
요나라 & 금나라는 중국인들이 중국어로 부르던 명칭이고 요나라와 금나라는 거란어와 여진어로 따로 부르는 국명이 있습니다. 요나라와 금나라는 중국 국가가 아님. 중국이 중화민족이란 개념 만들고 역사왜곡 한거 뿐임
고구려의 옛영토를 찾기위해서도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한국과 북한이 스스로 접촉과 협상을 통해서 성공시키자.
추가할것은 장안에 끌려간 고구려인들이 어떻게되었을까요? 대부분 귀족 출신입니다. 대대로 입니다. 이들은 결국 장안을 떠나 북으로 대륙으로 떠납니다 그들이 대대로 니 타타르가 됩니다.
고구려 주몽왕이 힘들게 건국했는데 그의 후손들이 나라를 말아 먹었습니다
고구려 사람이 어디로 갔느냐는 문제가
민족의 정통성과 연관됨
고조선과 부여예맥 삼한의 정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이 되었는데
고구려 남자들은 다끌려가고 노예 됬지만
고구려 여자들은 신라인의 첩이나 부인이 되었을 듯
서울 아차산 위부터는 고구려 땅이.....
코리아ㅋ 화이팅입니다
중국 영토에 존재하던 고구려,백제 ,,,,,,중국 영토에 존재하던 신라인 일부,,,, 모두 다 한족에 동화 된 것으로 보임,,,,이런 역사를 거부하는 한국에 대해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행위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감
일본은 원래 북간도인 일본과 사할린 중간에 있었고 일부는 후지산 근처에 있었읍니다
한국인이라는 영역개념에 대해서 한국민족국가라는 개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된것입니다. 어느 민족국가도 순수하게 단일형태로 내려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단일민족국가라는 것도 이래저래 이합집산되어서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맞는 말씀입니다만.. 서양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전근대에 비로소 생기기 시작했다면.. 한국은 훨씬 더 빠른 시기에 민족이란 개념이 형성 되었습니다.
이미 삼국시대에 서로 언어가 통할만큼 동질성이 매우 컸고 남북국시대를 거친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민족국가화 되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대몽항쟁시기, 이르게 보면 고려의 후삼국통일시기부터 민족이란 개념이 정립 된 것으로 봅니다.이는 서양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언어 자체가 어불성설임 단 우리민족이 강조하는건 그나마 타민족보다 혈헌적으로 또는 이질적인 요소보다 가깝기 때문에 강조하는거임
고구려가 멸망한것은 신라때문인데, 단군후손 박혁거세 빼고 육촌세력이 전부 중국인이였다. 심지어 박혁거세의 어미, 즉 외척이였던 오늘날의 경주김씨도 중국 청해성(옛 티벳인)에서 내려온 중국인들이다. 국가를 세울 명분으로 박혁거세를 데려와 종족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박"이라는 성을 만들었다.
역사에 굉장히 약한데 매우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줘서
찬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엽때 까지 그저 어림짐작으로만 일본에 한국인 피줄은 삼백만이요
중국에 고려인 핏줄은 이천만이요 어림 잡아 타산할 뿐이죠
🌿🏝️☯️
고구려가 멸망한게 아니라 발해라는 나라가 당나라가 명한 괴뢰국임.고구려는 망한적없고..연개소문 쿠데타, 그의 아들들의 내분, 보장왕하야후 왕족이 대씨로로 바뀐것뿐임
맞습니다 대조영도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칭하였지 발해라고 하지 않았죠
오 월요일에 고려신사 갔다 왔는뎈ㅋㅋㅋㅋㅋ
일부 고구려유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멕시코쪽에 터를잡았다는 설도 있더군요, 멕시코와 비슷한문화도 있고
유머
사실 엔지니어 였음
우주에서 100년마다 내려와서 놀다감
애완동물로 에일리언 한두마리 키우고 했음
영역 표시가 많이 잘못되었습니다
고구려 인은 일본지역으로 건너 같다가 지금은 대구지역에 많이 와서 살고 있읍니다. 그들이 힛타이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