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f5p위에서의 가정은 후견인 역할이 제대로 이뤄질때를 말하는 것인데요? 잘못 이해하셨나보네요. 그리고 세조가 그렇게 난을 일으킬 수 있었던건 왕실의 큰어른일 현덕왕후가 죽었기 때문에 숙부들이 큰어른 역할을 맡아서 가능한 거였습니다. 문종과 현덕왕후가 살아있으면 단종의 뒷배는 든든해지고 반면 수양의 세는 약해지니 당연히 없는것보단 있는게 났습니다.
@@관심법-f5p 무인정사는 적장자 계승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며 대다수의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던지라 역사적 평가가 계유정난과는 다른 거임. 계유정난은 없는 명분을 억지로 만든 게 고명대신의 국정농단인데. 단종을 보좌할 다른 종친이 있었다면 고명대신 일파에 권력이 집중되지도 못했음. 그럼 계유정난의 명분 자체가 사라짐. 물론 이것도 결과론에 맞춘 추론이긴 한데.. 계유정난은 근본적으로 권력균형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발생. 고명대신에 집중된 국정운영으로 불만이 쌓인 소장파 관료들과 집현전 학사들 까지도 계유정난 초기까지는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형태였으니. 이들이 수양과 갈라지게 된 건 수양이 왕위를 욕심냈기 때문이고..
@@품위있는녀석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에 명분은 개뿔 지어내기 나름이지.. 그래서 이방석 어머니인 신덕왕후가 정실부인이 아니엇나? 이방원은 장자엿나? 그 시대에 반대햇던 신료들 다 죽여놓고는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대부분 신하들에 지지를 받앗다고 우기지.. 차라리 개국에 공이 가장큰 장성한 왕자라 신료들에게 지지를 받앗다면 그나마 합리적인 명분이지
@@차무식-v1j 그래서 이방원이 바로 왕 못하고 이방과가 왕위에 오른 거잖아. 이방원은 형 이방과의 양자로 입적해서 왕세제가 아닌 왕세자로 왕을 이었고. 성리학 질서상 양자입적도 인정받는 거라 지금 기준에는 편법처럼 보여도 이방원은 적장자 계승 모두 지켜 왕에 오른 거임. 님 말대로 신덕왕후도 정실부인이긴 하지. 근데 이방석이 적자이긴 해도 적장자는 아니였잖아.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첫 세자부터 성리학적 질서를 어겼는데. 당연히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 대다수가 반발하지. 이방석을 세자로 세운 정도전이 모순이었던 거고. 무인정사 당시 반대파 자체가 극소수여서 얼마 죽이지도 않았음.
원래 의정부에서 3명 인사를 올리면 그중에 왕이 선택하는게 의정부3사 제도고 황표 정치를 한건 단종 어린나이에 왕이 되서 대신들을 잘 모르니 그렇게 해준거고 김종서가 인사청탁으로 뇌물 받아 먹었으면 수양대군이 그 죄를 포함시켰을 텐데 실록에도 전혀 그런 내용없고 김종서 재산도 별로 없는 청렴한 충신였습니다.
@@성경식-n2d 소현세자는 약간 생각을 해볼 필요가있음 물론 소현세자가 굉장히 유능했고 인조가 암군이라는것도 맞지만 인조가 유능하든 무능했든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꽤 신임을 쌓고 귀국한사람이라는걸 잊어선안됨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그 옛날 원나라때처럼 사실상 고려가 속국신세(충자 돌림쓰던 시절)로 전락할 명분을 줄 상황이었기 때문임 결국 인조와 소현세자는 필연적으로 정적관계가 될수밖에 없었던거 특히나 삼전도굴욕까지 겪은 조선의 상황상 청나라의 신임과 뒷배를 가진 소현세자는 좋은 시선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을거임
그렇게 따지면 고려도 전조 신라의 반역해 나온 나라인데요? 게다가 왕건은 자신의 주군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 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조선이 태동할 시기의 고려는 이미 망조가 든 나라였음 그대로 나가면 백성들이 다 죽어나갈텐데 누군가는 구시대를 끝내고 새시대를 열어야 했음
세종왕이 잘못하신것으로 나는 생각합니 그래서 나는 대왕으로 부르기도 싫은것 같습니다.문종을 왕으로 할게아니라 세조가된셌째를 왕으로 했으면 아무일 업었을텐데.불쌍한 황보인 김종서등이고 사육신도그리고 얼마나 많은 훌륭하신분들이 죽게 됩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자기 아버지 이방원이는 자기셌째를 왕으로 시켜주었는데 집안단속도 못하신분입니다..
단종을 죽인후에 시신도 제대로 거두질 않았다니 충신 엄흥도가 없었다면 단종의 흔적은 찾을수 없었을 것 같아요ㅠㅠ
한명회도 한번 다뤄주시면 안될까요??
칠삭둥이로 태어나 사후 부관참시까지...최고의 권력도 쥐었던 그 일대기도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역사는
제대로 평가 되었으면 하는군요
남을 해하고도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의 최후
역사가 말해주지요 그들은 악질이었다고
"이래서 좋다 나쁘다" 보단 "왜 그렇게 사람들이 살았을까" 가 좋은 접근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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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단종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지는 이름이죠.너무도 안타까운 비운의 왕...
불쌍한 단종... 아빠가 한 5~6년만 더 살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듯
그러니까요
문종이 갑자기 급사하였고 거기다가 단종을 지켜줄 왕실어른들이 없었으니 힘들었죠
문종이 5년만 더 살았았어도..... 수양대군은 친 형제를 많이도 죽였네!
수양군 악마입니다
왕 자리에 미치면 사람이 어떻게까지 추해지는지 보여준 수양대군 명분도 없는 살육이였기에 최악의 조선왕중에 하나로 기억하고 있음
ㅜㅠㅜㅜㅜㅜ
조선에서 가장 정통성 있는 왕이자 비운의 왕이던 단종. 모친인 현덕왕후가 산후 후유증으로 죽지 않고 살아있었거나 문종이 더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서 의지할 왕실어른이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죠.
태종 (방원)이 1차 왕자에난 이르켰을때 보세요 태조가 몸이 안좋아서 누워 있었긴 했어도 태종이 왕자의난을 안이르 켰나요 세조가 다른 종친이 있었어도 계유정난은 일어날 일입니다
@@관심법-f5p위에서의 가정은 후견인 역할이 제대로 이뤄질때를 말하는 것인데요? 잘못 이해하셨나보네요. 그리고 세조가 그렇게 난을 일으킬 수 있었던건 왕실의 큰어른일 현덕왕후가 죽었기 때문에 숙부들이 큰어른 역할을 맡아서 가능한 거였습니다. 문종과 현덕왕후가 살아있으면 단종의 뒷배는 든든해지고 반면 수양의 세는 약해지니 당연히 없는것보단 있는게 났습니다.
@@관심법-f5p 무인정사는 적장자 계승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며 대다수의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던지라 역사적 평가가 계유정난과는 다른 거임.
계유정난은 없는 명분을 억지로 만든 게 고명대신의 국정농단인데. 단종을 보좌할 다른 종친이 있었다면 고명대신 일파에 권력이 집중되지도 못했음. 그럼 계유정난의 명분 자체가 사라짐. 물론 이것도 결과론에 맞춘 추론이긴 한데..
계유정난은 근본적으로 권력균형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발생. 고명대신에 집중된 국정운영으로 불만이 쌓인 소장파 관료들과 집현전 학사들 까지도 계유정난 초기까지는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형태였으니. 이들이 수양과 갈라지게 된 건 수양이 왕위를 욕심냈기 때문이고..
@@품위있는녀석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에 명분은 개뿔 지어내기 나름이지.. 그래서 이방석 어머니인 신덕왕후가 정실부인이 아니엇나? 이방원은 장자엿나? 그 시대에 반대햇던 신료들 다 죽여놓고는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대부분 신하들에 지지를 받앗다고 우기지.. 차라리 개국에 공이 가장큰 장성한 왕자라 신료들에게 지지를 받앗다면 그나마 합리적인 명분이지
@@차무식-v1j 그래서 이방원이 바로 왕 못하고 이방과가 왕위에 오른 거잖아. 이방원은 형 이방과의 양자로 입적해서 왕세제가 아닌 왕세자로 왕을 이었고.
성리학 질서상 양자입적도 인정받는 거라 지금 기준에는 편법처럼 보여도 이방원은 적장자 계승 모두 지켜 왕에 오른 거임.
님 말대로 신덕왕후도 정실부인이긴 하지. 근데 이방석이 적자이긴 해도 적장자는 아니였잖아.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첫 세자부터 성리학적 질서를 어겼는데. 당연히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 대다수가 반발하지. 이방석을 세자로 세운 정도전이 모순이었던 거고. 무인정사 당시 반대파 자체가 극소수여서 얼마 죽이지도 않았음.
역쉬 오늘도 간결하면서 깊이 있는 내용
원래 의정부에서 3명 인사를 올리면 그중에 왕이 선택하는게 의정부3사 제도고 황표 정치를 한건 단종 어린나이에 왕이 되서 대신들을 잘 모르니 그렇게 해준거고 김종서가 인사청탁으로 뇌물 받아 먹었으면 수양대군이 그 죄를 포함시켰을 텐데 실록에도 전혀 그런 내용없고 김종서 재산도 별로 없는 청렴한 충신였습니다.
세조시절
단종은 노산군, 정순왕후 송씨는 노산군부인으로 강등... 경혜공주와
남편 정종또한...비운의삶을...
만약 태종이 단종 제위 기간 동안 살아있었으면 계유정난은 일어날수가 없을듯 하네요
제위 > 재위
?????????????????? 단종 임금님의 증조 할아버지인 태종이 단종이 왕 될 때까지 살아 있다는 건.... 좀 많이 힘든 일이겠지요 ^^;;
문종만 살아있었어도 불가합니다.
영화 드라마에선 문종을 병약한왕으로 묘사하지만, 수양이 감히 쪽도 못쓰고
잘보이려 애썼던 엄친아.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세조때까지 살아있어서
세종이 지왕자리 뺏어갔다며 세조한테 단종죽이라고 그랬다는 썰도 있음
@@이글-k6c그 문종대왕님의 몸상태를 의도적으로 약화시킨 자가 이유라는 설도 있는데...이유의 야심을 생각하면
가능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세조가 왕이될때 명나라 반응이 궁금하네요. 정말 명분없는 왕의계승인데
그래서 바로 단종을 못 죽인것같네요...아직 측근들이 조선에 남아있고 명나라로 분명 그걸 빌미로 압박하려할테니
조선왕조 518년 가장 불쌍한 자들 TOP15
1.충무공 이순신
2.단종 이홍위
3.사도세자 이선
4.정조 이산
5.패비윤씨
6.경혜공주
7.이면
8.태조 이성계
9.강빈
10.소현세자 아왕
11.광해군 이혼
12.조광조
13.김처선
14.원연
15.연산군 이융
이게 진짜 실없이 끝난거지 거하게 전쟁을 한거도 아니고 절대 방심하거나 아무리 하찮은 적이라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는 이유
소설가 김동인은 저런 세조를 이라는 소설로 칭송을 했었죠.
사람이 나쁜게아니라 상황이 나빴던거지..
역사적 응징은 마음의 위안일 뿐
세조는 왕으로서 평생 권력을 누리면서 살았다
세조 대신에 수양대군으로 기억된다고 하는데
만약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다면 과연 역사에 이름이 남았을까
설령 그것이 더러운 이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조선의 흑역사
계유정난
연산군
임진왜란
삼전도
세도정치
일제강점기
+ *삼촌이 자기 목숨 노리는 것을 큰할아버지인 양녕대군도 동조합니다. 양녕은 눈치만 보고 살았나 봅니다.*
문종이 39살에 승하했는데 적어도 50세까지는 살았어야 살만큼 살았다고 할수있지 않을까요?
조선 4대 비극. 1. 문종의 왕족 정치 참여독려. 2. 광해군의 폐위. 3. 소현세자의 병사. 4. 정조의 단명.
광해군은 폐위될만한 행동을 했어유
정조 50살까지 살았음 단명은 아님
@@빵상-m5m 왕 자리가 스트레스가 그렇게 심하다는데 오래 사는 게 더 이상하지
참 흥미진진하네요 아는 내용이지만 ㅎㅎㅎ 수양대군(세조 )넘나빠요 ;; 전단종이좋은데 ㅜㅜ
대군도 아깝지 그냥 이유라고 부르면 충분
조선을 암흑기로 가게되는데 가장 큰 사건이었죠
뭐 사실 단종 오래살았어도 김종서같은 고위관료들이 해쳐먹을 가능성이 높긴하지만
세조가 즉위하고 자기편이 없으니깐 반정공신 우대 + 외척위주 등용으로 조선을 암흑기로 만드는 직행버스였죠
피로 왕위를 찬탈한 업보인지 세조의 직계후손 예종 성종 연산군 다 끝이 비참했지요
문종이 더 오래 살았다면...
하다못해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죽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만약은 없지만 단종만큼은 그 만약이라는 걸 넣고 싶더라...
진짜 문종이 딱 5년만 더 살았다면 조선은 좀 더 나은 나라가 됐을듯~~ 조선의 왕중에 가장 안타까운 왕 문종 그리고 인조의 아들 소현 세자 마지막으로 정조 갠적으로 이 세분이 젤 안타까운 인물
@@성경식-n2d 소현세자는 약간 생각을 해볼 필요가있음 물론 소현세자가 굉장히 유능했고 인조가 암군이라는것도 맞지만 인조가 유능하든 무능했든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꽤 신임을 쌓고 귀국한사람이라는걸 잊어선안됨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그 옛날 원나라때처럼 사실상 고려가 속국신세(충자 돌림쓰던 시절)로 전락할 명분을 줄 상황이었기 때문임 결국 인조와 소현세자는 필연적으로 정적관계가 될수밖에 없었던거 특히나 삼전도굴욕까지 겪은 조선의 상황상 청나라의 신임과 뒷배를 가진 소현세자는 좋은 시선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을거임
@@성경식-n2d 그러게... 만약에라도
정순왕후가 정조업적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생각이 있었고, 왕실최고어른이라고 한들
여인네일뿐이고, 대신들 반대도 만만치않았을 것이기에...
ㅇㅇ 왕실최고어른의 공석 때문에...
역사에서 만약은 되게 많아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현재의 사고력의 출발점이죠
단종이라 하지 말고
장종이라 했어야....
귀양갔다 사약받고 거부하다 타살당한 비운의 왕
연산군 제외하면 양녕이 조선 최고 빌런인듯
단종죽이라고 계속 수양에게 징징댐
기ㅡㄹ갑 골갑 ᆢ
조카죽이고 왕이 된 사람.
조선 왕들의 정통성은 참 애닯네요.
단종.선조.광해. 장자승계 정통의 파워풀했던 적장자들의 말로는 다 패망의 역사였고, 세종.영조 등 찬란했던 시기의 왕들은 장자승계가 아니었으니까요.
이게 역모로 일으킨 나라의 최후 아닐까 싶네요
????????? 선조는 방계 임금입니다. 광해군(광종) 은 서자이고 둘째 왕자입니다. 적장자가 아닙니다. ^^;;
그렇게 따지면 고려도 전조 신라의 반역해 나온 나라인데요? 게다가 왕건은 자신의 주군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 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조선이 태동할 시기의 고려는 이미 망조가 든 나라였음 그대로 나가면 백성들이 다
죽어나갈텐데 누군가는 구시대를 끝내고 새시대를 열어야 했음
세종왕이 잘못하신것으로 나는 생각합니 그래서 나는 대왕으로 부르기도 싫은것 같습니다.문종을 왕으로 할게아니라 세조가된셌째를 왕으로 했으면 아무일 업었을텐데.불쌍한 황보인 김종서등이고 사육신도그리고 얼마나 많은 훌륭하신분들이 죽게 됩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자기 아버지 이방원이는 자기셌째를 왕으로 시켜주었는데 집안단속도 못하신분입니다..
단종하면 필수요소인 사육신 이야기를 보면 진짜 조선 사대부는 무슨 게이도 이런 게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