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시 동신중 3학년인데 기차로 부산을 경유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 와는데 광주역에 도착하니 파출소 소장이 손목에 도장을 찍어 주고 누가 잡으면 보여 주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다. 왜곡 보도된 언론으로 진실을 알지 못했다. 넘 죄송합니다. 사촌 매형도 현재 망월동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신다.
@@xxkjc6977 그렇게 독재가 좋으면 북한이나 중국으로 처 가시던지 ㅋㅋ 민주화 못하게 안기부가 간첩몰이 하면서 탄압하던 논리를 그대로 세뇌당해서 떠드는게 꼭 김일성 찬양하는 북한이나 핑핑이 찬양하는 중국 조선족과 다를바가 없네 ㅋㅋ 혹시 조선족? 한국에서 꺼져주시길 독재가 좋으면 중국으로 처 가서 공산당 찬양이나해 시진핑핑단들아 이쯤이면 님 존나 빨갱이임 어디서 감히 민주공화국에서 간첩몰이를 하며 독재미화를 ㅅㅂ 퉤
당시의 광주 투입 공수부대원들이 군생활이었어서 본인도 피해자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칼과 곤봉으로 저지른 살인과 폭력은 그리고 성폭행은 명령체계인 군의 속성과 상관없는 악행이자 본인의 폭력성과 악함이 발현된 경우로 볼수밖에 없다. 죄를 뉘우쳤던 말던 그 죄악을 저지른 당시 군인들은 죽어서 가장 고통스런 지옥에 갇혀서 영원히 고통 받으셨으면 합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지금 들어도 가슴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우리세대는 4,19세대는 아니다. 광주 ,6월항쟁의 세대 이다. 우리는 치열했고 순수했고 열심히 민주주의위하여 싸웠다.무서워 화염병은 못던저도 보도불럭깨서 던졌고 넥타이 매고도 돌 던졌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것이다. 지금은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백골단에 두들겨 맞고 무서워도 싸웠던 일이 조금이나마 지금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그 노력이 정의 라고 역사가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지금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이 세상은 당신이 주인이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마음것 펼쳐라 . 이런세상만들려고 치열하게 싸운것 아니냐. 지금의 주인공들을 믿고 우리는 무대뒤로 물러나야 한다. 나이 들어서 추한것중에 하나가 미련이다 걱정의 포장한것들이 미련이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믿어주고 선배라는 사람들은 물러날때 이다.
미국의 경우 형량에 대한 거래도 하는 것 같은 데 내란에 적극 가담한 군 간부는 단두대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스스로 내란 음모 전과정을 자백하는 자는 감형을 해주고 적극 신고하는 군 장교 하사관 병사들에게 포상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고 , 다시 그런 꿈을 가진 넘들을 향한 예방효과가 있었을 텐데 다 풀어줘버리니 군 간부들이 거짓말하고 아직도큰 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살고 있지
49:10~49:54 "19살 먹은 여자분이 있는데 칼로 두군데에 자상이 있는데 첫번째는 유방상부 앞부분이였고 두번째는 뒤쪽에서 찔렸습니다. 환자는 호흡곤란으로 실려왔습니다. 그리고 검사한 결과 폐에 혈액이 차가지고 수술했던 경운데 아마 제 생각에는 앞에서 먼저 찌르고 넘어졌을때 뒤에서 찌르지 않았는가 싶은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배용주(71)씨는 광주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던 34세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27세의 군 법무관이었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4)가 배용주씨에게 내린 사형선고는 배씨는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바꿔놓았다. 배용주씨는 32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시국사범 꼬리표 때문에 오랜기간 보안당국의 감시를 받아야했다.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광주 동구 노동청 부근 내리막길에서 시민군을 태우고 이동하다 경찰 저지선을 들이받아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했다.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에 넘겨진 배 씨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 판결을 내린 1심 재판관이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27세의 김 후보자였다. 판결은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2개월 복역 후 사형 집행이 면제돼 출소한 배 씨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뒤 재심을 청구해 1998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배용주 씨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였을 뿐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판사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더군요"라고 했다." - 크리스천투데이 윤혜진 기자 | 입력 : 2017.06.08 16:11
환장하것네 518광주사태때 교도소를 5번씩이나탈취작전 전라도 무기고를 4시간동안44개동시탈취 전남도청에TNT 3톤설치 아세아 자동차 습격 300여대의 장갑차 버스탈취 이런것을 광주시민이 했다 공수부대기 부녀자 배를 가르고 얘기를꺼냈다 처녀 가슴을 도려냈다 이런게 광주사람 공수부대가 했다고 믿는가 역사 왜곡 북한군 침투 의혹은 왜 입에 재갈물리고 입도 벙긋못하게하는가 실지 광주 사태를 TV토론 하자 그래서 북한군침투 시시비비를 가리자 지만원 박사모시고
왜 일어나야만 했는가? 간단합니다. 우발적이라 그런겁니다. 정부는 부마사태처럼 공수부대 위력으로만 진압할려고 시위장비도 없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공수부대가 얻어맞고 쓰러지자 과격해진겁니다. 그게 전라도 쪽의 지역성과 결합해서 더더욱 과격하게 맞받아치고 경찰과 공수부대원도 죽자 총격 시작, 시민들도 무기고에서 무기로 무장해서 전투..이게 답이지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뭐 딴게 있을 수 있습니까? 최규하정부가 광주사람 고의로 다 죽일 이유가 뭐가 있나요?
당시 특전사 소속 3, 7, 11공수여단은 M16을 사용했지만, 육군 소속 20, 31보병사단은 카빈을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5/18 기간 동안 보병 20, 31사단이 시민군과 교전하거나 양민들을 학살한 사례가 여러 있는 걸 보면 카빈 총상 사망자라고 해서 '시민군이 쏴 죽였다'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5/18 직후 사망자들의 시신들을 부검했을 때 대부분 시신들은 심하게 부패하거나 훼손돼있었고 시신 내에 탄환이 남아있지 않은 게 많아서 '대충' 눈으로만 보고 검시조서를 작성했답니다. 게다가 보안사에서 사망자들의 사인을 조작했다고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워원회의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dewjade4897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요 광주사태 주축 파견 부대가 특전사 보병 사단이 왜 진압을 하나요 그리고 시민군이 광주시민 왜 죽어요 북한 특수군이 광주시민 죽이고 계엄군에 뒤집어 쓰워 선동한 거고 계엄군은 처음 전남대 파견할때 실탄 지급도 안했는데 운동권도 아닌 정체불명 애들 계엄군에 돌던지고 계엄군 부상자 속출 이들은 일사불란 광주시내 진입 파출소 방화 광주시민 모이자 경상도 군인이 광주시민 죽이려 왔다 임산부 배 가르고 여고생 유방 대검으로 도려내 죽었다 이것은 그들이 광주시민 격분을 선동하기 위한 자작극 계엄군 실탄 지급도 안된 상황에 이미 광주시민 사망자가 나온걸 어떻게 해석 할거요
@@yohanchoi3623 위키백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참조: 여타 보수 인사들의 입장 - 2007년 3월, 우파 언론인이며 조선일보 원로 기자인 조갑제는 5·18 당시 현장을 취재했었다. 조갑제는 자신이 직접 5·18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과 정황에 따른 논리적 판단을 토대로 5·18을 '반공 민주화 운동'이라 평가했고[99], 일부 우파에서 제기한 북한 인민군 개입설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러한 주장이 결국 좌파들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100] 이에 대해 북한 인민군 개입설을 주장한 탈북자 단체 및 이에 동조하는 우파 세력이 조갑제를 비난하는 등의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조갑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101] 광주시민 수십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기자 수백 명들이 취재한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5·18을 취재했던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었다. 전국 비상계엄령으로 해안과 항만이 철저히 봉쇄됐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확인했을 것이다. 대대 규모 북한군이 개입했으면 무장시민으로 말미암아 국군 사망자가 7명에 그쳤을 리 없다. 탈북자 증언은 전언에 불과하며, '자기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김일성이 5월 18일 자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를 투입했다고 해도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5월 20일 이후일 것인데, 5월 20일부터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됐다. 한편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2004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대표로서 지낸 박근혜는 2007년 8월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고 5·18은 "민주화 운동"이라며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라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만들어 광주의 희생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102]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온 국민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숨져간 민주 영령들"이라고 평가했다.[103] 전두환 역시 2016년 6월 자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대부분의 군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보안사령관으로서 5·18 시기 조선인민군 개입에 대한 정보 보고는 전혀 없었고 그러한 증거도 없었다며 조선인민군 개입설은 지만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일축했다.[82]
신군부가 1980년 5월 16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였는데, 유일하게 전라도 광주에서만 비상계엄령을 무시하고 시위가 계속되었군. 군부에서는 시범케이스로 광주에서의 시위를 엄하게 다스렸어. 군대 갔다온 군인들은 잘 알겠지만, "군에서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완전히 작살난다" 는 것을... 계엄군의 광주시위진압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상상이 된다!! 시위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터지니까 동정어린 시민들이 합세하여 5.18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나중에는 시위대도 총과 버스등으로 무장하니,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어찌보면 역으로 "군부가 정권잡도록 도와준 결과" 가 되어버렸네!! 안타깝다!! 민주화운동이니 뭐니하는 미사여구 구호뒤에 이러한 사실들이 숨어있었구나!!
00:51 시민군 박병준 수술
03:30 망월동 구묘역 희생자 유골 신묘역 이장
07:04 YH무역 노동자 故 김경숙의 어머니
09:06 부마항쟁
10:10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12:20 민주화 요구 가두시위, 서울역 회군
14:10 민족민주화 대성회
16:30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20:50 전남대 정문, 공수부대와 첫 충돌
27:10 전교사 교훈집, 공수부대 투입 이유
27:30 정웅 31사단장 인터뷰
28:14 故 안병하 도경국장 체포
31:15 故 김경철 희생자 증언
35:10 이경남(당시 11공수대원) 증언
36:35 故 정방남, 무등고시학원 구타 후유증으로 사망
37:53 공수부대 미도호텔 난입, 신혼부부 구타
40:30 택시기사 이정휴 씨, 구타 후유증
42:40 故 박종화, 구타 후유증 사망
46:39 80년 5월 19일 오후 5시, 구 공용터미널 시위, 대검 자상 증언
50:30 故 손옥례, 가슴 자상으로 사망52;10 광주고교 앞 최초 발포, 김영찬(첫 발포로 부상)
53:47 공수부대 성폭행 사례
26:16, 26:27 북한 특수군과 지리산 남로당 잔당들이 광주시민과 계엄군을 싸움 붙이려고 던졌던 돌멩이가 바닥에 잔뜩있는 장면.
@@johndough1062 너 빨갱이지??
박병준님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마음이 뭐라고 표현이 안나옵니다
하..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위대한 그대들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나는 당시 동신중 3학년인데 기차로 부산을 경유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 와는데 광주역에 도착하니 파출소 소장이 손목에 도장을 찍어 주고 누가 잡으면 보여 주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다.
왜곡 보도된 언론으로 진실을 알지 못했다. 넘 죄송합니다.
사촌 매형도 현재 망월동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신다.
반가워요 전 동명여중 3년생이었어요. 남동생이 동신중 1학년이었고요.
그대들이 흘린피는 바다가 되었고
그대들이 흘린땀은 땅이 되었으며
그대들의 영혼은 하늘이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광주를 지켜냈다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와 시인인가봐요.😮
@@아르테미-c6i 아닙니다 저희 집안에도 아픔이 많아서 애도하는 글을 몇글자 적어보았습니다
전 대구인으로 가슴이 더아프고 죄송해용 ㅠㅠ
광주시민여러분 존경합니당~~!!
6ㆍ25전쟁 일으켜 남한 국민들 300만명을 죽인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남한 전복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젊음을 김일성에게 바치고 군대 가지않은 리인영 림종석등이 전라민국 새끼들이지 김일성이 뒈지면서 평생 후회한 일이 있었는데 오씹팔때 남침 못한것이였다
@@xxkjc6977 그렇게 독재가 좋으면 북한이나 중국으로 처 가시던지 ㅋㅋ 민주화 못하게 안기부가 간첩몰이 하면서 탄압하던 논리를 그대로 세뇌당해서 떠드는게
꼭 김일성 찬양하는 북한이나 핑핑이 찬양하는 중국 조선족과 다를바가 없네 ㅋㅋ 혹시 조선족?
한국에서 꺼져주시길 독재가 좋으면 중국으로 처 가서 공산당 찬양이나해 시진핑핑단들아 이쯤이면 님 존나 빨갱이임
어디서 감히 민주공화국에서 간첩몰이를 하며 독재미화를 ㅅㅂ 퉤
자랑스러운 광주5 18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자유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주시민여러분 미얀하고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 유공자
명단을 법으로 막은 이유는 무엇일까?
@@whos4972 광주. 5. 18. 민주화 유공자만. 법으로 막은게 아니고. 모든 유공자들은 법으로 막아 놓았어요. 공부좀 하시고 댓글 올리세요
@@산딸기-l5j5.18은 폭동. 좋게 봐줘야 김대중 석방운동 정도.
@@whos4972 아직도 명단 ㅇㅈㄹ 하네 ,,😂😂
@@HBJR87 병신 육갑하고 자빠졌네 🤣
세상에 ..23년전 영상이네요
민주주의 를 위해 싸우시고 돌아가신 선생님들께, 먼 곳에서 행복하세요,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당시의 광주 투입 공수부대원들이 군생활이었어서 본인도 피해자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칼과 곤봉으로 저지른 살인과 폭력은 그리고 성폭행은 명령체계인 군의 속성과 상관없는 악행이자 본인의 폭력성과 악함이 발현된 경우로 볼수밖에 없다.
죄를 뉘우쳤던 말던 그 죄악을 저지른 당시 군인들은 죽어서 가장 고통스런 지옥에 갇혀서 영원히 고통 받으셨으면 합니다.
심심풀이로 저수지에서 멱감은 아이들도 총살했음.
그러게말입니다. 전두환은 그렇게까지 하라고 안 했습니다
전두환 손자인 청년 전우원군 양심폭로를 계기로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려구요.
광주시민 여러분 존경합니다 울산에서ᆢ
당시 성폭행은 물론 무력 폭력을 가한 공수부대놈들은 지금이라도 색출해 모두 사형시켜야 될일이다. 정말 너무했다. 죽여 마당하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지금 들어도 가슴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우리세대는 4,19세대는 아니다.
광주 ,6월항쟁의 세대 이다.
우리는 치열했고 순수했고 열심히 민주주의위하여
싸웠다.무서워 화염병은 못던저도 보도불럭깨서 던졌고
넥타이 매고도 돌 던졌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것이다. 지금은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백골단에 두들겨 맞고 무서워도 싸웠던 일이 조금이나마
지금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그 노력이 정의 라고 역사가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지금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이 세상은 당신이 주인이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마음것 펼쳐라 .
이런세상만들려고 치열하게 싸운것 아니냐.
지금의 주인공들을 믿고 우리는 무대뒤로 물러나야 한다.
나이 들어서 추한것중에 하나가 미련이다
걱정의 포장한것들이 미련이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믿어주고 선배라는 사람들은 물러날때 이다.
슬퍼서 한참울었네요
잔인했던 두환이와 졸개들
닥치는대로 죽이고 찌르고 곤봉으로 내리치고 인간이길 포기했던 공수부대들 맘편히 못지내지?만행을 생각하면
전두환은 성폭행하라고 안 했습니다. 광주를 통제하라고 했을뿐... 공수부대원 관리 못한 부대 책임자와 개인 일탈인데 그들을 찾아서 처벌해야 합니다.
서울의 봄..영화보고 자료 찾아보다.. 오월항쟁까지 왔네요..
이런일이 지금 정부에서 일아나고 있으니..걱정입니다
★40 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아프다! ~노인 전문 요양병원 에서!
대구살고있는 50대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5 18민주화운동 아니였으면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군부독재국 가였겠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518폭동 사기치지마라
"광주5.18때문에 군부가 권력을 잡은 것" 같은데??
외국에서는 이렇게 분석할꺼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 고맙고 미안합니다.
자화자찬
저런 세상도 있었다는걸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알고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자기자신만 아는사회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되서.
드디어!
문민시대가.
됐는데.
한국지리선생님께서.
광주사태얘기를.
하시길래.
대모하는 대학생들뿐아니라.
길가는.
사람들을.
다!
총으로.
뚜뚜뚜뚜
난사를해서.
광주가.
피바다가.
됐었다고.
고개숙여 ~~잊지않겠습니다
이제 배운다.. 감사와 죄송..
2000년대 방영했던 다큐네요...
지금 2019년.
이제서야 알게 되어지는 당시의 상황들.
너무 너무 늦었지만 아직 결코 늦지 않은 책임자 처형할것을 강력히 원합니다.
슬프디 슬프다~
우째 이런일이~~
미국의 경우 형량에 대한 거래도 하는 것 같은 데 내란에 적극 가담한 군 간부는 단두대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스스로 내란 음모 전과정을 자백하는 자는 감형을 해주고 적극 신고하는 군 장교 하사관 병사들에게 포상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고 , 다시 그런 꿈을 가진 넘들을 향한 예방효과가 있었을 텐데 다 풀어줘버리니 군 간부들이 거짓말하고 아직도큰 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살고 있지
세상에!
임신8개월된여자가.
총소리가나서.
남편걱정되서.
버스정거장
에서남편을기다렸는데.
이.여자기빨간색원피스를
입고있었는데.
멀리서보니까.
교련복인줄알고.
군인이쏴버렸다드만요.
그래서.
이.여자가죽었는데.
세상에!
애가.뱃속에서숨을
펄떡뻘떡쉬드랍니다.
돈 내 물을맏지말라 눈이어두어서 보이지않아서 욕심은 죄를놓고 사망에이른다 모든사람들은진실이 승리다 죄를범하면 죄값을 치룬다 회개하지않으면 특히 하나님께서 다 생각동 행동도 거짓도 모르는 것이없다 사람은 모른채하지만 영으로는다않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게, 굳이 건물 안에 있는사람들까지 그랫어야만 했는지.. 같은 종족으로서 저 군부대들이 인간잡종들인지 의심이된다..
짐승들이다
답답한마음이네요.그당시 대학1학년때인데 안타갑고 지금도 괴롭지만 전혀관계없는놈들 추려내어 양아치없는 진정한 애국열사들 기립시다.
저 성우분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다. 지금 살아계시나요?
그당시 여자 유방 난도질 유언비어라고 언론에서 매일 보도하고 삐라 뿌리고 했는데 사실 이었네…
공수부대 사람들이 아직까지 살아서 숨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소름돋고 끔찍하다ᆢ
@@kim_won_hee 가짜야
@@kim_won_hee 오씹팔은 개대중이 주도하고 북한특수부대와 광주시민이 일으킨 폭동이야
@@xxkjc6977 진짜지
@@xxkjc6977 증명못하지
@@kim_won_hee 사실임
도대체 무자비한 특수부대 공수 특전단
군인들 누가 용서 할수 있을까.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제목 알려주실분?
1970년에 프랑스에서 재개발로 자신이 가꾼 정원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투쟁하다가 숨진 할머니가 있어요 그녀를 추모하고자 만든 곡으로 제목이 누가 할머니를 쏘았지?
@@이형명-t9q Qui a tué grand maman 감사합니다~~
80년 여고 2 광주시민인데 이런 소식은 몰랐어요 넘 무심했네요 죄송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은 진실보다는 왜곡
포장으로 권력의 시녀인듯
권력의 똥개
광주 북한군침투 감성팔이
조작
요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 하고,
폄하 하고요. 전라도 사람이라면서 가짜 뉴스로 돈벌이에 이용하는 자들
제지 해야 합니다.
그들의 팩트 체크해서 반박 영상 많이
올려주세요..
6ㆍ25 전쟁 일으켜 남한 국민들300 만명을 학살한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남한 전복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군대 가지않은 리인영 림종석 등이 전라민국 새끼들이지
52:46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유해진씨가 연기했던 실제인물입니다..
jihun kim 실려가시는 분이요? 아니면 서있는 분이요?
오모나.
가상인물이고요 닮긴 했네요ㅎㅎㅎ
24분47초에 어느 장소죠?
금남로 5가에서 금남로 1가로 가는 길이요.
전두환 노태우 행동이 딱 공상당 일본놈 스타일 이였네.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나 광주 시민들 얼마나 놀랬을까? 여태껏 악마들 시나리오에 속은게 화가난다. 대학생 아이들 엄마라서 넘 아프다 ㅜㅜ 늦게 알게되서 너무 미안합니다.
49:10~49:54
"19살 먹은 여자분이 있는데 칼로 두군데에 자상이 있는데 첫번째는 유방상부 앞부분이였고 두번째는 뒤쪽에서 찔렸습니다. 환자는 호흡곤란으로 실려왔습니다. 그리고 검사한 결과 폐에 혈액이 차가지고 수술했던 경운데 아마 제 생각에는 앞에서 먼저 찌르고 넘어졌을때 뒤에서 찌르지 않았는가 싶은데."
와~ 나쁜 놈들
518 때 광주 진압부대로 투입된
공수부대 양심도 없는 놈들
무도한 군부독제 전두환 오살을 해도 속이 편하지 않을것이다 또한 생사을 모르고 지금도 찾지못하는 행불자는
어찌할것인가.
그래가지고.
그.여자엄마가.
그.얘기하면서울었답니다.
민정당의원님들.
내가당한일당해봐야.
내.심정알겁니다.
하고.
전두환이 사망해서 다시 보러왔습니다
굥이 안 이런다고 어찌 보장하나? ㅠ
맞습니다. 반드시 끌어내려야합니다
42년 만에 사죄한 광주 버스 기사...끌어안아준 경찰 유족 / YTN 이건 어덯게 해석을 해야하나요? 우리생명만 귀한겁니까?이 경찰관 네분은 과연 광주에 무슨죄를 지었길래 고인이 되어야 합니까? 광주시민 여러분 답좀 해보세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배용주(71)씨는 광주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던 34세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27세의 군 법무관이었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4)가 배용주씨에게 내린 사형선고는 배씨는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바꿔놓았다.
배용주씨는 32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시국사범 꼬리표 때문에 오랜기간 보안당국의 감시를 받아야했다.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광주 동구 노동청 부근 내리막길에서 시민군을 태우고 이동하다 경찰 저지선을 들이받아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했다.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에 넘겨진 배 씨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 판결을 내린 1심 재판관이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27세의 김 후보자였다. 판결은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2개월 복역 후 사형 집행이 면제돼 출소한 배 씨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뒤 재심을 청구해 1998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배용주 씨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였을 뿐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판사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더군요"라고 했다." - 크리스천투데이 윤혜진 기자 | 입력 : 2017.06.08 16:11
북한 인민군보다 잔인한 계엄군 공수부대
김일성도 그정도는 아니다. 더 잔인해
김일성 이엇다면 광주시민 몰살
정신좀 차리지
북으로 꺼지든지 공산당 세끼야
이것만이 국가의핵심이지! 다른데의 문제는 가치를 논하지도마라! 오직 이것만 문제시하라! 국가는!
어떤 짐승것이 반대 를 눌렀네.
너는 죽을 때 곱게 못 죽을것을 확신한다!!
오월 영령이시여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광주학살 만행 무자비한 구타.
중력절을 맞아 이곳에 왔습니다 ㅜㅜ
육군본부 화장실 청소병
왜 사니?
@ᄋᄋ 너 탕.탕.절 아니? ㅋ ㅋ
일본군 장교 여대생 끼고 술쳐먹다 뒤진 날
삼계탕 쏘가리 매운탕 먹는 날 ㅋ
헉!! 아줌마들이 80년때 19살이셔서 아줌마들이 계엄군들한테 성폭행당하셨다고요 ㅡㅡ? 아이고 세상에 힘내세요 괴로우실때는 기도를 하셔야 해요 유ㅇㅇ아줌마 힘내세요 !!기도하세요!!
돌에 맞으면 눈 실명 안돼나요?
광주시민들이여 이재명 당선시켜라!
국민의짐들은 전두환을 사랑한다!
무더운 날씨에
연일 계속되는 출동으로
쩌증나는 상황인건 알겠는데
그 짜증을 왜 죄없는 시민들
구타 하는걸로 푸는건지 ㅠㅠ
환장하것네
518광주사태때
교도소를 5번씩이나탈취작전
전라도 무기고를 4시간동안44개동시탈취
전남도청에TNT 3톤설치
아세아 자동차 습격 300여대의 장갑차 버스탈취
이런것을 광주시민이 했다
공수부대기
부녀자 배를 가르고 얘기를꺼냈다
처녀 가슴을 도려냈다
이런게 광주사람
공수부대가 했다고 믿는가
역사 왜곡 북한군 침투 의혹은 왜 입에 재갈물리고 입도 벙긋못하게하는가
실지 광주 사태를 TV토론 하자
그래서 북한군침투 시시비비를 가리자
지만원 박사모시고
3공수 다 찾아내서
처벌해야한다
모든 문제의 발화점?다른 이슈들은 다 집어치우고 오로지 이것만
돌에 맞으면 어덯게 될까요?네
김대중이 전두환을 용서하는 동안 이런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사면 안시키고 계속 무기징역으로 처넣었어야 했다. 이상한 김대중. 지가 뭔데 용서를 해? 피해자들한테 용서를 빌지 않았는데!
눈물이남니더!?
한국군 배트남전 어떻게 싸워나 배트남국민 70세 넘는분들에게 물어보세요 광주와 비슷한점 많아요 왜 군인과 국민 서로 총칼을 들고 싸워야 했는가 한국군이 왜 악랄하게 싸워야했는가 정말 비슷한점 많아요
정신차리세요. 할말많지만
정산차려라 아재야 아님 빨리 요단강 건너던가
영화 몇십도인 휴전선에서 경계근무를 쓰는 국군들은 뭐가 되남! 진정 국가의부름을 받고 철통같은 경계근무를 쓰고있는 국군들이 할말이라고 짐작이 됌니다만, 여긴 아무것도 아닌가요?
왜 일어나야만 했는가? 간단합니다. 우발적이라 그런겁니다. 정부는 부마사태처럼 공수부대 위력으로만 진압할려고
시위장비도 없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공수부대가 얻어맞고 쓰러지자 과격해진겁니다. 그게 전라도 쪽의 지역성과 결합해서 더더욱 과격하게 맞받아치고 경찰과 공수부대원도 죽자 총격 시작, 시민들도 무기고에서 무기로 무장해서 전투..이게 답이지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뭐 딴게 있을 수 있습니까? 최규하정부가 광주사람 고의로 다 죽일 이유가 뭐가 있나요?
그딴 논리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동네 저수지에서 놀던 초딩은 대체 왜 죽였음?
유공자 호소인들의 일방적 주장은 들을 만큼들었다.
이제 궁금한 것은
사태 종료 후, 사라진 수 많은 무기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또 유공자 호소인 중에서, 북한으로 넘어 간 넘이 몇명인가를 말해 봐라.
16:45
세상에!
어떤여자가.
그때.청문회나와서.
말했는데.
어떤군인이자기를보더니.
웃으면서.
너도.젖하나짜리고싶냐?
그랬다네요.
어후!
5월축제평생일용할양식을얻고현재도그걸먹고사는이들이많다구가행사에상석에자리잡고유공자대우잘받고
그때 따라?
어머니, 슬프고도 죄송핮니더
군인은 자기동요나 전우가 다치거나 죽게되면 순간 본인도 모루게 악랄하게 변하게되어 있읍니다 그래서 배트남전과 비슷한점 많아요 그렇게 하지않으면 본인도 죽어요 살기위해서 악랄하게 되어갑니다
그렇죠? 옆에서 시위하던 친구.가족.이웃이 다치거나 대검과 진압봉에 맞어 죽고, 공수부대 집단발포로 비무장시민들이 죽으면? 허긴, 글을 쓰는 꼴을 봐서는 도망가서 미얀마처럼 비굴한 삶을 살아갈 군상이군요.
@@3000Sync 님같은 전라도사람땜 아직도 전라도는 계속 욕을 쳐먹는거임 ㅋㅋㅋ뭐만하면 가족운운하는거보면 님은 고아원출신인듯 하여튼 전라도는 ㅉ
어휴시발 군인은 명령에 움직인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이었으면 명령 거역할수있냐 시발그런상황이 안왔으니 거역할수있다하겠지
그럼 어린이들은 왜쏠까요? 놀이터에서 놀고있는아이 ㆍ저수지에서 놀고있는아이 임산부 는 화풀이인가
@@세인-t3m 배트남전 다녀온분께 들어보세요 실전에서 어떻게 했는지 여기설명 해봐야 전혀모루는사람 많음 이해가 안될것입니다
여하튼
김일성의 전쟁살인죄는 누가 책임지나?
개처량한 세상.. 피 맺히는 음악..ㅋ
이게 재미있냐 미친
국민????
말을 안들으면,,,,,,,
xxx까지 합세를
그래 왜 XXX XX XXX XXX? 어?
조국?징집?
시위가아니4ㅗ폭동5ㅜ준이구먼
민주당에 주리를 틀고 앉아 자신들의 이해득실만을 따지고 있는 소위 주류세력들이 이나라의 민주와
정치에 발목을 잡고 있다.
능력과 경험과 양심과 행동력과 악마를 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재명계가 이 나라를 위해 민주당권을 잡아야 한다.ㄹ
그래서 당대표로 투표합니다
응원합니다
이재명이가 젤 나쁘죠
5월폭동
신군부 쿠테타내란군 폭동 (1997년 대법원 판결)
오일팔 유공자나 까 특전사 대원들이 무슨 죄났냐 사과할라고 해도 망월동 오일팔 묘지 참배하고 사죄한다는데 왜 막는데
5월사태는서부활극영화한편이다
폭력으로사격을유도한측면도있는것같다계엄군이여기말려발포한것
거꾸로 생각하고싶지?
첨부터 끝까지 영상봤으면그딴소리 안할텐데 편견에 사로잡힌 너의 생각이 딱해보인다
5.18 광주 기억은 가슴 아픈 역사 그러나 사망자 78%가 카빈총에 희생된 진실을 밝혀야 당시 계엄군은 M16을 휴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특전사 소속 3, 7, 11공수여단은 M16을 사용했지만, 육군 소속 20, 31보병사단은 카빈을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5/18 기간 동안 보병 20, 31사단이 시민군과 교전하거나 양민들을 학살한 사례가 여러 있는 걸 보면 카빈 총상 사망자라고 해서 '시민군이 쏴 죽였다'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5/18 직후 사망자들의 시신들을 부검했을 때 대부분 시신들은 심하게 부패하거나 훼손돼있었고 시신 내에 탄환이 남아있지 않은 게 많아서 '대충' 눈으로만 보고 검시조서를 작성했답니다. 게다가 보안사에서 사망자들의 사인을 조작했다고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워원회의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dewjade4897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요 광주사태 주축 파견 부대가 특전사 보병 사단이 왜 진압을 하나요 그리고 시민군이 광주시민 왜 죽어요 북한 특수군이 광주시민 죽이고 계엄군에 뒤집어 쓰워 선동한 거고 계엄군은 처음 전남대 파견할때 실탄 지급도 안했는데 운동권도 아닌 정체불명 애들 계엄군에 돌던지고 계엄군 부상자 속출 이들은 일사불란 광주시내 진입 파출소 방화 광주시민 모이자 경상도 군인이 광주시민 죽이려 왔다 임산부 배 가르고 여고생 유방 대검으로 도려내 죽었다 이것은 그들이 광주시민 격분을 선동하기 위한 자작극 계엄군 실탄 지급도 안된 상황에 이미 광주시민 사망자가 나온걸 어떻게 해석 할거요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리이심?? 탄흔으로 볼 때 총알이 M16 게 맞구만 ㅋㅋㅋ
@@yohanchoi3623 위키백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참조: 여타 보수 인사들의 입장 -
2007년 3월, 우파 언론인이며 조선일보 원로 기자인 조갑제는 5·18 당시 현장을 취재했었다. 조갑제는 자신이 직접 5·18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과 정황에 따른 논리적 판단을 토대로 5·18을 '반공 민주화 운동'이라 평가했고[99], 일부 우파에서 제기한 북한 인민군 개입설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러한 주장이 결국 좌파들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100] 이에 대해 북한 인민군 개입설을 주장한 탈북자 단체 및 이에 동조하는 우파 세력이 조갑제를 비난하는 등의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조갑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101]
광주시민 수십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기자 수백 명들이 취재한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5·18을 취재했던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었다.
전국 비상계엄령으로 해안과 항만이 철저히 봉쇄됐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확인했을 것이다.
대대 규모 북한군이 개입했으면 무장시민으로 말미암아 국군 사망자가 7명에 그쳤을 리 없다.
탈북자 증언은 전언에 불과하며, '자기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김일성이 5월 18일 자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를 투입했다고 해도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5월 20일 이후일 것인데, 5월 20일부터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됐다.
한편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2004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대표로서 지낸 박근혜는 2007년 8월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고 5·18은 "민주화 운동"이라며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라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만들어 광주의 희생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102]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온 국민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숨져간 민주 영령들"이라고 평가했다.[103]
전두환 역시 2016년 6월 자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대부분의 군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보안사령관으로서 5·18 시기 조선인민군 개입에 대한 정보 보고는 전혀 없었고 그러한 증거도 없었다며 조선인민군 개입설은 지만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일축했다.[82]
용공사상을가진 광주대학생 또는
광주사람이 김일성을 찬양하고
조직적으로 무기고 탈취해서 광주공산화무장폭동을 일으켯음
이 무장폭동 못막앗음
지금쯤 정은이 고사포임
이런뎃글질도 못함
신군부가 1980년 5월 16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였는데, 유일하게 전라도 광주에서만 비상계엄령을 무시하고 시위가 계속되었군.
군부에서는 시범케이스로 광주에서의 시위를 엄하게 다스렸어.
군대 갔다온 군인들은 잘 알겠지만, "군에서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완전히 작살난다" 는 것을...
계엄군의 광주시위진압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상상이 된다!!
시위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터지니까 동정어린 시민들이 합세하여 5.18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나중에는 시위대도 총과 버스등으로 무장하니,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어찌보면 역으로 "군부가 정권잡도록 도와준 결과" 가 되어버렸네!!
안타깝다!! 민주화운동이니 뭐니하는 미사여구 구호뒤에 이러한 사실들이 숨어있었구나!!
광주는 대통령이 너무 하고싶은 군인이 대통령을 법절차가 아닌 무력으로 찬탈하고자. 군인이 폭동일으켯고. 계엄령내리자. 그 군인폭동에 광주는 법지키고.자유 달라고. 저항하다 학살됨.
군인이 불법으로 정권찬탈 목적하에. 쿠데타.계엄령 내렷는데.거기에 저항안하고 가만 있는게 더 이상한 국민아닌가? 이미 2달전부터 계획된 계엄령과.충정작전명으로 무력진압 훈련까지 햇는데.
광주사태가 아니고 광주민주화운동이지요
@@은빛호수-z3h폭동이지
뭔 개소릴까? 왜 그날 정당한 항쟁이 전대갈이 정권을 잡도록 도와 줬다는거냐?
그때람한방소이란여의도의 인민잘소은 방소이라녓어 ,!?
개인이이런 잔안한한짓을할수는없죠 국가라는게 인민한사람의 생며을보존할수없을때는 이미 존재이유는 없 죠 푸랑스의 레조 드뇌르처럼 존재이유를 이미 상실한거죠ㅠ
익산ㅍ여산 7공수의 유격훈련레 죽을 ㅂ 뻔해습니다
김대중 이제 지겹다 그이름
데모하먼서 총기탈취하여 계엄군과 총질한 것은 정말 자랑스럽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앞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무기고 털어 각자 무장하여 군경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