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들도 울고 간다는 사수전투는 1분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전투로 요청에 의해 만들었습니다. 부족한 내용 댓글로 남겨주세요. (모두 바다를 건넌 게 아닌 글필하력이 지휘하는 요동도행군이 압록강 하구로 간 것 등등) 3차는 모두 아는 내용으로 연남생과 형제들이 등장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자료가 많이 없어 당나라 사서를 열어 확인하는데 역시나 적당한 왜곡이 있어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지휘관이 죽은 기록은 거짓없이 작성되었고 연개소문 역시 죽은 이유가 기록되지 않아 어렵습니다.
뭔 아무 의미 없는 소리 합니까? 예식진은 의자왕을 체포하여 소정방에게 바친 인물인데, 그런 역사가 없어도 어차피 백제는 멸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연개소문이 아들을 셋이나 낳아서 내분이나 일으켜 고구려 망하게 했으니, 아들을 그저 하나만 낳았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텐데....라고 하십시오.
@@gyusikkim7553 뭐 역사에 if란 없지만, 백제가 어차피 망할 나라였다면 어떻게 멸망직후 부흥운동이 그렇게 격렬히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당군 12만명을 단독으로 막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계속해서 국왕이 몽진하여 청야작전과 산성중심으로 지연전을 펼칠 수 있고, 전쟁이란게 혼자하는게 아니듯이 왜국과 고구려의 지원도 노려볼 수 있었겠죠.
사수전투는 기록이 부실해서 정확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단 군사수는 당이 고구려군보다 많았기에 어떤 전략으로 승리했는지 자세히 기록이 되었다면 대첩으로 불리우는 전투로 되었을것 같네요 사수전투이후로 2차고당전쟁이 끝났고 당나라는 고구려에 단념했으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고 세아들들의 내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경극으로 연개소문이 나오는데 사악한 악마로 묘사하며 설인귀가 그를 막을수 있다고 나오는데 그만큼 중국에서는 지금도 연개소문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다고 봐야하죠
당시 요수는 지금의 란하 중류 2 개의 승덕 부근을 흐른 물길이였고 그곳이 요동이였으며 사수는 요수 중류 동남쪽 곧 요동의 동남쪽 지점이다. 당시의 요수를 지금의 요하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한 식민사관.동북공정 맹종질이고 반역사.반민족행위다. 결국 사수전투는 한반도 평양 부근이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 작은승덕 남쪽 지점이다
연개소문 북경 정벌은 허구입니다. 고당 대결을 흥미있는 작품으로 지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만든 소설입니다. 즉 당태종과 연개소문의 대결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거기서 연개소문이 북경까지 진출하여 대결하는 이야기로 발전한 겁니다. 연개소문은 당과의 대결에서 평양에서만 지휘하고 거기를 떠날 일이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요. 연개소문이 당군을 잘 막아내어 당태종의 유언대로 더이상 고구려 공격은 그만하자고 하는 와중에 연남생에 당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욕망이 일어나버렸는데, 연개소문의 여타 행적은 고구려 멸망과 간접적으로는 연결이 되어도 직접 연결은 안된다고 봅니다. 그저 아들을 하나만 낳지, 괜히 셋이나 낳아서 서로 싸우게 하여 내분을 일으켜 나라가 망하게 하였는지...
연개소문이 역사에도 역적이나 효웅으로 불릴수 있는 이유죠 정치는 미흡할수 있어도 군무만큼은 진짜 뛰어나기는한 모양이죠 소정방도 김유신덕에 간신히 살아서 도망가고요 근데 연개소문하면 떠오르는 저 다섯자루 칼은 진짜 뭘까요? 경극에서 표현되기는 하는데 여타 기록에도 있는 걸까요? 싸울아비급 쉰 떡밥일지, 아님 진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재수생들도 울고 간다는 사수전투는 1분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전투로 요청에 의해 만들었습니다. 부족한 내용 댓글로 남겨주세요. (모두 바다를 건넌 게 아닌 글필하력이 지휘하는 요동도행군이 압록강 하구로 간 것 등등)
3차는 모두 아는 내용으로 연남생과 형제들이 등장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자료가 많이 없어 당나라 사서를 열어 확인하는데 역시나 적당한 왜곡이 있어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지휘관이 죽은 기록은 거짓없이 작성되었고 연개소문 역시 죽은 이유가 기록되지 않아 어렵습니다.
재수했으면 울면서 볼 뻔 😂 계필하력으로 배웠었는데 글필하력이래서 살짝 헷갈. 근데 거란, 계란, 글안 여러가지로 읽으니... 글필이든 계필이든...
방효태와 13 아들 모두 몰살이라 알아서 깜놀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준서-z8n 계 결 글 설 등으로 읽히는데 계는 맺을 계, 글은 부족이름 글 상관은 없지만 아무래도 글이 맞는 것 같아서요 철릭의 글필부족
이렇게 힘들게 연개소문이 지켰는데 아들들이 개트롤을 ㅅㅂ..
역시 기록을 직접 읽는거 보다 영상 하나 보는게 더 편한거 같아요
휴 숙제 끝 몇 분짜리 줄이고 줄여서 압축하는데 미칠뻔 ㅠ 완성도가 너무 부족해 맘에 들지 않음
내 마음 최고의 채널다운 최고의 영상입니다. 😊
꼭 복 받으세요 제가 기도드리겠나이다 ㅎㅎ 고마워요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하고 많은 적들이 쳐들어와도
내부의 적을 없애고 , 국민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똘똘뭉쳐 일사천리로 싸운다면
결국엔 이기고 물리칠거다.
진짜 예식진만 아니었으면 국제정세가 완전 달라질 수도 있었겠네
뭔 아무 의미 없는 소리 합니까? 예식진은 의자왕을 체포하여 소정방에게 바친 인물인데, 그런 역사가 없어도 어차피 백제는 멸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연개소문이 아들을 셋이나 낳아서 내분이나 일으켜 고구려 망하게 했으니, 아들을 그저 하나만 낳았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텐데....라고 하십시오.
그건 좀... 의자왕이 잡힌 공산성 가서 보면 난공불락의 성은 아님
@@gyusikkim7553 뭐 역사에 if란 없지만, 백제가 어차피 망할 나라였다면 어떻게 멸망직후 부흥운동이 그렇게 격렬히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당군 12만명을 단독으로 막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계속해서 국왕이 몽진하여 청야작전과 산성중심으로 지연전을 펼칠 수 있고, 전쟁이란게 혼자하는게 아니듯이 왜국과 고구려의 지원도 노려볼 수 있었겠죠.
인조처럼 남쪽으로 도망가려다, 남쪽 백강구 (만경강or동진강)가 막혀서 공산성으로 도망간거. 인조도 원래 강화도로 도망가려했다가 청나라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튀튀
다만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분위기는 달랐겠죠 이 계기로 대부분 항복하고 후일을 도모했으니 선생님 마음도 이해갑니다
중국동부지역은 고백신의 영역임
당은 시안근처 국가임
사수전투는 기록이 부실해서 정확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단 군사수는 당이 고구려군보다 많았기에 어떤 전략으로 승리했는지 자세히 기록이 되었다면 대첩으로 불리우는 전투로 되었을것 같네요
사수전투이후로 2차고당전쟁이 끝났고 당나라는 고구려에 단념했으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고 세아들들의 내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경극으로 연개소문이 나오는데 사악한 악마로 묘사하며 설인귀가 그를 막을수 있다고 나오는데 그만큼 중국에서는 지금도 연개소문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다고 봐야하죠
맞아요 기록만 뚜렷하면.. 이렇게 지휘관이 많이 죽은 전쟁이 보기 드물죠
투석기로 얼음을 깨서 도강중인 당군을 수장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사수전투 패배가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후 고구려 공략을 포기하고 연남생의 망명요청도 고민하다가 받아줌.
다 떠나서 전쟁의 신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당시 요수는 지금의 란하 중류 2 개의 승덕 부근을 흐른 물길이였고 그곳이 요동이였으며 사수는 요수 중류 동남쪽 곧 요동의 동남쪽 지점이다.
당시의 요수를 지금의 요하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한 식민사관.동북공정 맹종질이고 반역사.반민족행위다. 결국 사수전투는 한반도 평양 부근이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 작은승덕 남쪽 지점이다
사수전투는 너무도 치욕적이라
죄다 왜곡해서 작성햇지 신라 역시
스스로의 역사서 조차 없는거 보면
그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기에 만들지
않은것 같음
연개소문이 말은많지만. .. 김유신죽기 하루전가지만살았어도 역사가 어찌될지몰랏지 .....
나와있는거보면 김유신vs연개소문 이렇게단둘이매치햇으면 김유신이 100전100패햇을듯 ..
이때 방효태 12아들 모두 죽었고 연개소문은 오히려 지금의 북경까지 점령했습니다.
연개소문 북경 정벌은 허구입니다. 고당 대결을 흥미있는 작품으로 지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만든 소설입니다. 즉 당태종과 연개소문의 대결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거기서 연개소문이 북경까지 진출하여 대결하는 이야기로 발전한 겁니다. 연개소문은 당과의 대결에서 평양에서만 지휘하고 거기를 떠날 일이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방효태 자식 죽인 건 인정 하지만 북경은...
고구려를 멸망시킨건 사실상 연개소문임
의도한 건 아니지요. 연개소문이 당군을 잘 막아내어 당태종의 유언대로 더이상 고구려 공격은 그만하자고 하는 와중에 연남생에 당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욕망이 일어나버렸는데, 연개소문의 여타 행적은 고구려 멸망과 간접적으로는 연결이 되어도 직접 연결은 안된다고 봅니다. 그저 아들을 하나만 낳지, 괜히 셋이나 낳아서 서로 싸우게 하여 내분을 일으켜 나라가 망하게 하였는지...
첨 알았ㄴ..
기록 자체가 부실해서 교과서에 내용을 담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ㅠㅠ
계필하력? 글필하력?
글필 계필 설필 등으로 말하죠
사수 전투...들어는 본것 같군요
기록이 흐릿해 알려지지 않았죠
연개소문이 역사에도 역적이나 효웅으로 불릴수 있는 이유죠
정치는 미흡할수 있어도
군무만큼은 진짜 뛰어나기는한 모양이죠
소정방도 김유신덕에 간신히 살아서 도망가고요
근데 연개소문하면 떠오르는 저 다섯자루 칼은 진짜 뭘까요?
경극에서 표현되기는 하는데 여타 기록에도 있는 걸까요?
싸울아비급 쉰 떡밥일지, 아님 진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경극에서 나오는 걸 따와서 만든 것 같은데 기록이 전혀 없으니 답답합니다 ㅠㅠ
연개소문? 이름이 일본식 이름인데.. 아님 중국식 이름인가? 을지문덕 도 마찬가지... 일본역사인가? 혹시 모두 일본인이 아닐까?
한자 이름이 어떻게 일본식 이름임?ㅋㅋㅋㅋㅋ
성씨도 다르고 일본에 저런 이름 들어본적도 없고 이런 일뽕 역사왜곡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일본도 크게 보면 예맥계 후손이니 고구려 백제 2자 성씨를 쓰고 있는 거지. 우리가 오히려 중국 영향 많이 받아서 성1자 이름2자
신라는 삼국통일 주체국 에서 제외 되는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