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조차 철령을 요동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그 당시의 고려 사람들이 주원장이 말하는 철령을 강원도 철령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문주, 고주, 화주, 정주의 위치에 대한 현 사학계의 위치 비정을 토대로 고려 사람들이 고려 국경 철령을 강원도 철령으로 인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문주, 고주, 화주 정주의 위치 비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임을 의심해야 올바른 결론이 아닐까요? 고려 사람들이 국경을 언급하면서 문주, 고주, 화주, 정주에서 공험진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정확한 경계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천산산맥-길림합달령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고려 국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급격하게 비스듬히 그려지는 국경선이 아니라,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완만하게 비스듬히 그려지는 국경선으로 추정해야 더 합리적입니다. 그렇게 보아야 고려와 명의 국경 분쟁이 자연스럽습니다.
압록강이 요수를 뜻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압록강이 요수를 뜻하고 철령위가 요양 북쪽 요수 넘어 약간 위쪽을 뜻한다면 딱히 모순이 되는거 같지 않는데요. 명나라는 너네는 압록강 즉 요수를 경계로 하지 않았느냐. 근데 왜 철령을 탐내느냐. 이거고. 고려는 철령도 우리 영토였다 주장하는 거고. 일단 첫째로 오해설 착각설이 좀 나이브해요. 국제관계에서 그것도 정식 사신을 보내서 만났다면서요. 근데 명칭 오류로 서로 오해했다? 당시 문명화된 선진 국가들의 공식 외교인데... 너무 시티콤 같아요. 불가능하다는 건 아닌데, 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명나라가 철령위를 요동에 세우는데 그걸 몰랐고 강원도에 세우는줄 알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좀 이상한게. 일단 주원장이 한말로 봐서 명나라는 요동에 철령위를 세우려고 한다는 거잖아요. 그걸 전제로 보자면. 당시 상황이 그럴만한 상황이었다는 소리에요. 고려가 긴장하고 항의한거 보면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세운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당사자인 고려는 그걸 모르고 한반도 깊숙히 강원도에 세우는 줄 알았다? 앞뒤가 안 맞죠. 국제관계의 당사자인 양국이 서로 다른 상황인식을 했다는 거잖아요. 한쪽은 요동근처, 한쪽은 한반도 중부 그것도 동쪽으로 끄트머리. 어휘 표현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시티콤이지만, 당사자인 양국이 상황인식을 다르게 했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워보여요. 셋째로 당시 국제 상황에 대한 추론을 해봐도 명나라가 건국한지 얼마 안된 상황인데, 여진족 남은 세력도 있는 상황에서 몽골이나 여진이나 싸웠던 요동이나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 중부 동쪽 끄트머리에 와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려면 두만강쪽 동쪽으로 빙둘러 내려와야 하는 위친데 너무 쌩뚱 맞고 어려워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 불가능하다거나 논리적으로 절대 안된다기 보다, 역사적맥락이나 당시 상황을 추론해 볼 때 너무 어려워보인다는 거죠. 너네는 압록강을 경계로 했는데 왜 철령을 탐내느냐는 주원장의 사료랑 교차해서 보면 명나라가 강원도에 영향을 행사하려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워보여요. 따라서 강원도가 철령위라는건 근거가 희박하다고 보고요. 서로 착각했다는 것도 너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압록강을 요수로 비정한다면 몇가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양측의 주장하는 영토 분쟁이 범위가 합리적이에요. 결국 영토 싸움인데 현재의 압록강이나 요동 철령위로 생각해서 따져보면 양측이 주장하는 영토에 대한 견해 차이가 너무 커요. 명나라 입장에서는 요동은 못준다 너네는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란 소리가 되는데 그 사이에 있는 엄청 큰 땅은 이야기 없죠. 상식적으로 요동은 못준다 너넨 그 아래로만 차지해라. 이게 맥락에 맞잖아요? 그런데 요동을 요구한 상대에게 한참 아래로 한반도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거니까. 좀 너무하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도 안맞죠. 고려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한데. 현재 압록강이라 치면 한반도만 차지하고 있던 국가가 한참 위로 올라가서 요동땅을 내놓으란 소리잖아요? 지도를 보면 그 사이 땅이 얼마나 광대한데... 너무 양심없는 요구죠. 그리고 요구한다면 철령만 요구할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넒은 영토를 포함하여 같이 말해야죠? 영토분쟁인데 그 사이에 있는 그 큰땅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철령만 표현하여 요구한다는게 너무 부자연스럽습니다. 전 이렇게 현재의 압록강과 요동의 철령으로 비정하면 양측의 땅에 대한 견해 차이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요. 이게 외교적 협정으로 요구할 수준일까요? 전쟁을 해야 가능한 수준같아요. 외교적으로 이런 대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건 아닌데 매우 부자연스럽죠. 예를 들어 우리가 독도 분쟁할 때 독도가 우리땅이다 아니다 일본 땅이므니다 정도로 다툼을 하는거지. 독도가지고 싸우는데 일본이 경상도까지 영토로 주장하지는 않잖아요. 요하와 철령을 두고 서로 경계를 마주 본 상태에서 너넨 요하(압록)까지다 vs 아니 우리 영향권은 조금 더 위쪽(철령)까지다 이게 분쟁의 범위로 합리적이죠. 양측이 서로 요구할 만하고, 지킬만한 수준이니까요. 두 번째로는 철령위 설치의 근거가 더 합리적이에요. 상대방을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곳에 설치를 해야죠. 당시 고려는 철령위 설치에 상당히 긴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압록강 한참 북서쪽 요동에 설치한다면 고려 입장에서 영토의 경계와 한참 떨어진 중국 내부에 구역이 정비된건데 딱히 필요이상으로 민감해질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명나라 입장에서도 견제대상인 고려와 한참 멀리 떨어진 제국 내부에 구태어 별도의 구역을 설치할 필요성이 다소 떨어져보여요. 철령이 고려와 가까운 지역이어야 새로운 구역의 설치의 근거가 생기는 거죠. 혹 철령위가 고려가 아니라 여진족 때문이라거나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금나라는 멸망한지도 한참되었고 애초에 그들 중심지가 베이징 쪽이었고 해서 그들 견제를 위해 요동에 구태어 새로운 구역을 설치하기엔 좀 이상하구요. 그런 목적이라면 여진이 활발히 남아있는 만주 더 내부에 설치하는게 맞고, 고려가 철령위 설치에 긴장하고 외교사절까지 보낸거보면 고려를 타겟으로 하는게 맞아보여요. 그럼 고려를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위치가 철령이라는게 합리적인 해석이죠. 그리고 그 합리적인 이유가 설명되려면 철령이 고려의 인근이어야 하는거구요. 따라서 주원장이 말하는 압록은 현재 요수를 의미한다고 보는 게 조금 타당성 있게 들려요. 별개로, 그렇다고 한다면 압록, 요수, 패수 이런게 갑골문 발음이 같고(가라?) 점차 중원문명과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압록의 위치가 우리강역이 늘고 줄어듬에 따라 달라졌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해석도 좀 유력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셨는데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요수는 일명 압록”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고려의 서쪽이 요수에 이른다고 되어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렸고, 고려가 한때 요하까지 진출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고려사에서 고려가 명에 철령위와 관련된 표문을 올릴 때 쌍성총관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화주의 옛 두 성을 요동의 함주로 부근 쌍성이라 속여서 쌍성총관부가 세워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 속에서 요동의 쌍성과 쌍성총관부가 세워진 화주의 옛 두 성을 구분하고 있으므로 쌍성총관부는 요동에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이 처음 세운 철령위는 철령성에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고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현재의 압록강 넘어 요동 일부가 고려의 영토였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고려 입장에서는 국경과 맞닿아 있는 곳에 철령위가 세워졌다는 것인데 당연히 견제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정황상으로만 보면 고려가 생각한 철령위도 요동이 맞고, 요하 지역을 되찾기 위해서 요동정벌을 단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다만 고려사의 내용이 이와 상반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영상과 같이 설명드리게 되었습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긍의 고려도경에서 '상거한다'라고 언급한 요수는 요하가 아니라 곧 당시 대릉하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수"란 멀~리 떨어져 있는 강이라는 뜻으로 그보다 이후 삼국유사가 쓰인 시기에 고려에서는 요하를 요수, 일명 압록으로 불렀습니다. 요컨대 고려가 거란과 국경 라인을 접했던 "압록"으로 인식된 요하와 별개로 요수라는 강의 명칭은 부르는 대상과 시기에 따라 위치가 변화하였습니다.
'백랑수(白浪水)와 황암수(黃嵓水)라는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몇 리(里)를 흐른 곳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니 이것이 바로 요수(遼水)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영토》 '백랑 황암 두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 강이 얕고 폭이 좁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거란 요하의 근원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이 강은 다시 수리를 가서 합쳐져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를 요수(遼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백랑수는 곧 대릉하(大凌河)다' 《성경강역고, 권3》 백랑수=대릉하=대릉하의 하류=요수
1000명 넘으신거 축하드립니다 현재 학계는 서쪽은 여전히 함경도 철령 동북쪽으로 길주든 공험진으로 올라가버린 해괴한 지도를 교과서에 그리고있죠 ...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미 한번뒤집어지고 토론무지하고할텐데 복기대교수님이하 인하대연구진들이 고려국경선 연구한지도 10년가까이 일텐데 변화가 없다는게 안타깝습니다 고려의 국경선을 제대로 알려면 1차사료인 요사금사를 가장먼저 참고해야 제대로된 국경선을 찾을수있습니다 그이후에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쓴 고려사보다 원사 명사가 참고할필요가있습니다 이미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고려국경을 한반도로 가둬버리고 한백겸 정약용조차 오류를 범하고 일제에 의해서 철저히날조왜곡되고 이병도등이 비판도없이 그냥 수용해서 지금에 이릅니다 일제의 날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것은 제생각이아니라 이분야에서 10년가까이 연구한 복기대교수님이하 인하대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고려초부터 요사금사에서는 철령위전에 이미 한반도의 실사푸를 압록강이아니라 만주요양의 맑을압록의 요양근처를 경계선으로한다는것은 여러차례 나옵니다 강단은 1차사료인 요사금사등 있는그대로의 역사서도 의심하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1차사로도아니고 자신들의 주관으로쓴 고려사는 비판1도없이 수용하는것이 자신들 유리한것만 취하는데 그들이 과연 환단고기등을 위서로 취급할수있을지의문입니다 이렇게해서는 한국사는 발전없이 정체되고 우리는 지금까지의 왜곡된역사를 사실인양 배울수밖에없습니다
고려의 최초 강역은 송대의 사서를 참고해야합니다. 거란과의 장기전에도 잘 버텼는데 결국 몽골에 의해서 상당히 위축되었다 봐야합니다. 송대의 사서에서는 고려의 강역의 거리가 남북보다 동서가 더 길다고 되어있습니다. 동서의 거리를 보면 재려면 연해주에서 북경까지 다다를 수 있는 거리입니다.
고려 국경을 논증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 중에 가볍게 철령위 위치로 스타트를 끊으셨군요. 잘 보았습니다. 단, 고려사, 특히 지리지의 내용들은 사료가 만들어진 시기와 명분의 특수성을 숙고하여 우리 측 기록이라고 무조건 따를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앞선 주변 사료들과 철저한 비교 검증의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료와 연구서들을 추합하여 더욱 활발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영상들이 많이 나와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는 고려사에서 고려 화주의 옛 성 두 개를 요동의 함주로 부근의 쌍성으로 모호하게 주청했다는 내용을 보고, 고려의 쌍성은 요동에 있다고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사에서 말하는 금을 캔 요동의 화주와 쌍성은 요동의 함주로 부근의 쌍성으로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이 기대하신 바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vivivi3865 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심양,개원이 만주 지역인데, 철령은 함경도 동해안 촌구석에 잇었다라는게 억지스럽고, 고려가 자신의 국경이라고 말하는 공험진이 이미 두만강 북쪽 700리에 위치하는데, 쌍성총관부와 철령이 동해 바닷가에 있었다면, 고려가 주장하는 공험진은 엉터리밖에 안되는 주장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쌍성총관부가 함경도에 잇었다라고 오해하는 순간 역사는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경을 놓고 시비가 붙엇는데, 명은 만주 지역을 놓고 말하고 있고, 고려는 함경도 지역을 놓고 말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지경입니다. 국경이 애들 소꿉놀이 하는 장도 아닐진데, 쌍성(화주)을 함경도로 이미 정해 놓고 생각하니, 이치에 맞는 답이 나올리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국경을 논하는데 있어, 문주, 고주, 화주, 정주, 함주, 공험진이 언급된다면 이 도시들은 전부 국경 부근 도시여야 할 것인데, 화주를 함경도 영흥으로 비정한다면, 역사적 논란거리가 없는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었는데, 그러면 국경이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뻣어 있게 되는데, 그것이 명과의 국경논쟁거리가 될 수 잇다고 보아야 하는지, 참 난감한 상황 같습니다. 너무 모순이 많은 상황이네요... 그리고, 만주 고지도를 보면 화주가 엄연히 만주 지역에 존재하는데, 한반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화주를 영흥이라고 마음대로 설정하고 그 에 맞춰서 역사를 해석할려고 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지경으로 보입니다.
전 앞으로 잘되실것 같습니다. 원래 남들이 안가는 길이 길입니다. 영상 오래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된것도 아닌 불과 100년전에도 조선을 두고 청일전쟁할때 시모노세키조약 앞두고 요동을 일본 줄때 조약체결 전권대사 이홍장이 황제 광서제한테 송나라 명나라 이래 요동은 본디 조선의 땅이라 해서 일본 주자 했는데 다 역사에 기록되 있음에도 정작 한국사람만 반도사관에 생각이 고정되서 부여 고구려 고려는 잊고 진한 마한 변한의 남쪽 3한의 후예가 되버린 슬픈 현실!!! ㅠ 전번에도 댓글 올렸지만 지도에 그림이 너무 맘에 듭니다. ㅎ 진짜를 말해줘도 본인은 아니라는데 ㅎㅎ 그래서 교육이 식민사관이 무섭죠. 저는 중동에서 멀리 응원합니다. 요즘은 한자를 안쓰니 제가 어떤 댓글에 중동에서 응원한다고 했더니 그 댓글이 하이라이트 댓글이되니 여러 사람들이 제 댓글에 부천 중동이냐 하더군요 ㅋ 이게 현실입니다. 역사서에 정확히 기재 했음에도 똑같은 지명이 주변에 많고 시간이 흐르면 그 지명을 후대사학자가 평가하기에 따라 국경이 정해진것 같습니다. 어쩌면 압록강 두만강도 그런 의미자나요? 이더운 중동 두바이가 부천중동이 되는 기가막힌 마법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철령위가 요동에 있었던건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이 실효지배 하려 했던 영토는 강원도 철령 이북이 맞을겁니다. 고려사 우왕 14년에 명군 1000여명이 강계쪽으로 진입해 역참 등을 설치하려다가 실패했고, 이후에 다시 한번 사신단과 선발대를 보내 시도했으나 최영에게 공격받아 일부가 전사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명 입장에선 철령 이북이 쌍성총관부, 요양행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당시 쌍성총관부는 이성계 부자 덕에 수복했으나, 요양행성은 여전히 원의 영토였죠. 그래서 주원장은 요양행성과 함께 구 쌍성총관부 지역, 그러니까 강원도 철령의 철령관까지를 먹으려고 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랴오닝의 테링시도 자기 도시 이름의 유래가 강원도 철령이라고 소개하고 있고요. 아마 요동에 철령위가 설치된건 고려에게 공격당해 고려 영토 내 설치가 실패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seongmin663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명사에서 주원장이 고려가 그동안 압록강을 경계로 하다가 철령을 경계로 한다고 꾸짖는 내용이 있는데요. 이는 철령이 압록강 이북에 있어야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라서요. 실제로 압록강 이북에 철령이 세워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고려와 명이 말하는 철령위 위치가 달랐다는 정약용 선생님의 주장을 따라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
수고 많이 하셨는데.. 철령위 건을 이렇게 끊어서 이야기 하면 전체 스토리가 애매해지게 마련입니다. 명이 철령위 설치에 대하여 고려에 통보하자 고려 우왕은 사신(박의중)을 명에 보내 고려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고려의 국경을 설명할 때,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고려에 속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철령 북쪽의 요동에 있는 지역명이 거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국경에 대한 명과의 토론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조선 태종은 김첨을 사신으로 명에 보내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조선령"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습니다. 김첨은 이 공로로인해 태종으로부터 치하를 받습니다. 세종 대에도 외교문제로 명에 간 사신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공험진이 어디에 있습니까? 두만강 북쪽700리! 고려 우왕 때, 조선 태종 때, 조선 세종 때, 똑같이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우리 땅이라 주장했고 받아들여 졌는데.. 조선 건국이래 명과 전쟁을 한 기록은 한 건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국으로 받들던 명으로부터 강원도 철령 이북의 땅을 두만강(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지 뺏어왔을까요? 그리고 세종이 보낸 사신이 명에 가서 "철령(원산 옆)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우리 땅이다" 주장한다구요? 이상한 주장이지요? 이미 우리 땅이 되어 있는 곳을 우리 땅이라 주장하고, 두만강 바깥 700리 지역을 우리 땅이라 우기고... 합리적이고 종합적으로 생각하시면 지금 설명한 내용이 이상함을 자각하시리라 믿습니다. 화주의 쌍성을 설명하면서 그 지역을 함경도로 확정하면서 얘기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geoishistory 문제의철령이 원산 옆에 있다는 것이 주류 역사학계의 주장이니 철령을 그렇게 비정하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이상하리만치 꼬이고 꼬여서 우리 국민들이 사실을 자꾸 추궁하지 않으면 거짓된 역사를 수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 합리적 사고로 역사를 공부해서 기존 학자들의 비상식적인 이론을 바로 잡는데 힘을 보태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성의있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고려사에 쌍성총관부의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었군요. 민족사학 한다는 분들이 이런걸 미리 확인하고 견해를 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 집안 경원부와의 관계만 정리하면 여말선초 동북계 문제는 설명이 완성될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곧 구독자 천명 되겠네요 ㅎㅎ 미리 축하드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최탄이 반란 일으켜서 갖다바친 동녕총관부가 서북도에 20여년 있다가 요동으로 옮겨갔는데, 원명정권교체기에 명에서 착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요동지역 일부도 실효지배한것도 고려왕이 요동지배권을 갖는 심왕의 작위에도 있어서 주원장이 압록강 운운한거고 고려는 원 통치기에 데인게 많아서 안변이라고 지레짐작한거같고요 오늘도 재밌는 주제 감사합니다 1000명 구독 미리 축하드립니다!
지극히 온당한 추론이라고 여겨집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그리고 추신으론 마지막에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보태자면 역사의 시각은 다양할수 있는것이고 당시의 쓰여진 1차사료나 유물등으로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에는 열려있는 자세와 시각으로 주장 및 토론 할수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흑백으로 여기고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니 너는 악이다 라는 편협한 태도로는 역사학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됩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서로 건설적인 토론을 하여서 서로의 학설 및 주장에 타당성과 논증을 보태는게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우리가 배운대로의 엉망이인 현 주류강단사학과 조금 달리 바라보는 변화가 있네요. 물론 다소 해석의 문제가 없어보이긴 하지만요. 좀 더 많은 사료와 개연성으로 고증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역사는 그냥 양보나 논리적 기계적 중립이 생기는 부분이 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명사에 고려와 경계를 짓는 부분을 분명히 현재의 발해만 위쪽으로 비정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와 일부 조선 초기 문서에까지도 압록강의 압자가 서로 다릅니다. '압'은 두개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고요, 고려와 명, 청나라의 지도에까지도 압자는 실사 자를 변으로 한 현재의 북한 경계의 압록이 아닌 현재 발해만 위쪽에 있는 압록을 지칭했습니다. 차차 더 나아지겠죠. 현재는 이런 주장마저도 무시되고 터부시 되니까요. 하지만 점점 더 합리적인 기록들과 그걸 바탕하는 개연성 있는 증거들이 나오고 연구되어지고 있으니까 점점 나아지겠죠. 서서히 올바르게 바로잡아 가면 될 일입니다. 너무 더디고 느리지만요... 그게 조선 후기 친명 원리주의자인 노론에서부터 일제 강점기를 이어 현재까지 역사를 놓고 보면 몇 백년이 되는 아픈 우리 역사가 있는 거니까요.
철령의 위치를 강원도로 비정함은 한국 사이비사학의 최대 코메디임.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고 사료적으론 확실하게 틀렸음. 어떤 미친 놈이 우리 국사책 철령 위치에 중요한 관하를 세우겠나?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철령위가 강원도라는 건 아무리 보수적?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말도 안되요.
중국 요녕성 선양(심양)에 철령 비석이 있음. 최소 저기가 쌍성총관부가 있었던 자리이고 중국의 역사 왜곡이 있었다면 더 북쪽일 가능성이 있는거구요,
주원장조차 철령을 요동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그 당시의 고려 사람들이 주원장이 말하는 철령을 강원도 철령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문주, 고주, 화주, 정주의 위치에 대한 현 사학계의 위치 비정을 토대로 고려 사람들이 고려 국경 철령을 강원도 철령으로 인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문주, 고주, 화주 정주의 위치 비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임을 의심해야 올바른 결론이 아닐까요? 고려 사람들이 국경을 언급하면서 문주, 고주, 화주, 정주에서 공험진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정확한 경계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천산산맥-길림합달령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고려 국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급격하게 비스듬히 그려지는 국경선이 아니라,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완만하게 비스듬히 그려지는 국경선으로 추정해야 더 합리적입니다. 그렇게 보아야 고려와 명의 국경 분쟁이 자연스럽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압록강이 요수를 뜻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압록강이 요수를 뜻하고 철령위가 요양 북쪽 요수 넘어 약간 위쪽을 뜻한다면 딱히 모순이 되는거 같지 않는데요. 명나라는 너네는 압록강 즉 요수를 경계로 하지 않았느냐. 근데 왜 철령을 탐내느냐. 이거고. 고려는 철령도 우리 영토였다 주장하는 거고.
일단 첫째로 오해설 착각설이 좀 나이브해요. 국제관계에서 그것도 정식 사신을 보내서 만났다면서요. 근데 명칭 오류로 서로 오해했다? 당시 문명화된 선진 국가들의 공식 외교인데... 너무 시티콤 같아요. 불가능하다는 건 아닌데, 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명나라가 철령위를 요동에 세우는데 그걸 몰랐고 강원도에 세우는줄 알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좀 이상한게. 일단 주원장이 한말로 봐서 명나라는 요동에 철령위를 세우려고 한다는 거잖아요. 그걸 전제로 보자면. 당시 상황이 그럴만한 상황이었다는 소리에요. 고려가 긴장하고 항의한거 보면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세운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당사자인 고려는 그걸 모르고 한반도 깊숙히 강원도에 세우는 줄 알았다? 앞뒤가 안 맞죠. 국제관계의 당사자인 양국이 서로 다른 상황인식을 했다는 거잖아요. 한쪽은 요동근처, 한쪽은 한반도 중부 그것도 동쪽으로 끄트머리. 어휘 표현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시티콤이지만, 당사자인 양국이 상황인식을 다르게 했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워보여요.
셋째로 당시 국제 상황에 대한 추론을 해봐도 명나라가 건국한지 얼마 안된 상황인데, 여진족 남은 세력도 있는 상황에서 몽골이나 여진이나 싸웠던 요동이나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 중부 동쪽 끄트머리에 와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려면 두만강쪽 동쪽으로 빙둘러 내려와야 하는 위친데 너무 쌩뚱 맞고 어려워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 불가능하다거나 논리적으로 절대 안된다기 보다, 역사적맥락이나 당시 상황을 추론해 볼 때 너무 어려워보인다는 거죠. 너네는 압록강을 경계로 했는데 왜 철령을 탐내느냐는 주원장의 사료랑 교차해서 보면 명나라가 강원도에 영향을 행사하려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워보여요.
따라서 강원도가 철령위라는건 근거가 희박하다고 보고요. 서로 착각했다는 것도 너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압록강을 요수로 비정한다면 몇가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양측의 주장하는 영토 분쟁이 범위가 합리적이에요. 결국 영토 싸움인데 현재의 압록강이나 요동 철령위로 생각해서 따져보면 양측이 주장하는 영토에 대한 견해 차이가 너무 커요.
명나라 입장에서는 요동은 못준다 너네는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란 소리가 되는데 그 사이에 있는 엄청 큰 땅은 이야기 없죠. 상식적으로 요동은 못준다 너넨 그 아래로만 차지해라. 이게 맥락에 맞잖아요? 그런데 요동을 요구한 상대에게 한참 아래로 한반도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거니까. 좀 너무하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도 안맞죠. 고려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한데. 현재 압록강이라 치면 한반도만 차지하고 있던 국가가 한참 위로 올라가서 요동땅을 내놓으란 소리잖아요? 지도를 보면 그 사이 땅이 얼마나 광대한데... 너무 양심없는 요구죠. 그리고 요구한다면 철령만 요구할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넒은 영토를 포함하여 같이 말해야죠? 영토분쟁인데 그 사이에 있는 그 큰땅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철령만 표현하여 요구한다는게 너무 부자연스럽습니다.
전 이렇게 현재의 압록강과 요동의 철령으로 비정하면 양측의 땅에 대한 견해 차이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요. 이게 외교적 협정으로 요구할 수준일까요? 전쟁을 해야 가능한 수준같아요. 외교적으로 이런 대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건 아닌데 매우 부자연스럽죠. 예를 들어 우리가 독도 분쟁할 때 독도가 우리땅이다 아니다 일본 땅이므니다 정도로 다툼을 하는거지. 독도가지고 싸우는데 일본이 경상도까지 영토로 주장하지는 않잖아요.
요하와 철령을 두고 서로 경계를 마주 본 상태에서
너넨 요하(압록)까지다 vs 아니 우리 영향권은 조금 더 위쪽(철령)까지다
이게 분쟁의 범위로 합리적이죠. 양측이 서로 요구할 만하고, 지킬만한 수준이니까요.
두 번째로는 철령위 설치의 근거가 더 합리적이에요. 상대방을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곳에 설치를 해야죠. 당시 고려는 철령위 설치에 상당히 긴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압록강 한참 북서쪽 요동에 설치한다면 고려 입장에서 영토의 경계와 한참 떨어진 중국 내부에 구역이 정비된건데 딱히 필요이상으로 민감해질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명나라 입장에서도 견제대상인 고려와 한참 멀리 떨어진 제국 내부에 구태어 별도의 구역을 설치할 필요성이 다소 떨어져보여요. 철령이 고려와 가까운 지역이어야 새로운 구역의 설치의 근거가 생기는 거죠.
혹 철령위가 고려가 아니라 여진족 때문이라거나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금나라는 멸망한지도 한참되었고 애초에 그들 중심지가 베이징 쪽이었고 해서 그들 견제를 위해 요동에 구태어 새로운 구역을 설치하기엔 좀 이상하구요. 그런 목적이라면 여진이 활발히 남아있는 만주 더 내부에 설치하는게 맞고, 고려가 철령위 설치에 긴장하고 외교사절까지 보낸거보면 고려를 타겟으로 하는게 맞아보여요. 그럼 고려를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위치가 철령이라는게 합리적인 해석이죠. 그리고 그 합리적인 이유가 설명되려면 철령이 고려의 인근이어야 하는거구요.
따라서 주원장이 말하는 압록은 현재 요수를 의미한다고 보는 게 조금 타당성 있게 들려요.
별개로, 그렇다고 한다면 압록, 요수, 패수 이런게 갑골문 발음이 같고(가라?) 점차 중원문명과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압록의 위치가 우리강역이 늘고 줄어듬에 따라 달라졌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해석도 좀 유력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셨는데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요수는 일명 압록”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고려의 서쪽이 요수에 이른다고 되어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렸고, 고려가 한때 요하까지 진출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고려사에서 고려가 명에 철령위와 관련된 표문을 올릴 때 쌍성총관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화주의 옛 두 성을 요동의 함주로 부근 쌍성이라 속여서 쌍성총관부가 세워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 속에서 요동의 쌍성과 쌍성총관부가 세워진 화주의 옛 두 성을 구분하고 있으므로 쌍성총관부는 요동에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이 처음 세운 철령위는 철령성에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고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현재의 압록강 넘어 요동 일부가 고려의 영토였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고려 입장에서는 국경과 맞닿아 있는 곳에 철령위가 세워졌다는 것인데 당연히 견제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정황상으로만 보면 고려가 생각한 철령위도 요동이 맞고, 요하 지역을 되찾기 위해서 요동정벌을 단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다만 고려사의 내용이 이와 상반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영상과 같이 설명드리게 되었습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geoishistory 답변 감사합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서 '상거한다'라고 언급한 요수는 요하가 아니라 곧 당시 대릉하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수"란 멀~리 떨어져 있는 강이라는 뜻으로 그보다 이후 삼국유사가 쓰인 시기에 고려에서는 요하를 요수, 일명 압록으로 불렀습니다. 요컨대 고려가 거란과 국경 라인을 접했던 "압록"으로 인식된 요하와 별개로 요수라는 강의 명칭은 부르는 대상과 시기에 따라 위치가 변화하였습니다.
'백랑수(白浪水)와 황암수(黃嵓水)라는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몇 리(里)를 흐른 곳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니 이것이 바로 요수(遼水)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영토》
'백랑 황암 두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 강이 얕고 폭이 좁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거란 요하의 근원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이 강은 다시 수리를 가서 합쳐져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를 요수(遼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백랑수는 곧 대릉하(大凌河)다' 《성경강역고, 권3》
백랑수=대릉하=대릉하의 하류=요수
1000명 넘으신거 축하드립니다
현재 학계는 서쪽은 여전히 함경도 철령 동북쪽으로 길주든 공험진으로 올라가버린 해괴한 지도를 교과서에 그리고있죠 ...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미 한번뒤집어지고 토론무지하고할텐데 복기대교수님이하 인하대연구진들이 고려국경선 연구한지도 10년가까이 일텐데 변화가 없다는게 안타깝습니다
고려의 국경선을 제대로 알려면 1차사료인 요사금사를 가장먼저 참고해야 제대로된 국경선을 찾을수있습니다 그이후에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쓴 고려사보다 원사 명사가 참고할필요가있습니다
이미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고려국경을 한반도로 가둬버리고 한백겸 정약용조차 오류를 범하고 일제에 의해서 철저히날조왜곡되고 이병도등이 비판도없이 그냥 수용해서 지금에 이릅니다
일제의 날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것은 제생각이아니라 이분야에서 10년가까이 연구한 복기대교수님이하 인하대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고려초부터 요사금사에서는 철령위전에 이미 한반도의 실사푸를 압록강이아니라 만주요양의 맑을압록의 요양근처를 경계선으로한다는것은 여러차례 나옵니다
강단은 1차사료인 요사금사등
있는그대로의 역사서도 의심하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1차사로도아니고 자신들의 주관으로쓴 고려사는 비판1도없이 수용하는것이 자신들 유리한것만 취하는데 그들이 과연 환단고기등을 위서로 취급할수있을지의문입니다
이렇게해서는 한국사는 발전없이 정체되고 우리는 지금까지의 왜곡된역사를 사실인양 배울수밖에없습니다
고려의 최초 강역은 송대의 사서를 참고해야합니다. 거란과의 장기전에도 잘 버텼는데 결국 몽골에 의해서 상당히 위축되었다 봐야합니다. 송대의 사서에서는 고려의 강역의 거리가 남북보다 동서가 더 길다고 되어있습니다. 동서의 거리를 보면 재려면 연해주에서 북경까지 다다를 수 있는 거리입니다.
고려 국경을 논증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 중에 가볍게 철령위 위치로 스타트를 끊으셨군요. 잘 보았습니다. 단, 고려사, 특히 지리지의 내용들은 사료가 만들어진 시기와 명분의 특수성을 숙고하여 우리 측 기록이라고 무조건 따를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앞선 주변 사료들과 철저한 비교 검증의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료와 연구서들을 추합하여 더욱 활발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영상들이 많이 나와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는 고려사에서 고려 화주의 옛 성 두 개를 요동의 함주로 부근의 쌍성으로 모호하게 주청했다는 내용을 보고, 고려의 쌍성은 요동에 있다고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사에서 말하는 금을 캔 요동의 화주와 쌍성은 요동의 함주로 부근의 쌍성으로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이 기대하신 바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vivivi3865 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geoishistory 그렇군요. 그런데 모호하게 주청했더라도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갸우뚱하게 되네요. 아무튼 짧은 영상 안에 많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집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
주류사학은 고구려 패망 이후 역사를 중국에 거져 넘겨버렸습니다. 요동과 만주는 그냥 우리 역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려 멸망 후 대륙지배권을 상실한 거..공민왕때까지 대륙에서 활동했습니다
심양,개원이 만주 지역인데, 철령은 함경도 동해안 촌구석에 잇었다라는게 억지스럽고, 고려가 자신의 국경이라고 말하는 공험진이 이미 두만강 북쪽 700리에 위치하는데, 쌍성총관부와 철령이 동해 바닷가에 있었다면, 고려가 주장하는 공험진은 엉터리밖에 안되는 주장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쌍성총관부가 함경도에 잇었다라고 오해하는 순간 역사는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이 고려를 내정간섭하기 위해서 설치한 쌍성총관부가 중요 지역에 있어야 합리적일 것인데, 동해안 모퉁이 산골짜기에 있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구요.
국경을 놓고 시비가 붙엇는데, 명은 만주 지역을 놓고 말하고 있고, 고려는 함경도 지역을 놓고 말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지경입니다. 국경이 애들 소꿉놀이 하는 장도 아닐진데, 쌍성(화주)을 함경도로 이미 정해 놓고 생각하니, 이치에 맞는 답이 나올리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국경을 논하는데 있어, 문주, 고주, 화주, 정주, 함주, 공험진이 언급된다면 이 도시들은 전부 국경 부근 도시여야 할 것인데, 화주를 함경도 영흥으로 비정한다면, 역사적 논란거리가 없는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었는데, 그러면 국경이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뻣어 있게 되는데, 그것이 명과의 국경논쟁거리가 될 수 잇다고 보아야 하는지, 참 난감한 상황 같습니다. 너무 모순이 많은 상황이네요...
그리고, 만주 고지도를 보면 화주가 엄연히 만주 지역에 존재하는데, 한반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화주를 영흥이라고 마음대로 설정하고 그 에 맞춰서 역사를 해석할려고 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지경으로 보입니다.
전 앞으로 잘되실것 같습니다. 원래 남들이 안가는 길이 길입니다.
영상 오래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된것도 아닌 불과 100년전에도 조선을 두고 청일전쟁할때 시모노세키조약 앞두고 요동을 일본 줄때 조약체결 전권대사 이홍장이 황제 광서제한테 송나라 명나라 이래 요동은 본디 조선의 땅이라 해서 일본 주자 했는데 다 역사에 기록되 있음에도 정작 한국사람만 반도사관에 생각이 고정되서 부여 고구려 고려는 잊고 진한 마한 변한의 남쪽 3한의 후예가 되버린 슬픈 현실!!! ㅠ
전번에도 댓글 올렸지만 지도에 그림이 너무 맘에 듭니다. ㅎ 진짜를 말해줘도 본인은 아니라는데 ㅎㅎ 그래서 교육이 식민사관이 무섭죠.
저는 중동에서 멀리 응원합니다.
요즘은 한자를 안쓰니 제가 어떤 댓글에 중동에서 응원한다고 했더니 그 댓글이 하이라이트 댓글이되니 여러 사람들이 제 댓글에 부천 중동이냐 하더군요 ㅋ 이게 현실입니다.
역사서에 정확히 기재 했음에도 똑같은 지명이 주변에 많고 시간이 흐르면 그 지명을 후대사학자가 평가하기에 따라 국경이 정해진것 같습니다. 어쩌면 압록강 두만강도 그런 의미자나요?
이더운 중동 두바이가 부천중동이 되는 기가막힌 마법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콘텐츠 만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민족사학 주장만 일방적으로 들었었는데 양쪽 입장을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쉬워서 좋네요
이건진짜 중요한겁니다.잘 보고 갑니다
철령이 동해 바닷가에 있는데, 철령 동쪽 땅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요?
"원의 요양성에서 황제의 명을 받들어 강남에서 운반해 온 쌀 3000석으로 쌍성을 구호하게 하였다." (고려사절요) 함경도 촌구석 모퉁이에 무슨 구호 할 백성이 있다고 쌀 3000석이나 필요했을까요?
쌍성 거기 아닙니다. 双城区 중국에 버젓히 있습니다. 철령, 쌍성, 심양 다 지명 그대로 있는데 국내 학계는 왜 그러는걸까요?
억지로 끼워 넣어야 하니깐!!!
철령위가 요동에 있었던건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이 실효지배 하려 했던 영토는 강원도 철령 이북이 맞을겁니다.
고려사 우왕 14년에 명군 1000여명이 강계쪽으로 진입해 역참 등을 설치하려다가 실패했고,
이후에 다시 한번 사신단과 선발대를 보내 시도했으나 최영에게 공격받아 일부가 전사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명 입장에선 철령 이북이 쌍성총관부, 요양행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당시 쌍성총관부는 이성계 부자 덕에 수복했으나, 요양행성은 여전히 원의 영토였죠.
그래서 주원장은 요양행성과 함께 구 쌍성총관부 지역, 그러니까 강원도 철령의 철령관까지를 먹으려고 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랴오닝의 테링시도 자기 도시 이름의 유래가 강원도 철령이라고 소개하고 있고요.
아마 요동에 철령위가 설치된건 고려에게 공격당해 고려 영토 내 설치가 실패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seongmin663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명사에서 주원장이 고려가 그동안 압록강을 경계로 하다가 철령을 경계로 한다고 꾸짖는 내용이 있는데요. 이는 철령이 압록강 이북에 있어야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라서요. 실제로 압록강 이북에 철령이 세워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고려와 명이 말하는 철령위 위치가 달랐다는 정약용 선생님의 주장을 따라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
수고 많이 하셨는데.. 철령위 건을 이렇게 끊어서 이야기 하면 전체 스토리가 애매해지게 마련입니다.
명이 철령위 설치에 대하여 고려에 통보하자 고려 우왕은 사신(박의중)을 명에 보내 고려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고려의 국경을 설명할 때,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고려에 속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철령 북쪽의 요동에 있는 지역명이 거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국경에 대한 명과의 토론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조선 태종은 김첨을 사신으로 명에 보내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조선령"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습니다. 김첨은 이 공로로인해 태종으로부터 치하를 받습니다. 세종 대에도 외교문제로 명에 간 사신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공험진이 어디에 있습니까? 두만강 북쪽700리! 고려 우왕 때, 조선 태종 때, 조선 세종 때, 똑같이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우리 땅이라 주장했고 받아들여 졌는데.. 조선 건국이래 명과 전쟁을 한 기록은 한 건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국으로 받들던 명으로부터 강원도 철령 이북의 땅을 두만강(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지 뺏어왔을까요? 그리고 세종이 보낸 사신이 명에 가서 "철령(원산 옆)에서 공험진까지 그 이남은 우리 땅이다" 주장한다구요? 이상한 주장이지요? 이미 우리 땅이 되어 있는 곳을 우리 땅이라 주장하고, 두만강 바깥 700리 지역을 우리 땅이라 우기고...
합리적이고 종합적으로 생각하시면 지금 설명한 내용이 이상함을 자각하시리라 믿습니다. 화주의 쌍성을 설명하면서 그 지역을 함경도로 확정하면서 얘기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철령의 위치와 관련해서 고려 화주의 옛 쌍성을 요동 함주로 부근의 쌍성으로 속여서 바쳤다는 고려사의 기사를 부정할 수 없어 영상과 같이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geoishistory다음 기록을 참고해 주세요. "요동(遼東)의 쌍성(雙城) 및 화주(和州) 등처에서도 금을 캐게 했다." 『원사 식화지』
@@geoishistory 문제의철령이 원산 옆에 있다는 것이 주류 역사학계의 주장이니 철령을 그렇게 비정하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이상하리만치 꼬이고 꼬여서 우리 국민들이 사실을 자꾸 추궁하지 않으면 거짓된 역사를 수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 합리적 사고로 역사를 공부해서 기존 학자들의 비상식적인 이론을 바로 잡는데 힘을 보태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성의있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geoishistory 화주와 쌍성의 위치 비정이 틀렷을 수도 있겟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논쟁할 가치도 없습니다
요동의 철령위는 한자 그대로 현재 철령시가 되었습니다
maps.app.goo.gl/tyx7apnHh3aCAnye9?g_st=ic
주류사학회 보다는 강단사학회로 표현해 주시는게 맞을듯 합니다...강단사학회와 민족사학회로 구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쌍성총관부에대해서 연구하고있습니다
제가알고있는 내용을 공유하고싶습니다
메일부탁드립니다
저때 압록강 위치도 남겨진 지도에 따라 요하가 압록인 것도 있고 많이 틀림.. 어쨌든 위화도 회군은 요동 접수후에 하든가.. 성계가 잘못 했음
고려사에 쌍성총관부의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었군요.
민족사학 한다는 분들이 이런걸 미리 확인하고 견해를 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 집안 경원부와의 관계만 정리하면 여말선초 동북계 문제는 설명이 완성될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곧 구독자 천명 되겠네요 ㅎㅎ 미리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창기 때부터 친절히 알려주셔서 지금까지 콘텐츠 만들어가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 주시면 배워가는 자세로 보겠습니다 :)
비슷한 시기에 최탄이 반란 일으켜서 갖다바친 동녕총관부가 서북도에 20여년 있다가 요동으로 옮겨갔는데, 원명정권교체기에 명에서 착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요동지역 일부도 실효지배한것도 고려왕이 요동지배권을 갖는 심왕의 작위에도 있어서 주원장이 압록강 운운한거고 고려는 원 통치기에 데인게 많아서 안변이라고 지레짐작한거같고요
오늘도 재밌는 주제 감사합니다 1000명 구독 미리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의견 남겨주시면 잘 챙겨보겠습니다 :)
주원장의 공격 루트는 아이러니하게도
1300년전 공격 루트와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어이 젊은이 공부 좀 하시오. 쌍성총관부가 국내에 있었다고? 지나가던 소가 있겠다. 윤관의 동북9성은 두만강에서 700리 떨어진 공험진에 있었다고 세종실록등 여러 사서에 실려 있어 명확한데 참 뭔이야기인 지. 교과서를 보지말고 공부좀 하시길.
지극히 온당한 추론이라고 여겨집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그리고 추신으론 마지막에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보태자면
역사의 시각은 다양할수 있는것이고 당시의 쓰여진 1차사료나 유물등으로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에는 열려있는 자세와 시각으로 주장 및 토론 할수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흑백으로 여기고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니 너는 악이다 라는 편협한 태도로는 역사학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됩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서로 건설적인 토론을 하여서 서로의 학설 및 주장에 타당성과 논증을 보태는게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채널이 다양한 의견이 공유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뭐가 좀 이상한거 같네요..고려 서쪽 경계인 철령은 현 요하 동쪽 현 철령시 인근이고 동쪽경계는 공험진 선춘령으로 봐야 타당합니다.. 😊
철령위를 설치하면 그 도시 이름이 철령이어야 합당한 것이지 고개 이름을 갖고 철령위를 두었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서울에 위를 설치한다면 서울위라고 하지, 한강위, 또는 남산위라고 호칭을 할까요?
억지라고 밖에는 안 보입니다.
쌍성을 강원도 안변으로 비정하고 해석 하려니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듯 합니다
당대 사람들이 지명을 두고 헷갈렸다는건 수긍하기 어렵네요
직접적인 행정력이 미치지는 못했지만 고려는 두만강 이북까지
고려의 영토라 의식했고 조선도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평지로도 못 왔는데 산도 많고 강도많은 곳으로 함흥까지 왔다고 문헌도 좋지만 지형도 참고해 주시길
주원장 “ 우린 철령위 세울거야”
고려 “ 뭐? 강원도 안변까지 니들이 쳐들어 온다고?!!”
쌍성부터 잘 찾아보세요.
이 유튜브가 ㅈㄴ 좋은게 딱 중간임. 생각있는 역잘알들은 지지할거라 믿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유익한 채널이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길 바랍니다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배운대로의 엉망이인 현 주류강단사학과 조금 달리 바라보는 변화가 있네요. 물론 다소 해석의 문제가 없어보이긴 하지만요. 좀 더 많은 사료와 개연성으로 고증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역사는 그냥 양보나 논리적 기계적 중립이 생기는 부분이 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명사에 고려와 경계를 짓는 부분을 분명히 현재의 발해만 위쪽으로 비정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와 일부 조선 초기 문서에까지도 압록강의 압자가 서로 다릅니다. '압'은 두개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고요, 고려와 명, 청나라의 지도에까지도 압자는 실사 자를 변으로 한 현재의 북한 경계의 압록이 아닌 현재 발해만 위쪽에 있는 압록을 지칭했습니다. 차차 더 나아지겠죠. 현재는 이런 주장마저도 무시되고 터부시 되니까요. 하지만 점점 더 합리적인 기록들과 그걸 바탕하는 개연성 있는 증거들이 나오고 연구되어지고 있으니까 점점 나아지겠죠. 서서히 올바르게 바로잡아 가면 될 일입니다. 너무 더디고 느리지만요... 그게 조선 후기 친명 원리주의자인 노론에서부터 일제 강점기를 이어 현재까지 역사를 놓고 보면 몇 백년이 되는 아픈 우리 역사가 있는 거니까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만 앞으로의 고난이 미리 보입니다.. 무쇠의 뿔처럼 나아가시길 빌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명이 철령을 함경도가 맞는데, 만주 지역으로 오해했다는 것도 코미디 아닌가요? 그 정도로 철령이 듣보잡 도시인가요? 그 듣보잡을 두고 서로 싸운다는 것도 코메디구요.....
요동 정도는 되야 대충 맞지
안동도호부가 옮겨다니며 요동으로 간 것처럼...철령위도 결국은 과거 한반도내 원나라 영역을 포함한 말일 뿐인 거 같음....중국에 평양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대륙이 고구려 땅이었다고 억지 부리는 거와 동급
어디서 본건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와 왜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주장이 있더군요
서로 존중 이지랄..되도않은 소리해도 존중해야 하냐? 유튜버 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