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희 명창 주연 창극 - 이매창과 유희경의 슬픈 사랑이야기 [이화우 흩날릴 제] 제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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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окт 2024
  •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출연
    매창역: 장문희/ 유희경(촌은선생)역: 김도현/ 이원형역: 박건/ 허균역: 이충헌/ 주지스님역: 고양곤/ 옥단역: 박영순/ 월선역: 최삼순/ 매죽역: 최경희/ 난항역: 최현주/ 삼돌역: 박현영/ 서우관역: 김광오/ 김제현감역: 박추우 전주현감역: 김성렬/ 남원부사역: 유재준
    제2막 1장 - 기다림
    매창은 정인 유희경을 기다리다 점점 병들어 가고 꿈속에서 유희경을 만나게 된다
    제2막 2장 - 님을 찾아서
    유희경을 찾아 나선 매창. 결국 만나지 못하고 슬픈 노래만 부른다.
    제2막 3장 - 격포 바닷가
    격포 앞 쭈꾸미 잡이가 한참인 어부들을 만난 허균. 괜히 농을 걸어 매창의 절개를 확인한다.
    제2막 4장 - 새 인연
    -매창을 찾은 허균. 매창의 시와 굳은 마음에 탄복하여 시를 나누는 교우로 남게 된다
    제2막 5장 - 천리별곡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허균.
    제2막 6장 - 이화우 흩날릴 제
    병이 깊은 매창은 끝내 정인 유희경을 만나지 못하고 월명암에서 숨을 거둔다
    매창은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호가 매창이다. 계생이라고도 하였다.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다. [매창집(梅窓集)]의 발문을 보면, 그녀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매창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1) 그런데 그가 사랑했던 남자는 스물여덟 살이나 연상인데다가 천민 출신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이었다. 뭇 양반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이 높았던 매창이 신분이 높지 않았던 유희경에게 강하게 끌렸던 것은 천민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과 둘 다 시에 능해, 시로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유희경은 서경덕의 문인인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중인 신분을 가진 시인들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다. 여기에는 천민 출신 시인 백대붕(白大鵬)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유희경과 백대붕은 함께 시를 잘 짓기로 소문이 퍼져 ‘유백(劉白)’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매창도 이들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이 있은 지 15년이 지나 다시 만났지만, 너무 짧은 재회의 시간이었다. 함께 시를 논했던 유희경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이것은 이들에게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매창이 3년 뒤인 1610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유희경은 “정미(丁未: 1607년)에 다행히도 다시 만나 즐겼는데 이제는 슬픈 눈물 옷을 함빡 적시누나”하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름난 기생 매창과 천민 출신의 유희경. 두 연인은 신분과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 만남은 짧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품은 사랑은 시를 통해 평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시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창은 1600년을 전후하여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며, 다른 사람들의 문헌에도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허균(許筠, 1569~1618)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은 매창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였고, 이에 많은 문인들이 매창을 찾아 시를 주고받으려 하였다. 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된 인물들로는 권필ㆍ심광세ㆍ임서ㆍ한준겸 등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조선 최고의 시기(詩妓)로 부상하였다. 허균과 매창이 처음 만난 것은 1601년이었다. 그해 7월, 허균은 전운판관(轉運判官)이 되어 조운(漕運)을 감독하기 위해 전라도로 내려왔다. 이때, 비가 많이 내려 부안에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허균은 매창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상황이 허균의 문집에 남아 있다.
    매창은 허균을 통해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의 시도 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허난설헌은 꽃다운 나이인 27세(1589)에 요절하였고, 동생 허균은 친정에 남아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와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를 모아 [난설헌고(蘭雪軒藁)]를 만들었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난설헌고]의 초고를 전달하여 1606년(선조 39) 중국에서도 간행되게 하였다.5) 허균은 누나 허난설헌의 시를 아껴, 그것을 간행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매창은 이 책을 얻어서 읽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매창집]에 실린 시들 중 서너 편은 허난설헌의 시와 유사하다.6) 이외에 매창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한 인물들 중에는 한준겸(韓浚謙)과 권필(權韠)도 있었다. 한준겸은 매창에게 노래하는 기생 계생에게 주며[贈歌妓癸生]라는 시를 건넸으며, 매창을 당나라 중기의 이름난 기생인 설도(薛濤)에 비유하기도 했다. 권필은 매창에게 주는 시에 [여자 친구 천향에게 주며[贈天香女伴]라고 적을 만큼, 친근감을 표현하였다. 매창에게 있어서 유희경ㆍ허균ㆍ이귀ㆍ한준겸 등 당대의 문사들은 마음을 함께 나누며 시를 노래하는 친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매창의 삶은 너무 짧았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매창은 평소에 “나는 거문고와 시가 참말 좋아요. 이후에 내가 죽으면 거문고를 함께 묻어주세요.”라고 했으며, 그 말에 따라 그녀의 무덤에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전해진다.

Комментарии • 1

  • @김영주-i2r9c
    @김영주-i2r9c Год назад

    고등학교 때 배운 시조 한 수로 인해 25년 후 매창집을 알았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이렇게 매창을 주인공으로 한 창극도 보게 되네요. 영광입니다. 매창집을 읽으면서 얼마나 절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는지요. 이렇게 창극으로 만나게되니 눈물이 앞섭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