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분제도가 사라진 케이스를 뽑자면 스스로 폐지한 것이 아닌 외부의 요인(6.25전쟁)에 의해서 신분제도가 파괴되어 재가 되버린 케이스라 할 수 있음. 그 결과 모두가 흙더미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므로(여기까지는 북한도 해당되지만) 남한은 신분의식 특권의식을 할 여력도 없어져서 과거의 신분때문에 싸우지 않게 되버린 사례(반대로 북한은 모두 흙더미에서 시작했음에도 새로운 특권층(김씨일가)이 생겨서 오히려 신분제가 공고해짐)가 되버렸다.)
일제에 의해 노비에서 해방된 언급은 1도 없는게 추하네 상식적으로 왜 창씨개명 했을까? 강제라고? 안하면 처벌있다고? 응 팩트는 1930년 일본전국 선수 명단 전국 ~~순위에 떡하니 조선식 3글자 김이박씨 이름 있음. > 일본은 창씨개명을 "절대" 강요하지 않음. 그렇다면 창씨개명을 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이름도 성도 없이 걔쥡냔 언년이 개뚕이 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임. 한자 이름도 아니고, 성도 없고, 노비출신에 여진족까지..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가 아닌 "병합"의 일원에게 일본정부가 새로운 국민에게 일단 해결해야하는건 "이름의 부여"임. 이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으면서 양반의(즉 기존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이름과 유사하지 않게 이름을 갖는 방법은? 일본식 이름을 쓰면 되는거임. 그래서 수많은 평민 노비들이 아무 저항 없이 일본식 이름을 쓴거다. 예를들어 한국에 온 아프간 난민 압둘 무함 개똥이가 놀림을 받아. 그러면? 그냥 김명훈 이런 멀쩡한 한국식 이름을 주면 되는거임. 창씨개명? 개명이라고? 이름이 있어야 바꾸지;; 창씨부여가 맞는 표현임
조선 - 북한 군주국 - 비군주국(사실상 군주) 왕권 견재 기관 삼사 등 있음 - 견재 = 죽음 시각장애인을 음악계로 취업 알선 - 장애인은 김일성 민족이 아니다! 동서인 남인서인 소론노론 등 다당제 국가와 유사. - 북한 오직 조선노동당 일본에 유교 등 문화를 전파함 - 세계의 웃음거리
이 영상 구라입니다 신분제는 갑오개혁때 없애려했지만 고종이 개혁하려던 선비들 죄다 죽이고 갑오개혁은 실퍄로 끝났고요 일제가 와서 노비제를 없앴죠 원님재판도 없애고 법치국가 만들고 근대화시킨겁니다 일제때부터 대한민국의 토대가 마련된겁니다 자유민주주의 민권 노조 법치 과학 학교 발전소 댐 근대화는 일제 업적입니다
신분제는 일제가 없앴어요 이 영상은 교묘하게 인도와 일본을 같은 신분제가 있다고 속임수를 쓰네 일제는 1800년대 후반에 후큐자와유키치 위인의 자유 평등 민권의 나라였어요 일제는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였습니다 신분제를 없앤게 일제예요 이 영상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거짓이예요 자유대한민귝의 토대는 일제때부터입니다 댐 발전소 학교 문명 시대는 일제가 만들어준겁니다 개무식한 조선왕과 중귝이 우주의 중심인 성리학자들이 무슨 개혁을 하겠습니까 ? 개혁하려던 선비들 멸종시켰죠 일제덕분에 법치주의라는게 생겼고 권리라는것도 생긴겁니다 일제는 로또입니다
일제 때 신분제가 폐지되는 과정은, 일본을 옹호하는 것 같아 쏙 빼 버렸나 본데, 솔직히 일제의 공이 크다고 인정합시다. 한국인들이 대부분 성씨를 가지게 된 것도 일제 때 였지요. 일본이라면 무조건 욕부터 하며 덤비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조선에서 노비였던 사람들은 일제 시대가 천국 같지 않았겠습니까? 조선 말 형식적으로 신분제도를 없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평민의 권리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때부터입니다. 625가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만큼 일제의 영향도 크다는 것도 인정해야 균형있는 시각이라 보여집니다.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나라 차원에서의 신분제는 이미 한일합방 전에 이뤄 졌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새로운 법이 생기면 한참 동안은 사회에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유예기한 제도를 통해 정착기를 가지기도 하구요. 이후 얼마 안 가서 일제가 침략을 해왔기 때문에 신분제 철폐가 사회에 깊숙히 자리 잡지 못했겠지만 시간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조선인은 일제의 2등,3등 시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조선의 힘으로 신분제를 철폐 했는데 일제에 의해 오히려 새로운 신분제를 맞이 한 겁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덕에 뭔가가 좋아졌다는 말 자체는 결과론적인 해석인 게 누군가 총기난사 대량 학살을 저질렀는데 그 때 다른 범죄자가 죽었다고 해서 총기난사 덕분이다, 총기난사 한 사람의 공이다 잘했다 말하지 않잖아요? 정작 대량 학살범은 그럴 의도도 없었는데요. 이런 건 그냥 얻어 걸렸다 정도가 딱인 일이지 공이니 업적이니 표현은 포장질에 가깝지 않나 하네요.
@@user-ou22g8z22 그래도 일제시대를 응호하지말아야하는게 일단 힘으로 남의나라 침략한건 나쁜건맞음 뭐 몇몇사람들은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 시켜줬다 뭐다하는데 그런논리면 위구르 티베트를 지배하고있는 중공을 비난하면안됨 왜냐하면 중공이 지배하기전에 티베트 위구르는 신정국가였거든
도축업을 했던 사람들은 여진족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농경국가인 조선 시대에 산속에는 여전히 여진족들이 목축과 농경을 병행하면서 살았을 것이고요. 평지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고기를 사 먹고 싶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돼지나 소를 잡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산 속에 가면 여진족들이 (그들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고기가 있었음) 파는 고기를 사다가 먹다가 여진족들이 마을로 내려와 동물을 잡고 고기를 파는 일을 해 왔던 것이죠. 여진족들은 싸그리 천민 급이었죠. 우리 민족이 아니니. 지금은 우리 한국인에 완전히 녹아든 혈통입니다. 나의 피에도 아마 조금 섞여 있을 지도.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분들 ....... 여진족 피가 많이 섞였을 수도 있습니다.
@@mikeryu61 뭔 고기 좋아한다고 여진족 피가 많이 섞였다고 하시는지 모르겟네요 ㅋ 조선시대에만 봐도 양반 평민 할거없이 고기 먹을려고 밀도살을 너무 많이 한다고 기록까지 남아있는데... 굳이 여진족 혈통을 따지고자 하신다면 서구적외모의 한국인이 더 가까운거 같은데요
내가 보기에 유전 영향이 쫌 있음, 바닷가 쪽 사람들은 수산물을 아주 잘 먹는데, 나는 잘 못 먹음. 혈통중 몽골이나 여진 혈통은 내륙 육고기에 훨씬 적응이 높음. 농경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은 채소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요. 무조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경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따지시는지.
@@아이디영남 임진왜란은 커녕 중일전쟁 정신승리하려고 왜, 란이라고 부르는 한국에서 일본을 이겼다고 하는게 개웃김ㅋㅋㅋㅋ ㅇㅇ 이긴거 맞음. 승리자임. 근데 내가볼때 조선 일본 전쟁은 미국 베트남 전쟁과 아주 유사함. 거의 같다고 보면됨. 미국 일본은 엉뚱한 명분으로 쳐들어감. 미국 일본은 결과적으로 졌음. 근데 자국 영토의 피해는 조선 베트남이 100%임. 전쟁 이후 미국은 군대 향상, 시민의식 발전, 일본은 전국 통합, 무기 발전이 일어남. 당시 양반이 아닌 95%의 조선 평민 노비들에게 나라 되찾으라는건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위해 여자들은 출입을 금지하며, 유산상속 불가, 이런 거임. 님 여자라면 끔찍했던 조선의 유교 여성차별 견딜수있음? 그 무서운 전통을? 근데 그걸 지키라고?ㅋㅋㅋ 왜?
@@아이디영남 음 아뇨 조선의 피해는 전국토 황폐화 집 , 농지 배상금없이 스스로 복구해야 함 백성들이 코 귀 잘려서 흉측하게 돌아다님 역사적 유물들 대량 훼손 반대로 일본 피해는 ... 단지 한반도에서 몰아냈다는이유로 조선이 승리했다고 말하시는건가요? 전쟁목표를 이루지못했으니? 심지어 중국을 드에엎었음에도 이 피해입니다 정령 조선의 승리일까요?
80년대 90년대 할아버지들은 니 본이 어디냐 이런거 묻고 그랬음 결혼할때도 중요했고 옛날 어머니 고향가면 어머니 등교를 담당하던 노비가 있었다고 함 현재 조상이 노비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흔한 성씨에 흔한 본인경우가 노비 후손일경우가 많음 보통은 희귀성 희귀본이 양반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해서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팩폭해줄게. 일제시대때 상놈들이 양반한테 소송을 할수있게 해준게 그 시작임..그 전엔 소송은 커녕 대들단 매맞음... 그 후에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미국물 먹고 도입해서 여자들의 인권까지 하루아침에 사람으로 만들어줌.... 사실만 들어도 불편하거든 맘을 고쳐먹어..
이승만 전대통령은 토지개혁, 독도, 한미동맹같은 걸작도 많이 남기심 말세에 권력에 너무 취해서 결국 쫓겨났지만... 토지개혁으로 모든이들이 토지를 갖고 기본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서 자연스레 자식에 대한 교육으로 관심을 갖게되고 일(농사)과 여가나 교육의 분리가 가능해짐
이것은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이미 연구한 내용입니다. "한 국가의 불평등이 사라지려면.... 혁명, 전쟁이나 대재난으로 나라 전체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한국 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과거의 계급사회로 가는 징조(빈부 격차의 심화 등)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도 완전 평등사회로 독립했으나..... 오늘날에는 소위 '명문가'라는 양반 계급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긴장은 점점 고조될 것이고.... '민중 혁명'(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볼셰비기 혁명 등등)이라는 대격변을 겪게 마련이라는군요.
조선은 동시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신분 변경이 자주 일어났지요. 노비도 돈 모아서 양인 신분 얻거나. 평민이 과거 시험으로 양반 신분 얻거나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50~60%)가 평민 출신. 노비가 관직을 얻은 것과 장영실 정충신 최재형 등 양반이 된 사례. 양반이 3대째 과거 합격자 못나오면 평민으로 떨어지는 등
영상을 딱 1분40초까지만 보고 댓글달자면 일본 인도 한국 다 신분제가 있었고 폐지되었지만 한국만 완벽하게 신분제가 폐지된이유는 당연 6.25때문이 아니겠음? 심지어 6.25전쟁도 우리나라가 부산 끄트머리까지 싹다 밀리고 나라가 밭갈듯이 뒤집혔으니 바뀌었지 강원도나 서울쪽만 밀리고 방어 성공했었으면 아직까지도 천민 양민 양반 왕족 남아있었을듯
@@user-jjy1015 그쵸 신분제도가 완전히 사리진 지금 월세거지 빌라거지 임대거지 이딴말들을 지어서 만들어내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도 임대아파트 주민이거나 해당아파트 주민아니면 못놀러오게 막고 택배기사들도 아파트 단지내에 차 못들어오고 걸어서 배송시키는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인데 계급제도까지 살아있었다면 인도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했을꺼같진않네요
나레이터 말중에 6.25전쟁이후에 양반 천민 차별이 제대로 사라졌다는 멘트가 있는데 이유가 너도 나도 할것 없이 가난해졌기 떄문에 그렇다는 말 의미가 있네요 2023년도 시간만 흘렀지 별반 다를게 없을듯,,,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니 사회전반에 쓰레기들이 활개를 치는듯,,,
@@할수있다면-v1r 문장이 불분명합니다만 이렇게 읽히네요. "백정들이 일제때 더 적극적으로 일본 제국에 대항하였고, 수렵을 하던 천민이나 도축을 하던 천민들이 더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 백정 출신들이 무장투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봐야겠어요. 그러나 적어도 조선형평사와는 맞지 않는 서술입니다. 조선형평사는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남아있었던 신분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하여 인권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단체입니다.
조선시대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이씨가문과 그들과 얽히게 된 주변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이씨를 거르게 되는 무의식적 편견이 생겼어요.. 이씨가 왕위가문이였던건 맞지만 그 집안의 내력이 친지들과의 세력다툼, 친지를 죽이고도 차지하려는 권력적 욕망.. 소시오패스처럼 자기가 원하는건 어떻게든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잔인함.. 전쟁이 비일비재했던 그 시절에 강해야했던 왕이 강한자에게 비굴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역사상 최고의 수모를 겪어야만했던 중심에 그 이씨왕이 있었다는걸..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라도 깨어있는 정신으로 알게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댓글을 씁니다 그들의 말로, 결국은 그들과 얽힌이들을 배신하고 또 그들에게 숙정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보면서 겉으론 양반인척 점잖은척하지만 품고있는 속내가 이제는 너무나 보이기에 조선시대에서나 지금이나 그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주변의 그쪽 이씨들을 보면서 그쪽 이씨라면 피하고봅니다 저는.. 그때 잔인했던 그리고 인권이 없었던 시대를 잘타고나서 소시오패스 성향이 통했을뿐이지 그들은 결코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편견이 아닐까해서 우스겟소리로 전쟁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질문에 40대부터 80대까지 하나같이 참전한다는 사람은 단한사람도 못봤습니다ㅜㅜ 같은 이씨라도 내 의견과 내안위가 위협되면 가차없이 내치는 그들만의 먹이사슬에 애꿎은 선량한 사람들만 희생되는 역사가 되풀이 되질 않기를.. 그들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어리석고 불쌍한 엠패스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노비종모법을 했더라도 노비도 똑같이 군역과 세금을 징수했으면 늘어나지 못했겠죠. 양반들이 지들 사유재산이라고 일체 의무를 면제했으니 조선이 늘 세수부족에 시달리고 국가가 가난했던 겁니다. 양민들은 그런 노비를 무시하는게 당연하죠. 일체의 의무를 지지않는데 좋게 보일리가 없죠.
@@kimsonline376 서민들은 조선시대에도 제한 없이 재혼을 많이 했으며 고려의 이혼 및 재가는 가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가문을 위해 강제로 이혼당하거나 재가하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고려도 조선처럼 기본적으로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중심이었으며 여성들의 지위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모두 차이는 있지만 왕과 황제 쇼군을 대신하는 대통령과 주석 수상 귀족과 왕족처럼 우월시되는 국회의원과 노동당원 자민당의 엘리트 관료주의자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할 뿐 신분제도가 답습되고 있죠 국민의 대표인데 ‘어용’이란 단어로 비유해도 지지자들은 여야할 것 없이 거부감이 없어요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지만, 1970 년대 까지만 해도 사람을 딱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용모나 행색에서 그냥 드러나기 마련이었어요. 그러면 그런 사람을 쌍놈이라고 불렀는데 쌍놈은 상인이라는 뜻이죠. 원래 양반, 중인, 상인, 천민 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상인이나 천민은 그 행색만 보면 구분하기 힘들었습니다. 상인은 상놈이라고 부르다가 된 발음으로 쌍놈인 거죠. 그러면 어떻게 금방 알 수 있는가 하면, 일단 행색이 단정하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거에요. 양말이나 신발이나 옷이나 이런 것들을 제대로 갖추어 단정하게 하고 다니는 지 아닌지로 금방 판 가름이 났었습니다. 꼭 경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깨끗하게 용모 단정하게 다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1980 년대를 지나 90 년대 쯤 되니까, 젊은이들은 행색으로 구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나이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랬구요. 양반 출신이라면 단정하게 용모를 하고 다니는 가정의 전통이 오랜 기간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엄청 섞였기 때문에 누구는 완전히 양반이거나 누구는 완전히 천민 출신이거나 하는 순종은 아주 적어진 것이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반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피가 섞여 있을 거라 봅니다.
신분제의 폐지와 평등사회의 구현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야 완수될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 농지개혁으로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신분을 상승시켰습니다. (2)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장려해 국민의 교육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3) 여성을 포함해 전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해 정치적 평등을 실현했습니다.
사람의 신분을 가장 구분하는게 바로 출신을 알수있는 이름의 성씨를 가지고 하는 거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소수의 양민들만이 성씨를 가지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와 해방등 혼란의 틈을 타서 자율적으로 성씨를 등록하며 전국민이 모두 성씨를 갖게되었다고 함. 현제 한국의 성씨 대부분은 이렇게 급조된 성이 많아서 김,이,박씨등이 대부분인 것임. 쇄국정책을 고집하고 개방을 두려워한 조선의 기득권 양반 상류층은 현제 북한의 당간부 고위층과 완전 판박이
상업의 발달은 대동법, 금난전권의 영향 보다는 조선 후기 농업 기술 혁신에 따른 잉여 산물의 증가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내기, 퇴비의 사용, 쌀과 보리를 번갈아 심는 이모작이 정착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상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잉여 산물이 늘어난 겁니다. 잉여 산물이 늘어나고 이걸로 상거래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상업이 자연스럽게 발달한거죠. 금난전권은 한양 주변의 난전을 단속하던 제도로 그 영향은 한양 주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으며, 대동법도 그 이전 납세자와 방납업자간의 거래가 공인의 활동으로 대처된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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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몰이 전역까지 98일!)
당몰이님 전역이 벌써 100일도 안 남았네요.
다른 사람의 시간은 빠르게 가는느낌이네요.
건강히 전역하세요~
역시 크게바뀔려면 크게 일이 터져야되는구나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말이 아닌듯,,
아이러니 한게 일제 식민지,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신분제도와 토지개혁을 자연스럽게 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60년대 산업화시대 고향 농촌을 떠나면서 완전히 끝장남
일명 그걸 포멧되었다라도 표현하죠~ 조선의 포멧 이말이 정답일듯 ㅋㅋㅋ
전쟁의 유일한 순기능 RESET
조선시대 환상에 빠져있지 말자 우리는 조선인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국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주인이다! 🇰🇷
일본 개화 반자이
그러면서 여기 댓은 맨날 조선인 드립치던데
@@너굴맨-z8c 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일본이 아니였으면 한국은 아직도 노예사회다. 대단한 일본...
국민의식 수준 보면, 시대가 변해도 의식은 그대로구나 느껴지는 경우가 많죠..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집단선동..읍읍
6.25 가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가져온 부분도 있군요, 아이러니 하게도 . . .
70년대 백정의 자손이란 이유로 육군사관학교 입학취소된 사람도 있었죠 ㅋㅋ
기존 질서 파괴 => 재창조
씁쓸합니다.
@@seansong75 지금의 정육점 사장님정도 일텐데 끔찍하네요ㅜㅜ
@@user-sd1xu5mv8k 우리아버지도 백정 소위말하면 육고기잘다루디보니 동네 소돼지양염소 죽으면 온동네사람 가축주인 우리아버지부터찾음 너거아버지 어디있노하면 부랴부랴 찾아서 저집에 소죽어서 도축좀 해달라합니다하면 가서 맞있는 부위만 가지고옴 도축장에 가축보내어서 잡는 비용보다 더싸게먹히니깐요 그부위 가지고오면 먹을만큼 남기고 나머진 시장에서 물물교환이나 팔고그랫서요
조선시대 신분구성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반이상은 노비의 후손이라는 얘긴데 현재 우리 주변에 조상이 노비였단 사람은 본적없고 모두 족보있는 집안이고 아무개의 몇대손이라 하니 그 많던 노비들은 후손도 안남기고 다 사라졌다는 말인가요?
김이박씨가 많은 이유
김이박으로 신분세탁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귀족이죠 ㅋ
족보를 사들여서 그럼 그래서 족보있다 하더라도 전부 양반가가 아님
43%가 노비였다고 하고.
그마저도 조선 후기로 갈수록 급감. 19세기 에는 한자릿수 %로 급감했지요.
어차피 망해버린 조선의 신분이 뭐가 중요함?
그 시대의 노비들도 고려시대에는 귀족이였을거고 고려의 노비들은 신라의 귀족였을거고 신라의 노비는 백제, 고구려의 귀족이였을건데
망한 나라의 신분을 아직까지 붙잡고 양반 양반 거리는 것도 웃긴 일이죠
@@winter413wind 날조 하지마셈. 애초에 조선 노비 전국적 통계가 존재하지도 않구만 뇌피셜로 싸지르고있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1950년대 후반 혹은 1960년대 초반까지도 당시 양반가의 후예들이던 20~30대 젊은이들이 환갑이 다된 백정의 아들에게 자네라고 칭했다더군요. 신분제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건 지금 60세 이하 사람들이 태어날 무렵부터니 정말 얼마 안되었죠.
1960년대초까지만해도 노인들이 한복에 갓쓰고 다니더군요
80년대만 해도 정육점 가서 반말 하는 경우 아주 흔했어요
헉 진짜요? 전쟁을 겪고도?
@@Vidabello639 연배가 어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제가 40대 초입니다. 근데 쌍놈의 새끼 라는 욕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80년대만 해도 그런 사회인식이 좀 있었습니다. 지방은 더 했죠...
@@wjddngk 제가 28입니다요ㅋㅋㅋ
1950년 농지개혁법도 언급해 주셔야죠. 토지분배와 한국전쟁덕에 신분제 타파의 최고의 걸림돌인 지주들이 몰락하고 소작농이 없어져갔어요.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속화된겄도 농지개혁으로 전쟁후 지주들이 땅을 되찾지 못한게 큽니다.
농지개혁법은 대한민국 역대 정부중에서 한 정책중 손꼽힘
그 농지개혁법이 신분을 없애는데 큰 일조 했음은 물론 6.25 시기 민중봉기나 빨치산이 발생하지 않게하여 적화통일 되지 않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합니다.
그건 조봉암님의 최고의 업적
진짜 최고업적....
6.25덕에 지주 몰락이라는 말은 좀 아닌것 같은데 지주 출신 정도면 교육많이 받은사람이고 챙길것 다 챙기는 사람인데 지주가 몰락함? 6.25 도중에 빨갱이 한테 죽임당하거나 굶어 죽으면 모를까. 지주 너무 무시하네~
우리나라의 신분제도가 사라진 케이스를 뽑자면 스스로 폐지한 것이 아닌 외부의 요인(6.25전쟁)에 의해서 신분제도가 파괴되어 재가 되버린 케이스라 할 수 있음.
그 결과 모두가 흙더미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므로(여기까지는 북한도 해당되지만) 남한은 신분의식 특권의식을 할 여력도 없어져서 과거의 신분때문에 싸우지 않게 되버린 사례(반대로 북한은 모두 흙더미에서 시작했음에도 새로운 특권층(김씨일가)이 생겨서 오히려 신분제가 공고해짐)가 되버렸다.)
일제에 의해 노비에서 해방된 언급은 1도 없는게 추하네
상식적으로 왜 창씨개명 했을까? 강제라고? 안하면 처벌있다고?
응 팩트는 1930년 일본전국 선수 명단 전국 ~~순위에 떡하니 조선식 3글자 김이박씨 이름 있음.
> 일본은 창씨개명을 "절대" 강요하지 않음.
그렇다면 창씨개명을 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이름도 성도 없이 걔쥡냔 언년이 개뚕이 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임. 한자 이름도 아니고, 성도 없고, 노비출신에 여진족까지..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가 아닌 "병합"의 일원에게 일본정부가 새로운 국민에게 일단 해결해야하는건 "이름의 부여"임. 이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으면서 양반의(즉 기존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이름과 유사하지 않게 이름을 갖는 방법은? 일본식 이름을 쓰면 되는거임.
그래서 수많은 평민 노비들이 아무 저항 없이 일본식 이름을 쓴거다.
예를들어 한국에 온 아프간 난민 압둘 무함 개똥이가 놀림을 받아. 그러면? 그냥 김명훈 이런 멀쩡한 한국식 이름을 주면 되는거임.
창씨개명? 개명이라고? 이름이 있어야 바꾸지;; 창씨부여가 맞는 표현임
서울은 신분제도 없었는데 니네 시골은 있었나 보지?
@@조선의절반은노비자기네 나라 부라쿠민도 해결못한 주제에 식민지 신분제에는 관심을 가지겠냐.
신분제도는 일제의 조선민사령에 의해서 폐지되었습니다
북한은 신분제도 아직 있는거 같지만 말이죠.. ㄷ
거긴 왕이 있으니......ㅋㅋㅋㅋㅋㅋㅋ
조선 - 북한
군주국 - 비군주국(사실상 군주)
왕권 견재 기관 삼사 등 있음 - 견재 = 죽음
시각장애인을 음악계로 취업 알선 - 장애인은 김일성 민족이 아니다!
동서인 남인서인 소론노론 등 다당제 국가와 유사. - 북한 오직 조선노동당
일본에 유교 등 문화를 전파함 - 세계의 웃음거리
백두 돼지 혈통
북한이 아니고 북조선 지금은 3대왕이 통치중
@@whatever-it-takes 항국도 왕?이 있는데..ㅋ
얼마전 제가 궁금해서 엄마랑 이야기했던 주제네요!!
더 자세하게 알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 영상 구라입니다
신분제는 갑오개혁때 없애려했지만 고종이 개혁하려던 선비들 죄다 죽이고
갑오개혁은 실퍄로 끝났고요
일제가 와서 노비제를 없앴죠
원님재판도 없애고 법치국가 만들고 근대화시킨겁니다
일제때부터 대한민국의 토대가 마련된겁니다
자유민주주의 민권 노조 법치 과학 학교 발전소 댐
근대화는 일제 업적입니다
신분제는 일제가 없앴어요
이 영상은 교묘하게 인도와 일본을 같은 신분제가 있다고 속임수를 쓰네
일제는 1800년대 후반에 후큐자와유키치 위인의 자유 평등 민권의 나라였어요
일제는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였습니다
신분제를 없앤게 일제예요
이 영상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거짓이예요
자유대한민귝의 토대는 일제때부터입니다
댐 발전소 학교 문명 시대는 일제가 만들어준겁니다
개무식한 조선왕과 중귝이 우주의 중심인 성리학자들이 무슨 개혁을 하겠습니까 ?
개혁하려던 선비들 멸종시켰죠
일제덕분에 법치주의라는게 생겼고 권리라는것도 생긴겁니다
일제는 로또입니다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가 불과 "70년 전" 까지만 해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영향을 미친게 아니라 그냥 신분제 사회였어요
@@일반인-e1i 딴지게2게2야...
그게 바로 625전쟁발발부터 사실상 기득권층인 지주들의 머라할까 전쟁덕에확 없애준빌미이죵 그기다 해방후 농지개혁으로인한 자본주의 뿌리가 서서히 박히기시작힌거죠
@@jsgun6170 거의 유일한 625전쟁의 장(?)점이네요
@@webjot 만일 전쟁없이 발전원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공자왈 맹자왈 하늘천따지 이지랄할확률높아설가능성 큼
일제 때 신분제가 폐지되는 과정은, 일본을 옹호하는 것 같아 쏙 빼 버렸나 본데, 솔직히 일제의 공이 크다고 인정합시다. 한국인들이 대부분 성씨를 가지게 된 것도 일제 때 였지요. 일본이라면 무조건 욕부터 하며 덤비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조선에서 노비였던 사람들은 일제 시대가 천국 같지 않았겠습니까? 조선 말 형식적으로 신분제도를 없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평민의 권리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때부터입니다. 625가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만큼 일제의 영향도 크다는 것도 인정해야 균형있는 시각이라 보여집니다.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나라 차원에서의 신분제는 이미 한일합방 전에 이뤄 졌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새로운 법이 생기면 한참 동안은 사회에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유예기한 제도를 통해 정착기를 가지기도 하구요. 이후 얼마 안 가서 일제가 침략을 해왔기 때문에 신분제 철폐가 사회에 깊숙히 자리 잡지 못했겠지만 시간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조선인은 일제의 2등,3등 시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조선의 힘으로 신분제를 철폐 했는데 일제에 의해 오히려 새로운 신분제를 맞이 한 겁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덕에 뭔가가 좋아졌다는 말 자체는 결과론적인 해석인 게 누군가 총기난사 대량 학살을 저질렀는데 그 때 다른 범죄자가 죽었다고 해서 총기난사 덕분이다, 총기난사 한 사람의 공이다 잘했다 말하지 않잖아요? 정작 대량 학살범은 그럴 의도도 없었는데요. 이런 건 그냥 얻어 걸렸다 정도가 딱인 일이지 공이니 업적이니 표현은 포장질에 가깝지 않나 하네요.
이게 무슨 헛소리야. 평민이 성씨를 가진거 조선초기인데
평민 성씨가 지금처럼된건 조선후기 양반 족보 사면서임….. 알고말하자 일뽕아.. 균형같은소리 ㅆ치고
ㅇ,런애들이 비논리적인게 외국군이 온다고 천대받던 천인을 위로 올려준다????? 일본도 신분제사회임 어느나라나 식민지 만들때 평민을 착취하고 기존지배층은 회유함 그게 더 편하니까… 일본이 뭐하러 못배워서 글도못읽고 무식하고 더럽고 돈도없는 천인들을 대우해줌?
@@insight6130헛소리 지껄이지마세요 역사를 좌파한테 배우셨나 😂😂😂
사람취급못받던 조선시대보다 차라리 일제시대가 좋았던 사람도 많았고 그덕분에 독립운동이 크게 호응받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3.1 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소수라고?소수의 친일파들이나 그리 생각한거 아니겠나.
솔직히 왜정시대를 응호하지않치만 그렇다고 조선시대를 응호하고싶지는않음
그렇죠 뭐......
왜정시대를 비호하지는 않지만 아닌가요
ㄱㅊ 사실 그놈의 k-감성, 눈치때매 그런거지, 정상인 수준의 판단만 할수있다면 현대 기준에서 일제시대 돌아보면 그닥 나쁘지도 않은듯ㅇㅇ
@@user-ou22g8z22 그래도 일제시대를 응호하지말아야하는게 일단 힘으로 남의나라 침략한건 나쁜건맞음 뭐 몇몇사람들은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 시켜줬다 뭐다하는데 그런논리면 위구르 티베트를 지배하고있는 중공을 비난하면안됨 왜냐하면 중공이 지배하기전에 티베트 위구르는 신정국가였거든
@@문학작가 옹호도 비판도 하고싶지않음ㅇㅇ 그냥 세계흐름인 제국주의 열강들 붐이었다고 봄
아버지 친구분이 계신데 군대전역하고 그 아버지 친구분이 알바해보라고 해서 그분 회사가서 일한적이있는데 어머니가 그분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집 머슴 이였는데 너가 거기서 일하는걸 보니 뭔가 그렇다고 하시는걸 보고 나는 요즘 누가 그런걸 따지냐고 기겁했던적이 있었음.
어머니 말씀 들으세요
@@로마군이러니까 아직 사람들 의식은 조선시대지ㅉㅉ
한국에는 왕이 없어진게 신의 한수다
♡♥♡
대신 개들이 득세하고 있지요ᆢ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자유민주국가로 정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 입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시민 200 만명을 죽인놈이 이승만이야,,자국민을 살해한놈@@돛단배-l1b
개인적 신분 제도가 사라진 이유는 6.25가 아닐까 합니다. 온 국토가 다 부서지고 피난민이 넘쳐나는데 거기에 양반이어디있고 노비가 어디 있었을까요?
라고 썼는데 7분경에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제 생각과 같은 말씀이라 반갑네요
금난전권은 금난 전권으로 읽는 게 아니라 금 난전 권 으로 읽어야하죠. 즉 난전을 금하는 권리라는거죠.
비슷한 예로 미성년자는 미 성년자!
금치산자는 금. 치산자로 읽어야 됩니다ㅣ
금사자시키는요?
@@위보기 금사자.시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뿜었네 ㅋㅋ
도축업을 했던 사람들은 마지막까지도 심각한 차별을 당했죠. 신분제가 폐지되고도 6,70년대까지 이어졌다는데, 기본권인 교육을 못 받게 했다는 부분에서 말 다했죠;
도축업을 했던 사람들은 여진족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농경국가인 조선 시대에 산속에는 여전히 여진족들이 목축과 농경을 병행하면서 살았을 것이고요. 평지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고기를 사 먹고 싶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돼지나 소를 잡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산 속에 가면 여진족들이 (그들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고기가 있었음) 파는 고기를 사다가 먹다가 여진족들이 마을로 내려와 동물을 잡고 고기를 파는 일을 해 왔던 것이죠. 여진족들은 싸그리 천민 급이었죠. 우리 민족이 아니니. 지금은 우리 한국인에 완전히 녹아든 혈통입니다. 나의 피에도 아마 조금 섞여 있을 지도.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분들 ....... 여진족 피가 많이 섞였을 수도 있습니다.
@@mikeryu61 뭔 고기 좋아한다고 여진족 피가 많이 섞였다고 하시는지 모르겟네요 ㅋ 조선시대에만 봐도 양반 평민 할거없이 고기 먹을려고 밀도살을 너무 많이 한다고 기록까지 남아있는데... 굳이 여진족 혈통을 따지고자 하신다면 서구적외모의 한국인이 더 가까운거 같은데요
@@mikeryu61 사람이라면 고기는 누구나 좋아하지. 그걸로 무슨 핏줄을 따지는 지 원...
@@mikeryu61 지역이 오곡은 나도 오과는 안나는 곳이라 만주지역살면 반농반목인건데 뭔 고기좋아한다고 여진이야 여진족 핏줄은 산에만 살던 미개인 습성이 박혀있냐? ㅋㅋ 고조선,고구려,부여인들도 다 했던일인데 혈통에 빠져서 한민족 근본을 부정해버리네
내가 보기에 유전 영향이 쫌 있음, 바닷가 쪽 사람들은 수산물을 아주 잘 먹는데, 나는 잘 못 먹음.
혈통중 몽골이나 여진 혈통은 내륙 육고기에 훨씬 적응이 높음. 농경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은 채소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요. 무조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경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따지시는지.
이런게 진짜 잊으면 안되는 역사인데 요즘 한국에선 뭐만하면 만물 일본탓 논리가 팽배하니 참.....
임진왜란만 해도 이겼는데 후손이 말아 쳐먹었으면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해야지 일제시대때 좀 나가셧나봐요?
@@아이디영남 임진왜란은 커녕 중일전쟁 정신승리하려고 왜, 란이라고 부르는 한국에서 일본을 이겼다고 하는게 개웃김ㅋㅋㅋㅋ
ㅇㅇ 이긴거 맞음. 승리자임.
근데 내가볼때 조선 일본 전쟁은 미국 베트남 전쟁과 아주 유사함. 거의 같다고 보면됨.
미국 일본은 엉뚱한 명분으로 쳐들어감.
미국 일본은 결과적으로 졌음.
근데 자국 영토의 피해는 조선 베트남이 100%임.
전쟁 이후 미국은 군대 향상, 시민의식 발전, 일본은 전국 통합, 무기 발전이 일어남.
당시 양반이 아닌 95%의 조선 평민 노비들에게 나라 되찾으라는건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위해 여자들은 출입을 금지하며, 유산상속 불가, 이런 거임.
님 여자라면 끔찍했던 조선의 유교 여성차별 견딜수있음? 그 무서운 전통을?
근데 그걸 지키라고?ㅋㅋㅋ 왜?
@@아이디영남 임진왜란이 조선이이겼다고 생각하시나요?
@@백두준-j6z 임진왜란 조선이 이긴거죠. 유럽처럼 전쟁보상금을 못타서 그렇지.
@@아이디영남 음 아뇨 조선의 피해는 전국토 황폐화 집 , 농지 배상금없이 스스로 복구해야 함 백성들이 코 귀 잘려서 흉측하게 돌아다님 역사적 유물들 대량 훼손 반대로 일본 피해는 ... 단지 한반도에서 몰아냈다는이유로 조선이 승리했다고 말하시는건가요? 전쟁목표를 이루지못했으니? 심지어 중국을 드에엎었음에도 이 피해입니다 정령 조선의 승리일까요?
그러니까...다시 한번 전쟁을 하면 금수저도 총알 한방 흙수저도 총알 한방...
모두들 총알 앞에서 평등하지 한방에 주님 곁으로...
전쟁전에도 금수저 끝나도 금수저였는데...근데 공산당 땜에 많이 망하긴했죠.
80년대 90년대 할아버지들은 니 본이 어디냐 이런거 묻고 그랬음
결혼할때도 중요했고
옛날 어머니 고향가면 어머니 등교를 담당하던 노비가 있었다고 함
현재 조상이 노비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흔한 성씨에 흔한 본인경우가 노비 후손일경우가 많음
보통은 희귀성 희귀본이 양반이다
양반은 문반과 무반 즉 법원의 판사와 군의 장군집안을 일컽는 말입니다. 그 외에는 다 쌍놈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재평가가 일어나도 조선왕조가 다시 돌아오는 거 만큼은 막아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전근대 국가가 괜히 전근대국가가 아닙니다.
욀왈
그러게요.. 조선왕조는 나라를 아주 말아먹기로 작정한 인간들인듯
조선 잘 멸망했습니다
@@gony0101 조선은 답이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해서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팩폭해줄게. 일제시대때 상놈들이 양반한테 소송을 할수있게 해준게 그 시작임..그 전엔 소송은 커녕 대들단 매맞음... 그 후에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미국물 먹고 도입해서 여자들의 인권까지 하루아침에 사람으로 만들어줌.... 사실만 들어도 불편하거든 맘을 고쳐먹어..
일제강점기때 양반 노예 여자 등등
남녀신분상관없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신분타파 평등에 눈뜨기시작
@@air_g-string_nala_narang_nolza 그냥 일제시대되면서 양반이든 국민이든 다 똑같아서 타파된거지
근대 교육도 받고
이승만 전대통령은 토지개혁, 독도, 한미동맹같은 걸작도 많이 남기심 말세에 권력에 너무 취해서 결국 쫓겨났지만... 토지개혁으로 모든이들이 토지를 갖고 기본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서 자연스레 자식에 대한 교육으로 관심을 갖게되고 일(농사)과 여가나 교육의 분리가 가능해짐
대한민국이전 이후에도 서울 상류층이었는데 그런거 모르겟는데? 이상한 정보 넣지 말라고~이승만이 천민자본주의 하라고 한게 아냐~이승만 독립운동가라 일뽕 엄청싫어 하니까 적당히 하라고~
@@air_g-string_nala_narang_nolza 일제시기에 노비 평민들이 신분해방으로 반양반이 된거지 뭔 독립운동ㅋㅋㅋㅋ
내 어매 아비 패죽인 양반에게 재산 돌려주자는 독립운동에 공평하게 참가? 한국인의 정신망상은 어디까지임?
사실 처음에 신분이 생겨난 것도 힘과 재물이 있는 자가 주도권과 기득권을 가지며 생겨난 거죠. 지금의 부자들이 주도권과 기득권을 가지고 돈 없는 사람들 아래로 보고 막 대하는 것 처럼 말이죠.
막대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일본에서 우리나라 점령했을때 상투 없애고 양반 상놈 가리지 않고 학교만들어서 배우게 했던걸 교묘히 빼고 설명하는게 인상 깊었음니다. 빨갱이는 표면적으론 너나 나나 똑같은데 이것들을 통제하는 자 들의 계급은 어디에 자리하는지 말 하지 않죠.
자기네 식민지 운영에 도움이 되는 초중등교육, 실업교육만 해준거에 감사해야되냐. 일본이 그렇게 까이는 조선왕조랑 다를게 뭐가 있는데.
당신이 이야기하는건 그냥 독재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일뿐, 당신이 칭하는 빨갱이들이 추구하는 민주사회는 그 통제하는 자들이 계급이 따로있는게 아니라 투표로 선출되죠.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하듯 말이죠
@@SuperWonder 역사를 지배자 중심으로만 배워서 일제는 무조건 나쁘게 보지만, 조선 시대 노비였던 입장에서 보면, 일제가 들어서면서 천국이 된 건 사실이지. 너무 지배자 사관에 세뇌되지 맙시다.
@@kuddmic569 일제가 조선의 신분해방에 한게 없어요. 이걸 알아야지. 6.25 전쟁 이후에 해결된 신분제 문제를 일제가 해결했다고 하면 어떻합니까,
@@SuperWonder적어도 노비 입장에서는 출세길이 열린거임
그 세번째 문이 지금은 열렸을까요..? 새로운 지배계급과 하층민이 나눠지면서 그 관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높은 사람들에게 굽신 굽신 잘하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줄 알죠. 높으신 분들은 그런걸 알고 연예인 마냥 다니구요.
썸넬 패션이 넘 좋네요
인류 역사에서 신분제는 힘쎈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분류에서 생겼습니다.
별거 아니었다는거죠.
중세시대까진 절대적이었죠
감사합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이미 연구한 내용입니다. "한 국가의 불평등이 사라지려면.... 혁명, 전쟁이나 대재난으로 나라 전체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한국 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과거의 계급사회로 가는 징조(빈부 격차의 심화 등)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도 완전 평등사회로 독립했으나..... 오늘날에는 소위 '명문가'라는 양반 계급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긴장은 점점 고조될 것이고.... '민중 혁명'(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볼셰비기 혁명 등등)이라는 대격변을 겪게 마련이라는군요.
근데 투표 하는거 보면 미개해서. 인제 포기 할랍니다. 미개인 취급이나 해야지~
근데 미국을 보면 남북전쟁으로 모든 게 쑥대밭이 되면서 노예제도도 없어졌지만, 흑인들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리기 까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완전히 뒤집어져도,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린 것까지 뽑아내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죠.
뭔가 호적 제도를 정비하면서 보관을 다 쓰게 했다거나 이런 제도적인걸 기대 했는데 그냥 가난이 평등한 사회를
신분을 사고 팔수있는거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네 ㅋㅋ
조선시대 사람들도 후대에 누워서 손바닥만한 폰으로 조선시대 역사를 보는 걸 안다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듯
원래 역사라는게 말이 안됨
지금의 역사도 100년후 존나 미개하다고 할수있음
돈으로 신분 산다고 인성이 변할까... 진짜 추적통계 관찰해보고싶당...
@@mathsciencefancier ㄹㅇ 맞긴해
조선은 동시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신분 변경이 자주 일어났지요.
노비도 돈 모아서 양인 신분 얻거나.
평민이 과거 시험으로 양반 신분 얻거나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50~60%)가 평민 출신.
노비가 관직을 얻은 것과 장영실 정충신 최재형 등 양반이 된 사례.
양반이 3대째 과거 합격자 못나오면 평민으로 떨어지는 등
영상을 딱 1분40초까지만 보고 댓글달자면
일본 인도 한국 다 신분제가 있었고
폐지되었지만 한국만 완벽하게 신분제가 폐지된이유는
당연 6.25때문이 아니겠음?
심지어 6.25전쟁도 우리나라가
부산 끄트머리까지 싹다 밀리고
나라가 밭갈듯이 뒤집혔으니 바뀌었지
강원도나 서울쪽만 밀리고 방어 성공했었으면
아직까지도
천민 양민 양반 왕족 남아있었을듯
실제로 일본을 보면 뒤로는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었다는것만 봐도 우리도 그랬을수도 있었다는걸 알수있죠.
@@user-jjy1015 그쵸 신분제도가 완전히 사리진 지금
월세거지 빌라거지 임대거지
이딴말들을 지어서 만들어내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도 임대아파트 주민이거나
해당아파트 주민아니면 못놀러오게 막고
택배기사들도 아파트 단지내에 차 못들어오고
걸어서 배송시키는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인데
계급제도까지 살아있었다면
인도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했을꺼같진않네요
@@13323gg 222222
진짜 그럴 듯. 그래서 택배기사들도 빡쳐서 배달 안 하거나 단지 앞에 놔두고 가고 그랬죠. 한국은 갑질문화가 아직도 장난이 아님.
일본아니였음 공산주의 북한처럼 지금 살고있게죠
일본보단 미국행님들 덕분이다
뭐래 미국이지 일본은 임마 너 탄광끌괐어
@@아자힘내자-j9e 일제시대때 러시아 공산혁명때 우리나라 노비들이 감명받아서 우리도 공산국가로 모든사람들이 평등한세상만들자에 모두 동참했어요 그러나 일본처럼 왕이 있는나라는 공산국가 제일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산화 막은거예요
한국이 그토록 어려운 근대 역사길을 걸어 온 것은 신분제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좋은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무자본으로 무슨 장사를 할수 있을까요?
예비창업패키지에 엑셀러레이터 등등 생각보다 무자본 창업 도와주는 제도가 많습니다
무자본으로 할 수 있는거 너무 많아요 ㅋㅋ
그걸 알려주면 경쟁이 되니까 조용히 하는것 뿐 ㅋㅋ
나레이터 말중에 6.25전쟁이후에 양반 천민 차별이 제대로 사라졌다는 멘트가 있는데 이유가 너도 나도 할것 없이 가난해졌기 떄문에 그렇다는 말 의미가 있네요
2023년도 시간만 흘렀지 별반 다를게 없을듯,,,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니 사회전반에 쓰레기들이 활개를 치는듯,,,
저희 외할아버지도 1932년 생이신데, 625 이전까지 집에 머슴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서당을 다니셨구요
머슴이 노비는 아닙니다
@@kownwoo4521 저는 노비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양반도 돈이 없으면 남의 집 머슴 노릇해서 돈 벌었어요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그랬음
@@하루아-i2y 저희 외가와 비슷하군요. 저희 외가는 철원에 있었습니다.
@@user-ut1gc5cm9y 그렇게 돈을 벌어서 집안을 조금이나마 일으켜서 그래도 양반이라 며느리는 지주 양반딸을 며느리로 들였음 그때 할머니가 위안부 안 끌려가시려고 좀 가난하지만 남편감이 똑똑해서(공무원 이였음) 외 증조할아버지가 그냥 결혼 시켰다함
북조선은 신분제라는 미풍양속을
잘 유지하고 계심
조선시대 노비였던 사람은 마음속으론 일제 강점기 그시대가 해방이라고 생각했을거 같음. 아직도 역사를 선악으로 배우는 시대니 발전이 없음. 제발 그시대 그따구로 살았는지 비판하고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상적인 사고를 교육했으면 좋겠음.
일제강점기 시절에 백정 출신들이 조선 형평사를 만들고 일본 부라쿠민과 연대해 투쟁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 보니까 신분제 철폐한다고 하니 중인들이나 평민들이 반대가 엄청 심햇다고 하죠. 지금 부동산 처럼요.
@@souk5291 백정들이 일제때 더 적극적으로 일본인들과 싸워 총쏘던 수렵천민들이나 칼쓰던 백정들이 더 반기를들며 해방을위해 몸숨을 던진자들 만다는것?
@@할수있다면-v1r 문장이 불분명합니다만 이렇게 읽히네요.
"백정들이 일제때 더 적극적으로 일본 제국에 대항하였고, 수렵을 하던 천민이나 도축을 하던 천민들이 더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
백정 출신들이 무장투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봐야겠어요. 그러나 적어도 조선형평사와는 맞지 않는 서술입니다. 조선형평사는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남아있었던 신분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하여 인권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단체입니다.
@@souk5291 조선시대는 연대할곳도 투쟁도 거의 불가했는데 기회가 생긴것만으로도 다행이네요.
중간에 개신교 말씀을 하셨는데
천민 중 최악의 신분이었던 백정이 교회의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의사가 되기도 했던 것이 초기 조선 개신교의 역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양반출신 교인들이 백정과 예배를 같이 드릴 수 없다고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결국은 인정하게 됩니다
일제시대 일본이 조선 대중의 민심을 얻기 위해 행한 정책중 과거제도, 신분제도 폐지 등이 있습니다. 좋든 싫든 역사적 사실인데 애써 외면 하는 것 같네요.
신분제 폐지는 조선말에 했습니다. 어느역사서를 보시길래.
신분제폐지를 조선말에하면 뭐합니깤ㅋㅋㅋㅋ 백성들이 말을듣질않는데 일제가 확실히 없애준거라봐야죠
@@아이디영남 근데 제대로 안하고 어영부영함. 일제시대때 확실히 한 거임.
@@아이디영남 폐지는 갑오개혁때 됐으나 완전사라진건 아니였습니다 여전히 노비는 사람취급못받고 양반 눈도 못마주쳤습니다😅😅
@@백두준-j6z 고종황제때 신분제만 해도 신분해방할려고 햇을때 반대할려고 했던 사람들이 일반 평민이었습니다. 양반은 그렇게 반대 안했어요. 그리고 미국도 머 노예제도 폐지했어도 백인하고 흑인하고 눈도 못 마주친거 맞는데요,
6.25전쟁의 긍정적인 영향이 전국토가 초토화되어 기존의 신분제가 작살나서 제대로된 근대화 초석이 생김
현대에도 스스로 눈치만 못챌뿐 신분제도는 있다봅니다
사실상 자본주의에선 고용인과 노동자라는 두 계층으로 분화되죠...
그래도 저때는 본인의 신분자체를 바꾸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참신하냐에 따라 결국은 바뀌죠 결국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자연적 동식물들 또한 각자 나름의 신분제젹인 무언가는 있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조상탓이나 부모탓해야지.
귀천은 있는데 제도화 되진 안았죠
말같지도않은 소리 하지 맙시다
현대는 돈이 돈을 부르고 격차는 더 벌어지죠~ 노동으로 노력해도 발끝조차 못따라가지요
교회가 들어오고 평준화 되었죠
소련은 그렇다쳐도 미군점령군이요?????이재명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조선시대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이씨가문과
그들과 얽히게 된 주변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이씨를 거르게 되는
무의식적 편견이 생겼어요..
이씨가 왕위가문이였던건 맞지만
그 집안의 내력이 친지들과의
세력다툼, 친지를 죽이고도 차지하려는 권력적 욕망..
소시오패스처럼
자기가 원하는건
어떻게든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잔인함..
전쟁이 비일비재했던 그 시절에
강해야했던 왕이
강한자에게 비굴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역사상 최고의 수모를 겪어야만했던
중심에 그 이씨왕이 있었다는걸..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라도 깨어있는 정신으로 알게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댓글을 씁니다
그들의 말로, 결국은 그들과 얽힌이들을 배신하고 또 그들에게 숙정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보면서
겉으론 양반인척 점잖은척하지만
품고있는 속내가
이제는 너무나 보이기에
조선시대에서나 지금이나
그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주변의 그쪽 이씨들을 보면서
그쪽 이씨라면 피하고봅니다 저는..
그때 잔인했던 그리고 인권이 없었던 시대를 잘타고나서
소시오패스 성향이 통했을뿐이지
그들은 결코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편견이 아닐까해서
우스겟소리로 전쟁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질문에
40대부터 80대까지
하나같이 참전한다는 사람은
단한사람도 못봤습니다ㅜㅜ
같은 이씨라도
내 의견과 내안위가 위협되면
가차없이 내치는
그들만의 먹이사슬에
애꿎은 선량한 사람들만 희생되는 역사가
되풀이 되질 않기를..
그들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어리석고 불쌍한 엠패스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원래 권력의 달콤함 그런거임....차라리 조선이면 그나마 양반인거임... 유럽은 왕권이 약해서 서로 권력차지할려고 서로 엄청나게 전쟁함...
현재도 출세 해야 양반이다.
나머지...노비 양민이지
원래 양반이 공직자야 양반이 공직자 안되면 양반 아님. 나중에 후기에 바뀐거지.
노비를 슬쩍 끼워 넣기는! 노비는 주인이 돈도 안주고 주인이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게 노비임! 이런 노비가 요즘 어디 있다고! 뭐 북한이면 몰라도? 님 정은이 따까리?
세종은 존경받는 왕이지만
노비종모법 만들어서
신분의 상승 자체를막고
노비 엄청 늘려버림
조선은 몇프로의 특권층만
꿀빨던 나라
성종탓해라.
@@SuperWonder세종탓이 맞아 이 저학력자야
노비 늘어난거 탓할려면 일천즉천을 다시 행하라고한 세조를 탓하셔야할듯
노비종모법을 했더라도 노비도 똑같이 군역과 세금을 징수했으면 늘어나지 못했겠죠. 양반들이 지들 사유재산이라고 일체 의무를 면제했으니 조선이 늘 세수부족에 시달리고 국가가 가난했던 겁니다. 양민들은 그런 노비를 무시하는게 당연하죠. 일체의 의무를 지지않는데 좋게 보일리가 없죠.
@@파이-i3c세종탓하는 저학력자네, 종모법 이전시대에 흐름도 모르면서 ㅋㅋ
신분제는 고조선 건국 이후 사라진적이 없다.
나는 이런거볼때마다 역사적 오점중 하나가 흥선대원군, 쇄국정책 같음
흥선대원군 쇄국은 맞음 민비가 문제지 대원군이 존버한거 민비가 다 털어먹음.
고종 민비가 개항해서 어떻게 되었나요?
일제 강점기 의해서 노비제도가 사라진게 신의 한수엿지
실제로 갑오개혁으로 법적인 신분제도가 철폐됐을때 양반도 양반이지만 평민들의 반발들이 만만치 않았다고 해요 자기 밑에가 기어오르는 꼴은 못보는거지 ㅋㅋㅋ
조선의 무임금의 노비보다 일제시대 이등시민이 낫다..
이거 진짜 맞는 말임 ㅋㅋ
신분제도는 사라진적이 없습니다.
이 시기를 주제로 다룰 때,
2열 종대로
여자들을 줄 세워 청나라, 명나라로
보낸 것 얘기하고
개화기 이후,
인구가 급증한 것 얘기하고
일제가 들어와서
신분제도가 없어진 것 얘기해라.
일제가 한게 없는데 뭔 언급을 하나
썸네일 나오신 조상님이 왤케 플렉스 하신겝니까..;;
새로운 신분제가 생겼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새로운 신분
알흠다운 bgm 이군요 ㅎㅎ
모든사람이 알아야 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시대변화가 너무 빠르고 극악의 저출산 영향으로 민주주의와 신분제도를 거꾸로 생각하시는 비율이 너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노비, 상것들아!
일본을 고마워해라!
도요타다이쥬우센세이가 황국신민으로서 전장에 나서라고 연설질 해댄게 ...선견..?
금난전권은 난전을 금하는 권리니 '금난 전권'이 아니라 '금 난전권'이라 발음해야 한다고 고등학교 국사쌤이 그랬음
국사쌤 이쁘냐?
헐 진짜요?!
한문에는 띄어쓰기 없어서 그냥 다 붙여도 됩니다.
@@LionelPark 발음상 강세 넣는 부분을 띄어쓰기로 표현한 것이에요
국사쌤이 잘 가르쳐주셨을 것 같네요
여러분은 돈과 명예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일제시대에 와서 비로써 노예에서 벗어남
근데 지금은 조선식 선동작업으로 점점 조선회귀중..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제시대가 나쁜것만은 아니었네 조선이 망하지않았으면 아직까지신분제? 지금까지 이씨왕조가 통치하고 있으면 끔찍한일 아닌가! 태국 일본은 아직 왕이 있잖아유
뉴라이트가 나라 망치는게 팩트인게 확실하군.
어렵게 돌려 말해봐야 결국은 우리나라 신분철폐가 현실에 정착된 실질적 계기는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서서 때문임.
그러면 다 고려 잘못이지. 고려가 노비제를 빨리 폐지했으면 조선시대에 노비는 없을거잖아.
@@SuperWonder고려는 일본과 비슷한 사회였습니다. 조선이 들어선뒤 유교문화때문에 남녀유별부터 계급사회가 더욱 심화되었죠. 역성혁명으로 들어선 이씨조선을 정통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MrMichaelKwon 고려가 조선보다 여성인권이 좀 더 높긴 하지만 거기서 거기입니다.
오히려 노비인권이 더 좋아졌죠.
@@SuperWonder고려는 남녀평등 사회임ㆍ
유산도 동등하고, 재혼 삼혼도 가능했고,장녀가 제사도 지냈음ㆍ
연애결혼이 대부분
@@kimsonline376 서민들은 조선시대에도 제한 없이 재혼을 많이 했으며 고려의 이혼 및 재가는 가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가문을 위해 강제로 이혼당하거나 재가하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고려도 조선처럼 기본적으로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중심이었으며 여성들의 지위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도 그때와 차원만 다를뿐 똑같은 신분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모두 차이는 있지만
왕과 황제 쇼군을 대신하는 대통령과 주석 수상
귀족과 왕족처럼 우월시되는 국회의원과 노동당원 자민당의 엘리트 관료주의자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할 뿐 신분제도가 답습되고 있죠
국민의 대표인데 ‘어용’이란 단어로 비유해도 지지자들은 여야할 것 없이 거부감이 없어요
그렇게해도 문제가 없으니까
빨갱이득실대는 한국걱정이나하자
더 똑똑한 엘리트들이 정치를 해야하는건 당연한거죠. 뭐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인들이 나오는건 당연한거니까요.. 안타깝죠ㅠ
정치야 당연히 엘리트들이 해야지 어중이 떠중이더러 나라 굴리라고 할 순 없잖아...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지만, 1970 년대 까지만 해도 사람을 딱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용모나 행색에서 그냥 드러나기 마련이었어요. 그러면 그런 사람을 쌍놈이라고 불렀는데 쌍놈은 상인이라는 뜻이죠. 원래 양반, 중인, 상인, 천민 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상인이나 천민은 그 행색만 보면 구분하기 힘들었습니다. 상인은 상놈이라고 부르다가 된 발음으로 쌍놈인 거죠. 그러면 어떻게 금방 알 수 있는가 하면, 일단 행색이 단정하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거에요. 양말이나 신발이나 옷이나 이런 것들을 제대로 갖추어 단정하게 하고 다니는 지 아닌지로 금방 판 가름이 났었습니다. 꼭 경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깨끗하게 용모 단정하게 다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1980 년대를 지나 90 년대 쯤 되니까, 젊은이들은 행색으로 구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나이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랬구요. 양반 출신이라면 단정하게 용모를 하고 다니는 가정의 전통이 오랜 기간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엄청 섞였기 때문에 누구는 완전히 양반이거나 누구는 완전히 천민 출신이거나 하는 순종은 아주 적어진 것이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반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피가 섞여 있을 거라 봅니다.
용모 뿐 아니에요. 집안 관리하고 살림하는 얘기 해 봐도 친정 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유달리 철저하신 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분들 학력도요. 옛날에도 여자아이들 교육 많이 시켜주는 집안은 다 시켰더라고요.
바본가 자영업이 돈 있는 사람만 했는데 지식이 딸릴뿐이지 돈은 많았음. 그만큼 입는것도 다르고 삼성회장 쌍놈 취급하는거랑 모가 달라.
쌍놈은 평범할상자 일반인을 양반들이 낮춰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상인이 아니구요. 최근에도 윤석열대통령이 이준석보고 어린놈의 새끼가 그러면서 이야기 하는걸 봤습니다. 그런식이죠.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게 아니고 편하니깐 대충입는거임 한마디로 남을 의식하지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줄아는 사람들이 진정 멋찐 인간임
상인이 아니라 상민 . 상은 평상, 일상, 항상 ....할 때 상 자...
상인은 상업 할때 상 자고
일본도 신분제가 아직도
남아 있음.
귀족은 아직도 되물림 된다고 알고 있음.
영국도 귀족이 남아 있고
상류층 영어와 일반인들
영어는 차이가 있음.
영국의 상원은 95%가
귀족임.
대물림
신분제땜에 일본에서 아직도 천민 (부라쿠민), 재일 한국인 대기업 취직 잘 안시켜줌. 아예 어울리는것 조차 피함. 뼈대있는 가문은 결혼도 끼리끼리함. 영국 신분제 특히 쥰냐 킹받음 지금 군사 인원 충족 못하는 상황에 사관학교는 귀족이나 귀족뺵없이는 안받음 ㅋ
일본이 더 심합니다. 우리나라보다. 거기는 돈 많아도 신분이 정해져있음.
일본은 약화된 신분제 사회로 봐야 한다. 왕실이 있고 봉건영주가 지금은 지역 정치인이고 일반 서민들이 있지. 걔들 머리에서는 조선은 최하층이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니 복창 터지지
한국만큼 신분제의 흔적이 전무한 국가는 거의 없음
이런 영상
우리나라 교과서만든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역사는 현재 힘을 가진자들에 의해서 바뀐다
역사는 정신승리하기위해 존재하지 않는다.역샤는 미래를 바꾸기위해 존재한다.역사를 정신승리한다면 역사는 되풀이하며 역사에서 배운다면 역사는 바뀐다.
각자 노력해서 성장해라.. 자유의 깊은 뜻은 그런거니까. 좋은 세상이다 남탓하지 말고!
권력의 독점이 나라를 망친다. 독과점을 폐지하니 상업이 활발해지다니요... 금난전권을 없애니 다른 상인들에게도 기회가 생겼군요....
일본영향이컸지
신분제의 폐지와 평등사회의 구현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야 완수될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 농지개혁으로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신분을 상승시켰습니다.
(2)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장려해 국민의 교육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3) 여성을 포함해 전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해 정치적 평등을 실현했습니다.
결국 신분제는 전쟁이 끝장낸건가 ㅋㅋㅋㅋㅋㅋ
쇄국정책보단 통상수교거부정책이 맞는 표현이라고 해야한다고 국사샘이 그랬었는데 맞나요?
쇄국:다른나라와 통상.교역 금지 =통상.수교 거부 딱히다른점이 없는거 같은데요?
@@user-hunwoo어감의 차이랄까.
북한보면 답나오지 않나요?
625전쟁의 그나마 순기능으로 작용했던게 바로 저 양반쌍놈 할거없이 흔적을 다 지워줬다는거...
양반은 양반집이고 쌍놈은 쌍놈집이죠. 교육 차이가 큰데.
사람의 신분을 가장 구분하는게 바로 출신을 알수있는 이름의 성씨를 가지고 하는 거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소수의 양민들만이 성씨를 가지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와 해방등 혼란의 틈을 타서 자율적으로 성씨를 등록하며 전국민이 모두 성씨를 갖게되었다고 함. 현제 한국의 성씨 대부분은 이렇게 급조된 성이 많아서 김,이,박씨등이 대부분인 것임. 쇄국정책을 고집하고 개방을 두려워한 조선의 기득권 양반 상류층은 현제 북한의 당간부 고위층과 완전 판박이
김일성이 그걸 따라했던건가…
그 기득권 유림이 목숨바쳐 의병 일으킨건 그저 양반이란 이유로 폄하되어야 함? 한국 역사상에 무인도 아닌 지배계급이 백성과 나라 살리겠다고 목숨바친 시대는 조선밖에 없음
조선시대 성씨가 양반밖에 없었다는점에서 님이 얼마나 무식하면서 아는척하고 떠드는지는 알겠습니다
신분제의 바탕이 내 자식이 잘 살았으면 한다는게 아이러니다.
사실상 조선중후기부터 신분제는 붕괴되었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신분제붕괴의 결정정계기가 625인 것이죠
한국전쟁의 최고 특혜 법적, 제도적 신분제 파괴 지금의 신분제는 개개인의 의식적인 신분제 같은거지 대놓고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차별 받는게 아니잖음
지금도 차별 받지 않음? 군대 빠지고 고위층 자녀 솜방망이고~ 똑같은거 같은데~
범죄와의 전쟁 최민식 하정우인줄 ㄷㄷ
우리 조상님들 포스 지리네여 ㄷㄷㄷㄷㄷㄷ
먼개소리여
한국전쟁이 큰일 했네...
상업의 발달은 대동법, 금난전권의 영향 보다는 조선 후기 농업 기술 혁신에 따른 잉여 산물의 증가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내기, 퇴비의 사용, 쌀과 보리를 번갈아 심는 이모작이 정착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상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잉여 산물이 늘어난 겁니다.
잉여 산물이 늘어나고 이걸로 상거래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상업이 자연스럽게 발달한거죠.
금난전권은 한양 주변의 난전을 단속하던 제도로 그 영향은 한양 주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으며, 대동법도 그 이전 납세자와 방납업자간의 거래가 공인의 활동으로 대처된 정도입니다
일본 없었으면 지금까지도 ㅇㅈㄹ했을듯 ㅋ 북한보면 답나옴
일본 있었으면 여전히 우리는 자폭용 폭탄 이였을 듯.ㅋ
근대화 해도 여전히 신분제 유지, 자국민을 가라유키상 노예로 해외로 팔아버리고 끝내 자폭용 폭탄으로 까지 ㅋㅋ
@@winter413wind 그래도 조선시대처럼 사는것보다야 낫지 ^_^
@@dhkdeornf 그래도 근대화 까지 했으면서 자국민을 폭탄으로 던지다가 결국 세계 최초로 핵맞는 일제에 사는 것 보다는 낫지 ^^
일제의 한일병합으로 노비들이 해방되어 신분재도가 철폐된 것은 크나큰 축복이였다 그때.상놈들도 성씨와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니
뉴라이트가 나라 망치는건 정답이구만.
지금도 신분제 분명히 존재함..있는 사람들 없는 사람들 업신 여기고 무시하고 더럽다 하고 그런 인간들 수두룩함..
제가 보기엔 어리석어 보임. 근데 없는분들이 예의 안지키는게 더 많음.
4:53 맨 앞에 배우 김성균?
폭탄 앞에서는 양반도 한방~ 평민도 한방~
친정아빠 올해82사이신데 젊을시절 고향가면 머슴살던 나이많은 동네분이 아빠보고 도령왓소?이랫음.반존대같은
왕이있는데 신분제 폐지한다고해서 그게 먹힐까? 고종이 쭈꾸리가 되니 가능했던거지.
왕이 신분제 폐지했는데? 역사 공부 덜했구나 위로 올라갈수록 신분제에 대해서 반항이 없었어.평민이 노비들 신분제 없앤다고 난리였지.
@@아이디영남 ㅋㅋㅋㅋ. 고종이 신분제 폐지했다고??.. 신분제 폐지는 갑오개혁1차때 일본 압력에 주도됐던건데... 그후 고종이 지 의사와 상관없이 했다고 모든 회칙 전부 폐기한다고 선포했는데? ㅋㅋ.
전쟁으로 국가를 아예 reset해버리니 개인의 능력으로 깃발을 먼저 꽂은자가 또다른 부의 신분제를 만들어버림.
ㅋ 1분 30초가 되어서야 본론을 시작하면서 거두절미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한대!!
전쟁은 불행이지만 한국의 일제 식민지나 6.25는 조선왕조 500년의 원시국가에서 지금의 나라로 개혁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역사는 정확히 알아야 또다른 아픔을 피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