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기(李大期)[1551~1628]는 최영경(崔永慶)과 조식(曺植)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여 고령(高靈), 성주(星州)의 낙동강 유역에서 왜적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란 이후에는 의흥 현감(義興縣監)·형조 정랑·영덕 현령(盈德縣令) 등을 거쳐 광해군 때 청풍 군수(淸風郡守)·사도시 정 등을 거쳐 함양 군수(咸陽郡守)가 되었다. 당시 대북파(大北派)의 횡포를 비판하다가 삭탈관직이 된 김천 찰방(金泉察訪) 문경호(文景虎)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는 통문(通文)을 도내에 돌린 죄로 백령도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풀려나서 간성 군수(杆城郡守)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안녕하세요? 전 백령도 에서태어나신 아버지와 살고있는 3-1 북포초 김도희 입니당 ! 이변편 정말 재미있었습니당!!!!!♡♡♡
이대기(李大期)[1551~1628]는 최영경(崔永慶)과 조식(曺植)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여 고령(高靈), 성주(星州)의 낙동강 유역에서 왜적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란 이후에는 의흥 현감(義興縣監)·형조 정랑·영덕 현령(盈德縣令) 등을 거쳐 광해군 때 청풍 군수(淸風郡守)·사도시 정 등을 거쳐 함양 군수(咸陽郡守)가 되었다. 당시 대북파(大北派)의 횡포를 비판하다가 삭탈관직이 된 김천 찰방(金泉察訪) 문경호(文景虎)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는 통문(通文)을 도내에 돌린 죄로 백령도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풀려나서 간성 군수(杆城郡守)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