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obodny Pilgrim Party 자유시참변 101돌 성지순례 비나리 1/2 [3500 글로벌 자유애국군단 다시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하나> 1921년 6월28일 러시아 아무르주 제야(Zeya)강 알렉세예프스크(Alekseyevsk) 오늘은 스보보드니(Svobodny)인 그 자유시에 자유는 없었습니다. 오직 음모와 배신과 피비린내 그리고 무너져 내린 독립의 꿈과 단 한 번도 세워보지 못한 대한독립군단의 깃발만 뒹굴 뿐. 둘> 기미년 3월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지구마을이 놀랐습니다. 을사조약부터 열네 해 조선 백성들마저 나라를 들어 바쳤다는 일본의 거짓말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만주의 독립군은 불같이 일어섰습니다. 임시정부와 대종교가 나섰습니다. 산천초목까지 독립만세를 외쳤건만 파리 강화회의에 매달렸건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동휘의 도박이 벌어집니다. 파우스트가 되어도 좋으니 공산당의 도움을 받아 세계 5대 열강이자 3대 군사강국인 일본을 힘으로 꺾겠노라고. 셋> 그 끝은 비참했습니다. 사할린 건너 니콜라예프스크에서까지 박일리야의 사할린의용대는거침없이 용맹을 떨쳤건만 적군 대장에 넘어가 뜬금없이 제노사이드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은 백군, 다음은 일본인, 끝내 러시아 사람들까지 4천 주민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청일전쟁 못쟎게 쏟아붓고도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어 초조하던 일본 군부는 이를 철저히 써먹습니다. 1920년 4월4일 최재형부터 신한촌을 피로 물들인 연해주 참변 그리고 뒤이은 지옥의 간도참변. 2만5천을 앞세워 싹쓸이 작전에 나선 일본군 앞에 독립군의 항전은 달걀로 바위치기와 같았습니다. 대첩은커녕 승전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철수작전만 있을 따름입니다. 김학철이 말하듯 3백 곱절 부풀려졌든 한때 운 좋게 비겼든 남을 곳은 없었습니다. 넷> 그 끝은 스보보드니였습니다. 간도를 떠나온 독립군은 소만 국경까지 밀리면 항카 호를 건너 달네레첸스크로 넘어가서라도 싸우겠노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밀산에서 하나의 깃발을 듭니다. 총재 서 일, 부총재 홍범도, 외교부장 최진동, 참모부장 김좌진, 참모 이장녕 나중소, 군사고문 지청천, 여단장 김규식 안 무. 27소대 3500 송이 무궁화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어긋났습니다. 볼셰비키를 꺾겠다는 시베리아 10만 연합군 가운데 다른 나라는 다들 짐을 쌌지만 7만2천 일본군은 마냥 버팁니다. 그들을 돌려보낼 미끼로 레닌은 조선독립군을 내던집니다. 스보보드니는커녕 그리 가는 열차에서부터 총을 뺏기니 서 일 총재와 김좌진 장군은 돌아섰습니다만 설마 했던 홍범도 최진동 지청천 안무를 비롯한 장수들은 아무르강 오리알이 됩니다. 스보보드니에서 밀산의 편제는 있을 수 없고 박일리야 상해파 공산당에 줄을 서냐 오하묵 이르쿠츠크 공산당에 줄 서냐 목숨 건 러시안 룰렛만 주어졌습니다. 1921년 6월28일 낮2시 소비에트가 버린 사할린의용대 그리고 그를 따른 서 일과 김좌진의 부대는 제야 강의 눈물로 사라집니다. 다섯> 3.1만세를 뒤이어 무장독립을 꾀했던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들은 이로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빛바랬습니다. 순국선열들은 의젓하고 떳떳했습니다. 처음부터 이길 줄 알았으면 누군들 나서지 못하겠습니까. 허나 님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시신은커녕 이름조차 남기를 바랄 수 없음에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쳤습니다. 허나 임시정부는 비겁했습니다. 독립의 간판을 걸어놓고 패가 나뉘어 감투싸움에 날이 새고 레닌의 2백만 루블에 눈까지 멀었으며 나라 잃은 동포들 피눈물로 보낸 푼푼 후원금에 코인 팔이 하느라 촛불 군중 10만을 3백만이라 그저 부풀렸을 따름입니다. 1920년 그 무렵에는 소설을 썼고 G7에 오른다 허파에 바람든 오늘에도 일본에 열등감을 못내 버리지 못해 순국선열들 주먹으로 고질라를 잡았다 동화 속 세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싸움은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힘이 있어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ᆢ 그럼에도ᆢ 빌어먹을 조선이 팔려간지 112해가 지났음에도 아직 코리안들은 궁을주 부적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가 이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이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고 여린 놈은 덮어놓고 옳다는 언더도그마에 늘 빠지는 나라에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도 부끄러움조차 못 느끼는 국민들에게 자유공화정은 개발에 편자입니다. 여섯> 늘 야만으로 보았던 일본에 된통 당해 선조 이연이 종묘와 가족까지 버리고 달아나려한 때가 임진전쟁이었습니다. 허나 3백 해가 지난 뒤 일본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청나라는 찍소리도 못하고 나뒹굴었고 제정 러시아는 망신을 당한 끝에 시나브로 통째 위구르가 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3.1만세로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금자탑을 세웠건만 무장독립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운양호를 만난 뒤 조선에 근대의 몸부림이 없었겠냐만은 영양제를 맞기에 조선은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섭식장애의 산송장이었습니다. 3일천하로 끝난 갑신해가 그러했으며 선각자들의 온갖 피 흘림에도 조선은 역사시대 처음으로 1882~1894 원세개 총독 발 아래 '잃어버린 12년'에 파묻혔습니다. 3국간섭 뒤 마지막 근대의 몸부림이 이어졌습니다만 그를 짓밟은 이는 천황도 이등박문도 아닌 고종 이명복이었습니다. 김옥균이 다시 되지 않으려 서재필은 태평양을 건넜고 우남 이승만이 죽을 날을 기다릴 때 이미 조선의 숨은 끊어졌습니다. 가족까지 내팽개친 이연보다 이명복은 그나마 나은 놈이었습니다. 헤이그 쇼까지 펼쳤음에도 이등박문이 죽었음에도 이왕가는 그 뒤 서른다섯 해 천황가 다음 서열로 명품의 삶을 누렸습니다. 일곱> 아뿔싸. 애국지사들은 우국충정은 그득했지만 세계의 움직임에는 당달봉사였거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조선의 이름이라도 남기고 뜻대로 풀리면 여몽동맹처럼 조선을 품어 징기스칸이 되고자 했던 이등박문을 죽여 안중근은 일본 조야의 걱정을 풀어주었습니다. 구월산에서 스스로를 바친 홍암 나철. 신주를 땅에 묻고 마을을 통째 옮긴 國去吟의 석주 이상룡 그리고 못난 이명복을 어르고 꾸짖고 콩가루 같은 안팎의 독립진영까지 하나로 꿰었음에도 너무 일찍 가신 조선의 마지막 선비 보재 이상설까지 얼마나 많은 조선의 인재들이 부나방처럼 모든 것을 바쳤습니까. 허나 부질없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일본은 나날이 커져갔고 그 앞에서 최운산처럼 아무리 애쓴다 한들 독립군은 고작 한 줌이었습니다. 외려 일본 육군성 군국의 화신들 앞에서, 이등박문이 죽은 뒤 홑껍데기 자제마저 집어던지고 유라시아 제국의 야심에 들뜨던 고질라 앞에서, 조선독립군은 만주로 연해주로 파고들 좋은 핑계거리만 되었습니다. 기댈 데가 없었던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그 뒤로 줄곧 스탈린의 놀잇감이 됩니다. 동북항일연군이란 이름으로 소련의 일본 방패막이가 되었지만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나자마자 스탈린은 그들을 곧장 버립니다. 잊을 수 없는 1937년 9월9일 연해주동포 피눈물의 날. 20만 고려인을 7,163km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끌고 가며 스탈린은 충성을 다 바친 2500 이르쿠츠크 공산당을 먼저 죽이고 2만5천 넘게 저승으로 보냈습니다. 광복군은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겨웠습니다. 720만 일본군 앞에 고작 3백이 버틸 뿐이었습니다. 1945년 8월18일 조선 진공작전은 스러져간 대한독립군단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Svobodny Pilgrim Party 자유시참변 101돌 성지순례 비나리 2/2 여덟> 백색제국주의의 아류였던 일본은 남경과 하얼빈은 둘째 치고 오끼나와와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그악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일본만 있었다면 설사 자유시참변을 거듭 겪었더라도 대한독립군단은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반드시 그 깃발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그악스러웠던 수-당 선비족들과의 백년 전쟁도 이겨내고 코리아는 고향 만주를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독립군들은 곱사등이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일본에 쫓겨다닐 때 공산제국주의는 그 등을 찔렀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자유시참변과 강제이주 뿌리뽑기 신의주반공학생의거와 3.1만세 재현시위에 이르기까지 새별오름의 반란에 이르기까지 사반세기 넘도록 코리아는 ‘있을 수 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법칙을 넘어 이겨내었습니다. 독립 건국은 기적이었습니다. 백색제국주의와 공산제국주의 더할 수 없이 그악스러운 그 둘과 싸워 이겨내고 살아남은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탈영했던 무리들의 끝은 비참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바랬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었든 그들의 모든 피땀은 자취 없이 지워졌습니다. 스무 살 기념으로 고동뢰 독립군 소대를 죄다 죽인 한족 공산당의 졸개이자 소련 공산당의 꼭두각시 김성주의 이름만 그 자리에 아로새겨졌습니다. 마침내 조선의용군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의 뜻에 따라 5만이 총알받이가 되어 낙동강에서 덧없이 죽어갑니다. 아홉> 저승에서 이 모든 끔찍한 역사를 지켜보신 3종사시여. 보재 어른이시여. 대한독립군단 선열들이시여. 한 세기가 되도록 이름도 찾지 못한 간도 참변의 동포들이시여. 피눈물의 연해주 동포들이시여. 아직도 열다섯인 3500 신의주 어른들이시여. 맹세합니다. 지난 6백 해 길게는 9백 해 가까이 빠져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도록 우리 목숨을 다하겠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잊으면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그 모진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새기고 사는 만주동포들과 연해주동포들 그들을 반드시 품겠습니다. 지옥에 노예로 사로잡힌 2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을 되찾겠습니다. 님들의 피가 서린 이 곳 자유시와 밀산과 화룡에 라즈돌노예와 이르쿠츠크와 바스토베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난 사람들이 와서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도록 그 기막힌 역사 앞에 이 악물고 속울음에 애끊도록 그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이 세 맹세를 새길 것이며 님들께서 굽어 살피사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열> 세 해 앞서 98돌 여름 어린 저희는 삼가 순국선열의 얼과 호국영령의 넋을 모시고 울란바타르와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 장벽까지 달렸습니다. 자유시참변 한 세기인 지난해는 반드시 모스크바와 베를린과 런던을 거쳐 워싱턴에서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에서 이겼노라 80억 앞에 외치기로 했건만 지지난해 여름 겨우, 연해주참변 간도참변 한 세기에 중공 바이러스를 핑계로 런던을 갈음해 참성단과 동묘 하옵고 홍암 보재 백야 어른을 뵈었습니다. 지난해 SPP 한 세기 또한 그저 휴전선 아래만 돌았습니다. 중공대사관이 만주가 되고 파주 설마리가 런던이 되고 제주도가 스보보드니가 되고 대구가 모스크바가 되고 미대사관이 워싱턴이 되고 그에 더하여 포천과 철원 저격능선과 화천 파로호와 춘천에서 영광에서 중공과 부역자들을 꾸짖었지만 무슨 꾀를 써봤자 성지순례를 어이 갈음하겠습니까. 엎드려 비옵나니 오로지 비나리의 사람들을 지키려 함입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한 세기가 넘은 제야 강의 공산 바이러스가 바야흐로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로 거듭나고 사람들은 그 우상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른들 뒤를 이으려는 단골들부터 그 우상 놀음에 빠지지 않고 끝내 80억을 살려낼 자유전사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하여 저희는 자유시참변 한 세기를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을 끝내고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와 맞서는 첫 해로 삼았습니다. 그 첫 발걸음은 그들의 꼭두각시부터 없애고 14억부터 자유와 인권을 돌려주는 천멸중공입니다. 홍위병 놀이로 아버지를 죽였던 올드 맑시즘은 평양이 마지막입니다. 허나 이제 어머니마저 죽이려는 네오 맑시즘은 이 아름다운 지구를 무지개 빛깔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열 하나> 자유시참변 한 세기를 지나 어느덧 101돌의 날입니다. 중공감기에 이어 우크라이나 대리전쟁까지 터지며 지구마을은 모든 것이 뒤집혔습니다. 지난달 WHO에서는 팬데믹을 핑계로 모든 나라의 주권을 빼앗는 보건비상사태 선포권을 날치기하려다 아프리카 47 나라와 BRICS의 반대로 주저앉은 바가 있습니다. 악마들이 모든 나라에 을사조약을 맺겠다는데 지구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가난한 이의 존엄한 안락사까지 마침내 트뤼도는 내놓고 떠듭니다. 빅미디어와 빅테크가 모든 진실을 묻으니 80억 인류는 눈뜬 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과 [6.25 자유의 성전]에 함께 했던 자유진영이 글로벌 좌파의 마름이 되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죽이고 미국처럼 국경을 열어 모든 나라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뒤늦게 자유와 인권을 맛본 배고픈 나라들과 권위주의 나라들이 자유를 살리고 인권을 외치며 애오라지 제 나라를 지키겠다는 거꾸로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Quo Vadis, Domine? 저희들이 어리석어 비록 하늘의 뜻을 모르오나 그 처절했던 경신년과 신유년 단 한 번도 치켜들지 못했던 자유애국군단의 깃발을 세우겠습니다. 대한민국만 아니라 80억 인류에게 나라를 넘어 자유애국의 길을 여는 글로벌 3500 전사가 되겠습니다. 열 둘> 한 세기 넘도록 지구마을 모든 공산 악연의 처음이었던 곳. 우리 SPP 東盟 이목원 부단장이 홀로 모스크바에서 블라고베셴스크를 거쳐 오늘 스보보드니 수라셰프카 제야강가에 섰습니다. 저희들 비록 몸은 가지 못하오나 그와 함께 저 푸른 제야강을 영상으로 보며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하여 비나리를 바칩니다. 순국선열들과 동포 어른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꿈과 뜻이 아로새겨진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에서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에 뒤이은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와 마지막 전쟁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하여 님들의 얼과 넋을 모시고 천지에서 바이칼에서 발트에서 도버에서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즈믄 해를 품고 목 놓아 울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Svobodny Pilgrim Party
자유시참변 101돌 성지순례 비나리
1/2
[3500 글로벌 자유애국군단
다시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하나>
1921년 6월28일
러시아 아무르주 제야(Zeya)강
알렉세예프스크(Alekseyevsk)
오늘은 스보보드니(Svobodny)인
그 자유시에 자유는 없었습니다.
오직 음모와 배신과 피비린내
그리고 무너져 내린 독립의 꿈과
단 한 번도 세워보지 못한
대한독립군단의 깃발만 뒹굴 뿐.
둘>
기미년 3월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지구마을이 놀랐습니다.
을사조약부터 열네 해
조선 백성들마저
나라를 들어 바쳤다는
일본의 거짓말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만주의 독립군은
불같이 일어섰습니다.
임시정부와 대종교가 나섰습니다.
산천초목까지 독립만세를 외쳤건만
파리 강화회의에 매달렸건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동휘의 도박이 벌어집니다.
파우스트가 되어도 좋으니
공산당의 도움을 받아
세계 5대 열강이자 3대 군사강국인
일본을 힘으로 꺾겠노라고.
셋>
그 끝은 비참했습니다.
사할린 건너 니콜라예프스크에서까지
박일리야의 사할린의용대는거침없이 용맹을 떨쳤건만
적군 대장에 넘어가 뜬금없이
제노사이드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은 백군, 다음은 일본인,
끝내 러시아 사람들까지 4천 주민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청일전쟁 못쟎게 쏟아붓고도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어 초조하던
일본 군부는 이를 철저히 써먹습니다.
1920년 4월4일 최재형부터
신한촌을 피로 물들인 연해주 참변
그리고 뒤이은 지옥의 간도참변.
2만5천을 앞세워 싹쓸이 작전에 나선
일본군 앞에 독립군의 항전은
달걀로 바위치기와 같았습니다.
대첩은커녕 승전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철수작전만 있을 따름입니다.
김학철이 말하듯 3백 곱절 부풀려졌든
한때 운 좋게 비겼든
남을 곳은 없었습니다.
넷>
그 끝은 스보보드니였습니다.
간도를 떠나온 독립군은
소만 국경까지 밀리면 항카 호를 건너
달네레첸스크로 넘어가서라도
싸우겠노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밀산에서 하나의 깃발을 듭니다.
총재 서 일, 부총재 홍범도,
외교부장 최진동, 참모부장 김좌진,
참모 이장녕 나중소, 군사고문 지청천,
여단장 김규식 안 무.
27소대 3500 송이 무궁화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어긋났습니다.
볼셰비키를 꺾겠다는
시베리아 10만 연합군 가운데
다른 나라는 다들 짐을 쌌지만
7만2천 일본군은 마냥 버팁니다.
그들을 돌려보낼 미끼로
레닌은 조선독립군을 내던집니다.
스보보드니는커녕
그리 가는 열차에서부터 총을 뺏기니
서 일 총재와 김좌진 장군은
돌아섰습니다만 설마 했던
홍범도 최진동 지청천 안무를 비롯한
장수들은 아무르강 오리알이 됩니다.
스보보드니에서
밀산의 편제는 있을 수 없고
박일리야 상해파 공산당에 줄을 서냐
오하묵 이르쿠츠크 공산당에 줄 서냐
목숨 건 러시안 룰렛만 주어졌습니다.
1921년 6월28일 낮2시
소비에트가 버린 사할린의용대 그리고
그를 따른 서 일과 김좌진의 부대는
제야 강의 눈물로 사라집니다.
다섯>
3.1만세를 뒤이어 무장독립을 꾀했던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들은 이로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빛바랬습니다.
순국선열들은 의젓하고 떳떳했습니다.
처음부터 이길 줄 알았으면
누군들 나서지 못하겠습니까.
허나 님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시신은커녕 이름조차
남기를 바랄 수 없음에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쳤습니다.
허나 임시정부는 비겁했습니다.
독립의 간판을 걸어놓고
패가 나뉘어 감투싸움에 날이 새고
레닌의 2백만 루블에 눈까지 멀었으며
나라 잃은 동포들 피눈물로 보낸
푼푼 후원금에 코인 팔이 하느라
촛불 군중 10만을 3백만이라
그저 부풀렸을 따름입니다.
1920년 그 무렵에는 소설을 썼고
G7에 오른다 허파에 바람든 오늘에도
일본에 열등감을 못내 버리지 못해
순국선열들 주먹으로 고질라를 잡았다
동화 속 세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싸움은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힘이 있어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ᆢ 그럼에도ᆢ
빌어먹을 조선이 팔려간지
112해가 지났음에도 아직 코리안들은
궁을주 부적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가
이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이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고 여린 놈은 덮어놓고 옳다는
언더도그마에 늘 빠지는 나라에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도
부끄러움조차 못 느끼는 국민들에게
자유공화정은 개발에 편자입니다.
여섯>
늘 야만으로 보았던 일본에 된통 당해
선조 이연이 종묘와 가족까지 버리고
달아나려한 때가 임진전쟁이었습니다.
허나 3백 해가 지난 뒤
일본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청나라는 찍소리도 못하고 나뒹굴었고
제정 러시아는 망신을 당한 끝에
시나브로 통째 위구르가 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3.1만세로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금자탑을 세웠건만
무장독립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운양호를 만난 뒤
조선에 근대의 몸부림이 없었겠냐만은
영양제를 맞기에 조선은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섭식장애의 산송장이었습니다.
3일천하로 끝난 갑신해가 그러했으며
선각자들의 온갖 피 흘림에도
조선은 역사시대 처음으로
1882~1894 원세개 총독 발 아래
'잃어버린 12년'에 파묻혔습니다.
3국간섭 뒤 마지막 근대의 몸부림이
이어졌습니다만 그를 짓밟은 이는
천황도 이등박문도 아닌
고종 이명복이었습니다.
김옥균이 다시 되지 않으려
서재필은 태평양을 건넜고
우남 이승만이 죽을 날을 기다릴 때
이미 조선의 숨은 끊어졌습니다.
가족까지 내팽개친 이연보다
이명복은 그나마 나은 놈이었습니다.
헤이그 쇼까지 펼쳤음에도
이등박문이 죽었음에도
이왕가는 그 뒤 서른다섯 해
천황가 다음 서열로
명품의 삶을 누렸습니다.
일곱>
아뿔싸.
애국지사들은 우국충정은 그득했지만
세계의 움직임에는 당달봉사였거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조선의 이름이라도 남기고
뜻대로 풀리면 여몽동맹처럼
조선을 품어 징기스칸이 되고자 했던
이등박문을 죽여 안중근은
일본 조야의 걱정을 풀어주었습니다.
구월산에서 스스로를 바친 홍암 나철.
신주를 땅에 묻고 마을을 통째 옮긴
國去吟의 석주 이상룡 그리고
못난 이명복을 어르고 꾸짖고
콩가루 같은 안팎의 독립진영까지
하나로 꿰었음에도 너무 일찍 가신
조선의 마지막 선비 보재 이상설까지
얼마나 많은 조선의 인재들이
부나방처럼 모든 것을 바쳤습니까.
허나 부질없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일본은 나날이 커져갔고 그 앞에서
최운산처럼 아무리 애쓴다 한들
독립군은 고작 한 줌이었습니다.
외려 일본 육군성
군국의 화신들 앞에서,
이등박문이 죽은 뒤
홑껍데기 자제마저 집어던지고
유라시아 제국의 야심에 들뜨던
고질라 앞에서, 조선독립군은
만주로 연해주로 파고들
좋은 핑계거리만 되었습니다.
기댈 데가 없었던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그 뒤로
줄곧 스탈린의 놀잇감이 됩니다.
동북항일연군이란 이름으로
소련의 일본 방패막이가 되었지만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나자마자
스탈린은 그들을 곧장 버립니다.
잊을 수 없는 1937년 9월9일
연해주동포 피눈물의 날.
20만 고려인을 7,163km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끌고 가며
스탈린은 충성을 다 바친 2500
이르쿠츠크 공산당을 먼저 죽이고
2만5천 넘게 저승으로 보냈습니다.
광복군은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겨웠습니다.
720만 일본군 앞에
고작 3백이 버틸 뿐이었습니다.
1945년 8월18일 조선 진공작전은
스러져간 대한독립군단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Svobodny Pilgrim Party
자유시참변 101돌 성지순례 비나리
2/2
여덟>
백색제국주의의 아류였던 일본은
남경과 하얼빈은 둘째 치고
오끼나와와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그악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일본만 있었다면
설사 자유시참변을 거듭 겪었더라도
대한독립군단은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반드시 그 깃발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그악스러웠던 수-당
선비족들과의 백년 전쟁도 이겨내고
코리아는 고향 만주를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독립군들은
곱사등이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일본에 쫓겨다닐 때
공산제국주의는 그 등을 찔렀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자유시참변과 강제이주 뿌리뽑기
신의주반공학생의거와
3.1만세 재현시위에 이르기까지
새별오름의 반란에 이르기까지
사반세기 넘도록 코리아는
‘있을 수 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법칙을 넘어 이겨내었습니다.
독립 건국은 기적이었습니다.
백색제국주의와 공산제국주의
더할 수 없이 그악스러운 그 둘과
싸워 이겨내고 살아남은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탈영했던
무리들의 끝은 비참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바랬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었든
그들의 모든 피땀은
자취 없이 지워졌습니다.
스무 살 기념으로
고동뢰 독립군 소대를 죄다 죽인
한족 공산당의 졸개이자
소련 공산당의 꼭두각시
김성주의 이름만
그 자리에 아로새겨졌습니다.
마침내 조선의용군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의 뜻에 따라
5만이 총알받이가 되어
낙동강에서 덧없이 죽어갑니다.
아홉>
저승에서
이 모든 끔찍한 역사를 지켜보신
3종사시여. 보재 어른이시여.
대한독립군단 선열들이시여.
한 세기가 되도록 이름도 찾지 못한
간도 참변의 동포들이시여.
피눈물의 연해주 동포들이시여.
아직도 열다섯인
3500 신의주 어른들이시여.
맹세합니다.
지난 6백 해
길게는 9백 해 가까이 빠져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도록
우리 목숨을 다하겠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잊으면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그 모진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새기고 사는
만주동포들과 연해주동포들
그들을 반드시 품겠습니다.
지옥에 노예로 사로잡힌 2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을 되찾겠습니다.
님들의 피가 서린 이 곳
자유시와 밀산과 화룡에
라즈돌노예와
이르쿠츠크와 바스토베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난 사람들이
와서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도록
그 기막힌 역사 앞에
이 악물고 속울음에 애끊도록
그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이 세 맹세를 새길 것이며
님들께서 굽어 살피사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열>
세 해 앞서 98돌 여름 어린 저희는
삼가 순국선열의 얼과
호국영령의 넋을 모시고
울란바타르와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 장벽까지 달렸습니다.
자유시참변 한 세기인 지난해는
반드시 모스크바와 베를린과
런던을 거쳐 워싱턴에서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에서
이겼노라 80억 앞에 외치기로 했건만
지지난해 여름 겨우,
연해주참변 간도참변 한 세기에
중공 바이러스를 핑계로
런던을 갈음해 참성단과 동묘 하옵고
홍암 보재 백야 어른을 뵈었습니다.
지난해 SPP 한 세기 또한 그저
휴전선 아래만 돌았습니다.
중공대사관이 만주가 되고
파주 설마리가 런던이 되고
제주도가 스보보드니가 되고
대구가 모스크바가 되고
미대사관이 워싱턴이 되고
그에 더하여 포천과 철원 저격능선과
화천 파로호와 춘천에서 영광에서
중공과 부역자들을 꾸짖었지만
무슨 꾀를 써봤자
성지순례를 어이 갈음하겠습니까.
엎드려 비옵나니 오로지
비나리의 사람들을 지키려 함입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한 세기가 넘은
제야 강의 공산 바이러스가 바야흐로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로
거듭나고 사람들은
그 우상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른들 뒤를 이으려는 단골들부터
그 우상 놀음에 빠지지 않고
끝내 80억을 살려낼
자유전사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하여 저희는 자유시참변 한 세기를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을 끝내고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와
맞서는 첫 해로 삼았습니다.
그 첫 발걸음은
그들의 꼭두각시부터 없애고
14억부터 자유와 인권을 돌려주는
천멸중공입니다.
홍위병 놀이로 아버지를 죽였던
올드 맑시즘은 평양이 마지막입니다.
허나 이제 어머니마저 죽이려는
네오 맑시즘은 이 아름다운 지구를
무지개 빛깔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열 하나>
자유시참변 한 세기를 지나
어느덧 101돌의 날입니다.
중공감기에 이어
우크라이나 대리전쟁까지 터지며
지구마을은 모든 것이 뒤집혔습니다.
지난달 WHO에서는 팬데믹을 핑계로
모든 나라의 주권을 빼앗는
보건비상사태 선포권을 날치기하려다
아프리카 47 나라와 BRICS의 반대로
주저앉은 바가 있습니다.
악마들이 모든 나라에
을사조약을 맺겠다는데
지구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가난한 이의 존엄한 안락사까지
마침내 트뤼도는 내놓고 떠듭니다.
빅미디어와 빅테크가
모든 진실을 묻으니 80억 인류는
눈뜬 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과
[6.25 자유의 성전]에
함께 했던 자유진영이
글로벌 좌파의 마름이 되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죽이고
미국처럼 국경을 열어
모든 나라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뒤늦게 자유와 인권을 맛본
배고픈 나라들과 권위주의 나라들이
자유를 살리고 인권을 외치며
애오라지 제 나라를 지키겠다는
거꾸로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Quo Vadis, Domine?
저희들이 어리석어
비록 하늘의 뜻을 모르오나
그 처절했던 경신년과 신유년
단 한 번도 치켜들지 못했던
자유애국군단의 깃발을 세우겠습니다.
대한민국만 아니라 80억 인류에게
나라를 넘어 자유애국의 길을 여는
글로벌 3500 전사가 되겠습니다.
열 둘>
한 세기 넘도록 지구마을
모든 공산 악연의 처음이었던 곳.
우리 SPP 東盟 이목원 부단장이 홀로
모스크바에서 블라고베셴스크를 거쳐
오늘 스보보드니 수라셰프카
제야강가에 섰습니다.
저희들 비록 몸은 가지 못하오나
그와 함께 저 푸른 제야강을
영상으로 보며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하여 비나리를 바칩니다.
순국선열들과 동포 어른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꿈과 뜻이 아로새겨진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에서
공산제국주의와 백년전쟁에 뒤이은
바이오 디지털 변태 전체주의와
마지막 전쟁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하여 님들의 얼과 넋을 모시고
천지에서 바이칼에서
발트에서 도버에서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즈믄 해를 품고 목 놓아 울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