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가계를 갖고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안이비설신(눈귀코입몸)의 굴레에 살고 있기에 보여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보여준 것은 진실이 아니고 진실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볼 수 있도록 말씀을 정확히 알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눈에 보인 것에 속기 쉽상입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면 알 길이 없으니 필요악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계보는 육의 혈통이 아닌 믿음의 혈통을 비유하여 보여준 것입니다. 그 계보는 아담- 셑- 노아-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고 많은 선지자들을 거쳐 스가랴 선지자를 지나 예수까지 이르릅니다. 예수의 계보는 믿음의 계보에 들어있지만 예수도 보여준 존재이니 그림자입니다. 그 계보의 성취가 내 안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산다."고 하셨습니다. 죽어도 살겠고가 아닙니다. 죽어야 삽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지금 내가 한 말을 가르쳐준다."고 예수님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성령이 임하고 드디어 생전 말씀을 진리로 깨달은 사도들이 나왔습니다.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으로 나타내셨지만 당신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그리스도 즉 말씀으로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아들로 오신 예수가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40일을 머무시면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비유의 말씀을 진리로 가르치는 여호와 즉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은 깨끗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더러운 말을 귀신이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신, 즉 모르는 말씀이 우리에게 귀신이 되는 것이지 따로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말씀을 모르는 우리가 귀신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부터 지구 창조론처럼 잘못 가르치고 비유를 모두 진리로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너무 멀리 변질되고 타락하였습니다. 산본성광교회 박기완 목사님의 산상수훈 시즌2를 찬찬히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오역, 누락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는 하물며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144000은 열두지파 곱하기 열두사도 곱하기 완전수 천의 수입니다. 진리가 된 자들의 수를 이렇게 비유로 나타낸 것입니다. 열둘의 의미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의 수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열, 열둘, 천, 백에 모두 진리를 가르치는 뜻이 있습니다. 비유를 믿고 있으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신천지, 불교, 기독교, 천주교 모두에게 일어납니다. 현재 다른 종교교리는 모두 구약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해야 믿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무조건 믿을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나만 믿으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꼭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처음이자 마지막 말씀인 산상수훈을 배우시고 복, 심령, 천국, 긍휼, 온유, 박해, 각종 병자들 고치심. 혼인잔치, 달란트 비유, 씨앗비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등등 겉말의 번역이 아닌 하나님이 의도가 무엇인지 해석하여 주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관한 말씀을 꼭 배워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믿음이며 평안이며 생명입니다. 신비롭게 믿거나 윤리와 도덕으로 성경을 믿으면 저차원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은 영원입니다. 영생이 아닙니다. 영원이라는 생명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고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을 해결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생명으로 살다가 죽어서도 생명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내 죄를 심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기회상실입니다. 살아있을 때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이고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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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가계를 갖고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안이비설신(눈귀코입몸)의 굴레에 살고 있기에 보여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보여준 것은 진실이 아니고 진실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볼 수 있도록 말씀을 정확히 알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눈에 보인 것에 속기 쉽상입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면 알 길이 없으니 필요악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계보는 육의 혈통이 아닌 믿음의 혈통을 비유하여 보여준 것입니다.
그 계보는 아담- 셑- 노아-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고 많은 선지자들을 거쳐 스가랴 선지자를 지나 예수까지 이르릅니다.
예수의 계보는 믿음의 계보에 들어있지만 예수도 보여준 존재이니 그림자입니다. 그 계보의 성취가 내 안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산다."고 하셨습니다. 죽어도 살겠고가 아닙니다. 죽어야 삽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지금 내가 한 말을 가르쳐준다."고 예수님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성령이 임하고 드디어 생전 말씀을 진리로 깨달은 사도들이 나왔습니다.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으로 나타내셨지만 당신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그리스도 즉 말씀으로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아들로 오신 예수가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40일을 머무시면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비유의 말씀을 진리로 가르치는 여호와 즉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은 깨끗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더러운 말을 귀신이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신, 즉 모르는 말씀이 우리에게 귀신이 되는 것이지 따로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말씀을 모르는 우리가 귀신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부터 지구 창조론처럼 잘못 가르치고 비유를 모두 진리로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너무 멀리 변질되고 타락하였습니다.
산본성광교회 박기완 목사님의 산상수훈 시즌2를 찬찬히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오역, 누락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는 하물며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144000은 열두지파 곱하기 열두사도 곱하기 완전수 천의 수입니다.
진리가 된 자들의 수를 이렇게 비유로 나타낸 것입니다. 열둘의 의미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의 수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열, 열둘, 천, 백에 모두 진리를 가르치는 뜻이 있습니다.
비유를 믿고 있으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신천지, 불교, 기독교, 천주교 모두에게 일어납니다. 현재 다른 종교교리는 모두 구약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해야 믿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무조건 믿을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나만 믿으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꼭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처음이자 마지막 말씀인 산상수훈을 배우시고 복, 심령, 천국, 긍휼, 온유, 박해, 각종 병자들 고치심. 혼인잔치, 달란트 비유, 씨앗비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등등 겉말의 번역이 아닌 하나님이 의도가 무엇인지 해석하여 주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관한 말씀을 꼭 배워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믿음이며 평안이며 생명입니다. 신비롭게 믿거나 윤리와 도덕으로 성경을 믿으면 저차원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은 영원입니다. 영생이 아닙니다. 영원이라는 생명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고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을 해결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생명으로 살다가 죽어서도 생명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내 죄를 심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기회상실입니다. 살아있을 때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이고 기도입니다.
이브라함가계가 유대이고 예수님은 그 유대인들이 버렸는데 왜 기독교에서 구약을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고향 친척 집) 익숙한 것을 떠나 보여줄 땅으로 가라 말씀을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으로 그럴수 밖에 없되요
이제는 나라구하는데 헌신해야 목사님 코로나 예배제한해도 한 일이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