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욱 목사 낮은담교회 새벽만나 2024. 07. 18 “보복하지 말라”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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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8 авг 2024
  • #서민욱목사 #낮은담침례교회 #낮은담교회 #라이트하우스울산 #새벽예배 #실시간새벽예배 #새벽기도 #아침예배
    마태복음 5:38-42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기독교한국침례회 낮은담교회(라이트하우스울산) 담임목사 김관성
    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돋질로 374번길 9
    홈페이지 : www.lowwall.org
    인스타그램 : / lowwall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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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시간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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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예배 오전 10시 30분
    금요기도회 저녁 8시
    새벽기도(월-금, 온라인) 새벽 6시
    헌금 및 후원계좌 : 농협 351-1238-5776-83(낮은담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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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담교회”
    CCLI Licence #755232
    CCLI Streaming License #2366411

Комментарии • 4

  • @joykim7557
    @joykim7557 Месяц назад +1

    아멘 ,까짓꺼 당당하고 씩씩하게 돌려댑시다~^^

  •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Месяц назад +1

    까지것 당당하고 씩씩하게 돌려댑시다

  • @Valhir_
    @Valhir_ Месяц назад +1

    2024년 7월 18일 "보복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7장은 신약성경의 정수 라고도 하는 산상수훈입니다. 8복 이후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보복하지 말라, 원수 짓지 말라로 구성된 6 가지 안티 테제(반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반제의 특징은 '옛 사람이 말한 바' 라며 하나의 테제를 제시하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시며 예수님이 옛 이야기에 대한 반대의 테제를 선포하시는 방식을 이룹니다. 옛 사람이 말한 바는 모세의 율법을 가리킵니다. 옛 율법에 대한 반대의 테제를 예수님께서 선포하는 것이 6 가지 반제(안티테제)라 보고 있습니다.
    안티 테제를 통해 예수는 모세의 율법의 권위를 능가하는 메시아적 존재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적 존재가 옛 율법의 규범을 뛰어 넘는 새 시대의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반제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며 오히려 율법을 능가하는 새 시대의 의를 선포하십니다. 일명 '바리새인과 서기관 보다 더 나은 의' 인 윤리적으로 더 높은 수준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옛 율법은 실제로 죄를 지어야 죄로 간주되므로 마음의 죄는 저촉 받지 않습니다. 실제로 살인, 실제로 간음하다 적발됐을 때 정죄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 범한 죄의 기저에 존재하는 마음과 동기의 문제를 지적하신다는 것이 반제의 핵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며 때리고 싶은 마음 만 먹어도 살인죄가 됩니다. 여인에게 음욕을 품고 탐하겠다 생각하며 작정하는 순간 음행에 해당합니다. 혼인은 더 신성해 집니다. 맹세가 필요 없을 만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결코 쉽지 않으며 그 정점에 오늘의 본문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일명 보복 포기(금지)법, 대적 금지법이라 이릅니다.
    '옛 사람이 말 한 바' 가 생략되었지만 문맥 상 동일합니다(38). 모세오경에서 끊임 없이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유명한 '동해(태)보복(복수)법'입니다. 모세 오경 뿐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일찍이 발견됐습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배로 갚아 주고 싶은 심리이지만 당한 만큼 만 돌려 주라는 법입니다. 상호간 폭력이 더 크게 번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탁월한 기능의 법입니다. 고대시대 부터 예수님이 살던 그리스 로마시대 까지 나아가 수천년 간 범 시대적으로 널리 인정 받은 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제를 통해 그걸 뒤엎으십니다.
    대적하지 말라(39)의 대적은 '안티스테미'로 맞서다 보복하다 저항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걸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온 폭력에 맞서고 저항하며 보복하지 말라시는 예수님은 심지어 두배로 당해 주라는 충격적 제안을 하십니다. 왼손 사용은 상대를 업신 여기는 행위이기에 인격적인 사람은 왼손을 쓰지 않던 시대입니다. 오른뺨을 맞으려면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고대 문헌을 통해 보면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 보다 훨씬 모욕적 행위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욕을 참고 왼뺨도 돌려 주라십니다.
    이런 어려운 윤리 수준의 법을 요구하시니 2천년 간 신학자 들 사이에 해석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보복을 포기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문자적으로 지킬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많은 신학자 들로 갑론을박하게 했습니다. 기독교 현실주의자 들은 완성된 천국에서 가능하거나 이생에서의 이상향이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지킬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면서도 외국에서 전쟁을 걸어 오면 맞고 만 있지 않고 돌려 줍니다. 동해 보복법이나 혹은 필요에 의해 그 보다 더 큰 폭력으로 응징합니다. 기독교 현실주의 신학자 들의 지지를 받으면서요.
    두번째, 마틴 루터 같은 학자 들은 예수님이 일부러 지킬 수 없는 윤리적 규범을 통해 우리의 죄인됨을 알려 주려하신 것이란 해석을 지지합니다. 세번째, 마틴 루터 킹이나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류의 사람 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의 핵심 가치인 무폭력 무저항으로 끝까지 말씀의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마지막 처럼 우린 보복 포기법을 문자적으로 수용하며 끊임 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희생적인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실제적 규범이 아닌 그저 고상한 이상에 불과하다면 복음서는 우리 삶과 상관 없는 위인전이나 교양서적의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리 어려운 법을 주셨음에도 어떻게든 치열하게 우리 삶에서 회피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우리의 제자도의 근간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누군가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했을 때 수동적으로 순응하며 얻어 맞고 만 있어야 하는가, 도리어 상대의 악을 방조하고 인정하는 행위가 되지 않겠는가 라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강력한 예수님 방식의 규범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할까요?
    학자 워터 핑크는 보복법이라는 개념에 있어 우리가 관점의 전환을 시도할 것을 제안합니다. 일반적으로 폭력을 당했을 때 두 가지 대응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동해 보복법으로, 또는 몇 배로 돌려 줄 수 있겠죠. 두번째는 예수님의 말씀 처럼 수동적으로 당하는 법입니다. 워터 핑크가 제안하는 제 3의 길은 능동적인 보복 포기입니다. 수동적으로 얻어 맞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무저항 무폭력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저항할 지혜나 힘이 있지만 보복을 포기하는 것이죠.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자 들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자 폭력에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라는 점을 지지합니다.
    역사적으로 무폭력 무저항 운동이 실제로 있어 왔습니다.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셀마 행진 같은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해 많은 흑인 들이 함께 무력에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 나가며 말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힙니다. 우리 나라에도 영광스런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거나 수동적으로 당하지 않고 무폭력 무저항의 3.1 운동을 통해 그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식입니다.

    • @Valhir_
      @Valhir_ Месяц назад +1

      '고발하여(40)'는 헬라어 '크리데나이'로 법정 송사에 사용된 용어입니다. 억울하게 법정 송사에 휘말렸을 상황을 전제합니다. 겉옷은 자신의 물리적 환경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입니다. 아무리 전당 잡히더라도 해 지기 전엔 무조건 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율법의 겉옷에 대한 개념입니다. 본문은 그것 마저 포기하라고 합니다. 겉옷에 대한 권한이 있더라도 필요하다면 줘 버리란 아주 무서운 저항 방법이죠.
      '오리를 가게 하다(41)'의 헬라어 '앙가류오'는 군사용어입니다. 로마 점령군이 자신 들의 편의를 위해 민간인 들에게 강제로 군장을 나르게 할 때 딱 5리의 천 걸음 만큼으로 실제 로마법으로 지정돼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옆의 군인이 군장을 지우고 가게 하거든 10리를 의도적으로 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로마의 사회 정치적 압제에서 예수님의 정신을 따랐던 초대 교회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은 기독교인을 못살게 구는 원수 들의 폭력에 같은 폭력으로 대응하거나 혹 그저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방법을 도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저항 방식을 선택했죠. 오른 뺨을 때리면 적극적으로 왼 뺨을 돌려 주라, 오리를 가게 하는 사람과 의도적으로 십리를 동행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12군단도 더 되던 천사 들을 불러 로마를 한 방에 골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지만 끝까지 보복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짊어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방법으로 세상을 완전히 전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 정신이 무력으로 점철된 거짓 팍스 로마나를 침몰시키는 게 바로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세상 살아 가다 보면 마찬가지죠. 회사 내 횡행하는 갑질, 수직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무언의 폭력과 압제 들에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은 제 3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맘 먹고 복수하려면 수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예수님 처럼 당당하고 씩씩하게 동해 보복의 권한을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끝까지 평화적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제의 핵심이자 참 승리의 길입니다. 그래서 8복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복이 있다,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는 천국 소유의 복이 있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살다 보면 주위에 나르시스트 같은 사람 들이 많습니다. 상대의 순응적 태도를 자신의 에너지 처럼 쪽쪽 빨아 먹고 삽니다. 상관 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응할 때 견디기 쉽지 않습니다. 보복하자니 그리스도인으로 옳지 않은 것 같고, 순응하자니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이럴 땐 돌 처럼 침묵해 버리는 것도 저항중 하나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고 아닌 것은 정중하게 아니라 말하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할 일은 두 세 배로 성실하게 해 내는 겁니다. 더 잘 해 주고 때론 의도적으로 당해 줘 버리는 것이 보복 포기법의 핵심입니다. 대신 당당하고 씩씩하게 기 죽지 말고 하십시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제 3의 길 능동적 무저항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는 여러 유무형의 물리적 폭력으로 부터 주님의 방식으로 저항해 보십시오.
      기도
      1. 누군가의 갑질에 상처 받지 않게 우리 마음을 지켜 주소서
      2. 내 마음 속에서 불 붙 듯 일어나는 증오를 잠잠케 하소서
      3. 예수님 처럼 우리도 보복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