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자전] 묘역 전체가 문화재인 영해군 이장과 요절 후 약혼자 상복논쟁이 벌어진 담양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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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2 ян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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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군(寧海君) 이장(李璋)
영해군(寧海君) 이장(李璋)은 세종의 17남이자 서9남이며 어머니 신빈 김씨에게는 5남이 되는데 세종 17년인 1435년 3월 20일 밤에 태어났습니다.
영해군은 어렸을 때부터 너그러웠고, 자라면서는 덕의와 절의가 있어 스승과 공부할 때는 화려함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하며 후손들에게 관인대도와 검소질박의 본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평산신씨를 부인으로 맞아 영춘군· 길안도정의 2남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43세에 별세했으며 나라에서는 안도(安悼)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묘소는 서울 도봉산 무수동에 있고 전북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 소덕사에 위패를 모셨는데 소덕사에서는 해마다 기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사당명은 공의 관계가 소덕대부라 소덕사라고 일컫습니다.
영해군 묘 주변에는 다른 가족들의 묘도 자리해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는데 영해군 가족 묘역은 1997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받았습니다.
원래는 영해군의 아들 영춘군의 신도비만 이인신도비(李仁神道碑)란 명칭으로 지정받았는데 2008년 10월 30일에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이란 이름으로 바뀌면서 묘역 전체가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장남 영춘군은 부친의 인덕을 바탕으로 효행이 지극해 왕실의 은총을 받았고 영춘군의 차남 강녕군은 알뜰하게 가꿔진 꽃밭과 정결한 집을 가졌었는데 연산군의 내폐(內嬖)가 이 집을 탐내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강녕군이 불응하자 내폐의 고자질로 연산군은 크게 노해 주인과 가노를 붙잡아 가두고 문초했고 이 일로 강녕군 부자와 여러 형제는 남해 섬으로 귀양살이를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