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을 알릴레오 북스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유투브에 나온 작가님 동영상 다 들어야겠네요^^ 작가님 말씀에 공감하며....저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얼마 전 집 근처 물류센터에서 하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오, 다들 왜 그리 빨리 열심히 일해야만 되는지....
그림 노래 힘 수리 흙 삽질 운동 공부 개울 하인 민중 종일 농사 인내 모 신문 노동 특징 마음 씀씀이 작가 관찰 호기심 상상력 언어적인 능력 표현력 천부적 지향점 공상 욕망 욕심 인정욕구 명예욕 정 지아 천박 결국 책 일기장 딸바보 곽 지선 흉 멍텅구리 영악 구례 기억 총합 무관심 성장기 부적응 향우회
이상과 노래를 좋아 했던 별난 공산주의자 정율성과 부친 영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영화 주제 곡을 들으면 뭔가 혼이 빠져든다. 그래서 인지 딸애가 7살 때 좋아하는 노래가 소련 국가였다. 유튜브에서 즐겨 찾아 듣기에 왜 좋아 하냐고 하니 그냥 웃기만 한다. 곡이 얼마나 좋았으면 소련이 붕괴되자 가사만 바꿔 러시아 국가로 이어졌다. 북한 애국가를 들으면 남한 애국가 이상으로 잘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전 대북 전단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베이징 역에서 이다. 역사 안에 여기저기 삼성 핸드폰 광고도 놀라웠지만 역 탑의 대형 시계 시침이 한 시간 될 때마다 은은히 울리는 이란 모택동 노래가 감미로웠다. 수 천 만을 죽인 모택동이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공산 혁명의 바람을 불게 한 이상으로 역시 억 눌린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든다. 이 기운을 따서 중국 국가도 만든 것이다. 역시 그 비장함에 이념을 뛰어넘어 남한 영화에 반영할 정도이다. 14억 중국의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만든 정율성은 남한의 광주사람이다. 그의 음악 기질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에 반해 기독 교회에서 배양 되어 시작된다.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연안의 모택동 부대에서 현재의 중국 군가를 만든다. 815 해방 후에는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군가를 만든다. 조선 인민군 협주단도 그가 창립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의 숙청 기운이 싫어 중국으로 다시 갔지만 역시 문화 대혁명에서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한편 그가 연안에서 창작한 노래들은 폐기되는 수모를 겪는다. 작곡가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그가 유일하게 남긴 육성 노래는 이다. 주 특기인 혁명 가요가 아닌 것이다. 은 미국 민요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결혼하였는데 결혼 한 해에 죽자 그녀를 추억 해서 만든 노래였다.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악하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공산 이념에 맞지 않게 별난 행보자들도 있다. 또 평등 사회를 추구하는 노래를 잘 만들 만 큼 감성적인 자도 있다. 정율성과 같은 청년 기부터 공산주의를 신봉한 저의 부친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전라도 익산군 선전 비서로 부친은 절대 학살을 못하게 막아 나섰다. 빈자가 부자를 죽인다고 나서면 며 통제하여 관할 지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부친에게 보호를 받은 부자들이 보증 서겠으니 당신은 북한으로 가지 말라 하였으나 공산이념이 좋아서 가셨다. 부친 역시 노래를 좋아하셨다. 1970년대 중반 북한에서 집 몇 채 살 가치라고 할 정도인 소련 제 전축을 소지한 유일한 집이었다. , 노래를 애창하셨다. 하지만 정율성이 죽기 전에는 를 부른 것처럼 부친 역시 였다. 1946년부터 남로당원으로서 나름의 백전 노장이지만 당수 박헌영이 미제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니 남 출신들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자녀들까지 출세 길이 막힌 꼴을 본다. 일생을 평등 사회를 위해 바친 부친은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기신다. 나는 과학 연구와 공부를 하다 흔히 새벽 1시 정도에 퇴근하였다. 집으로 가는 허허벌판 길에서 어른의 통곡 소리가 난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뜻밖에도 부친이었다. 은퇴를 앞둔 부친은 그 후 2년도 못 사시고 자살 아닌 자살하셨다. 부친은 평등을 찾아 월북 하셨다. 그 아들인 나는 자유를 찾아 월남 하였다. 부자가 대를 이어 살아 본 공산 사회를 집약화하여 결론 한다. . 공산주의 이상과 노래를 좋아했던 정율성과 부친을 이제 와서 어떻게 보아야 할 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있습니다. 경쾌한 문장에 웃다 울다 했습니다. 멋진분을 알게되어 기분 좋은 겨울밤입니다. 책보다 부러 찿아본 이 강연도 참 좋네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알릴레오에서 작가님 보고 책 사서 읽고 작가님 펜이 되었어요..너무 재미있으세요..작가님 말씀 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뵈러 구례가고 싶어요~~~
넘 부럽네요~~ 이런 작가님이 사시는 동네에 산 것도 대단한 운 같네요~~ 알릴레오에서 본 이후 펜이 되었습니당!!❤
빨신산 작가 화이팅
정 지아 문학박사
지리산 구례 화이팅
귀한 삶에 경험담
감사히 잘 듣고 갑니다
이영상을 보신 모든
분들 항상 건강 하세요
작가님 책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작가님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 듣게되네요
조정래선생님의 태백산맥을 읽고 났을때.. 당시에 산으로 간 사람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염상진 하대치나 정하섭의 자식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하는...그 이야기가 바로 작가님의 삶이었네요.
와~찐 감동입니다.감사합니다♡
작가님을 알릴레오 북스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유투브에 나온 작가님 동영상 다 들어야겠네요^^
작가님 말씀에 공감하며....저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얼마 전 집 근처 물류센터에서 하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오, 다들 왜 그리 빨리 열심히 일해야만 되는지....
반네~~
우리고숙집이 구례반네~
추억이새롭네요~
반네골ㅋ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우리민족 전설적인 민주혁명가 이현상선생님을
흠모하는 피아골태생
왕재석 입니다
정유재란때 호남을지켜낸 고광명선생 묘비에서(피아골연곡사) 뛰어놀던 유년시절이 너무그립습니다
재미있게 잘들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 😍 😁
우리 엄마 고향.. 아름다운 구레
천상 이야기꾼이시다
햐, 이런 토로를 촌구석 구례 사람들 몇명 있는 곳에서 펼치다니...
한국의 석학이나 세계적 석학의 강의보다 100배 천배 더 머리에 마음에 와 닿는다.
OMG~ 오늘 무슨날이지??. 낮에 정작가님 오마뉴 인터뷰 우연히 보게 되면서
아 그렇구나?. 이분이 그 분 이구나?. 했는데 이시간 로긴하니깐 '구례tv'란 채널을
만남니다. 우선 반갑습니다. 응원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구례로 이사가고 싶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을 존경해야 하지만, 그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현실에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선 안된다.
그림 노래 힘 수리 흙 삽질 운동 공부 개울 하인 민중 종일 농사 인내 모 신문 노동 특징 마음 씀씀이 작가 관찰 호기심 상상력 언어적인 능력 표현력 천부적 지향점 공상 욕망 욕심 인정욕구 명예욕 정 지아 천박 결국 책 일기장 딸바보 곽 지선 흉 멍텅구리 영악 구례 기억 총합 무관심 성장기 부적응 향우회
단어들을 나열해 놓으셨군요
이상과 노래를 좋아 했던 별난 공산주의자 정율성과 부친
영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영화 주제 곡을 들으면 뭔가 혼이 빠져든다.
그래서 인지 딸애가 7살 때 좋아하는 노래가 소련 국가였다.
유튜브에서 즐겨 찾아 듣기에 왜 좋아 하냐고 하니 그냥 웃기만 한다.
곡이 얼마나 좋았으면 소련이 붕괴되자 가사만 바꿔 러시아 국가로 이어졌다.
북한 애국가를 들으면 남한 애국가 이상으로 잘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전 대북 전단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베이징 역에서 이다.
역사 안에 여기저기 삼성 핸드폰 광고도 놀라웠지만
역 탑의 대형 시계 시침이 한 시간 될 때마다 은은히 울리는
이란 모택동 노래가 감미로웠다.
수 천 만을 죽인 모택동이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공산 혁명의 바람을 불게 한 이상으로
역시 억 눌린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든다.
이 기운을 따서 중국 국가도 만든 것이다.
역시 그 비장함에 이념을 뛰어넘어 남한 영화에 반영할 정도이다.
14억 중국의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만든 정율성은 남한의 광주사람이다.
그의 음악 기질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에 반해 기독 교회에서 배양 되어 시작된다.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연안의 모택동 부대에서 현재의 중국 군가를 만든다.
815 해방 후에는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군가를 만든다.
조선 인민군 협주단도 그가 창립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의 숙청 기운이 싫어 중국으로 다시 갔지만
역시 문화 대혁명에서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한편 그가 연안에서 창작한 노래들은 폐기되는 수모를 겪는다.
작곡가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그가 유일하게 남긴 육성 노래는 이다.
주 특기인 혁명 가요가 아닌 것이다.
은 미국 민요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결혼하였는데
결혼 한 해에 죽자 그녀를 추억 해서 만든 노래였다.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악하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공산 이념에 맞지 않게 별난 행보자들도 있다.
또 평등 사회를 추구하는 노래를 잘 만들 만 큼 감성적인 자도 있다.
정율성과 같은 청년 기부터 공산주의를 신봉한 저의 부친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전라도 익산군 선전 비서로 부친은 절대 학살을 못하게 막아 나섰다.
빈자가 부자를 죽인다고 나서면 며
통제하여 관할 지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부친에게 보호를 받은 부자들이 보증 서겠으니
당신은 북한으로 가지 말라 하였으나 공산이념이 좋아서 가셨다.
부친 역시 노래를 좋아하셨다.
1970년대 중반 북한에서 집 몇 채 살 가치라고 할 정도인
소련 제 전축을 소지한 유일한 집이었다.
, 노래를 애창하셨다.
하지만 정율성이 죽기 전에는 를 부른 것처럼
부친 역시 였다.
1946년부터 남로당원으로서 나름의 백전 노장이지만
당수 박헌영이 미제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니
남 출신들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자녀들까지 출세 길이 막힌 꼴을 본다.
일생을 평등 사회를 위해 바친 부친은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기신다.
나는 과학 연구와 공부를 하다 흔히 새벽 1시 정도에 퇴근하였다.
집으로 가는 허허벌판 길에서 어른의 통곡 소리가 난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뜻밖에도 부친이었다.
은퇴를 앞둔 부친은 그 후 2년도 못 사시고 자살 아닌 자살하셨다.
부친은 평등을 찾아 월북 하셨다.
그 아들인 나는 자유를 찾아 월남 하였다.
부자가 대를 이어 살아 본 공산 사회를 집약화하여 결론 한다.
.
공산주의 이상과 노래를 좋아했던 정율성과 부친을
이제 와서 어떻게 보아야 할 가?!
운전자만 바뀔뿐입니다 이념은 허울(거짓) =권력유지 이용에 쓰이면 살아남고(나눠먹고) 이용에 걸림돌이면 제거되는겁니다 따라서 줄잘서야합니다(🤣).
완장이 없어 못할뿐입니다 완장만 차면 더하겠지요(=끝없는 탐욕인간(탐욕 유일한 포유류) =하나 가지면 +두개갖고 싶고 두개 가지면 +다 갖고 싶고 +다 갖으면 +더 갚고 싶은건 너나할것없이 마찬가지) 무식한것들은{가방끈(학력) 상관없이} 더욱더 무대뽀로..... 극소수는 빼놓고요 맨정신은(이념직시) 도태(🥺).
공산당이 그렇게 좋으면 남한에서 자본주의의 꿀빨지 말고 월북해서 강제수용소에서 죽으때까지 개고생 해라 이빨갱이 간첩아
하기사 기억은 동물일수록 더 또렸하다.
던져놓고 살아남으라!
천하태평농법이라는 신농법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