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는 같이했는데 왜 노태우는 전두환보다 비판을 덜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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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7 мар 2024
  • #노태우 #전두환 #하나회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에 성공한 하나회는 이후 정권의 핵심 보직에 배치되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하나회의 리더였던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는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걷게 되는데요.
    쿠데타의 성공으로 수경 사령관 장태완이 연행되고, 공석이 되어버린 자리에 노태우가 임명됩니다.
    이후 1980년 8월.
    보안 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두환은 핵심 보직이었던 보안 사령관으로 자신의 친구 노태우는 임명하며, 중장으로 진급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육군 중장이 된 노태우는, 정확히 1년 지난 1981년 7월.
    중장으로 진급한지 딱 1년 만에 육군 대장으로 다시 한번 진급하게 되고 예비역 대장 신분으로 군대를 전역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노태우는 5공화국의 핵심 보직을 연달아 역임하게 되는데요.
    전두환이 만든 집권 여당인 민주 정의당의 당무 위원, 초대 정무 제2장관, 대통령 외교 안보 담당 특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초대 체육부 장관, 41대 내무부 장관, 88올림픽 조직 위원장, 대한체육회 회장, 제12대 국회의원, 그리고 민주정의 당 총재를 역임하게 됩니다.
    노태우는 전두환과의 친분으로 수많은 핵심 요직을 맡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다양한 정계 활동은 그가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으로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수습안을 발표하자, 비록 전두환의 최측근이자 군부 측 인사였음에도 노태우의 민심은 긍정적으로 비치게 됩니다.
    결국 1988년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변경되었고 민심이 노태우의 손을 들어주며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헌법까지 고쳐가며 임기를 7년으로 늘려버린 것과는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이후 두 사람이 같은 하나회 소속이었음에도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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