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성' 그 자체만의 이야기가 아닌, 성에 얽힌 맥락? 이야기? 그 안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풀어주셔서 아마도 저에겐 더 와닿는 듯 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왜성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듯.. 수백년 이후 그 장소는 어떤 이야기들을 더 품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될까요?ㅎ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울산에 병영성도 있지요 옛 울산이 옛 부산보다 더 큰 도시 였지요 조선시대 부산은 부산이라는 명칭보다 각기 다른 지역으로 나눠져 있어서 다대포에는 첨사가 동래에는 부사가 부산진에는 첨사가 각기 있엇는데 이들은 종 3품이었고 울산에는 종 2품인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던 곳인데 수군은 다릅니다 수군절도사가 종3품이지만 충청 전라 좌우 경상 좌우 수군의 총 사령관이 종2품 통제사 이지요 원균과 이순신 장군님이 수군절도사랑 통제사를 역임하셨습니다
오잉? 울산왜성이 학성공원이 아니였나요? 도산이라구요? 다시 가야겠네여. 근데 현장에서는 학성 공원이 울산 왜성이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서생포 왜성은 기록으로만 봤는데 기회가 되면 직접 가보고 싶습니다. 정유재란때 최대의 전투였던, 아니 사실 임란 전체중 가장 많은 야전군이 격돌했던 전투인데 의외로 지금까지 외면된 느낌입니다. 조명연합군이 5만4천, 왜군은 카토군 2만에 구원군 6만, 총 8만,,, 그러면 최대 13만 병력이 울산 일대에서 격돌했으니 15만이 모였다는 선산 일리천 전투 이래로 최대 규모의 전투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차라리 권율이 순신이 형이랑 합세해서 순천왜성의 고니시를 공격했다면 높은 확률로 다이묘오급 지휘관과 직속 군단 하나를 박살낼 수 있었는데 아쉽기는 합니다. 조선이 가토에 대한 원한이 깊은탓도 있었을 겁니다. 이때도 명군 측 사령관이 마귀나 양호 정도는 되어야 겠고 유정이였으면 그닥,,, 좋은 영상 늘 감사드립니다.
@@사적돌 /앗, 그러면 제가 제대로 간것이였군요. 흐미. 안내판이 잘못 되지는 않았군요. 권율의 1차 울산성 전투때 임란 당시 가족을 잃은 충의 복수군이 주력이였다고 했는데 이들중 상당수 전사해서 경주로 후퇴해서 점고해보니 1/5도 못 살아남은 것으로 기억 하고 있었는데 실제 통계상으로는 전멸까지는 아니였나 보네요. 아뭏든 그래도 임란 내내 왜성 하나 제대로 못 깨뜨려서 아쉽기는 합니다.
정말 왜성 관련 리뷰 영상중 가장 이해가 쉬운 영상이네요.......................정유재란의 왜성 전투도 흥미진진 잘 다뤘구요.....드론 영상도 최고!!!
오 다행입니다😄 열심히 제작하겠습니다😌
정말 유익하고 좋은 채널인것 같습니다.
저 같은 역알못 귀에도 쏙쏙 들어오네요 :)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우와~ 임진왜란 역사가~~~ 쭈욱! 언릉 10만! 실버 되세요!
덕담 감사드립니다😄
늘 잘보고 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제작하겠습니다😄
Thanks!
오 후원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돌아다니겠습니다😌
저녁시간에 잘 봤습니다~
따뜻한 저녁 보내세요^^
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울산 성 전투이후 가토는 조선에서 정유재란 철수 후 자기 영지에 쿠마모토 성을 축성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우물을 성 내에 파고 고구마 줄기를 엮은 먹을 수 있는 다다미로 성을 장식했지요. 정말 울산성 전투에서 가토가 얼마나 치 떠는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 덧글 감사드려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울산왜성과 서셍포왜성에 대한 전쟁 현황을 쉽게 설명해 주셨네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울산 왜성과 서생포 왜성은 완전히 다른데
영상에 그 두 성 각각의 이름을 적어 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글씨가 작았나봅니다, 앞으로 더 크게 넣겠습니다😌
다른 지역의 왜성도 다뤄주실수 있으실까요? 넘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오 웅천왜성 안골포왜성 입니다😄
ruclips.net/video/NxXNn-XXQdY/видео.html
❤❤❤
오 시청 감사드려요😄😌
남한산성도 돌다 보면 왜성의 양식을 본따 증축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임용한 박사님이 함께 답사했었을때 설명해주셨죠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재미있지요 외국인 귀화시키는것에도 적극적이었고, 왜성의 장점을 받아들이는것도 적극적이었어요 조선이 이리 열린사회였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임진왜란의 대략적인 진행 과정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자세한 전투를 현재의 지형과 함께 설명을 들으니 더 실감나고 흥미롭습니다
왜성이 복합적이어서 지형과 같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듯합니다😌
늘멋진영상 감사드립니다
왜란이유에도 조선에전초기지로 활용했다면 왜군들이
성곽기술에 조선보다커기에 활용했지않을가요
가토가 울산에성을 축조했던 큰이유는 영상에나왔던것처럼
경상도일대에 아군즉왜군이 많이있어고 또한해안가있기에
축조하지 않을가요
당시조명 연합군이보기에는 가토는 풍신수길이가장 믿는
선봉장중에 한사람이기에 받든시상대했야기에. 전럭을 다하지
않을가요. 가토가울산에서 패배가 심했서 성을지읉때에. 우물읕
많이파다고 하는데
요청했던 영상오려주셨서 감사드립니다
오래 걸려서 송구합니다😌 이왕이면 가토를 잡았어야 했는데 아쉽지요😄
단편적인 '성' 그 자체만의 이야기가 아닌, 성에 얽힌 맥락? 이야기? 그 안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풀어주셔서 아마도 저에겐 더 와닿는 듯 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왜성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듯.. 수백년 이후 그 장소는 어떤 이야기들을 더 품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될까요?ㅎ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는 결국 사람에의해 기록되고 쌓이는것이니 조금이라도 좋은 이야기를 남기려하고있습니다😌
채널 주인장님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면 500년전 그 당시의 풍경과 모습이 머리속에서 펼쳐지는 아주 오묘한 경험을 합니다.
오 영상을 깊이 즐겨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5:28 영혼의한타 ㄷㄷ
아, 저때 잡았어야 했는데요😡
와... 드론까지.. 존경합니다. 저도 유적 탐방 유튜브 생각만 하다가 이거 보고 지려서 접어요 ㅎㅎ
오 드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색다른 영상이 나올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토 기요마사를 구하러 울산까지 왔나보죠?
둘이 앙숙 사이인데도?
직접오지는않고 병력을 보내줬습니다. 각개격파를 두려워했지요😌
예전에 서생포 왜성 답사를 했었는데, 규모가 엄청 나더군요.
음청 크지요, 외성에 배를 댔다고도하니..
울산성 전투에서 가토기요마사를 참수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ㅠㅠ
그때 잡았어야했는데 말이죠😞
학성공원 올라가다보면 점집이나 무당집이 많던데 뭔가 원래 강이였던 습한곳 +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가 나온곳 해서 그런무속건물이 많은가 하는 생각도들었습니다 ㅋㅋ
오 점집이 많군요😮 그러고보면 음기가 든곳에 점집이 많네요🤔
울산에 병영성도 있지요 옛 울산이 옛 부산보다 더 큰 도시 였지요 조선시대 부산은 부산이라는 명칭보다 각기 다른 지역으로 나눠져 있어서 다대포에는 첨사가 동래에는 부사가 부산진에는 첨사가 각기 있엇는데 이들은 종 3품이었고
울산에는 종 2품인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던 곳인데 수군은 다릅니다
수군절도사가 종3품이지만 충청 전라 좌우 경상 좌우 수군의 총 사령관이 종2품 통제사 이지요 원균과 이순신 장군님이 수군절도사랑 통제사를 역임하셨습니다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오잉? 울산왜성이 학성공원이 아니였나요? 도산이라구요? 다시 가야겠네여. 근데 현장에서는 학성 공원이 울산 왜성이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서생포 왜성은 기록으로만 봤는데 기회가 되면 직접 가보고 싶습니다. 정유재란때 최대의 전투였던, 아니 사실 임란 전체중 가장 많은 야전군이 격돌했던 전투인데 의외로 지금까지 외면된 느낌입니다. 조명연합군이 5만4천, 왜군은 카토군 2만에 구원군 6만, 총 8만,,, 그러면 최대 13만 병력이 울산 일대에서 격돌했으니 15만이 모였다는 선산 일리천 전투 이래로 최대 규모의 전투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차라리 권율이 순신이 형이랑 합세해서 순천왜성의 고니시를 공격했다면 높은 확률로 다이묘오급 지휘관과 직속 군단 하나를 박살낼 수 있었는데 아쉽기는 합니다. 조선이 가토에 대한 원한이 깊은탓도 있었을 겁니다. 이때도 명군 측 사령관이 마귀나 양호 정도는 되어야 겠고 유정이였으면 그닥,,, 좋은 영상 늘 감사드립니다.
도산성=울산왜성=증성=학성공원 입니다😅 전투결과가 뚜렷하지 않아서 인듯합니다. 우리피해가 더 컷고요.. 물론 전략적 파급효과는 반대였지요😌
@@사적돌 /앗, 그러면 제가 제대로 간것이였군요. 흐미. 안내판이 잘못 되지는 않았군요. 권율의 1차 울산성 전투때 임란 당시 가족을 잃은 충의 복수군이 주력이였다고 했는데 이들중 상당수 전사해서 경주로 후퇴해서 점고해보니 1/5도 못 살아남은 것으로 기억 하고 있었는데 실제 통계상으로는 전멸까지는 아니였나 보네요. 아뭏든 그래도 임란 내내 왜성 하나 제대로 못 깨뜨려서 아쉽기는 합니다.
반구동이면 반구대 암각화있는 그동네인가요??? ㅎ 나중에 당연하겠지만 노량도 나오겠네요 ... ㅎ 영화개봉도 1달 정도 남았고 ... ㅎ 서생포왜성은 순천왜성보단 좀 힘들겠네요 .. 완전 산에 올라가는 기분일것같습니다. ... ㅎ
아니요 반구대 암각화랑 거리멀어요.서생포 왜성은 주차장에서 천수각까지 약 20분정도 걸어야 합니다. 지성에서 부터 걸으시면 1시간도 넘게 걸릴 겁니다.겨울에도 숨이 좀 차고 등에 땀이 촉촉히 맺힙니다.벚꽃이 만개할 때 오세요.
아 노량이 개봉하는군요😮 순천왜성 촬영이 어려워져서 아쉽습니다😞 일단 드론이 안되네요
일제시대가 길었다면.. 대천수각도 복원됐을까 싶네요... 아닌게 다행이지만..
그랬겠지요 왜성에갈때마다 일본인들을 만납니다😌
@@사적돌 ..일본인들이 온다니...묘하네요
일본성 보기엔 작은 건물로 보이지만 입구에서부터 미로의 연속으로 진입시 다구리 맞기 딱 구조의 연속이죠
많은 죽음이 있어도 함락하지 못하는 왜성...
방어력만큼은 대단하지요, 우리성과는 다른 목적의 성,,🤔
아니 저런 공성전에서 우린 배운게 없네요.
임진왜란 이후 축성된 성들에서 왜성의 장점을 받아들인부분이 발견됩니다. 죽주산성 모서리돌이나, 내성의 복합축조같은것들입니다😌
왜 울산이 임진왜란 시 성까지 쌓고 지킬 정도로 중요했는지 모르겠네요 부산을 지키려면 오히려 경주쪽이나 밀양쪽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지
경주와 가장 가까운 왜성이 울산왜성이었습니다. 경주는 박의장이 탈환한 후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왜군이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지요,
배를 접안할수 있는 가장 북단이기도 했지요😌
울산왜성에 일본군이 주둔했을땐
울산은 조선인이 살지 않고 더 윗지방(경주방면) 에 거주 했나요?
일본군에게 사로잡힌 조선인들이 부역하고 있었지요😌
일본이 쌓은 왜성이 견고했다고들었는데... 과연 견고해보이네요 .
수많은 전쟁의 정수인듯합니다😌
@@사적돌 생각해보니 긴 내전에서 터득한것 같네요.
우리 조선백성을 동원해 혹독하게 축성시켰겠지요?
근사하게 남아있는 성벽이 슬프네요
서생포왜성은 연인원 10만을 동원했다고하네요, 우리 조정에서는 의외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준다해서 축성에 적극적이지 않았었지요, 조선초 관방유적 정비할때도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고 이후에는 소극적이됩니다😮
[울산왜성 전투 - 1597년]
공격 : 조•명연합군5만(조선군1만5천,명군4만)
명군장군 - 양호,마귀. 조선군장군 - 권율
선거이,정기룡
방어 : 왜군1만8천. 왜군장군 - 가토 기요마사
모리 히로타데
덧글 감사드립니다😌
나는서생사람이다
시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