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4년 2월 18일 원나라 세조 홀필렬(쿠빌라이 칸)은 노환으로 쓰러졌다. 향년 80세였고 고려국왕 충렬왕 왕거가 원나라에 와서 백마 아홉필을 바친지 한달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고려인들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이는 고려를 복속한 홀필렬이 고려국왕 충렬왕 왕거를 사위로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홀필렬 그는 격동의 13세기 초엽에 타뢰의 4째아들로 태어나 동생 아리불가와 4딸라와 제위를 두고 격렬한 내전을 벌였으며, 즉위 이후에는 고려를 복속시키고 남송을 멸망시켰다. 베트남(남월)과 일본마저 원정을 통해 복속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13세기 중반에서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온몸을 던져 정복전쟁에 몰두하였다. 충렬왕 왕거: 장인...나는 20년동안 장인폐하를 보아왔던 사람이올시다. 장인은 장인답게 사셨나이다. 제후에 불과하였지만 용감하고 멋있게 살아서 제위에 오르셨소이다. 나름대로 장인의 역사를 가지고 장인의 시대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오이다. 뭐랄까. 대원시대라고나 할까? 대원시대. 그랬다. 그것은 그가 몸바쳐 살아오며 일구어냈던 격동기의 또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그가 죽은 후 대원제국은 얼마가지못하여 폭☆八 하고 말았다.
이익주 교수님 영상이 추천되다니 이건 못참지😊😊😊
원종도 매우 뛰어난 왕이었던듯
고려 원종이 천재긴 천재였나보네 ㅋㅋ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쿠빌라이를 도와주다니
1294년 2월 18일
원나라 세조 홀필렬(쿠빌라이 칸)은 노환으로 쓰러졌다.
향년 80세였고 고려국왕 충렬왕 왕거가 원나라에 와서 백마 아홉필을 바친지 한달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고려인들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이는 고려를 복속한 홀필렬이 고려국왕 충렬왕 왕거를 사위로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홀필렬 그는 격동의 13세기 초엽에 타뢰의 4째아들로 태어나 동생 아리불가와 4딸라와 제위를 두고 격렬한 내전을 벌였으며,
즉위 이후에는 고려를 복속시키고 남송을 멸망시켰다.
베트남(남월)과 일본마저 원정을 통해 복속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13세기 중반에서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온몸을 던져 정복전쟁에 몰두하였다.
충렬왕 왕거: 장인...나는 20년동안 장인폐하를 보아왔던 사람이올시다.
장인은 장인답게 사셨나이다.
제후에 불과하였지만 용감하고 멋있게 살아서 제위에 오르셨소이다.
나름대로 장인의 역사를 가지고 장인의 시대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오이다.
뭐랄까. 대원시대라고나 할까?
대원시대.
그랬다.
그것은 그가 몸바쳐 살아오며 일구어냈던 격동기의 또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그가 죽은 후 대원제국은 얼마가지못하여 폭☆八 하고 말았다.
합리화
나라를 지키기위해 기다림속에서 확신을 얻었다고 생각한다오 그 신념이 단일민족의 혈통을 지켜냄
요약: 줄을 잘 쓰자
당시 고려의 정보력을 본다면, 원종이 세밀하게 분석해서 쿠빌라이가 황제가 될 거라는 걸 예측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됨, 정통성도 아릭부케에게 있었고 실제 두 유리한 카라코룸을 차지하고 있었고, 걍 가까워서 만난듯
태왕처럼 영토를 넓힐 수는 없었으나 영토를 넘겨 줄수 없다는 배수의진
쿠빌라이 외손자까지 고려가 좋았지 ㅋㅋ
오늘 갔다가 만우절 구라~ 이러고 아맄부카한테 갔으면 고려 나라시 깟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