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천애는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봉선화를 부른 분입니다. 일본에서 무사시노 음악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히비야 공원 신인 음악회에 출연했을 때 일본 유학생 동포들의 열렬한 박수로 흰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이 노래를 부르고 6개월 가량 옥고를 치뤘습니다. 또한 김천애 선생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Chorubungen을 소개한 분입니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 부분이 이 노래의 주제인 듯 합니다. 형체란 국가를 뜻하고 혼은 민족을 뜻하는 듯합니다. 국가는 일제에 강점되면서 사라졌지만 민족은 살아있으니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민족의 시 겨레의 노래 민족의 얼 겨레의 향기 시인의 마을에 태어나는 우리 시 노래 우리들의 마음 아 ! 봉선화의 민족이여 ! 무궁화의 겨레여 ! ! ! ! ! ! ! ! ! ! ! ! 연약한 여자로 일제의 총 칼을 무릅쓰고 불굴의 민족 사랑의 정신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다가신. 민족의 선구자 김 천애 선생님의 민족애에 경의를 표합니다. * 영원한 민족의 꽃 무궁화 성악가 * 김 천 애 * !!!
. 봉선화 Touch-Me-Not ( 김천애 ) ( Kim Cheon Ae ) 울 밑에 선 붕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A touch-me-not under the fence, you look sad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In the long summer of your beautiful blooms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Pretty young maidens delighted in your beauty 북풍 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Even as you perish in the cold wind and snow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Your spirit will remain here yearning for peace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To come back alive with a warm spring breeze
Hello userstik l'd like to say thank you so very much for this lyric, both in Korean and English. Beautiful, meaningful and so powerful! l do hope the Korean young generations eager to lean more about their history and culture and musn't forget their ancestors who fought against the Japanese for independence and the freedom. May God bless Korea. With my sincere thanks to you again, KHWood from England
+Kim Wood Thank you for the nice word. And yes, the lyrics are powerful, and they were prophetic. Looking back, what the song said in the second verse all came true. Korea came out of its dark winter and has seen several decades of prosperity now, and all of that while staying true to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 at least as far as South Korea is concerned. Hopefully this peace and prosperity will continue on for a long long time to come.
@@박정태-n4b 아니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이런 애국심 울리는 노래와 많은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래, 즉 고향의 봄, 또 어린이 동요도 많이 작곡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분이 친일파라고 찍힐수 있을까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 당시 배경, 시절엔 친일 노래를 만들수밖에 없었어요.알기론 150여 곡을 작곡하셨는데 단지 3곡이 친일에 대한 노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일파로 찍혀졌나봐요. 그땐 할.수.없.이 윗사람 지시로 그런걸 만들수밖에 없었던 시절 있었죠. 어길때면 감옥에 끌려가 고문받고 힘든 일제시대였었죠. 결국 나중에 감옥에 몇달동안 고문받고 힘든 감옥생활을 하셨죠. 같이 끌려온 다른 음악인들은 며칠만에 각서(조선노래를 안만들고 일본노래에만 충실 하갰다..는 내용)를 쓰고 풀려났죠. 고문을 못베겨서요. 그러나 홍난파는 72일? 인가 그렇개 오랫동안 버티며 감옥살이를 하셨습니다. 결국 고문을 못이겨 각서를 쓰시고 풀려 나오셨죠. 이때가 1937년이었어요. 그러나 후유증으로 4년 동안 건강문제로 고생하시며 아직도 젊은 44세때 돌아가셨죠. 이런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몰라 그래서 친일파라고 알고 있나봐요. 참고로 홍난파는 울 외할머니 친척분이셨담니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께 얼핏 듣던 이야기로서 알고있지요.
Dooly King 결론적으로 홍난파는 친일파 맞습니다 1937년 친일단체에 가입하고 1939년에는 반민족적인 노래를 전파시키는 친일음악행위를 하였고요 친일단체에 가입에 그치지않고 계속 친일가요와 글을 계속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가사에 '천황폐하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자'이런 구절도 있고 명백한 친일맞구요 ㅎㅎ 그리고 1940년 9월 1일에 모리가와 준이라는 창씨개명도 하셨어요^^ 그것도 일본성으로 이런분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어서 친일행위를 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끝까지 죽을 각오로 민족운동한 의사와 열사들은 왜 그렇게 까지 했을까요? 유관순 열사는 고문받는것이 안힘들었을까요? 유관순열사는 그 수많은 고통을 참아내시고 끝까지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일제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하셨습니다 이런분은 뭔가요 홍난파가 친일파인것을 부정하는것은 이런분들을 무시하고, 욕보이는것 이에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죠 망각하지 맙시다. 친일한것은 인정해야죠 친일행위는 명백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그 희생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후대를 위해서 숨기고 감추고 역사를 왜곡하지 맙시다 저는 그러한 행위또한 바로 현대의 친일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홍난파 울밑에선 봉선화 라울샘 영어로부르기 RUclips에서 'K-Pop Singing in English(121) (울밑에선 봉선화)Touch-me-not Under The Fence' 보기 - K-Pop Singing in English(121) (울밑에선 봉선화)Touch-me-not Under The Fence: ruclips.net/video/1GsbO5k15Vo/видео.html
안타깝군요.제대로 된 봉선화 노래를 아무리 뒤져도 잘 안나오 는군요. 가사의 시대적의미를 돌이켜보면 그에 걸 맞는 정서가 표현된 노래가 없어 그나마 원곡이자 옛 엘피를 녹음힙니다만, 특히 성악가들 실망입니다. 미성만이 전부가 아닐진대 소리만 높게 한다고 그 한스럽고 안타까운 애잔함이 묻어 있는것은 아니지요. 조용필의 감정 오바도 거슬리고 한영애 혹은 기타 허스키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불러주면 좋을련만 이 노래까지는 미치지 않는 듯 하군요.
미국 유학 중 흥사단에 가입한 일로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고, 72일간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결국 건강악화 끝에 그는 공개적으로 전향서를 쓰고 출옥하게 된다. 그 뒤 '모리카와 준'으로 창씨개명하고 일제에 아첨하는 음악을 여럿 작곡하면서 친일행적을 남겼다.[1] 이후 1941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서는 2009년 11월 홍난파의 행적에 대해 수록했으나, 대통령 직속 산하기관인 친일진상규명위에서는 '홍난파가 자의적으로 했는지 타의적으로 했는지 좀 더 따져야 한다.'면서 보류처리를 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홍난파의 후손이 '홍난파를 친일인사 명단에서 제외해달라'며 낸 소송을 돌연 취하함에 따라, 결국 등재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있다. 보수적인 양악계에서는 친일을 하지 않았으면 작품 활동은 물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며 옹호론을 펼치기도 한다.[2] 물론 이에 대해선 생활고와 각종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굽히지 않은 예술가들을 반례로 들며 반박하는 의견 또한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홍난파의 친일 행적에 대해선 이미 90년대부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 99인"과 같은 여러 친일파 고발 책자에서 음악가 대표로 크게 소개되었기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저희아버님 이북에 두고온 가족생각하면서 항시즐기던 노래로 12년전 95세로 소천하혔네요....내나이 환갑을 훨넘으니..이노래가 가슴에 너무~ 와닸읍니다
보고싶습니다..아버지~~
김천애 여사님
그 시대 영웅 이셨습니다
북이 고향인 분들은 이 노래를 피하노라
가지못하는 북녘땅 내어이 하리오
가슴 저미는 저노래 저목소리
어찌하오 이가슴 어찌하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귀한 노래가 40년도에 녹음되었네요. 저희 부모님께서 1954년 혼례식(결혼식) 피로연에서 선친께서 부르셨던 노래여서 애착이 가는 노래 입니다. 암울한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신 부모님 세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노래 랍니다 ^^
동감합니다
이노래를 들을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천국에 계신 아버님이 애창하신 곡... 오늘 기일을 맞아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님
소프라노 김천애는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봉선화를 부른 분입니다. 일본에서 무사시노 음악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히비야 공원 신인 음악회에 출연했을 때 일본 유학생 동포들의 열렬한 박수로 흰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이 노래를 부르고 6개월 가량 옥고를 치뤘습니다. 또한 김천애 선생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Chorubungen을 소개한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아 그랬군요 첨 알았네요.사연도 김천애님도
저희 돌아가신 할머님께서 평생 부르시던 노래여서 찾았습니다. ❤
이귀한음악을다들어보네요최고입니다
김천애 여사님 33전에 엘에이 저의미용실 단골이셨는데 그때 혼자 사셨는데 지금 살아계신지요 ?
쵝오요.김천애님의 봉숭아짝짝짝 감동이요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 부분이 이 노래의 주제인 듯 합니다. 형체란 국가를 뜻하고 혼은 민족을 뜻하는 듯합니다.
국가는 일제에 강점되면서 사라졌지만 민족은 살아있으니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옛날의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너무 슬픕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훈륭한 수준 높은 가수가 저시대에 있었다니 놀랍다
민족의 시 겨레의 노래
민족의 얼 겨레의 향기
시인의 마을에 태어나는 우리
시
노래
우리들의 마음
아 !
봉선화의 민족이여 !
무궁화의 겨레여 ! ! ! ! ! ! ! ! ! ! ! !
연약한 여자로 일제의 총 칼을 무릅쓰고 불굴의 민족 사랑의 정신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다가신. 민족의 선구자 김 천애 선생님의 민족애에 경의를 표합니다.
* 영원한 민족의 꽃 무궁화 성악가 * 김 천 애 * !!!
반세기도 전에 녹음된 "봉선화"라니....아름답지만 참 슬픈 노래죠.
Gyeong Kim 하지만 뒷부분의 가사에서 조국이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과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근거를 댐으로써 슬프지만 희망이 담겨있는 노래가 아닐까요?
김천애....처음들어보는 목소리....아주 귀한 자료 접하고 갑니다
봉선화 원곡 처음 듣고갑니다.
가사 지금의 나를 보는거 같아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내 인생의 봄날은 과연 찾아올까
이춘열전성석부목사님맞나요?
용감하신 한국독립운동하시든 대한민국 영웅들에게 영원이 감사드리며 언젠간 대한민국이 통일이대도록 간절이 기도드림니다.
774892 근데 홍난파.. 친일파아녜요..?
박홍기 홍난파 친일파맞음...
그시대 고문에 억압에 당신같으면 견딜수 있는지 ᆢ 그시대 그상황 겪지 안했으면 친일이란 단어 쓰지 마시오
일제치하를 이겨내게 해준 곡!
수없이 많은 애국지사들이 형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죽어갔죠.
아름다운 우리 꽃 봉선화 입니다.
감사합니다
천애 누나
가슴이 찡합니다요
. 봉선화 Touch-Me-Not
( 김천애 ) ( Kim Cheon Ae )
울 밑에 선 붕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A touch-me-not under the fence, you look sad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In the long summer of your beautiful blooms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Pretty young maidens delighted in your beauty
북풍 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Even as you perish in the cold wind and snow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Your spirit will remain here yearning for peace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To come back alive with a warm spring breeze
Hello userstik
l'd like to say thank you so very much for this lyric, both in Korean and English.
Beautiful, meaningful and so powerful!
l do hope the Korean young generations eager to lean more about their history and culture and musn't forget their ancestors who fought against the Japanese for independence and the freedom.
May God bless Korea.
With my sincere thanks to you again,
KHWood from England
+Kim Wood
Thank you for the nice word.
And yes, the lyrics are powerful, and they were prophetic.
Looking back, what the song said in the second verse all came true.
Korea came out of its dark winter and has seen several decades of prosperity now, and all of that while staying true to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 at least as far as South Korea is concerned.
Hopefully this peace and prosperity will continue on for a long long time to come.
쫌 많이 유치해 보이는 영어번역이네
요즘 태어났으면 세계적인 성악가 반엘에 올랐을 분이네요.
이노래가 바로 구름님이 일본 아이돌카페에서 부른 3.1운동 다음해에 나와서 일본에 금지당한 노래인가요
도데체 왜 이런 곳까지 싫어요가 있는 걸까.
2020년 9월 30일 79년생이 듣고 있습니다
음 우리아빠 애창곡인데‥술드시면부르시던노래네요ㆍ이런사연이잇엇군요ㆍ음슬프다‥
뭔
@@fifa_humun 뭐가 뭔이야
감사합니다.
좋아요
홍난파 선생님 정말 훤칠하니 잘 생기셨네요. 주옥같이 좋은 노래 참 많이 쓰셨지요.
Confutious 저기근데 홍난파친일파아니에요?
@@박정태-n4b 아니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이런 애국심 울리는 노래와 많은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래, 즉 고향의 봄, 또 어린이 동요도 많이 작곡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분이 친일파라고 찍힐수 있을까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 당시 배경, 시절엔 친일 노래를 만들수밖에 없었어요.알기론 150여 곡을 작곡하셨는데 단지 3곡이 친일에 대한 노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일파로 찍혀졌나봐요. 그땐 할.수.없.이 윗사람 지시로 그런걸 만들수밖에 없었던 시절 있었죠. 어길때면 감옥에 끌려가 고문받고 힘든 일제시대였었죠. 결국 나중에 감옥에 몇달동안 고문받고 힘든 감옥생활을 하셨죠. 같이 끌려온 다른 음악인들은 며칠만에 각서(조선노래를 안만들고 일본노래에만 충실 하갰다..는 내용)를 쓰고 풀려났죠. 고문을 못베겨서요. 그러나 홍난파는 72일? 인가 그렇개 오랫동안 버티며 감옥살이를 하셨습니다. 결국 고문을 못이겨 각서를 쓰시고 풀려 나오셨죠. 이때가 1937년이었어요. 그러나 후유증으로 4년 동안 건강문제로 고생하시며 아직도 젊은 44세때 돌아가셨죠. 이런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몰라 그래서 친일파라고 알고 있나봐요.
참고로 홍난파는 울 외할머니 친척분이셨담니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께 얼핏 듣던 이야기로서 알고있지요.
@@doolyking5786 아.. ㄷㄷ 근데 헌제명? 그놈은확실히친일파죠?
Dooly King 결론적으로 홍난파는 친일파 맞습니다 1937년 친일단체에 가입하고 1939년에는 반민족적인 노래를 전파시키는 친일음악행위를 하였고요 친일단체에 가입에 그치지않고 계속 친일가요와 글을 계속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가사에 '천황폐하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자'이런 구절도 있고 명백한 친일맞구요 ㅎㅎ 그리고 1940년 9월 1일에 모리가와 준이라는 창씨개명도 하셨어요^^ 그것도 일본성으로 이런분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어서 친일행위를 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끝까지 죽을 각오로 민족운동한 의사와 열사들은 왜 그렇게 까지 했을까요? 유관순 열사는 고문받는것이 안힘들었을까요? 유관순열사는 그 수많은 고통을 참아내시고 끝까지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일제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하셨습니다 이런분은 뭔가요 홍난파가 친일파인것을 부정하는것은 이런분들을 무시하고, 욕보이는것 이에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죠 망각하지 맙시다. 친일한것은 인정해야죠 친일행위는 명백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그 희생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후대를 위해서 숨기고 감추고 역사를 왜곡하지 맙시다 저는 그러한 행위또한 바로 현대의 친일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태-n4b 그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들을 친일이니 뭐니하고 사상적으로 몰지말고 음악인으로 실력을 인정하기 바란다 .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한민족이면서도안타갑게도이해의심성이없으니진정안타갑네요
김형준 작사
여태 홍난파.작사 작곡인줄 알았네요
민족의 한 민족의 슬픔 민족의눈물
홍난파 울밑에선 봉선화 라울샘 영어로부르기
RUclips에서 'K-Pop Singing in English(121) (울밑에선 봉선화)Touch-me-not Under The Fence' 보기 - K-Pop Singing in English(121) (울밑에선 봉선화)Touch-me-not Under The Fence: ruclips.net/video/1GsbO5k15Vo/видео.html
안타깝군요.제대로 된 봉선화 노래를 아무리 뒤져도 잘 안나오 는군요. 가사의 시대적의미를 돌이켜보면 그에 걸 맞는 정서가 표현된 노래가 없어 그나마 원곡이자 옛 엘피를 녹음힙니다만,
특히 성악가들 실망입니다. 미성만이 전부가 아닐진대 소리만 높게 한다고 그 한스럽고 안타까운 애잔함이 묻어 있는것은 아니지요.
조용필의 감정 오바도 거슬리고 한영애 혹은 기타 허스키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불러주면 좋을련만 이 노래까지는 미치지 않는 듯 하군요.
1940년 일제수탈에 다 피죽도 못먹어 죽어갔다는데 어째 저 아름다운 남녀는 누규?
폴모리아 천일의 앤 하고 진짜 멜로디가 비슷합니다
참 가슴아픈 것은 홍난파도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친일 예술인들 이광수 서정주 .....
난파
사랑합니다
난파 형
울밑에 선... 한반도야...
아래위로 잘린 그 모양이 처량하다...
권문세가에 깔려사는... 백성들아...
이래 속고... 저래 휘둘리는...
참담한 처지가... 처량하다...
홍난파 친일파 아니에요..?
미국 유학 중 흥사단에 가입한 일로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고, 72일간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결국 건강악화 끝에 그는 공개적으로 전향서를 쓰고 출옥하게 된다. 그 뒤 '모리카와 준'으로 창씨개명하고 일제에 아첨하는 음악을 여럿 작곡하면서 친일행적을 남겼다.[1] 이후 1941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서는 2009년 11월 홍난파의 행적에 대해 수록했으나, 대통령 직속 산하기관인 친일진상규명위에서는 '홍난파가 자의적으로 했는지 타의적으로 했는지 좀 더 따져야 한다.'면서 보류처리를 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홍난파의 후손이 '홍난파를 친일인사 명단에서 제외해달라'며 낸 소송을 돌연 취하함에 따라, 결국 등재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있다. 보수적인 양악계에서는 친일을 하지 않았으면 작품 활동은 물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며 옹호론을 펼치기도 한다.[2] 물론 이에 대해선 생활고와 각종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굽히지 않은 예술가들을 반례로 들며 반박하는 의견 또한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홍난파의 친일 행적에 대해선 이미 90년대부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 99인"과 같은 여러 친일파 고발 책자에서 음악가 대표로 크게 소개되었기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출저 나무위키
명백한 친일파 맞아요
나라를 빼앗기게 만든 무능한 집권층이 더 문제
고문에 이길 자신 있으면 친일파라고 욕하세요~ 내 가족 친지 다 죽어도 나라를 위하여 고문을 견딜 자신이 있다면,,, 천하장사도 이빨쑤시개 하나를 이길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