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조선 군대에 관한 오해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7

  • @미공개파일-j6z
    @미공개파일-j6z  Год назад +2

    제작능력의 한계로인해 고증 및 디테일은 포기했습니다
    영상에는 각색과 과장 생략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스스로 찾아보고 종합적으로 검토하시길 권장합니다

  • @apiapo-ul8kg
    @apiapo-ul8kg Год назад +1

    60 70프로씩 세금을 뜯어가던 일본과달리 10프로밖에 걷지않았던 조선은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임. 군사비지출에있어서도 막대한 차이가 있었겠죠.

  • @agm1144
    @agm1144 Год назад +1

    만주를 통일한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할때 동원한 병력이 고작 3만5천입니다.
    누루하치가 부족장이 되었을때 그의 부족이 거느린 병력은 고작 1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두만강 유역의 일개 번호에 불과한 니탕개가 2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거느린 부족민 다 합해도 2만을 넘기 힘들었습니다.

  • @realmirk
    @realmirk Год назад +1

    솔직히 20만 대군을 바다 건너로 보낼줄은 생각도 못했겠죠

  • @jek3665
    @jek3665 Год назад +1

    영상 설명도 잘 해주시고 그림도 심심허지않아 넘 좋네여 ㅎㅎ 근데 배경음악도 깔아주시면 더 좋을것 같습니다 영상이 너무조용하네요😊

  • @orange4719
    @orange4719 Год назад +1

    드라마가 고증을 개판으로 하다보니.....

  • @재미있게살자-y5t
    @재미있게살자-y5t Год назад +3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알았고 나름 준비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민심의 반발 때문에 중단했고, 군비 자체가 이미 씨가 말랐다는게 맞을 겁니다.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가 있어야 말이죠. 선조가 임란 발발했을 때의 대처 모습은 분명 실망스럽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임진왜란 초의 모든 어려움과 잘못을 선조에게 돌리는건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조선의 국고가 바닥나 군비 지출을 제대로 못하고 준비가 부실했던 제일 큰 이유는 연산군이 말아먹은 조선정치와 국가재정이 제일 컸고, 중종은 연산군의 실정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여 연산군 때 재산이 많은 양반들의 세금 면제 제도가 거의 그대로 굳어져서 그걸 되돌릴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명종은 의지는 가졌지만, 친정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승하했고, 선조는 껍데기만 남은 조선을 물려 받아 나름 노력했지만, 일본의 침략에 제대로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Год назад +2

    연전연퍠는 용인전투인 개전 4개월까지 였습니다
    마치 7년 내내 연전연패한 듯이 말하는데 잘못된 겁니다

  • @minggumalam4363
    @minggumalam4363 Год назад +2

    전 조선이 무기나 병력에서 밀렸다긴보다 전술이 잘못되서 졌다고 생각합니다

  • @kkasuma1186
    @kkasuma1186 Год назад +3

    승자총통 방식이 별로 조총 보다는 않좋을거라서...
    그래도 재래식인게 맞음
    서양에서도 저리 핸드 캐논으로 하다가 개 불편해서 나온게 그 머스킷 즉 조총...
    원래 총통도 그다지 쓸모가 없는게 맞기는함
    어디다가 매달아야할 정신 나간 무게
    그걸 약간 손본게 핸드캐논 승자총통인것...
    이미 다른 동네에서는 그래도 개 무겁네 하고 버린 계열
    조선 시대에서 그나마 남들보다 뛰어난 무기였던게 그 당시의 다연장 로켓포 신기전 (화차) 총통 보다 화차가 활약하기도 했지만
    화자가 지방 마다 한 두대 굴러가는것도 열악하게 만드는거에 조지게 한몫을 함
    전쟁준비를 안했다가 그짓말인건 아님
    그당시 주요직이었던 신하 유성룡의 징비록이 이미 문헌으로 그렇게 전쟁날거 라고 하고
    이이 율곡이 십만양병설 내세워도 안들어먹더니
    나중에 터지고 난 뒤에야 조금 제대로 한경우
    핸드캐논은 그다지 머스킷보다는 여러모로 구린게 맞음..
    그나마 산탄 핸드캐논이라
    슈류탄 비슷한 비격 진천뢰 이런 약간의 준비는 있었어도
    위력이 문제가 아니라
    죄다 무게한계로 실용적인건 굳이없었을것

    • @dalbongpark2830
      @dalbongpark2830 Год назад +1

      승자총통이 구리다니요.
      임난 중에 경상도쪽이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망가서 그렇지.
      정유재란이나 임란중 경기도 수도권 전라권에서 전라도 병력이 싸울땐 상당한 효과를 냈음.
      저 시대 조총도 어차피 진을 이루고 탄으로 공간을 도포하는 개념인데, 승자총통은 철환 15개를 넣고 쏴서 크레모어 처럼 쓸어 버리는 전술이라 매복이나 수성전 판옥선에서 재미를 많이 봤던 물건입니다.
      조총으로 넘어간건 정확도 때문인걸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조총의 경우 화약량을 적게 넣고도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승자총통이 사라지고 조총이 주력 무기가 되는 주요 이유였습니다.
      호란때도 기록을 보면 전라도 병사 1500명이 홍타이지 매제를 따고 청군 1티어 부대를 전멸 시켰을때, 겨우 50발 정도를 쏠 탄환과 화약을 주었는데, 이걸 승자총통으로 환산해 보면 1시간에 안에 동날 양이라 윗선에서 화약 아낄려고 승자총통 깐게 맞을 겁니다.
      전라도 병사들이 털고 나서 재정비할때 경상도 병사들이 충청도 병사들과 합세해서 전라도 병사들이 뚫어논 곳으로 인조를 향해 남한산성 방향을 향할 때 가장 먼저 한게 쉽는 전라도 병사에게 화약과 탄환을 받은 겁니다.
      여기서 화약과 탄환을 다 가지고 가서 졸전으로 전멸 하는 바람에 전라도 병사도 그 승전을 하고도 결국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인조가 삼전도 굴욕을 당한걸 생각해 보면 조총의 장점은 화약량을 적게 쓴다는거 빼고는 .......
      700명이 스자총통을 가지고 골짜기에 목책 짖고 2만의 여진족을 막은걸 생각해보면 조총이 승자총통 보다 뛰어ㅗ났다고 보기엔 무리라고 봅니다.

  • @디아블
    @디아블 Год назад +3

    영상 잘 봤습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영상 퀄리티가 정말 좋네요. 근데 자막바가 너무 작고 아래쪽에 딱 붙어있는 거 같습니다. 자막바 위치를 너무 바닥에 딱 붙지 않게 좀만 올리고 자막 크기를 좀 키워도 좋을 거 같습니다

  • @초장-l2h
    @초장-l2h Год назад

    천민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천민은 정규군이 못 되는게 나라냐? 이게 가장 큰거 같은데.

  • @호오옹-k4d
    @호오옹-k4d Год назад

    아우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