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옛날에 빈지게를 졌는데도 중심잡기가 힘들었는데 연탄 배달하실때 힘들었겠어요 금대봉마을 처음에 들어와서 정착하시기 전에 힘드셨겠어요 구수한 얘기 잘들었어요 저는 오빠가 강원도 사람인줄 알았어요 말씨가 너무 구수해서요 ㅎㅎ 제2의 고향 윤수일오빠 노래 오랫만에 듣네요 ㅎ 항상 건강하세요
제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도깨비님 말대로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고 ~~그 중에는 가족들 없이 무연고로 지내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어쩌다가 산에서 뻥뻥하는 소리가 나길래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너무도 궁금했는 데 ~~~그땐 그냥 막연히 탄광에서 탄을 캘때 화약을 사용하니 화약을 터뜨리는 것이다 생각햇죠~~그런데 그게 제가 나이가 더 먹고 삼촌세대 현재 60초반 정도 되는 분들 한테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연고자들이 죽으면 그냥 드럼통에 넣어서 시체를 태워서 ~~누가 치워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나라에서 처리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변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묻어주기도 뭐하니 시체를 태우고 ~~뼈만 간단하게 묻어주던 시절이 잇었다내요 ~~지금은 누구 죽으면 신고하고 고확수사 다하고 종결하지만 ~~예전에는 애장터라고 해서 애들 죽으면 그냥 묻는 곳도 많았고요 ~~지금은 애 하나 죽으면 난리 나죠 ~~그러니 당시에는 무고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암튼 그 가끔씩 펑펑 소리가 난게 시체를 드럼통에 넣고 태우면서 ~~머리가 터지는 소리였다는 겁니다 ~~ ㄷ ㄷㄷㄷㄷ
앞전에 도깨비님께서 칠점사 꼬리떠는거 설명하실 때 "건들면 쥑이삔다" 라고 하는 거 듣고, 도깨비님 고향이 경남 서쪽 어드메쯤인지 대략 짐작이 갔었읍니다. 성조도 부산 마산은 아닌 것 같고, 대구는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진주하고도 다르고, 찍어서 대략 그 안쪽 산동네 지역인 것 같았고... 제가 사실 서울사람이지만 모종의 일로 엮인 적이 많아 경상도 말씨를 꽤 잘 아는데, 경북쪽은 "-해뿐다"라 카든 것 같고, "-해삔다" 경남쪽에서 쓰는걸로 알고 있읍니다. 원래 태백 일대 말씨는 대체로 경북 북부지역 일대와 마이 가차웠던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두문동재, 만항재만 넘어가면 주민들 말씨가 확 바뀌던 것 같읍니다. 원래 태백 (황지+장성) 일대가 삼척 땅의 일부였고, 소싯적부터 삼척 일대가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영남방언의 일부로 간주되는 측면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경상도 어르신들이 가끔 뻥을 좀 치시지요. 원래 삼척은 경상도 땅이었다고, 뭐랄까 영동공정?을 열심히 펼치십니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제 아버지조차 세뇌되어서 그런 말을 하실 정도) 참고로 삼척 윗동네, 옛 명주군(현 강릉의 읍면단위 지역) 땅이었던 묵호쪽도 외지인 유입의 영향으로 경상도, 함경도(실향민들이 많이 정착) 사투리가 꽤 많이 통했읍니다. 지금도 동해시에서는 엄연히 "강원도"지역임에도 불구 "도째비골"을 관광홍보물에 대놓고 "도깨비의 경상도 사투리를 뜻합니다"를 말할 정도로, 그정도로 영남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동네입니다. 적어도 지금 40대 정도 세대는 대체로 그런 듯 한데, 하지만 지금 묵호의 최소 중고등학생 세대까지 내려가면 그 이전 세대에 통용됐던 영남방언이든 관동방언이든 관북방언이든 다 잊혀진 듯 합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학생들 말하는 것 듣다보이, 그냥 "성조 없는(위의 세 동부방언 모두 성조 있음)" 평평한 서울말로 대화를 하더라고요. 이건 강릉도 그렇다는데, 강릉쪽은 예전부터 문중사회 기반으로 해서 토박이들 많고 소싯적에 대관령 서쪽과의 교통도 대단히 불편하고 해서 (영동선 뚫리기 이전에 제주도 울릉도 오가듯 철도가 있는 대도시인 원산, 포항, 부산으로 '기선'타고 갈아타서 서울로 갔다고 하네요) 꽤 독특한 억양과 어휘의 고유의 방언이 사용되던 고장인데, 젊은 세대 사람들이 사투리를 잘 모르게 돼버려서 그래서 지역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한다 하더군요. 이 역시도 급격한 표준어권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서...
아마도 진짜 도깨비님이 태백 분이셨다면, 영상 도중에 "갱목"을 "항목"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79년 중앙일보 기사에, 황지 모 광업소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당시 지역주민들이 다 坑 이 글자를 항으로 읽고, 또한 이 한자가 들어가는 단어들 역시 그 독음을 반영했다는 나머지, 이른바 "'항'리둥절"한 나머지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세요"라고 신문사에 제보를 했을 정도로, 당시 지역사회 일대에서 꽤 널리 통용되던 독음이라고 합니다. "구덩이 갱(흙토변+높을항)" 을 높을항자의 음을 그대로 따서 "항"으로 발음을 했었지요. 사실 "항"으로 읽는건, 비단 삼척탄좌, 태백, 정선 일대뿐만이 아니라 일제시대때만 해도 한국어 신문들을 봐도 전국적으로 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읽었던 관습독음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일제시대 일본어 자체의 잔재는 아닌 듯) 이를테면 네xx 뉴스라이브라리에서 20년대 30년대 기사를 검색하다보면 "xx탄항(탄갱) 와사(gas) 폭발 사고" 등등의 기사를 볼 수 있읍니다. 해방 이후에도, 탄항들이 개발되던 지역 일대, 특히 우리가 아는 정선, 태백, 영동지구 소위 "삼척탄좌" 일대에서는 광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항"이라는 독음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고(상동 중석광산도 대개 "상동항"이라고 부름), 심지어 당시 광업, 노동법 관련 법률 및 다수 공문서에도 아무래도 현장의 입김이 많았는 나머지 이 독음이 꽤 쓰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입갱 -> 입항, 갱도 -> 항도, 갱장 -> 항장, 갱부 -> 항부, 갱구 -> 항구 등등... 참고로 바닷가의 "항구"와 광산의 "항구"는 문맥과 성조(...)로 구별이 가능했지 싶읍니다. 이 일대에서 "항"이라는 관습독음이 꽤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특히 광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갱"이 "어감이 좋지 않다"라고... 저 역시 "항"이 더 어감이 좋다는데 사실 동의하는 쪽입니다. 60년대 신문기사에, 어느 "항부"의 인터뷰에서 이런 글이 나옵니다. "한글학회에 갱坑 발음을 '항' 으로 고쳐주기를 희망한다. '갱'은 조그마한 구덩이 아닌가? 우리의 '턴넬'은 그것보다 거창하다"
참 부지런한 도깨비 님 복많이 받으세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저는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임곡리에서5년 살았지요! 그곳도 탄광지역, 1986년 그시절 남편월급 38만원 저는17만원 였어요.. 여자들은 선탄작업..ㅎㅎ 도깨비님 말씀이 넘~재미 있어요👍
함백산도깨비, 짱!! 멋진인생이십니다. 타고난 이야기박사... 과감하고 편안한 사투리 억양, 아무나 못하는 방송이죠.
말씀도 잘 하시지만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존경스럽네요
ㅎㅎ 요즘 잘보고 있습니다.^^👍👍👍🏋🏋🏋
맞아요 예전에 옷이 제대로된게 있길하나 집이 따습길하나 신발도 변변찮구 에휴 다 힘든시절이었죠 ᆢ저도 두시간씩 왕복 4시간 걸어 다녔던 그시절 탄광차 한번씩 얻어타구 병반하구 퇴근하는 아저씨들 자전거도 얻어타구 등교하는날도 있었답니다 ᆢ요즘 도깨비 님 영상보는 재미로 삽니다 ᆢ감사합니다~~^^♡
깨비님은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십니다
도깨비 아재 옛날 얘기 들으니 재미있어요~ 왔다갔다는 하지만 재미있네요~~~😆
깨비님 너무도 공감이 가는 말씀이네요.고생끝에 낙이 있다고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생각남니다.고생 많이 하셨어요.이젠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말씀 구수하게 잘하시네요. 저한테는 재미있는 얘기였습니다.
깨비님 일년전 모습이네요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요
동안 이십니다 ㅎㅎ
안경이 참 잘어울러요~~~
넘 재밌어요
우리도 고한에살다왓어요 두문동너무잘알지요 장화없이못살던곳
맞는말 솔직하고 살이 묻어나옵니다
제가 옛날에 빈지게를 졌는데도
중심잡기가 힘들었는데
연탄 배달하실때 힘들었겠어요
금대봉마을 처음에 들어와서
정착하시기 전에 힘드셨겠어요
구수한 얘기 잘들었어요
저는 오빠가 강원도 사람인줄
알았어요 말씨가 너무 구수해서요
ㅎㅎ 제2의 고향 윤수일오빠 노래
오랫만에 듣네요 ㅎ 항상 건강하세요
희옥님 고맙습니다 설날이 내일 인데 행복한
명절이 되시고 좋은일 가득한 새해 되십시요
너무너무 재미나고 눈물도 나는 어릴적 소설같은 이야기에 중학교시절 고한정암사옆에 친구가살아서 자주 놀러갔던 기억이 새롭네요~^^정말 장화없인 못사는 동네였죠~정말 재미있게 추억을 말씀해주시네요~~
ㅎ ㅎ 저도 고한 갈때마다 정암사 들립니다 ~~참 정암사 옆에 삼척탄좌 있을 때만 해도 사람들 많이 살았는 데 ~~
산림 녹화, 북한 동포들
다 맞는 말이네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암튼 터자리는 잘 잡았습니다함백산정기를받고 잘 될것입니다
엿날이야기잘들어씀니다도캐비님
재밌게 들었습니다.^^
팬입니다 👍
고향기억 감사합니다
도깨비님 작가로도
휼륭합니다
산림녹화 는 좋은 것이여? 찬양 드립니다. 도깨비님 . 화 이 팅 ~~~~
놀러가보고 싶으용~~~~
고향사람이네요ㅡ반갑습니다
두문동 정동탄광 하숙집 옛날생각이 떠오름니다
그때 고생 안한 사람 별로 없갯지만 고생 만이 햇내요 사람은 고생을 좀 해야 사람이 된다고 함니다...앞으로 하이팅 합시다
.
다른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가 좋네요 옛날일도 생각나고 이런날씨에 추억이 새록새록나네요 다른유튜버분들은 후원계좌를 화면에 띄우시던데 도깨비님은 안하셔서 매일 좋은화면을 그냥보자니 죄송하네요
저의 영상을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청을 부탁해용ㅡ
자라오신 유년기에 고생많이 하셧 씁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쓸 것 같씁니다. 화 이 팅 ~~~~
구수한 말씀 댓가로 광고 끝까지 다 듣습니다 ㅋㅋㅋ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이렇게 고마운 시청자도 계시구나 가 암동?
잔즉 이장면을 보았거라면....저는 오직 카카오네비에 금대봉골만 찍고 비오는날4시간을 한번도 쉬지않고 달렸슴니다. 도깨비님을 만나려고.
애국자입니다!감사합니다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를 구수하신 입담 덕분에 끝까지 경청했습니다.^^
예인 서울역 태극기집회갔다왔어 도깨비님꺼 봅니다요
예인 저녁먹고 여유시간의 힐링입니다
예인 북한에 석탄이많은데 왜산림이 없나요
짱
경북 북부오지만 흥얼거리며 돌아다니는모습.멋지다
함백산 도깨비 굿! 두문동 소두문동 죽림칠현 정암사 추전역 가고 싶은 곳!
도깨비님 성실하고 참 열심히 사시네요 노모도 모시면서 도깨님덕분에 좋은 여행도 많이 합니다 몸생각도 하시면서 사세요 건강 하세요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홧팅 입니다 요
재미가. 있어요, ㅋ ㅋ
갑빠에 골탕 먹인다하셨는데, 골탕이 무엇인지요?
하하하ㅡ 방송하다 갑자기 빗자루로 청소 싸싹 ㅡ 하이고 웃겨라.
ㅋㅋㅋ
재미있어요
금대봉이 고한쪽인가요? 두문동근처....
상남자처럼 생기셨어요. 우직함도 있어보이시고. 도깨비아재 멋있으세요
그래서 으디냐구유~~
제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도깨비님 말대로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고 ~~그 중에는 가족들 없이 무연고로 지내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어쩌다가 산에서 뻥뻥하는 소리가 나길래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너무도 궁금했는 데 ~~~그땐 그냥 막연히 탄광에서 탄을 캘때 화약을 사용하니 화약을 터뜨리는 것이다 생각햇죠~~그런데 그게 제가 나이가 더 먹고 삼촌세대 현재 60초반 정도 되는 분들 한테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연고자들이 죽으면 그냥 드럼통에 넣어서 시체를 태워서 ~~누가 치워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나라에서 처리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변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묻어주기도 뭐하니 시체를 태우고 ~~뼈만 간단하게 묻어주던 시절이 잇었다내요 ~~지금은 누구 죽으면 신고하고 고확수사 다하고 종결하지만 ~~예전에는 애장터라고 해서 애들 죽으면 그냥 묻는 곳도 많았고요 ~~지금은 애 하나 죽으면 난리 나죠 ~~그러니 당시에는 무고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암튼 그 가끔씩 펑펑 소리가 난게 시체를 드럼통에 넣고 태우면서 ~~머리가 터지는 소리였다는 겁니다 ~~ ㄷ ㄷㄷㄷㄷ
머리가 터지는 소리ㅜㅜ 무섭다긴보다 서글프고 안타깝네요
예 기억이 납니다 옛날에 두문동 구도로에서
드럼통에 시신을 화장하는 상황을 목격하여
님의 말씀은 정확하고 사실입니다 닷찌차량
같은데 싫어서 장작하고 휘발유 혼합을 해서
화장하는 일들이 있었지요 그시절에는 화장
시설도 지방에는 없었고 즐거운 설명절 보내
시길 바랍니다ㅡ
네 즐거운 구정 보내세요
도깨비 옵바 💙💜💚❤💔💗💓🇰🇷🇰🇷🇰🇷🇰🇷🇰🇷😀😀😀😀😀
목욕탕두 있었습니다 큰아들을 모 의료원에서 낳았습니다 작업복 빨면 연탄물이 시커먼물
열심히 사시네요
깨비님 고향은 경남이 아니라 태백입니다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으면 그기가 고향입니다
함백산 도깨비님
무적 태풍이면
28사단인데
28사 출신이신가요 ?
저는 28사 제대 했습니다
우쨋든
살아야죠
그래서 강원도 사투리가 아니고 경상도 어투였구나. 어릴적 부터 강인하게 살았네요.
앞전에 도깨비님께서 칠점사 꼬리떠는거 설명하실 때 "건들면 쥑이삔다" 라고 하는 거 듣고, 도깨비님 고향이 경남 서쪽 어드메쯤인지 대략 짐작이 갔었읍니다. 성조도 부산 마산은 아닌 것 같고, 대구는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진주하고도 다르고, 찍어서 대략 그 안쪽 산동네 지역인 것 같았고...
제가 사실 서울사람이지만 모종의 일로 엮인 적이 많아 경상도 말씨를 꽤 잘 아는데, 경북쪽은 "-해뿐다"라 카든 것 같고, "-해삔다" 경남쪽에서 쓰는걸로 알고 있읍니다.
원래 태백 일대 말씨는 대체로 경북 북부지역 일대와 마이 가차웠던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두문동재, 만항재만 넘어가면 주민들 말씨가 확 바뀌던 것 같읍니다. 원래 태백 (황지+장성) 일대가 삼척 땅의 일부였고, 소싯적부터 삼척 일대가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영남방언의 일부로 간주되는 측면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경상도 어르신들이 가끔 뻥을 좀 치시지요. 원래 삼척은 경상도 땅이었다고, 뭐랄까 영동공정?을 열심히 펼치십니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제 아버지조차 세뇌되어서 그런 말을 하실 정도)
참고로 삼척 윗동네, 옛 명주군(현 강릉의 읍면단위 지역) 땅이었던 묵호쪽도 외지인 유입의 영향으로 경상도, 함경도(실향민들이 많이 정착) 사투리가 꽤 많이 통했읍니다. 지금도 동해시에서는 엄연히 "강원도"지역임에도 불구 "도째비골"을 관광홍보물에 대놓고 "도깨비의 경상도 사투리를 뜻합니다"를 말할 정도로, 그정도로 영남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동네입니다. 적어도 지금 40대 정도 세대는 대체로 그런 듯 한데, 하지만 지금 묵호의 최소 중고등학생 세대까지 내려가면 그 이전 세대에 통용됐던 영남방언이든 관동방언이든 관북방언이든 다 잊혀진 듯 합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학생들 말하는 것 듣다보이, 그냥 "성조 없는(위의 세 동부방언 모두 성조 있음)" 평평한 서울말로 대화를 하더라고요. 이건 강릉도 그렇다는데, 강릉쪽은 예전부터 문중사회 기반으로 해서 토박이들 많고 소싯적에 대관령 서쪽과의 교통도 대단히 불편하고 해서 (영동선 뚫리기 이전에 제주도 울릉도 오가듯 철도가 있는 대도시인 원산, 포항, 부산으로 '기선'타고 갈아타서 서울로 갔다고 하네요) 꽤 독특한 억양과 어휘의 고유의 방언이 사용되던 고장인데, 젊은 세대 사람들이 사투리를 잘 모르게 돼버려서 그래서 지역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한다 하더군요. 이 역시도 급격한 표준어권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서...
깨비님 너무진실한 토종 임니다
요즘은 아마 슁글 이라고 할거예요 반가와요 도계출신 입니다 ~~
우린 고한읍 정동탄광 신혼생활~~ㅎㅎ 돈벌어 용달차 산다구~~ㅎㅎ
깨비님은 태백이고향 아니신것같아요~~^^
아마도 진짜 도깨비님이 태백 분이셨다면, 영상 도중에 "갱목"을 "항목"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79년 중앙일보 기사에, 황지 모 광업소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당시 지역주민들이 다 坑 이 글자를 항으로 읽고, 또한 이 한자가 들어가는 단어들 역시 그 독음을 반영했다는 나머지, 이른바 "'항'리둥절"한 나머지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세요"라고 신문사에 제보를 했을 정도로, 당시 지역사회 일대에서 꽤 널리 통용되던 독음이라고 합니다.
"구덩이 갱(흙토변+높을항)" 을 높을항자의 음을 그대로 따서 "항"으로 발음을 했었지요.
사실 "항"으로 읽는건, 비단 삼척탄좌, 태백, 정선 일대뿐만이 아니라 일제시대때만 해도 한국어 신문들을 봐도 전국적으로 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읽었던 관습독음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일제시대 일본어 자체의 잔재는 아닌 듯)
이를테면 네xx 뉴스라이브라리에서 20년대 30년대 기사를 검색하다보면 "xx탄항(탄갱) 와사(gas) 폭발 사고" 등등의 기사를 볼 수 있읍니다.
해방 이후에도, 탄항들이 개발되던 지역 일대, 특히 우리가 아는 정선, 태백, 영동지구 소위 "삼척탄좌" 일대에서는 광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항"이라는 독음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고(상동 중석광산도 대개 "상동항"이라고 부름), 심지어 당시 광업, 노동법 관련 법률 및 다수 공문서에도 아무래도 현장의 입김이 많았는 나머지 이 독음이 꽤 쓰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입갱 -> 입항, 갱도 -> 항도, 갱장 -> 항장, 갱부 -> 항부, 갱구 -> 항구 등등... 참고로 바닷가의 "항구"와 광산의 "항구"는 문맥과 성조(...)로 구별이 가능했지 싶읍니다.
이 일대에서 "항"이라는 관습독음이 꽤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특히 광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갱"이 "어감이 좋지 않다"라고... 저 역시 "항"이 더 어감이 좋다는데 사실 동의하는 쪽입니다.
60년대 신문기사에, 어느 "항부"의 인터뷰에서 이런 글이 나옵니다. "한글학회에 갱坑 발음을 '항' 으로 고쳐주기를 희망한다. '갱'은 조그마한 구덩이 아닌가? 우리의 '턴넬'은 그것보다 거창하다"
거창아저씨.참멀리도가셧으요.나는함양인데.
안녕하세요
🫡
도깨비 씨 댓글 에 ♥ 이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제발 하지 마~ ㅊㅊㅊ
경상도말투는 한참 듣다보면 편두통이 온다네...
현동 씨 도깨비 1965 년 생 정도 태백 광산 한창이던 때 도깨비 10 살 정도 그 꼬마 가 무엇을 안다고 썰 푸네
이제는 구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