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화면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언젠가 실제로 꼭 가보고 싶습니다.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다른 나라의 궁궐을 폄하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 동네 중국집이 자금성이니 크기만 크고 미학적으로 별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서로 멋있다고 훌륭하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임금이 직접 거주하는 공간을 비교하면 자금성 건천궁은 경복궁 강녕전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네요. 그건 조선이 나라가 작아서 그런게 아니라 신라나 고려시대 궁궐보다도 훨씬 소박하다고 합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민본주의 국가라서 궁궐을 크고 으리으리하게 지으면 백성이 고달프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은 임금이 나라의 소유주라기 보다는 나라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 경복궁 강녕전은 마치 오늘날 공무원 관사같은 느낌마져 줍니다. 조선 임금들도 공무원 관사 느낌이 나는 강녕전보다는 창덕궁을 더 선호했는데 오직 세종대왕만이 저 강년전에서 평생을 보내며 한글을 직접 발명하셨습니다.
황제만을 위한 궁궐이었던 자금성과는 달리 경복궁이란 이름은 '이 나라에 영원토록 큰 복이 있고 그 복으로 모든 백성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복궁 근정전의 '근정'은 임금이 직접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고 임금 집무실인 사정전의 '사정'은 임금이 생각을 안 하면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는 뜻이니 경복궁 각 전각들의 이름은 임금에 대한 잔소리로 가득차 있어 자금성과 경복궁은 그 철학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쯔진청(자금성)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나무를 안심은 이유가 자객이 몰래 들어오면 나무에 가려 숨을수 있기에 경비상의 목적으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금성중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궁녀들이 머무는 후원이라는 곳에 조금 심어져 있어요. 자금성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걸리면 꾸아링츠씽(과릉지형)을 받는대 살아 있는 사람을 홀락벗겨 놓고 가죽을 벗기고 면도칼로 살저름 회를 뜨는 형으로 3일간에 걸처 6천번의 면도칼질로 6천저름의 회를 뜨는 형을 말 합니다. 그 사시미형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 발버둥을 치니까 회를 제대로 뜰수가 없으니 독한 뻬갈을 2리터를 먹이거나 대마초물을 먹이거나 아편을 먹여 반 정도 죽여 사시미형을 받을때 고통을 못 느끼고 희죽희죽 웃게 만들어 6천저름의 사시미를 뜹니다. 이 사시미형은 핏줄을 피하고 회를 뜨기에 회뜨기가 다 끝나도 사람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단 침입한 자의 본가 처가 외가의 할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3대*3가하여 9족을 참수형으로 죽이는 것 이지요. 자금성의 뜻이 일반인의 접근을 금한다는 뜻의 쯔진청으로 영어로 해석하면 더 포비든 씨리 즉 금지된 도시 라고 해석되는 곳 이지요. 명나라 청나라때에는 이 쯔진청(자금성)에서 근무하는 내시와 궁녀들의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는 전세계 최대의 궁전으로 미국 다큐에서도 보면 중국의 14억 인구의 나라가 아니면 다른 나라는 절대로 만들수 없는 성 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한국의 경복궁은 자금성에 비하면 궁이라고 말 할수도 없는 그냥 자금성의 내시들이 머무를수 있는 공간 정도의 면적도 안되겠지요
몽골 인들은 사람들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중국군을 데려갔습니다.1447 년 몽골의 Gueg 왕은 고궁의 보호 아래 중국군에게 갑자기 체포되었습니다. 원래 베이징이라고 부르지 않았던이 도시는 몽골 인에 의해 설립되어 1234 년에 몽골의 수도 인 베이징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곳은 몽골 영토입니다.
아닌데요. 자금성이란 이름은 1576년 처음 공식적으로 나왔다. 자금성이란 이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자금성의 자紫(보라색, 자주색)는 북극성을 의미하고, 자금성은 곧 우주와 같은 공간으로 생각되어, 하늘로부터 신성함을 부여받은 황제와 그의 가족의 영역이었다. 자금성은 세속적인 세상과 신성한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황제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금禁은 금지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궁을 들어오거나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城은 도시를 의미한다.
확실히 당시로서는 그럴만도 하죠 물론 전 문화란 건 지리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 해서 중국은 황하 주변에 평야도 많고 농사도 이루어지기 쉬웠고 문명이 발현 되기도 유리 했고 그 넓은 땅과 수 많은 사람이 있고 게다가 그들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 했으니 발전에 훨씬 유리 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반면 한민족은 한반도에 고립 되어서 한강만 끼고 서로 경쟁 했으니 당시로서는 환경적으로 불리한 조건 이었으니 따라서 중국이 발전 한 건 환경적 유리함에 기초 한다고 봅니다 이는 현대에도 어느 정도 유효한 것 같은게 과거에 쌓아 놓은 역사와 문화 자체가 컨텐츠가 되고 인구가 경쟁력이 되는 것 때문에 여전히 중국이 발전에 유리한 면은 있죠 아무쪼록 특별히 어느 민족이 우월 해서가 아니고 전부 환경에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전 한중일 각 국가의 고궁이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의 순수한 특색을 보면 과거 왕조의 권위와 규모를 비교 하는 것을 떠나서 각 민족들 만의 미의식만 보아서 말이죠
어휴... 뭔 헛소리를 적어놨나요? 고려시대 개경의 궁궐 크기도 작지 않았고 개경과 영천, 그리고 여러 지역에 궁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서울안에만 궁궐을 지었지만 자금성 72만제곱미터인데 창덕궁만 해도 55만제곱미터로 절대 뒤지지 않고 4대궁궐을 다 합하면 거의 140만제곱미터로 자금성의 2배나 된다. 중국은 폐쇄적으로 궁궐을 운영했지만 조선은 열린 궁궐로 백성이 안을 들여다볼수 있어야한다고하여 담장의 높이도 일정이상 높이지 않았다. 경복궁의 경우 지금의 모습은 일제강점기때 왕창 뜯어내버린 모습이고 원래의 모습은 자금성보다 훨씬 아름답다.
과거 북경은 고조선이 지배하던 지역으로 한나라가 쳐들어와 중국 영토로 삼은것을 고구려가 이들 지역을 소복하며 수도로 삼았었다. 고구려 전국에 수도를 5군데를 두었는데 이중 서쪽으로 존재하는 수도가 북경으로 고구려는 이지역을 유주라하고 이곳을 통치하는 책임관리자를 유주자사로 책봉하여 보냈다. 중국은 만리장성밖 동쪽은 한국땅이라고 하고 북쪽에는 돌궐땅이라 했는데 만리장성을 북경외곽에 설치하여 완전히 자국내 영토로 명확히 해버렸다. 원래대로 다시 우리나라로 되찾아 와야한다.
소박한정도는 아님..ㅋㅋㅋ 경복궁50헥타르 자금성72헥타르 그냥 조금 작은 정도이며 방갯수도 경복궁7700개 자금성 8700개 경복궁이 25년전에 지어졌으며 경복궁의 설계도면을 그대로 가져가서 더 크게 자금성을 지은거임. 명나라의 영락제가 자금성을 건설할 때 조선에서 기술자와 노동자를 파견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이 명나라에 벽돌, 기와, 목재 등 건축 자재를 보내고 기술자들을 파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선 경복궁이 자금성을 따라했다고 말하는데...... 역사적 기록물들이 엄연히 있거늘...ㄷㄷ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되네~ 뭐 그리 우길꺼면 우리가 건축자재나 기술자를 파견한거보면 자금성을 조선인들이 주체가되어서 지었다고 우기면 같은 논리인가???ㅋㅋㅋㅋ
중국 동부의 대부분의 성은 과거 고려 성이였는데 중국인들이 거기서 자기들 삼국지촬영을하고 웃음벨
저것 고려국 서경이라던데...
자금성 화면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언젠가 실제로 꼭 가보고 싶습니다.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다른 나라의 궁궐을 폄하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 동네 중국집이 자금성이니 크기만 크고 미학적으로 별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서로 멋있다고 훌륭하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금성에 화장실이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듯하여 쓰자면
단순히 위생/청결상의 문제로써
지금과 같이 물을 내려 오물을 처리할수 없었던 당시 상황상
화장실을 설치할 경우, 오물처리가 오히려 어려워져
설계시부터 화장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함.
새로운 고려역사를 공부중인데
북경이 고려의 황궁중 하나인 서경이 확실한듯 하네요
처음엔 배운 역사와 달라
황당했으나 사서와 비교할수록
笑死我了,小西巴,越南人说长江以南是他们的,韩国人说长江以北是你们的,我国人在长江里面游了几千年😂😂😂😂😂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笑死我了,小西巴
고려서경= 현 베이징 청나라 무영본이십삼사고증에도 고려서경 이자 원의 동령부가 하북성 범량 에 있었다고 적혀 있죠. 범량=북평으로 불렸고 1930년대에 북평에서 북경으로 개칭하여 경축한다고 동아일보 기사까지 있다.
좋은 영상 잘보고 갑니다~👍👍👍
우리동네 중국집이름 자금성
탕슉에서 빗자루 나온 자금성..
자금성에 현판 바탕색깔이 파란색인데 이거는 기록이 딱히 없죠??? 경복궁은 보통 중요한건물은 검정색이고 화기를 막는다 그러는데
와.. 진짜 완전 ‘도시’네요 ㄷ ㄷ ㄷ
차분히 잘 설명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구절마다 끝을 올리는 발음이 낯설고 그래서인지 들을수록 어딘지 어색하고 영상에 집중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니말이 어색하다
고구려성의 특징을 감추려 외성과 혜자를 없앴구나..
대단합니다. 대단하네요~
와 신기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임금이 직접 거주하는 공간을 비교하면 자금성 건천궁은 경복궁 강녕전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네요. 그건 조선이 나라가 작아서 그런게 아니라 신라나 고려시대 궁궐보다도 훨씬 소박하다고 합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민본주의 국가라서 궁궐을 크고 으리으리하게 지으면 백성이 고달프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은 임금이 나라의 소유주라기 보다는 나라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 경복궁 강녕전은 마치 오늘날 공무원 관사같은 느낌마져 줍니다. 조선 임금들도 공무원 관사 느낌이 나는 강녕전보다는 창덕궁을 더 선호했는데 오직 세종대왕만이 저 강년전에서 평생을 보내며 한글을 직접 발명하셨습니다.
황제만을 위한 궁궐이었던 자금성과는 달리 경복궁이란 이름은 '이 나라에 영원토록 큰 복이 있고 그 복으로 모든 백성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복궁 근정전의 '근정'은 임금이 직접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고 임금 집무실인 사정전의 '사정'은 임금이 생각을 안 하면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는 뜻이니 경복궁 각 전각들의 이름은 임금에 대한 잔소리로 가득차 있어 자금성과 경복궁은 그 철학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소리를 못 듣는 상황인데 자막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감사해요
썸네일 사진에 보면 자금성에 나무가 엄청 많이 심어져있던데 설명에서는 나무가 없다고 하시네요. 뭐가 맞는말인가요?
실제 최초에는 외전인 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 3대전을 자금성(고공)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중앙선으로 가보시면 완전 뚫려이고 나무도 없어서요.... 가볼만 합니다.
나무 있어요
우리처럼 근정전 같은 앞마당에 없는 거죠
쯔진청(자금성)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나무를 안심은 이유가 자객이 몰래 들어오면 나무에 가려 숨을수 있기에 경비상의 목적으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금성중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궁녀들이 머무는 후원이라는 곳에 조금 심어져 있어요. 자금성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걸리면 꾸아링츠씽(과릉지형)을 받는대 살아 있는 사람을 홀락벗겨 놓고 가죽을 벗기고 면도칼로 살저름 회를 뜨는 형으로 3일간에 걸처 6천번의 면도칼질로 6천저름의 회를 뜨는 형을 말 합니다. 그 사시미형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 발버둥을 치니까 회를 제대로 뜰수가 없으니 독한 뻬갈을 2리터를 먹이거나 대마초물을 먹이거나 아편을 먹여 반 정도 죽여 사시미형을 받을때 고통을 못 느끼고 희죽희죽 웃게 만들어 6천저름의 사시미를 뜹니다. 이 사시미형은 핏줄을 피하고 회를 뜨기에 회뜨기가 다 끝나도 사람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단 침입한 자의 본가 처가 외가의 할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3대*3가하여 9족을 참수형으로 죽이는 것 이지요. 자금성의 뜻이 일반인의 접근을 금한다는 뜻의 쯔진청으로 영어로 해석하면 더 포비든 씨리 즉 금지된 도시 라고 해석되는 곳 이지요. 명나라 청나라때에는 이 쯔진청(자금성)에서 근무하는 내시와 궁녀들의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는 전세계 최대의 궁전으로 미국 다큐에서도 보면 중국의 14억 인구의 나라가 아니면 다른 나라는 절대로 만들수 없는 성 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한국의 경복궁은 자금성에 비하면 궁이라고 말 할수도 없는 그냥 자금성의 내시들이 머무를수 있는 공간 정도의 면적도 안되겠지요
아마도 어화원 외에는 다른 지역은 나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화원 이라는 후원에만 나무가 있고 궁궐 건물 있는데는 나무를 볼수 없었어요 자금성규모정말 어마 어마 하답니다 자금성 외부로는 넓고 깊은 해자가 빔둘러져 있고요 그걸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 이 컸을지 짐작이 갔어요
와 진짜 크네요 잘 보고 갑니다
큰거 이외엔 별로 자연과는 괴리된 걍 큰 건물 정도...
예술가치로는 3백만원정도 네요..
자금성이란 말은 통닭님의 아들성이란 말이지...무슨 거창한 뜻이 있는게 아님...^^&
우리나라 경복궁 2배정도 되나요
사실은 면적은 경복궁이 더큽니다
가끔 차타고들어가서 사진찍고 관광하고왔는데
이거보니까 옛날 생각나네 ㅋ
변소 크기의 자금성.
우리동네도 자금성
우리동네는 오사카성
대단한 유산이다 솔직히
화교나 조선족이신가요? 한국어 발음이 좀..
와 맨날 2배속해서 그런줄 몰랐는데
확실히 한국인 발음이랑 다르네요.
다른댓글에도 발음보고 한국인 아닌신것같다고 추측하더라구요
자금성 짜장면 맛있는데..ㅋ
오사카성 초밥집이더ㅋ
삼국시대 궁궐보면 우리도 역사속에 자금성을 능가하는 궁궐을 가졌다는게 놀랍다. 크 청암리 사지 목탑과 황룡사 목탑은 또 얼마나 거대한 고대사회의 마천루인가
다 아직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요ㅠ
你们历史书上的小说写得不错😂😂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笑死我了
자금성 엄청 거대할줄 알았는데
동서 760m 남북 960m밖에 안되네 이정도면 대학 캠퍼스 정도밖에 안되는듯?
경복궁 따위가 어딜? 네놈은 무릎꿇고 머리쾅쾅해서 이마에 뚝배기 국물좀 흘려야겟다
이거는 완전 우물안 개구리구만 자금성 가봐라 ...머저라 웃기고 있네
몽골 인들은 사람들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중국군을 데려갔습니다.1447 년 몽골의 Gueg 왕은 고궁의 보호 아래 중국군에게 갑자기 체포되었습니다.
원래 베이징이라고 부르지 않았던이 도시는 몽골 인에 의해 설립되어 1234 년에 몽골의 수도 인 베이징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곳은 몽골 영토입니다.
잼민이인가?
그런 놈들이 황룡사를 태워?
@user-mh1ez8zn6j 맨날 다민족국가 어쩌구 하는데 결국 단일민족 국가나 마찬가지임. 한족이 90%가 넘는데 뭔 다민족이야 그정도면 단일민족 맞음. 역사에서 한족 빼고 죄다 오랑캐 취급한 놈들이 이제와서 다민족국가 타령하는건 청나라 만주족이 확장한 타민족 영토의 소유 명분을 위해서라는걸 누가 몰라.
자금성규모가 2박3일은 돌아야 한다고 중국여행때 가이드가 뻥친거임 반나절이면 충분함
경복궁도 규모는 열라큰편임 자금성의 절반정도는 되는듯
태국왕궁 베트남왕궁보다 큽니다
자금성이란 금성을 의미합니다 . 나라의 수도를 금성라 부르는 경우가 신라가 있고 훈족들도 수도를 금성이라고 한다네요. 금나라가 신라왕족이 세웟다는데 아마도 금성이 왜 자금성이 되었는지 알듯합니다
아닌데요.
자금성이란 이름은 1576년 처음 공식적으로 나왔다. 자금성이란 이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자금성의 자紫(보라색, 자주색)는 북극성을 의미하고, 자금성은 곧 우주와 같은 공간으로 생각되어, 하늘로부터 신성함을 부여받은 황제와 그의 가족의 영역이었다. 자금성은 세속적인 세상과 신성한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황제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금禁은 금지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궁을 들어오거나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城은 도시를 의미한다.
@@KIM_HS_0228 아 그런 의미였군요
@@KIM_HS_0228 댓글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고려 서경 이었다는데 글쎄!
아 자금성 잘 알지
신라인 김함보가 세운 금나라를
이은 후금 즉 청나라의 왕이
밥 끓여 먹던곳!
잘 알지 알고 말고~~
자금성 갔을 때 미리봤으면.... 너무 넓어서 힘들었는데..
@@까만사랑-l6e 뭔솔? 증거있음?
짜장문화 파괴운동때 살아남은 문화유산이죠
300여개 이상의 소수 부족으로 다민족 다문화의 원형 중국을 통일국가로 한무제 진시황제
거인계속국정원
자금성의 마지막 주인인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자금성의 정원사댐 ㅋ
정원도 없는 인공 건조물인데 정원 관리 할게 있나... 걍 청소부겠지요..
자금성 보다 큰 한국 왕궁 ruclips.net/video/xB4PH3LNDP4/видео.html
景福宫面积大院子大,房间又小又少还不美观,都比不上我们国家的恭王府,我们的紫禁城只烧毁了一小部分,可景福宫全被日本人烧毁,后来只复制了一小部分,没有历史价值,不如横店影视城一比一的紫禁城,我们国家的大明宫面积可是紫禁城的四倍,景福宫只是国王的宫殿,而紫禁城是皇帝的宫殿,别玷污我们的宫殿了。
삼황오제가 동이족 조상으로 황제가 여기서 나왔는데 식민지배만 당한 지나족이 유목민 멸망덕에 큰땅차지하고 지들 문화라 입터니 가사롭구나!!!
고려의 서경이라고 자금성이 더 있어봐야 되겠지!
고리의 수도..ㅋㅋ
자연과는 전혀 어우러지지 못한 그냥 무미 건조한 인공 건조물로
별로네요... 크게 짓는 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요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닙니다
자금성은 고려 의 유적 입니다 중국의 역사가 아니예요
목소리가 좀 그런네요
북경천도는 엄청냐 실수였지. 수도가 최전선이랑 너무 가까웠음
天子守国门
말이 너무 느려서 듣다그냥나갑니다.
너무크고 웅장해서 조선이 궁궐만 보고 위압감에 사대를 열심히 한것 같군요. 조선 관리들이 봤을 때 감히 중국에 대항할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중국의 엄청난 국력을 실감 했을만도 하네요.
확실히 당시로서는 그럴만도 하죠 물론 전 문화란 건 지리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 해서 중국은 황하 주변에 평야도 많고 농사도 이루어지기 쉬웠고 문명이 발현 되기도 유리 했고 그 넓은 땅과 수 많은 사람이 있고 게다가 그들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 했으니 발전에 훨씬 유리 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반면 한민족은 한반도에 고립 되어서 한강만 끼고 서로 경쟁 했으니 당시로서는 환경적으로 불리한 조건 이었으니 따라서 중국이 발전 한 건 환경적 유리함에 기초 한다고 봅니다 이는 현대에도 어느 정도 유효한 것 같은게 과거에 쌓아 놓은 역사와 문화 자체가 컨텐츠가 되고 인구가 경쟁력이 되는 것 때문에 여전히 중국이 발전에 유리한 면은 있죠 아무쪼록 특별히 어느 민족이 우월 해서가 아니고 전부 환경에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전 한중일 각 국가의 고궁이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의 순수한 특색을 보면 과거 왕조의 권위와 규모를 비교 하는 것을 떠나서 각 민족들 만의 미의식만 보아서 말이죠
어휴... 뭔 헛소리를 적어놨나요? 고려시대 개경의 궁궐 크기도 작지 않았고 개경과 영천, 그리고 여러 지역에 궁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서울안에만 궁궐을 지었지만 자금성 72만제곱미터인데 창덕궁만 해도 55만제곱미터로 절대 뒤지지 않고 4대궁궐을 다 합하면 거의 140만제곱미터로 자금성의 2배나 된다. 중국은 폐쇄적으로 궁궐을 운영했지만 조선은 열린 궁궐로 백성이 안을 들여다볼수 있어야한다고하여 담장의 높이도 일정이상 높이지 않았다. 경복궁의 경우 지금의 모습은 일제강점기때 왕창 뜯어내버린 모습이고 원래의 모습은 자금성보다 훨씬 아름답다.
시진핑황제는 왜 저기 안살까
황제도 신하도 없어서이지 않을까요? ^ ^
习近平不是皇帝,是伟大的人民领袖
영상이 너무느려요 1.5배는 해야할거같습니다
과거 북경은 고조선이 지배하던 지역으로 한나라가 쳐들어와 중국 영토로 삼은것을 고구려가 이들 지역을 소복하며 수도로 삼았었다. 고구려 전국에 수도를 5군데를 두었는데 이중 서쪽으로 존재하는 수도가 북경으로 고구려는 이지역을 유주라하고 이곳을 통치하는 책임관리자를 유주자사로 책봉하여 보냈다. 중국은 만리장성밖 동쪽은 한국땅이라고 하고 북쪽에는 돌궐땅이라 했는데 만리장성을 북경외곽에 설치하여 완전히 자국내 영토로 명확히 해버렸다. 원래대로 다시 우리나라로 되찾아 와야한다.
放屁,朝鲜半岛应该是中国领上,现在是美国殖民地
你必须阅读他的
자금성은 고려성이 맞음 축조기술이 전형적인 고려식임. 그런데 만주족이 바로 고려인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ㅋㅋ숨겨야지...끝까지....개돼지를 만들어야 함..ㅋㅋ
자금성은 한족들이 만든 건데요? 명나라 청나라 구분 못하시나???
@@opppgi406 명나라때 만들어졌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는 명나라때 작은 궁전이었는데 청나라 건룽제때 현재 자금성 으로 완성되었다네요. 옛지식만 근거하지말기요~
Shame on you. This is a traditional Chinese building. China has had this style of architecture for thousands of years. Shame on you
제발 이런소리좀 하지마라 이러니까 중국에서 한국애들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우긴다는 헛소문이 퍼지지 국뽕적당히빨고 환단고기좀 작작봐
고려 서경이였단말 있음.공자란 영감탱이 줘도 싫은데 동이족이 맞아 싫어도 사실은 수용해 할수없이 받아들인다
사실 그것은 몽골의 왕궁이었습니다. 현재 베이징시는 몽골의 수도였습니다.
어쩌라구 중국부속국일본식민지 미국머슴 푸하하하
남조선경복궁200배네 푸하하하
@@Hunter-sk7dd 딱봐도 몽골인이 원나라 때 지배 당한 느그 중국 한족들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는 한국인은 왜 건드리죠? 하여튼 열등감은 ㅉㅉ
@@ocd7821 남조선좇만해서 누구나가 건드리잖아 ㅎㅎㅎ
@@Hunter-sk7dd 진짜 개한심
경복궁은 자금성처럼 크고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대신 소박하면서도 경건하면서 품위있고 아주 우아하며 특히 배경의 인왕산과 북악산과 어울어져 외국인들에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고 하네요.
소박한정도는 아님..ㅋㅋㅋ
경복궁50헥타르 자금성72헥타르
그냥 조금 작은 정도이며 방갯수도 경복궁7700개 자금성 8700개
경복궁이 25년전에 지어졌으며 경복궁의 설계도면을 그대로 가져가서 더 크게 자금성을 지은거임.
명나라의 영락제가 자금성을 건설할 때 조선에서 기술자와 노동자를 파견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이 명나라에 벽돌, 기와, 목재 등 건축 자재를 보내고 기술자들을 파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선 경복궁이 자금성을 따라했다고 말하는데......
역사적 기록물들이 엄연히 있거늘...ㄷㄷ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되네~
뭐 그리 우길꺼면 우리가 건축자재나 기술자를 파견한거보면 자금성을 조선인들이 주체가되어서 지었다고 우기면 같은 논리인가???ㅋㅋㅋㅋ
명나라 사신이 경복궁을 보고 디자인과 구조를 고안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없지 싶은데요?
그럴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게 애초에 자금성이든 경복궁이든 아시에에선 가장 기본적이고 고대부터 쓰던 양식인데 굳이 경복궁울 참고한다?
Shame on you. This is a traditional Chinese building. China has had this style of architecture for thousands of years. Shame on you
@@maoyuyang720 copy about system mecanism
중국 정전은 6칸
조선의 정전은 신하를 자처한 나라였기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5칸
중국 지금 시체태우고 그런다는데 진짠가요
미국이 더 많이 태울텐데
곧 너의 집에서도 태울것이니라
자금성에는 황제빼고는 남자가 없다고 하던데..
아님
중국 선전
중국 울화통 치밀어
우환폐럼
경복궁 설계도면 가져가서 그대로 베껴서 더크게만든 자금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뻔뻔한지 이해가 안 돼요.
짜장면
중화민국 🇹🇼의 역사적인 자금성
자금성 가보면 경복궁이랑은 비교 불갸 ㅌㅋㅋㅋㅋㅋㅋㅋ 63빌딩 이랑 연립주택빌라 비교라 생각하면 편함 ㅌㅋㅌ
북경은 1932년에 북평에 만들어진 신도시입니다.
이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지역은 이 시기까지 조선의 영토였습니다.
진짜 넘 맛없음 간짜장 짜증남 요즘은 메추리듀 안너주고
이건 정말 아닌거 같아요 양파도 시들한거 같구요
다신 안시켜요
물가가 올라서 그런 겁니다. 중국집도 먹고 살아야 되니깐요.
둘이 정신뵹자 ㅋ 끼리끼리 ㅋ😂
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