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할렐루야! 채환이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채환이의 말처럼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죄인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럼 예수님의 그 사랑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걸까요? 바로 전도사님과 우리 채환이를 향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채환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채환이 안에서 함께 하시고, 채환이가 예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채환이 안에서 일하시고 계세요. 채환이도 그런 예수님을 더 바라보고, 더 사랑하시길 바래요^^
서은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성경에는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누가복음 19장에만 나와요.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삭개오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렇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삭개오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보면, 이후의 삭개오의 삶은 변화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그렇다면 삭개오는 왜 회개했을까? 이것 또한 성경에서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당시 유대사회가 세리를 죄인 취급했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있어요.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거에요.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불렀어요. 삭개오를 미워했고, 같이 있기도 싫어했어요. 유대인으로 살아가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을 미워하니 삭개오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같이 자신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눈빛으로 쳐다보시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삭개오에게는 엄청 커다란 일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삭개오의 인생을 뒤바꾸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거에요. 사실 그 시기나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예수님과 만남은 우리를 반드시 변화시켜요. 서서히 바뀔 수도 있고, 삭개오처럼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서은이에게도 이런 일은 있을 거에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가게 될 거에요. 그러니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 서은이 되길 바래요^^
승원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삭개오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삭개오도 유대인이었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죠. 다만 세리로서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고, 소외되어 살아오면서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은 직접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거에요. 그렇다면 승원이의 질문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전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전도를 하게 하신 거에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만나주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했던 거에요. 우리가 하는 전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도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거에요. 우리 승원이도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일을 위해 불러주셨어요. 그러니 전도사님과 함께 승원이도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서 함께 살아가 보아요^^
예원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예원이의 질문처럼 예수님은 왜 낮은 위치에 있는 죄인들에게 찾아가실까? 사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였기 때문이에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구약시대 때 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제사를 드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구약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어요. 이것에 대해 성경에도 말해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1-12) 구약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하신 거에요. 이것은 옛날부터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죄인이었습니다. 사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은 죄인들, 곧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그리고 전도사님과 예원이도 죄인이라는 사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거에요. 예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크십니다. 이 사랑에 더 감사하며 살아가는 전도사님과 예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훈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지훈이가 본 것처럼 삭개오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세리로서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잘못된 삶을 살았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서 삭개오는 그 모든 것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 거에요. 삭개오가 이렇게 변화된 것에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삭개오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은 죄인 취급 받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소외를 당해온 삶이었어요. 외로웠을 거에요. 스스로도 죄인이라는 생각에 떳떳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 삭개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따스한 말 한마디, 따스한 눈길, 위로의 말.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주신 거에요.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 19:5) 예수님은 삭개오를 따스하게 쳐다보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꺼리고 도망가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예수님께 삭개오는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난 삶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것을 스스로 결심한 거에요. 이처럼 예수님과의 만남,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켜요. 우리를 감격하게 만들고, 우리의 이전 모습을 회개하게 만들어요. 이것이 바로 지훈이에게도, 그리고 전도사님에게도 부어지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에요!
태건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태건이 안에서 함께 하고 계세요. 성경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성령님이 태건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건이 안에, 태건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시는 거에요. 정확히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태건이 안에 함께 계시다! 그런데 태건이가 물어본 것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조금 다르긴 해요. '예수님이 내 삶 속에서 정말로 함께 하고 계시는구나'를 깨닫게 되는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험(만남)'은 사람마다 그 시기와 방법이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말씀을 배워가고 알아가며,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커져서 '아!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깨닫게 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깨닫게 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꿈에서 만나주시기도, 환상으로 만나주시기도,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도 하죠. 예수님과의 만남(경험)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도 필요하지만, 우리들도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거에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말씀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예수님과의 만남,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을 위해 더 말씀을 읽고 배워가는 우리 태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준영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준영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해요! 1) 삭개오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2)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예수님과의 만남은 삭개오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뀐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영이의 질문을 생각해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삭개오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신다는 걸 거부했다면? 만약,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눅 19:9)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래서 예수님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만남을 갖는 당사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자신의 삶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 준영이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셨어요. 그러니 준영이도 삭개오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되요. 예수님을 위해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되요. 그렇게 살아가는 전도사님과 우리 준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리아 좋은 질문 고마워요! 전도사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유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죄인은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이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 리아가 질문한 창기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를 말해요. 이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들이기에 죄인으로 여겨졌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아오시는 분이세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사실 세리나 창기, 이방인만 죄인이 아니에요. 우리들도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거에요. 우리 리아를 너무도 사랑하시고, 찾아오셨다라는 사실, 기억하는 리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녹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금액으로 소유 및 수입의 20%라고 정해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 50%를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자기가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를 갚겠대요.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삭개오가 이렇게 한 것에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주신 것은 삭개오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2)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주는 삭개오의 의지였다. 삭개오의 이런 말과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시는 거에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으로만 가능해요. 그러니 에녹이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더 기대하시기 바래요. 예수님은 에녹이의 삶 속에서 놀랍도록 함께 해주실 거에요!
찬영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삭개오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안타깝게도 성경에 나와있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삭개오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보면, 이후의 삭개오의 삶은 계속해서 변화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되면 예수님께 꼭 한번 질문해보기로 해요!
지민이 오늘도 좋은 질문 고마워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런 죄인들도 구원을 해야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이었다는 거에요.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시선은 늘 죄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해서 구원받는 일이 있으면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면 큰 기쁨이 있다고 이야기도 해주셨죠. 이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이냐면, 천국에 있는 모든 천사들도 함께 기뻐하는 큰 기쁨이래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이처럼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께 너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도 죄인이기 때문이죠. 죄인인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모든 거절과 핍박을 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는 기억해야 되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예수님은 사랑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전도사님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는 지민이 되길 바래요^^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 후 말씀을 듣고 궁금한 점을 적어주세요! 5명을 뽑아 선물을 드립니다~^^
엄채환 예베 드립니다. 예수님은 착한사람들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줄 알았는데, 죄인도 사랑하시고 자신의 삶을 알수 있도록 해주시는 예수님은 정말 사랑이 끝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우와 할렐루야!
채환이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채환이의 말처럼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죄인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럼 예수님의 그 사랑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걸까요? 바로 전도사님과 우리 채환이를 향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채환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채환이 안에서 함께 하시고, 채환이가 예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채환이 안에서 일하시고 계세요. 채환이도 그런 예수님을 더 바라보고, 더 사랑하시길 바래요^^
ㄱㅏㅇ세광 예배드렸습니다
임사랑 예배 드립니다.
최서은 예배드렸습니다❤
삭개오는 그후에 어떤삶을 살았고, 삭개오는 예수님의 무엇에 감동하여 자신을 회개한걸까요??
오늘도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서은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성경에는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누가복음 19장에만 나와요.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삭개오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렇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삭개오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보면, 이후의 삭개오의 삶은 변화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그렇다면 삭개오는 왜 회개했을까?
이것 또한 성경에서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당시 유대사회가 세리를 죄인 취급했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있어요.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거에요.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불렀어요. 삭개오를 미워했고, 같이 있기도 싫어했어요. 유대인으로 살아가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을 미워하니 삭개오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같이 자신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눈빛으로 쳐다보시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삭개오에게는 엄청 커다란 일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삭개오의 인생을 뒤바꾸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거에요.
사실 그 시기나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예수님과 만남은 우리를 반드시 변화시켜요. 서서히 바뀔 수도 있고, 삭개오처럼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서은이에게도 이런 일은 있을 거에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가게 될 거에요. 그러니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 서은이 되길 바래요^^
박성웅 예배드립니다
임채리 예배드립니다
김하영 예배드립니다
김서윤 예배 들었습니다.
임원반최유진예배드립니다
김현민 예배드립니다!
유하민 예배드렸습니다.
이찬영 예배드립니다
김은석 예배드립니다
이여진 예배드립니다
이상현 예배드립니다
홍예성 예배 드립니다.
배유빈 예배드립니다
이예빈 예배 드립니다.
박지윤 예배드립니다
양승원 예배드립니다.
하나님 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구원해주시나요(삭개오처럼)
승원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삭개오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삭개오도 유대인이었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죠. 다만 세리로서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고, 소외되어 살아오면서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은 직접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거에요.
그렇다면 승원이의 질문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전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전도를 하게 하신 거에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만나주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했던 거에요. 우리가 하는 전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도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거에요. 우리 승원이도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일을 위해 불러주셨어요. 그러니 전도사님과 함께 승원이도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서 함께 살아가 보아요^^
조예원 예배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었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원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예원이의 질문처럼 예수님은 왜 낮은 위치에 있는 죄인들에게 찾아가실까? 사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였기 때문이에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구약시대 때 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제사를 드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구약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어요. 이것에 대해 성경에도 말해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1-12)
구약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하신 거에요. 이것은 옛날부터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죄인이었습니다. 사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은 죄인들, 곧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그리고 전도사님과 예원이도 죄인이라는 사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거에요. 예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크십니다. 이 사랑에 더 감사하며 살아가는 전도사님과 예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지훈 예배드립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지훈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지훈이가 본 것처럼 삭개오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세리로서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잘못된 삶을 살았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서 삭개오는 그 모든 것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 거에요. 삭개오가 이렇게 변화된 것에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삭개오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은 죄인 취급 받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소외를 당해온 삶이었어요. 외로웠을 거에요. 스스로도 죄인이라는 생각에 떳떳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 삭개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따스한 말 한마디, 따스한 눈길, 위로의 말.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주신 거에요.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 19:5)
예수님은 삭개오를 따스하게 쳐다보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꺼리고 도망가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예수님께 삭개오는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난 삶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것을 스스로 결심한 거에요.
이처럼 예수님과의 만남,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켜요. 우리를 감격하게 만들고, 우리의 이전 모습을 회개하게 만들어요. 이것이 바로 지훈이에게도, 그리고 전도사님에게도 부어지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에요!
전준영 예배 드립니다
저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요?
태건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태건이 안에서 함께 하고 계세요. 성경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성령님이 태건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건이 안에, 태건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시는 거에요. 정확히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태건이 안에 함께 계시다!
그런데 태건이가 물어본 것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조금 다르긴 해요. '예수님이 내 삶 속에서 정말로 함께 하고 계시는구나'를 깨닫게 되는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험(만남)'은 사람마다 그 시기와 방법이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말씀을 배워가고 알아가며,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커져서 '아!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깨닫게 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깨닫게 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꿈에서 만나주시기도, 환상으로 만나주시기도,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도 하죠.
예수님과의 만남(경험)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도 필요하지만, 우리들도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거에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말씀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예수님과의 만남,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을 위해 더 말씀을 읽고 배워가는 우리 태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삭개오를 구원하셨나요?
최준영 예배드렸습니다
준영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사실 준영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해요!
1) 삭개오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2)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예수님과의 만남은 삭개오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뀐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영이의 질문을 생각해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삭개오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신다는 걸 거부했다면?
만약,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눅 19:9)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래서 예수님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만남을 갖는 당사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자신의 삶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 준영이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셨어요. 그러니 준영이도 삭개오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되요. 예수님을 위해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되요. 그렇게 살아가는 전도사님과 우리 준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리아 예배드렸습니다.
창기라는 직업은 자세히 어떤 직업인가요?
리아 좋은 질문 고마워요!
전도사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유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죄인은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이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 리아가 질문한 창기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를 말해요. 이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들이기에 죄인으로 여겨졌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아오시는 분이세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사실 세리나 창기, 이방인만 죄인이 아니에요. 우리들도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거에요. 우리 리아를 너무도 사랑하시고, 찾아오셨다라는 사실, 기억하는 리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에녹 예배드립니다
삭개오는 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사람에게 기부했나요?
에녹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금액으로 소유 및 수입의 20%라고 정해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 50%를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자기가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를 갚겠대요.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삭개오가 이렇게 한 것에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주신 것은 삭개오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2)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주는 삭개오의 의지였다.
삭개오의 이런 말과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시는 거에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으로만 가능해요. 그러니 에녹이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더 기대하시기 바래요. 예수님은 에녹이의 삶 속에서 놀랍도록 함께 해주실 거에요!
삿게오는 그 후로 어떻게 살았나요?
찬영이 좋은 질문 고마워요!
삭개오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안타깝게도 성경에 나와있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삭개오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보면, 이후의 삭개오의 삶은 계속해서 변화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되면 예수님께 꼭 한번 질문해보기로 해요!
감사합니다 이찬영질문이었습니다
박지민 예배드립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면서 마냥 기쁠순없는데 예수님은 왜 항상 긍정적으로 사람들을 대하시나요?
지민이 오늘도 좋은 질문 고마워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런 죄인들도 구원을 해야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이었다는 거에요.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시선은 늘 죄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해서 구원받는 일이 있으면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면 큰 기쁨이 있다고 이야기도 해주셨죠. 이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이냐면, 천국에 있는 모든 천사들도 함께 기뻐하는 큰 기쁨이래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이처럼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께 너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도 죄인이기 때문이죠. 죄인인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모든 거절과 핍박을 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는 기억해야 되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예수님은 사랑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전도사님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는 지민이 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