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유재흥은 무능력한 쓰레기였던건 맞지만... 전시작전권 관련의 의의마저도 폄하하는건 좀... 애초에 유재흥으로 인해 전시작전권이 빼았겼고 그러므로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온전히 돌려 받아야 한다는 말도 이상함. 6.25끝나고 나서 나라가 개판이 된 와중에 온전히 우리나라만의 힘으로 북한, 그 뒤의 소련과 중국의 협잡질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전시작전권을 미국에게 건네준 것은 마셜플랜을 통한 전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한국이 미국의 지원으로서 살아남기위한 자구책의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중국과 북한이 한국을 노리고 있는 이상 전작권 관련 떡밥에 낚이는건 대깨문들이나 당하는 짓이고... 그러니 전작권은 한국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으니 그걸 가지고 아직도 물어뜯는건 아니라고 본다. 특히 지금같은 난세에서는 더욱.
쌍령전투는 양쪽이 패전을 주장하는 마치 노디시전같은 전투입니다 그리고 패인은 뭐라해도 도경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이괄의 난 이후 정충신과 남이흥장군이 지적한데로 속오군의 훈련이 부실했기에 중간급장교들의 역할이 컸죠 허완부대의 통제력이 상실된것도 이 중간급장교 중 하나인 박충겸을 도경유 종사관이 살해했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18세기말 도경유 후손들이 박충겸이 청나라군대에게 공격을 주저해서 도경유가 살해했다고 우겨서 도경유의 신원복권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이 도경유는 현재까지 불천위제사를 받고 있습니다 꼭 이 부분을 황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쟁도 모르는 문관이 끼어들면 어떤 비극이 생기는지와 그걸 미화하는 행동을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번역내용들 정리!!!!! 1/옛날만주땅사람들, 몽골족, 선비족, 옥저,예,맥,한 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고려는 같은 (동이계열언어sov민족) 이기때문에 고대때부터 서로 사투리처럼 언어가통했는데 사투리에서 세월이 너무오래흘러서 독립언어로 바꼈어요!!!!! 2/(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은 갑골문자도 탄생시키고 똑똑했지만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이 바퀴ㅂ레 물량빨로 힘이 너무쎘기때문에 요하 만주 고조선 후예들이 점점 한반도로 밀려났어요!!!!! 3/고대부터 바퀴ㅂㄹ물량빨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은 물량은 적어도 똑똑하고 강했던(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한테 지배받아서 (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한테 영향을 받고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은 지배자(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의 노예처럼 오랫동안 살았어요!!!!! 그래서 중국인들은 동이계열언어민족한테 지배받고 노예처럼 살아서 열등감이 너무 심해서 도둑사기꾼처럼 훔치기만 잘해요!!!!! 몽골어도 못하는 중국어 만주어도 못하는 중국어들이 고대부터 언어도 안통하는 민족이면서 동이계열민족들 역사를 훔치고 있어요!!!!! 내용정리 끝!!!!!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김동욱-i5b 전쟁을 숫자로 하는게 아니어도 10만이면 당시 청나라 원정군의 거의 두 배 병력이고 지리를 더 잘 안다는 이점도 있었죠. 더구나 남한산성 일대는 산지여서 기병대가 대규모로 돌격할 수 있는 여건도 잘 안나옵니다. 청군 입장에선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거죠. 특히나 당시 청군은 평안도 지역을 차근차근 점령하면서 후방지역을 다져온게 아니라 한양까지 최단거리로 달려온 것이기 때문에 최전방 전선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도리어 난감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군이 체계가 잡혀있는 군대였으면 쌍령전투처럼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겠고 몇 번 전투 후에 청군은 최소 지금의 강남3구 또는 한강 이북지역으로 군대를 물렸을겁니다. 기병대가 작전하기엔 그런 탁 트인 동네가 지리적으로 좋으니까요. 그러면 왕이 자연스레 구출이 되는거고.. 최소한 왕이 머리 찧어가며 무조건 항복하는 굴욕은 안당했을 겁니다. 살수나 귀주대첩 처럼 청군을 완전히 패퇴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전선의 상황들로 인해 청군이 스스로 물러나게만 할 수 있었다면 이후 외교상황에서 조선이 불리할 것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죠.
@@쇠망치-g1u 임진왜란 당시 인구가 800만 정도니까 남자만 400만, 어린이와 노인 제외하고 대충 반띵하면 성인남자만 200만이고요. 속오군제가 성인남자는 전부 다 군사훈련을 받든지 군인세를 내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 사실상의 징병제였으니, 군인과 보인이 대충 1:2~1:3 비율이었다고 가정하면 국가 총동원령으로 끌어올 수 있는 병력의 최대치는 50~60만까지도 됐을겁니다. 전면전 상황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적군에 포위된 왕을 구하는 작전에 투입된 병력이 10만이라면 그게 전혀 말이 안되는 숫자는 아니라는거죠. 그 병력들의 질적인 면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는건 분명한 팩트지만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보면 당시 청군에 비해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을 겁니다.
5000만 인구의 우리나라에서 전면전 발생시 총동원령이 선포되면 동원되는 병력이 예비군까지 거의 500만 가까이 됩니다. 전체 인구의 1/10이죠. 병자호란 당시 상대는 황제가 직접 나섰고 우리도 최전선인 남한산성에 왕이 들어있는 상황이었고요. 10만이 전혀 헛소리는 아닙니다.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개인적으론 이 강사님 설명 들을때 마치 세뇌하는거 같아 묘하게 불편한데 역사를 가정하기에 앞서 다른 시각을 조명합시다. 광해는 어떤사람? ruclips.net/video/qgt9ojl1l8E/видео.html 조선의 민초들이 명에 사대하기 위해 청과 대립했나? ruclips.net/video/2_S7x_WhA-o/видео.html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쌍령전투가 실제로 큰 참패는 아니었고, 청나라 고위군관이 전사했는데시신도 못 찾아갔다는 식으로, 비교적 최근에 반론이 제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봤는데 이러한 주장이 어떤 블로그에서 시작돼 , 그 내용대로 인터넷 백과사전(나무위키) 에 실리고, 마침내 여러 커뮤니티에서 '양쪽 군대가 서로 졌다고 말하는 전투' 라면서 유머처럼 소비되고 있더군요. 하여 그들이 근거로 말하는 청사의 해당 기사를 읽어봤는데 악다귀와 전사한 석이도가 참전했다는 싸움이 쌍령전투였다는 근거가 없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일자정보나 전장이 쌍령고개라고 특정할만한 묘사가 없습니다. 내용은 건조하게 어떤 전투에서 석이도가 전사했다는 것과 사후처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악다귀는 선조실록의 기사로 쌍령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되나 석이도는 검증이 안되고 있는데 이걸 악다귀가 참전했으니 석이도가 전사한 전투가 쌍령전투일 것이다 라고 추측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4만 병력이 몰살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근거가 희박한 기사에 의존해 참패를 윤색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황현필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올림픽 독도 표기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선생님께서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만약, 독도표기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그 후폭풍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토론토 이민사회도 벌써 시끄럽습니다. 이 문제는 그 어떠한 논리로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을것입니다. 내 집에서 만 짖어데는 똥개가 되어서 되겠습니까❓ 금메달 몇개와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만약 국민을 속이고 비굴하게 출전한다면, '이완용'이 보다 더 비겁한 메국노가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일 것입니다❗너무나 불안한 것은 지금 국민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역사학자로써 이 문제, 바로잡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한일합방 이 후, 우리의 정치인들이 두 번 다시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꼭 막아주십시오❗한 번더 나라가 국민을 버린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라를 버릴 것 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이게 맞는거지요. 이세민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 고당전쟁에서 그나마 가장큰 승리에 중국뻥을 심하게 튼거지요. 고구려군 15만이면 만주와 평안도.함경도 병사들을 싹싹 긁어모아도 될까말까 일거고 천년후 후금이 팔기군을 비롯 최대한 끌어 모아도 팔만이 체 되지않았으니 국력을 비교해도 고구려군 15만은 뻥이지요. 제 추측엔 신당서의 2~3만보다도 적었을거란 생각입니다. 요하강 동쪽을 따라 고구려 성곽에 3천에서 만여명씩의 병사들이 배치돼 있고 압록강 이남 평양을 수비할 병력이 3~5만 이라면 주필산에 투입가능한 개마무사 위주의 병력은 2~3만도 안될거란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중국식 과장과 뻥은 0을 하나 빼는게 맞을겁니다.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쌍령 전투의 내용은 100년후에 지어신 야사인 연려신기술이 바탕입니다. 오히려 당대 실록이나 청나라의 기록을 보면 연려신기술과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전투 당시 양군의 규모는 2,000여명(조선) vs 3,000명 이상(청)으로 추정되며, 화약 폭발 사고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황현필선생님 늘 좋고 세심한 강의 너무나 감사합니다^^ 한국역사의 공과 과를 모두 거리낌없이 강의해주셔서요!! 근데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에 대해서도 한번 영상 부탁드립니다^^ 제가 공시생이지만.. 학창시절 교과서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이렇게 큰 사건이 단 한번도 언급 안된다는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황선생님 정말 유튜브 잘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중이 있는데요. 대륙에 백제가 있었다는 친구랑 말싸움이 일어났는데 친구말로는 남조의 역사서에는 북위의 기병을 물리쳤다는 등의 내용이 있고 북조의 역사서에는 없는데 이건 뭐가 더 신빙성이 있는걸까요? 요서 및 대륙에서의 백제에 대한 견해가 정말 궁금합니다 선생님.
원래 조선의 경우 전라도가 곡창 지대라 인구가 제일 많았습니다. 경상도는 그정도 인구가 되지 않았는데 4만군이 있었으면 전라도도 그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합쳐 거의 8만명의 군대인데 조선은 그정도의 군인을 먹어살릴 정도는 군량이 나오지도 않고 조선 8도를 모두 합치면 거의 20만 대군이 있었다는 뜻인데 그정도면 만주 점령이 가능 합니다. 또 우리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거지 조총은 불발이 정말 많이 납니다. 현대적인 소총도 불발이 나는데 화약을 붙고 쓰는 조총에 조선군은 화약 관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10발을 쏘면 5발 나가면 잘 나가는 겁니다. 더군다나 적에게 명중 되는 것은 그중에 두발 정도 맞을 겁니다. 특히 야전에서 기병을 상대로 조총을 쐈다는 것은 거의 정말 명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야전에서 당시의 총으로 기병을 상대하려면 서양의 전열보병처럼 수백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번에 집중 사격하지 않으면 이 기병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리전투... 역사상 가장 창피한 패전입니다. 중공군에게 도망친 유재흥에게 밴플린트장군이 물었습니다. "당신 부대는 어딧소?" 유재흥 왈 "잘 모르겠는데요!" 이때 화가난 밴플린트가 대한민국 전작권을 뺐어갔습니다. 더 웃긴건 노무현대통령이 전작권을 찾아오자고 주장할때 제일 앞장서 반대했던자 유재흥이란 작자입니다.
현장은 현장에 맡겨야 하는데 야전사령관을 무시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행정관이 지휘하는 조선의 고질적인 병폐가 쌍령전투의 참패라는 결과를 불러왔네요, 한편으로 패배는 쓰라리지만, 겁 먹고 조선의 굴욕을 지켜보기만 했던 장수들에 비해 목숨 걸고 청군과 싸웠던 장수들이 패전지장의 멍에를 쓰고 욕먹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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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침략당한 역사지만
50십 평생 이런 역사강의는 처음봅니다
패배의식에 쩔은 기존 역사와는 다른,
배울수록 저력이 느껴지는 우리 민족같습니다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두번 눈물이 납니다.. 한번은 백제멸망이고. 두번째는 병자호란 입니다. 한나라의 임금이 찬탈한 놈에게
항복선언을 할때가 가슴아픕니다.... 다시는 전쟁없는 나라. 튼튼한 강국을 이룩해 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현리 전투의 은 잊지 말아야... 전시작전권도 빼앗기게 만든 인간. 호의호식하다 국립묘지에 묻힌 인간.
조선조였다면 부관참시 당했을 인물인데....
유재흥은 무능력한 쓰레기였던건 맞지만... 전시작전권 관련의 의의마저도 폄하하는건 좀...
애초에 유재흥으로 인해 전시작전권이 빼았겼고 그러므로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온전히 돌려 받아야 한다는 말도 이상함.
6.25끝나고 나서 나라가 개판이 된 와중에 온전히 우리나라만의 힘으로 북한, 그 뒤의 소련과 중국의 협잡질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전시작전권을 미국에게 건네준 것은 마셜플랜을 통한 전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한국이
미국의 지원으로서 살아남기위한 자구책의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중국과 북한이 한국을 노리고 있는 이상 전작권 관련 떡밥에 낚이는건 대깨문들이나 당하는 짓이고...
그러니 전작권은 한국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으니 그걸 가지고 아직도 물어뜯는건 아니라고 본다. 특히 지금같은 난세에서는 더욱.
유재흥 제주도 4.3사건때 군 최고 책임자
@@gohs4812 우리가 북한보다 약하냐? 국방비가 북한에 몇십배인대? 장군들은 뭐하고 있대
@@diyt-l1x 진짜 맙소사다 ;; 역사 채널에서 이런 글도 보게 되는군 ;;
퇴근시간 딱 맞춰서 업로드 아주 좋네요.
인조땜에 남한산성 백숙이 시작이라니 안가야 겠네요.
드립이지 레알이겠냐ㅋ
@@배인규찐일베구걸쟁이 넌 닭 먹을때 반마리만 먹냐?
왜 반마리냐?그러니 덕선이한테 돈 뜯기지 ㅉㅉ
우.
우남
선생님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말 맞이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쌍령전투는 양쪽이 패전을 주장하는 마치 노디시전같은 전투입니다 그리고 패인은 뭐라해도 도경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이괄의 난 이후 정충신과 남이흥장군이 지적한데로 속오군의 훈련이 부실했기에 중간급장교들의 역할이 컸죠 허완부대의 통제력이 상실된것도 이 중간급장교 중 하나인 박충겸을 도경유 종사관이 살해했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18세기말 도경유 후손들이 박충겸이 청나라군대에게 공격을 주저해서 도경유가 살해했다고 우겨서 도경유의 신원복권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이 도경유는 현재까지 불천위제사를 받고 있습니다 꼭 이 부분을 황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쟁도 모르는 문관이 끼어들면 어떤 비극이 생기는지와 그걸 미화하는 행동을요
너무 멋지신 우리 황쌤! 셔츠가 시원시원해서 보기 좋습니다. 유익하게 듣고 보고 갑니닷!
6.25 특집 때 현리전투 부탁드립니다 !! 항상감사해요 :)
국격이 최고로 올라가는 현 시점에서 황선생님 강의는 피가되고 살이되는!! 늘 감사합니다!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번역내용들 정리!!!!!
1/옛날만주땅사람들, 몽골족, 선비족, 옥저,예,맥,한
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고려는 같은 (동이계열언어sov민족)
이기때문에 고대때부터 서로 사투리처럼 언어가통했는데
사투리에서 세월이 너무오래흘러서 독립언어로 바꼈어요!!!!!
2/(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은 갑골문자도 탄생시키고 똑똑했지만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이 바퀴ㅂ레 물량빨로
힘이 너무쎘기때문에 요하 만주 고조선 후예들이 점점 한반도로
밀려났어요!!!!!
3/고대부터 바퀴ㅂㄹ물량빨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은
물량은 적어도 똑똑하고 강했던(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한테
지배받아서 (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한테 영향을 받고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민족)들은
지배자(동이계열언어sov민족)들의 노예처럼 오랫동안 살았어요!!!!!
그래서 중국인들은 동이계열언어민족한테 지배받고
노예처럼 살아서 열등감이 너무 심해서
도둑사기꾼처럼 훔치기만 잘해요!!!!!
몽골어도 못하는 중국어 만주어도 못하는 중국어들이
고대부터 언어도 안통하는 민족이면서
동이계열민족들 역사를 훔치고 있어요!!!!!
내용정리 끝!!!!!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선생님 좀 더 자주 올려주셔요...ㅠㅠ 현기증 날 거 같아요...
영상 고맙습니다 ~~^^
항상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명강의 입니다
선 따봉 후 감상입니다.
ㅎ 따~봉
오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창시절에 황현필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면 더 재미있게 공부했을텐데 아쉽습니다~~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모르던 전쟁사 잘들었습니다 아뭏튼 부국강병 만이 백성 을 살리는 길이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
허완 진영이 집이었고, 악다귀 진영이 고등학교였네요 ㅋㅋㅋ 뒷산 등산 가면 국수봉에 비석으로 병자호란 기록이 적혀있던 것 같은데.... 20년 지난 지금은 어떻게 바뀌어있나 시간 내서 오랜만에 올라가 봐야겠어요!! 항상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이 강의는 삼군 사관학교에서도 꼭 시행해야한다
예비군 훈련 때 이런 거 틀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이 문구 사용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면서 잘만 잊죠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게 아니라
약하면 미래가 없고 강해야 미래가 있다. 이게 맞는거 같은데
황현필 선생님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강의해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남한산성 주변으로 모여든 병력이 총 10만이고 이 병력이 체계만 좀 잡혀있었더라면 청나라 군대와 한 번 제대로 붙어서 박살낼 각도 좀 볼 수 있었을 텐데,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인조를 보면서 다시 느끼네요.
전쟁은 숫자로 하는게 아니죠;; 청도 유목민족 출신 기병 위주의 병력인데..방어전이 아닌 대회전에서는 이기기 힘들어요
@@김동욱-i5b 귀주대첩은 뭐임?
@@김동욱-i5b 전쟁을 숫자로 하는게 아니어도 10만이면 당시 청나라 원정군의 거의 두 배 병력이고 지리를 더 잘 안다는 이점도 있었죠. 더구나 남한산성 일대는 산지여서 기병대가 대규모로 돌격할 수 있는 여건도 잘 안나옵니다. 청군 입장에선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거죠.
특히나 당시 청군은 평안도 지역을 차근차근 점령하면서 후방지역을 다져온게 아니라 한양까지 최단거리로 달려온 것이기 때문에 최전방 전선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도리어 난감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군이 체계가 잡혀있는 군대였으면 쌍령전투처럼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겠고 몇 번 전투 후에 청군은 최소 지금의 강남3구 또는 한강 이북지역으로 군대를 물렸을겁니다. 기병대가 작전하기엔 그런 탁 트인 동네가 지리적으로 좋으니까요. 그러면 왕이 자연스레 구출이 되는거고.. 최소한 왕이 머리 찧어가며 무조건 항복하는 굴욕은 안당했을 겁니다.
살수나 귀주대첩 처럼 청군을 완전히 패퇴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전선의 상황들로 인해 청군이 스스로 물러나게만 할 수 있었다면 이후 외교상황에서 조선이 불리할 것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죠.
@@쇠망치-g1u 임진왜란 당시 인구가 800만 정도니까 남자만 400만, 어린이와 노인 제외하고 대충 반띵하면 성인남자만 200만이고요. 속오군제가 성인남자는 전부 다 군사훈련을 받든지 군인세를 내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 사실상의 징병제였으니, 군인과 보인이 대충 1:2~1:3 비율이었다고 가정하면 국가 총동원령으로 끌어올 수 있는 병력의 최대치는 50~60만까지도 됐을겁니다. 전면전 상황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적군에 포위된 왕을 구하는 작전에 투입된 병력이 10만이라면 그게 전혀 말이 안되는 숫자는 아니라는거죠.
그 병력들의 질적인 면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는건 분명한 팩트지만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보면 당시 청군에 비해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을 겁니다.
5000만 인구의 우리나라에서 전면전 발생시 총동원령이 선포되면 동원되는 병력이 예비군까지 거의 500만 가까이 됩니다. 전체 인구의 1/10이죠. 병자호란 당시 상대는 황제가 직접 나섰고 우리도 최전선인 남한산성에 왕이 들어있는 상황이었고요. 10만이 전혀 헛소리는 아닙니다.
유효 사거리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실수를 저도 군생활 훈련에서 한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실전이었으면 역사책에 멍청한 소대장이라고 나올뻔 했네요
고맙습니다. 쌤^^
같은 기록을 가지고 이렇게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되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멍강의 댓글 좋아요 다눌렷습니다! 이만은 자료를 다볼려면 손가락 지문없어 지것네요!그래도 좋은지식 행복합니다!
짠 팬입니다 어릴적부터 역사를 너무 좋아했는데 그땐 너무 가난해 좋아사는 도서를 구매 못 했는데 이렇게 잘 알러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 역사는 어찌 이리 침략을 당했는지 일제식민지 지금친일까지 가슴속에서 오랜울분이 ㅠㅠㅠ
그래도 우리말과 문화를 지키고 살아남았지요. 대단한겁니다.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사라진것을 생각하면요. 친일도 무식해서 하는것이니...꾸준히 교육해야합니다.
팩트로 말하자면 우리보다 침략을더 많이당한나라가훨씬 많습니다
이 말을 만주족에게 하면 우리보고 "뻔뻔하기 그지없다"라고 욕할 듯 ㅋㅋㅋ
@@진정왕자 그건 니생각이지? 공산당이나 친일파세키들이나 똑같지 무슨 덜안좋대 ㅋ
@@진정왕자 공산주의가 무조건적으로 안좋은 게 아님. 공산주의를 운영했던 사람들이 자기 권세에 취해 잘못 운영한 거지. 그렇게 따지면 자본주의도 마찬가지. 양극화와 일개 기업 사장들이 노동자 피빨아 먹고 죽여도 아무런 벌 받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오늘도 명강의 감사합니다~ 딴말이지만 생각해보면 역사적 수탈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역사적증거는 부정하고 좋은거는 다 지들꺼라고 우기는거.. 하나같이 비슷한 주변국들..어쩜 그리 피는 못 속이니...
와 공감요!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전설의 현리전투의 지휘관은 일본어 밖에 못하고 한국말을 못했습니다.전시작전권을 미국이 가져간 결정적 사건이죠. 이승만이 덕분이죠. 백선엽이가 개전초기에 웅진반도 개성 다 털리고 꽁지 빠지게 남으로 남으로 튄 개전이래 최대의 패전도 해주시 좋을 것 같습니다.
3군단장
유재흥 일본군 장교출신
부하들은 후퇴하지 말라하고
지는 비행기타고 삼십육개
나중에 국회의원까지함
총살 않당하고 ???
3군단 군기 뺏기고
군단자체가 없어짐 ㅋㅋ
웅진반도는 어디있는곳이냐? 옹진반도지 ㅋㅋ
개전초기 거기서 버티면 다죽었어 등신아
@@박세정-k8c 잘났다 응?
저런 놈도 군원로라고 전작권 반대했죠 ㅋㅋ 지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똥별들은 군지휘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나봐요ㅋㅋ
@@박세정-k8c은 등신중에 상등신 난 2등신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현리전투 이야기 기대됩니다.
다음에 광교산전투나 김화전투로 예상됩니다. 6월 호국보훈달에 현리전투를 다루주시면은 기대가 될것같아요 춘천전투도 다뤄주세요
아~~ 그래서 그런거군요
백숙 그 지역이 좀 유명하다고 듣긴 들었는데
선생님 설명 듣고 보니까
이해가 돼 훨씬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남한산성
백숙~~
역사적으로 그동안 과거의 한미정상회담과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 비교 영상 부탁드립니다~ 황현필 선생님의 시각이 궁금하네요!
저도 그걸 다뤘으면 합니다.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MalangMolang 뭐라는겨
@@박은상-m8w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문화대혁명)이라면서
(동이언어sov부족)들의 (역사유물)들을 전부 (불태우고 제거)한이유?????
고대 (동이언어sov부족)들=고조선(고대한국어)
고대 (동이언어sov부족)들=실위(고대몽골어)
고대 (동이언어sov부족)들=고막해(고대만주어)
기타 고대 (동이언어sov부족)들=부여(고조선어), 실위(몽골어),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돌궐(투르크족),
소호족, 옥저,예,맥, 한, 고구려, 백제, 신라, 두막루, 발해(고구려),
여러분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명나라라 따라하면서
(동이언어sov부족)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오랑캐는 지나족이 고조선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욕했어요
고대 (동이언어sov부족)들 고조선족(고대한국어),
실위족(고대몽골어), 고막해족(고대만주어) 등등
한국어하고 몽골어하고 만주어들은 고대때부터
같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언어하고 말도 사투리처럼 잘통했어요!!!!!
바퀴ㅂㄹ처럼 물량만 많은(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소수지만 똑똑하고 강한(동이언어sov부족)들에게
지배받은 노예=지나족=중국어svo일뿐이에요
관순이 누나..😌
목 빠지는줄 오늘도 감사합니다
맴 찢어지지만 꼭 봐야하는 영상ㅜㅜ
모든 전투에서 교훈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원망해 이 못난 ~~~
다 자업자득이지요. 투표도 잘해야죠.
광주와 곤지암 사이에 대쌍령리가 있는데
지도 보니 그 부근 같네요. 약 1년 산 곳!
광해군이 왕을 유지햇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꼇을지 상상해봅니다ㅠ
적어도 호란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개인적으론 이 강사님 설명 들을때 마치 세뇌하는거 같아 묘하게 불편한데 역사를 가정하기에 앞서 다른 시각을 조명합시다.
광해는 어떤사람?
ruclips.net/video/qgt9ojl1l8E/видео.html
조선의 민초들이 명에 사대하기 위해 청과 대립했나?
ruclips.net/video/2_S7x_WhA-o/видео.html
어차피 서인들에 의하여 폐위하게 될 운명이였음
@@김범휘-z2t 이자는 왜 남의 강의영상에 들어와서 타인의 영상을 홍보하나?
@@빈티지시계사랑 너무 이상한 관점으로 역사를 강의하는게 좀 아니꼬와서요.
병자호란은 정말 대환장파티구만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쌍령전투가 실제로 큰 참패는 아니었고, 청나라 고위군관이 전사했는데시신도 못 찾아갔다는 식으로, 비교적 최근에 반론이 제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봤는데 이러한 주장이 어떤 블로그에서 시작돼 , 그 내용대로 인터넷 백과사전(나무위키) 에 실리고, 마침내 여러 커뮤니티에서 '양쪽 군대가 서로 졌다고 말하는 전투' 라면서 유머처럼 소비되고 있더군요. 하여 그들이 근거로 말하는 청사의 해당 기사를 읽어봤는데 악다귀와 전사한 석이도가 참전했다는 싸움이 쌍령전투였다는 근거가 없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일자정보나 전장이 쌍령고개라고 특정할만한 묘사가 없습니다. 내용은 건조하게 어떤 전투에서 석이도가 전사했다는 것과 사후처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악다귀는 선조실록의 기사로 쌍령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되나 석이도는 검증이 안되고 있는데 이걸 악다귀가 참전했으니 석이도가 전사한 전투가 쌍령전투일 것이다 라고 추측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4만 병력이 몰살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근거가 희박한 기사에 의존해 참패를 윤색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샘.고마워.시청완료
참 우리민족도 답이 없는 나라다..이 채널을 통해 느낌점..그렇게 당하고도 아직까지도 눈치를 봐야하는 현실..특히 일본에게는 임진왜란.정운재란등 당하고도 정신못차리고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고..지금도 강하게 대처를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존경하는 황현필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올림픽 독도 표기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선생님께서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만약, 독도표기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그 후폭풍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토론토 이민사회도 벌써 시끄럽습니다. 이 문제는 그 어떠한 논리로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을것입니다. 내 집에서 만 짖어데는 똥개가 되어서 되겠습니까❓ 금메달 몇개와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만약 국민을 속이고 비굴하게 출전한다면, '이완용'이 보다 더 비겁한 메국노가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일 것입니다❗너무나 불안한 것은 지금 국민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역사학자로써 이 문제, 바로잡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한일합방 이 후, 우리의 정치인들이 두 번 다시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꼭 막아주십시오❗한 번더 나라가 국민을 버린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라를 버릴 것 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주필산전은 지들도 너무 뻥이 심하다 하여 신당서에는 2~3만정도라고 수정했다던데
이게 맞는거지요.
이세민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 고당전쟁에서
그나마 가장큰 승리에 중국뻥을 심하게
튼거지요. 고구려군 15만이면 만주와 평안도.함경도 병사들을 싹싹 긁어모아도
될까말까 일거고 천년후 후금이 팔기군을
비롯 최대한 끌어 모아도 팔만이 체 되지않았으니 국력을 비교해도 고구려군 15만은 뻥이지요. 제 추측엔 신당서의 2~3만보다도 적었을거란 생각입니다.
요하강 동쪽을 따라 고구려 성곽에 3천에서 만여명씩의 병사들이 배치돼 있고 압록강 이남
평양을 수비할 병력이 3~5만 이라면
주필산에 투입가능한 개마무사 위주의 병력은
2~3만도 안될거란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중국식 과장과 뻥은 0을 하나 빼는게 맞을겁니다.
여러분 명나라때처럼 만주족들을 오랑캐라고하면안되요ㅜㅜ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동이언어sov부족)들의 노예일뿐이에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은 고대때부터 고조선을 동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욕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할때 쓰던 말이었어요
(만주족)전부터 말갈전부터 고대때부터 (고조선족)하고 같은 (동이언어계열) 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고대때는 언어도 서로 통했어요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가 아니고
오랑캐는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 고조선족, 실위족, 고막해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말갈족, 만주족들을
무시하고 깔볼때 쓰는말이었어요
고조선도 오랑캐였어요
오랑캐는 중국어svo들이 아니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오랑캐는 (동남아 지나족 중국어svo)들이 (동이언어sov부족)들을
무시하고 욕할때 쓰던거에요ㅜㅜㅜㅜㅜ
ㅜㅜㅜ
ㅜㅜㅜ
(동남아언어 지나족 중국어 번역내용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의사 소통할때 통역이 필요없지만
신라가 지나족 중국어민족들을 상대할 때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고 백제인이 신라인과 지나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줌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와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역사 공부는 바로 역사 세우기부터
유익한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주필산 전투는 승패를 뒤집어써놓은 겁니다 중국의 역사왜곡
기다렸습니다......언제 올라오나...^^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쌍령 전투의 내용은 100년후에 지어신 야사인 연려신기술이 바탕입니다.
오히려 당대 실록이나 청나라의 기록을 보면 연려신기술과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전투 당시 양군의 규모는 2,000여명(조선) vs 3,000명 이상(청)으로 추정되며, 화약 폭발 사고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황현필선생님 늘 좋고 세심한 강의 너무나 감사합니다^^ 한국역사의 공과 과를 모두 거리낌없이 강의해주셔서요!!
근데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에 대해서도 한번 영상 부탁드립니다^^ 제가 공시생이지만.. 학창시절 교과서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이렇게 큰 사건이 단 한번도 언급 안된다는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감ㅅ합니다
눈 먼 총알에 사령관도 죽을 수는 있겠지만, 시체를 수습하지 못할 정도라면
일방적으로 이겼다고 보기에는 역시 무리이지 않나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셔츠가 장승업화백 파초 같아요. 멋있습니다. 기회되시면 역사속 예술가도 강의해주세요.
옷 촌스러운데.. 아재같음
첫 번째 영광입니다
패전의 역사가 승전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죠
오늘은 전투!! 이야기!
직업군인과 오합지졸의 싸움.그들의 군대편성.작전방식.무기체제.병사의 훈련..모든것이 엄창난 차이인데 실패는 당연한거고 승리를 어찌 바랄수 있겠나이까
양란을 겪고도 성리학에 매몰되서 반성이 없었던 조선은 몇세기 뒤 제국주의 국가에 희생양이 된건 당연한거 같습니다.
다음 영상이 기다려져요
두구두구두구~~~
토크멘터리 전쟁사보고는, 훈련이 안되어 있어서, 우리 화약이 터진 줄 알았었는데요.... 사실은 우리군이 우리 화약을 화김에 터트려 버린 ㅠㅠㅠㅠㅠ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라도 있어야는데.. 전투도 못해본 문관 따위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무관을 참했다... 그로인해 진 전투...
문을 우선시하던 조선의 부정적 단면이죠. 그런데 이러한 나라가 500년이나 갔던게 참.. 민초와 몇몇 뛰어난 인물들의 하드케리네요.
👍
현리전투하실때 김종오장군 영상도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진 거네요...
옷이 너무 멋있음,,, 만주 옷 같음,,,
패전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죠.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켜 주시는 황현필 선생님".. 존경합니다 ㅃㅃ
황선생님 정말 유튜브 잘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중이 있는데요.
대륙에 백제가 있었다는 친구랑 말싸움이 일어났는데 친구말로는 남조의 역사서에는 북위의 기병을 물리쳤다는 등의 내용이 있고 북조의 역사서에는 없는데 이건 뭐가 더 신빙성이 있는걸까요? 요서 및 대륙에서의 백제에 대한 견해가 정말 궁금합니다 선생님.
백제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호남의 백제와는 그 결이 다른 백제입니다.
언젠가. 다룬 내용일걸요
@@taewonpark7627 호남 백제? 경기도.충청도를 개무시하는자.
호남의 백제 ㄴㄴ. 백제 수도는 경기도 충청도 위주였음. 고대국가는 수도 털리면 끝이었고 백제 역사의 대부분이 수도가 경기 충청
인조 자체가 그 당시 백성들의 눈에는 환영받지 못한 쿠테타 왕이었으니 근왕군도 당연 손절각 ㅎ
와.. 김자점은 정말 선안동김씨의 치욕이네요. 저는 사렴공파입니다 조상이 청렴하고 망국의 충신이라서 그런지 무소유를 반강제로 실천중입니다.
황선생님 이순신장군님 책언제나오나요?
빨리보고싶네요^^
굿~~~~~~~~~
원래 조선의 경우 전라도가 곡창 지대라 인구가 제일 많았습니다. 경상도는 그정도 인구가 되지 않았는데 4만군이 있었으면 전라도도 그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합쳐 거의 8만명의 군대인데 조선은 그정도의 군인을 먹어살릴 정도는 군량이 나오지도 않고 조선 8도를 모두 합치면 거의 20만 대군이 있었다는 뜻인데 그정도면 만주 점령이 가능 합니다.
또 우리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거지 조총은 불발이 정말 많이 납니다. 현대적인 소총도 불발이 나는데 화약을 붙고 쓰는 조총에 조선군은 화약 관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10발을 쏘면 5발 나가면 잘 나가는 겁니다. 더군다나 적에게 명중 되는 것은 그중에 두발 정도 맞을 겁니다.
특히 야전에서 기병을 상대로 조총을 쐈다는 것은 거의 정말 명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야전에서 당시의 총으로 기병을 상대하려면 서양의 전열보병처럼 수백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번에 집중 사격하지 않으면 이 기병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반정을한왕을 국민들이 단합이된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화합이되는 낭만이 내부총질없는세상...홍타이지가 혼란을잘이용한것이다..
꼭! 현리전투 해주세요. 조금은 알고있는데 정 말 궁금하네요.
그런놈아직까지살아서연금받고 뒈지면 국립묘지
장군묘역에가네요 그당시육군참모차장까지 지냈네요
현장지휘관도 아니고, 상급부대 연락장교 따위가 현장 작전장교 목을 날려? 지휘체계를 떠나 어이가 없네. 그 바람에 그 아들이 화약고 폭파...아오... 이건 현장 지휘관이 우유부단.
청나라는 조선에 들어와서 몇 번의 전투로 침략 의지를 상실(?).
이것들은 뭐야?
아주조아요
현리전투...
역사상 가장 창피한 패전입니다.
중공군에게 도망친 유재흥에게 밴플린트장군이 물었습니다.
"당신 부대는 어딧소?"
유재흥 왈
"잘 모르겠는데요!"
이때 화가난 밴플린트가 대한민국 전작권을 뺐어갔습니다.
더 웃긴건 노무현대통령이 전작권을 찾아오자고 주장할때 제일 앞장서 반대했던자 유재흥이란 작자입니다.
헐 이래서 전작권을 소름이네요............
으휴
저런 병신들이 아직도 별달고 있으니 한국군 꼬라지가 이따위지
조선시대 수준서 벗어나질 못 하는 이유가 있다
현리전투는 흑역사로서 꼭 기억해야만 하는 전투죠
현리는 강원도,경기도 두개 있는데 강원도에 있는 현리입니다
그 정도면 총살감 아닌가..
@@우주끝까지-l7d 그러게요..6.25이후에도 편안히 있다가 예편했다는 얘긴데.. ㅠ
우와앜...
왜란때 한달만에 호란때 8일만에 육이오땐 3일만에
수도가 털리는 이 나라는 대체 무슨 나라냐
현장은 현장에 맡겨야 하는데
야전사령관을 무시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행정관이 지휘하는
조선의 고질적인 병폐가 쌍령전투의 참패라는 결과를 불러왔네요,
한편으로 패배는 쓰라리지만, 겁 먹고 조선의 굴욕을 지켜보기만 했던 장수들에 비해
목숨 걸고 청군과 싸웠던 장수들이 패전지장의 멍에를 쓰고
욕먹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정말잼있습니다
주필산 전투는 논란이 있죠. 개마무사 15만 정도가 전사 또는 부상당했다면 고구려 정규군이 거의 전멸했다는 의미인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중국사 특유의 과장이나 고구려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프랑수수수 설득력있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현대사도 왜곡을 하는데 고대사는 쓰는 놈 맘대로겠죠... 고구려 사서가 어디서 발견되면 좋으련만...
👍🥰👍
유목민족은 막내가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가지않나요??? 예전에 그렇게 들었던거같은데
제가 생각 하기론
훈련 보다는
지휘 , 명령 체계의 부제로 사료 되옵니다.
@@dolgum826 첵카방끄이짤바서
쌍령이라 광준가 했는데 맞네요
예전 여자친구가 쌍령동 살아서 많이 갔었는데 ㅋㅋ
수천년도 더된 남의나라 사람이 쓴 책으로 전분야를 해결 할려고했고, 실패하면 해당분야 전문가들 탓으로 해결하다보니..
지금도 비슷한거 같고.. 어느나라 어느시대고 능력 안되는 자들이 권력 잡으면 늘 반복되는 레파토리..
여윽시~~황국사~!!!
갈라수 전투 중심으로 고려 이야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