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Unknown World 원경왕후 외척세력을 꺾지 않아서 계속 강했을때 세종대왕에게 득이 되었을지 해가 되었을지 모르죠. 근데 이미 꺾였으니 이 댓글은 제 견해가 되는겁니다. 그러니 제 의견과 다르시면 그냥 지나치세요. 괜히 제 댓글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달지 마시고
지랄 그냥 여종 예뻐서 건들인거지 여종 보고나서 아 외척 견제해야하니깐 후궁 둬야지 ㅇㅈㄹ했겠나 그냥 꼬추 심심해서 후궁 두고 왕권 강화라는 핑계로 자기를 왕에까지 올려준 정비가 권력 쎄질까봐 통수 친거지 이방석 죽이고 자기합리화 마려워서 서얼차별법 만든 그 킬방원 다움 애초에 조선의 설계 자체가 신하들의 나라였는데 정도전 죽일때부터 그냥 조선은 망한거임 건국 의도를 말아먹었으니까 서얼차별법에 따르면 후궁들의 자손들은 적자가 아니니 차별받아 마땅한데 그것을 양반가에는 엄격히 따르게해 많은 인재들을 썩히고 왕가에서는 따르지않아 적자인 왕이 손에 꼽힐 지경이니 이게 어째서 유교도 논리도 없는 개법이란 말인가 그저 후궁은 두고싶고 정비가 간섭하는 건 싫은 내맘대로 떼법이지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역사학자가 불러주는대로 외우지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치면 새로운 면모와 지혜를 얻게된다 그저 교과서대로 왕권강화 외척경계 달달 외우니 전후관계 이해를 못하고 우기지ㅉㅉㅈ
외척세력을 저지하는것이 맞을거에요. 원경왕후의 아버지 여흥민씨집안 고려후기부터 말까지 권문세족15가문중 손꼽히는 집안이죠. 거기다 어머니 여산송씨집안도 있고요. 여산송씨는 충렬왕때 송송례가 아들들과 임유무를 제거해서 업적을 남겨서 집안이 충렬왕때 엄청난 출세한 가문이죠. 여흥민씨와 여산송씨사이에 태어난 원경왕후인만큼 강한것이 맞지요. 그래서 이방원이 외척세력을 견제하는것이 맞다고 봐야지요...
뭔 여종을 살려줘요?ㅋㅋㅋ 영상 제대로 보셨습니까? 밖으로 내보내서 죽이려고 했다잖아요. 살려준게 아니라 죽이는데 실패한거라고ㅋㅋㅋ 그리고 저시대의 시대상이라는게 있는건데 무조건 '바람'으로 치부하시면 안되죠. 그런식이면 전세계의 거의 모든 왕과 황제는 불륜 상간남이 되는거잖아요ㅋㅋㅋ
근데 부인이 내조도 잘하고 ㅇ자기 남편 출세 시키고 ㅋㅋㅋ 부인이 딱히 잘못한건없는듯? 그리고 결국 하녀도 죽이진않은거잖아 ㅋㅋㅋㅋ ㅠㅠ 난 원경왕후에 더 마음이 가네 ... 게다가 후세가 세종대왕이라니 원경왕후는 남편도 출세시키고 자녀복도 짱이고.. 남편의 사랑만 못받고 에구..... 안쓰럽다
이 여종이 그럼 경녕군의 생모? 태종이 자식농사는 참 잘 지은듯.... 양녕대군이 개차반이래도 나름 영특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과거가있고... 그외 세종대왕은 논외로 치더라도 적자,서자 모두 후덜덜했음... 게다가 상당수 성년으로 성장해서 천수를 누렸고.....조선후기에 이런 왕자가 태어났더라면 나름 나라가 잘 굴러갔을텐데... 그런데 대충 만든 재연드라마라해도... 조선 개국초에서는 저런 갓을 쓰지 않았음.... 죽립이나 몽고풍 발립을 썼음.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나타남... 저런 갓의 형태가 정립된 것은 성종때이후임.
내로남불... 내 남편은안되고... 내 아들은된다... 며느리는 투기해서는 아니되고 자신의 투기는 정당화~ 여자의 적은 여자임... 나라의 왕이 조강지처만 보고살지알았나...? 당연 왕권강화를위해 막강한 처가눈치 외세력 눈치 안보려면 후궁을둬야지... 자신도 왕후의 욕심을가졌기에 왕을 만든것이지~ 둘다 전략적으로 서로를 이용한거임~ 형제를 죽이고... 이게 단순히 혼자만이 해냈을까? 부부는 일심동체임~ 손바닥이 마주쳤으니... 성공적으로 왕위를 뺏었지않았을까.?
여기서보면 세종대왕의 혈육집안이 다양합니다. 청주한씨집안이 대표일듯.. 이성계의 부인인 신의왕후가 청주한씨의 딸이지요.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의 청주 한씨집안에서보면 신의왕후는 동생집안이고 형님의 집안에서 나온 딸은 여산송씨 송금강에게 시집을 가서 (송선)이라는 아들을 낳고 그 송선의 딸이 바로 세종대왕의 외할머니이자 이방원의 장모죠. 송선의 딸이 여흥민씨집안에 시집을 가서 자식들을낳았는데. 그중 원경왕후도 낳았죠. 즉 원경왕후와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와는 11촌지간인거죠...ㆍㅅㆍ 거기다 충렬왕때 출세가도하는 여산송씨집안도 만만치않았을겁니다. 권문세족15가문중 여흥민씨와 여산송씨 사이에 태어난 원경왕후가 센것은 맞는것같네요;;;
요즘시대로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죠... 이방원을 어떻게 그자리로 올렸는데 원경왕후(친정)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하지만 역사는 당시시대 시각에서 봐야죠... 남성이 지배하는 과거시대에 첩 들이는 것도 당연하고 왕권강화 위해 외척 잘라내는것도 당연한 시대였으니
조선초기중기까지만 해도 고려시대 영향으로 조선후기부터 지금까지처럼 남녀불평등하지 않았음 바깥일은 남자들이해도 집안실세는 모계였음 그리고 왕이란 특수성을 고려해도 부정부패 저지른 집안도 아니고 왕조 초기에 그많은 왕자중 왕이 되게 해준집안인데 저렇게 명분없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잔인하게 다 죽인 사람은 없었음
조선시대때 여자 살인자 비율이 다른 나라 여자 보다 20배나 높았다고 하네요. 근데 그들이 죽인 사람의 60~70%가 전부 남편이었음. 남편을 주로 독살 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부터 혼인을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정약 결혼 등을하고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거죠.조선시대 여자들도 기가 쎄고 엄청 독하기로도 소문난 사람들이라서 못참는거죠. 남자나 여자나 조선사람들은 기가 엄청 쎘음..... 이런 데이터를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이 잘하는 데이터화해서 조사 했는데 남녀 평균 살인자 비율을 백분률화 했는데 같은 일제식민지에 있던 대만 보다 거의 20배나 여성살인범 비율이 높았음 백분률 비율이 대만은 3.0 일본 11.0 인데 조선은 무려 88.0이었고 다른 유럽국가인 프랑스15.0,독일 13.5 보다도 엄청나게 높은 수치임 지금의 페미니즘이나 김치녀등등 여성문제 일으키고 불만 제기하며 남녀갈등이 있는건 어찌 보면 당연한거임. 남존여비사상이 왜 유독 우리나라만 강했을까 생각해 봐도 조선 여자들이 너무 기가 쎄서 그거 누를려고 했던건 아닐까 생각됨 근데 여자들이 단순한게 남편이나 부인이 한명일때는 여자들의 모든 관심이나 불만이 남편에게 쏠리지만 여러명의 부인을 두거나 첩을 두게 되면 남편에게 쌓이던 불만이나 갈등이 부인과 첩들 사이에 서로간의 경쟁으로 쏠리고 여자끼리 싸우게 된다는거.... 남편이 오래 살려면 첩질을 해야하는 아이러니.....
@@giantpengtv1 무식하고 모르면 가만히 있던가 증명되지도 않은 근거라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서 나왔는데? 이미 근거와 증거로 다 남겨져 있다 세계 에서도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으며 세계유일의 여성부라는 국가 기관에서 죄다 가려 놓았으니 모르는 거지... 이미 논문으로도 있는 내용이다 무식아 유독 조선의 여자살인자가 많아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일본의 산부인과 의사가 다른나라들과 비교해서 과학적으로 조사까지 해놨단다 뭐 여가부가 이런 자료가 실리고 그러면 억지로 끌어 내리고 ㅈㄹ들을 해서 부각 되지 않는거겠지만....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여자살인마들이 은폐되고 있다 감정 호소하고 감면 받고 사람 죽이고 2~3년 살다 나오더라.... 우리나라 살인죄가 다른 나라 보다 훨씬 가벼운 이유도 워낙 여자들이 많이 살인하니까 그거 감면해줄려고 그러는건지도 모르지.... 자기 애완견이 시끄럽게 짖는다고 개를 혼낸 남편을 자기 애완견을 혼냈다는 이유로 아내가 남편을 살인하는 나라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전기톱 살인마 그것도 한국여자가 저지른 범죄다... 보험금 노리고 남편 살해하는 사건도 수두룩하지... 밝혀지질 않아서 묻힌게 많아서 그렇지...
@@giantpengtv1 경성지역의 각종 명소·상점 등을 소개한 『대경성사진첩』(중앙정보사, 1937)에 실린 구도 다케조의 ‘구도 부인과 병원’ 전경. 경성부 북미창정(北米倉町, 오늘날 북창동) 94번지에 소재. 조선여성의 남편살해 범죄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구도는 암 치료에 라듐 방사선요법을 도입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도 썼다(‘암과 라듸움’, ‘매일신보’, 1931.4.3~7). 독일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조선에서 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한 구도 다케조(工藤武城)라는 일본인 의사가 ‘조선 특유의 범죄, 본부살해범의 부인과학적 고찰’(1933.2~8)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총독부의 선전용 잡지 ‘조선(朝鮮)’에 연재했다. 구도는 총독부의 통계연표 등을 분석해 ‘본부살해(本夫殺害)’, 즉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범죄가 조선에서 특히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살인범은 남성살인범 100명당 88명에 달해 일본 여성의 9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도 이 중에서 본부살해범의 수(여성살인범 중 본부살해범이 63%)를 빼고 나면, 그 비율은 일본이나 다른 나라 여성범죄율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본부살해는 조선만의 특수한 여성범죄 형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도는 이 논문에서 형무소 수감자들을 심층 조사해 조선의 본부살해범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범인 여성, 범죄의 대상이 된 남편, 범죄의 성격 및 방법, 처벌, 범죄의 원인과 대책 등 본부살해 범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예를 들면 범인인 여성들은 선천적으로는 신체와 정신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으나 남편 및 시부모의 학대와 착취, 부부관계의 불만이나 고통 등 결혼 후의 환경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기회성’ 범죄자라고 한다. 살해 방법은 독살(毒殺)이 70%를 차지했고, 범행이 가장 빈번한 시기는 기온이 가장 쾌적한 영상 10~20도인 4·5·9·10월이라고 한다. 그리고 범죄 방지 대책으로는 유교의 철폐, 법적인 엄격한 통제 및 처벌, 여성교육, 그리고 부인생리에 대한 지식 보급을 들었다. 이 논문은 조선의 신문에서도 ‘조선의 특수범죄 본부살해의 참극’(‘조선중앙일보’, 1933.10.9~11), ‘본부살해의 사회적 고찰’(‘동아일보’, 1933. 12.9~24) 등으로 소개되었다. 조선의 언론이 생각한 이 범죄의 주된 원인은 불합리한 결혼제도였다. 그들은 조혼·늑혼(勒婚)·매매혼 등의 인습이 사라지면 조선 여성들의 비극도, 끔찍한 범죄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들이 전부는 아니다. 구도도 조선의 언론도 여기에 개입된 빈곤의 문제는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조혼이나 강제결혼이 거의 사라진 2010년에도 한국 부부의 절반 이상이 부부폭력을 겪고 있는 이유가 경제적 여건의 악화이듯,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기 어렵다. 그 폭력의 끝이 80년 전의 저 ‘본부살해’의 비극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giantpengtv1 이 연구는 식민지기에 본부살해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시기의 본부살해 양상과 이에 대한 지식인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또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도 조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조선』을 통해 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의 본부살해녀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졌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본부살해녀가 출현한 고을의 행정단위가 강등되고 수령이 파직되었다. 또 본부살해사건은 남편을 죽인 이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진범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다루어졌다. 둘째,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의 연령은 20세 이하가 가장 많고, 독살, 교살, 자살(刺殺), 타살 등의 방법으로 남편을 죽였다. 살인 동기는 학대, 불화, 가난, 남편의 만성적 질환, 성생활의 부적응, 불륜 등이다. 셋째, 일본인 의사 구도 다케시로는 조선의 비정상적인 혼속(婚俗)특히 조혼과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 때문에 조선에 본부살해녀가 많다고 했다. 1930년대 이후의 동아일보 도 본부살해의 원인을 조혼이나 남편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조선 혼속과 남편의 비정상성이 본부살해사건의 원인이라는 해석 속에서 이 사건은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 유교적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아내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한 남편살해라는 극단적인 사건은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여성관은 여성의 발전보다는 가족에서의 여성 역할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giantpengtv1 식민지기 본부살해(本夫殺害) 사건과 아내의 정상성 : '탈유교' 과정을 중심으로 A Husband Murder Case and His Wife's Normali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저자 전미경 소속 동국대학교 학술지정보 아시아여성연구 KCI SCOPUS 2010 49권, 1호 view optionspp.73-122 ISSN 1225-9241 발행정보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2010년 피인용횟수 13 자료제공처 NRF 무료원문 NRF 키워드 본부살해, 아내, 남편, 조혼, 여성범죄, Husband Murder Case, wife, husband, early marriage, female crime 초록 open button 목차 참고문헌 초록 이 연구는 식민지기에 본부살해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시기의 본부살해 양상과 이에 대한 지식인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또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도 조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조선」을 통해 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의 본부살해녀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졌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본부살해녀가 출현한 고을의 행정단위가 강등되고 수령이 파직되었다. 또 본부살해사건은 남편을 죽인 이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진범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다루어졌다. 둘째,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의 연령은 20세 이하가 가장 많고, 독살, 교살, 자살(刺殺), 타살 등의 방법으로 남편을 죽였다. 살인 동기는 학대, 불화, 가난, 남편의 만성적 질환, 성생활의 부적응, 불륜 등이다. 셋째, 일본인 의사 구도 다케시로는 조선의 비정상적인 혼속(婚俗) 특히 조혼과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 때문에 조선에 본부살해녀가 많다고 했다. 1930년대 이후의 「동아일보」도 본부살해의 원인을 조혼이나 남편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조선 혼속과 남편의 비정상성이 본부살해사건의 원인이라는 해석 속에서 이 사건은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 유교적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아내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한 남편살해라는 극단적인 사건은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여성관은 여성의 발전보다는 가족에서의 여성 역할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더 많은 클립 영상은 bit.ly/2utuq3t
♥ Full VOD 광고 없이 다시보기 ♥
공식 홈페이지: bit.ly/2HX5dGo
역사 다시 보기 천일야사
매주 월요일 밤 8시 10분 방송
ㅐㅑㅑ
444
드ㅡ
ㅡㄷ
,
ㅡ드.ㅌ.
ㅡ
두분 연기 대박이네요 진짜 유명배우 저리가라 너무 잘하십니다!
외척도 제거하고 바람도 피고 싶고 권력 돈 가진 남자들이 흔히 하는 일
천일야사 연기자들 연기 찐으로 너무 잘하시는데 제발 발연기쓰지말고
이런분이 흥하셨으면 좋겠다
격하게 공감..
인정
공중파 배우로 전향하면 색을 잃어요 마치 빛바랜 오래된 탁자처럼
맞습니다!
원경왕후가 아무리 성격과 외척세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이방원이 태종이 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또한 세종대왕의 모. 이방원은 그냥 권력을 혼자서만 갖고싶어했던 거임.
@미지의 세계Unknown World 원경왕후 외척세력을 꺾지 않아서 계속 강했을때 세종대왕에게 득이 되었을지 해가 되었을지 모르죠. 근데 이미 꺾였으니 이 댓글은 제 견해가 되는겁니다. 그러니 제 의견과 다르시면 그냥 지나치세요. 괜히 제 댓글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달지 마시고
원경왕후는 여흥민씨와 여산송씨사이에 태어난 딸이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이방원은 그저 권력을 쥐고싶었던거죠. 원경왕후의 어머니이자 세종대왕의 외할머니 여산송씨부인이 불쌍하죠ㅜㅜ 자기아들들이 사위손에 죽었는데... 민씨집안과 여산송씨집안이 이방원을 도왔는데....돌아오거라곤 죽음.
저도 여산송씨입니다.. 어쩌다 저의 뿌리를 깊게 파헤쳐보니 세종대왕의 외할머니가 저희 집안사람일줄은...
먼집안 친척일줄은ㅜㅜ..
이방원의 호위무사 여산송씨 송거신이 표범에게 죽을뻔한 이방원을 구해서 훗날4등공신이 되었죠.
이방원이 왕이되기전, 원경왕후민씨에게 장가가서 부인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장모가 여산송씨이고 그러다 송거신과도 인연이 되었던거죠..
그저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쯧쯧쯧. 역사를 치정드라마 보듯이 판단하지 말아라. 진짜 왜들 그러냐 으휴...
그러네요. 피까지 나눈 형제를 참하는데 피도 섞이지않은 외척들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자만이겠군요. 역사를 보고 배웁니다.
후궁제도를 법제화할 정도로. 왕이 하는 말이 곧 법이라는 말이 있던데. 한 여자로써는 조선시대 중전들은 참 속상했을 듯해요.
헌신하면 헌신짝 되는건 옛날도 똑같다...
ㅎ 그러게요
뭔 헌신짝이야, 견제 안하면 외척들이 목에 칼을 들이밀텐데.
@@Young-is1ee 원경왕후 입장에서 말한게 아닐까요? 원경왕후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ㅠ
왕실의 정치사를 치정드라마 보듯이 얘기하는 애들 보면 참...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 쯧.
천일야사너무나재밌있습니다
저 여종이었다가 빈이 된 인물 용의 눈물에도 나오고 드라마 세종대왕 에도 나와요 이방원과 민씨의 반목을 다루기 딱 좋은 소재라ㅎㅎ
연기...잘한다...눈물납니다...
부인과 처남 등 처가집 사람들이 머리가 영특하고 재주가 이방원보다 나으니, 이방원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능력자인 그 들을 죽일수밖에 없었을듯..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이 방원을 왕으로 만들지도 못했을것이고요..
태종 이방원이 후궁을 여러 명을 둔 것은 왕실 번성 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원경왕후를 포함한 민씨 일족 외척을 견제할려는 의도가 크죠.
그죠. 뭔가아시는분. 태종의후궁들은. 아마도. 옹주를 많이낳겟찌?
G랄..왕을 만들어준 부인을 배신하는 놈은 잘라야 함
@@스칼렛트 배신 ㅇㅈㄹ ㅋㅋㅋㅋ 왕이 무슨 일반 가정의 가장쯤으로 생각하냐
지랄 그냥 여종 예뻐서 건들인거지 여종 보고나서 아 외척 견제해야하니깐 후궁 둬야지 ㅇㅈㄹ했겠나 그냥 꼬추 심심해서 후궁 두고 왕권 강화라는 핑계로 자기를 왕에까지 올려준 정비가 권력 쎄질까봐 통수 친거지 이방석 죽이고 자기합리화 마려워서 서얼차별법 만든 그 킬방원 다움 애초에 조선의 설계 자체가 신하들의 나라였는데 정도전 죽일때부터 그냥 조선은 망한거임 건국 의도를 말아먹었으니까 서얼차별법에 따르면 후궁들의 자손들은 적자가 아니니 차별받아 마땅한데 그것을 양반가에는 엄격히 따르게해 많은 인재들을 썩히고 왕가에서는 따르지않아 적자인 왕이 손에 꼽힐 지경이니 이게 어째서 유교도 논리도 없는 개법이란 말인가 그저 후궁은 두고싶고 정비가 간섭하는 건 싫은 내맘대로 떼법이지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역사학자가 불러주는대로 외우지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치면 새로운 면모와 지혜를 얻게된다 그저 교과서대로 왕권강화 외척경계 달달 외우니 전후관계 이해를 못하고 우기지ㅉㅉㅈ
외척세력을 저지하는것이 맞을거에요.
원경왕후의 아버지 여흥민씨집안 고려후기부터 말까지 권문세족15가문중 손꼽히는 집안이죠. 거기다 어머니 여산송씨집안도 있고요. 여산송씨는 충렬왕때 송송례가 아들들과 임유무를 제거해서 업적을 남겨서 집안이 충렬왕때 엄청난 출세한 가문이죠.
여흥민씨와 여산송씨사이에 태어난 원경왕후인만큼 강한것이 맞지요. 그래서 이방원이 외척세력을 견제하는것이 맞다고 봐야지요...
이방원 역으로 나온 분 오종석 배우입니다. 유튜브에 갬성식당를 합니다. 오종석 배우님 옆에 있는 배우님(누이라고 대사하는)은 배건식 배우님입니다. 여종은 방초록 배우님입니다. 유튜브에 방초록 입력해 주세요
쏙쏙 빠져 드네요
연기력도 좋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질투심이 무섭네요
흐엉
방초록 진짜 이쁘다..
남자가쓰레기인걸 ㅋㅋㅋㅋㅋ엄청업적말하듯하네 ..종년일때목숨살려준걸 고마워해야지....
본처를 악독하게변화시킬려고 별지랄을다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당시엔 남편이 축첩을 하는게 당연했지 쓰레기이니 아니니로 평가할 이야기가 아님 저 시절엔 다른 나라도 저랬으니 민씨가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이 쎈 여자이기도 했고
아 진짜 더럽네. 바람피고싶어서 발정난 짐승같다. 외척 견제 어쩌고 하지만 결국 그냥 새로운 여자랑 자고싶은 명분일뿐.
이방원역 배우 멋지다
아니 부인을 왜 나쁜년을 만드냐. 종년이 꼬리치면서 대추차 가져다 주고 아내 노력이 없음 왕도 못됬을텐데 쓰레기 스토리 열라 미화하네
이러니 저러니해도 세종치세가 성공했던건, 이방원이 다 죽여서지, 이방원은 심지어 세자빈집안도 조져놓고 갔는데, 그 덕에 세종때 외척세력이 없었던거고.
참 연기 잘하셔
은혜를 배신으로 갚네....
누구때문에 왕권을 거머쥐었는데...
컴플렉스화신...
다 잘못했어도 태종의 가장큰 업적은
세종을 왕으로 만든것!!!
맞습니다!
뭐지 원경왕후가 나만 착하다 느껴지나? 기껏 왕만들어주고 여종도 살려줬는데 바람피고,
바람핀걸로 끝나지않고 오빠.남동생 죽이거나 유배보내버렸죠
세종대왕님이 외가쪽 머리를 닮아 똑똑했었다라는 설도 있죠 원경왕후 아버지 세종대왕 외할아버지도 유명하시죠
동감임. 나였음 저 여자 죽였음.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살아있었다면 세종의 치세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태종-세종대의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제작된 훈민정음은 탄생할 수 있었겠냐고? 우리 지금쯤 한문 쓰고 있었을지도 몰라~ㅋ 역사에 가정따윈 필요없고, 필요해도 양쪽의 무게추는 맞춰서 사고를 해야지.
뭔 여종을 살려줘요?ㅋㅋㅋ 영상 제대로 보셨습니까? 밖으로 내보내서 죽이려고 했다잖아요. 살려준게 아니라 죽이는데 실패한거라고ㅋㅋㅋ 그리고 저시대의 시대상이라는게 있는건데 무조건 '바람'으로 치부하시면
안되죠. 그런식이면 전세계의 거의 모든 왕과 황제는 불륜 상간남이 되는거잖아요ㅋㅋㅋ
모든 왕은 불륜 상간남이 맞음 뭘 실드칠려고 발악하냐
무심코 지나 가다가 우연히 저를 만나신 모든 분들이 아프지 않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학업 취업 연애 사업 재물 건강 모든일이 잘 되실겁니다.💖
항상 다 같이 행복해요.💖💚💙💛
여기서 이런광고 생뚱맞음 ㅋㅋ
그지 같아 유방도 그렇고 이방원도 그렇고 결국 외척 부인 덕으로 왕이 되었으면서 왕 되고 나선 부인을 존중 할 줄 모름...
지들도 부인이 남편 여러 명 두어도 화가 안 날까? 질투는 개뿔...
대군은 중전이 낳아야 대군이지.
에구 다 만족할수는 없네요
원경왕후는 권력을 쥐는대신 남편에 의해서 결국 자기의 동생들도 잃었네요 휴
왕후가 착하네 바람피는 연이나 늠이나..진짜 개빡침
시대를 반영하지않는 감정적인 댓글...
태종이 멍멍이지..
분수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오ㅐ여자만 악녀로 몰아
죠카와 형제를 유배형으로 끝내면 좋았을걸..
근데 부인이 내조도 잘하고 ㅇ자기 남편 출세 시키고 ㅋㅋㅋ 부인이 딱히 잘못한건없는듯? 그리고 결국 하녀도 죽이진않은거잖아 ㅋㅋㅋㅋ ㅠㅠ 난 원경왕후에 더 마음이 가네 ... 게다가 후세가 세종대왕이라니 원경왕후는 남편도 출세시키고 자녀복도 짱이고.. 남편의 사랑만 못받고 에구..... 안쓰럽다
애정이 없다곤 할 수 없지 자녀가 많았으니 다만 권력욕을 제어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강하다고 할 수 밖에
내가 원경왕후엿음 속터져 죽었을듯
중전 진짜 황당하겟다
이방원이 동생들을 철퇴로 때려죽인 역사다 ㅋㅋㅋ 원경왕후는 세종대왕의 친어미고 효빈 김씨는 경녕군의 어머니 니까 둘다 어미끼리 싸운다 싸워
내가 원경왕후가 아니라서 다행😁😁😁😁
용서 못할것같아😂😂😂
남자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여종~~
중전은 그냥 친구~
여종이 신세경역할임?ㅋㅇㅋ방초록 배우님이 연기더잘함!!!ㄹㅇ인정!
원경왕후도 보통 아니구나...
나라면
첩년 죽이고 첩년 거둔
종들도 죽여 버리지
현재시선으로 보면 이방원은 무지막지한 살안인자
실권도 없는 왕후자리 왜그리 탐하나 결국 멸문지화를 당했지않나?
내가 알기론 이방원 부인이 똑똑했음
그 몸종이 육룡나르샤에서 분이인가요??
아닙니당 분이는 가상인물이에욧
@@진-v2n1x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이방원 역 진짜로 드라마에서 하셨으면
이 여종이 그럼 경녕군의 생모? 태종이 자식농사는 참 잘 지은듯.... 양녕대군이 개차반이래도 나름 영특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과거가있고... 그외 세종대왕은 논외로 치더라도 적자,서자 모두 후덜덜했음... 게다가 상당수 성년으로 성장해서 천수를 누렸고.....조선후기에 이런 왕자가 태어났더라면 나름 나라가 잘 굴러갔을텐데...
그런데 대충 만든 재연드라마라해도... 조선 개국초에서는 저런 갓을 쓰지 않았음.... 죽립이나 몽고풍 발립을 썼음.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나타남... 저런 갓의 형태가 정립된 것은 성종때이후임.
이방원도 어쩔수없는선택
조선 건국하고 국가 체제가 완중심 중앙집권화인데
건국 초창기 건국한지 몇십년도 안돠서 갑저기 외척이 득세해 권력 가져가버리면 국정운영에 혼란옴 ㄹㅇ
여종님 방초록 배우님 맞죠
원경왕후 윤씨 불쌍하죠...
내조했는데 결말은 배신이니 화가 날 만하죠.
원경왕후 민씨 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흥민씨 또나오네
종끼리 결혼 시켰으면 후환이 없었을건데 ㅋ
요즘 같으면 성폭력 신고할 텐데 !!
목숨을 살려주고 얼굴을 지지지..흉칙하게...^^
그럼 이방원도 애만 받아들이고 후궁으로 삼지 않았을텐데..얼굴예쁜죄로...
남편이 왕 되면 다른 여자들과 공유할것을 알아야할듯..하는데..
세상엔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는게 세상이치인것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니 딱 맞네요...
정비가 착했네. 몸종이 꼬리쳤구먼
이방원이가 김민재를 …
효빈김씨
대군 경녕군은 뭐여
왕자 경녕군이면 몰라도
왕자나 공주 대군은 .. 적통만 쓸 수 잇는건데 ... 이상하쥬 ? 나도 그래여 ..
그러게요 대군이면 대군이지 군이라
...
@@조한엽-h8k 조선초기에는 아직 이후의 잘 알려진 대군, 군, 옹주, 궁주, 공주 등의 직위가 확립되지 않았을때라 군을 쓰던때도 있었을걸요. 그래도 대군 경녕군은 이상하긴 하네요
여편네가 저러니 처가 식구들 박살내지
내로남불... 내 남편은안되고... 내 아들은된다... 며느리는 투기해서는 아니되고 자신의 투기는 정당화~ 여자의 적은 여자임...
나라의 왕이 조강지처만 보고살지알았나...?
당연 왕권강화를위해 막강한 처가눈치 외세력 눈치 안보려면 후궁을둬야지... 자신도 왕후의 욕심을가졌기에 왕을 만든것이지~ 둘다 전략적으로 서로를 이용한거임~ 형제를 죽이고... 이게 단순히 혼자만이 해냈을까? 부부는 일심동체임~ 손바닥이 마주쳤으니... 성공적으로 왕위를 뺏었지않았을까.?
김혜리
여기서보면 세종대왕의 혈육집안이 다양합니다. 청주한씨집안이 대표일듯..
이성계의 부인인 신의왕후가 청주한씨의 딸이지요.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의 청주 한씨집안에서보면 신의왕후는 동생집안이고 형님의 집안에서 나온 딸은 여산송씨 송금강에게 시집을 가서 (송선)이라는 아들을 낳고 그 송선의 딸이 바로 세종대왕의 외할머니이자 이방원의 장모죠. 송선의 딸이 여흥민씨집안에 시집을 가서 자식들을낳았는데. 그중 원경왕후도 낳았죠. 즉 원경왕후와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와는 11촌지간인거죠...ㆍㅅㆍ
거기다 충렬왕때 출세가도하는 여산송씨집안도 만만치않았을겁니다.
권문세족15가문중 여흥민씨와 여산송씨 사이에 태어난 원경왕후가 센것은 맞는것같네요;;;
세종대왕님의 혈육을 보면 전주이씨+청주한씨+여흥민씨+여산송씨 이렇게되겠네요;;;;;;;;;
원경왕후입장에서 화안나고배기나 왕만들어줬더니 권력다빼앗아가고동생들죽이고 바람피기나하고
혹시 분이?
잉? 미인 아닌데?
요즘시대로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죠...
이방원을 어떻게 그자리로 올렸는데
원경왕후(친정)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하지만 역사는 당시시대 시각에서 봐야죠...
남성이 지배하는 과거시대에 첩 들이는 것도 당연하고
왕권강화 위해 외척 잘라내는것도 당연한 시대였으니
조선초기중기까지만 해도 고려시대 영향으로 조선후기부터 지금까지처럼 남녀불평등하지 않았음 바깥일은 남자들이해도 집안실세는 모계였음
그리고 왕이란 특수성을 고려해도 부정부패 저지른 집안도 아니고 왕조 초기에 그많은 왕자중 왕이 되게 해준집안인데 저렇게 명분없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잔인하게 다 죽인 사람은 없었음
원경왕후가 딱 그거네...
아 ㅅㅂ 퐁퐁이누나!
지나친 태종
갓이 저게 뭐냐? 돈 몇푼 얘끼려고 ㅉㅉㅉㅉ
이방원역배우님 전현무닮음ㅋㅋ
시댁식구들 죽이라고 남편손에 칼을쥐어주다니 악처다!
2021🍰7🍨10
굿.🐢🐲🌎🌍🌏.
도대채. 이방원은. 첩애인를. 몇명 을취한거야. 민씨는. 남편이. 국가를위해. 위대한일을 하고계신분이면. 그런남편어디있어 라고. 좋게생각하고. 바람같은. 하찮은일을. 왜그렇게. 신경쓰고 했나? 생각이짧은여자다
불륜을 정당화. 어느 시대 사람이고.
저는임꺽정인데요. 민씨의그생각이. 바로. 남동생들을. 싸그리잃엇죠. 지켜보면알건데. 낌새가아니다. 싶으면. 방향을돌려. 잡는지혜나. 맘이필요하지
어차피 민씨는 부귀영달을. 누릴려고. 남편를. 척오타. 적극. 보필도왔는데
ㅂ태종의생각은. 백성과조선를위한. 생각이고. 민씨는. 조잡스럽게. 왕비와왕이되면. 권세라는방석에. 앉아. 서태후처럼살려햇는데. 정치는보통으로하고. 드라마라도. 보면모르오?
민재대감처럼. 민씨아버지처럼. 얼른. 태종의속를. 알아차리고. 지혜롭게대처햇어야. 나대니까. 다죽고. 민대감ㅇㄷㄴ은. 안죽엿다
모델을 잘못 썼다 안예쁨
오호 ㅋㅋㅋ 늙었으니 재미가없겠지..'
조선시대때 여자 살인자 비율이 다른 나라 여자 보다 20배나 높았다고 하네요.
근데 그들이 죽인 사람의 60~70%가 전부 남편이었음. 남편을 주로 독살 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부터 혼인을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정약 결혼 등을하고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거죠.조선시대 여자들도 기가 쎄고 엄청 독하기로도 소문난 사람들이라서 못참는거죠. 남자나 여자나 조선사람들은 기가 엄청 쎘음.....
이런 데이터를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이 잘하는 데이터화해서 조사 했는데 남녀 평균 살인자 비율을 백분률화 했는데 같은 일제식민지에 있던 대만 보다 거의 20배나 여성살인범 비율이 높았음
백분률 비율이 대만은 3.0 일본 11.0 인데 조선은 무려 88.0이었고 다른 유럽국가인 프랑스15.0,독일 13.5 보다도 엄청나게 높은 수치임
지금의 페미니즘이나 김치녀등등 여성문제 일으키고 불만 제기하며 남녀갈등이 있는건 어찌 보면 당연한거임.
남존여비사상이 왜 유독 우리나라만 강했을까 생각해 봐도 조선 여자들이 너무 기가 쎄서 그거 누를려고 했던건 아닐까 생각됨
근데 여자들이 단순한게 남편이나 부인이 한명일때는 여자들의 모든 관심이나 불만이 남편에게 쏠리지만 여러명의 부인을 두거나 첩을 두게 되면 남편에게 쌓이던 불만이나 갈등이 부인과 첩들 사이에 서로간의 경쟁으로 쏠리고 여자끼리 싸우게 된다는거.... 남편이 오래 살려면 첩질을 해야하는 아이러니.....
무슨 증명되지도 않은 근거를 가지고 와서 사실처럼 얘기하는 거 너무 소름끼친다ㅋ 그래서 조선시대의 일로 지금 남성들이 뭔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바라는 거냐? 힘든건 조선의 여성들이었는데 그 보상은 지금의 니들이 받고싶은 거야? 진짜 왜들 그러냐ㅋㅋㅋ
@@giantpengtv1 무식하고 모르면 가만히 있던가 증명되지도 않은 근거라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서 나왔는데? 이미 근거와 증거로 다 남겨져 있다 세계 에서도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으며 세계유일의 여성부라는 국가 기관에서 죄다 가려 놓았으니 모르는 거지...
이미 논문으로도 있는 내용이다 무식아
유독 조선의 여자살인자가 많아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일본의 산부인과 의사가 다른나라들과 비교해서 과학적으로 조사까지 해놨단다
뭐 여가부가 이런 자료가 실리고 그러면 억지로 끌어 내리고 ㅈㄹ들을 해서 부각 되지 않는거겠지만....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여자살인마들이 은폐되고 있다 감정 호소하고 감면 받고 사람 죽이고 2~3년 살다 나오더라....
우리나라 살인죄가 다른 나라 보다 훨씬 가벼운 이유도 워낙 여자들이 많이 살인하니까 그거 감면해줄려고 그러는건지도 모르지....
자기 애완견이 시끄럽게 짖는다고 개를 혼낸 남편을 자기 애완견을 혼냈다는 이유로 아내가 남편을 살인하는 나라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전기톱 살인마 그것도 한국여자가 저지른 범죄다... 보험금 노리고 남편 살해하는 사건도 수두룩하지... 밝혀지질 않아서 묻힌게 많아서 그렇지...
@@giantpengtv1 경성지역의 각종 명소·상점 등을 소개한 『대경성사진첩』(중앙정보사, 1937)에 실린 구도 다케조의 ‘구도 부인과 병원’ 전경. 경성부 북미창정(北米倉町, 오늘날 북창동) 94번지에 소재. 조선여성의 남편살해 범죄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구도는 암 치료에 라듐 방사선요법을 도입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도 썼다(‘암과 라듸움’, ‘매일신보’, 1931.4.3~7).
독일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조선에서 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한 구도 다케조(工藤武城)라는 일본인 의사가 ‘조선 특유의 범죄, 본부살해범의 부인과학적 고찰’(1933.2~8)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총독부의 선전용 잡지 ‘조선(朝鮮)’에 연재했다.
구도는 총독부의 통계연표 등을 분석해 ‘본부살해(本夫殺害)’, 즉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범죄가 조선에서 특히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살인범은 남성살인범 100명당 88명에 달해 일본 여성의 9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도 이 중에서 본부살해범의 수(여성살인범 중 본부살해범이 63%)를 빼고 나면, 그 비율은 일본이나 다른 나라 여성범죄율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본부살해는 조선만의 특수한 여성범죄 형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도는 이 논문에서 형무소 수감자들을 심층 조사해 조선의 본부살해범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범인 여성, 범죄의 대상이 된 남편, 범죄의 성격 및 방법, 처벌, 범죄의 원인과 대책 등 본부살해 범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예를 들면 범인인 여성들은 선천적으로는 신체와 정신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으나 남편 및 시부모의 학대와 착취, 부부관계의 불만이나 고통 등 결혼 후의 환경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기회성’ 범죄자라고 한다. 살해 방법은 독살(毒殺)이 70%를 차지했고, 범행이 가장 빈번한 시기는 기온이 가장 쾌적한 영상 10~20도인 4·5·9·10월이라고 한다. 그리고 범죄 방지 대책으로는 유교의 철폐, 법적인 엄격한 통제 및 처벌, 여성교육, 그리고 부인생리에 대한 지식 보급을 들었다.
이 논문은 조선의 신문에서도 ‘조선의 특수범죄 본부살해의 참극’(‘조선중앙일보’, 1933.10.9~11), ‘본부살해의 사회적 고찰’(‘동아일보’, 1933. 12.9~24) 등으로 소개되었다. 조선의 언론이 생각한 이 범죄의 주된 원인은 불합리한 결혼제도였다. 그들은 조혼·늑혼(勒婚)·매매혼 등의 인습이 사라지면 조선 여성들의 비극도, 끔찍한 범죄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들이 전부는 아니다. 구도도 조선의 언론도 여기에 개입된 빈곤의 문제는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조혼이나 강제결혼이 거의 사라진 2010년에도 한국 부부의 절반 이상이 부부폭력을 겪고 있는 이유가 경제적 여건의 악화이듯,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기 어렵다. 그 폭력의 끝이 80년 전의 저 ‘본부살해’의 비극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giantpengtv1 이 연구는 식민지기에 본부살해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시기의 본부살해 양상과 이에 대한 지식인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또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도 조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조선』을 통해 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의 본부살해녀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졌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본부살해녀가 출현한 고을의 행정단위가 강등되고 수령이 파직되었다. 또 본부살해사건은 남편을 죽인 이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진범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다루어졌다. 둘째,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의 연령은 20세 이하가 가장 많고, 독살, 교살, 자살(刺殺), 타살 등의 방법으로 남편을 죽였다. 살인 동기는 학대, 불화, 가난, 남편의 만성적 질환, 성생활의 부적응, 불륜 등이다. 셋째, 일본인 의사 구도 다케시로는 조선의 비정상적인 혼속(婚俗)특히 조혼과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 때문에 조선에 본부살해녀가 많다고 했다. 1930년대 이후의 동아일보 도 본부살해의 원인을 조혼이나 남편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조선 혼속과 남편의 비정상성이 본부살해사건의 원인이라는 해석 속에서 이 사건은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 유교적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아내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한 남편살해라는 극단적인 사건은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여성관은 여성의 발전보다는 가족에서의 여성 역할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giantpengtv1 식민지기 본부살해(本夫殺害) 사건과 아내의 정상성 : '탈유교' 과정을 중심으로
A Husband Murder Case and His Wife's Normali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저자
전미경
소속
동국대학교
학술지정보
아시아여성연구 KCI SCOPUS
2010
49권, 1호
view optionspp.73-122 ISSN 1225-9241
발행정보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2010년
피인용횟수
13
자료제공처
NRF
무료원문
NRF
키워드
본부살해, 아내, 남편, 조혼, 여성범죄, Husband Murder Case, wife, husband, early marriage, female crime
초록 open button
목차
참고문헌
초록
이 연구는 식민지기에 본부살해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시기의 본부살해 양상과 이에 대한 지식인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또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본부살해녀에 대한 논의도 조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조선」을 통해 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의 본부살해녀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졌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본부살해녀가 출현한 고을의 행정단위가 강등되고 수령이 파직되었다. 또 본부살해사건은 남편을 죽인 이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진범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다루어졌다. 둘째, 식민지기 본부살해녀의 연령은 20세 이하가 가장 많고, 독살, 교살, 자살(刺殺), 타살 등의 방법으로 남편을 죽였다. 살인 동기는 학대, 불화, 가난, 남편의 만성적 질환, 성생활의 부적응, 불륜 등이다. 셋째, 일본인 의사 구도 다케시로는 조선의 비정상적인 혼속(婚俗) 특히 조혼과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 때문에 조선에 본부살해녀가 많다고 했다. 1930년대 이후의 「동아일보」도 본부살해의 원인을 조혼이나 남편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조선 혼속과 남편의 비정상성이 본부살해사건의 원인이라는 해석 속에서 이 사건은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 유교적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아내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한 남편살해라는 극단적인 사건은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여성관은 여성의 발전보다는 가족에서의 여성 역할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