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은 아니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경우는 죄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도 소죄가 있고 대죄가 있다고 합니다. 소죄는 영성체를 함으로써 사해지는 죄이고 대죄는 고백성사를 통해 사해지는 죄를 말합니다. 여하튼 소죄든 대죄든 모두 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또한 대죄는 십계명에 비추어 대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600여 가지로 세분해서 나누게 됩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죄인 것이죠. 예를 들어 주일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유대인들은 자신이 가야할 층의 버턴을 누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눌러주면 그곳에 내려 걸어서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한다고 합니다. 주일(안식일)엔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된다는 계율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러한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죠. 그러니 십계명을 확대 해석해서 600여 가지로 세분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십계명을 확대하지 마시고 교회에서 제시한 십계명 그대로를 자신과 비교해서 어겼다면 고백성사를 보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7:42에 나오는 어거스틴은 개신교 신학자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아닌가요?
신부님 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대죄가 무엇인가요?
신부님은 아니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경우는 죄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도 소죄가 있고 대죄가 있다고 합니다. 소죄는 영성체를 함으로써 사해지는 죄이고 대죄는 고백성사를 통해 사해지는 죄를 말합니다.
여하튼 소죄든 대죄든 모두 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또한 대죄는 십계명에 비추어 대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600여 가지로 세분해서 나누게 됩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죄인 것이죠. 예를 들어 주일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유대인들은 자신이 가야할 층의 버턴을 누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눌러주면 그곳에 내려 걸어서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한다고 합니다. 주일(안식일)엔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된다는 계율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러한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죠. 그러니 십계명을 확대 해석해서 600여 가지로 세분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십계명을 확대하지 마시고 교회에서 제시한 십계명 그대로를 자신과 비교해서 어겼다면 고백성사를 보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