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 아는 척하기|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립사|Independence History of Belgium, Netherlands, Luxembourg(Benel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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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46

  • @carrot0204
    @carrot0204 Месяц назад +5

    항상 재밌게 두번 더 보고 있습니다 ❤

  • @user-xh3ng9pg3c
    @user-xh3ng9pg3c Месяц назад +5

    항상 궁금했는데
    시원하게
    풀렸네

  • @miraclevictory
    @miraclevictory Месяц назад +3

    고맙습니다 ❤

  • @anheelee
    @anheelee Месяц назад +4

    면적도 가장 작고 인구도 가장 적지만..에서 바로 구독 누릅니다
    적확한 표현 제대로 된 맞춤법 이런 당연한게 그리운 요즘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딕션까지
    마음의 안정이 왔습니다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꿈은이루어진다-q8y
    @꿈은이루어진다-q8y Месяц назад +1

    베네룩스 3국이 왜 나누어졌는지 궁금했었는데 두선생님 덕분에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강현-u2e
    @안강현-u2e Месяц назад +5

    영상 잘 봤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베네룩스 지방 '대부분'은 이 영상이 다루고 있는 기간 대부분에 걸쳐서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습니다. 15세기 부르고뉴 지배시기를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 중에도 베네룩스 지방 대부분은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었고, 부르고뉴 공작이 베네룩스 지방 대부분의 영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들 지방의 영주 자리가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의 후손들에게 넘어간 거죠.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고, 이들 지방은 '황제의 직할 영지'가 되었죠.
    제가 계속 '베네룩스 지방의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카를 5세가 프랑스 북동부 지방 일부를 차지하고 베네룩스 지방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리고 카를 5세는 자신이 영주로서 통치하던 이 지역을 17개 지역으로 구획하고 한 사람에게 상속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상속자가 아들 펠리페 2세였죠.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왕국(더 정확히 말하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의 왕이자 베네룩스 지역 거의 대부분(프랑스에서 떼어낸 지역 포함)의 '영주'였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었고, '영주' 자리만 카를 5세에서 펠리페 2세에게 넘어간 겁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가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아닌 완전한 주권국가로 인정받습니다. 현재의 벨기에 지방 대부분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고, 스페인 왕이 그 지역의 '영주'였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벨기에 지역 대부분을 '영지'로서 차지한 것이고, 벨기에 지역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습니다. 나중에 베네룩스 지역이 프랑스에 병합되기 전까지요.
    그리고 현재의 벨기에 리에주 지방은 주교가 통치하는 '주교후국'이었다가 1815년 네덜란드 연합왕국 성립할 때에나 베네룩스와 관계를 맺었고 그 전까지는 베네룩스와 따로 살던 지방이었습니다. 비텔스바흐 가문 사람들이 숙질계승으로 주교 자리를 세습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1

      영상보다 알찬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수많은 제후국(선제후 등)의 느슨한 연합 형태로 만들어진 나라인데, 베네룩스 지역을 '오랜 기간 신롬의 영토였다'라고 말 하는 게 맞을까요...? 예시를 든 펠리페 2세의 경우, 신롬 황제 카를 5세의 아들이었지만 신롬의 황제는 아니었으니까요..ㅜㅜ

    • @안강현-u2e
      @안강현-u2e Месяц назад +1

      @@두선생의역사공장 제가 '영토'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어휘 선택에서 오류를 범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벨기에 등 베네룩스 지역이 신성로마제국의 영역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보면 이 지역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진 '영주'는 계속 바뀌었죠. 카를 5세가 이 지역을 통치하던 시절에는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으니까 베네룩스 지역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직할 영지'였고,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위는 아우에게, 스페인 왕위는 아들(펠리페 2세)에게 물려줬으니까 펠리페 2세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베네룩스 지역'의 영주로서 베네룩스 지역을 통치한 거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18세기 대부분 기간에 걸쳐서 신성로마제국 황위를 차지했죠?)이 벨기에를 통치하는 동안에는 벨기에 지역이 '황제의 직할 영지'였겠네요.

    • @안강현-u2e
      @안강현-u2e Месяц назад +1

      @@두선생의역사공장 저의 이런 언급을 불필요한 말장난 정도로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언급한 것들은 유럽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사보이아 가문의 역할이 컸다는 건 유럽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모두 아실 겁니다. 사보이아 가문은 11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백작 작위를 내리면서 시작됩니다. 사보이아 백작 작위인데, 세대를 거치면서 공작으로 승격되어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 사실상 독립국가의 왕과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각국의 왕가와도 통혼할 정도로 준왕족 대접을 받지만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하인 공작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유럽의 귀천상혼은 정말 엄격해서 왕자가 이웃나라의 공주가 아닌 공작 가문의 딸과 혼인해서 태어난 자식은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보이아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은 왕자의 자식들은 멀쩡히 왕위계승권을 인정받았다더군요. 그러니까 왕족 대우를 받은 거죠.)
      그런데 1720년에 사보이아 공국이 사르데냐 섬의 지배권을 획득하고 '사르데냐 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명실공히 왕족 지위에 오르고 이런 지위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르데냐 왕'이라는 칭호 자체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때까지 스페인 왕(더 정확히는 아라곤 왕)이 사르데냐를 통치해서 그냥 스페인 왕의 작위 자랑에 이용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왕위가 없던 사보이아 공작 가문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왕위를 얻은 셈이고, 이는 이탈리아 통일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사례에서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국가 구획과 실질적 영지 획득의 괴리 문제를 이해하면 유럽 역사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길게 말을 꺼냈습니다.

    • @안강현-u2e
      @안강현-u2e Месяц назад +1

      ​@@두선생의역사공장 제가 대댓글을 길게 썼는데 지워졌네요. 유튜브 댓글 정책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애써서 댓글 달았더니 싹 지우네요. ㅠㅠ사보이아 공작 가문이 사르데냐 왕위를 획득하면서 이탈리아 통일에 추진력이 생겼다는 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차지한 호엔촐레른 가문이 프로이센 왕위를 차지한 것에 관해 언급한 대댓글이었습니다. 오늘 중으로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 @안강현-u2e
      @안강현-u2e Месяц назад +1

      @두선생의역사공장 오전에 대댓글을 길게 작성했는데 지워져서 다시 올립니다. 유튜브 측에서 어떤 정책으로 이러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형식상의 국가 영역과 영주권이 미치는 영역 사이의 괴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유럽 역사에서 이런 괴리가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한 사르데냐 왕국의 사보이아 가문입니다. 사보이아 가문은 11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가 현재의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 일대를 영지로 하는 백작 작위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세대를 거치면서 힘을 키운 사보이아 가문은 공작 작위를 받고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명문가로 성장합니다.
      서양 전래민담에서 평민이 왕족과 혼인하는 해피 엔딩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달랐죠. 실제로는 왕자가 공작의 딸과 혼인해서 자식을 낳아도 '귀천상혼'으로 취급되어서 그 부부의 자식들은 왕위계승권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보이아 공작 가문의 딸과 혼인한 왕자의 자식은 왕위계승권을 인정받았으니 공작 가문이지만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셈이죠.
      사보이아 공작 가문이 이렇듯 높은 대우를 받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신성로마제국 영토 내의 영주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720년에 사보이아 공국이 사르데냐 섬을 차지합니다. 1720년이면 30년 전쟁이 끝난지 70년도 더 지난 시기였고, 신성로마제국도 유명무실했던 시대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은 존재했고, 사보이아 공작 가문은 형식적으로나마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보이아 가문이 사르데냐 섬을 차지하면서 '사르데냐 왕' 칭호까지 얻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준왕족'이었던 사보이아 가문이 '진짜 왕족'이 된 거죠. 사르데냐 왕위는 원래 스페인 왕(더 정확히는 아라곤 왕)이 수백년 동안 갖고 있었고, 스페인 왕의 칭호 자랑에 이용되는 왕위였습니다. 그런데 왕위를 갖지 못하고 있던 사보이아 공작 가문 입장에서는 굉장히 귀중한 왕위였고, 사보이아 가문은 사르데냐 왕위를 내세워서 19세기에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주도합니다. 신성로마제국 밑에 있던 일개 공작보다는 독립국가의 왕이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하기 훨씬 유리했겠죠?
      이건 프로이센 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제후국이었지만, 프로이센 왕국은 독립국이었으니까요.
      유럽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렸습니다.

  • @pej1229
    @pej1229 Месяц назад +4

    재밌게 봤습니다!

  • @sck2735
    @sck2735 Месяц назад +1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7:16쯤 부르고뉴 공작이 로렌을 치러가다 전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거기서 샤를 2세라고 하셨는데 혹시 용담공 샤를 그러니깐 샤를 1세를 말하는게 아니신지? 마리 드 부르고뉴의 아버지인 점으로 봐서 그게 맞을 것 갔습니다만....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앗 그렇네요ㅜㅜ 오타를 내버렸습니다ㅜㅜ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영상설명란에 다른분들 헷갈리시지 않게 적어놨습니다...!

  • @85kindkim
    @85kindkim Месяц назад +1

    두선생님 안녕하세요. 혹시 지식해적단 채널도 운영하시나요?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아니요 ㅜㅜㅎㅎ 댓글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ㅋㅋㅋ

  • @AlexMahone20
    @AlexMahone20 Месяц назад +2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네덜란드랑 벨기에와 한 조였죠...
    (아~ 상철이형)

  • @keiner.j6339
    @keiner.j6339 Месяц назад +1

    EU4 꿀팁) 부르고뉴와 동맹 왕실결혼을 하면 부르고뉴 상속을 통해 한입에 받아먹고 신롬 황제와 전쟁을 할 수 있다

  • @JayChoi1118
    @JayChoi1118 Месяц назад +2

    히틀러는 아리안의 정의를 잘못 알았다.

  • @이현숙-c6t
    @이현숙-c6t Месяц назад +2

    저런 역사공부 하다간 머리가 뽀개지겠다

    • @b급감성_250
      @b급감성_250 Месяц назад +1

      근데 대략적으로라도 유럽사를 이해해야 역설적으로 왜 중국,일본이 공식 문서로 역사 왜곡을 하는지 왜점마들이 개뻘짓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 @인간-g6q
    @인간-g6q 12 дней назад +1

    네덜란드 : 네덜란드
    벨기에 : 네덜란드 + 프랑스
    룩셈부르크 : 독일

  • @prussia92
    @prussia92 Месяц назад +2

    레오벨기쿠스

  • @정재민-x5i
    @정재민-x5i Месяц назад +1

    1648년

  • @june_joy
    @june_joy Месяц назад +12

    그럼 베네룩스의 왕족들은 왕으로서의 역사가 짧겠네요. 원래 공작/백작가문으로 오래 살다가 2~300년 전부터 왕족으로 상승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6

      맞습니다 ㅎㅎ하지만 이유는 조금 다른데요~ 네덜란드는 공화국으로 있다가 총독을 오랜 기간 세습한 오라녜나사우 가문을 왕으로 추대했고, 벨기에도 1830년 독립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왕을 영입(?)한 케이스라 왕실의 역사가 300년 이상이 되진 않습니다 ㅎㅎ

  • @로렘
    @로렘 Месяц назад +1

    덕배의 나라! 반다이크의 나라!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Месяц назад

      아자르의 나라! 로벤의 나라!

    • @AlexMahone20
      @AlexMahone20 Месяц назад +1

      엔조 시포, 마르코 반 바스텐 & 루드 굴리트의 나라!!

  • @최호준-f5f
    @최호준-f5f Месяц назад +1

    네덜란드를 개신교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 @user-zr1wc4gi5i
    @user-zr1wc4gi5i Месяц назад +1

    그래봤자 독일 과속방지턱

  • @이슬뭉치-g1m
    @이슬뭉치-g1m Месяц назад +1

    선생은 무슨?

  • @quipi81
    @quipi81 Месяц назад +1

    영국, 프랑스는 분탕질만 하노 😐

    • @JinGMT
      @JinGMT Месяц назад

      노노거리는 일베도 분탕질 잘하지

  • @HoYjune30
    @HoYjune30 8 дней назад

    쓸데없는 인트로가 영 구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