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비문에 대한 노마드의 상상과 제안 - 유목민 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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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6 сен 2024
  • 문무왕 비문이 가진 비밀

Комментарии • 68

  • @푸틴재규
    @푸틴재규 Год назад +1

    좋은 강의 감사 드리고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 @nomad-art
      @nomad-art  Год наза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dooyongbaek2063
    @dooyongbaek2063 4 года назад +6

    대박 멋지십니다. 균형감각과 투철한 인문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 @user-zx4lo2zu4z
    @user-zx4lo2zu4z 4 года назад +4

    항상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 @생물진화채널
    @생물진화채널 3 года назад +4

    흉노족의 전통을 이은 김씨 집안이 신라를 정복했다라기 보다는
    경주로 흘러들어와 기마용병 같은 역할을 맡았고,
    6부의 부족장들이 회의하는데, 의장 같은 역할을 중립적인 김씨에게 맡겼고,
    지증왕때 까지도 의장에 불과했는데
    법흥왕때부터 실질적으로 왕의 권력을 잡게 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사과-x7h
    @사과-x7h 4 года назад +3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암반수-e8r
    @암반수-e8r 4 года назад +5

    북방 유목민 흉노족부터 신라 김일제에 이르는 내용 잘들었습니다~~♡

  • @신장옥-f6x
    @신장옥-f6x 4 года назад +5

    신라 김일제 잘들어습니다 항상감사드려요

  • @고로롱-q1w
    @고로롱-q1w 3 года назад +2

    그리고 청나라의 애신각라 라는 것도 그만큼 신라가 북방 유목민족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그게 자랑스러우니까 이름과 만주원류고에 기록했겠죠. 중국기록은 믿을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로남불은 그들의 종특

  • @user-zs8su5lr7e
    @user-zs8su5lr7e 4 года назад +2

    경주에 있는 천마총은 자작나무에 하얀색으로 그려진 천마도에서 이름이 유래합니다. 날출자형 왕관의 장식과 천마도는 북방민족의 전통을 알게 하지는 않는지요. 제가 궁금했던 문제들이 오늘 확실하게 풀리네요. 자작나무는 추운 지역에 사는 나무이고 천마도가 강의에서 나오는 천마를 그렸다면 저의 조상은 확실히 북방유목민족이라고 짐작됩니다. 오늘 강의는 저의 오랜 의문을 풀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777yup5
    @777yup5 3 года назад +2

    제생각에도 김씨일족은 흉노와 관련된 유목민족인것 같습니다.

  • @seankong7313
    @seankong7313 4 года назад +3

    좋운 말씀 감사합니다
    내용이 좀 빨라서 kbs 동영상을 한두번 더 보고 오겠습니다

  • @푸틴재규
    @푸틴재규 Год назад

    저 또한 신라 가 흉노의 후예라면서 왜 그리 사대적이고 .. 폐쇄적이고 진취적이지 못 했던것인가 ? 그런 의심이 한번에 풀렸습니다. . 흉노는 흉노이나 한족화된 투항 흉노라면 모든게 다 이해가 됩니다. 왜 그렇게 했었는지

  • @kimjb0620
    @kimjb0620 4 года назад +7

    흉노의 분파가 실재로 존재했다는거네요
    중국애들이 벌벌떨던 장대한 역사의 흉노족이
    배워왔던것 보다 자랑스런 역사네요
    더 찬란하게 꽃피고 번영했으면 자유와 민주 자본으로

    • @sgkm5141
      @sgkm5141 4 года назад

      닭모가지 베기도 무서워 하는 농경족은 맨날 옷에 피를 바르고 다니는 유목민과 싸워서는 이길수가 없습니다.

  • @hunroy748
    @hunroy748 Год назад

    비문내용에 지워진 부분이 너무 아쉽네. 화관지후의 후예로 터전을 일으키고 뒤에 진백의도를 널리 알린것과 투후제천지윤이 무슨 관계인지 확 풀렸으면 좋겠네.

  • @user-fe8kz8vt7g
    @user-fe8kz8vt7g 4 года назад +1

    잘봤습니다

  • @김관욱-q2r
    @김관욱-q2r 4 года назад +2

    재밌어요

  • @leeyunhwa6696
    @leeyunhwa669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곽광(곽거병의 아들)>>>곽광은 곽거병의 이복동생...아닌가요?

  • @고로롱-q1w
    @고로롱-q1w 3 года назад +1

    중국사서가 원체 거짓이 많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써놨기 때문에 전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자신의 정동성이 흉노라는걸 비문에 적었다는건 북방유목민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증거죠. 한서가 사실이라고 가정을 하니까 이런 이해할수 없는 뉘앙스가 있는거고 사대라기보다는 있는그대로 보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 @김승룡-d4x
    @김승룡-d4x 4 года назад +2

    전반부에는 공감이 되는데 후반부에는 너무 추측이 심해서 마치 소설을 쓰시는듯 하네요~~ 어떤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을 왜곡해서
    쓰나요 1500년 전의 사람들도 지금사람 못지않게 똑똑합니다. 그들은 한족에게 굴복헸지만 결코 자신의 전통을 지켰고 한족들을
    철저히 무시 했습니다. 이점 잊지 마세요

    • @TheExctshot
      @TheExctshot Год назад

      자신의 조상을 왜곡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현재도 중공은 자신들의 조상을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하고 있지요.

  • @상록수신앙을기도하는
    @상록수신앙을기도하는 4 года назад +1

    유목민들의 초원의길이 유럽에서 중앙 아시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연결 됬다고 하면 김일제 이전에 우리나라에 흉노족이 들어왔을 확률이 다분히 있다고 봄
    저의 개인적인 생각임

    • @nomad-art
      @nomad-art  4 года наза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года назад +2

    제안이 쌩뚱맞는 기분인데요. 갑자기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배우자는 얘기가 어떻게 유물과 관련되서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 @2기냥1진실저너머
    @2기냥1진실저너머 4 года назад

    중국의 동북공정(한사군 관련한 고대영토논쟁 및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독자적 전통)과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일본의 한반도 남부지배설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sub-cr9mk0
    @sub-cr9mk0 3 года назад

    신라 김씨가 한족이가
    으이그 해석하는 것 하곤.

  • @김정화-w7x
    @김정화-w7x 4 года назад +3

    +신라 김씨 왕족이 흉노(오랑캐)에 대한 쿰플렉스가 있고, 한나라에서 벼슬을 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면 흉노의 유물을 무덤에 그렇게 많이 부장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나요? 오히려 농경민스러운 부장품을 많이 넣어 놓았어야 하지 않나요?

    • @TheExctshot
      @TheExctshot Год назад

      무덤을 축조하던 시기와 문무왕비문 때는 상당한 시간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적 상황은 변하는 것이지요

  • @박동배-x4h
    @박동배-x4h 4 года назад

    그렇게 보기에는
    왕관에 모양
    또 토기의 토기위에 솥
    성조가 남있는 언어
    북방에 많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32tvtv90
    @32tvtv90 4 года назад

    18:27

  • @jonggoogkwon4169
    @jonggoogkwon4169 3 года назад

    훙노의 이전의 기록이 없다
    김일제로부터 김알지로 아골타
    김함보로 역사는 이어졌다
    지나대륙에 대한 김가의 인연
    으로 단순 역사사건으로 보자
    유목민의 역사는 단발이였다

  • @우정-h4o
    @우정-h4o 3 года назад

    흉노가 고조선의후손아닌가요?

  • @boscojohn6703
    @boscojohn6703 3 года назад

    훗.

  • @user-pc2oc9tm3b
    @user-pc2oc9tm3b 4 года назад

    묘제가 흉노!!!!

  • @손은호-n5r
    @손은호-n5r 4 года назад

    위대한 흉노라는 걸 자랑하는 것 같은데요.
    공자는 동이족입니다.

    • @sgkm5141
      @sgkm5141 4 года назад

      대한민국이 아시아 국가이면 아시아 사람들이 모두 한민족이고 한국영토 입니까? 라는 신채호 이덕일과 북한정부의 엉터리 주장이 동이족설 입니다 . 환단고기의 변종논설 입니다.

    • @user-lq6xw2th1c
      @user-lq6xw2th1c 2 года назад

      공자는 노나라 출신 중원사람입니다….

    • @TheExctshot
      @TheExctshot Год назад

      @@user-lq6xw2th1c 혈통적으로 상나라 후예 동이족이지요

    • @user-lq6xw2th1c
      @user-lq6xw2th1c Год назад

      @@TheExctshot 동이족은 지금의 한민족이라는 개념처럼 특정민족을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동이뿐 아니라 북적, 서융, 남만 중원 왕조의 오랑캐(그들의 시각에서)를 지칭하는 말들은 그 시기와 중원왕조의 위치에 따라 가변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상나라가 무슨 동이족이어서 지금의 한민족이라는 말은 큰 착각이라는 뜻입니다.

    • @user-lq6xw2th1c
      @user-lq6xw2th1c Год назад

      @@TheExctshot 그리고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동이는 산동반도의 '래이'족(태공망의 강씨 제나라의 주요 경쟁세력), 부차로 유명한 오나라 땅에 거주하던 '회이'족을 주로 지칭하던 말이었습니다.

  • @4goodlee
    @4goodlee 3 года назад

    흉노족 한족과는 다르다

  • @sgkm5141
    @sgkm5141 4 года назад

    신라 김알지 뒤에는 4만의 흉노부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가야 김수로 뒤에는 장사태수 김표와 인도왕족 허황후가 뒤받침을 합니다 .

  • @이태영-i9u
    @이태영-i9u 4 года назад

    김일제에 관한 의견이 타당성이 있어보입니다. 삼국중 신라에서만
    북방유목민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
    되는 이유가 정말 궁금 합니다.
    동해를 통해서 신라지역으로의 남하는 불가능 했을까요?

    • @KangShinMin
      @KangShinMin 4 года назад +1

      246년 위의 관구검 침입과 342년 북위의 모용황 침입 당시 고구려는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도망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정권을 접수할 만큼 강한 세력이 신라땅으로 들어오려면 위의 2번의 기회가 유일했을겁니다.
      신라에 김씨왕인 미추왕과 내물왕의 등장 시기와도 비슷하게 맞습니다.

    • @sgkm5141
      @sgkm5141 4 года назад +2

      가능이 아니라 현실 입니다 . 김씨에는 김일제의 후손김씨(진골)와 함께 투항한 4만명의 흉노부족김씨(평민)가 있습니다 . 김일제 후손들은 출세하여 장안에 들어가 한족화 되엿지만 부족김씨들은 알따이 산맥 동남쪽에 집거 하다가 일부가 진골김씨의 부름을 받고 흑룡강 상류를 거쳐 신라에 들어 갔습니다 . 지금도 그곳에(무위시) 많은 김씨들이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