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게 먹히지 않은 한국인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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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фев 2024
  • 잡지사 방송 | 매주 월~금 오후 7시30분~8시 CBS 라디오 표준FM 98.1MHz
    정정합니다. 영상 26분 정도에 소개된 살수대첩 기록화는 사수대첩 기록화입니다.
    662년(고구려 보장왕 21), 연개소문의 군대가 사수에서 당나라 군대를 몰살시킨 사수대첩 장면을 그린 정영렬의 민족기록화입니다.
    ※2/23 금요일 방송분
    #잡다한지식사전 #한국인 #홍대선 #평양성
  • РазвлеченияРазвлечения

Комментарии • 234

  • @Hongjaakgaa
    @Hongjaakga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96

    안녕하세요 홍대선입니다.
    어색함이 풀려서 지난주보다는 편하게 방송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이강민 편집장님과 스텝분들 덕분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는 시청자분들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저의 신간 의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내에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모두들 (많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user-ce4lz4jj1d
      @user-ce4lz4jj1d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담주에도 봐유 쌤ㅎㅎ

    • @AnimalTour
      @AnimalTou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영상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 @Hongjaakgaa
      @Hongjaakga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user-ce4lz4jj1d 넵 다음엔 조선이란 무엇인가, 편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

    • @user-fz6hz3uc9x
      @user-fz6hz3uc9x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user-rp3zl5nz5g
      @user-rp3zl5nz5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구독했어요 ㅎㅎㅎ

  • @user-mp7mv7pb8j
    @user-mp7mv7pb8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4

    한국식 산성방어 체제는 현대의 종심방어 개념과 비슷합니다.
    이 부분을 첨언해주셨으면 더 잼있었을 듯 합니다~
    성이 하나 깨진다고 해도 방어선이 무너지는게 아니고 그 뒤로도 줄줄이 거점에 산성이 버티고 있고... 또는 점령이 힘든 산성을 우회해서 진격하면
    우회된 산성에서 병력이 나와 적의 보급선을 끊습니다.
    아주 영리하고 적에게는 골치 아픈 방어전략입니다.
    산성이 발달하게 된 이유 중에 또 다른 하나가 청야전술입니다.
    홍작가 님이 말씀하신대로 중국같은 경우 대군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 많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장기간 전쟁을 하려면 보급을 엄청나게 신경써야 합니다.
    그런데 한반도는 종심방어이다 보니 성을 하나 하나 깨고 진격하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되고 이는 엄청난 보급을 요하게 됩니다.
    이럴 때 적은 결국에는 현지에서 식량을 약탈 등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영리하게 전쟁이 터지면 먹을 것과 물자를 싹싹 털어서 산성으로 틀어가 버리지요.
    이런 청야 전술로 인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대규모의 침략군은 엄청나게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런 압박때문에 중국에서 온 침략군은 종국에는 삽질을 많이 하더라구요.
    진짜 우리나라 산성은 고도의 방어전략 입니다~

    • @user-kf9mi8hw4j
      @user-kf9mi8hw4j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물론 1대100 의 전투에서 이긴적도 있겠지요..난 동의못함..와키자카 2000명에게 최광의 삼도근왕병 6만명 우째됐나요?

  • @user-fq7um6ee6j
    @user-fq7um6ee6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3

    끈끈한 정이 많은민족 그이면에는 잔인하고 용맹한기질을 감추고 살죠. 침략에 대한 백신을 무수히 맞고 저항성이 강해질수밖에~ 우리는 항복 기딴것 없음.^^*

  • @user-fz6hz3uc9x
    @user-fz6hz3uc9x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8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에도 정말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 @user-wf4gs3mb3n
    @user-wf4gs3mb3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IMF,코로나 등 재난과 전쟁을 극복해내는 것 보면 진짜 맞는 말씀같아요…

  • @myoungkim1680
    @myoungkim168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한민족은 기본 전략이 배수의 진보다 더하네요. 헤엄칠 강조차 없…

  • @user-lb1vb7tp9t
    @user-lb1vb7tp9t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전쟁사의 이해와 해석이 독특하시네요.
    어설픈듯(악플 아님) 하지만 틀린것도 별로 없는,
    일반 역사전공자와 다른 시각이 참신하고 좋습니다.

  • @hckim8088
    @hckim808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홍대선 작가님 감사합니다. 엄청 많이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

  • @user-ghdf376lj
    @user-ghdf376lj 4 месяца назад +3

    홍대선 작가님 너무 잘 들었어요
    나도 코로나때 유럽 근본 없는 애들이 우리가 자발적으로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이 부럽고 인정하기 싫어 지네 맘대로 군부독재니 뭐니 하면서 주둥아리 불때 부글부글 😡

  • @kimpost_264
    @kimpost_264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납득이 됐습니다~
    역시 다양한 시각과 사고는 👏👏👏

  • @dongkim2000
    @dongkim200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jowoohada
    @jowoohad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산+성 ㄷㄷㄷ 어드밴티지 극대화
    극교환비를 끌어내기 위해
    언덕시즈를 활용했던 조상님들...
    그것도 부족해서 바다위에도 언탱을 만든게 판옥선...ㄷㄷㄷ
    진정한 테란의 조상님들

  • @user-km7ws9re6p
    @user-km7ws9re6p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최그ㅡ다

  • @user-ko2kt5jk5z
    @user-ko2kt5jk5z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역사와 화학 과 별자리애긴 정말 재미있어요 잘봤습니다 ^^

  • @user-xe4rt3yr9p
    @user-xe4rt3yr9p 4 месяца назад +6

    와 홍작가님, 통찰력이 대단하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 @user-rf5ju1zu5b
    @user-rf5ju1zu5b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멀리 고구리 고려까지 갈 것없다. 6.25동란에 참전하신 우리 집안과 동네 어른들의 활동상을 들어보면 민족 기질이 독종이다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진짜 죽기 살기로 처절한 싸움이다. 요즘 젊은이들 대다수가 전쟁사를 웃으며 방송하더라. 역사시대 이후 전쟁으로 돌아가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user-ny8vo9wd4i
    @user-ny8vo9wd4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9

    시간이 금방 지나갔네요 ㅡ말씀도 잘하시고ᆢ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user-eg1mc1ym3d
    @user-eg1mc1ym3d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또 다른 관점으로 살펴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습자지 지식인은 오늘도 즐겁습니다

  • @user-ig3kg7oe3i
    @user-ig3kg7oe3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ㅋㅋㅋ 이분 정말 재밌으시당

  • @user-mq5xo6dz8e
    @user-mq5xo6dz8e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좋은 강의이고 자긍심이 생기는 강의였습니다.

  • @brandonann9283
    @brandonann928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9

    말씀도 참잘하시네요....재미납니다❤❤❤❤❤

  • @사적돌
    @사적돌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우리 산성은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데 중점이 있었지요

    • @Hongjaakgaa
      @Hongjaakga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그렇습니다. 책에는 성에 관한 한국과 외국의 보다 구체적인 설계사상 차이에 대해 제가 분석한 바에 따라 보다 자세하게 기술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항상 잘보고있습니다😌@@Hongjaakgaa

    • @user-zh9tm5vx4w
      @user-zh9tm5vx4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몽고의 침략당시 지배층은 강화도로 들어가고 백성들은 산으로 섬으로 들어가서 중앙정부에서 보낸 관리들의 지휘를 받아 효율적으로 싸웠습니다. 그게 먹혀서 30년동안 대몽항쟁 할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지배층은 백성을 버리고 지들만 살려고 강화도로 들어갔다고 가르치죠..

    • @ESTP-A0925
      @ESTP-A092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어랏 사적돌 유튜버님 산성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

    • @사적돌
      @사적돌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오 반갑습니다😌@@ESTP-A0925

  • @sunnykim4093
    @sunnykim409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위대한 한국인~~~❤,❤

  • @user-jc4vu2gt7h
    @user-jc4vu2gt7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1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의 일본군을 따라온 서양인 신부의 기록에 "조선군은 성안의 호랑이. 들판의 양떼들."이라고 했죠. 성 안에 있을 때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용감하게 싸우는데 들판에서는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진다고...

    • @davekim7777
      @davekim7777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직산전투에 5만대 1700명 싸움에서 일본군이 승리하면서 생겨난 소감같으네요.
      그 연유라면, 이거 때문일겁니다.
      ‘제승(制勝)’이란 적을 제압하여 승리로 이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제승방략은 전쟁에 승리하는 전략인 셈이다. 조선 전기 국방 체제는 1457년(세조 3) 만들어진 진관 체제(鎭管體制)였다. 이는 병력 이동 없이 행정 단위에 따라 소속 지역을 지키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많은 군사와 군비(軍費)를 발생시켰다. 또한 진관 체제는 군사를 분산시키게 되므로 상습적으로 침입을 당하는 지역이나 군사 요충지를 선별하여 병력을 집중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 전기의 골칫거리였던 북방 여진족과 남해안 왜구와 벌이는 소규모 국지전에 대처하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조선 정부는 1510년(중종 5) 일어난 3포 왜란을 계기로 하여 전투가 벌어지는 거점 지역에 각 진관의 수령이 휘하 군사들을 이동시키고, 중앙 정부에서 보낸 군사 전문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 전략, 곧 제승방략(制勝方略)의 방어 체제를 구축하였다. 조선 정부는 비전문가가 지휘하는 분산적 방어 시스템을 전문가가 지휘하는 집중적 방어 시스템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변방의 국지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같은 전면전에서 제승방략 체제는 매우 취약하였다. 집중적 방어 거점 지역이 함락될 경우 후방에서 방어선을 다시 형성할 방법이 없었으며, 중앙 지휘관이 전선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적의 진격이 빠를 경우 전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본군이 삽시간에 수도를 함락시키는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결국 임진왜란 이후 국방 체제는 제승방략 체제의 취약점을 보완하여 중앙군을 강화한 5군영과 지방군을 강화한 속오군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서양인 신부가 아니라 근대 서양학자가 한말. 실제로는 야전어서도 잘 싸움. 임진왜란때도 개전 4개월 째 벌어진 용인전투까지만 삽질이고 그 직후 벌어진 웅치.이치전투같은 야전에서도 대부분 이김.그것도 10배의 적을 상대로.

    • @jinhan1172
      @jinhan1172 Месяц назад

      수성전은 산성구조에 숙달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기에게 알맞고 젤 잘하는 장끼들로 적들 후두려 패며 버티면 이김. 역사학자들이나 전쟁사들에서 별로 말 안하는데 산성전에서 최고는 활과 쇠도리깨임. 농사짓는데 단련되여서 작대기끝에다 쇠장대 여러개 매달고 후리면 성우에 적들 못올라왓다고 함. 그런데 야전에서 싸울려면 엄청난 훈련과 병사들의 경험 준비정도 엄청 필요함. 100년간 싸움에 단련된 왜놈들과 야전에서 개털리는건 당연한거임.

  • @akoreanman
    @akoreanman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시대마다 첨단무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의 특성은 역사적 환경에 기초하고 있네요.

  • @moon-cu2ek
    @moon-cu2ek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네요😊

  • @user-xl1wr2ux1q
    @user-xl1wr2ux1q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저도 삼국지 게임할때 적이 병력 남겨서 후퇴하면 이악물고 쫓아가서 전멸시키려고 하곤 했는데, 그게 한국인근성이었나봅니다 ㅋㅋ

    • @zapzisa
      @zapzis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엌ㅋㅋ

  • @user-kv4ue1ys8d
    @user-kv4ue1ys8d 5 дней назад +1

    그거아세홍~ 구독완료

  • @user-bz5wm8ep2e
    @user-bz5wm8ep2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잘듣고갑니다😂🎉

  • @user-vs3qn9me3m
    @user-vs3qn9me3m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구독합니다,
    한민족의. 기상을. 알게독엇습니다

  • @kyoungkoo
    @kyoungkoo 5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궁금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유럽은 언어는 달라도 대부분의 문화를 공유했더라구요.
    복식문화, 음식문화부터.. 유명 작가의 책, 음식, 미술.. 등 등
    그리고 유럽은 왕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상간도 일삼고..
    또 왕족이 아닌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는 귀족의 혈통을 수혈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나라의 왕족과 결혼을 하거나 정략을 위해 결혼하는 등
    서로 싸우면서도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데..
    우리가 포함된 한, 중, 일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한, 중, 일의 차이가 확연하게 있죠.
    미술 작품을 보면 이건 어느 나라 화풍이다. 라는 걸 알 수 있고.
    음악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유럽과 다르게 악기 자체부터 각 나라(민족)에 따라 다르고..
    복식이나 음식도 마찬가지고..
    왕족의 결혼도.. 아시아 쪽은 서로 피를 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피가 섞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중국 대륙에 있는 나라들에 조공을 보내고, 왕이 바뀌면 승낙까지 받는 상황이이지만
    그 소위 "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정략적인 결혼 같은 것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거나 전쟁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타국에서 정략적 결혼을 위해서 자식을 보내라고 하면 왕족이 아닌 사람을 왕족으로 속여서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외국인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은 "튀기"라고 해서 업신여기고, 배척하는 등
    유럽과 확연히 다른 문화적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이런 문화적인 차이는 왜 있는 걸까요?

    • @jeichina76
      @jeichina76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바다와 산맥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잖아요.
      지금이야 교통편이 좋아 하루 안에 안전하게 가지만
      옛날은 달랐죠.
      게다가 유럽은 대부분이 평지이고, 나라들이 많아 커보이는 것이지.
      실제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아요.

    • @hyeonsseungsseungi
      @hyeonsseungsseung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유럽은 언어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쪽 끝 스페인말과 동쪽 끝 러시아 말의 차이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보다 작습니다.

  • @ytlove3937
    @ytlove3937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훌룡합니다

  • @user-tc8mc7pn6u
    @user-tc8mc7pn6u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작가님 너무 재밌게 방송해주셔서 책 구입했어요~

  • @user-tu2ux2zw9m
    @user-tu2ux2zw9m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중국은 한족이이룬 나라를 날하는건대, 원래 중국은 모택동이 만든 중국 부터 중국 이라해요. 모택동이전의 나라는 다 이민족이 만든 나라에요. 그 중에 제일많은 민족이 동이족이애요..

  • @ccasio9636
    @ccasio9636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정월 대보름에 달집 태우기 풍습이 바로 전쟁 연습이었습니다.
    물자 준비, 달집세우기, 다른 마을 정찰, 기회가 되면 상대방 달집(보급품) 태우기, 노약자 포함 마을의 모든 주민 달집에 동원, 경계유지를 위해 잠자면 눈썹 희어진다며 잠 안 재우기, 부럼(딱딱한 씨앗 또는 열매 위주의 식단) 등 모든 것이 전쟁연습에 맞춰져 있음. 일종의 민방위 훈련임

  • @johnny0320
    @johnny032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노량해전 기록화라고 소개되는 그림의 잘못된 점은 노량해전에는 거북선이 투입 안됩니다
    오로지 판옥선만으로 치뤄진 전투입니다

  • @zapzisa
    @zapzis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00:05 앞광고
    00:47 ‘중국을 옆에둔’ 한국인의 전쟁법 🇨🇳🇰🇷
    03:32 네 개의 중국
    07:35 다른나라 성과 우리의 산성 🏰🏯
    12:02 500 대 45000의 전설… 평양성전투
    15:58 활과 사격의 민족 한국인 🔫
    17:49 조선의 ‘메인무기’는 칼이 아닌 활이었다
    20:57 못 맞추면 내가 죽는다 - 한국 활의 특징
    22:53 결집의 힘이 되기도 하는 냄비근성
    24:27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둬야 했던 한국인
    27:08 노량해전에서 드러난 이순신의 천재성🌲
    31:35 K-방역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분석

  • @user-iy1qh2vi2g
    @user-iy1qh2vi2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그래서 역사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지나간 시대라고 알 필요없다고 들 하지만 그러치 않습니다 역사를 치욕적이든 그렇치 않튼 정확하게 알고 그 역사적 사실에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올바르게 찾고 번영을 이룩해야 합니다

  • @user-hv3it8bc5b
    @user-hv3it8bc5b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훌륭^^

  • @user-yf7zq9ct4q
    @user-yf7zq9ct4q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다른 채널에서 봤는데. 우리 민족이 수성에 능하고 활을 잘 쓴것도 있는데. 무기 중에 도끼를 상당히 잘 쓰고 애용해서 수성이나 삼림지에서 유리한 면이 있었다고 해요. 중국 한족은 보통 넓은데서 방진짜고 보병위주로 창으로 대규모 회전이 특기인데. 우리는 애초에 삼림 지형에 전국민이 온돌 때문에 벌목이 기본 패시브이고 침략에 지키는 수성전을 많이해서 일반 백성도 도끼 마스터가 많았다고 함.

  • @leehanks9396
    @leehanks9396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구독 백 번 누를 수 없나요 홍작가님🎉

  • @webun200
    @webun20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행주산성은 토성이라 돌이 없고, 고려때 행주라는 지역명이다.

  • @younggun7002
    @younggun7002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임진왜란 때 서양인들이 조선인들을 보고 남긴 기록이 있죠ㅎㅎ 성에선 늑대, 벌판에서는 양ㅎㅎ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헛소리입니다. 우리는 야전에서도 잘 싸웠어요. 웅치, 이치,충주전투 같은 전투도 야전같은 비탈에서 벌어졌고 10배의 적을 상대로 이겼어요. 야전이 손실이 커서 회피했지 약한건 아니었어요

    • @user-oj9zg2np7m
      @user-oj9zg2np7m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근데 그당시 우리가 싸웠던
      적들이 벌판에선 세계최강의 기병을
      가진 적들이었다는걸 알아야합니다

    • @user-dk9cs2rj4k
      @user-dk9cs2rj4k 4 месяца назад

      @@easeafe4re581신립 : ???

  • @DltptkddldnldpsirkdlTek
    @DltptkddldnldpsirkdlTek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고구려9성(평양성,한성,국내성,요동성,신성,부여성,건안성,오골성,책성(동만주))중 지금 북한 평양은 한성입니다.
    성벽에 새겨진 글짜도 한성이러고 되어 있죠.
    수나라와 전투면 한반도는 아니죠.

    • @user-sv2iv2en8m
      @user-sv2iv2en8m 4 месяца назад

      맞읍니다 물론 평양
      성이 한군데 고정된
      지명이 아니지만 이북
      의 평양은 결사항전으
      로 밀리다 마지막수도
      였지요
      또한 통일신라가 당나
      라와 벌이는 평양성전
      투도 요하동쪽지경의
      당과접경에 가까운곳
      이었을겁니다

  • @user-yy5pb1dx4g
    @user-yy5pb1dx4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고당전쟁은 2차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같음. 2차세계대전때 태평양전쟁때 일본군이 미군들을 아무리 죽여도 미국이 생산력,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끝없이 몰려와서 결국 일본제국이 패망함.

  • @user-yi4en2rq6k
    @user-yi4en2rq6k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한 책략 1 >
    먼저 세계사적으로 어마어마한 대전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있었다는 점을
    왜 세계인들은 모르는가를짚어볼 필요가 있다.
    1. 동이족 국가 진의 진시황은 같은 동이족 조선과의 경계로 만리장성을 쌓고 가급적
    ....대치상태의 평화를 유지하였으나, 장량(장자방)의 책략으로 조선의 한 제후국인
    ....창해의 역사(용사)를 동운해 진시황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실래함
    ...이때 이후로 쇠약해진 조선의 서쪽 변방을 찬탈한 연나라사람 위만 일당이
    ....자신들이 옛 조선 땅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스스로 조선이라 자처하면서
    ....역사기록에 등장하다가 망하였으나 이때 진짜 원래의 조선은 만주로 옮겨간 뒤였고
    ....이렇게 만주 자당경 지역에 존재했던 조선은 완전히 쇠약해져 사라져 버렸다.
    ....이는 마치 중원의 주나라 왕실이 서주에소 동주로 옮겨간 이후
    ... 초라하게 그 명맥만 유지하다 쇠잔해 사라진 것과도 같은 형국이었다.
    2. 동이족 조선이 쇠약해지면서 조선의 강역안에서는 여러 열국들이 춘추전국처럼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조선의 한 열국에 해당하는 사로(죽국식으론 흉노)와
    ....한나라 고조 유방간 벌어진 에서 한나라 군대 수십만을 죽이고,
    ....한 고조가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남
    3. 전한의 한무제가 사로(흉노)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사로(흉노)와 같은 편에 서 있던
    ....낙랑(산동-북경일원)의 유민들과 조선(이때 조선의 옛지역은 발해만 북부일원~요서)을
    ....공격하였고 ,수십년간에 걸친 전쟁에서 한나라군대 수십만이 죽으면서 옛조선 땅을
    ....차지하여 여기에 옛조선의 제후국들이었던 명칭을 따서 창해,,낙랑,진번,임둔,대방,
    ....현도, 조선 등의 군현을 설치하게 되고 , 역사에서는 이러한 명칭만 남겨진 채
    ....마치 그 잔재들이 없어진 것으로 해 놓았으나
    ... 그러나 이는 옛조선의 열국들의 일부의강역에 지나지 않았고 본류는 여전히
    ....요동~만주~한반도 일원에서 활약하고 존재하였으며,
    ....이후 부여,고구려,발해(=대진국),고려,조선 등에 이어지면서 꾸준히 수복되었다가
    ....다시 빼앗기곤 하는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
    4. 이런 과정에서 사로(흉노, 신라)는 꾸준히 이 고토회복을 전개하였고
    ....마침내 말갈(훗날 여진,만주 및 몽골이라 불리어지며 여기에는 고구려 유민들도 포함됨)
    ....등을 규합하여 엣조선의 강역이었던 만주에서 金, 후금(다시 청(淸))으로 일어나
    ....중국 전역을 정복하고 통치하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잠시 고구려 유민 중 다른 일파인 자들이 역시 말갈을 규합하여
    ....몽골이라 칭하며 중국을 위시하여 인도의 무굴제국 및 서유럽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4. 다시 돌아와서 전한과 후한 사이에 잠지 등장했던 김왕망의 신(新)나라는
    ....바로 사로(=흉노)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후한 광무제가 등장하면서 이 신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5, 후한 말기에 이를 통일한 수나라 양제는 무려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 대다수가 전멸당하고 나라가 마침내 망하였다.
    6. 당나라 고조~태종 이세민 때끼지 무려 연인원 70~80만명이 쳐들어 왔다가 전멸당하고
    ....이 결과로 당 고조는 유언으로 고구려와 전쟁하지 말라 하고 죽었으나
    ....이세민이 말을 안 듣고 쳐들어 왔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눈에 화살을 맞고
    ....앓다고 죽으면서 다시금 고구려와 전쟁하지 말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죽음
    7. 고구려가 걸출했던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내분으로 스스로 붕괴되었는데
    ....이때 당나라는 신라마저 집어삼키고자 하여 신라가 무력으로 정복했던
    ....고구려의 옛땅 지역 여러 곳에서 전쟁을벌여 당군 수십만이 죽었고 패하여
    ....마침내 당군이 물러나고 신라의 통일이 완수되었다
    ....이때 68년간 발해(대조영의 대진국))가 일어나기 전까지
    ....통일신라는 요동~남만주일원~연해주남부 일원 등에 걸쳐
    ....통치를 하게 되었는데....이때의 잔재가 바로 만주에 남아 잏는 길림성이다
    ....이후 당-대진국(고구려를 자처하기도 함) , 신라는 협정을 맺어
    ....요동~만주~연해주~대동강이북에 이르는 고구려 옛땅을
    ....모두 대진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그 이남을 통일신라의강역으로 인정하되 .
    ....통일신라와 당나라간 육로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평안도 서해안 일부 강역과
    ....요동남부 일부 강역에 대해서는 대진국과 당과 통일신라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교역 관리 영역을 두기로 하고 동북아에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오게 됨,
    8. 고려조 때에는 백두산 폭발과 한재 등으로 쇠약해진 발해(대진국) 내에서
    ....권력투쟁의 여파로 내분이 일어나자 이를 이용해 손쉽게 발해를 붕괴시킨 거란이
    ...요나라 황제국을 자처하면서 송나라를 압박하고 있으면서 무려 26년간 3차례에 걸쳐
    ...연인원 60~70만의 기병과보병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으나 궤멸되었고
    ...이로 인한 타격으로 훗날 통일신라의 왕족이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을 이끌고 건국한
    .. 금나라로 변신하는 여진과 송나라의 협공을 받아 멸망당하였다.
    9. 금나라는 고려를 침략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자신들의 발원이 된 모국이요 같은 동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관계는 금이 몽골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0.몽골을 멸망시킨 몽골은 또 다른 갈래인 옛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 유민들이 모여
    .....붙여진 명칭이다. 몽골제국을 수립한 대칸 징기스칸은 몽골황실비사를 통해
    .....자신의 원류가 고루려부터 시작되었으며, 고구려가 망할 때
    ....첫째와 둘째 집안은 통일신라로,셋째 집안은 대진국(데조영의 발해)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이때 약조하기를 세 형제간의 혼인 관계를 지속하자 하였고
    ....이 전통은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나 이후 발해 귀족이 돤
    ....징기스칸의 직계선조들은 또 다시 발해가 멸망당하는 시점에 현 몽골의 동쪽 변방에
    .....자리잡고 있게 되면서, 그래도 집안 자체를 귀족의 집안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징키스칸인 테무친의 아버지 에스게이의 독살 이후 거의 멸문 수준에서
    .....몽골제국을 세우는 경지까지 진행되면서 유언으로 나라이름을 몽골(고구려 및
    ....고구려를 지칭했던 또 다른 이름인 말갈의 다른이름) 으로 정하고
    ....반드시 몽골의 황족은 옛전통을 이어받아 고려로부터 황족과 귀족의 여인들을 받고
    ....몽골의 황족여인들 역시 고려의 황족에게 버내어 그 혼인 관계 지속 유훈을
    ....잇도록 유언으로 남기게 됨
    ...이로써 몽골은 고려를 복속시키려 무려 40여년간 모두 9차례에 걸쳐
    ....연인원 60~70여마명을 동원하여 고려를 침략했으며
    ....이 과정에서 몽골군 수십 만명이 사상당하였고 마침내 강화가 성립되어
    ....고려 공녀 약 400여명이 몽골로 가고, 몽골 황녀들이 대대로 고려 국와의 처가 되는
    ....혼인동맹이 강화됨으로싸 마침내 몽골의 황실은 황제를 위시하여 황후들과
    ....후비들 및 황족 집안들의 자손들에 이으기까지 대부분이 고려의 자손들이
    ....장악하게 되고, 이를 통해 몽골 연경(북경)에 고려양,고려풍,고려속이라고 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 @user-qp9ul1xv7v
      @user-qp9ul1xv7v 4 месяца назад

      다시 자세히 읽어 보기 위하여 다는 댓글 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 @dannylee9662
    @dannylee9662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보이는만큼 아는 것이죠.
    아는 만큼 믿을 뿐.

  • @seung-heehwang1805
    @seung-heehwang180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우리 민족은 지정학이 만들어낸 전투민족이다.

  • @longtail9230
    @longtail923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그래서 오늘날 독침 전략이 탄생한거지~

  • @Sabrina-sd7mv
    @Sabrina-sd7mv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

  • @user-fw9ti1ee7w
    @user-fw9ti1ee7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수나라랑 싸웠던 평양성이 지금 평양일까요? 지리적으로도 압록강 바깥쪽에 있는 요양이 평양입니다.

    • @user-sv2iv2en8m
      @user-sv2iv2en8m 4 месяца назад

      요즘 새롭게 밝혀지고
      있지요^^ 그래야 수긍이 가지요
      고구려의 영역이 북경
      하북성을 아우르니까요

  • @samchoi3862
    @samchoi3862 4 месяца назад +2

    👏👏👏👏

  • @dannylee9662
    @dannylee9662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중국 왕조 몇개가 한반도 침략했다가 멸망당한 후 중국의 침략을 1000년 가까이 막을 수 있었고
    청나라에 사실상 멸망을 당할뻔했으나 조선의 명맥을 유지한게 다행인가 싶긴 함.

    • @user-sv2iv2en8m
      @user-sv2iv2en8m 4 месяца назад

      청나라도 사실상 역사
      적맥락은 알았겠지요
      멀지만 같은피가 흐르
      는 민족의식은 있으되
      패권다툼 정도니까 멸
      국은 않시키지요
      한마디로 대가리숙여~🤣

  •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살수대첩으로 나온 그림은 사수 전투도입니다
    잘못 나왔어요~ 수정 필요!

  • @seongtaimoon1473
    @seongtaimoon147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덕분에 오해가풀렸습니다.
    왜 한국에 산성이 많고 산성전투를 했는지. 피해를 최소화하고 많이죽일라고 한거지.
    결코 전투를 못해서가아니라는거 . 평지에서 싸울줄몰라서 피한게아니라는거.
    우리에게도 강한 기병은 있었더랬죠.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다만 산성에 관한 통찰에대해 제가 사족 한 말씀 드리자면 삼국시대 접경지역 특히 백제 신라 국경지대였던 곳의 산성들은 교통로 바로 옆의 비교적 낮은 구릉 정상부에 소규모 테뫼식 산성 여러개가 가까이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백제산성들 보면 둘레 300~500m 정도에 대대 규모 병력도 다 들어가기 힘들것 같은 그런 성들이 평균적으로 7~8km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이 산성들은 아무리 봐도 백성들을 수용하는 그런 용도의 성들은 아닙니다. 물론 백제 말기에는 부여 인근을 비롯 충남 전북 지역에서 산성이 높고 험한곳에 대규모로 축성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는 합니다.

  • @ruvoluble
    @ruvoluble Месяц назад

    지리적인 특성땜에 독립 유지한 측면이 있어요.
    중국 쪽에서 점령하려면 너무 보급선이 길어지죠.
    점령하고 싶을 만큼 반도의 생산력이 그리 많지 않아서요

  • @user-if4yh8yv1w
    @user-if4yh8yv1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3

    한민족은 옛날부터 1대 100의 전투 교환비를 자랑했어요

    • @user-zj7tv5wv5p
      @user-zj7tv5wv5p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죄송한데 역사적으로 고려나 조선은 주변국한테 아녀자의 나라 주제에 소리 듣었는데요;; 그리고 100대1 ?? 임진록이나 선조실록에 조선군10명이 일본군 1명을 못 당해낸다고 어명으로 야전을 금지했는데 ... 국뽕 좀 빼라 한심아

    • @user-if4yh8yv1w
      @user-if4yh8yv1w 4 месяца назад

      @@user-zj7tv5wv5p 모르면 주둥이 닥쳐 제팬나치야!

    • @user-pk4bu5wi9f
      @user-pk4bu5wi9f 4 месяца назад +15

      ​@@user-zj7tv5wv5p거
      .. 역사를 초등과정 밖에 모르시는것 같은데요. 수성전 위주의 우리 민족 전략상 교환비에서 어느 정도 맞구요.
      최근 베트남전에서도 여실히 자료가 많습니다.. 아녀자의 나라는 삼국시대 신라 하나 가지고 인용한건가요? 조선은 몰라도 고려때 까지는 거란 여진 몽골 정벌 방어전으로 유명했는데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국뽕드립 비아냥 대지 말고 공부나 하고 들이대세요.

    • @user-uf6kw4zv9f
      @user-uf6kw4zv9f 4 месяца назад

      @@user-zj7tv5wv5p친일매국노집안이구만 냄새가난다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4 месяца назад

      ​@@user-zj7tv5wv5p임진왜란때도 대체로 10대1교환비였어요. 용인전투때까지만 일방적으로 밀렸고 이후 벌어진 웅치,이치전투부터는 대부분 10배믜 적을 상대로 이겼어요. 왜군의 사상자는 20만명이 넘어갑니다.

  • @johnny0320
    @johnny032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영상에 나오는 살수대첩기록화라고 소개되는 것은 살수대첩이 아니고
    겨울에 연개소문이 평양성 앞의 사수(현재 보통강)에서 벌어진 사수대첩 을 그린 그림입니다.

    • @zapzisa
      @zapzis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친절하게 오류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662년(고구려 보장왕 21), 연개소문의 군대가 사수에서 당나라 군대를 몰살시킨 사수대첩 장면을 그린 정영렬의 민족기록화네요. 본문 설명에 오류 설명 올렸습니다

  • @wooyounglim9168
    @wooyounglim9168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강민의 잡지사가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 몇개를 보다 보니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한 내용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가 처한 그 미묘한 입장때문에 한국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국사는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한국사에 대하여 좀더 깊히 공부하여 그 근본적 문제를 파악한 후 다루어야 한국사에 가해진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습니다.

  • @user-ts4wz3xh3t
    @user-ts4wz3xh3t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만주지역 곧 고토를 회복해야 동아시아 패권을 잡을 수 있다.

  • @akoreanman
    @akoreanman 4 месяца назад +1

    625 때도 한국군 대비 중국군의 전사자 비율이 훨씬 높았죠…

  • @ManDKim
    @ManDKim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ㅎㅎㅎㅎ이거제미있네요..체날명..알려주세요
    .

  • @user-mw9fo7uf7x
    @user-mw9fo7uf7x Месяц назад

    한국에서 전투용 활에 대한 연구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복합궁은 장력이 영국 롱보우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전근대 시절에는 표준화라는 개념이 없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맞게끔 장력을 조절했습니다. 전문 활잡이들은 극도로 근력을 키워서 활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현대인이 그당시 활을 사용하기도 힘듭니다. 조선시대에 활을 쏜 기록을 보면 20발로 활쏘기 시합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정도가 연속 사격의 한계였을 겁니다. 활을 많이 쏘았다는건 그 당시 개념이었을것이고 지금 현대 돌격소총처럼 한번에 30발씩 연사하는 개념이 아니었을 겁니다. 조선시대에 조총 사수가 20발 정도 휴대를 했고, 유럽의 전열보병도 대충 그정도 아니면 더 적게 휴대했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 선조들은 주변 민족보다 덩치가 컸을 수 있습니다. 일본인보다는 확실히 컸고, 중국 한족보다 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 만주족같은 북방민족이 우리와 비슷한 체격이었을 겁니다. 체격이 커서 활을 더 많이 쏠 수 있었다고 추정해 봅니다.
    한국에는 연노라는 연발 가능한 노가 있었고, 활은 오랫동안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수련이 부족한 사람들이 쓰기 위한 노가 있었습니다.

  • @user-wu5tg9ku9p
    @user-wu5tg9ku9p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그러니까 한 줄요약하면 디펜스의 민족이라는거죠? ㅋㅋㅋㅋ

  • @pangpanglove2296
    @pangpanglove2296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중국의 성이 우리 성여

  • @user-ts4wz3xh3t
    @user-ts4wz3xh3t 4 месяца назад

    양궁을 잘하는 것은 정몽구, 정의선 현대차의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기 때문

  • @user-xk6ze1uj9p
    @user-xk6ze1uj9p 4 месяца назад

    전쟁에서 쓰는 활은 맥궁으로 무과시험에서
    쓰는 강궁임

  • @user-ik6fk3yg6l
    @user-ik6fk3yg6l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몽골, 거란, 여진 등 유목민족은 근접전을 싫어하고 대개는 활쏘기로 전쟁을 했습니다.
    한반도 사람들은 유목민의 후예에서 농경민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산성에서 활을 쏴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중국과 접촉하면서 공성전, 보병전 등을 배워서 활용도 했지만, 활이 주 무기였습니다.
    한반도 사람들은 근접전의 백미인 대회전이 거의 없었고 했다하면 대패했습니다.
    고려 강감찬은 그래서 특이한 장군입니다.
    일본, 중국은 보병 위주의 근접전을 잘 했습니다.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회전자체가 몇번 없었어요. 이겨봐야 손실이 크기 때문에 피했습니다

  • @user-zp1co7ue5e
    @user-zp1co7ue5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장거리 투사 무기 원툴이 민족 특성이었다니.

  • @user-wr8zz8rs7p
    @user-wr8zz8rs7p 4 дня назад

    먹혔는데... 천년동안 중국 집지키는 개신세였다가 , 수십년 일본 개였고, 지금은 그나마 개는 아니고 형제가 각각 다른 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원정도.

  • @ongochian
    @ongochia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중국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이죠? 수나라

    • @user-sv2iv2en8m
      @user-sv2iv2en8m 4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대륙이라 칭하는
      것도 어폐가있지요^^
      하북성 일원에서 요녕
      성사이가 가장치열했
      던 전투지역이겠지요
      고조선시대 번조선지

  • @jiseo6298
    @jiseo6298 4 месяца назад

    한반도를 굴복시키기위해 힘을 쏟는 순간 중국 왕조도 끝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중국 공산당이 알아야죠. 지정학 날씨 요인으로 한반도는 고대부터 24시간 결집 경쟁사회였다는 말씀. 지금의 피곤한 경쟁사회는 정해진 운명이었다.

  • @user-pf3fp7hi3g
    @user-pf3fp7hi3g 4 месяца назад

    내호아의 수군이 가볍게 왔으니 500기의 철기병에 작살나지

  • @hpaulpaik1380
    @hpaulpaik138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거란이 중국은 아니지 않나요?

  • @user-zh7dv4ht9o
    @user-zh7dv4ht9o Месяц назад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 @user-br4dl1ib4e
    @user-br4dl1ib4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ㅡ 26분에 ... 장면은 .....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아니라...... 연개소문의 사수대첩이니라.

  • @user-hy9fp6fu6t
    @user-hy9fp6fu6t 4 месяца назад

    사용히는지도가 넘 반도에 치우쳐져있다는 느낌입니다.
    실제지도가아니니 북경부근 산동성일부까지도 색을 칠해도 상관없지않나요?

  • @sk.p4885
    @sk.p488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증국성 중국성 하니 짬뽕마렵네요

  • @user-mz4qs1nb7g
    @user-mz4qs1nb7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한국인들이 게임을 ㅈ같이 하는이유가 아니라 겜ㅈ같이 할수밖에 없었던 이유

  • @user-gq9ib7uw9g
    @user-gq9ib7uw9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럽에서 궁사 육성에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 우린 부드러워서 금방금방 길럿겟구마

  • @user-rk4bh5yh2w
    @user-rk4bh5yh2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국은 억울해서 안되는 민족이되어서 되지 그치

  • @user-my7li8tu4u
    @user-my7li8tu4u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원래 역사하시던분 어디갔우요?

    • @user-fz6hz3uc9x
      @user-fz6hz3uc9x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그분 코너도 계속 하고 있어요 며칠전에도 했음

  • @jihyunkim3017
    @jihyunkim3017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어쩐지.. 겜 할때마다 "고~"를 외치면 노빠꾸에 적을 끝까지 쫏아가서 george는 근성은 우리나라의 dna 였군요 ㅋㅋㅋ😂😂

  • @khkim8424
    @khkim8424 3 месяца назад

    홍대선 작가님 훌륭하시네요
    사이다같은 강연이었습니다
    많은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 @user-ub3wd4nx3g
    @user-ub3wd4nx3g 4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나라 외세 침략 적게 받았습니다.

  • @Infinityisone
    @Infinityison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0:30
    오 신기하다. 그렇구나.
    산성이라는 의미 또는 정의가.

    • @Infinityisone
      @Infinityison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1:32
      ㅋㅋㅋ 재미있게 시청하고 갑니다~

  • @tedkim3066
    @tedkim3066 4 месяца назад

    다 좋은데 고구려가 패망한 그 평양이 지금 북한의 평양이 아니요. 하북성요

  • @user-gi4ru5pk7u
    @user-gi4ru5pk7u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화론적 관점에서 장거리 무기를 잘다루는 dna가 어느 특정국가에 강하다는건 수천년에 거쳐 장거리 무기를 못다루는 사람들은 죽어서 후손을 못남겼다는 뜻이니 기쁘지많은 않구만 ㅋㅋ

  • @min-woopark2660
    @min-woopark266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원딜의 민족이 된 이유를 알았다😊

  • @user-ho2bc8rf8w
    @user-ho2bc8rf8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내전때문에 분열되었기 때문이지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고려가 20만이 다라고 말하는 데 강조는 30만의 군대로 거란의 20만과 맞섰다. 거란군 20만은 흥화진에 있었다.. 왜 반을 남겨놓고 왔는지 주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흥화진에 주둔한 병사에 대해 위협을 느꼈기 때문으로 최소 5만~10만명의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단지 몇 만명이라면 거란은 기병이 주력이라 보병의 1/5만 남아 있으면 방어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면 저런 역사관이 나온다. 주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역사속에 답을 찿을 수 있다. 안시성주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서를 잘 못 이해하는 것이고, 안시성에 얼마나 병사가 있었는지 모르는 것도 생각을 전혀 못하는 것도 기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역사교육을 못해서 이다.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거란병사들이 말을 안타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유목민들이 말을 안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상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거란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들이 기병이였기 때문이고 고려의 기병이 위협적인 것은 고려의 기병은 유목민의 갑옷과는 다르게 창과 활에 뚤리지 않는 갑옷을 말과 기병에게 입혔기 때문이고 이런 기병 1만명은 제대로 갖춰입지 않은 유목민 10만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기에 거란이 도망다닌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이랬을 거라고 유추하는 이유는 이후 금과 몽고가 이런 부대를 조직해 전투를 치뤘고, 이 부대의 무서움을 느낀 한족이 여진 1만명이 모이면 북쪽이 위험하다라고 한 이유에서 찿을 수 있다.

  • @jigsam2
    @jigsam2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 지도 부터 새로 그려라

  • @user-ql2qc2ec8r
    @user-ql2qc2ec8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언제 부터 중국이라 개념이 생겼는지 부터 고민해라 씨족 가문이 커지면 나라가 되는게 동북아다 산을 강을 보면 우리는 유넙과 다르다 평야가 전쟁을 불러오지 산맥에 둘러 쌓인 지역은 어디도 고대에 킹덤이 없다

  • @jaes4kim
    @jaes4kim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진린이 좋게 평가되는데? 역사적사실은 다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ㅡㅡ

  • @daelimsa
    @daelims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와 대선진리 교주님 체널도 열었고 머리도 심었네요 , 오랜만에 소식들어서 방갑네요, 구독할께요.ㅋㅋㅋ

  • @benkim8053
    @benkim805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흠... 작가의 깊이가 궁금하다 싶었는데, 내호아가 처들어 온 성은 지금의 평양성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를 처들어 온 왕조들은 모두 북방민족의 왕조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우리가 알아서 긴 케이스로 이성계는 후대에게 잘못한 교훈을 남겼다.

  • @saeyeonna8916
    @saeyeonna8916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런 한국인의 특성이 북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합니다

  • @bsk6635
    @bsk663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수 당 시대에 고구려 평양이 지금 한반도에 있었나요?
    확실합니까? ^^

  • @easeafe4re581
    @easeafe4re58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프랑스놈이 우리가 순응적인 민족이라 했다고?
    마음에 안들면 대통령을 몇번이나 갈아치웠는데 그딴 소리하지?
    이승만, 전두환도 갈아치웠고 박근혜도 끌어내렸는데 순응적이라고?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한번밖에 없잖아

  • @dongh7408
    @dongh740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단군 할아버지가 만주부터 터잡으시고!
    고구려 장수왕이 평앙으로 내려온것은 맞쬬? A!c?

    • @user-rk4bh5yh2w
      @user-rk4bh5yh2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단군 할배는 터잡은것은 지금의 만주

    • @user-ej8mn8xs9x
      @user-ej8mn8xs9x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실제로 평양성은 대륙에 있고 단군의 우덤은 버젓이 대륙의 서안에 무수히 존재하는데 만주의 피라미드도 단군의 무덤입니다 구글로 검색해도 볼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