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계백이 출전전에 가족을 다 죽이고 출전한걸로 봐서는 이미 가망이 없었던걸로 보이는데...충신 홍수인지 흥수인지 기벌포와 죽령?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적이 오기전에 두곳을 무조건 막아야 된다고 감옥에서 주장했는데 의자왕은 그 두곳을 막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어서....지방호족들도 항전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의자왕 이 왕자일때 해동증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이면에는 의자왕도 똑똑한 인물이고 초기에는 신라의 공세가 꽤나 성공적이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다만 치세 중기와 말기에 어떤 행적이 있었는지는 내가 잘 몰라서...다만 유추하자면 어떤 인물이던 아니면 어떤 정치적 상황이던 간에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변질된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은 있습니다...마지막 충신이 투옥된걸로 봐서는 초기 중기의 충신들이 정치적상황에 의해서 서서히 배제 된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이 의자왕의 아들과 외척세력에 의한것인지 또는 지방 호족세력들의 반발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다만 백제 부흥운동 당시에 왕자들 사이에 알력다툼으로 백제세력이 회복을 눈앞에 두고 쉽게 진압되었다는 기록을 봐서는 후계자싸움으로 인한 외척을 의자왕이 정치적으로 누르지 못한상태 에서 나당 연합군에 당한것이 아닐까...라는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의자왕이 해동증자라는 평을 듣지만 증자가 계모에 대한 효심으로 이름 높던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그는 사택왕후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자책봉이 늦은건 그와 관련이 있지 않나 보이며 그래서 더욱 젊은날 전공에 집착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당시 일본의 역사서 등씨가전(藤氏家傳)에 나온 평가를 보자면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 당나라에는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를 보면 성충이 단순한 문신이 아니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위 중 사택지적이 사망하면서 큰 변곡점이 나타나는데 이 때 의자왕의 아들들을 비롯한 친인척들을 요직에 앉힌 것으로 봐서는 이 때 호족들이나 성충과도 사이가 틀어진게 아닌가 싶네요
예식진은 의자왕을 도와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7월 18일에 이미 함락되어 나당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으로 의자왕을 사로잡아 끌고가서 당군 원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바쳤다. 예식진의 이러한 배신으로 의자왕은 당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백제는 저항의 구심점을 잃고 멸망하게 되었다. 이후 예식진은 당에 들어가 당 고종으로부터 궁정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하는 정3품의 좌위위대장군(左威衛大將軍)에 제수되었다. 672년 5월 오늘날 중국 산동성 용구시인 내주(萊州) 황현(黃縣)에서 세상을 떠났다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김유신이 계백을 이기고 첫 보급은 성공했죠 그 다음 보급은 게릴라 전으로 차단당하고 있었습니다 쌀을 보급하는 것인데 게릴라전으로 보급품만 공격하면 됨 여기에 수만명이 움직일수는 없죠 사비성에서 당나라군과 신라군 본진만 고립시키고 보급부대만 뒤에서 짤라먹으면 되는 것임 그렇게 하고 있던 상황에서 예식진이 의자왕을 잡아서 백제에 항복함
@@Ulsanman3 의자왕의 계획은 그럴싸 했지만 이미 수도 근처에서 계백과 의직의 2만이 넘는 군대가 격파당하고 사비성까지 함락당해 빈손으로 웅진성으로 빤쓰런 했을때부터 이미 성공 확율은 희박했죠 성충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에서부터 미리 봉쇄해서 시간도 벌고 군사들도 보존하면서 웅진성 들어갔다면 백제는 나당연합군을 물리쳤을겁니다
@@jy1423 애초에 통할 상황은 이미 지났음. 나당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상황에서 성충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에서 미리 막아서 시간을 충분히 벌고 병력 손실을 줄였으면 그나마 확율이 높았을텐데 이미 2만이 넘는 군대가 격파당하고 수도까지 순식간에 함락당해서 의자왕이 아무 준비도 갖추지 않고 그냥 웅진으로 빤쓰런 해버린 상황이라 뭘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님 왕이 군사든 뭐든 아무 것도 안가지고 맨몸으로 웅진성에 들어갔으니 성주가 딴맘 먹으면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웅진성주였던 예식진에 의해 잡혀 항복하게 되지
예식진은 당나라에서 죽었다는...
정확히 말해 당나라에서 부귀영화 누리다 죽었습니다. 예발놈
예식진 끝
웅진성이 천도 하기 이전에 수도였으니 왕족을 보내서 관리히면서 반란 혹은 외부 침입에 대비하는 기능을 부여 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음. 나중에 알았는데 사비성 위치가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상대해야 하고 한쪽이 뚫리면 굉장히 피곤한 지형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백제의 왕가 부여씨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왕실로 부활했죠.
원조 왜구?
이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가 백제의 고토수복과 신라에 대한 복수로 이어지는게 흥미롭더라고요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당장에 백제랑 고구려는 결국에 뿌리가 같고 백제를 건국한 세력이 본래 고구려땅의 주인인데 이건 뭐 일본의 조선식민지화는 물론 만주국까지 명분을 만들어주는 논리인가요?
일본 왕실로가거나 다이묘가되거나에요
의자왕이 얼마나 안타까웠
으면
예식진 항상 배신자는 곁에 있음
이제 댓글이 있습니다.
지금도 훌륭한 예식진의 후예들이 대 활약해서
미국 일본 식민지 생활잘하고 있음
세금 많이 내면서.
셰셰
@@고봉희-g1p정신병자😂😂
50년 전의 뇌를 가지셨군요..
ㅋㅋㅋㅋㅋ
원래 옵져버로 보면 다보이지 인게임하고는 다름
영어강사에서 역사강사로?
의자왕 재평가~~~~
그런데 계백이 출전전에 가족을 다 죽이고 출전한걸로 봐서는 이미 가망이 없었던걸로 보이는데...충신 홍수인지 흥수인지 기벌포와 죽령?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적이 오기전에 두곳을 무조건 막아야 된다고 감옥에서 주장했는데 의자왕은 그 두곳을 막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어서....지방호족들도 항전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성충 - 백제의 마지막 충신 (문신)
계획이 성공해서 당나라군 굶어죽기직전에 당나라에 포섭된 백제장수가 성문을 열어버림.
의자왕 이 왕자일때 해동증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이면에는 의자왕도 똑똑한 인물이고 초기에는 신라의 공세가 꽤나 성공적이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다만 치세 중기와 말기에 어떤 행적이 있었는지는 내가 잘 몰라서...다만 유추하자면 어떤 인물이던 아니면 어떤 정치적 상황이던 간에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변질된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은 있습니다...마지막 충신이 투옥된걸로 봐서는 초기 중기의 충신들이 정치적상황에 의해서 서서히 배제 된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이 의자왕의 아들과 외척세력에 의한것인지 또는 지방 호족세력들의 반발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다만 백제 부흥운동 당시에 왕자들 사이에 알력다툼으로 백제세력이 회복을 눈앞에 두고 쉽게 진압되었다는 기록을 봐서는 후계자싸움으로 인한 외척을 의자왕이 정치적으로 누르지 못한상태 에서 나당 연합군에 당한것이 아닐까...라는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의자왕- 용두사미
의자왕이 해동증자라는 평을 듣지만 증자가 계모에 대한 효심으로 이름 높던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그는 사택왕후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자책봉이 늦은건 그와 관련이 있지 않나 보이며 그래서 더욱 젊은날 전공에 집착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당시 일본의 역사서 등씨가전(藤氏家傳)에 나온 평가를 보자면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 당나라에는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를 보면 성충이 단순한 문신이 아니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위 중 사택지적이 사망하면서 큰 변곡점이 나타나는데
이 때 의자왕의 아들들을 비롯한 친인척들을 요직에 앉힌 것으로 봐서는 이 때 호족들이나 성충과도 사이가 틀어진게 아닌가 싶네요
이분은 사학전공자도 아니고 여기저기 다 나오네
백강전투에서 지기전까지 백제는 망한게
아님
헬로비너스 나라닮으셨네
배반만 없었어도.......
의자왕은 당나라 압송돼 살다가 북망산에 묻혔다.
항전이였다 x 항전이었다 o
백제 멸망은 내부 배신 이 원인. .저동네는 왜??
사실 한국 역사는 전부 포장됨
의자왕이 그걸 몰랐을까?
예식진이 옥쇄 바치잖노 의자왕 잡아서
내가 공주사람인데 웅진에서는
그런 대전투를 벌일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웅진은 대륙에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님말대로면 삼국은 우리역사가 아닙니다 중국역사지 ㅡㅡ
그리고 중국에 있었음 몇백년 왕국 있을수없음ㅡㅡ
ㅋㅋ 실제 웅진성 가면 그냥 평범함
바로앞에 강이 흐르지않나?
너무 과대포장은 하지맙시다.
공주산성 안에 있어도 굶어죽습니다.
예식진은 의자왕을 도와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7월 18일에 이미 함락되어 나당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으로 의자왕을 사로잡아 끌고가서 당군 원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바쳤다. 예식진의 이러한 배신으로 의자왕은 당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백제는 저항의 구심점을 잃고 멸망하게 되었다.
이후 예식진은 당에 들어가 당 고종으로부터 궁정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하는 정3품의 좌위위대장군(左威衛大將軍)에 제수되었다. 672년 5월 오늘날 중국 산동성 용구시인 내주(萊州) 황현(黃縣)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휴~ 머리는 어디가가 쓰는지..
김유신 쌀배달을 계백이가 못 막은
시점에서 전쟁끝난거여
성안 농성은 쌀이 썩어도는게 아니라
당나라보다 더 버티는 양이야
왕족들이야 당나라가 죽이는편이 아니지만
장군들은 아님 예식진은 높은 확률로
죽거나 베팅을 딴대하거나 해야 하는거지
니들 흑지상지나 고선지 안배우냐?
계내들은 부흥운동 안하고 당에 베팅
하잖어
질질 끌려면 뭘 군사적 대비를 완벽히 해놓고 질질 끌어야지 겨우 전북+충남북 영토에 군사집결도 제대로 못해서 수도함락당해 게다가 적들의 보급로도 전혀 차단을 못했고 동맹국들 원조도 못받은 상황인데 애초에 질질 끌면서 항전할 상황이 아니었음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김유신이 계백을 이기고 첫 보급은 성공했죠
그 다음 보급은 게릴라 전으로 차단당하고 있었습니다
쌀을 보급하는 것인데 게릴라전으로 보급품만 공격하면 됨
여기에 수만명이 움직일수는 없죠
사비성에서 당나라군과 신라군 본진만 고립시키고 보급부대만 뒤에서 짤라먹으면 되는 것임
그렇게 하고 있던 상황에서 예식진이 의자왕을 잡아서 백제에 항복함
웅진성에는 장기농성을 위해 식량도 비축되어있었고 왜국에 도움요청할수 있었죠 게다가 귀족간의 갈등은 사비계이지 웅진쪽은 아니었죠
저땐 백제랑 고구려 연합이어서 고구려가 원군 이끌고 올 정도만 시간 끌었어도 어떻게 될지 모름
@@Ulsanman3 의자왕의 계획은 그럴싸 했지만 이미 수도 근처에서 계백과 의직의 2만이 넘는 군대가 격파당하고 사비성까지 함락당해 빈손으로 웅진성으로 빤쓰런 했을때부터 이미 성공 확율은 희박했죠 성충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에서부터 미리 봉쇄해서 시간도 벌고 군사들도 보존하면서 웅진성 들어갔다면 백제는 나당연합군을 물리쳤을겁니다
@@jy1423조선시대에도 우리가 청나라 이길수 있었는데 라고 하던 놈들 많았다더라
소정방은 고구려가 목표. 남쪽 두나라는 관심 밖?
소정방은 그랬을지 몰라도 당나라는 통째로 먹을 심산이었지.. 매소성에서 졌으면 한강 이북은 중국이었음
@@파크냐아수투아루 계림도독부도 설치했는데 걍 끝이지 한강이북은 너무 적기 잡은거 아님?
백제 실망이다!
꼴랑 5천 들고 베팅을 하는 나라라니...
역사강사?
배신이 난무하는구만
역사를 상상으로 방송하누?
결국엔 의자왕이 망했지...힘이 약했으니!!군대는 세력과 보급이 양존해야 함... 당나라한테 신라의 보급이 그래서 필요했던거임
그 웅진이 지금의 지명 웅진이 아닐텐데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던 근거는?
대륙에 있었습니다. 이젠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때입니다
소정방이 왜 배타고 오냐 그러면 ㅋㅋㅋㅋ
@@hofffnung 반말하면 혼납니다~
ㅋㅋㅋ 아따 대륙에 있는데 당나라가 배타고 가냐??
백제가 중국있음 중국이 단독으로치지 신라랑 연합을 왜해요
그리고 님 말대로면. 삼국 중국역사입니다
@@상륙이조선족 알바로 의심됨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모두 대륙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사이비역사 징글징글
@@matttart 조선총독부가 만든 역사 위조책에 세뇌된 대과리 징글징글
@@matttart쎼쎼
이렇게 이야기하는것은 증거가 차고 넘처서이다.^^~
이런주장을 하는 이유나 한번찾아봐라
그 증거란게 중국에 있는 백제의 흔적들이라면
우리는 몽고도 되고 일본도 되겠다
웅진성이 무슨 테오도시우스 성벽도 아니고..
버텨봤자. 한강 뺏길 때 이미 망한거고.
신라가 당나라랑 동맹 맺을 때 끝나거임.
반도사관 ㅉㅉㅉ
신뢰성 없는 사람
자기가 경상도라 신라래 ㅋ
신라랑 지금 경상도랑 몬상관?
신라가 보급 대주고 전라도 전지역 다 장악당하면 질질끄는 전략이 통하냐?
계백의 신라방면 결사대가 일차시간지체를 했지만 당나라 방면이 너무 쉬이 뚫려 전격전
이럴경우 대부분의 나라들은 후방으로 물러나며 전열정비하면서 지연작전
주목적은 적전선을 길게 늘어뜨리는거
전선이 전후방으로 길게 늘어지면 보급선이 길어지게되고 위험해짐
통함 왜냐하면 저땐 고구려랑 백제랑 연합이었음 시간 끌었으면 고구려 원군 꾸려서 도착할 수 있었음
@@jy1423 애초에 통할 상황은 이미
지났음. 나당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상황에서 성충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에서
미리 막아서 시간을 충분히 벌고
병력 손실을 줄였으면 그나마
확율이 높았을텐데 이미 2만이 넘는 군대가
격파당하고 수도까지 순식간에 함락당해서
의자왕이 아무 준비도 갖추지 않고 그냥
웅진으로 빤쓰런 해버린 상황이라 뭘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님 왕이 군사든 뭐든 아무 것도 안가지고
맨몸으로 웅진성에 들어갔으니 성주가 딴맘 먹으면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의자왕은 잡혀서 당 시안까지 이틀만에 잡혀잡혀갔답니다.
충청도에서 배타고, 말타고 이틀만에 갈 수 있어요?
그건 백제가 현재 충청도땅이 아니라 대륙 백제땅에서 시안으로 갔다는 거죠.
백제는 목숨 걸고 싸워지킬 이유가 없는 나라였다 전투력은 정치력에서 나오는 거다
아~~ㅅㅍ
백성은 밖에서 다 죽는데…니가 살았다한들 그게 무슨..대단한 나랏님 나셨네
먼저 굶어 죽는다.
완전 고립인데 뭔 소리야?
남한산성 인조도 버티다가 배고픔에 항복했다.
아직 식민사학을 강믜하냐 ?
내생각은 신라때문에 이나라가 망한거여
1300년전 일 때문에 지금 망힌거면 걍 죽는게 낫지 않냐 1300년동안 뭐한거임?
이제야 망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네. 작전이 멍청해서 망했지.🤗🌹🕯🇰🇷
웅진성주가 의자왕 배신하고 당나라에 항복해서 백제가 망한 거임
전투는 식량보급이 최우선인데 척박한 경상도가 백제를 어케이기냐?
전라남도는 삼국시대에 농토가 아니라 습지였고 김제에는 바닷물이 들이쳐서 방조제로 만든게 벽골제다. 조선시대에도 경상도가 전라도랑 비교해서 생산량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수준이었다.
제발 책이라도 좀 읽고 아는 척 좀 해 ㅋㅋ
@@성이름-m3u 경상도는 가 봤니? 그럼 충청도는? 조선인구 150만멍인데 백제성 200백개 100백만대군은? 읽어봤니? 월나라 현 베트남과 백제전투는? 전라도가 습지였음 경상도는 산악 그럼 산둥반도는 섬 였을 확율 높아지고 그럼 강화가 산둥일 확율 높아지네 습지에서 곡식 생산성이 났겠니 산악지역에서 곡식 생산성이 났겠니? 참 충청도는 백제중심 아니냐?
@@성이름-m3u 야 백제시대 충청호남 습지인데 백제성 200개 어딧냐? 책만읽음 다냐? 하남시 위려성 위치는 어디냐? 지금 살고 있는 땅에 전부 땅파도 변변한 위적지 나오니? 생각좀하고 사러 뇌는 머하러 가지고 다니냐?